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소망] 저것은 벽

● 교회소식 2016. 1. 15. 17:49 Posted by SisaHan

저것은 벽.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라는 시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벽이 가로막혀 있으면 절망스럽습니다.
저 벽은 넘기 힘들다고 느껴지면 좌절하게 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높고 두터운 벽들을 많이 만나게 되지요.
사람과의 관계 가운데 세워진 벽, 재정 어려움의 벽, 건강의 벽, 불가능한 꿈의 벽.

그중에서도 우리 신앙인들은 때로 ‘말씀실천‘의 벽을 만나기도 합니다.
말씀을 몰라서도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도 아니지만 그 깨달음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는 비애감마저 들기도 합니다. 몰라서 못하면 변명이라도 있겠지만 잘 알면서도 못하는 것에는 스스로 ‘위선‘이란 생각에 마음이 곤고해집니다. 그렇기에 때로는 지식이 늘고 알아가는 기쁨이 더 큰 부담감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것은 벽,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하며 고개가 떨구어지는 때가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담쟁이는 꿋꿋이 그런 벽을 오른답니다. 담쟁이는 묵묵히 서두르지도 않고 앞으로 나아간답니다. 담쟁이는 늘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벽을 올라간답니다. 저희 집 뒤뜰에도 정확한 식물명은 모르겠지만 봄에는 담을 기어오르는 담쟁이를 기릅니다. 매일 나가보면 늘 그 자리 같지만 한 두서너 주 만에 나가볼 때면 어느 순간엔가 담을 훌쩍 넘어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높은 벽은 그렇게 넘어야하는가 봅니다.
조금씩 서두르지 말고 인내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혼자서는 벅차기에 여럿이 더불어 힘을 합해 오르는 것입니다. 계속 그 자리인 것 같이 느껴지겠지만 일 년, 오년 세월이 지나 아래를 내려다보면 까마득히 높이 올라와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도 어느새 담쟁이 잎 수천 개를 거느리고 말입니다.
할렐루야!

시 한편이 주는 위로가 큽니다.


담쟁이 (도종환)

저것은 벽 /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 남을 수 없는 /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 결국 그 벽을 넘는다.

< 노승환 목사 - 밀알교회 담임목사 >



“남이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진실로 깨닫기만 해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은 반으로 줄어들 것을…”

이동렬 교수, 시사 한겨레 창간 10주년 휘호로 축하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세상에는 있다고 보면 있고 없다고 보면 없다.

「세상에는 있다고 보면 있고 없다고 보면 없다.」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심불재언 시이불견 청이불문).
영국의 극작가 세익스피어의 「햄릿」 (Hamlet)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이 세상에는 슬픈 일, 기쁜 일은 없다. 오직 슬픈 생각, 기쁜 생각이 있을 뿐이다.” 맞는 말이다.


우리 생각이 “슬픈 사건으로 규정하면 슬픈 일이지 사건 자체가 슬픈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노자(老子)는 자기 아내가 죽었을 때 항아리를 두드리며 노래했다지 않는가. 이성(理性)이 진리 여부를 지배하던 시대정신은 가고 개인의 경험이 진리 여부 규정에 참여하는 시대가 왔다.
일찍이 청나라 수도를 다녀와서 기행문을 남긴 조선의 선비 연암(燕岩) 박지원의 글에 ‘이명’(耳鳴) 이야기가 나온다. 이명이란 귀에서 소리가 나는 병으로, 본인에게는 분명 귀에 여러가지 이상한 소리가 들리나 옆 사람이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멀쩡하다. 춥고 배고프다고 신음을 계속 하는데도 옆 사람들은 지금 여기가 바로 천당, 얼마나 살기 좋은 세상이냐고 떠들어 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을까. 이쪽에서 보면 이 세상은 천당이나 저쪽에서 보면 지옥이다.


서로 생판 다른 경험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사바(娑婆) 세계. 그래서 「아리랑」의 시인들은 노래했다.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살림살이 말도 많다”고. 내 주위에는 나의 형님 누나 동생을 포함해서 100사람이면 100사람 다 다른 사람으로 우글댄다. 나와 같은 생각, 같은 감정, 같은 걱정을 하고 있는 사람은 찾아 볼래야 찾아 볼 수가 없다. 하나의 난자와 정자의 결합으로 생긴 일란성 쌍생아(一卵性 雙生兒)도 심리적인 환경에 있어서는 서로 다르지 않는가. 그러나 연암의 이명 이야기처럼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설령 깨닫는다 해도 그들의 존재를 참거나 견디지 못하고 못마땅해 하거나 분해한다.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진실로 깨닫기만 해도 이 세상에 있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은 반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나만 열심히 고물고물 살아가는 것이 오늘날과 같은 난세(亂世)를 살아 남는데 가장 필요한 처세술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소극적이랄까 이기적인 태도라는 생각이 슬며시 기어들어 온다. “근하신년”.

병신년 새해 아침에
청현산방주인 도천 (靑峴山房主人 陶泉)

< 이동렬 - 웨스턴 온타리오대 명예교수 >



암 환자를 많이 접한 전문의들에 따르면 암 진단 직후 환자는 대부분 비슷한 심리 단계를 거친다. 첫 번째는 ‘부정’이다. 의사의 진단이 잘못됐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다닌다. 이어 “왜 하필 내게 이런 병이 생겼을까”라고 ‘분노’하게 된다. 이후 “내 자식이 결혼할 때까지만 버티면 좋겠다”고 현실과 ‘타협’하기 시작한다. 또 슬픔과 침묵에 젖어 아무하고도 말을 하지 않는 상태가 된다. 그다음 단계가 치료가 가능한 ‘수용’이다. 상황을 받아들이고 치료를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도 많은 이들이 검증된 치료법을 선택하지 않고 다른 길을 택한다. 암에 대한 잘못된 인식들을 짚어보자.


