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시스템은 없고 질타만 있다

● 칼럼 2014. 4. 27. 12:29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세월호 선장과 일부 승무원의 승객 구조 방기 행태를 ‘살인과도 같은 행위’라고 질타했다. “강력히 책임을 묻겠다”며 공무원들도 질책했다. 대통령의 강경한 발언은 전반적으로 질책과 처벌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런데 왠지 공허하다. 뭔가 초점이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번에 침몰한 것은 세월호만이 아니다. 정부의 재난구호 시스템과 위기관리 능력에도 구멍이 숭숭 뚫렸다. 초동대처는 미흡했고 부처들 간에 협업은 이뤄지지 않았으며, 재난대응 매뉴얼들은 결정적 순간에 멈춰버렸다. 정부는 일사불란해야 할 때 허둥대고 일목요연해야 할 때 오락가락했다. 이 점에서 청와대도 결코 예외일 수 없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남 얘기 하듯 선장 욕하고 공무원 질책하기에 바쁘다.
 
박 대통령은 ‘강력한 재난대응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정부의 위기대응시스템과 초동대처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먼저 반성해야 할 곳은 다름 아닌 청와대다. ‘재난관리 업무 일원화를 위한 통합시스템 구축’은 박 대통령의 공약이었고, 이는 취임 뒤 안전행정부 산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컨트롤타워를 맡는 것으로 구체화됐다. 하지만 요즘 날마다 목도하고 있는 바대로 이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이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비판과 질책이 아니라 이 시스템을 수리하는 일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안보 외에 재난사태 위기관리 사령탑 기능도 지니고 있었다. 그때 청와대 지하 벙커에 설치된 첨단 상황실에는 주요 정부기관으로부터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재난 현장의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자상황판이 돌아갔다. 재난에 대한 신속하고 체계적인 대처가 가능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참여정부 흔적 지우기’로 이 기능은 없어지고 말았고,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복원되지 않고 있다. 청와대 안에 이런 시스템이 있었다면 ‘천금 같은 93분’이 속수무책으로 허비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상상해보는 것은 비약일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박 대통령의 강성 발언이 지지율 관리엔 득이 될지 모르나 상황 수습엔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선장•승무원을 욕하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대통령이 ‘강력한 처벌’을 거론하며 현장 구석구석 깨알 같은 문제들을 지적하는 데 몰두하면 공무원들은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고 움츠러든다. 당연히 사고 수습이나 대책 마련의 효율성도 떨어진다. 관료사회에선 오히려 책임질 일은 회피하고 책임질 필요가 없는 일만 하려 드는 ‘복지부동의 논리’가 작동할 수밖에 없다. 일부 관료들이 국민 정서나 상식과 동떨어진 행태를 보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사설] 우리를 슬프게 하는 자들

● 칼럼 2014. 4. 27. 12:29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어떤 공동체의 수준을 알려면, 그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 구성원들의 언행을 보면 된다. 구성원들이 저열하게 행동하면 그 공동체는 저열한 공동체일 것이고, 구성원들이 연대와 절제, 품위를 유지한다면 그 공동체는 필경 훌륭한 공동체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세월호 여객선 대참사라는 전대미문의 충격에 휩싸여 있는 우리 사회는 지금 그 수준을 시험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불행한 것은 우리 사회가 정신적으로 큰 병에 든 것이 아닌가 하는 징후가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 및 가족과 아픔을 나누기는커녕 그들을 모멸하고 이용하는 ‘참 나쁜 사람들’의 존재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를 비롯한 몇몇 인터넷 동호인 사이트에 올라온 글들이다. 일베와 디시인사이드 ‘국내야구갤러리’에는 사망자 가족을 ‘유족충’이라고 비하하는 글들이 다수 올라와 있다고 한다. 일베에는 이준석 세월호 선장과 선사인 청해진해운을 “전라도인, 전라도 회사”라며 지역감정을 유발하는 허위 글까지 출현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선장은 부산 출신이고, 청해진해운의 본사는 인천에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저열함을 욕하기에 앞서 그런 자들을 낳은 우리 사회의 수준이 부끄러울 뿐이다.
 
