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유죄 판결과 별도로
7명 살해 사실 추가로 밝혀져
최웅 등 9명 민간인 학살 고발도

 
 
1980년 5월27일 계엄군의 전남도청 진압 작전 직후 노먼 소프 기자가 찍은 안종필군(앞)과 문재학군의 주검. 문군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실제 주인공이다. 옛전남도청복원추진단 영상 갈무리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가 1980년 5월 당시 특전사령관이었던 정호용씨와 제3공수여단장이었던 최세창씨를 내란목적살인죄로 추가 고발하는 방안을 전원위원회에 올린다. 전원위원회에서는 최웅 당시 제11공수여단장 등 진압군인 9명을 민간인 살해 혐의로 고발하는 문제도 함께 논의된다.

 

조사위 관계자 등의 말을 종합하면, 20일 열리는 전원위원회에서는 정호용씨와 최세창씨에 대한 내란목적살인 혐의 고발 안건과 함께 최웅씨 등 9명의 민간인 살해 혐의 고발 안건이 상정된다. 전원위원회는 합의제 운영이 원칙이지만, 합의가 되지 않으면 표결을 통해서라도 고발 문제를 마무리 짓겠다는 게 다수 위원들의 생각이다.

 

조사위가 정호용·최세창씨를 내란목적살인죄로 고발하려는 것은 1997년 12월 대법원이 전두환·황영시·정호용 등 5명에게 내란목적살인 혐의로 유죄판결을 내릴 당시에 드러나지 않았던 범죄가 새롭게 확인됐다는 판단에서다.

 

당시 전두환 등에게 적용된 내란목적살인 혐의는 1980년 5월27일 새벽 계엄군의 광주재진입작전 과정에서 윤상원 등 저항시민 18명을 살해한 행위와 관련된 것인데, 이번 조사 과정에서 시민 7명이 같은 날 계엄군에 의해 살해된 사실이 추가로 밝혀져 ‘별도의 범죄’(별죄)로 처벌하는 게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다만 이미 사망한 전두환 등 4명은 공소권 소멸로 기소가 불가능해, 1997년 유죄가 확정된 정호용씨와 당시엔 혐의 적용이 되지 않았으나 12·12 군사반란과 광주 진압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한 최세창씨를 추가 고발 대상에 포함했다는 게 조사위 설명이다.

 

조사위는 내란목적살인죄의 경우 이미 처벌을 받은 피고인이라도 새로운 범죄가 드러나면 추가 기소와 처벌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2020년 11월 김재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게 용역 의뢰한 ‘5·18민주화운동 당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의 국내법적 쟁점 연구’에서도 ‘내란목적살인죄는 살인죄에 대한 가중적 구성 요건으로서 피해자의 수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별죄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다. 공소시효 문제도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1995년 12월21일 제정된 ‘헌정질서 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헌정범죄시효법)은 내란죄 및 반란죄, 집단살해에 해당되는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

 

1980년 5월23일 채수길, 양민석 등 시민 2명이 즉결처분된 광주 동구 지원동 주남마을. 정대하 기자 
 

당사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정호용씨는 1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조사위가 내란목적살인죄로 검찰 고발을 추진한다’는 것과 관련해 “쓸데없는 소리 말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라며 전화를 끊었다. 5·18 당시 특전사령관으로 광주에 왔던 정호용은 1997년 대법원에서 내란모의참여죄, 내란목적살인죄 등으로 징역 10년형이 확정됐으나 김대중 정부 출범 뒤인 이듬해 사면됐다. 그는 2020년 5·18조사위에 낸 진정서에서 “(내란목적살인죄 등으로) 처벌을 받았으나 전두환 장군과 공모한 사실이 없고, 특전사 예하 여단을 타 부대로 배속시켜 내겐 작전지휘권이 전혀 없었는데도 특전사령관이라는 이유로 처벌받은 것이 억울하다”고 호소한 바 있다. 그는 전두환 정권 아래서 육군참모총장과 내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을 지냈다.

 

최세창씨 역시 한겨레와 한 전화 통화에서 “별로 (해명할) 생각이 없고, 의견 드릴 것도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최씨는 5·18 당시 제3공수여단에 실탄 배부와 실탄 사용을 지시한 혐의 등으로 1997년 대법원에서 열린 12·12 군사 반란 및 5·18민주화운동 관련 재판에서 반란모의 참여 주요 임무 종사, 상관 살해미수 등의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이듬해 8월 사면됐다. 조사위 쪽은 “최세창씨는 내란목적살인죄로 기소되지 않았으나 5월27일 진압작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내란목적살인 혐의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최씨는 5·18 이후 수경사령관, 육군참모총장, 합참의장을 지냈고, 1989년 전역해 노태우 정권 때 국방부 장관을 지냈다.

