‘2030년까지 석탄발전 멈춰야주장엔 91%공감

 

기후위기비상행동활동가들이 지난 2일 낮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후위기를 상징하는 빨간 지구로 인한 생물 멸종 가속화를 상징하는 다이인’(die-in) 행위극을 하고 있다. 이들은 오는 25일까지 전국적으로 지구 생태계와 인류 생존을 위한 1.5도 목표에 부합하는 2050년 배출제로 등 기후정책 수립을 요구하는 집중행동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우리 국민 60%가량이 최근 코로나19 대유행과 폭우 등을 겪으며 기후위기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조금이라도 그렇다고 답한 이들까지 합하면 조사 대상자의 96%에 이른다. 응답자 대다수(91%)는 우리나라가 2030년까지 석탄발전을 그만두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했다.

환경단체 녹색연합은 한국갤럽에 의뢰해 전국 만 14~69살 국민 1500명을 지난달 20~25일 설문한 결과 이렇게 나타났다고 3일 밝혔다.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97.7%는 기후위기가 매우 심각하거나(65.3%), 약간 심각하다(32.4%)고 보고 있었다. 이들은 최근 코로나19와 폭염, 폭우 등 기상이변을 겪으며 기후위기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매우 그렇다 59.6%, 약간 그렇다 36.2%)고 밝혔다. 코로나19가 기후위기와 관련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는 3분의 266.7%매우 혹은 대체로 동의한다고 해, 국민 다수가 코로나19 사태를 기후위기와 연관 지어 이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또 지구 기온 상승 폭을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들어야 하며, 한국 역시 이를 목표로 해야 한다는 주장에 57.1%대체로 동의하고 33.5%매우 동의한다고 밝혔다. 한국이 2030년까지 석탄발전을 그만두고 재생에너지로 하루빨리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선 49.2%대체로 동의’, 41.5%매우 동의했다. 조사 대상자들은 또 현재 추가로 지어지는 석탄발전소 7기와 관련해 지금이라도 건설이 중단돼야한다는 주장에 55.4%대체로 동의’, 26.2%매우 동의했다.

시민들은 기후위기와 관련한 정보를 주로 언론 기사(42.5%)와 인터넷(40.6%)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외엔 정부 홍보(4.8%), 시민환경단체(4.8%), 교육(4.0%), ·영화(3.3%) 순이었다. 기후위기 대응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묻는 말에는 정부에 있다고 답한 비율이 36.9%로 가장 많았다. 이어 기업·산업(28.5%), 개인(25.3%), 국회·정당(4.6%), 언론(2.7%), 교육기관(2.0%) 순이었다

유새미 녹색연합 활동가는 폭염, 폭우, 코로나19 등의 재난을 겪으며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시민 인식이 높아진 것이 확인됐다정부가 2050년 배출제로 목표를 수립하는 등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과감히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설문의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2.53%포인트다. < 박기용 기자 >

 

 



인권위, 피해 직원 진정에 결정문, 외교부엔 사건 처리 미흡지적

 

국가인권위원회가 한국과 뉴질랜드에서 논란이 된 한국 외교관 김아무개씨의 주뉴질랜드 한국대사관 현지인 직원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성희롱 사실을 인정하고, 피해 직원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라고 권고했다.

외교부가 인권위한테서 송부받은 결정문에는 지난 201711월께 벌어진 현지인 직원에 대한 김씨의 신체 접촉을 성희롱으로 인정했다고 3일 알려졌다. 인권위는 김씨에게 성희롱에 대한 보상 조처로 금액을 특정해 피해 직원에게 지급하라고 주문했으나, 권고한 구체적인 액수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권고는 피해자인 현지인 직원이 지난 201811월 인권위에 제기한 진정에 대한 결정문으로, 피해자와 피진정인 외교관 김씨, 또다른 피진정인인 외교부에 각각 발송됐다.

인권위는 외교부 관련 진정에 대해서는 문제의 성비위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려우나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면서 개선을 요구했다. 구체적으로는 재외공관 내 성희롱 조사 및 처리 절차를 규정한 메뉴얼이 없다는 점, 사건을 인지한 뒤 피해자와 가해자 간 분리 조처가 충분치 못했다는 점, 재외공관 인사위 구성 문제 등을 지적했다고 한다. 재외공관 내 성희롱이 발생할 때 조사 및 피해자 구제 과정에서 공정성이 담보된 메뉴얼 마련 등 시스템을 보강하도록 주문한 것이다.

인권위가 외교부의 해당 성비위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 자체를 문제삼지 않은 것은 2017년 말 피해 직원이 뉴질랜드 공관의 성희롱문제 담당자에게 제보를 한 뒤 처리 과정이나 이후 감사를 거쳐 외교부 징계위원회에서 김씨에 대한 징계 결정을 내리는 등 적법한 절차에 따라 사건을 처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문제는 절차적 정당성보다 징계의 내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외교부는 지난해 김씨에게 감봉 1개월의 경징계를 내렸는데, ‘제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이 일었다.

일각에서 해당 사건에 대한 재조사 필요성도 제기되지만 인권위는 사건을 재조사하라는 권고는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뉴질랜드 관련 사안에 대해서 결정문을 접수했다면서 결정문은 면밀히 검토해서 필요한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부는 90일 이내에 권고문과 관련해 어떤 조처를 취할지 인권위에 통지할 예정이다.

