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편지] 영(靈)

● 교회소식 2018. 8. 29. 12:42 Posted by SisaHan

영에 관해서 특별히 연구하는 학문이 있다. ‘영의 이치’ 즉 영리학(靈理學)이라는 학문이 있다. 하나님의 영! 영을 그림으로 그리면 동그라미다. 수학으로 말하면 동그라미를 영(零)이라 한다. 모든 숫자, 하나에서 아홉까지 이 모든 숫자를 담고 있는 그릇이 영이다. 모든 근거가 영인 것이다. 그러므로 영이 없으면 수가 성립되지 못한다.
이 영이 제일 발달된 곳이 인도이고, 그 다음 영이라는 생각이 아랍 사람들에게 들어와서 아라비아 숫자에 비로소 영이라는 동그라미가 생겼으며, 그것이 서양에 들어와서 서양 수학의 기초가 되었다.


영은 철학적인 개념으로는 자유라는 말이고 수학적으로는 영이고, 성경에서는 진리의 영, 성령이라고 한다. 이것을 키에르케고르(Soren A, Kierkegaard)의 말로 하면 “시간적인 것과 영원한 것의 종합”이다. 영이란 말 대신 사랑이라는 말로도 쓸 수 있다.
즉비(卽非)의 논리가 영이라는 말인데 수학적으로 말하면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Zero) 라는 말이다. 즉(卽)이라는 것은 플러스이고, 비(非)라고 하는 것은 마이너스이고, 그래서 논리학에서는 A= -A 로 표시한다. 이것을 우리 말로 표현할 때는 A는 A가 아닌 것이 된다. 이 말을 쉽게 말하면 “나 아닌 것이 나다” 그러니까 나 아닌 것이 될 때 그 때 진짜 나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자기 자신이 아닐 때 어머니라고 말할 수 있다. 어머니가 자기 자신만 생각한다면 어머니가 아니다. 자신이 아니고 어린애를 생각할 때 그 때가 어머니다. 예수가 예수 일 때는 예수가 아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일 때 예수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개념은 정반대의 개념인데 이 두 개념이 합쳐져서 예수 그리스도란 말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나 아닐 때 나라는 걸 확실히 믿게 되면 이것이 믿음이다.


그러므로 나는 나 아닐 때 나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면 절대로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라는 말도 내가 나 아닐 때 나라는 말이다. 바울의 말로는 갈라디아서 2장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산 것이라”… 이 말은 바울이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산다. 그리스도는 바울에게는 나 아닌 거라는 것이다.
내가 나 아닌 것이 될 때 그 때 진짜 나다. 그리스도가 살아서 바울이 되는 것, 그것이 진짜 바울이다. 그래서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사람은 겸손해야지 교만하면 사람이 안 된다. 기독교에서는 교만한 것을 제일 나쁘다고 지적한다. 실존주의란 나를 조금이라도 내 놓지 말고 자꾸 나를 감추는 것이다.


믿음의 시작이 무엇인가? 졌다는 것이다. 모세는 호렙 산에서 하나님께 졌다. 모세는 졌고 하나님이 이겼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에게 졌다. 나는 종이라고 했다. 이 종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졌다는 말이다. 나는 노예다. 이긴 건 누구인가? 그리스도다. 그러니까 이제 당신은 나의 주님이다. 나는 제로가 되었다. 바로 나는 나 아닌 것이 나라는 말이다. 지식이 많은 사람들, 돈 많고 명예가 있는 사람들이 나 아닌 내가 될 때 이 세상은 더욱 밝아질 것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더 큰 사랑과 은혜를 받게 된다. 오늘부터라도 나 아닌 내가 되어 보자. 그리스도가 살아서 내가 되는 신비로운 삶을 체험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 정태환 목사 - 한인은퇴목사회장 >


