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 칼럼 2016. 12. 19. 21:19 Posted by SisaHan

#1. 현기환의 경우
“자율성 좋아하네.”
4·13 총선 참패 한달 뒤.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은 선출 인사차 청와대를 찾은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당-청 관계의 자율성”을 언급하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작은 체구의 김광림 정책위의장이 커다란 덩치의 정 원내대표를 뜯어말리느라 고생깨나 했다는 후문이다. 자율성 싫어하던 현 전 수석은 정무수석직에 있을 때 부산 엘시티 사업과 관련해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며 신체의 자유를 잃었다. 말은 씨가 되기도 하는 법이다.

#2. 김기춘의 경우
“나라가 망해 가는 조정에는 사람이 없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참여정부 시절이던 2006년 10월 국회 상임위원회 회의에서 <한비자>를 인용해 “지도자”,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망국지정(亡國之廷)에는 무인(無人)이라…. 나라를 망하게 하는 징조, 즉 망징 47가지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군주가 법에 맞추려고 힘쓰지 않으며, 논설하기를 좋아하여 그 실용성을 추구하지 않으며, 겉꾸밈에만 빠져들어 실제 공적을 돌보지 아니하며, 고집이 세서 남과 화합하지 못하고, 간하는 말을 거슬러 남을 이기고 싶어하며, 사직을 돌보지 않고 자만심이 강하고, 탐욕스럽게 고집을 세우고 외교가 서투를 경우에 그 나라는 망하게 될 것이다.” 말은 씨가 되기도 하는 법이다.

#3. 박한철의 경우
“사또 재판을 할 수는 없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청구를 받아든 헌법재판소 배보윤 공보관의 말이다. ‘신속한 결정을 위해 탄핵 사유가 분명한 사안부터 선별심리하면 된다’는 헌법학계 일각의 지적을 조선시대 고을 원님 재판이라며 낮춰본 것이다. 박한철 헌법재판소 소장과 재판관들의 뜻이 그러하다면 이건 어떤가.
“맹자에 피음사둔(言皮淫邪遁)이라는 말이 있다. ‘번드르한 말 속에서 본질을 간파한다’라는 뜻이다”, “그들의 가면과 참모습을 혼동하고 오도하는 광장의 중우(衆愚), 기회주의 지식인·언론인, 사이비 진보주의자, 인기영합 정치인”, “아주 작은 싹을 보고도 사태의 흐름을 알고 사태의 실마리를 보고 그 결과를 알아야 한다(見微以知萌 見端以知末)는 것이 옛 성현들의 가르침”, “뻐꾸기는 뱁새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고, 이를 모르는 뱁새는 정성껏 알을 품어 부화시킨다”, “소위 대역(大逆) 행위로서 이에 대해서는 불사(不赦)의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조선시대 사또 재판에나 나올 법한, 온갖 비법률적 표현으로 도배한 결정문을 쓴 이들이 지금의 헌재 재판관들이다. ‘사또 재판 안 한다’는 말이 씨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4. 탄핵 반대 57인의 경우
“정치인이자 인간으로서의 신뢰를 탄핵으로 되갚은 이들의 패륜은, 반드시 훗날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국회 탄핵소추안 처리에 불참하며 끝까지 ‘충성’을 바친 친박계 최경환 의원이 페이스북에 쓴 말이다. 탄핵 반대표를 던진 친박 의원 56명의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확히 314년 전인 1702년 12월14일 밤. 사무라이 낭인 47명이 주군의 복수를 위해 모였다. 이튿날 새벽 베어든 목을 주군의 무덤에 바친 복수담 실화는 이후 주신구라(忠臣藏)라는 이름의 인형극·가부키 등으로 만들어져 현대 일본에서도 여전히 인기다. ‘충성과 복수에 대한 일본식 미화와 찬양’이라지만, 이 복수극의 발단이 고작 ‘와이로’, 즉 뇌물이라는 사실은 우습다. 사무라이 낭인 47명에 대한 막부의 최종 처분은 할복하라는 것이었다. 말은 말로 끝나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

< 김남일 - 한겨레신문 정치팀 기자 >


항일 기독교인 조명 학술토론회

● 교회소식 2016. 12. 19. 21:16 Posted by SisaHan

항일 기독교인 재조명 학술토론회에 참석한 역사 신학자들과 강사 등.

