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발전하고 진보하는가? 올 한해 끊임없이 의문을 가져온 질문이다.
2014년의 대미를 맞이하면서 다시 묻게 된다. “지난 1년 동안 세상은 발전하고 진전을 이뤘는가?”. 불행히도 플러스 마이너스를 따져본다면 전혀 진전이 아닌 퇴보와 퇴행의 한 해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원시 이래 물질적 풍요와 과학의 발달, 질병치료와 생명연장, 인권신장 등 모든 부분에서의 발전을 인류역사의 진보라고 표현한다면, ‘시간과 역사발전은 정비례한다’는 계몽주의적 시각은 맞다.


그러나 학문적인 역사발전의 의미를 떠나 단순하게 우리들 삶의 가치로, 나아가 소시민들의 생활철학-, 아니 그냥 생활감각에서 조망해 보자. 가령, 자연과 벗하고 싸운 원시적 삶에서 누린 심적·정신적 평안과 행복감이 오히려 지금의 그 것보다 훨씬 나았다는 말들을 한다. 그렇다면 과연 ‘발전’의 소산들인 요즘의 풍요와 편리와 정치·사회의 현대적 시스템들이 우리에게 안겨주는 불안과 스트레스들을 인류사의 진보로 인한 혜택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단순한 예로 저 네팔이나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지구상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는 말을 떠올려보라. 귀가 아프게 듣는 “기름진 음식과 정크 푸드류를 먹지말고 ‘원시인처럼’ 채소와 과일을 즐기라”는 건강비결을 보아도, 현대 우리의 처지가 결코 발전이나 진보한 삶이라고 큰소리 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간단히 말해 『사람답게, 마음 편하게, 얼마나 더 행복감을 느끼게 되었느냐』는 척도를 인류사의 진보와 발전의 가치로 삼아보자는 이야기다. 그렇게 본다면, 올 한해는 그야말로 뒷걸음질 뿐인 한해가 아니었나 하는 답답함과 회한이 스칠 뿐이다. 그것도 사람들이 발전과 진보의 결실들로 자랑하는 가치기준과 정치·사회·문화·과학 등의 산물(産物)에 의해 퇴행이 두드러졌으니, 그야말로 자승자박이며 자업자득이라고 해야할까. 구체적으로는 전쟁과 테러, 감시와 압박, 갈등과 적대가 한층 심화된 사실들만 보아도 그렇다.


지구촌을 돌아보면, 에볼라라는 공포의 질병이 인류 의술의 한계와 불안을 통감하게 한 것을 비롯해, 정치체제와 힘의 대결에서 이른바 ‘신냉전’기류가 먹구름으로 밀려왔고, 테러가 일상화 되다시피 하면서 IS라는 기형적 세력이 맹위를 떨쳤다. 스노든의 폭로로 가시화된 감시와 감청이 더욱 폭넓고 교묘하게 사생활을 옥죄는 현실은 사람들을 신경쇠약으로 몰아갔다. 인간성을 말살하는 비인간적 고문이 ‘인권 선진국’ 미국에 의해 자행됐다는 배신감은 친미주의자들의 뒤통수를 쳤다.
한국은 어떤가. 충격적인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의 행태는 국가와 정치의 존재의의에 의문부호를 던졌다. 오만방자한 지도자의 불통과 위선에, 또한 비선들의 권력 주무르기에 모두가 피곤하고 나라는 방황했다. 국가기관의 정치개입과 권력 시녀화, 곡학아세 언론의 횡행에 국민들은 두통과 심통을 겪으며 분열하고 다퉜다. 국민 권익의 수호자요 민주주의의 보루여야 할 사법기관 마저 권력의 입김에 놀아나는 실망과 유전무죄·권력만능의 현상들, 부익부 빈익빈에 졸부들의 꼴사나운 작태들이 소시민과 근로자들의 가슴을 치고 눈물을 쏟게 했다. 밖으로는 극으로만 치달은 남북관계과 외교력 부재까지….


다양과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이견과 비판을 질시하며 차별하고 적대하는 중병의 고질화에 국민들은 짜증나고 근로자들은 고통스럽고, 나라는 찢기고 대립했다. 심지어 그 중증의 전염성이 이민사회에도 전염돼 심하게 발호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는가.
그렇게 한 해가 흘러갔다. 그래도 덩달아 눈물 흘리고 아파하고 외친 사람들, 더 많은 소리없는 함성들에게서나마 위안을 얻을까.
이제 이 어둠에 다시 송년의 촛불을 켜며, 제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고 상생하며, 마음도 정신도 화평하게, 모두가 행복한 세상으로 발전·진보하는 새 날들이 오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 김종천 편집인 >



