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은 공범으로 적시...김태효도 불러 조사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청사에 내란 특검 대면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채 상병 사건 외압 의혹을 수사하는 이명현 특별검사팀이 11일 오전 윤석열 전 대통령 집인 서울 서초구 아크로비스타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이날 한겨레 취재 결과,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을 직권남용 혐의 피의자로 적시한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해 집 압수수색을 진행 중이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은 공범으로 적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 곽진산  배지현 기자 >

전광석화 채 상병 특검…윤석열·조태용·임종득 집·사무실 압수수색

 

                       윤석열 전 대통령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연합

 

채 상병 사건 외압 의혹을 수사하는 이명현 특별검사팀이 11일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에 있는 윤석열 전 대통령 집 압수수색에 나섰다. 아울러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과 임종득 국민의힘 의원 등을 상대로도 압수수색을 하는 등 채 상병 수사 외압의 진원지인 이른바 ‘브이아이피(VIP) 격노설’의 실체 규명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민영 특검보는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 “오전 9시 넘어서 윤 전 대통령 주거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집행 중”이라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피의자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은 공범으로 적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 외에 이날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 집과 임종득 국민의힘 의원의 집 및 의원회관 사무실, 국방부 법무관리관실 등 10여곳도 압수수색하고 있다. 조 전 원장의 경우 전날 국가안보실 사무실에 이어 이날은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조 전 원장은 ‘브이아이피 격노설’이 불거진 2023년 7월31일 당시 대통령실 외교안보 수석비서관 회의에 국가안보실장으로, 임 의원은 안보실 2차장으로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팀은 전날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과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 이시원 전 공직기강비서관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휴대전화와 피시(PC),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해 이를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검팀은 이날 오후 3시부터 2023년 7월31일 수석비서관 회의 참석자 중 한 명인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을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정 특검보는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보고받은 내용, 회의 이후로 채 상병 수사 결과 바뀐 경위 등을 전반적으로 조사할 예정”이라며 “심야 조사가 이뤄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 곽진산  배지현 기자 >

 

윤석열 “변호사 구하기 힘들다”…“변호사비 충분히 주면” 될텐데

윤 “변호사 구하기 어렵다” 호소 전해져
측근 서정욱 변호사도 “세상 인심이 그래”

 

 
 
윤석열 전 대통령이 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끝난 뒤 법원을 떠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0일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영장실질심사에서 “변호사도 구하기 어렵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현직 변호사들이 그 이유를 분석했다.

 

설주완 변호사는 이날 와이티엔(YTN) 라디오 ‘신율의 뉴스정면승부’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이 자기는 고립무원이다, 변호사 구하기도 힘들다, 김건희씨도 변호사 구하기 힘들다(고 했다는데) 어떻게 보냐’는 질문에 “일단 대형 로펌은 안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설 변호사는 “(대형 로펌은) 정치적인 사건에 가급적이면 관여하지 않으려 하고 특히나 전 정부에 대한 사건이지 않나. (현 정부와) 같은 당도 아니고…. 이런 경우엔 대형 로펌에 있더라도 지인인 변호사가 나와서 독립적으로 하긴 하는데, 글쎄요”라고 답했다.

 

그는 다만 “변호사비를 충분히 주면 하실 만한 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제가 알기론 저번 헌법재판소에서 (파면 사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도 윤 전 대통령을 변호했던 변호인들이 보수를 넉넉하게 받으신 분들이 거의 없는 것 같더라”라며 “형식적으로만 받으신 것 같더라”라고 주장했다.

 

설 변호사는 “윤 전 대통령 쪽에서 정치적인 대응을 하는 변호사들을 선임한 건 아닌가”라며 “오히려 법리적으로 꼼꼼하게 보면서 대응하는 변호사들을 찾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앞서 제이티비시(JTBC) 등 일부 언론은 윤 전 대통령이 9일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사람들이 이제 나와 연락을 많이 끊는다”, “변호사도 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재판부를 향해 ‘변호사 구인난’을 호소했다는 것이다. 영장실질심사에 윤 전 대통령 변호인으로는 윤석열 정부 때 방송통신위원장 등을 맡은 김홍일 변호사를 비롯해 최지우·송진호·채명성·배보윤·유정화·김계리 변호사가 참석했다.

 

같은 방송에서 윤기찬 변호사는 “특검 브리핑을 보면 70년대 브리핑 같다. 변호사 어디 무서워서 하겠느냐”라고 말했다. 윤 변호사는 “수사 기관에서 그렇게까지 나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게 봤다”며 “그런 상황에서 보면 변호사로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윤 변호사는 “더군다나 이렇게 큰 사건들은 여기에 전념해야 되기 때문에 다른 사건을 못 맡는다”며 “여러 가지 경제적인 이유, 그다음에 시국 사건 비슷한 거다. 그러다 보니까 여러 가지 시선도 다 감안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설 변호사도 “수사도 수사지만 재판까지 하게 된다면 앞으로 한 2년이 걸린다”며 “대법원까지 (재판을) 한다면 그때까지 재판에서 증인 신문할 것도 많고, 그러면 진짜 여기에 전념해야 되는데 변호사도 먹고 살아야 되는데 (사건을 맡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윤 전 대통령 부부와 가까운 서정욱 변호사는 ‘직접 윤 전 대통령을 변호할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탄핵 때 참여 제안을 받았는데 오히려 (나는) 방송에서 도와주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않겠냐, 이렇게 양해를 구하고 대통령도 이해를 했다”고 말했다. 이날 시비에스(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한 서 변호사는 ‘윤 전 대통령이 고립됐다고 하는데 책임감을 느낄 수도 있지 않냐’는 질문에 “갈수록 더 아마, 세상인심이 원래 정승 집에 개가 죽으면 많이 오지만 정승이 죽으면 안 온다”고 답했다. 서 변호사는 “세상인심이 좀 그런 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 송경화 기자 >

