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석방된 Amritpal Sigh Aujla


교도소측이 실수로 마약과 절도 등 범죄혐의자를 석방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져 경찰이 공개수배하고 검거에 나섰다.
경찰17밀턴 교도소가 실수로 석방한 20죄수를 공개 수배, 시민들이 발견할 경우 즉시 신고해 줄 것을 당부했다.
경찰은 이날 오후 11시쯤 메이플허스트 교도소에서 죄수를 실수로 석방한 사실을 통보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가 언제 석방되었는지는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
경찰은 보도자료를 통해 석방된 죄수가 28세 아미리트팔 싱 오즐라 (Amritpal Singh Aujla)라며 그가 걸어서 교도소를 떠나는 모습이 마지막으로 포착되었다고 밝혔다.  
오즐라는 5피트, 10인치의 키 ( 177센치)에 약 170파운드 ( 77킬로그램) 체중의 날렵한 체격을 지녔다. 그는 어깨 길이의 검은 머리칼과 검은 수염을 기르고 있으며, 석방 당시 오렌지색 터번과 파란색 토미 힐피거 운동복을 입고 검은색 배낭을 메고 있었다고 경찰이 밝혔다. 아울러 오즐라가 모두 9가지 혐의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 훔친 물건 소지, 보호관찰 명령 위반, 세 건의 마약(코카인, 헤로인, 필로폰) 소지 혐의, 암거래 목적의 물건 두 가지 소지 혐의 등이다.
경찰은 교도소측의 실수가 어떻게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으나 오즐라는 18일에 비디오 법정 출두를 앞두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날 법무부의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내부 조사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한편 경찰은 수배자를 발견하면 접근하지 말고 911에 신고할 것을 당부했다.


뉴욕의 '복권 변호사', 당첨금 투자 사기로 체포

        

미국 검찰에 덜미를 잡힌 뉴욕의 '복권 변호사

 

미국의 복권 당첨자들을 꾀어 1200억원대 사기 행각을 벌인 뉴욕의 한 변호사가 검찰에 덜미를 잡혔다.

미국 뉴욕 연방검찰은 변호사 제이슨 커런드를 금융 사기와 돈세탁 혐의로 기소했다고 19NBC방송 등이 보도했다.

검찰에 따르면 커런드는 복권 전문 변호사를 자처하며 파워볼과 메가밀리언 등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3명에게 접근해 고수익 보장을 약속하며 1700만달러(1260억원) 투자 사기를 벌였다.

피해자들은 각각 15억달러(17670억원), 24500만달러(2866억원), 15천만달러(1767억원) 복권 대박을 터트린 사람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커런드는 조직 폭력배와 연계된 사업가, 전직 증권사 직원 등 3명과 공모해 자신들이 운영하는 사업체에 복권 당첨금을 투자하도록 했다.

이들은 투자금 가운데 8천만달러(942억원)를 빼돌려 고급 요트와 제트 비행기, 포르쉐, 골프 클럽 회원권을 사들였고, 펜디 등 명품 매장에서 돈을 펑펑 쓰며 호화 생활을 즐겼다고 검찰은 전했다.

커런드를 고용한 로펌은 "커런드와의 파트너 계약을 끝내기 위한 즉각적인 조치에 들어갔다"며 검찰의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8년만에 또고위공무원, 군 장성 등 체포

UN·프랑스 등 국제사회, 쿠데타 강력 비난

 

아프리카 말리의 수도 바마코에서 18일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들이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행진하고 있다. 바마코/EPA 연합뉴스

         

아프리카 북서부 말리에서 군사 쿠데타가 발생해, 대통령과 총리가 반란 군인들에 의해 구금됐다.

<BBC> 방송과 <알자지라> 등은 이브라힘 부바카르 케이타 말리 대통령과 부부 시세 총리가 18일 수도 바마코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들에 의해 구금됐다고 보도했다.

군인들은 이날 아침 바마코 외곽에서 15떨어진 카티 군기지에서 쿠데타를 일으켰다. 반란군은 공중에 총을 쏘면서 케이타 대통령 사저를 포위했고, 고위 공무원들과 군 장성들을 전격 체포했다. 시세 총리가 성명을 내어 반란 군인들에게 진정하고 대화에 응할 것을 촉구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군인들의 요구사항이 무엇인지는 아직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번 쿠데타가 군인들의 급여 문제에서 촉발됐다고 한다. 쿠데타에 가담한 군인들의 수는 분명하지 않다.