 

광주 남구 송암동 송암공단 안 연탄공장 관리부장으로 근무했던 류시열(76)씨가 지난 3일 남구 송암동 오케이자동차학원 옆 빈터를 가리키며 민간인 학살 의혹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정대하 기자 
 

조사위가 정호용·최세창씨 고발 건과 함께 전원위원회에 상정하기로 한 최웅 전 11공수여단장 등 군 관계자 9명의 고발 안건은 1980년 5월23일과 24일 주남마을(지원동)과 송암동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과 관련돼 있다. 최웅 전 여단장은 5월23일 주남마을 마이크로버스 총격 사건 생존 시민 2명을 즉결 처형한 혐의로 지역대장, 병사 등 5명과 함께 고발이 추진되고 있으며, 하루 뒤 송암동에서 있었던 민간인 3명을 즉결 사살한 혐의와 관련해서도 다른 군인 4명과 함께 고발 추진 대상자에 올랐다.

 

조사위는 20일 열리는 전원위원회에 이 안건들을 심의 안건으로 상정할 방침이다. 조사위 전원위원회는 상임위원 3명에 민주당 추천 비상임위원 3명과 국민의힘 추천 비상임위원 3명을 더해 모두 9명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 추천 비상임위원 3명은 지금까지의 활동 성향으로 미뤄 안건 처리를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조사위 내부의 관측이다. 조사위 핵심 관계자는 “전원위원회에서 합의가 되지 않으면, 안건 채택 표결 동의를 얻어 표결로 처리할 수 있다. 의결 정족수는 재적 인원 과반인 5명이다”라고 밝혔다.

 

조사위에 참여하고 있는 민병로 전남대 교수(5·18연구소장)는 이번 고발 추진과 관련해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특별법(제44조)에는 ‘조사위 조사 결과 범죄 사실이 있거나 범죄 혐의가 있다고 인정한 사실에 대해서는 검찰총장에게 고발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고 말했다.   < 정대하  김용희 기자 >

 

민주 “김문수, 정호용 영입했다 취소…또 쿠데타 벌일 작정인가”

 
 

국민의힘이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공수부대를 지휘하는 특전사령관이었던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을 김문수 대통령 후보의 상임고문으로 14일 저녁 위촉했다 논란이 되자 몇 시간 만에 급히 취소한 데 대해, 더불어민주당이 “광주학살 책임자 영입을 시도한 김 후보, 윤석열에 이어 또 쿠데타를 벌일 작정인가”라고 비판했다.

 

한민수 민주당 중앙선대위 대변인은 15일 서면브리핑을 통해 “5.18 민주화운동 45주년을 목전에 두고 광주학살 책임자를 선대위에 상임고문으로 영입하다니 김 후보는 제정신인가”라고 지적했다. 한 대변인은 “정호용이 누구인가. 신군부 핵심 5인 중 한 명 아닌가. 12.12 군사 반란 가담자이며 광주 학살을 지휘한 특전사령관이다. 또 전두환 정권에서 내무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을 지낸 군사 독재의 망령”이라며 “‘윤 어게인’도 모자라 ‘전 어게인’을 하겠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윤석열 내란세력도 모자라 전두환 반란군까지 끌어안아 내란세력 총사령부를 만들겠다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한 대변인은 “김문수가 곧 윤석열이고, 전두환”이라며 “김 후보는 정호용 상임고문 위촉 시도로 대한민국을 군사독재 시대로 되돌리려 했던 윤석열의 후계자임을 자백한 것”이라고 했다. 한 대변인은 이어 “12·3 내란을 이겨냈듯, 대한국민께서는 6월3일 투표의 힘으로 뻔뻔한 내란 잔당들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천준호 선대위 전략본부장도 이날 총괄본부장단 회의에서 “(김문수 후보가) 석동현뿐 아니라 12.12 군사쿠데타 주동자 정호용을 영입했다 뒤늦게 취소했다. 이틀 전 김 후보의 계엄 사과는 역시나 ‘윤석열식 개사과’였다”며 “국민의힘의 쿠데타 정당 디엔에이(DNA)를 감추지 못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천 본부장은 김 후보에게 묻는다며 “김문수의 최종 목표는 대선 아니라 윤석열 구하기, 국민의힘과 자유통일당 합당이 아닌가. 김 후보는 선거운동 다닐 때가 아니라, 당무우선권 발동해 윤석열 제명부터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 김규남  김채운 기자 >

