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다시봐도 멋진 휴먼 드라마

● 칼럼 2018. 8. 7. 19:34 Posted by SisaHan

동굴 속 깊은 미로에 17일간이나 갇혀있다 극적으로 구출된 태국 축구소년들의 이야기는 벌써 사람들 뇌리에서 멀어져 가는 듯 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사연은 꼬리를 물고, 구조에 얽힌 일화들은 감동을 자아낸다.


다시 봐도 가슴에 울림을 주는 것이 감동의 드라마다. 영국 BBC방송은 지난 15일 ‘동굴소년들’의 극적인 스토리를 생생하게 재구성해 방송했다. 소년들이 순진하게 동굴에 뛰어드는 순간부터 구조대에 의해 다시 동굴 밖으로 살아 나오기까지의 기적같은 드라마는 아무리 보아도 아슬아슬하고 감명 깊다. 우리에게 던져주는 긍정적 메시지들이 너무 많아서다. 메마른 세상에서 서로를 돌보고 지탱하는 공동체의 연대와 사랑,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헌신의 모습들, 위기 속에서도 빛난 미약한 존재들의 의연하고 담대함, 절망 속에 결코 무너지지 않는 희망의 지혜…. 그것들은 결코 세월호 트라우마 때문만은 아니다.


친구의 생일파티를 동굴 속에서 열겠다는 ‘멧돼지’들의 천진하고 멋진 아이디어는 갑자기 불어난 수로에 날벼락을 맞는다. 물에 쫓기며 어렵사리 피해 도망쳐간 곳이 입구에서 무려 5Km나 들어간 고립된 언덕이었다. 깜깜한 암흑에서 먹을 것도 떨어지고 추위까지 엄습하는 공포가 밀려들 때, 미얀마에서 태어난 고아로 태국에 넘어와 무국적자로 일하던 코치는 울어대는 아이들을 다독이며 안아주고 자기 먹을 것을 나눠주었다고 한다. 명상하는 법을 가르쳐 안심시키고 움직임을 줄여 체력도 유지하도록 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갈수록 얼마나 두렵고 절망이었겠는가. 그들이 영국 잠수사들에게 발견되기까지 열흘간 땅굴을 판 게 5m에 달했다는 것을 보면 극한에서의 몸부림을 짐작하게 한다.


축구 소년들의 동굴실종 뉴스가 지구촌에 퍼져 나가면서 세계 각지에서 구조인력이 자원해 동굴촌 치앙라이로 모여들었다. 태국의 해군 네이버실을 비롯해 각국의 잠수사와 의료진, 탐험가, 군인, 생존전문가 등 무려 1천여 명이 집결했다. 13명의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모인 다국적 탐사 구조대가 이뤄진 것이다. 이들의 전문적인 역량과 똘똘 뭉친 협업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과연 소년들이 살아 있을지, 어떻게 구조에 나서야 할지 의문이었던 게 사실이다. 아이들의 생존이 확인됐어도 그 험난한 코스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 대책이 서지 않아 지상에서 뚫고 내려간다는 구상이 나오는가 하면, 구조에 40일은 걸릴 거라는 탄식도 나왔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지혜가 모이고 이들이 역량을 발휘하면서 일주일 만에 동굴 소년들은 햇빛을 보고 삶을 되찾았다.


열흘 만에 극적으로 아이들을 찾아낸 영국 잠수사 두 명은 ‘기적의 신호탄’이 됐다. 50대 소방관인 릭 스탠턴과 40대 컴퓨터 기술자 존 볼랜던. 이들은 프랑스 동굴에서 물속 70m까지 들어가 10Km를 헤엄치고 무려 36시간 동안 수중에서 지냈으며 잠수병을 예방하려고 20시간 동안 감압을 하는 등 전설적인 기록과 구출 경험의 보유자들이었다. 그들에게는 태국 동굴이 ‘땅짚고 헤엄치기’일 거라는 말도 나왔다. 예상대로 그들은 동굴 바닥을 기고 급류를 헤쳐 수Km를 왕복하며 소년들 위치를 “냄새로 알아내” 어둠 속에 떨고있던 아이들 생존의 기쁨을 전했다.