신사참배‥ 교단의 굴복에도 일부 목사들 저항
주기철·손양원·한상동 목사 등… 일부 독립유공 인정 못받아

일본 군국주의는 천황을 신격화하고 식민지 조선에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몇몇 기독교인은 이에 저항했다. 대표적인 인물로 주기철 목사가 있다. 신사참배에 저항하다 투옥된 주 목사는 1944년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주 목사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주기철 목사처럼 신사참배에 저항하고 반대 운동을 펼쳤지만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지 못한 이들이 있다. 한상동 목사, 이인제 목사, 조수옥 권사 등이다. 이들의 신사참배 저항을 독립운동으로 재평가하고, 독립운동가로 인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2월13일 모국 국회의원회관에서는 ‘독립운동가 인준 청원을 위한 항일 기독교인들 재조명 학술 토론회’가 열렸다. 역사신학자, 독립기념관 연구원 등이 한자리에 모여 ‘일제 신사참배 거부 투쟁은 독립운동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했다.
토론회는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저항운동을 펼친 한상동 목사의 활동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최재건 교수(연세대 한국기독교연구소)가 ‘일제 치하의 신사참배와 한국교회’, 최덕성 총장(브니엘신학교)이 ‘한상동과 주기철 신사참배 거부 운동 무엇이 다른가’, 박희천 원로목사(내수동교회)는 ‘내가 본 출옥 성도 한상동 목사’를 주제로 발표했다.


교단과 달리 신사참배에 저항한 기독교인들
최재건 교수는 일제 치하에서 마지막까지 신사참배에 반대하지 않았던 한국교회를 지적하며 발표를 시작했다. 그는 1930년대 초반, 일제가 본격적으로 신사참배를 강요하기 시작할 때 한국교회는 모두 반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점차 지날수록 한국교회는 일본의 회유와 협박에 넘어갔다. 1938년 조선예수교장로회가 27회 총회에서 신사참배에 찬성하는 안을 가결했다. 기독교대한감리회도 같은 해 ‘신사참배가 국민의 의례이므로 참석하라’는 통고문을 전 교회에 발송했다.
교단이 신사참배에 동조했지만 개인 차원에서 끝까지 반대하는 이들은 상당했다고 최 교수는 말했다. 이들은 주로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주기철(평안남도), 이기선(평안북도), 한상동과 주남선(경상남도), 손양원(전라남도), 헌트와 김윤섭과 박의흠(만주)이 신사참배 반대 운동의 주축이 되었다.
최 교수는 “한상동 목사처럼 가장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저항했던 이는 없었다. 한 목사는 지역별로 조직을 만들어 거부 운동을 전개했다. 기존 노회를 파괴하고 참배 거부자들이 중심이 된 새로운 노회를 구성하자는 주장도 했다”고 평했다.


기독교인들이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이유는 신앙적인 측면도 있었지만 민족운동적인 측면이 있다고 최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신사참배는 한국인의 황민화를 위한 정책 일환으로 강요됐다. 참배를 거절하는 일 자체가 항일 행위였다. 한국 사학계도 이런 저항운동을 민족운동 일환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덕성 총장은 주기철 목사와 한상동 목사가 벌인 저항운동을 비교했다. 한 목사를 포함 다른 저항운동을 벌인 기독교 지도자들도 독립운동가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독교인들이 벌인 신사참배 거부 운동을 향한 최덕성 총장의 시각은 최재건 교수와 같았다. 일제는 신사참배 거부자들을 국가를 전복하려는 반역자로 여겼다. 치안유지법 위반, 불경죄 등의 죄목으로 체포, 조사, 판결했다. 신사참배 거부가 항일운동이자 항일 투쟁이었던 것이다.
최 총장은 독립유공자로 인준된 주기철 목사(건국훈장 독립장), 주남선 목사(건국훈장 애국장)와 같이 한상동 목사, 이인제 목사, 조수옥 권사 등을 국가보훈처가 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총장은 “한 목사의 신사참배 운동은 가장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었다. 그는 신사참배 운동을 ‘정치 운동’으로 전환해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저항했다”고 말했다.