케이타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면서 시위를 벌여온 시민들은 이날 군사 쿠데타를 지지해 바마코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케이타 대통령은 2018년 재선에 성공했지만 부패와 경제 악화, 안보 불안 등으로 인기가 낮다.

말리에서는 지난 2012년에도 군사 쿠데타가 발생했고, 카티 군기지는 당시에도 근거지였다. 당시 쿠데타로 말리에서 수년 동안 혼란이 이어졌고 권력 공백을 틈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북부 지역을 장악했다. 프랑스의 군사 작전으로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들이 축출됐으나 이들은 다시 결집해 케이타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세력을 확대했다.

유엔과 과거 식민종주국인 프랑스, 아프리카 역내기구들은 일제히 군사 쿠데타를 강하게 비판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말리 지도자들의 무조건적인 석방헌법 질서의 즉각적인 회복을 요구했다.

지역 15개국 협의체인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는 군인들에게 즉각 카티 군기지로 돌아갈 것을 촉구했다.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는 지난 6월부터 격화된 말리 정국 혼란을 중재해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의 중재 노력을 지지했다고 엘리제궁이 밝혔다. 프랑스 외무부도 이번 군사 쿠테타를 가장 강도높은 용어로비난한다며 군인들에게 막사로 복귀할 것을 촉구했다.

피터 팜 미국 국무부 사헬지역 특사는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미국은 거리에서든 보안군에 의해서든 모든 비헌법적 정부 교체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 최현준 기자 >

쿠데타 구금된 말리 대통령, 방송 등장해 사임한다

아프리카 말리의 이브라힘 부바카르 케이타 대통령이 18 현지 국영방송 '오아르티엠'(ORTM)에 출연해 사임을 발표하고 있다. 자막에는 그의 이름과 함께 프랑스어로 퇴임하는 대통령이라고 쓰여 있다.

군사 쿠데타로 구금된 아프리카 말리의 이브라힘 부바카르 케이타 대통령이 18일 사임을 발표했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케이타 대통령은 이날 구금 소식이 전해진 지 몇시간 뒤 말리 국영방송 <오아르티엠>(ORTM)에 출연해 자신의 사임과 함께 의회 해산을 선언했다.

마스크를 쓰고 하얀 옷을 입은 채 등장한 케이타 대통령은 내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피가 흐르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사임이 즉각 유효하다고 말했으며 방송 화면 하단에는 퇴임하는 대통령이라는 자막이 떴다. 그의 사임 발표는 410초 동안 방송됐다.

앞서 이날 아침 군인들이 수도 바마코에서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케이타 대통령과 부부 시세 총리를 구금됐다.

군인들은 바마코 외곽에서 15떨어진 카티 군기지에서 쿠데타를 일으켰다. 반란군은 공중에 총을 쏘면서 케이타 대통령 사저를 포위했고, 고위 공무원들과 군 장성들을 전격 체포했다. 시세 총리가 성명을 내어 반란 군인들에게 진정하고 대화에 응할 것을 촉구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군인들의 요구사항이 무엇인지는 아직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번 쿠데타가 군인들의 급여 문제에서 촉발됐다고 한다. 쿠데타에 가담한 군인들의 수는 분명하지 않다.

케이타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면서 시위를 벌여온 시민들은 이날 군사 쿠데타를 지지해 바마코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케이타 대통령은 2018년 재선에 성공했지만 부패와 경제 악화, 안보 불안 등으로 인기가 낮다.

말리에서는 지난 2012년에도 군사 쿠데타가 발생했고, 카티 군기지는 당시에도 근거지였다. 당시 쿠데타로 말리에서 수년 동안 혼란이 이어졌고 권력 공백을 틈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북부 지역을 장악했다. 프랑스의 군사 작전으로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들이 축출됐으나 이들은 다시 결집해 케이타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세력을 확대했다.

유엔과 과거 식민종주국인 프랑스, 아프리카 역내기구들은 일제히 군사 쿠데타를 강하게 비판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말리 지도자들의 무조건적인 석방헌법 질서의 즉각적인 회복을 요구했다.

