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방송이 <PD수첩> ‘광우병 편’을 문제삼아 사과방송과 사과광고를 낸 데 이어 이번에는 제작진을 인사위에 회부하고 징계절차를 밟고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무죄를 받고도 사과문을 내는 황당한 조처를 한 데 대해 직원들에게 사죄를 해도 시원찮을 김재철 사장이 오히려 “징계가 불가피하다”고 했다니 문화방송 시계는 거꾸로 도는 모양이다.
대법원이 지난 2일 내린 최종판결은 형사는 무죄, 민사에서는 정부 협상 태도 등에 대한 비판은 의견표명에 해당돼 정정보도할 사항이 아니라는 이유로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것이 전부다. 대법에서 인정된 PD수첩의 허위보도는 한국인 유전자형 관련 보도뿐이다. 2심에서 허위사실이라고 판단했던 다우너소의 광우병 위험, 아레사 빈슨의 인간광우병으로 인한 사망 보도에 대해선 문화방송 제작진이 형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민사에서도 승소해 상고할 수 없었고, 따라서 대법에선 아예 다뤄지지도 않았다.
내용적으로 따져봐도 아레사 빈슨은 보도 이후에야 인간광우병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고, 다우너소는 광우병 위험 때문에 미국에서 2009년 전면적인 도축 금지 조처가 내려진 점 등에 비춰 보면, 대법에서 본격 심리가 이뤄졌다면 어떤 판단이 내려졌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정정보도가 확정된 한국인 유전자형 관련 보도 역시 “한국인의 94%가 광우병에 취약한 유전자형을 갖고 있으니 광우병 걸린 쇠고기를 먹으면 발병할 확률이 94%”라고 표현한 것으로 ‘착오’나 ‘과장’ 수준의 잘못으로 보여진다.

이처럼 표현상의 오류 등 일부 잘못은 있으나 법률적으로는 사실상 문화방송 쪽의 승리라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경영진이 ‘대법원이 3가지 주요 내용을 허위로 결론내렸다’는 등의 허위사실을 실은 사과광고에 이어 징계까지 하려는 것은 정권에 대한 코드 맞추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정치적 꿍꿍이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최근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국무부 외교전문 내용은 이명박 당선자와 현 정권 실세들이 미국과 협상도 하기 전인 2008년 1월 미국산 쇠고기 개방을 미국 쪽 인사들에게 약속해준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PD수첩은 당시 이런 약속에 맞추려 졸속으로 진행한 쇠고기 협상을 앞장서 파헤친 선구적인 심층보도였음이 다시 확인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정부와 검찰, 수구언론이 장단을 맞춘 마녀사냥의 치부가 속속 드러나고 있는데도 문화방송 경영진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과 대선 가상대결에서 박 의원을 앞서는 여론조사 결과들이 나왔다. 또 안철수-박원순 단일화 이후 안 교수 지지층의 움직임이 궁금했는데 새로운 여론조사 보도를 보면 박 변호사로 옮겨가는 효과가 꽤 나타나고 있다. ‘안철수 바람’에 깃든 시민들의 여망이 무엇인지를 정치권이 제대로 살피는 게 더욱 긴요해지고 있다.
시민들이 안철수 바람을 통해 정치권의 철저한 각성과 변화를 주문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특히 안 교수가 보여준 공익에 대한 헌신적 자세와 희생정신, 겸손함 등을 시민들이 높이 평가하고 있음도 의심할 나위가 없다. 이런 터에 대변인 등 한나라당 일부에선 안철수-박원순 단일화를 강남좌파의 야합쇼라고 깎아내리고 나섰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원인을 제공한 책임을 인정하고 자숙해도 부족한 마당에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다.
야3당과 시민단체들은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하기 위해 2단계 경선을 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야권 각 주체는 후속 논의 과정에서 기득권에 집착하는 태도를 버려야 하며, 시민단체나 작은 정당 쪽도 능력 범위를 넘는 지나친 요구를 해선 안 될 것이다.

아울러 우리 사회에 가뜩이나 깊게 자리잡은 정치불신 정서가 차제에 더욱 증폭되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도 있다. 기성 정당들이 제구실에 미흡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 국정과 시정 난맥상의 원인 제공자인 이명박 대통령과 오세훈 전임 서울시장이 바로 ‘탈정치의 정치’와 ‘탈여의도 지도력’ ‘기업가형 지도력’을 자처했음도 잊어선 안 된다. 정책 개발과 실천을 담보하는 사회적 약속의 틀을 무시하고 인물 위주로만 흘러서는 정치를 제대로 바꾸기 어렵다. 가령 야권의 경우 통합이나 연대의 틀을 세워나가는 노력은 오히려 더욱 필요해졌다.
안철수 바람을 진보-보수의 세력대결 정치에 식상한 결과라거나, 심지어 정당들이 진보 선회(좌클릭)에 열중하다 닭 쫓던 개가 되었다는 일부 보수언론의 해석도 근거 없는 제 논에 물 대기 주장일 뿐이다. 민주당보다도 진보성향이 강한 박 변호사한테 안철수 바람의 상당 부분이 옮겨가는 것만 봐도 이 점은 분명하다. 만약 정치권이 보수언론의 주문처럼 복지 담론 등을 후퇴시킨다면 그것은 대표적으로 ‘안철수 민심’을 거꾸로 읽는 결과가 될 것이다.