' 브라질에 서한…"보우소나루 마녀사냥"
 룰라 "브라질은 주권국…학대 용납 안 해"
"트럼프, 관세를 전가의 보도로 여겨"

네타냐후 비리 재판 취소·사면 촉구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막무가내 행태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동맹국 여부를 가리지 않고 고율 관세를 '전가의 보도'로 삼아 무역 협상에서 막대한 경제적 양보를 압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젠 특정한 나라를 찍어 내정간섭도 서슴지 않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 백악관에서 열린 아프리카 지도자들과의 다자 오찬에서 참석하고 있다. 2025. 07. 09 [AFP=연합]

 

트럼프, 브라질에 50% '관세 폭력'
'내란 혐의' 보우소나루 재판 거론

 

그 시범 케이스가 브라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브라질에 8월 1일부터 50%의 상호관세 적용을 예고하는 서한을 보냈다. 이는 4월부터 적용된 10%의 기본관세를 무려 40%포인트나 올린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 7일 한국과 일본 등 14개국에 25%~40%의 상호관세 부과 예고 서한을 보낸 데 이어, 이날 8개국에 비슷한 수준의 서한을 보냈지만, 브라질만 콕 집어 '관세 폭탄'을 경고했다.

 

터무니없는 관세 인상 규모도 문제지만, 더 황당한 건 인상을 결정한 사유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 앞으로 보낸 서한에서 트럼프는 기존의 부문별 관세와는 별도로 브라질의 모든 대미 수출품에 50% 관세를 부과하겠다면서 "부분적으로 자유 선거에 대한 교묘한 공격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 앞으로 보낸 서한에서 기존의 부문별 관세와는 별도로 브라질의 모든 대미 수출품에 50% 관세를 부과하겠다면서 "부분적으로 자유 선거에 대한 교묘한 공격 때문"이라면서 내란 혐의를 받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재판 중지를 요구해 내정간섭 파문을 일으켰다. 공식 서한 전반부. 2025. 07. 09 [출처. 트루스 소셜 트럼프 계정] 시민언론 민들레

 

룰라에 보낸 '무례한' 트럼프 서한
"보우소나루 마녀사냥 끝내야"

 

룰라에게 보낸 트럼프의 서한도 "친애하는 대통령"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다른 서한과는 첫 줄부터 완전히 달랐다. 2022년 대선에서 현 룰라 대통령에게 지고도 그 결과에 불복하고 불법 쿠데타를 기도한 혐의로 재판받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신변 문제를 단도직입으로 따지고 나섰다.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은 룰라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23년 1월 8일 대규모 대선 불복 폭동을 벌였으며, 보우소나루가 폭도들의 배후로 지목돼왔다.

 

트럼프는 "나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을 알고 만나왔다. 그래서 다른 나라들의 지도자 대부분이 그렇듯이 그를 굉장히 존경한다"고 운을 뗐다. 그리곤 "브라질이 재직 중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로부터 매우 존경받는 지도자였던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을 대하는 방식은 하나의 국제적 수치다"라면서 "이 재판은 열려서는 안 된다. '즉시' 끝내야 하는 '마녀사냥'이다"라고 썼다. 그야말로 브라질의 정치와 사법 체제에 개입하는 '내정간섭'이 아닐 수 없다.

 

현재 보우소나루 '불법 쿠데타 기도 사건'은 대통령의 헌정질서 훼손 여부에 대한 재판권을 가진 브라질 대법원에서 직접 심리 중이다.

 

9일 브라질 수도인 브라질리아 플라날토 궁전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인도네시아의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왼쪽)이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2025. 07. 09 [AFP=연합]

 

룰라, 곧바로 관세 폭탄 맞대응 성명
"브라질은 주권국…학대 용납 안 해"

 

브라질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남미의 트럼프'로 불리는 극우 성향의 보우소나루는 룰라 대통령 암살을 모의하고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 입법·행정·사법 3권 전권을 장악한 뒤 '신질서' 수립을 위한 비상 기구 설치를 계획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트럼프는 본인도 2020년 대선 불복, 2021년 극렬 지지자들의 1.6 의회 폭동 등과 관련해 여러 건 기소된 바 있어 현직 때 친밀하게 지냈던 보우소나루를 두둔해왔다.

 

이에 룰라 대통령은 몇 시간 후 성명을 통해 트럼프 관세 폭탄에 맞대응할 것이라고 말한 뒤 "브라질은 독립적 제도들을 지닌 주권 국가이며, 그 누구의 학대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또한 보우소나루 관련 재판은 "전적으로 브라질 사법부의 책임"이라고 못 박았다.

정부 차원에서도 공식 항의에 나섰다. 브라질 외교부는 이날 개브리얼 에스코바르 미국 대사대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보우소나루의 '대선 불복 쿠데타 기도 재판'을 '마녀사냥'으로 비난한 트럼프 발언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고 연합뉴스가 현지 언론을 인용해 전했다.

 

7월 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항에서 컨테이너들이 선박에 적재 및 하역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여러 국가에 서한을 보내 해당 국가의 대미 수입품에 대한 새로운 관세율을 제시했다.2025.7.9. EPA 연합

 

"트럼프, 관세를 전가의 보도로 여겨,
브라질 경제·정치에 영향 있을 것"

 

뉴욕타임스(NYT)는 "관세를 이용해 외국의 형사 재판에 개입하려는 트럼프의 시도는 그가 관세를 얼마나 전가의 보도로 여기는지, 또 그 결과로 경제적 파괴를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논평했다. NYT는 급속히 악화하는 트럼프-룰라 갈등으로 특히 브라질의 경제와 정치에 영향이 있을 것으로 우려했다. NYT는 "미국은 중국 다음으로 브라질의 2위 교역국"이라면서 "트럼프는 터무니없는 관세를 철회하려면 보우소나루 기소를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것 같다"고 논평했다.