지역 15개국 협의체인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는 군인들에게 즉각 카티 군기지로 돌아갈 것을 촉구했다.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는 지난 6월부터 격화된 말리 정국 혼란을 중재해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의 중재 노력을 지지했다고 엘리제궁이 밝혔다. 프랑스 외무부도 이번 군사 쿠테타를 가장 강도높은 용어로비난한다며 군인들에게 막사로 복귀할 것을 촉구했다.

피터 팜 미국 국무부 사헬지역 특사는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미국은 거리에서든 보안군에 의해서든 모든 비헌법적 정부 교체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아프리카 북서부 말리 수도 바마코에선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케이타 대통령과 부부 시세 총리를 구금했다. < 최현준 기자 >

 


쁘라윳 총리 왕실 존중하라며 시위 대응 주문 뒤

왕실개혁 요구 변호사 등 6폭력선동혐의 체포

 

타이의 반정부·민주화 집회를 주도했다가 체포된 활동가 타니 사솜이 20 방콕 경찰서로 들어서며 시위대의 3대 핵심 요구사항을 뜻하는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방콕/로이터 연합뉴스

              

타이의 반정부 시위 사상 처음으로 왕실 비판에 나섰던 활동가들이 무더기 체포되면서, 타이의 정국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타이 경찰은 19일 반정부 활동가인 변호사 아논 남파(36)를 폭력선동 등의 혐의로 체포했다. 아논 외에도 지난달부터 대규모 반정부, 민주화 요구 집회를 주도해온 활동가 5명에게도 체포영장이 발부됐다고 <방콕 포스트> 등이 보도했다.

아논은 수도 방콕과 치앙마이 등지에서 지난달부터 한달 넘게 진행된 반정부 집회에서 타이 사회의 금기 사항인 왕실 비판을 하며 개혁을 요구한 바 있다. 그는 이달 초에 열린 한 집회에서 입헌군주제를 타도하려는 것이 아니라 개혁을 원한다며 왕실 재산의 투명한 관리 등을 요구했다. 2016년 왕위에 오른 마하 와치랄롱꼰(68·라마 10)2017왕실 자산구조법제정을 통해 그동안 타이 정부가 형식적으로나마 관리해 온 왕실 자산을 국왕이 직접 관할·처분할 수 있도록 한 것을 문제로 지적하며, 입헌군주제에서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타이에선 왕실에 대한 모욕을 불경죄로 보기에 최고 15년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최근 몇년 동안 불경죄 적용이 줄어들긴 했지만, 최고 7년형을 받을 수 있는 폭력선동죄 등 다른 법적 수단을 동원해 반정부 인사들을 겨냥해왔다.

이날 체포는 쁘라윳 짠오차 총리가 국가안보위원회(NSC) 차원의 특별 안보당국 회의에서 학생 주도 반정부 집회에 대비할 것을 주문한 이후 이뤄졌다. 특히 다음달 군 정기인사를 통해 육군참모총장 등 군 수뇌부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고위 장성들이 이날 회의에 대거 참석해, 시위 대응에 군부를 동원해 강경 대응에 나설 수도 있다는 뜻을 시사했다.

쁘라윳 총리는 이 자리에서 반정부 집회를 반대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집회 주최 쪽의 많은 요구는 실행하기 불가능한 것들이라며 왕실을 존중하라고 촉구했다고 <방콕 포스트>가 전했다.

한편, 타이 방콕과 치앙마이 등에선 최근 한 달 넘게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층을 중심으로 반정부·민주화 집회가 이어져 왔다. 특히 지난 16일 방콕의 민주기념탑 인근에서 1만명(경찰 추산, 집회 주최 쪽 추산 2~3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민주주의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타이 정부가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지난 326일 비상사태를 선포한 이후 최대 규모다. 시위 참가자들은 이날 시위대의 상징인 세 손가락을 하늘로 치켜들고 민주화 활동가 탄압 중지 군부 중심 의회 해산 새 헌법 제정을 위한 기구 구성 3가지 핵심 사항을 요구하며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 정의길 기자 >

왕국 타이 ‘왕실개혁 10항 요구‘에 충격… “루비콘강 건넜다”

푸미폰왕 사망 4년 만에 왕실개혁 요구 분출

국왕 고소 가능하게, 왕 쿠데타 지지말아야

     

