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한인교회 부흥회에서 성도들이 모두 일어나 찬양하는 모습.

본 한인교회 부흥회, 김요한 목사 은혜의 말씀 전해

본 한인교회(담임 한석현 목사)는 10월24일부터 26일 주일까지 중국 목회자 아카데미원장인 김요한 목사(전 홍콩제일교회 담임)를 강사로 2014 추계 부흥성회를 열어 은혜를 나눴다.
‘아름다운 믿음의 선택’이라는 주제로 가진 부흥성회에서 김요한 목사는 24일 저녁 ‘선(the good)을 이루시는 하나님’(롬 8: 26~30)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시작으로 ‘광야 시험을 이기는 믿음’(마 4: 1~11), ‘하나님의 비전(Vision)을 붙들라’(출 19: 1~6), ‘관계회복을 선택하는 믿음’(시편 122: 1~9),그리고 ‘하나님의 돌보심 아래 머물라’(사 66: 1~2)는 제목으로 사흘간 말씀을 전해 성도들에게 신실한 믿음의 길을 안내했다.
 
김 목사는 특히 ‘하나님의 비전을 붙들라’는 말씀에서 “예수를 믿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라고 전제, “죄 덩어리인 나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시고 영생을 주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면서 “놀라운 구속의 은혜을 깨닫고 선을 이루시는 그 분의 돌보심 아래 머물며 약속과 언약을 믿고 순종하여 지켜나갈 때 거룩한 백성, 제시장 나라를 이뤄주신다고 말씀하셨다”고 흔들림 없는 믿음의 자세를 주문했다. 김 목사는 이어 “땅끝까지 복음이 전해져 이같은 구원의 역사에 세상 모든 영혼이 동참하고 영생의 기쁨을 누리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갈 비전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선교비전을 강조했다. 선교의 성경적 관점과 역사적, 문화적, 전략적 관점을 차례로 설명한 김 목사는 “하나님이 사명으로 주신 선교의 비전을 붙들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향해 달려나갈 때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에게 큰 능력과 축복을 부어주실 것”이라고 거듭 성도들의 선교 의지를 불러 일으켰다.
 
< 문의: 905-881-2999 >


홀연히… 고 신해철 신드롬

● COREA 2014. 11. 4. 16:51 Posted by SisaHan

수술 뒤 닷새만에 숨져‥ 개념의 삶 팬들 애도물결

“하나만 약속해줘/ 어기지 말아줘/ 다신 제발 아프지 말아요.”
가수 신해철씨가 지난 6월 발표한 정규 6집 <리부트 마이셀프> 타이틀곡 ‘단 하나의 약속’ 노랫말이다. 앨범 발표 당시 그는 이 노래를 두고 “결혼 전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만든 사랑 노래를 15년 동안 다듬고 매만져 이제야 내놓았다”고 설명했다. 2002년 결혼 당시 암 투병 중이었던 아내는 이제 완치돼, 9살 딸과 7살 아들을 잘 키우고 있다. 신씨는 “‘어찌 되든 아프지만 마라’는 게 가족과 우리 사회에 해주고 싶은 말”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작 아픈 건 그였다. 신씨는 지난 17일 서울 송파구의 한 병원에서 장협착증 수술을 받고 다음날 퇴원했다. 하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가슴, 복부 등의 통증을 호소하며 20~21일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그래도 통증이 가시지 않아 22일 또다시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갑자기 심장이 멈췄다. 심폐소생술을 받은 뒤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그날 저녁 3시간여에 걸친 응급수술을 받았다.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찾지 못한 채 누워 있는 신씨를 향해 많은 이들이 “제발 아프지 말아요”라는 노랫말을 읊조리며 쾌유를 기원했다. 하지만 신씨는 많은 이들의 염원을 뒤로하고 27일 저녁 끝내 숨을 거뒀다. 향년 46.
 
소속사 KCA엔터테인먼트는 “신해철씨가 이날 저녁 8시19분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나라로 떠났다”며 “빈소는 28일 오후 1시부터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3호실에 마련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서울아산병원의 담당 의료진은 “신씨가 22일 오후 2시께 혼수상태로 병원 응급실로 실려와 응급수술을 포함한 최선의 치료를 했으나, 저산소 허혈성 뇌손상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신씨는 1988년 문화방송 <대학가요제>에 밴드 무한궤도로 참가해 ‘그대에게’라는 곡으로 대상을 받으며 가요계에 데뷔했다. 무한궤도 이후 솔로 가수, 밴드 넥스트로도 활동하며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재즈 카페’, ‘인형의 기사’, ‘날아라 병아리’ 등 수많은 히트곡을 냈다. 한국 록 음악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동시에 대중화에도 성공한 음악인으로 꼽힌다. 신씨는 최근 6년여 만에 가수 활동을 재개해 정규 6집 <리부트 마이셀프>를 발표했고, 지난달에는 넥스트를 재결성해 콘서트를 연 데 이어 새 앨범도 발표할 예정이었다.
 