 

앞서 이틀 전인 7일 트럼프는 자신의 SNS인 트루스 소셜을 통해서도 비슷한 내용의 글을 올렸다. 트럼프는 보우소나루의 불법 쿠데타 관련 재판을 "끔찍한 일" "마녀사냥"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공격" 등으로 규정하고 "보우소나루를 내버려 두라"라고 썼다.

 

미국 백악관의 블루룸에서 열린 만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오른쪽). 2025. 07 07 [UPI=연합]

 

트럼프, 타국 재판 개입 처음 아냐
네타냐후 비리 재판 취소 촉구도

 

이에 룰라는 브라질 대통령실 홈페이지와 자신의 'X'에 올린 성명을 통해 "브라질 민주주의 수호는 브라질 국민의 몫이다. 우리는 주권국가로서 그 누구의 간섭이나 지시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맞섰다.

 

트럼프가 다른 나라의 재판에 '개입'한 건 처음은 아니다. 트럼프는 지난달 29일 트루스 소셜에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개인 비리 혐의 재판도 '마녀사냥'이라고 규정하고 "비비(네타냐후)를 놓아주라"며 재판 취소와 사면을 촉구했다. 그러자 이스라엘 법원은 재판을 연기했다. 1월에는 콜롬비아 정부가 미국에서 추방된 콜롬비아 국적 불법 이민자를 수용하지 않자 콜롬비아산 대미 수출에 25% 긴급 관세를 부과하고 일주일 후 이를 50%로 인상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자 콜롬비아는 트럼프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고 '관세 폭탄'을 피했다.    < 이유 기자 >

 

‘죄수의 딜레마’ 강요하는 트럼프의 관세협상

절대 강자 미국 이익 극대화하는 게임 방불

과도한 대미 의존 탈피나 시장 다변화가 해답
트럼프 협상시한 연장은 자신감보다 불안 때문?

4월 이후 물가 둔화는 관세 인상 전 대량수입 덕
일본 차 가격 인하는 엔 약세 효과, 미국이 탈취

 

7월 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항에서 컨테이너들이 선박에 적재 및 하역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여러 국가에 서한을 보내 해당 국가의 대미 수입품에 대한 새로운 관세율을 제시했다.2025.7.9. EPA 연합

 

미국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CEA)는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올렸지만 수입품 가격은 관세 발동 전보다 오히려 내려갔다고 지난 8일 보고서에서 분석했다. 하루 전인 7일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C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관세 인상이 물가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일축했다.

 

골드만삭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얀 하치우스도 “(미국정부가) 승리를 선언하는 건 시기상조”라면서도 “초기단계의 관세 영향은 예상보다는 덜했다”고 했다. 지난 6월 말에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올해 금리인하 예상 시기를 기존의 12월에서 9월로 앞당긴 것도 이런 상황을 반영한 것이었을 것이다.

 

트럼프의 고관세 정책으로 올해 4월 이후 급증한 미국의 관세수입. 단위: 억 달러. 출처: 미국 재무부. 일본경제신문 7월 9일

 

관세 올려 관세수입 크게 늘고 수입물가는 하락

 

게다가 관세 인상으로 관세수입이 크게 늘어난 것도 트럼프 정권을 고무시켰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5월에 220억 달러(약 302조 원)가 넘는 관세수입이 미국정부에 들어갔다. 이는 전 해인 2024년 평균 관세수입의 3배나 되는 액수다. 4월부터 발동될 예정이던 상호관세는 유예됐지만 그 부분을 뺀 일괄 10%의 기본관세는 실제로 부과됐기 때문에 그처럼 관세수입 규모가 일거에 폭증했다. 연간 무역적자가 1조 달러에 가깝고, 국가부채가 36조 달러가 넘는 미국에게 관세 인상 조치 하나로 이처럼 손쉽게(?) 막대한 추가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건 거부하기 어려운 유혹이었을 것이다.

 

중국의 대미 수출품 가격 인하 추세.  2003년을 100으로 했을 때, 그 이후 변화 추이. 출처:미국 노동부.  일본경제신문 7월 9일

 

중국과 일본, 대미 수출가격 인하

 

실제로 지난 2월부터 트럼프 정권의 추가관세가 적용된 중국은 대미 수출품 가격을 내렸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중국산 수입품 가격이 2024년 12월부터 2025년 5월까지 약 2% 내렸다.

 

전부터 “국가정책으로 과잉공급 사태를 빚은 역사상 흔치 않은 왜곡된 경제”라며 중국을 비판해 온 베센트 재무장관은 고관세가 “그것(왜곡)을 바로잡는 좋은 정책”이라며 정당화했다.

 

일본의 대미 수출 주력상품인 자동차 가격도 크게 내렸다. 일본은행에 따르면, 일제 자동차의 북미 수출가격은 3월부터 5월까지 17.7%나 내렸다. 미국 현지에서의 가격 인상으로 인한 시장 점유율 하락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수익 감소를 감수한 것이다.(<닛케이> 7월 9일)

시장확보를 위한 가격인하 전략은 (수출국) 기업의 수익을 줄이고 디플레 압력을 높인다.