태국정부의 차분하고 치밀한 대처도 돋보였다. 언론의 무분별한 취재와 접근을 차단해 불필요한 억측과 소란을 막은 것은 현명한 대처였다. 각국의 전문가들에게 솔직히 도움을 청하고 자발적인 봉사자들도 기꺼이 받아들인 것 역시 인명을 중시한 겸손하고 정직한 태도로 평가받을 만하다. 태국 외교장관은 동굴 잠수와 구조의 전문가인 호주 마취과 의사 리처드 해리스를 조용히 초청하면서 외교관에게 부여하는 면책특권까지 약속했었다는 사실을 나중 공개했다. 해리스는 4Km가 넘는 구간을 잠수해 들어가서 아이들 건강을 체크하고 구조의 시기와 순서를 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잠수하는 의사로 영웅이 됐다가 구조작업 막바지 부친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급거 귀국한 그 의사다.


태국정부는 구조에 수고한 각국 전문가들을 극진히 대접하는 예의도 갖췄다. 영국 잠수사들을 총리가 접견해 칭송하고, 출국하는 그들을 장관들이 공항까지 선물을 들고 가 배웅했다. 다른 이들도 원할 경우 태국여행을 시켜주고, 5년 이내에 다시 방문할 수 있는 항공권을 지급했다고 한다. 그리고 무국적자로 밝혀진 엑까폰 코치와 3명의 소년에게는 국적을 부여할 예정이라고 한다.
국경과 인종을 초월한 인간애와 공동체의 지혜, 그리고 선한 손길들이 만들어 낸 해피엔딩의 멋진 드라마였다. 그래도 여전히 인류의 앞날에 희망을 품게 하는….


< 김종천 편집인 >


[1500자 칼럼] 마케도니아의 선택

● 칼럼 2018. 8. 7. 19:32 Posted by SisaHan

그동안 국제부 기자 생활을 하며 발칸반도의 소국 마케도니아에 관심을 기울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도 이 나라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일본의 ‘욱일승천기’와 닮은 국기 때문이었다. 몇년 전 태양의 빛이 여덟 방향으로 뻗쳐 나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이 나라의 국기를 확인하고, 고개를 갸우뚱한 뒤 그 존재를 기억에서 지웠다.

마케도니아와 다시 조우하게 된 것은 11~12일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때였다. 세계 언론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의에서 벌인 ‘분탕질’에 집중하는 사이, 내 눈을 잡아끈 짧은 단신이 있었다. 나토가 마케도니아를 30번째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교섭을 시작한다는 소식이었다. 조란 자에프 총리는 11일 페이스북에 “기뻐하라! 나토의 정식 회원국이 되기 위한 문이 열렸다. (오늘은) 크고, 역사적인 날”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마케도니아가 나토에 가입하기 위해선 중요한 ‘허들’ 하나를 넘어야 한다. 마케도니아는 1991년 옛 유고 연방에서 독립한 뒤 그리스와 27년에 걸친 외교 분쟁을 겪고 있다. 이유는 뜻밖에도(!) ‘마케도니아’란 국명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에게 마케도니아는 고대 그리스의 영웅 알렉산더 대왕을 배출한 영광스러운 역사의 상징이다. 이들은 마케도니아가 건국하자 “고대 그리스와 아무 관계도 없는 슬라브 민족의 나라가 우리 역사를 갈취하려 한다”며 격렬히 반발했다. 마케도니아 역시 외국의 압박에 굴복해 국명을 바꿀 순 없다며 치열하게 맞서왔다.

영국 <BBC>는 마케도니아에 대해 “역사적으로 격동적인 지역(발칸반도)에 위치한 좁고, 육지에 둘러싸인 나라”라고 묘사한다. 2015년 현재 인구는 207만명에 불과하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유럽연합의 ‘지진아’라 불리는 그리스의 3분의 1(5500달러)밖에 안 된다. 실업률은 2016년 세계은행 자료 기준으로 26.2%까지 치솟아 있다. 그렇기에 마케도니아는 경제 성장의 활로를 찾고 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연합과 나토 가입을 열망해왔다. 이에 맞서 그리스는 마케도니아가 국명을 바꾸지 않는 한, 두 기구에 가입할 수 없다며 반대하는 중이다.

지난달 17일 오랜 대립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위대한’ 진전이 이뤄졌다. 자에프 총리와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마케도니아가 국명을 ‘북 마케도니아’로 바꾸는 대신 그리스는 마케도니아의 유럽연합과 나토 가입에 반대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이다. 단, 마케도니아는 국명 개정을 ‘불가역적’으로 만들기 위해 국민투표를 통한 개헌을 해야 한다. 한국이 헌법을 개정해 독도를 포기하거나 ‘동해’ 대신 ‘일본해’란 명칭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그들이 합의를 지지하면 나토에 가입할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가입할 수 없다. 둘 다를 얻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마케도니아 야당은 그리스와 굴욕적인 합의를 맺은 자에프 총리를 용서할 수 없다며, 올가을로 예정된 국민투표 절차를 방해하는 중이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 그 나라 국민들이 자유의지에 따라 선택한 헌법의 소중한 가치를 구현하며 국민의 생명·재산을 지키고 행복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개헌까지 불사해가며 경제와 안보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케도니아의 처절한 몸부림은, 민족적 자존심을 짓밟은 한-일 국교 정상화라는 ‘더러운 선택’을 통해 경제 발전의 계기를 마련한 1960년대 대한민국의 모습과 많이 겹쳐 보인다.