재심 청원 위한 10만 명 서명운동
‘내가 본 출옥 성도 한상동 목사’를 주제로 발표한 박희천 목사는 직접 만나서 경험했던 한상동 목사를 회상했다. 그는 한상동 목사는 말씀에 목숨을 걸고 그대로 순종했던 인물이라고 말했다. 한 목사의 일화를 참석자들에게 들려주었다.
“한상동 목사가 신사참배에 저항하다 투옥됐을 때, 한 간수가 그를 불러 놓고 몽둥이로 사정없이 구타했어요. 한 목사는 ‘내가 여기서 맞아 죽는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간수가 몽둥이질을 멈추더니 갑자기 한 목사에게 물었어요. ‘네가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한 목사는 마태복음 구절을 떠올렸어요.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이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간수에게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했어요. 그러자 간수가 놀랍게도 ‘네가 이해된다’며 다시 감방으로 보냈어요.” 박 목사는 당시 일제에 저항하다 옥중에 갇힌 교인들이 한 목사처럼 말씀 하나에 목숨을 걸고 운명을 맡겼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항일 기독인 서훈 재심 신청 ‘10만 명 청원 서명운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평신도 글마당] Good Morning?

● 교회소식 2016. 12. 19. 21:12 Posted by SisaHan

조국의 소식에 미국 대선까지 겹쳐 정신없이 ‘속보’ 홍수 속에 살다가 좀 조용해질 줄 알았는데, 작금에는 속보가 시간 시간 터져 나오는 바람에 ‘굿모닝’ 이란 인사가 이곳 아메리카에서도 서먹해지는 요즈음이다.
우리는 날마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공통점을 찾기 위해 노력도 해보고, 이질감으로 인한 상처도 받으면서 다시 치유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상쾌한 아침 일 수 있지만, 어떤 이는 힘든 아침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같은 ‘Good Morning’ 이지만 억양(intonation, accent)에 따라서 그 감정이 묻어 나기도 한다. 그래서 항상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억압된 생활을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좀 더 깊이 생각하면서 살아 가자는 말씀이다.


지난 9월 아내의 급작스런 통증으로 인한 일주일 간의 병원생활 속에서 여러가지 느낌이 있었다.
첫째는 감사하며 살자는 생각이 더욱 깊이 자리 잡았다. 병원 응급실만 해도 정말 수많은 종류의 사건과 사고로 인하여 각종 위험한 상태의 환자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하물며 입원실에 가서 보면 말을 해서 무얼 하겠는가. 고통을 참지 못해 고함을 지르는 사람, 바쁜 간호사를 시도 때도 없이 부르는 사람, 보기에도 끔직한 상처가 있는 사람 등등…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으며, 말 할 수 있음만으로 감사하며, 심지어 감각이 있어 고통을 느끼는 것 만으로도 감사해야 함을 눈으로 볼 수 있다.
아내의 고통이 가라앉지 않고, 수술일정도 잡히지 않아 애를 태우며 기다리는 동안에도 나의 뱃속에서는 배고픔을 알려왔다. 참지 못하고 병원 음식코너를 찾아 나섰다. 들어서는 순간 잠시 숨을 고르고 서있었다. 왁자지껄한 소란함과 활기차게 보이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그것은 방금 전 내가 있었던 병실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내가 여지껏 살아왔던 그 모습이 아니던가. “지금 이 병원 건물 안에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사람도 있으며, 고통을 참지 못해 소리 치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이곳은 어디란 말인가?” 갑자기 엄숙한 마음이 되었다. 하찮은 나의 행동이 이웃에게는 반갑지 않는 행동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더욱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다행히 아내는 수술을 잘 받았고 회복도 빨라 일찍 퇴원 하였고, 다시 점검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을 때 만나는 사람마다 가지고 있을 아픔을 생각하며 좀더 조심스러운 행동을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가끔 교회에서 찬양을 인도하시는 분들이 중간 중간 멘트를 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이것을 자제하라고 항상 당부하고 싶다. 예배 드리러 오신 성도들을 믿음이 약한 자로 치부(?)하는 말투, 혹은 자신의 믿음만이 진실한 믿음 같은 말투, 어색한 성경구절 인용 등은 차라리 하지 않음이 옳기 때문이다. 우환이 있어 깊이 기도하는 성도를 배려해야 하며, 조용히 주님의 음성을 듣기 원하는 성도를 배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곡도 중요하다.
인간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간다. 인간답게 사는 길이 그리 쉽지만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종교가 있고 철학이 있으며, 영원히 그 문제를 풀기 위한 노력은 계속 될 것 이기 때문이다.

< 정훈태 - 동산교회 장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