 

일본 자동차의 수출가격 인하 추이. 북미지역 외에 수출하는 자동차 가격(회색선)은 상승한 뒤 큰 변동이 없으나 북미지역 수출 자동차 가격(파란색)은 올해 들어 급전직하로 폭락했다. 2020년=100 기준. 출처:일본은행.  일본경제신문 7월 9일

 

이에따라 미국 소비자들이 추가관세로 그만큼 가격이 오른 제품을 쓸 수밖에 없를 것이라던 ‘가격 전가’는 예상만큼 크지 않았다. 영향은 한정적이었다. 5월의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4월에 비해 둔화됐다.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핵심 지수는 0.1% 오르는데 그쳐, 예상했던 0.3%보다 상승폭이 떨어졌다. 주로 자동차와 의류제품 가격 인하 덕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것 보라는 듯 기고만장했다. “내가 늘 예측했던 대로 수입품 가격은 (예상과 달리) 실제로는 하락했다. 페이크뉴스(가짜뉴스)나 이른바 ‘전문가’들은 또 틀렸다”는 글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몇 개월이나 존재하지도 않는 인플레에 대해 아기처럼 우는 소리를 하며 옳은 일 하기를 거부하는 ‘느려터진’ 제롬 파월(FRB 의장)에게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의) 이 새 조사결과를 보여줘야 한다.” 빨리 금리를 내리란 얘기다.

 

지난 7일 한국과 일본 외에 12개 국에 8일까지 90일간 발동을 유예했던 추가관세 협상시한을 다시 8월 1일로 몇 주일 늦추면서 상호관세 강행 자세를 고수한 것도 이런 실적을 토대로 한 트럼프 정권의 자신감을 반영한다는 지적들이 나왔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근거로 고관세정책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일 가능성이 커졌다는 우려도 있다. 미국 같은 대국이 관세를 올리면 수요가 줄어 수입품 가격이 오히려 내려간다는 ‘최적관세이론’이 입증됐으므로, 더 과감하게 고관세를 밀어붙일 것이라는 우려다.

 

협상시한 연장한 것은 자신감보다 불안 때문?

 

하지만 골드만삭스의 얀 하치우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지적했듯이, 그렇게 단정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다. 파월 FRB 의장은 여름을 지나면서 물가가 다시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에 상호관세 발동 발표 뒤 서둘러 이를 90일간 유예한 것은 상호관세 발동에 따른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 등으로 금리가 올라가고 주가와 국채가격, 달러시세가 떨어지는 ‘트리플 약세’ 현상으로 반대여론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이번에 상호관세 협상 시한을 7월 8일에서 8월 1일로 사실상 연장한 것도 수입가 하락에 따른 자신감 때문이라기보다는 예정대로 7월 9일 이후 상호관세 발동을 강행할 경우 그와 유사한 역효과와 반대여론에 시달릴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8월 1일로 시행일을 연기한 것은 그때까지 시한을 연장해서라도 자신의 계획대로 상대국들을 굴복시키려는 트럼프의 벼랑끝 압박전략이라는 것이다. 큰소리치지만 과도한 고관세 강행 이후의 전개상황에 대해 트럼프 정권이 낙관적이지 못하며 내심 불안해 하고 있기에, 8월 1일까지 협상시한을 연장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딜’을 끝내겠다는 계산을 했을 것이란 얘기다.

 

관세인상이 수입품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 로이터 일본경제신문 7월 9일

 

4월 이후 물가 둔화는 관세 인상 전 대량수입 영향

 

4월 이후 미국 무역적자와 소비자 물가 인상이 둔화된 것은 4월의 상호관세 발동을 앞둔 3월에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무역적자 덕이 컸다. 기업들은 인상된 가격의 물품 수입에 따른 부담증대를 피하기 위해 추가관세 발동으로 가격이 오르기 전에 앞당겨 대량으로 수입해 재고를 잔뜩 쌓아 두었다. 이 재고분이 없어지면 추가관세로 가격이 오른 수입품들이 미국시장에 돌기 시작할 것이다. 말하자면 고관세로 인한 물가 상승 효과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긴 시간차를 두고 서서히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파월 FRB 의장도 그것을 걱정하고 경계할 것이다.

 

일본 자동차 가격 인하는 엔 약세 효과, 미국이 탈취

 

그리고 자동차 등 일본의 수출품 가격이 내려간 것은 2022년 이후 지속된 미국 달러 대비 일본 엔 시세 하락도 영향을 끼쳤다. 그 기간에 엔 시세는 달러 대비 약 40%나 가치가 떨어졌다.(시세 하락) 그 결과 달러 베이스의 일제 승용차 대미 수출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졌지만 엔 베이스의 수출가격은 2022년 초보다 더 올라갔다. 달리 말하면, 엔 약세로 일본의 자동차 수출업체가 얻었던 추가 수익분을 사실상 미국정부가 추가관세로 빼앗아 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일본 자동차 수출업체들이 앞으로도 계속 그런 가격전략을 유지할 것이란 보장이 없다. 고관세가 장기화하면 할수록 업체들은 가격을 올려 미국 소비자들에게 가격인상 부담을 전가하려 할 것이고, 그렇게 해서 미국 소비자들 부담이 커지면 트럼프 정권을 기쁘게 만든 수입물가 하락과 관세수입 급증 등 지금 당장의 플러스 효과도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지금 트럼프 정권을 고무시키고 있는 플러스 효과를 설명하는 도구인 ‘최적관세이론’은 뒤집힐 가능성이 있다. 대국(강자)이 관세를 올리면 수요가 줄면서 수입품 가격이 오히려 내려간다는 ‘최적관세이론’은 상대국의 보복관세를 부르고, 자국 소비자와 기업들에 불이익을 안기며, 국제협조를 통한 문제해결을 어렵게 만들 수 있는 약점(리스크)이 있다.