[기쁨과 소망] 모세의 실패

● 교회소식 2018. 8. 29. 12:39 Posted by SisaHan

모세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나이도 많고 용기도 부족하고 입이 둔하고 혀가 무딘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부족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종으로 부르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모세는 감사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이런 겸손함이 있었기 때문에 어렵고 힘든 일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또한 고통받는 자들과 함께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지치지 않고 끝까지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양자가 되어서 궁궐에서 편하게 살 수 있었지만 고통받는 히브리 백성들과 함께 하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서양사회에서 백인으로 태어난 사람이 자동적으로 갖게 되는 기득권을 ‘white privilege’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백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자신들은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백인이 아닌 우리들은 백인들에게 우선권/기득권이 있다는 것을 쉽게 경험합니다. 그런데 만일 백인으로 태어난 사람이 white privilege를 깨닫고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서 일한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훌륭한 사람일 것입니다. 남자로 태어난 사람이 여성들의 성차별에 분노하고 성차별 철폐를 위해서 노력한다면 그 남자는 참으로 훌륭한 남자일 것입니다. 이렇게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 자비와 연민과 연대의 마음을 가지고 살면 말할 수 없는 기쁨과 보람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긍휼의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모세는 지치지 않고 끝까지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의 가장 위대한 점은 그가 실패를 통해서 배우고 성장하는 사람이라는데 있습니다. 모세는 젊은 시절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가 광야로 피신한 적도 있었고 십계명을 땅 바닥에 깨트린 적도 있습니다. 모세는 십계명을 가지고 내려오면서 꿈에 부풀었을 것입니다. 이 계명을 가지고 내려와서 백성들과 함께 새로운 나라, 정의로운 나라,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의 이러한 꿈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습니다. 백성들은 아직 자유인으로 살 준비가 되지 못했습니다. 모세가 얼마나 화가 났던지 금송아지에 제사드린 사람들에게 금송아지 동상을 가루로 만들어서 물에 타서 마시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장면은 그 다음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다시 시내산으로 부르셔서 십계명 돌판 2개를 다시 만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난번 돌판은 하나님께서 직접 만들어 주셨는데 두 번 째 돌판은 네가 직접 만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 째 돌판을 깎으면서 자신을 돌아보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 모세는 두 번 째 돌판을 깎으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목표를 다시 세웠을 것입니다. 영어 표현 중에 “tyranny of dream, 꿈의 횡포”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소중하게 간직했던 꿈이 이루어지지 못했을 때,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자책하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꿈이 횡포를 부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그 실패를 디딤돌로 삼아서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두 번 째 꿈을 꾸게 될 것입니다. 첫 번 째 돌판이 깨졌을 때 두번째 돌판을 만드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모세처럼 실패의 순간에도 지치지 않고 끝까지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빕니다.

< 정해빈 목사 - 알파한인연합교회 담임목사 >


[기쁨과 소망] Turning Point 8.15

● 교회소식 2018. 8. 22. 13:28 Posted by SisaHan

세계의 역사를 살펴보면 강물의 물줄기를 돌리듯이 역사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는 전환점(Turning Point)들이 있다.
구약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 역사에서 대표적인 전환점을 꼽는다면 ‘미스바 승리’와 ‘부림절 ’이다. 이스라엘 역사의 전환점이 된 이 두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마음으로 하나님앞에 무릎 꿇었을 때 이루어졌다.


‘미스바 승리’(B.C. 1075년)는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참패하고 여호와의 궤마저 빼앗기는 치욕을 당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사 사무엘의 주도로 미스바에 모여서 우상숭배 등 자신들의 잘못을 철저히 회개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한 사건이다. 미스바에서의 회개기도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타락의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 신앙을 회복하게 되었으며, 쳐들어온 블레셋 군대를 하나님이 물리쳐서 대승을 거두었다.
‘부림절’(B.C. 473년)은 바사(페르시아)제국 아하수에로왕 통치하에서 유대인들이 권력자 하만의 음모로 몰살당할 위기에 몰렸으나, 왕후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민족을 살리기 위해 금식기도한 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하만의 음모를 고발하여 그를 사형에 처하게 하고, 민족을 구원한 날이다. 나라가 멸망한 후 포로로 끌려가 소수민족으로 불이익을 당하며 말살의 위기에 몰렸던 유대인들이 신앙으로 뭉쳐 위기를 벗어난 것을 기념해 지금도 매년 아달월(2월-3월) 14- 15일에 부림절 축제를 열고 있다.