신씨의 죽음에 많은 동료 음악인들이 SNS를 통해 안타까운 심정을 나타냈다. 더 클래식의 김광진씨는 트위터에 “신해철님이 세상을 떠났군요. 우리 모두 그를 그리워할 것입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2AM의 진운씨는 “아… 말이 안 나온다. 어떻게 이럴 수가”라고 애도했고, 가수 나윤권씨는 “좋은 음악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 편히 쉬세요”라는 글을 남겼다.
시나위의 신대철씨는 페이스북에 “너를 떠나보내다니 믿을 수가 없구나. 이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만 해철아 복수해줄게”라는 글을 남겨 눈길을 끈다. 그는 지난 25일 “병원의 과실이 명백해 보인다. 문 닫을 준비 해라. 가만있지 않겠다. 사람 죽이는 병원. 어떤 이야긴지 짐작하시라”라는 의미심장한 글을 올렸다. 신씨의 입원이 의료사고 때문 아니냐는 의혹이 시중에 돌자 해당 병원이 이를 부인했다.
< 서정민 기자 >


[1500자 칼럼] 비빔밥 가족

● 칼럼 2014. 11. 3. 19:33 Posted by SisaHan
한식에 대한 인기가 북미에서 나날이 높아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한식 세계화’를 위한 다양한 행사가 국내외에서 자주 열리고 있다. 우리 고유의 전통 음식을 만드는 경연대회는 물론이고 한식의 우수성과 색채의 다양화에 착안한 강습회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어떻게 하면 한국 음식도 일본의 스시, 타이의 패타이, 이태리의 스파케티와 피자처럼 세계인이 즐겁게 자주 찾을 수 있게 만드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한식 본연의 모습을 갖추고도 외국인의 입맛에 맞게 조리와 세팅(setting)에 중점을 두고 한식의 독특한 맛과 향을 내어 고유의 맛을 살리는데 주력해야 하리라. 특히 세계 만방에 한국기업들이 진출하고, 싸이 김연아 박세리 같은 월드 스타들을 배출하며, 세계 경제를 이끌어가는 G20국에 속하여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치솟고 있는 현실이니 국가 이미지 상승과 직결될 수 있는 한식의 인기를 드높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의 며느리와 사위는 한식을 특별히 좋아하는 서양인들이다. 우리 가족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한결같이 한식을 기대하고 있어 장거리에 살고 있는 그들을 방문할 때마다 내 몸은 분주하고 고달프다. 그러나 마음만은 날아갈 듯이 가볍다. 결혼한 자식들로부터 한국음식 조리법에 대한 문의를 들을 때나 함께 한식을 나눌 때만큼 보람된 일은 없다. 저절로 신바람이 나서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을 준비하면서도 입은 함박만하게 벌어진다. 그들 역시 우리 식구가 되어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이제는 한식 몇 가지는 자신 있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한식의 맛도 제법 낼 줄 알아 자신감이 붙은 며느리는 김치 담그는 일에 도전장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한 집안에 동, 서양의 혼합문화가 있으니 조심스러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언어 소통이 수월치 않은 나와 음식을 공유할 수 있음은 천만다행이다. 한식의 독특한 맛을 즐기는 그들과 적어도 음식문화의 벽은 허물었으니 말이다. 만약 한식에 손을 대지도 않고 관심조차 두지 않는 가족 구성원이 한자리에 있다면 밥상머리에서 나누는 가족애가 정상적으로 자라날 수가 없지 않은가. 서로 음식 냄새에 신경을 쓰다 보면 모처럼 마련한 그 자리가 불편하기만 할 것이다. 
 
비빔밥은 우리 애들이 자주 만드는 한식 메뉴다. 갖은 색상의 나물을 썰고 볶아 그 위에 계란 후라이를 보기 좋게 얹어 내 놓으면 먹기 아깝다고 근사하다고 사위는 사진기를 들이댄다. 고추장과 참기름 소스로 그 나물들을 비벼 먹으면 맛이 최고다. 그 맛에 빠져 건강식 메뉴인 비빔밥에 관심을 둔 아들 내외에게 몇 해 전 돌솥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었다. 그들은 고슬고슬하고 따끈한 돌솥비빔밥을 지으며 한식의 우수성을 말하곤 한다. 우선 맛있고 모양있는 건강식이란다. 한 가지를 더 추가한다면 온 가족 사랑이 담긴 음식이 아닌가 한다. 서로 다른 개성들이 가족으로 모여 양보하고 신뢰하고 배려하며 마치 각종 나물들이 고추장 소스를 통해 하나가 되듯 서로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가족 같은 비빔밥이니 말이다. 음식만큼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자리는 없을 것이다. 입이 즐거우면 자연히 마음이 열리고 따뜻한 정감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언젠가부터 돌솥비빔밥은 아들 집의 손님상 메뉴로 당당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우리 가정의 인기 메뉴인 비빔밥이 한식 세계화 메뉴로 선택되었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다만 한식 메뉴의 서비스와 요리사의 청결위생에 대한 의식과 한국인의 정서를 드러내는 인테리어 구상에도 힘쓴다면 ‘한식 세계화’의 전망은 밝다고 본다. 
 
온 지구촌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세계 방방곡곡은 인종을 초월한 여행객들로 넘쳐나고 다른 문화와 종교, 음식과 언어에 대한 관심의 열기가 더해가고 있지 않은가. 아마도 머지않아 각 나라의 고유문화를 뛰어넘으며 세계인이 하나로 큰 조화를 이루는 비빔밥 시대가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원옥재 - 수필가 / 캐나다 한인문인협회원, 전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