 

트럼프 관세협상은 ‘죄수의 딜레마’ 게임

 

미국경제·금융 전문가인 오노 마코토는 트럼프 정권의 관세협상을 결국 최악의 결과로 귀결되는 게임 이론 ‘죄수의 딜레마’에 비유했다. 수사관이 공범으로 의심되는 두 명의 용의자를 각기 따로 수사실로 불러서 자백할 기회를 준다. 둘 다 함께 저지른 자신들의 죄를 자백하지 않으면 징역 1년(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모르므로). 둘 다 자백하면 각각 징역 5년. 한 쪽이 자백하고 다른 쪽이 자백하지 않으면, 자백한 쪽은 즉시 석방되고 자백하지 않은 쪽은 징역 10년. 이런 조건에서 각 용의자는 어떤 선택을 할까. 즉시 석방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릴 만큼 두 용의자간 믿음이 없다면 둘 다 1년 징역으로 끝나기보다 더 나쁜 나머지 두 경우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오노 마코토에 따르면, 중국처럼 희토류와 같은 유력한 보복수단을 갖고 있지 못한 나라들은 어쩔 수 없이 미국이 짜 놓은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 응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대미 수출액의 약 3분의 1(28~30%, 7조 엔=약 65조 원)을 차지하는 자동차에 부과된 25%의 관세를 철회시키려면 나머지 대미 수출총액 21조 엔(약 195조 원)에 대한 25% 관세를 각오해야 한다.

 

마에지마 가즈히로 일본 조지대 교수(현대미국정치)는 그럴 경우 예컨대 일본과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더 좋은 조건을 얻어내기 위해 서로 경쟁한다면 결국 ’죄수의 딜레마‘ 게임의 두 용의자 신세를 면키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한국의 처지가 다를까. 결국 미국만 득을 볼 것이라는 얘기다.

 

후쿠이 겐사쿠 뉴욕주 변호사는 지금 미국에서는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을 한 사람들이 지지한다는 사람들보다 10% 이상 많다면서 “이번 (트럼프의) 관세가 총체적으로 상대방의 형편을 생각하지 않는 큰 민폐행위라는 점에서 국제여론은 일치할 것”이라며, 관세협상에서 미국에게 성공체험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의 두 용의자처럼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경쟁자에게 손해를 끼치는 짓을 하면 결국 둘 다 손해볼 것이라는 얘기다. 한 번 그렇게 되면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면서, 후쿠이 변호사는 그것은 피해야 한다고 했다.

 

대미 수출의존도가 큰 한중일 3국

 

일본 수출 총액에서 차지하는 대미 수출 비중은 약 20%다. 중국 총수출에서 대미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4년에 14.7%로, 2018년의 19.2%에서 4.5%p 줄었지만 여전히 큰 비중이다. 한국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대미 수출 비중은 지난해 18.7%였다.

 

3국 모두 그런 미국 시장을 잃지 않기 위해, 또는 더 키우기 위해 어떤 경쟁, 어떤 대결도 마다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대미 의존도가 높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으로 그나마 모두가 손해를 가장 적게 보는 합의를 하는 일은 개인 간에도 어려운데 집단이나 국가 간에는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말하자면 최강자이자 최고 부자그룹에 속한 미국이 타자 또는 약자에 대한 배려 없이 자국만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대미 의존도가 큰 나라들을 경쟁시키는 이이제이식 수법을 동원할 때 그 결과가 어떠하리라는 것을 트럼프 정권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7월 9일 뉴욕 시의 한 주택 재건축 매장에 진열돼 있는 구리 제품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구리 수입품에 5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구리 가격은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다. 구리는 자동차, 전자제품, 기계 등 다양한 제품에 사용된다. 2025.7.9. AFP 연합

 

구리·의약품도 추가관세 
대미 의존 줄이거나 시장 다변화해야

 

지금까지 미국과 관세합의를 본 영국과 베트남은 자신들의 손해를 가능한 한 최소화하면서 트럼프 정권이 바라는 바를 충족시켜 주는 쪽을 택했다. 미국에게 성공체험을 안겨 준 셈이다. 베트남의 경우 4월 상호관세 발표 때 46%였던 대미 수출품 관세를 20%로 낮추는 대신 미국산 수입품에 대해서는 무관세를 약속했다. 세계 3위의 대미 무역흑자국이 된 베트남으로서는 대미 수출액 규모의 8분의 1에 지나지 않는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무관세 요구를 받아들이는 게 그나마 선방하는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트럼프 정권은 아마도 영국이나 베트남과 같은 선택을 하라고 한국과 일본을 다그칠 것이다.

 

미국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거나, 시장을 다변화(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하지 않는 이상 절대 강자 미국이 요구하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 세계에서 빠져 나오기 어렵지 않을까.

 

트럼프 대통령은 8일 구리와 구리 관련 수입품들에 50%의 추가관세를 부과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의약품과 의약품 원료에 대해서도 1년여의 유예기간을 둔 뒤 200%의 추가관세를 부과할 것이며, 조만간 이를 공표하겠다고 밝혔다. 관세전쟁 성공체험이 쌓여갈수록 패권적 지위를 지키려는 미국의 공세는 더 거세질 것이다.    < 한승동 기자 >

 

"트럼프 관세폭력 침묵·순응 언론, 존재 가치 있나"

원로 언론인단체 언시국, 언론보도 태도 강력 비판

지주의 무례한 소작료 인상 순응하는 마름같은 짓

 

‘언론탄압 저지와 언론개혁을 위한 시국회의(언시국)’이 트럼프의 일방적인 25% 관세 통보와 이에 대한 언론의 무비판적 보도를 비판하는 성명을 10일 발표했다. 언시국은 전현직 원로급 언론인들과 조선투위·동아투위, 80년 해직 언론인 등이 참여하는 국내 최대 언론인 단체다.

 

언시국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무자비한 관세 폭력이 도를 넘고 있다, 형식과 내용 모두 뒷골목 깡패를 방불케 한다”면서 “(이것은)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모든 미국산 물품에 대해 한국이 0%대의 관세를 매기고 있는 엄연한 현실을 완전히 무시한 처사”라고 주장했다. .

