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서 COVID19 백신 노바백스 임상시험 3상에 참가
안희경 (생물학 박사, 영국 노리치 세인스버리연구소)
영국 노리치에서 식물과 미생물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안희경(33) 박사는 지난해 11월 영국에서 진행된 미국 노바백스의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3상)에 자원했다. 한국 정부는 현재 노바백스와 백신 구매 협상을 하고 있다. 전례 없이 짧은 기간에 개발 중인 백신에 대한 기대와 걱정 속에 안전성 확보를 위한 자원자들의 노력을 들어봤다. 19일 기준 영국 하루 신규 확진자는 3만3355명, 누적 사망자는 9만1470명이다.
타국살이는 언제나 고달픈 일이라지만, 2020년 영국에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코로나19 확산세를 잠재우지 못한 영국에서는 무려 세 번이나 전국 봉쇄령이 내려졌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1월 현재 영국의 코로나19 확진자는 매일 4~5만명, 사망자도 매일 천여명이 발생한다. 낙후한 공공체계, 한발 늦은 추적 시스템, 그리고 초기 진단검사 수 부족이 맞물려 현재 영국 상황을 만들어냈다.
근무하는 연구소가 언제 또다시 닫힐 지 알 수 없어서,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으로 출근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임상시험 참가자 모집’이라는 공고를 보았다. 같은 연구단지에 있는 임상시험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이었다. 미국에 본사가 있는 노바백스(Novavax)의 백신으로 진행되는 임상시험이었는데, 미력하나마 코로나19 상황이 개선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지원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외피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통해 세포에 침투한다. 노바백스의 백신(NVX-CoV2373)은 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이용해 만들었다. 특히 스파이크 단백질이 여러 개가 한 데 모여 별 모양의 작은 나노입자가 되는데, 이런 형태는 인체 내에서 항체 생성율을 높인다. 그리고 이 항체가 실제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항하게 된다. 여기에 함께 접종되는 식물 추출물은 면역 반응을 촉진해서 항체 생성을 더욱 증폭한다. 단백질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안정적이고, 냉장보관이 가능하며 유통기간이 길다.
영국에서 실시하는 백신 임상시험은 1만5천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3상 임상시험으로, 이미 1상, 2상 시험을 통해 검증된 안전성과 유효성을 최종 확인하는 단계다. 내가 참여한 임상시험의 경우 65살 이상 참가자가 25% 이상이다. 당뇨, 고혈압 등의 질환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참여한다. 다양한 인구의 백신 반응을 확인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3주 간격으로 두 번 접종이 이루어지고, 그 후 1년간 추적 검사가 이루어진다.
백신 임상시험에 참여한다 했을 때 많은 이들이 임상시험 참가를 독려해 주었지만, 부작용을 걱정하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임상 3상을 실시하기 전, 1·2상 임상 시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100명 남짓이었다. 부작용이 적었다고는 하나, 미처 발견되지 않은 부작용이 임상 3상 진행 중에 생길 수 있었다. 두려움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백신은 임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그 안전성과 효과를 입증해야 하며, 그 데이터는 임상시험에 참가하는 이들로부터 나온다. 이들이 없이는 백신의 효과를 증명할 수 없다. 임상시험 참가에 대한 금전적인 지원이 없어도, 그와 상관없이 기꺼이 참여할 수 있었던 이유다.
무엇보다 임상 3상시험은 참가자의 다양성이 중요하다.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인종, 그리고 다양한 생활패턴을 가진 이들이 두루 참가할수록 백신의 안정성과 효율성에 대한 결과가 다양한 인원을 대표하는 것이 된다.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처럼 전세계 인구에게 접종될 수도 있는 백신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노바백스 코로나19 백신의 1·2상 시험 참가자는 총 131명. 그 중 아시안과 흑인은 각각 17명과 2명이었다. 임상시험에서의 편향된 인구 구성 때문에 혹시라도 어떤 부작용을 놓칠지 모른다는 우려 역시 임상시험장으로 날 이끌었다. 나의 가족이 접종 받게 될지도 모를 백신인데, 그 안전성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언제라도 참여할 것이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 소속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쿼드럼연구소 진료실에 들어가니 동년배로 보이는 의사가 앉아 있다. 함께 임상시험 동의서를 한장 한장 확인했다. 동의서에 포함된 내용 중 어느 하나라도 불편하다면 바로 임상시험 동의를 철회할 수 있다. 동의를 한 후에는 기본적인 문진이 이어졌다. 이 과정이 끝나고 연구간호사의 진료실에서 보다 자세한 검진을 받은 후 접종이 이루어진다.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에 자원한 안희경 박사에게 노바백스에서 제공한 코로나19 진단키트와 임상시험 자원자 카드.
접종은 보다 넓은 처치실에서 이루어졌다. 참가자 중 절반은 백신을, 그리고 남은 절반은 플라시보(가짜 약)인 소금물을 접종 받는다. 하지만 임상시험은 이중맹검(주관적 편향을 막기 위해 시험자와 피험자 모두 접종 내용을 모르게 하는 것)으로 진행되어서 제조실 외에는 접종하는 이도, 접종 받는 이도 무엇을 접종하는지 알 수 없다.
다들 무엇을 접종 받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본인의 참여로 조금이라도 빨리 일상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진료실 분위기는 활기차다. 처치실에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의료진도 참가자들도 즐거운 마음으로 가벼운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 보면 접종 후 대기 시간 30분은 금새 지나간다. 두 차례 접종을 받으면서 발열, 오한, 혹은 접종 부위가 부어 오르는 증상을 경험하지 않았다. 대기 시간 30분이 지나고 나면 일상 생활로 복귀하면 된다. 접종 후에는 몇 달 간격으로 항체 생성율을 검사하고 코로나19 감염 여부도 확인한다. 이렇게 1년간 백신의 안전성, 유효성, 부작용 등에 대한 추적 검사가 진행된다.
백신트래커 자료에 따르면, 현재 임상 3상시험이 진행 중인 백신은 20종류다. 보통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승인이 되는 데 10년이 걸렸던 것을 생각하면, 코로나19가 발견되고 1년만에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이렇게 우리가 접종 가능한 백신을 얻을 수 있었던 데에는, 백신 물질을 개발한 과학자들, 임상시험을 준비한 연구진과 의료진, 임상시험에 기꺼이 참가하기로 자원한 이들이 있다.
백신 하나의 효과를 입증하는 데만 수만명이 참여한다. 이런 백신이 20종류니, 못해도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뿐일까. 임상시험을 진행한 후에는 국가별로 승인심사가 진행되고, 그 다음에는 실제 접종이 이뤄져야 한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영국에서는 접종 전문인력만 8만명, 보조인력까지 하면 십수만명이 매일 바이러스와 싸워 나가고 있다.
내가 1년간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에 참여한 결과는 아마도 몇 달 후 논문에 나오는 그래프의 점 몇 개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모인 수만개의 점이 인류가 접종 받을 수 있는 또다른 안전한 백신을 증명할 수 있다면,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된 1년 간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코로나19라는 작은 바이러스 때문에 하루에도 수천, 수만명이 죽어가는 현실이 끝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