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말 테러를 막고 싶다면

● 칼럼 2015. 12. 11. 17:56 Posted by SisaHan

프랑스에서 ‘테러’라고 부르는 인명살상 범죄가 있었다. 이를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에 테러 관련 입법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14년 동안 테러방지법을 반대한 시민사회를 설득할 수 있는 근거를 내놓지는 못했다. 과연 테러는 왜 발생하며, 한국에서의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 현재 테러 방지 및 대응 체계는 어떠한지, 어떤 문제 때문에 대한민국이 테러에 대해 속수무책이라는 것인지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하다못해 그동안 테러방지법이 없어 어떤 테러가 일어났는지 증거를 제출하지도 않았다.


그동안 명멸했던 그리고 지금 국회에 계류 중인 테러방지법안의 핵심은 테러에 대응하는 조직을 개편하자는 것이다. 국가정보원이 출입국, 금융거래 및 통신이용 등 광범위하게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국가정보원이 중심이 되어 각 부처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테러의 개념은 명확하지 않다. 거의 모든 범죄행위를 망라한다. 국가정보원을 무소불위의 권력자로 만드는 법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테러방지법안은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더욱 강화하는 법이다. 국가정보원은 대통령 직속기관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테러방지법안은 평시에도 군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있다. 헌법은 비상사태 시 계엄을 선포한 경우에 한해서만 군 병력 사용을 허용한다. 평시 군사독재를 가능케 하는 위헌 법안 아니냐는 의심을 하는 까닭이다.
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테러 방지를 빌미삼아 정보기관이 권력을 강화했다는 비판이 있다. 광범위한 예방조처의 결과 자국민과 외국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적지 않게 일어났다는 평가다. 그런데도 테러방지법안은 국회조차 통제하지 못하는 비밀정보기관을 무작정 믿어달라고 강요한다. 헌법에 대한 무지다. 주권자는 통제받지 않는 권력을 믿지 않는다.


테러에 대한 대응이 급한 것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작은 사건으로도 큰 재앙에 직면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특히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는 재난 대처에 취약하기 때문에 대형 사고의 위험성이 높다. 세월호 참사에 볼 수 있듯이 정부는 재난 대처에서 무능력을 드러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규모 인명 피해를 초래하는 재난을 방지하기 위한 대응체계를 어떻게 수립할지 먼저 고민해야 한다. 재난방지법이 있었지만 참사를 막지 못했고, 국가의 대응체계는 무력했다. 전문가들은 그 어떤 법을 동원하더라도 테러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어떤 사건이든 왜 그 사건이 일어났는지 진상을 규명하고 다각도로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 기존의 대응 체계와 능력을 진단•평가하고,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를 국민에게 고백해야 한다. 입법이 필요하다면 정부는 국회에 법률안을 제출하고, 국회는 국민의 입장에서 정부의 대책을 면밀히 검토하여 최종적으로 정부에 권한을 부여함과 아울러 민주적 통제 장치가 있는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 민주공화국에서는 상식에 속하는 해법이다.


정부가 진정 국민의 안위를 걱정한다면, 잠재적인 테러 가능성에 대처하는 것에 앞서 죽어가고 있는 국민들을 살리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9년 동안 이라크 ‘전쟁’에서 사망한 이라크 군인, 경찰, 반군의 수가 3만9천명인데, 같은 기간 한국의 자살자 수는 자살예방법이 있음에도 11만명이 넘는다. 대통령은 전쟁보다 참혹한 현실에 직면한 국민의 삶을 안전하게 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야 한다. 과연 박근혜 정부가 그런지 국민이 판단할 수 있는 잣대는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정부 태도의 변화다.
< 오동석 -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박근혜 대통령이 8일 노동과 경제 관련 법안, 테러방지법의 입법에 신중한 야당을 겨냥해 ‘명분과 이념의 프레임에 갇힌 기득권 집단의 대리인’, ‘청년과 나라의 미래에 족쇄’라는 거친 표현을 쓰며 맹비난했다.
전날 여당인 새누리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불러 매우 강경한 어조로 법안 처리를 ‘지시’하더니, 그걸로는 성이 안 찼는지 이번엔 야당을 직접 겨냥하고 나섰다.
여야를 번갈아가며 독설을 퍼붓는 걸 보면서, 도대체 박 대통령은 국회를 뭐로 보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나라가 삼권분립의 정신이 작동하는 민주공화국인지조차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헌법에서 입법권을 대통령 손에 쥐여주지 않고 국회에 맡긴 건, 권력을 견제하고 균형을 잡기 위해서다. 이것이 민주주의 체제의 기본이고, 이걸 부정하는 순간 왕정과 다를 바 없게 된다. 권력 분산 속에서 대통령이 원활하게 국정을 운영하려면, 국회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설득하려 노력해야 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민주당뿐 아니라 야당인 공화당 의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법안을 직접 설명하고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그게 정도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역대 대통령들이 야당 의원과 직접 대화하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그래도 정무장관이나 청와대 정무수석을 통해 야당과 수시로 접촉하며 이견을 좁히려 애써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다르다. 여당 지도부를 마치 부하 다루듯이 하는 건 물론이고, 야당은 아예 설득할 생각조차 않고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국민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협박’한다. 박 대통령에게 국회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권력의 한 축이 아니라, 청와대의 시종쯤으로밖에 보이질 않는 모양이다.