 

언시국은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그가 이재명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기에 앞서 이런 내용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미리 공개한 무례”라면서 “국제사회의 관행을 짓밟은 만행이며 동맹관계의 주권국을 능멸하는 짓”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언시국은 그런데도 국내 언론이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깡패짓’을 보고도 침묵과 순응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진보·보수 가리지 않고 한국 언론이 미국 요구안을 중점적으로 전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기한 안에 타격을 최소화하는 협상을 하라고 주문하고 있다”면서 이는 “지주가 소작인에게 무자비하고 무례한 방식으로 소작료 인상을 요구하는 것을 보고도 적당히 타협하라고 주문하는 마름의 태도”라고 비판했다.

 

언시국은 “언론 보도는 그 나라의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잣대”라고 지적한 뒤 “지금 한국언론이 긴급히 할 일은, 이성 잃은 트럼프 대통령의 공세에 순응할 게 아니라 비판과 견제로 한국인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김성재 기자 >

 

다음은 언시국 성명서 전문이다.

 

 

<제50차 언시국 성명>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자비한 ‘관세 폭력’이 도를 한참 넘고 있습니다. 형식과 내용 모두 뒷골목 깡패를 방불케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8월 1일부터 한국산 모든 품목에 대해 25%의 상호 관세를 매기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습니다. 한미자유무역협정에 따라 모든 미국산 물품에 대해 한국이 0%대의 관세를 매기고 있는 엄연한 현실을 완전히 무시한 처사입니다.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그가 이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기에 앞서 이런 내용을 사회관계망서비스에 미리 공개한 무례입니다. 크고 작은 나라는 있을지언정 높고 낮은 나라는 없는 국제사회의 관행을 짓밟은 만행입니다. 동맹관계의 주권국을 능멸하는 짓입니다. 만일 한국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면서 그 내용을 미리 공개했다면, 그럼 미국이 어떻게 반응했겠습니까?

그런데 한국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깡패짓을 보고도 침묵과 순응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런 굴종적인 보도 자세는 진보 언론도 다르지 않습니다. 진보·보수 가리지 않고 한국언론은 미국의 요구만을 중점적으로 전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기한 안에 타격을 최소화하는 협상을 하라고 주문합니다. 지주가 소작인에게 무자비하고 무례한 방식으로 소작료 인상을 요구하는 걸 보고도 적당히 타협하라고 주문하는 마름의 태도입니다.

언론 보도는 그 나라의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잣대입니다. 특히 대외 관계에서는 그 나라의 자존과 혼을 대변합니다. 언론이 외부 세력의 무자비하고 모욕적인 행위에 순응하면 어떻게 될까요? 외세는 더 기세등등하게 주권을 짓밟고 이권을 빼앗으려 들 게 뻔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력’은 주권국 대한민국의 위신과 이익을 짓밟는 한편 한국 언론의 존재 가치를 시험대에 올려놓았습니다. 지금 한국언론이 긴급히 할 일은, 이성 잃은 트럼프 대통령의 공세에 순응할 게 아니라 비판과 견제로 한국인이 살아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입니다. 언론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섭니다. 언론이 주저앉으면 나라도 주저앉습니다.

2025년 7월 10일

언론탄압 저지와 언론개혁을 위한 시국회의(언론시국회의)

 

국회 청문회 나와 "학살 판단할 수 없다"

"애국 현장에서는 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다"
'사과하라'는 말에 끝까지 대답 회피할 뿐

본인이 '마녀사냥'당한 언론의 피해자인 양 
손 대표 추천자 "검증할 위치도 아니었다"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리박스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손효숙 리박스쿨 대표가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5.7.10. 연합
 

"저희가 하고 있는 역사 교육은 이승만과 전두환을 바로 알리는 것입니다. 최근 전두환 명예 회복을 하는 교육을 하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여론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기술을 공유하는 그런 공부가 계속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리박스쿨에서 스마트폰 교육을 무료로 제공할 테니 여러분은 언제든지 오셔서 공부하길 부탁드립니다."

 

2022년 11월 1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극우 단체 '자유와 연대' 출범식에서 리박스쿨 손효숙 대표가 한 발언이다.

 

10일 국회 교육위원회 '리박스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손 대표는 그가 옹호한 전두환이 '학살자'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당연히 자신의 행위에 대해 사과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언론으로부터 마녀사냥을 당한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준혁 의원은 손 대표에게 "손효숙 대표가 한 발언이 역사 정의가 맞냐"며 "지금 이 자리에 (손 대표가) 있는 것은 역사 정의에 맞지 않고 헌법적 가치에도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전두환을 바로 알리겠다는 것인가. (전두환이) 5·18광주민주화운동 학살과 관련해서 잘했다는 거냐"고 물었다.

 

손 대표는 "애국 현장에서는 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다"며 "대통령마다 공과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김 의원은 "수많은 국민을 학살하는 것을 용인하는 게 애국이냐"며 "(전두환) 대통령이 공과가 있다고 했는데 무고한 국민을 학살한 게 애국이냐. 그것이 공이냐"고 몰아붙였다.

 

손 대표는 이런 상황에서도 전두환이 '학살했는지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하며 자신은 '공직자, 교육자도 아닌 일개 시민'이라고 했다. 김 의원은 이에 "일개 시민이 전두환 옹호 운동을 하냐"며 "이승만 정부 거창양민학살사건을 아냐, 박정희가 한 사법살인을 아냐. 손 대표는 '여론전'을 해야 된다, 스마트폰 교육시켜야 된다고 하는데 그 돈은 어떤 애국 세력이 주는 거냐"고 지적했다. 손 대표는 여론전을 두고도 '스마트폰 이용법을 알려주는 것 뿐'이라며 비껴갔다. 