 

김문수 선대위 ‘12·12 가담 5·18 진압’ 정호용, 고문 인선했다 취소

 
 
파행운영중인 국회정상화 대책을 논의하기위해 소집된 민자당 의원총회장에서 정호용 의원(오른쪽)과 허삼수 의원이 12.12사건관련자 기소문제에 대한 의원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1994.11.17 연합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가 14일 저녁 5·18 민주화운동 진압 작전을 지휘한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을 김문수 대통령 후보자를 자문할 상임고문으로 위촉했다가 논란이 되자 한밤에 번복하는 소동을 빚었다.

 

국민의힘은 이날 밤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의 상임고문 위촉을 취소했다”는 공지 문자를 기자들에게 보냈다. 앞서 국민의힘 중앙선대위는 이날 오후 6시께 제21대 대통령선거대책기구 추가 인선을 단행하면서 정 전 장관 등이 포함된 대선 후보 자문 및 보좌역 23명의 명단을 발표한 바 있는데, 몇 시간 만에 이를 취소한 것이다.

 

정 전 장관은 1979년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하고 이듬해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당시 특전사령관으로서 광주와 서울을 오가며 공수부대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에 가담한 혐의로 1997년 대법원에서 징역 7년의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김 후보는 지난 12일 채널에이 인터뷰에서 “계엄으로 인한 고통을 겪고 있는 국민들께 진심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는데, 과거 계엄 확대와 내란 주도자로 지목된 정 전 장관을 선대위에 영입한 것을 두고 “사과의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국민의힘은 전날 선대위에 윤석열 전 대통령의 변호인이자 40년 지기인 석동현 변호사를 시민사회특별위원회위원장으로 포함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또 선대위 클린선거본부 공동대응단장에 내란 기획자로 지목돼 구속재판 중인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변호인인 최기식 변호사를 임명하기도 했다.

 

당 지도부의 후보 강제 교체 시도에 반발해 강원도당 위원장직을 내려놓은 친한동훈계 박정하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석동현 변호사의 선대위 합류 기사를 공유하며 “이 거짓말은 진짜냐. (적절한 인사 영입인지) 그런 거 묻지 말고 똘똘 뭉쳐라?”라고 비판했다. 한 영남 중진 의원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싸워도 모자란 시간에 아직도 윤석열 타령을 하고 있다. 당을 보면 모두 이번 대선을 포기한 사람 같다”고 말했다. < 한겨레  서영지 기자 >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수십번, 수천번 되풀이한 증언의 무게는 역사 속에 남을 것”

 
이용수 할머니가 14일 낮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터 앞에서 열린 제1700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를 마친 뒤고 이옥선 할머니 사진 앞에 헌화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언니야 잘 갔제? 다들 이렇게 우리 응원하고 있는데 잘 될 거야. 젊은 사람들이 꼭 사과 받아낼 거라고 했어. 그러니까 우리 항상 봐주고 도와줘야 해. 알았제?”

 

14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시위 장소 한편에 마련된 이옥선 할머니의 추모 장소에서 이용수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이자 인권활동가로 활동했던 이옥선 할머니가 3일 전 세상을 떠나고 맞이한 수요시위는 이날로 1700회에 이르렀다. 1992년 1월8일 미야자와 기이치 전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된 주간집회는 32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추모 장소가 된 이곳에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할머니의 영면을 기원하는 꽃들이 쌓였다.

 

이날 집회는 이옥선 할머니를 추모하는 묵념으로 시작됐다. 지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일본정부의 사과는 단지 배상이 아니라 폭력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선언임을 이옥선 할머니를 통해 배웠다”며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수십번, 수천번 되풀이한 증언의 무게는 역사 속에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다음 대통령에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부탁하기도 했다. 이 할머니는 “할머니들은 점점 늙어 가고 있다. 다음에 대통령이 되는 분은 위안부 문제를 제일 먼저 해결해주시기를 간절히 부탁한다”고 말했다. 집회에 참석한 500여명의 시민들은 “일본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하라!”, “국회는 조속히 일본군 피해자 할머니 보호법을 개정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위안부 문제의 조속 해결을 촉구했다.