< 길윤형 - 한겨레신문 국제뉴스팀장 >


[칼럼] 군대를 생각한다

● 칼럼 2018. 8. 7. 19:30 Posted by SisaHan

귄터 그라스는 독특한 정치 참여로 유명한 작가다. 그는 현대 독일문학을 대표하는 ‘노벨상 작가’였지만 ‘글’이 아니라 ‘몸’으로 참여했다. 스스로 자원봉사단을 조직해 선거유세에 직접 뛰어들었고, 연설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연설회는 입장료를 받았지만, 늘 인산인해였다. 흥미로운 건 이렇게 돈이 모일 때마다 그가 군대에 도서관을 지어주었다는 사실이다. 나치즘을 몸소 체험한 비극적 시대사의 증인으로서 군대 민주화 없이는 사회 민주화도 없으며, 계몽된 군대가 민주주의의 초석이라는 신념에 따른 행동이었다.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은 충격적이다. 촛불 시민들이 평화로운 시위를 벌이고 있는 그 순간 군인들이 음습한 곳에 모여 탱크, 장갑차, 특수부대를 동원해 시민들을 유혈 진압하는 시나리오를 짰다는 사실에 등골이 오싹하다. 군사독재의 악몽이 와락 되살아온다. 관련자에 대해서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한 수사를 거쳐 내란죄에 준하는 준엄한 단죄가 내려져야 하며, 기무사의 해체도 검토돼야 마땅하다.
그러나 기무사 개혁은 문제 해결의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 ‘기무사 문건’이 깨우쳐준 것은 군대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고, 이 땅의 군사문화를 발본적으로 청산할 때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개혁과 청산 없이는 한국 민주주의가 한시라도 군사독재의 나락으로 다시 추락할 수 있음을 문건은 경고한다.


우리는 냉전시대에서 평화시대로, 권위주의 시대에서 민주주의 시대로 이행하는 대전환의 한복판에 있다. 한국 군대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발맞추어 완전히 새로운 군대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군대가 진정한 국민의 군대, 민주 군대로 거듭날 적기이다. 민주주의의 신념이 확고한 민간인 국방장관을 통해 군을 전면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민주 군대’의 새로운 철학과 원칙하에 장교를 양성하고,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병영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그라스의 소망처럼 군대가 젊은이들이 성숙한 민주주의자로 성장하는 발판이 되어야 한다.
군대문화를 청산하는 일도 미룰 수 없다. 한국 사회는 ‘병영사회’라고 할 만큼 구석구석 군대문화가 배어 있다. 군대는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문제의 근원이자 원형이다. 한국인에게 팽배한 무력감과 좌절감, 순응주의와 동조주의의 발원지가 군대이며, 한국 사회에 만연한 폭력성과 권위주의의 근원지도 군대이다. 학교와 기업은 유사 병영이고, 가정은 변형된 내무반이다.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잔혹성과 가학성이 깊이 스민 군대문화가 지금까지 살아남아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을 가로막고 있다.


“민주주의의 최대 적은 약한 자아”라는 아도르노의 유명한 명제에 따른다면, 한국 군대야말로 한국 민주주의의 최대 적이다. 군대가 한국인의 자아를 결정적으로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계엄령 검토’ ‘쿠데타 모의’라는 기무사의 정치적 일탈보다 ‘자아의 왜소화’ ‘무력감의 내면화’라는 군대의 관행적 일상이 민주주의에 더 치명적일 수 있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비상의 파시즘’보다 더 무서운 것이 ‘민주주의를 좀먹는 일상의 파시즘’이다. 한국 군대의 궁극적인 문제는 민주주의 질서에 대한 주기적 위협이 아니라, 민주주의적 성격에 대한 상시적 억압에 있다.
내 어머니는 군대 간 아들에게 이런 편지를 쓰셨다. “때론 시련이 큰 그릇을 만든다지만, 대개의 경우 시련은 작은 그릇마저 찌그러뜨리기 일쑤란다.” ‘찌그러진 작은 그릇’으로 민주주의를 일굴 수는 없다.

< 김누리 - 중앙대, 독일유럽연구센터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