[칼럼] 잘 계시나요?

● 칼럼 2011. 9. 16. 20:48 Posted by SisaHan

특별히 살 게 없어도 나는 자주 시장엘 간다. 시장도 백화점처럼 공간이며 품목에 나름의 질서가 있고, 그 속의 사람들 역시 비슷한 패턴을 보이건만 지루함을 모르겠으니 시장을 찾는 건 일종의 습관이 아닌가 싶다.
무심한 듯 지나치면서도 양말 더미에 기대 곯아떨어진 아줌마, 무표정하게 다리 뻗고 앉아서 날마다 밤을 까는 할머니, 사모님 소리가 입에 붙어버린 정육점 총각, 물 건너온 덕에 비싼 가격표를 붙이고 배배 말라가는 체리 따위를 눈여겨본다. 그러면서 걱정도 한다. 붙박이 상인 누군가 나를 익숙한 사람으로 바라볼까봐. 뭘 그다지 사지도 않으면서 자주 나타나는 여자라고.
올여름 지겨웠던 비 때문에 어느 상점이고 물건이 시원치 않다. 부실한 채소나마 양이 부족하고 값도 만만찮으니 명절대목의 흥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어 씁쓸하다. 이맘때만 보이는 애호박이 있어 냉큼 사들고 가다가 시장 끄트머리 횡단보도 앞에서 문득 발이 멎었다.

“한 바구니에 만원!”을 외치는 젊은 여자 목소리. 온종일 외쳤는지 허스키한 목소리의 그녀는 잘해야 삼십대 중반으로밖에 안 보였고 시장 나들이가 익숙한 내게 낯선 사람이었다.
한 바구니에 만원이라는 물건. 푸른 사과다. 길바닥에 늘어놓은 탓인가 낙과처럼만 보이는 사과 더미 속에서도 여자 목소리에는 단호한 무엇이 있었다. 바구니마다 대여섯개씩 담아놓고 목 언저리가 붉어지도록 외치는 그녀에게 끌려 사람들이 푸른 사과에 눈길을 주곤 했으니.
어서어서 팔아치우고 돌아가야 한다는 듯 그녀는 재빠른 손놀림과 남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는 꿋꿋함으로 손님을 불러 세우곤 했다. 어떤 아이의 엄마일 것만 같은 사람. 그러지 않고서야 저리 용감할 수 있겠나.
그런데 별안간 “한 바구니에 만원!”을 외치는 그녀에게 “떨이요, 떨이!”를 외치던 엄마가 겹쳐졌다. 나도 모르게 찡그리며 돌아섰으나 횡단보도의 신호가 끝나도록 나는 발목이 잡힌 채 서 있었다.
곁눈질조차 안 하는 그녀를 나는 한참 바라보았다. 그저 구경이나 하려던 손님을 기어이 붙잡아 덤까지 얹어주며 팔고 재빨리 다른 손님을 향해 손 까부르는 여자. 저기에 엄마가 겹쳐질 게 뭐람. 어쩌자고.
나는 내 가슴에 깊고 커다란 구멍이 있다는 걸 안다. 그건 평소에 바늘이 찍은 점처럼 희미하지만 너무나 외로울 때면 내 등 쪽을 시커멓게 뚫어버리고 감당할 수 없게 시린 바람을 일으키는 구멍이다. 그 구멍에 내 엄마가 살고 있다.

5일장을 따라다니며 생선과 꽃게를 팔았던 엄마한테서는 늘 비린내가 났고 지문이 닳고 자주 피가 터져서 손가락에는 반창고가 친친 감겨 있었다. 떨이도 못하고 막차마저 놓치고 나면 하염없이 먼 밤길을 걸어오던 엄마. 그런 엄마를 기다리며 정류장에 나가 서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왜 안 자고 나와 있느냐는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넬 줄 모르는 엄마를 나는 정말 싫어했고, 공부 작파하고 일찌감치 돈 벌러 나가라는 성화를 들은 척도 않는 나는 엄마가 징글징글하게 여기는 딸이었다.
우리가 엄마와 딸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비껴나갔을 텐데, 인연은 때로 너무 가혹한 것이라서 끝내 속을 파 먹히는 아픔을 남기고야 만다. 병든 몸은 마비되어 가는데 정신은 너무나 말짱해서 괴로워했던, 내가 벌을 받는 거라면 죽은 꽃게를 섞어 팔았던 게 죄였다고 말하던 엄마. 내 깊은 구멍이 엄마로부터 비롯되었음을 나는 잘 안다.
미안하다는 말조차 못하고 보낸 엄마를 오늘 시장 귀퉁이에서 만났다. 엄마, 잘 계시나요. 그래야만 해, 꼭. 거기가 어디든지.

<황선미 -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