 

14일 낮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터 앞에서 열린 제1700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참가자들이 고 이옥선 할머니를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대통령 후보 중 유일하게 참석한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는 “5.18 민주화운동을 모욕하는 자들을 처벌하는 법이 있지 않나. 제가 대통령이 되면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를 모욕하는 자를 처벌하는 법을 만들겠다”며 “일본의 사죄도 반드시 받아낼 것”이라고 밝혔다.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은 “할머니들이 바라는 것은 돈이 아니라 일본의 사과와 그들이 잘못했다는 것을 법적으로 확인받는 것”이라며 “정치권이 해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반드시 해낼 것”이라 말했다.

 

한편 시위장소 건너편 인도에선 이날도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등 수요시위 반대단체가 집회를 열고 시위 내내 고성과 함께 할머니들을 향한 원색적 비난을 이어갔다. 발언 중에도 고성이 이어지자 권 후보는 “전쟁범죄 피해자들을 모욕하는 당신들은 양심을 가진 인간이 맞나”라고 외치기도 했다.

 

집회를 주최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는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극우세력을 저지하기 위해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위안부 피해자 보호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은 “국회는 위안부 피해자 보호법을 즉각 개정해 할머니들이 2차 가해로 고통받지 않게 해야 한다”며 “할머니들의 뜻을 이어받아 전쟁 없는 세상, 전시 성폭력이 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말했다.  < 정봉비  박찬희 기자 >

내란 종식 집중하다 대선 공약 개헌안 공식 발표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헌법 전문 수록 첫손에

오랜 지론 대통령 4년 연임제, 결선투표제 제시
'정권 돌격대' 전락 감사원, 국회 소속으로 이관

대통령 '묻지 마 거부권'과 계엄선포 권한 제한도
총리 국회 추천…검찰총장 임명 국회 동의 필수

검찰 영장 청구 독점 폐지, 수사권 근거 무력화
대신 공수처‧국수본 수사 역량 대폭 강화할 듯

"내년 지방선거 또는 2028년 총선 때 국민투표"
"4년 연임, 이번엔 적용 안 돼"…임기 단축도 일축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뒤 취재진과 만나 이날 발표한 개헌 관련 입장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5.18 [공동 취재] 연합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8일 대통령 4년 연임제와 국무총리 국회 추천, 검찰의 영장 청구권 독점 조항 폐지 등을 골자로 한 개헌 구상을 밝혔다. 개헌안을 이르면 내년 6월 지방선거나 늦어도 2028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에 맞춰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제안도 함께 내놨다.

 

그간 정치권과 시민사회 일각에서 이 후보가 개헌에 소극적이거나 논의를 회피한다는 비판을 가하기도 했으나 이 후보는 "개헌은 필요하지만 지금은 내란 종식에 집중해야 할 때"라며 '개헌 블랙홀'로 인해 전선이 흐트러지는 상황을 경계해왔다. 이제 고비를 어느 정도 넘기고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 접어든 만큼 대선 공약으로서 정리된 입장을 발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는 이날 페이스북에 <진짜 대한민국의 새로운 헌법을 준비합시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현행 우리 헌법은 1987년 우리 국민이 서슬 퍼런 군사독재에 맞서 직접 쟁취한 승리의 증표였다. 하지만 지난 12‧3 비상계엄으로 대한민국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는 철저히 유린됐다"면서 "위대한 국민들이 오만한 권력자를 단죄했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우리 헌법과 민주주의의 취약점은 더 막중한 과제를 남겼다"고 전했다.

 