현지 직원은 인권위 진정 외에도 지난 201910월 뉴질랜드 경찰에 김씨의 성추행 행위를 신고했지만, 김씨가 20182월 임기를 마치고 출국한데다 대사관에 대한 조사 방식을 둘러싼 양국 간 의견 차로 사실상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 김지은 기자 >


[칼럼] ‘가 아닌 사람을 목표 삼는 수사

박용현 논설위원

어느 검찰총장의 연설 중 일부다.

검사라는 직책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사건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검사가 사건을 고른다는 것은 곧 피고인을 고를 수 있다는 뜻이다. 바로 이것이 검사의 권한에 내포된 가장 큰 위험이다. 즉 처벌할 필요성이 있는 사건을 고르기보다 잡아넣고자 하는 사람을 고르게 된다는 점이다. 법전에는 수많은 범죄가 규정돼 있으니 검사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서 작은 법 위반 행위라도 찾아낼 수 있다. 사람을 선택한 뒤 그에게 혐의를 적용하기 위해 법전을 뒤지거나 수사관에게 조사를 시키는 식이 된다. 검사가 싫어하거나 괴롭히고 싶은 사람 또는 사회적 혐오 대상을 선택하고 그들의 범죄 혐의를 찾는 방식이야말로 검찰권의 가장 큰 남용 위험이 도사린 지점이다. 여기에서 법 집행은 사적인 것으로 전락한다. 기득권·지배층이 싫어하는 사람, 잘못된 정치적 태도를 지지하는 사람, 검사에게 혐오스럽거나 방해가 되는 사람 들이 진짜 범죄자를 대체하는 것이다.”

연설을 한 사람은 미국 연방 검찰총장을 지낸 로버트 잭슨(1892~1954)이다. 2차 세계대전 뒤 전범재판에 미국을 대표하는 검사로 참여하기도 했다. 1940년 검찰총장에 임명된 뒤 연방검사라는 제목으로 검사들에게 한 이 연설은 검사의 권한과 역할에 대한 근본적 통찰을 담은 명연설로 평가받는다. 검사의 막강한 재량권을 어떻게 독립적이면서도 책임있게 행사할 것인가. 이 질문에 잭슨은 사람이 아닌 를 봐야 한다고 답한다.

며칠 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기소되자 변호인단은 증거에 따라 실체적 진실을 찾아가기보다는 처음부터 삼성그룹과 이재용 기소를 목표로 정해놓고 수사를 진행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맞는 말인지는 별도로 살펴보겠지만, 그 자체로 눈길을 끈다. 내로라하는 전직 특수통 검사들이 포진한 변호인단에서 검찰이 죄가 아닌 사람을 목표로 수사한다는 인식을 공식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검찰의 집단적 경험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인식이 아닐까 싶다. 이제껏 무수한 사건에서 검찰이 보여온 행태가 그렇기 때문이다. 멀게는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부터 가깝게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까지 왜곡·조작된 공안사건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비롯해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 사건, ‘피디수첩사건, 미네르바 사건 등 정권의 눈엣가시를 표적 삼은 사건들.

이와 데칼코마니를 이루는 게 검찰의 봐주기 수사. 죄가 아닌 사람을 기준으로 사건 처리가 달라진다는 점에선 본질상 같다. 현직 시절 후배 검사를 강제추행한 혐의로 3일 법정구속된 진아무개씨처럼 검사가 범죄를 저지른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는 감찰을 받고도 징계 없이 퇴직해 대기업에 임원으로 취직까지 했다가 사건 발생 3년이 지난 2018미투국면에서야 기소됐다.

죄가 아닌 사람을 겨냥한 수사는 잭슨이 지적한 삿된 동기들이 작동하는 점, 그러다 보니 수사가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나 비례성을 잃어버린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럼 이재용 부회장 수사는 어떤가. 삼성 변호인단은 무엇보다 검찰이 이 부회장을 목표물로 삼은 동기를 적시하지 못한다. 변호인단뿐 아니라 그 누구도 검찰의 부당한 동기를 논리적으로 제시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50여차례의 압수수색과 몇백차례의 임직원 소환조사를 과잉수사라고 주장하는 축도 있는데, 사건의 중대성과 복잡성에 비춰보면 최선을 다한 수사였을 뿐이다.

잭슨의 연설을 읽으며 떠오르는 것은 그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다. 검찰개혁에 대한 저항이라는 동기 분석이 나오고, 70여차례 압수수색으로 상징되는 인디언 기우제식 수사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아무리 봐도 기소된 혐의와 수사 규모·강도가 비례하지 않는다.

잭슨의 통찰은 검찰의 독립성·중립성·공정성 같은 추상적 원칙들을 하나의 표지로 쉽게 갈무리했다. 죄냐 사람이냐. 이 시선으로 검찰을 감시하다 보면, 검찰이 잭슨이 말한 두 극단의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검사는 본래 역할을 다할 때 사회에 최선의 기여를 하는 권력이지만, 악의나 비열한 동기로 행동할 때는 최악의 권력이 될 수 있다.”

< 박용현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