대통령에게 야당과 소통하라는 건, 야당 국회의원들의 민원을 들어주란 얘기가 아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법안에 반대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들으란 것이다.
박 대통령은 노동 관련 법안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게 청년 고통을 가중시키는 행위라고 비난하지만, 지자체의 청년수당은 ‘범죄’라고 까지 제지하는 이중성에, 법안이 통과되면 아버지들을 해고하는 게 쉬워질 거란 우려가 더 많은 게 현실이다. 대통령은 이런 우려를 제기하는 노동조합을 직접 만나 설득해보지도 않고 왜 기득권 세력이라 비난만 하는가.
박 대통령은 야당의 비협조를 탓할 처지가 아니다. 대통령 스스로 국회와 국민에게 얼마나 열린 자세를 보였는지부터 먼저 반성해야 한다.



[사설] 검찰은 망할 길을 찾을 것인가

● 칼럼 2015. 12. 11. 17:53 Posted by SisaHan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구형한 임은정 의정부지검 검사가 강제로 퇴직당할 위험에 처하게 됐다. 일을 잘한다고 검찰총장상을 받고 우수 여성검사로도 선정됐던 임 검사가 올해 적격심사를 받은 검사 250여명 가운데 몇 안 되는 심층적격심사 대상이 된 것이다.

임 검사가 퇴직 명령까지 받게 되면, 부패 검사나 무능 검사가 아닌데도 쫓겨나는 어이없는 일이 현실이 된다. 임 검사가 이런 일을 겪게 된 것은 2012년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해달라’고 ‘백지구형’을 하라는 검찰 상부의 지시와 달리 ‘무죄’를 구형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당시 임 검사가 다른 검사에게 사건을 넘기라는 부장검사의 지시를 어기고 법정 출입문을 잠근 채 무죄를 구형했다며 정직 4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이는 매우 부당하다.


과거사 재심에서 백지구형을 하는 것은 이미 무죄임이 역사를 통해 증명된 이들에게 또다시 매질을 가하는 짓이 된다. 임 검사의 무죄 구형은 그래서 검찰의 과거 잘못에 대한 사과일 수 있다. 소신에 따른 무죄 구형이 징계를 받아야 할 잘못일 순 없다.
조작 증거를 법정에 버젓이 제출해 형사사법 체계의 근간을 위협한 검사들이 받은 징계가 고작 정직 1개월이었으니 형평에도 어긋난다. 법원도 1·2심에서 임 검사에 대한 징계를 취소하라고 판결한 터다.

그런데도 검찰은 임 검사를 조직에서 끝내 쫓아낼 기세다. 임 검사의 소신과 때마다 쓴소리를 해온 강단이 거슬렸던 모양이다. 검찰 조직에는 소신을 드러내지 말고 입을 닫으라는 ‘으름장’이 될 수 있다.


법무부는 지난해 10월 검사 적격심사의 주기를 단축하고 부적격 사유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제출해뒀다. ‘제2의 임은정’이 될 싹을 일찌감치 자르겠다는 것으로 의심된다.
그렇게 검사들을 길들여 자성도 소신도 없이 말만 잘 듣는 조직으로 만들면 검찰의 정치권력 예속은 더 심해지게 된다. 곧, 검찰이 망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