이어 "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제 정당은 개헌의 일부 과제에 합의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헌법에 수록하는 것과 계엄의 요건을 강화하는 데 사회적 합의를 이룬 것"이라며 "하지만 4년 중임제와 책임총리제와 같은 주요 의제는 합의에 닿으려 했으나 이뤄내지 못했고, 국민투표법 개정이라는 절차적 한계까지 맞닥뜨리며 개헌의 발걸음이 멈칫거렸다. 멈춰진 걸음을 다시 시작하자"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시대 흐름에 맞는 새로운 시스템과 더 촘촘한 민주주의 안전망으로서의 헌법을 구축할 때다. 역사와 가치가 바로 서고, 다양한 기본권이 보장되며, 지방자치가 강화되고, 대통령의 권한이 적절히 분산된 진짜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이 후보는 가장 먼저 5‧18 광주 민주화운동 정신의 헌법 전문(前文) 수록을 꼽았다. 그는 "우리 사회는 이미 이에 합의했다. 민주주의의 산 역사를 헌법에 명시함으로써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한층 더 굳건하게 지켜나가자"며 "또 부마항쟁과 6‧10항쟁, 촛불 혁명과 빛의 혁명으로 이어진 국민 승리의 역사가 헌법에 수록될 수 있도록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자"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5주년 기념식에서 유가족과 인사하고 있다. 2025.5.18. 연합

 

다음으로 오랜 지론인 대통령 4년 연임제와 함께 결선투표제 도입을 제시했다. 이 후보는 "대통령의 책임을 강화하고 권한은 분산하자. 대통령 4년 연임제 도입으로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가 가능해지면 그 책임성 또한 강화될 것"이라며 "아울러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으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해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해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집권 이후 '정권 돌격대'로 전락한 감사원의 헌법적 개혁 방안에도 중점을 뒀다. 이 후보는 "감사원은 행정기관의 사무와 공무원의 직무를 감찰하는 엄정한 감시자로서 본연의 업무에 충실해야 한다. 더 이상 '감사원이 대통령을 지원하는 기관'이라는 의혹과 우려를 낳아서는 안 된다"면서 "국회 소속으로 이관해 독립성을 부여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국회의 결산 및 회계감사 기능도 강화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윤석열이 국회 무력화 수단으로 악용해온 법률안 거부권(재의요구권)의 제한도 주요하게 거론했다. 이 후보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거슬러 '묻지 마' 식으로 남발돼 온 대통령의 거부권을 제한해야 한다. 본인과 직계가족의 부정부패, 범죄와 관련된 법안이라면 원천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면서 "이를 지키지 않으면 국회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해 삼권분립의 가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했다.

 

비상명령 및 계엄 선포에 대한 국회 통제 권한을 강화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대통령이 비상명령이나 계엄을 선포하려면 사전에 국회에 통보하고 승인을 얻도록 하며, 긴급한 경우에도 24시간 내 국회 승인을 얻지 못하면 자동으로 효력을 상실하게 해서 '아닌 밤중에 비상계엄'이 다시는 일어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무총리 임명과 관련해서는 국회 추천을 받아야만 총리를 임명할 수 있게 하자고 했다. 대통령이 총리의 권한을 존중하도록 해 총리로서 맡은 바 직무를 더 든든히 수행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대통령이 권력기관을 사유화하지 못하도록 공수처, 검찰청, 경찰청과 같이 중립성이 필수적인 수사기관과 방송통신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같은 중립적 기관장을 임명할 때 반드시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자는 점도 제안했다.

 

심우정 검찰총장이 9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전날 심 총장 딸의 외교부 특혜 채용 의혹과 관련한 신고를 접수하고 조사에 나섰다. 2025.4.9. 연합

 

특히 검찰의 영장 청구권 독점 규정을 폐지하자고 해 검찰 개혁 의지를 분명히 했다. 현행 헌법은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제12조 제3항) "모든 국민은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주거에 대한 압수나 수색을 할 때에는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제16조)고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검사의 영장 신청권'을 헌법에 명시한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이를 근거로 검찰은 검사의 수사권이 천부의 권리인 듯 헌법상 권한이라고 강변하며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 검찰 수사권 축소 또는 박탈(소위 검수완박) 시도에 극렬 저항해왔다. 

 

이 후보는 헌법에서 이들 조항을 삭제하거나 수정해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고 검찰을 공소청으로 전환하는 한편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의 수사 역량을 대폭 강화하는 방안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 후보는 "적법한 권한을 가진 다른 기관이 영장을 청구할 수 있게 함으로써 수사기관끼리 견제가 가능해야 한다"며 "영장 청구부터 누구는 예외가 되는 현실, 불의한 폐해를 근절해야 한다"고 지적해 그동안 영장 청구권 독점으로 무수한 농간을 벌여온 정치검찰에 직격탄을 날렸다.

