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배우 올랜도 블룸과 팝스타 케이티 페리가 딸을 품에 안았다.
두 사람이 친선대사를 맡은 유니세프는 27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기쁜 소식을 전하게 돼 영광"이라며 이들의 득녀 소식을 전했다.
유니세프 측은 딸 이름이 데이지 도브 블룸(Daisy Dove Bloom)이라고 소개하면서 이들이 서로 맞잡고 있는 사진도 공개했다.
올랜도 블룸과 케이티 페리는 유니세프에 "딸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태어나 사랑과 경이로움 속에 떠다니는 기분"이라고 심정을 밝혔다. "우리는 운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모든 사람이 우리처럼 평화롭게 출산하는 건 아니다"라며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임산부와 신생아가 11초마다 사망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더 많은 신생아가 위험에 처해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기부 페이지를 개설했다고 알리면서 지원을 통해 건강한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해 달라고 당부했다.
올랜도 블룸과 케이티 페리는 지난해 2월 약혼했고, 올여름 결혼할 계획이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예식을 연기했다. 케이티 페리는 지난 3월 신곡 '네버 원 화이트'(Never Worn W hite)'를 발표하며 임신 사실을 공개했다.
영국 출신의 올랜도 블룸은 영화 '반지의 제왕'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트로이', '킹덤 오브 헤븐' 등에 출연해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배우다.



케이티 페리는 2001년 데뷔해 '아이 키스드 어 걸', '파이어워크', 라스트 프라이데이 나이트' 등의 노래를 히트시킨 세계적인 팝스타다.
한편 케이티 페리는 득녀를 한 동시에 28일에 다섯 번째 정규 앨범스마일을 발매했다. 앨범에는 지난해 5월 발표해 케이티 페리의 발매 역사상 최다 스트리밍을 기록했던 리드 싱글 'Never Really Over', 사샤 슬로안이 힘을 보탠 ‘Cry About It Later’, 지난 20일 출산을 앞둔 어머니의 심정을 담아 선보인 싱글 'What Makes A Woman' 등 총 12곡이 담겨있다.
케이티 페리는 기자회견에서 그룹 블랙핑크를 언급하며 K팝 아티스트와의 컬래버레이션에 대한 긍정적인 의사를 밝혔다. 그는나는 숫자가 아닌 마음을 움직이는 협업을 원한다. 섹시하게 느껴지거나 공감할 수 있는 멋진 곡이 있다면 물론 협업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29일 오후 노스욕에서 승용차와 오토바이 추돌 사고가 일어나 중상을 당한 30대 오토바이 운전자가 병원으로 급히 이송됐다.
이날 오후 220분쯤 구급대원들이 셰퍼드 애비뉴 남쪽 영스트릿과 플로렌스 애비뉴(Florence Avenue) 일대 사고현장에 긴급 출동, 부상자를 이송했다.
토론토 경찰은 이 지역에서 승용차와 오토바이가 충돌해 오토바이 운전자가 중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피해자는 30세 가량 된 남성으로 생명이 위독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충돌의 원인과 사고경위를 조사 중이다.



29일 몬트리올의 인종차별 반대 시위자들이 RCMP를 창설하고 인종차별을 주도했던 존 A 맥도날드 초대 총리의 동상을 쓰러뜨리고 훼손하며 경찰 예산 삭감을 요구했다.

몬트리올 경찰 대변인은 이날 오후 245분쯤 존 A 맥도날드의 동상이 빗장이 풀린 채 넘어지고 낙서가 되어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경찰은 시위 현장에 출동했지만 확성기로 군중에게 해산할 것을 요구하는 것 외에는 개입하지 않았고 아무도 체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동상을 넘어뜨린 시위대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평화 시위의 일환으로 약 200명의 시민이 모여 행진하며 경찰 해산과 예산 삭감을 요구하는 가운데 거친 행동도 했다. 행진 시민들은 빗 속에 우산을 쓰고 변화를 요구하는 표지판을 들고 행진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미네소타에서 경찰에 사망한 후 최근 몇 달 동안 캐나다에서도 경찰에 대한 지원을 철회하라는 요구가 급증했다.

이날 시위를 주최한 BIPOC Liberation 연합 (Black, Indigenous, People of Color Movement) 이라는 단체는 경찰 예산을 50% 삭감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과도한 경찰 예산이 정신건강 치료, 민간 분쟁해결 서비스, 외상 기반의 응급 서비스 같은 분야에 치안 유지를 대신하여 투자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시위대 측은 토론토, 런던, 몬트리올, 프레데릭턴, 멕스턴, 핼리팩스에서도 시위가 벌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동상이 수난을 당한 존 A. 맥도널드 캐나다 초대 총리는 원주민을 폭압적으로 대하는 데 주도적이었던 인종차별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특히 캐나다 왕립 기마경찰 RCMP, 즉 연방경찰을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맥도널드는 원주민과 토지 협상을 맺고서는 이를 지키지 않고 토지수탈과 착취를 자행했다. 또 원주민 문화 말살 정책인 원주민 기숙학교 및 아동 강제 수용 정책을 시작한 총리였다.
그는 중국인에 대해서도 투표권을 주지 않는 법을 만드는 차별적 발언을 했다. “(중국인은) 영국적인 본성이나 영국적인 감각 또는 욕구가 없다.” (“He has no British instincts or British feelings or aspirations.”). 또한아리안 민족은 아프리카인이나 아시아계와 완전히 융합하지 않을 것이다라며인종을 넘는 건, 마치 개와 여우의 교배 같아서 성공할 수 없다. 일어날 수도, 절대 일어나서도 안 된다라고 말했다. 현대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전형적인 발언을 1885년에 한 것이다.

이에 온타리오 교사노조는 지난해 맥도널드 총리가말살(genocide)’을 주도했다며, 그의 이름을 딴 학교 이름을 쓰지 말자고 결의했다. 일부 역사학자도 맥도널드가 인종차별을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한 인물이란 점을 비판한다.
맥도널드는 1815 1 11일 영국에서 출생했다. 1820년 영국에서 캐나다로 부모를 따라 이주했다. 변호사로 시작해, 1844년 보수당 소속 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1867년부터 1873년까지 캐나다 초대 총리로 활동했다. 1873년 퍼시픽 레일웨이(태평양 철도) 건설 사업을 펼치면서, 철도 회사로부터 정치자금을 빼돌린 소위퍼시픽 스캔들(Pacific Scandal)’로 실각했다. 1878년 다시 총리로 되돌아왔고, 189166일 사망할 때까지 모두 여섯 차례 총선에서 승리해 19년간 캐나다 총리 자리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