 

김 의원은 '대한민국 사회 교과서'라는 책을 들고 보여줬다. 해당 책은 '뉴라이트 사관'에 입각해 일제 식민 지배를 미화하고 있다. 김 의원은 "이 책은 한국학 중앙연구원 김주성 이사장이 추천서를 쓰고 손 대표와 가까운 대한민국교원조합에서 만든 책"이라며 "김주성 씨는 리박스쿨 임원으로 있으면서 정치학교장"이라며 "이런 책이 보급되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 헌법과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영호 위원장은 손 대표의 발언을 듣고 "공감능력이 너무 떨어진다"며 "나도 희생자 가족인데, 이렇게 무렴치한 발언을 했으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하지 않냐. 기회를 줄테니 지금 같은 극우적 생각으로 파장을 일으킨 거에 대해 5·18광주민주화 유족들과 민주화 진영 사람들에게 사과할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손효숙 리박스쿨 대표가 10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리박스쿨 청문회에 참석해 극우 역사교육과 관련한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5.7.10. 연합
 

손 대표는 "'내 발언에 문제가 있다면' 사과를 해야겠지만…"이라고 자신의 잘못이 없는 듯처럼 말끝을 흐렸다. 2022년 자유와 연대 출범식에서 한 발언을 두고 '오래된 일'이라고 둘러댔다. 그는 자신의 극우적 발언에 대한 반성은커녕 "(리박스쿨 관련 첫 언론 보도가 나온) 지난 5월 30일 이후 마녀사냥을 당해 심신미약자가 됐다"며 피해자 행세를 했다. 

 

'본인이 교육부 정책자문위원으로 있던 지난 2월 초 교육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에게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 도입에 반대하지 말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마치 학부모인 것처럼 보낸 것이 사실이냐'는 질의에 "그렇다"면서 "자문위원으로서 보낸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당시 손 대표는 교육부 교육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리박스쿨 역사관 논란이 불거지자 교육부는 지난달 1일 자로 손 대표를 해촉했다. 원래 임기는 6월 12일까지다.

 

손 대표를 교육정책자문위원으로 추천한 이수정 전 교육부 자문관도 청문회에 나왔다. 이 전 자문관은 "정책자문위를 구성한다고 해서 학계 교수님들께, 현장 의견을 잘 전달할 수 있는 분들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며 "여러분이 손 대표를 추천했고, 저는 특별한 의견 없이 해당 부서에 그 추천 의견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자문관은 "리박스쿨 활동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고, 기사를 통해 보고 많이 놀랐다"며 "손 대표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검증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손 대표가 이사로 있는 한국늘봄교육연합회와 교육부의 업무협약(MOU) 체결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고 MOU를 맺으라는 말을 한 적도 없다"고 해명했다.

 

다만 그는 "행복교육공사단이라는 단체의 장이 교육부 해당 부서에 MOU를 맺고 싶다고 민원을 넣었는데 (교육부가) 답이 없다고 해서, 해당 부서에 검토를 한 번 더 해보고 확인해 달라고 했다"며 "해당 부서는 적절치 않다는 의견을 준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이 전 자문관은 "이런 의혹들로 염려를 끼친 부분에 대해서는 대단히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하지만 리박스쿨과 관련해 제게 제기된 의혹들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 김민주 기자 >

 

'리박스쿨'은 역사 왜곡 실험실... 시대착오적 인물숭배

피로 얼룩진 권력욕을 리더십으로 포장

이·박 독재는 신화가 아니라 비판의 대상

청년세대에 민주 감각 교육 필요한 시기
'리박스쿨' 퇴학 조치 내려야 마땅하다

 

보수 성향 단체 '리박스쿨'의 댓글 여론 조작 관련 보도가 나온 가운데 2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 한 빌딩에 리박스쿨 사무실 간판이 붙어 있다.2025.6.2. 연합

 

‘교육’이라는 이름의 독재 세탁소

 

최근 공개된 콘텐츠 ‘리박스쿨’은 제목부터 낯설고 불길하다. 이승만과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의 이름에서 성을 따온 이 프로그램은 이들을 마치 학교의 ‘교장’처럼 설정해 ‘리더십’을 배우는 형식이다. 그러나 그 실체는 교육의 외피를 입은 정치 콘텐츠이며,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냉소와 역사왜곡, 그리고 시대착오적 인물숭배에 다름 아니다.

 

‘역사를 재조명한다’는 명분 아래 리박스쿨이 선택한 방식은 지나치게 편파적이다. 이 콘텐츠는 두 독재자의 업적만을 과장하고, 그들의 폭력적이고 반민주적인 행보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침묵하거나 가볍게 넘긴다. 예능이라는 형식을 빌려 역사적 균형을 잃은 해석을 시청자에게 쉽게 주입시키는 이 프로그램은 교육이 아니라 ‘정치적 세뇌 실험실’이다.

 

이승만: 독립운동가였지만, 민주주의자였나?