그뿐만 아니다. 일부 모리배는 ‘여객선(세월호) 침몰 사고 구조현황 동영상’이라는 글과 함께 인터넷 주소를 올려놓고, 여기에 접속하는 사람의 개인정보를 빼가고 있다고 한다. 구호를 빙자한 사기모금의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그 뿐이 아니다. ‘제2의 5.18을 경계 하라’느니, ‘미개한 국민’ 운운에, 정부 무능을 지적하는 시민들을 ‘북괴에 놀아나는 좌파’라며 종북 낙인찍기 상투숫법이 또 등장해 분노를 자아낸다. 
정치권은 어떤가. 새누리당의 한 시장 후보는 당 차원의 금주령이 내려진 가운데 청년당원들과 ‘폭탄주 술자리’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군 출신의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참에 좌파를 발본색원해야 한다는 요지의 글을 올렸다 비난이 쏟아지자 내렸다.
모두들 제정신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제발 제 얼굴에 침 뱉는 짓은 그만두자.


[기쁨과 소망] 두가지 다른 누룩

● 교회소식 2014. 4. 27. 11:58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대학시절, 생화학 강의를 수강했을 때가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외워야 할 것들이 왜 그리 많았는지! 수많은 효소 이름과 그 특징을 외워야 하고, 세포와 조직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생화학적 반응의 회로도도 외워야 하는 등, 외워야 할 것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련하게 그 많은 것들을 외웠고, 이제까지 기억에 남는 것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참으로 비생산적인 공부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신기한 점은 그냥 자연스럽게 떠올려지는 생화학적 지식이 몇가지 있다는 것인데, 그 중의 하나가 발효와 부패에 관한 것입니다. 생화학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발효와 부패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발효나 부패 모두 산소가 없는 상태에서 미생물에 의해서 유기물이 분해되는 과정이라 정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차이점이라면, 발효는 인간에게 유익한 부산물, 예를 들어서 요구르트나 김치를 제공하지만, 부패는 해로운 부산물, 예를 들어 과일을 썩게 하거나 우유를 상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생화학적인 과정은 별 차이가 나지 않는데, 그 결과는 천지차이가 나게 되니 신기하죠.
 
그러면 무엇 때문에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요? 가장 큰 차이는 어떤 미생물이 분해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유산균이 배추의 조직을 분해하면 감칠맛 나는 김치로 발효가 됩니다. 이와 반면, 유산균보다 부패균의 수가 월등히 많을 경우에는, 배추 조직이 썪게 되어서 먹을 수 없게 됩니다. 또 다른 차이는 발효균의 경우에는 음식물이 지닌 고유의 영양분을 거의 파괴하지 않고 유익한 영양소를 생산하는 반면에, 부패균의 경우에는 자기 살겠다고 영양분을 파괴하고 흡수하고 그것도 모자라 독소까지 내품어서 남들에게 유익이 아닌 해를 끼친다는 거예요.
 
재미있는 것은, 영적인 차원에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다는 겁니다. 성경을 보면 두가지 다른 누룩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세상을 부패하게 만들고 사람들에게 죄의 악취를 풍기게 하는 죄의 누룩입니다 (막 8:15). 죄의 누룩은 부패균과 똑같습니다. 세상을 파괴합니다. 독소를 내품습니다. 그래서 출 14:6에 따르면, 이런 누룩은 네 지경 안에서 네게 보이지도 말게 하라고 경고합니다. 이와 반대로 발효균과 같이 유익이 되는 누룩 또한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누룩입니다 (마 13:33). 이 누룩이 들어가면 좋은 영양분들을 생산해서 세상을 감칠맛 나게 만들어 주고, 죽었던 영혼들이 살아나고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와 같이 죄의 누룩이냐 하나님 나라의 누룩이냐에 따라 세상이 맛보게 될 열매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에는 죄의 누룩이 많은지 하나님 나라의 누룩이 많은지를 점검해 봐야 하겠지요.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누룩은 제거하고 하나님 나라의 누룩이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내어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송만빈 목사 - 노스욕 한인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