[사설] 뻥 뚫린 원전 보안, 커지는 불신

● 칼럼 2014. 12. 26. 18:38 Posted by SisaHan

한국내 원자력발전소를 관리하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내부 문서가 해킹당해 연일 인터넷에 공개되고 있다. 문서를 해킹한 해커는 고리 1·3호기와 월성 2호기에 대한 사이버 테러까지 경고하고 있어, 국민 불안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최대한 신속하게 대응해 해킹 실상을 밝히고 범인을 검거해야 할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것은 한수원의 안일하기 짝이 없는 행태다. ‘원전반대그룹’이라고 자처하는 한수원 전산망 해커는 15일부터 21일까지 무려 네 차례에 걸쳐 해킹한 자료를 인터넷에 올렸다. 첫날에는 블로그와 트위터를 통해 전체 임직원 개인정보가 담긴 엑셀파일 등을 공개했다. 당시 해커는 원전 기밀을 유출하겠다는 협박 메시지도 띄웠다. 그러나 한수원은 이틀이 지난 17일에야 정보 유출 사실을 알았다. 또 18일 2차로 월성·고리 원전 내부자료 등이 공개된 뒤에야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그러면서 한수원은 “원전 설계도면과 같은 기밀서류가 유출된 것은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늑장 대응에다 사실 은폐라 아니 할 수 없는 행태다. 또 19일에 이어 21일에는 네 번째로 한수원을 조롱하는 글과 함께 원전 도면을 포함한 내부문서 4개의 압축파일이 공개됐다. 해커가 끊임없이 한수원을 조롱하며 협박을 가하고 있는데도 한수원은 뭐 하나 제대로 대응하는 것이 없는 양상이다.


한수원은 이번 해킹 사태 말고도 과거 원전 비리와 원전 가동 중단으로 전 국민의 원성을 산 바 있다. 지난해 원전에 시험성적표를 조작한 불량 부품을 사용한 사실이 밝혀졌고, 이 과정에서 뇌물 상납 구조가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그러고도 한수원은 원전의 잦은 고장과 내부의 허술한 보안의식이 끊임없이 도마에 올랐다. 9일에도 이미 악성코드 유포로 사이버 공격을 당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도 한수원은 안일한 대응만 계속했다. 국민 불신이 극에 달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이번 해킹을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 해커는 ‘한수원 악당들은 원전을 즉시 중단하고 갑상선암에 걸린 1300여명의 주민과 국민에게 직접 사죄 보상하라’고 요구하는 글을 올렸다. 이런 내용으로 보았을 때 해커가 원전의 위험성을 알리려는 차원에서 사이버 소동을 벌인 것이라고 추정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방식이 너무나 위험하고 자칫 사태가 잘못 진전되면 원전의 기밀이 알려져 2차, 3차 범죄로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정부는 서둘러 범죄의 진상을 밝히고 범인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미국과 쿠바가 지난 17일 53년 동안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 정상화 합의를 발표했다. 두 나라 수교는 냉전 잔재의 청산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앞으로 북-미 관계 개선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환영한다.


양쪽 정상의 발언은 모든 나라가 새겨들을 만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어떤 나라를 실패한 국가로 몰아붙이는 정책보다 개혁을 지지하고 독려하는 것이 더 낫다는 교훈을 어렵게 얻었다”고 밝혔다. 쿠바의 정권교체를 목표로 한 오랜 봉쇄정책이 실패했음을 솔직하게 인정한 것이다. 대북 정책에도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다.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우리는 세련된 태도로 서로 다름과 공존하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북한 지도부에 도움이 될 말이다.


두 나라의 결단에는 여러 현실적인 이유가 작용했다. 우선 미국은 냉전 종식 이후 20년이 넘도록 쿠바 봉쇄를 고집해 국제사회에서 오히려 고립되는 처지가 됐다. 수백만명에 이르는 쿠바계 미국인의 분위기가 관계 개선 쪽으로 바뀐 것도 부담이었다. 혁명 1세대로서 2006년 권력을 승계한 라울 의장은 개혁·개방 정책과 함께 꾸준히 대미 관계 개선을 꾀했다. 더 중요한 것은 오바마 대통령의 결단이다. 그가 점진적 관계 개선을 넘어서 국교 정상화까지 선언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중남미계로 처음 바티칸 수장이 된 프란치스코 교황이 양쪽 협상을 적극 중재한 것도 돋보인다.


이제 국제사회의 관심은 북-미 관계의 앞날에 쏠리고 있다. 오바마 정권 출범 이후 미국은 봉쇄 대상국 가운데 쿠바·미얀마·이란 등과 관계를 정상화하거나 협상을 벌이고 있어 이제 사실상 북한만 남았기 때문이다. 북한의 경우 쿠바와 달리 핵·미사일 등 안보 문제가 최대 걸림돌이라고 지적하는 전문가가 많다. 하지만 이번처럼 양쪽의 발상 전환과 적절한 중재자가 전제된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 이와 관련해 최근 미국 정부 안에서 대북 대화론이 제기되는 것은 긍정적이다. 북한은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집중하면서 유연한 대외관계를 추구해온 쿠바의 실용주의적 태도를 배워야 한다.


미국과 쿠바의 수교는 최근 협력보다 갈등이 부각되는 지구촌 분위기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북한 핵 문제 해결과 북-미 수교 등이 동시에 이뤄지도록 적극 나서야 한다. 그 출발점은 남북관계 개선과 6자회담 재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