지난 16일 저녁 방콕 거리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에서 한 시민이 정부와 왕실은 국민을 존중해야 한다. 우리는 당신들보다 위대하다고 쓴 팻말을 들고 있다. 방콕/EPA 연합뉴스

           

부처의 현신이라는 평가까지 받던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라마 9)이 사망한 지 4년 만에 타이(태국)에서 왕실개혁 요구가 터져나왔다. 푸미폰 왕의 아들로 2016년 취임한 마하 와찌랄롱꼰 왕(68·라마 10)이 여성 편력과 사치스러운 생활 등을 일삼아 왕실에 대한 불만이 누적된 탓이다. 왕실에 대한 비판을 법률로 금지할 정도로 왕실의 권위와 힘이 막강한 타이 사회에서 왕실 비판이 제기되며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타이 금기인 왕실의 정치·재정·관습 등 비판

지난 10일 오후 타이의 수도 방콕의 명문대 탐마삿대에서 대학생과 고교생 3~4천명이 모인 가운데 집회가 열렸다. 한달 여 전부터 계속된 반정부 집회의 일환이었다. 정부 실정을 비판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를 이어가던 집회 말미, 타이 사회에 큰 충격을 던지는 주장이 제기됐다.

탐마삿 연합전선이라는 이름으로 왕실 개혁을 촉구하는 10가지 요구 사항이 발표된 것이다.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왕실을 전면적으로 공개 비판했다는 점에서 파장이 컸다. 국제위기그룹(ICG)의 매튜 윌러 선임 연구원은 이를 두고 “(시위가) 루비콘 강을 건넜다고 표현했다. 타이 진보 매체 <쁘라차타이>(자유민중)에 실린 시위대의 10가지 요구 사항은 다음과 같다.

왕을 고소하지 못하도록 한 헌법 6를 폐지하고 왕의 잘못을 국회가 조사할 수 있게 한다.

왕을 비판하면 3~15년형에 처하는 형법 112를 폐지해 군주제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고 기소된 이들을 사면한다.

2018년 개정된 왕실재산법을 폐지해, 왕실 재산과 왕 개인 재산을 분리한다.

국가의 경제 여건에 맞춰 왕실에 대한 국비 배정액을 삭감한다.

왕실 사무국을 해체한다. 왕실 보안사령부를 이전하고, 추밀원은 폐지한다.

왕실 자선기금에 의한 기부와 수령을 중단하고, 모든 왕실 재산을 감사한다.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왕실의 활동을 중단한다.

군주제를 미화하는 홍보와 교육을 중단한다.

군주제를 비판했거나 왕실과 관련돼 사망한 사건을 조사한다.

왕은 더이상 쿠데타를 지지하지 않는다.

현실 정치에 관여하는 왕의 정치적 행위와 불투명한 재산 관리,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특권까지, 타이 왕실의 모순을 하나하나 열거하면서 헌법과 형법, 왕실재산법은 물론이고 왕실 관련 행정 기구와 관행까지 모두 바꾸길 요구했다. 사실상 타이 왕의 힘을 상징적인 수준으로 되돌리라는 요구였다.

이들은 왕이 정치 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국민들이 알아야 한다이것이 (타이의) 정치 문제의 근원이 돼 왔다고 주장했다. 타이 왕이 쿠데타를 합법적으로 승인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국가 재산을 개인 소유로 이관해 왕실의 이익만 추구하는 것을 비판했다. 또 헌법을 고쳐 왕이 섭정을 두지 않고도 국외에 머물 수 있도록 한 것도 국가원수로서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쿠데타 승인을 제외하고 모두 현재 왕인 와찌랄롱꼰 왕이 왕권 강화의 일환으로 취한 것들이다.

이들은 주장의 민감성을 의식해 군주제를 폐지하자는 게 아니라, 개혁하자는 것이라고 한발 물러섰지만, 기득권층과 왕당파들은 사법 당국의 수사를 촉구하는 등 강력하게 반발했다.