 

권력 구조 개편과 함께 국민 기본권 및 지방자치권 강화에 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이 후보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안전권, 생명권, 정보 기본권 등 기본권 강화와 확대를 위한 논의도 시작해야 한다"면서 "주민의 일상을 보살피고 삶의 질을 높이는 정부 역할이 나날이 중요해지고 있다. 지방자치와 지역분권 강화는 필수적이다. 최대한의 지방자치권을 보장하자"고 했다.

 

나아가 "이를 위해 대통령과 총리, 관계 국무위원, 자치단체장 등이 모두 참여하는 헌법기관을 신설해야 한다. 기능은 지방자치와 균형발전 정책을 심의하고 위상은 국무회의와 동등하게 해야 한다"며 "법령에 위배 되지 않은 한, 자치법규 제정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해 지방자치의 힘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했다.

 

개헌 로드맵도 제시했다. 이 후보는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자.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말씀드린 사항을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새로운 개헌을 완성하자"면서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에서, 늦어진다 해도 2028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국민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개헌 논의는 '진짜 대한민국'을 위한 중요한 한 축이다. 논의가 국민의 뜻에 따라 잘 이뤄질 수 있도록, 그 뜻을 바탕으로 마침내 개헌이 실현되도록, 저 이재명, 맡은 바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새롭게 열리는 제7공화국, 위대한 우리 국민과 함께 진짜 대한민국을 열겠다"고 다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뒤 취재진과 만나 이날 발표한 개헌 관련 입장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5.18 [공동 취재] 연합

 

이 후보는 이날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개헌 구상에 관한 보충 설명을 했다. 개헌 시 4년 연임이 이번에 당선되는 대통령에게 적용되는지 묻자 그는 "우리 헌법상 개헌은 재임 당시 대통령에게 적용이 없다고 명시돼 있다"고 답했다.

 

'대통령 임기 단축 개헌'을 두고는 "대통령 직위를 개인적 영예나 사익을 위한 권력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발상"이라며 "국민을 위한 역사적 책임·의무라고 생각하면 그리 가볍게 말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국가 최종 책임자의 임기 문제는 신중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면서 "개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 안정과 민생 회복으로, 일과 국민 중심으로 보면 다음 지방선거에 맞춰 개헌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개헌에 대한 입장 표명이 늦었다는 취지의 질문에는 "1987년 체제 헌법의 효용이 다해 개헌을 통해 제7공화국을 열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도 많고 역사적 당위성도 있었지만, 여러 상황과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지금까지 해야 할 일을 못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지난 4월 초 우원식 국회의장이 이번 조기 대선에서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하자고 제안했다가 철회한 일을 언급하며 "이번에도 합의 가능하고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대선과 동시에 하고 싶었지만 시간상 불가능했다"면서 "국민투표법을 빠르게 개정해 개헌하자고 했지만 국민의힘 측에서 전혀 반응이 없었다"고 했다.

 

이 후보는 "이제는 각 후보가 개헌안을 공약으로 내고 누군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공약대로 국민적 논의를 시작해 국회에서 가급적 신속하게 개헌을 준비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개헌을 위해서는 구(舊)여권의 협조, 더 크게 보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헌은 일방적으로 할 수는 없고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순차적으로 개헌해 나가야 한다"면서 "무리하게 전면 개헌을 너무 잘하려고 하다가 아무것도 못 하기보다는 합의되는 것부터 하자"고 강조했다.

 

이 후보의 개헌 공약을 두고 전직 국회의원들 모임인 대한민국헌정회(회장 정대철)는 "적극 지지하고 환영한다"고 곧바로 호응했다. 종전부터 개헌의 당위성을 피력해왔던 헌정회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그동안 헌정회가 추진해 온 분권형 권력구조 개헌안과 맥을 같이하는 방안으로 높이 평가한다"면서 "특히 헌정회가 지난 16일 각 당 대선 후보들에게 '오는 21일까지 분권형 권력구조 개헌안에 대한 공식입장을 밝혀달라'는 공문을 보냈는데 이 후보가 제일 먼저 공개적으로 화답한 데 대해 감사를 드린다"고 전했다.

 

아울러 "이 후보의 개헌안 입장 발표는 유력 후보의 공개적 제안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지난해 12·3 계엄 사태로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국민 통합이 필요한 시대정신과도 부합하는 내용"이라고 호평하며 "각 당 후보가 국민을 상대로 공식 공약 발표를 통해 개헌안 입장을 밝혀야 대선 이후에도 책임감을 느끼고 개헌 추진을 해나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 민들레 김호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