 

이승만의 삶은 분명 복잡하다. 일제강점기에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점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기록이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유산은 해방 이후 철저히 민주주의와 배치된다. 그가 1948년 정부 수립 직후부터 보여준 통치는 민의를 존중하기보다는 억누르고 통제하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전쟁 전후의 ‘보도연맹 학살’이다. 좌익계열 인사 혹은 그와 연루되었다고 추정된 수십만 명이 국가 권력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학살됐다. 이는 전쟁기 혼란이라는 변명으로 용납될 수 없다. 명백한 국가 주도 반인륜 범죄다. 1기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최소 10만 명 이상이 이승만 정부에 의해 처형되었고, 이 과정은 비공개·비법적 절차로 진행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1952년에는 대통령 직선제를 밀어붙이기 위해 군을 동원해 국회를 포위했고, 1954년에는 ‘사사오입 개헌’이라는 전무후무한 숫자 장난으로 3분의 2 찬성을 끌어낸 척 헌법을 개정했다. 이런 인물이 ‘건국의 아버지’라 불릴 자격이 있는가? 민주주의가 그의 손으로 시작되었다는 주장은 피로 얼룩진 권력욕을 ‘리더십’으로 포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박정희: 산업화 신화의 그늘은 민주주의의 붕괴였다

 

박정희를 이야기할 때 반복되는 문구가 있다. “그래도 경제는 살렸잖아.” 이 말은 사실상 정치적 무책임의 상징이다. 물론 그의 정권 아래서 산업화가 추진됐고, 수출이 증가했으며, 국가 인프라가 성장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체주의적 동원체계’의 결과였으며, 그 체계 하에서는 국민의 권리와 자유가 지속적으로 침해받았다.

 

1961년 5월 16일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그는 처음엔 ‘과도정부’를 자처했지만, 결과적으로는 18년에 걸친 장기집권으로 나아갔다. 1972년 유신헌법은 그 정점이었다. 이 헌법은 행정부의 권력을 극대화하고, 국회의 기능을 약화시키며, 대통령에게 입법·사법·행정 전반에 절대권력을 부여했다. 형식만 남은 헌정질서 아래에서, 박정희는 비판을 불허하는 절대 권력자가 되었다.

 

그 시절, 노동자는 인간이 아니라 부품으로 취급받았다. 노동 3권은 부정당했고, 언론은 통제당했으며, 학생들은 감시와 사상 검열 속에서 생활했다. 인혁당 사건, 긴급조치 시대, 정치적 고문과 실종. 이 모든 고통을 단지 '산업화의 대가'로 치부할 수 있는가? '고속도로'와 '수출 증가'가 박정희 정권의 실적이라면, '표현의 자유 압살'과 ‘공포 정치의 일상화'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뉴스타파는 '리박스쿨' 잠입 취재를 통해 이번 대선을 앞두고 '자손군'이라는 댓글팀이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띄우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비방하는 활동을 체계적으로 벌여왔다고 30일 보도했다. 뉴스타파 홈페이지

 

예능이란 포장지 속 역사 왜곡, 더 위험하다

 

리박스쿨은 예능 형식을 빌려 이 모든 과거를 ‘가볍게’, ‘웃기게’ 포장한다. 그러나 역사 왜곡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오히려 웃음 뒤에 감춰진 의도야말로 더 치명적이다. 대중문화는 반복과 익숙함을 통해 정당성을 형성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결국 예능을 통한 역사 왜곡은 무의식적 동의를 불러일으키고, 정치적 판단력을 마비시킨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프로그램이 청년 세대를 직접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업률, 주거 불안, 정치 혐오 속에서 자란 청년들에게 '과거의 강한 리더십'을 낭만적으로 소비하게 만드는 일은, 무책임한 마취다. '그때는 잘 나갔다'는 말이 반복될수록, 청년의 미래는 과거 회귀적 정치에 갇히고 만다.

 

우리가 배워야 할 ‘교장’은 누구인가

 

리박스쿨은 이승만과 박정희를 교장처럼 그린다. 그러나 이들이 진정 교육자적 리더였던가? 그들이 국민에게 가르친 것은 복종, 침묵, 그리고 무조건적 충성뿐이다. 그건 ‘교육’이 아니라 ‘군기’다.

 

진정한 교장은 국민이다. 우리는 4.19 혁명으로 부정선거를 심판했고, 5.18 광주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켰으며, 6월 항쟁으로 다시 헌법을 되찾았다. 그런 국민적 수업이 있었기에 오늘의 민주주의가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를 교장으로 모신 순간, 대한민국은 학교가 아니라 병영으로 전환된다.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방과후강사분과 조합원들이 보수 성향 교육단체 '리박스쿨'이 서울 일부 초등학교에 늘봄 강사를 공급한 것을 규탄하며 방과후수업 외주 위탁 철폐를 촉구하고 있다. 2025.6.10. 연합

 

지금 필요한 건 ‘리박’이 아니라 ‘디박’이다

 

우리는 지금 ‘디박스쿨’이 필요한 시점이다. 디코딩하고(Decode), 디컨스트럭션하며(Deconstruct),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민주주의 감수성을 확장하는 교육. 독재의 유산을 신화가 아닌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청년 세대가 주체적으로 역사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민주적 감각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결코 한 번의 선거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끊임없는 경계, 참여, 그리고 교육을 통해 재구성되어야 하는 시스템이다. 과거를 회피하거나, 편리하게 포장할수록 민주주의는 퇴행한다. 지금 우리가 리박스쿨에 ‘퇴학 조치’를 내려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를 잊은 사회, 미래를 저당 잡힌다

 

오늘날 리더십의 위기를 독재 미화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민주주의에 대한 모욕이다. 강한 리더는 필요하지만, 그것은 국민의 권한을 침해하지 않는 강함이어야 한다. 독재는 강함이 아니라 비겁함이다. 비판을 두려워하고, 권력을 독점하며, 국민을 수단화하는 통치는 결코 리더십이 아니다.

 

리박스쿨은 말한다. “과거를 통해 배워라.” 맞다. 우리는 과거를 통해 배워야 한다. 그러나 배워야 할 것은 독재자의 리더십의 신화가 아니라, 그것이 남긴 상처와 폐해다.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그 어두운 순간들을 직시해야 한다.

 

기억은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묻느냐가 앞으로 이 사회가 어떤 미래를 향해 나아갈지를 결정짓는다. ‘리박스쿨’은 과거로의 회귀를 상징하지만, 우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다.  < 김성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