암 치료는 스트레스와 조급증을 버리고 가족이 함께 극복해야 한다.


항암식품·인터넷 정보 등 입소문 맹신은 금물
5년 생존율 최근 약70%… 검증된 의술 의지를

김성엽(43:가명)씨는 위암 4기 환자였다. 암세포가 이미 다른 부위에 침투해 병색이 완연해 보였다. 종양내과 전문의는 당장 입원하라고 강권했다. 하지만 그는 항암제를 활용해 적극적으로 치료해 보자는 설득을 거부하고 산으로 들어갔다. “공기 좋은 곳에서 자연식으로 암을 극복해 보겠다”고 장담했다. 두 달이 지나 그는 음식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해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혹시 몸이 좋아졌나 검사를 받으러 왔다”고 했다. 검사해 보니 항암제도 투여하기 어려울 정도로 체력이 고갈된 상태였다. 40대의 젊은 나이에도 그는 처음 진료를 받은 뒤부터 1년밖에 더 살지 못했다.
의료진이 많이 듣는 질문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은 “고기 먹어도 되나요”다. 많은 암 환자가 ‘육류’ 섭취를 줄이고, 특히 일부 소화기암 환자는 아예 먹기를 거부한다. 육류를 먹으면 혹시 종양이 더 커지지 않을까 불안하기 때문이다. 또 매우 쓴맛이 나는 채소를 ‘약’이라고 생각하고 먹기 시작한다. 그러나 전문의들은 “암 환자가 주의해야 할 음식은 없다고 봐도 된다. 사람이 먹는 일반적인 음식은 다 괜찮다”고 단언했다. 그는 “안 먹으면 체력이 떨어져서 치료과정을 견디지 못한다”면서 “성장기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평소 먹는 것처럼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미네랄, 비타민 등 5대 영양소를 골고루 먹는 것이 최고”라고 강조했다.


식품은 치료제가 아니다. 하지만 암과 관련한 식품이 치료 효과가 있다고 믿는 환자는 의외로 많다. 암 전문의들은 ‘음식이 아닌 약용버섯이 항암 또는 면역증강 효과가 있다는 가설은 실제 암 환자에게 효과가 있다는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강조한다. 흔히 비단풀, 뽕나무, 산삼, 녹용, 느릅나무, 개똥쑥, 인진쑥, 민들레뿌리, 영지, 상황버섯, 쇠비름, 꾸지뽕 등 각종 약용 식물이 ‘항암’요법에 오르내리지만, ‘암치료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식품들’이라는 것이다. 의사들이 입이 닳도록 강조해도 일부 환자는 절박한 나머지 입소문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
전문의들은 “환자들은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온갖 음식을 먹고 온다. 환자들의 간수치를 확인해 보면 어떤 식품이 요즘 유행인지 알 수 있을 정도”라고 전한다. 간수치가 높아지면 다시 낮춘 다음 항암치료를 해야 하기 때문에 최적의 치료시기를 놓칠 수 있다. 온갖 식품을 섭취해 극단적으로는 간염과 간부전 등 간질환에 시달리는 사례도 나온다고 했다. 지난해에는 암 환자 사이에서 ‘우엉차’가 유행해 암 전문의들을 긴장하게 했다.
전문의들은 “양배추즙이나 쓴맛의 채소를 그냥 먹는 것도 아니고 농축해 먹는 바람에 치료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면서 “건강한 사람이라면 괜찮을 수 있지만 간이나 콩팥 기능이 떨어진 사람이라면 치료에 방해가 되고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에 대한 맹신과 입소문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해 보건교육건강증진학회 학술지에 실린 ‘암 환자의 건강정보탐색 및 관련 요인 조사연구’에 따르면 암 환자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정보습득 통로는 ‘인터넷’이었고 그 다음이 ‘의료인’으로 나타났다. 제대로 입증되지 않은 치료법과 관련한 논문을 가져와 책상에 내던지며 “이런 게 나왔는데 내게 왜 이런 치료를 하지 않느냐”고 소리치는 환자도 있었다는 것이다.
암 전문 의료기관들의 권고사항 첫 번째는 ‘암 진단이 죽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암 환자 5년 생존율’은 평균 68.1%에 달한다. 갑상선암(100%), 전립선암(92.3%), 유방암(91.3%), 대장암(74.8%), 위암(71.5%) 5년 생존율은 모두 70%를 넘어섰다. 비교적 예후가 나쁜 것으로 알려진 간암(30.1%), 폐암(21.9%)도 모든 환자가 바로 사망하진 않는다.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해도 결코 치료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부작용이 적은 표적항암제가 많이 개발된 데다 화학항암제의 부작용을 줄이는 구토억제제, 식욕증진제가 많이 개발돼 환자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거의 모든 종양내과 전문의는 암 환자 가족에게 반드시 ‘선장’을 맡을 사람을 지정하라고 권한다. 암과 싸우는 여정은 망설임과 선택의 연속이며 온갖 정보가 쏟아지고 훈수를 두는 이가 몰려든다. 가족 중에 가장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 한 명을 정하고 그 사람이 전문의, 환자와 상의해 결정할 수 있도록 가족들이 지지해야 한다.
스트레스와 조급증은 치료과정에 만나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전문의들은 “첫 단추를 잘못 꿰면 모든 것이 흐트러지고, 생각이 많아지면 몸이 안 좋아진다”면서 “모든 암은 1~2주 안에 치료할 수도 없고 악화되는 것도 아니다”라며 “병원을 찾아 암 전문의와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고 보호자가 잘 간호하면 가장 예후가 좋다. 장기전이라고 생각하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