지난해 51일 타이 왕실에서 열린 마하 와찌랄롱꼰 왕(맨 오른쪽)과 수티다 왕비의 결혼식에서 국왕이 왕비의 이마에 꽃잎을 얹어주고 있다. 방콕/로이터 연합뉴스

권위 높인 푸미폰아들 와찌랄롱꼰은 각종 스캔들

푸미폰 왕은 19살 때인 1946년 왕에 취임해 2016년 사망할 때까지 70년간 타이 왕으로 재임하며, 능수능란한 정치력으로 왕실의 권위를 높였다. 그가 왕에 취임하기 14년 전인 1932년 타이는 절대왕정이 무너지고 입헌군주제로 전환돼 혼란이 이어졌지만, 푸미폰은 재임중 이뤄진 19차례 쿠데타를 때로는 승인하고, 때로는 거부하면서 왕실의 정치력을 높였다. 또 직접 농촌 마을을 돌면서 농촌 개혁을 주도해 국민의 존경을 얻었다.

푸미폰 왕은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절제된 사생활로 왕실에 대한 불필요한 공격은 최소화시켰다. 반면 그의 아들로 201612월 왕위에 오른 와찌랄롱꼰 왕은 복잡한 사생활과 사치스러운 행보, 외국 생활 등으로 왕실의 권위를 깎아먹었다.

와찌랄롱꼰 왕은 정식 이혼만 3번 했고, 후궁을 두기도 했다. 셋째 부인이 반라 상태로 왕의 애완견 생일 파티에서 참가한 영상이 인터넷에 노출되는가 하면, 와찌랄롱꼰 왕이 독일에서 정체 불명의 여성과 쇼핑을 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이 나돌기도 했다. 과거였으면 알려지지 않았거나 뜬소문 정도로 그쳤을 사건이 대중에게 노출됐고, 타이 왕실의 권위는 낮아졌다.

특히 지난 3월 와찌랄롱꼰 왕이 코로나19를 피해 여성 20여명을 데리고 독일의 한 호텔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이 독일 언론 <빌트>에 보도되면서 파문이 일었다. 당시 타이 온라인에는 왜 우리에게 국왕이 필요한가’(#why do we need a king)라는 해시태그 달기 운동이 전개돼 100만번 이상 공유됐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만들어진 군주제 반대 그룹에 수십만명이 가입하기도 했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왕위에 오른 그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벌인 행동도 반발을 불렀다. 국왕의 일시적인 부재시 섭정자를 지명하지 않아도 되는 규정을 헌법에 추가해, 수시로 독일 등 외국에 머물렀고, 2017년에는 왕실 자산구조법제정을 통해 그동안 타이 정부가 형식적으로나마 관리해 온 왕실 자산을 국왕이 직접 관할하고 처분할 수 있도록 했다. 타이 왕실 재산이 구체적으로 공개된 적은 없지만, 미국 경제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2018300억달러(334800억원)로 추산했다.

타이 왕실과 정부 지지자들이 16일 방콕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에 맞서 마하 와치랄롱꼰 왕(왼쪽)과 수티다 왕비(오른쪽)의 초상을 들고 서 있다. 방콕/EPA 연합뉴스

당국도 당황1976년 탐마삿대 학살 기억 소환

왕실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에 타이 당국도 당황하고 있다. 비판을 방치하면 비판 여론이 더욱 높아질 수 있고, 강하게 억압할 경우 반발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가디언>왕실에 대한 이런 공개적인 비판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타이 정부를 곤경에 빠뜨렸다. 전문가들은 왕실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면 권력을 유지하는 현 체제가 훼손되고, 학생들을 엄중히 단속하면 더 큰 시위가 촉발돼, 군주제에 대한 반발이 커질 수 있다고 전했다.

타이 사회의 어두운 기억인 1976탐마삿대 학살도 다시 소환되고 있다. 그해 타이 경찰과 군인들은 왕실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탐마삿대 학생들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타이 정부는 46명이 숨졌다고 공식 발표했지만, 비공식적으로 사망자가 100명 이상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당시 타이에선 1973년 민중봉기로 사퇴한 타놈 키티카촌 전 총리의 복귀 문제를 두고 정국의 혼란이 계속되던 시기였다.

시위대도 조심스러워 하는 모양새다. 지난달 시작된 이래 최대 규모로 열린 16일 집회에서 시위대는 왕실에 대해 추상적으로 비판하는 데 그쳤다. 민주진영 교수와 학자 100여명이 학생들의 왕실 개혁 요구가 정당하다고 옹호하고 나섰지만, 왕실 문제를 거론함으로써 공연히 정부 당국에 탄압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날 왕실 지지자들과 정부 지지자들도 왕과 왕비의 사진을 들고 엄호 시위에 나섰다. < 최현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