우리 한민족의 역사에서 대표적인 전환점은 1945년 8월15일에 맞은 광복의 사건이다.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에 패배한 일본이 항복선언을 발표한 그날 우리 민족은 일본의 지배에서 해방되었다. 1910년 8월29일 한일합방으로 나라의 주권을 일본에게 빼앗긴지 거의 35년만에 맞은 감격의 날이었다. 광복의 날을 바라보며 감옥에서, 골방에서 마음모아 기도했던 그 기도가 응답받은 날이었다. 그래서 그날은 한민족 모두가 하나가 되어서 기뻐했으며, 그리스도인들도 신앙노선에 관계없이 함께 손을 맞잡고 기뻐했다.
교회역사학자 Mark A. Noll은 그의 저서 ‘Turning Point’에서 20세기 역사의 전환점 중 하나로 ‘구공산권에서 기독교의 생존’을 꼽았다. 소련과 동유럽이 공산화되며 교회는 혹독한 탄압을 받아 교회가 문을 닫고 성직자들이 처형되었지만, 기독교인들과 교회는 사라지지 않았다. 더 순수하고 더 정제된 신앙인들이 지하에서, 감옥에서 믿음을 지켜나갔다. 성경 한 구절을 읽어도 성자보다 고결한 신앙을 갖게 하시는 하나님의 전적인 역사하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의 기도대로 공산권은 무너지고 말았다.


우리 민족에게 ‘8.15. 광복절’은 ‘구공산권에서 기독교의 생존’ 못지않게 중요한 역사의 전환점이다. 공산주의보다 더 지독한 일본 제국주의의 폭압과 회유 속에서 신앙을 지켜내므로 맞은 ‘해방’이었기 때문이다.
광복73주년을 맞은 올해 대한민국을 둘러싼 주변정세가 술렁이고 있다. 북핵 위협을 놓고 북미대화 남북대화 등 살얼음판같은 외교전이 펼쳐지고 있다. 인간의 지혜나 꼼수로는 이 실타래를 풀 수 없다. 미스바에서 하나님 앞에 한마음으로 무릎 꿇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한민족이 한마음되어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며 무릎 꿇을 때 하나님께서 대한민국 역사의 새‘전환점’을 열어 주실 것이다.

< 이진우 목사 - 낙원장로교회 담임목사 >


위임식에서 아들에게 안수하고 있다.

‘교회 기본권’ VS ‘헌법위배’ 8:7로
교단안팎 “신사참배 버금”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 재판국은 7일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심리를 갖고 명성교회 김하나 목사 청빙 결의가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국은 결의무효 소송 심리에서 무기명 투표 끝에 8대 7로 이 같이 결정했다. 지난해 11월 동남노회비대위(위원장 김수원 목사)가 서울동남노회의 청빙 결의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한 이후 9개월 만이다. 법적 공방은 김하나 목사의 명성교회 담임목사직 위임식이 열린 이후 계속 이어졌다. 김 목사는 명성교회 설립자 김삼환 원로 목사의 아들이다.
이날 변론에선 김하나 목사 청빙이 교회와 교인의 기본권 행사라는 입장과 예장통합 교단 헌법 내 세습금지법을 위배한다는 입장이 맞섰다. 비대위는 “은퇴하는 담임목사의 배우자 및 직계비속과 그 직계비속의 배우자는 담임목사로 청빙할 수 없다”는 교단 헌법 2편 28조 6항을 들어 청빙이 적법치 않다고 주장했다. 반면 청빙 지지 측에선 관련 조항의 ‘은퇴하는’이라는 문구를 들어 김삼환 목사가 2015년 은퇴한 뒤 이뤄진 김하나 목사 청빙은 적법하다고 변론했다.


변론에 앞서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 등은 기자회견을 열어 “재판국의 정의로운 판결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장로회신학대 등 예장통합 총회 산하 6개 총학생회도 공동성명서를 내고 세습반대 입장을 재확인했다.
앞서 ‘명성세습’과 관련 총회 재판 동안 법에 따라 공정한 재판을 해 달라는 외침이 국내외에서 끊임없이 이어졌다. 교단 총회장부터 목회자, 교인, 신학생, 교수, 시민단체와 일반 언론까지 명성교회 세습은 불법이라고 했다. 목회자 530여 명이 반대 성명을 냈고, 교단 산하 신학교 교수 120여 명도 김하나 목사의 사임을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해외한인장로회(KPCA) 캐나다 동노회도 올해 봄 노회에서 한국 통합교단의 명성교회 세습논란에 대해, KPCA총회가 반대성명서를 발표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청원을 채택, 총회에 헌의해 지난 5월 도미니카에서 열린 KPCA 제43회 총회에서 세습반대 성명을 채택해 한국통합측에 전달토록 한 바 있다.


장신대에서는 세습 직후인 2017년 11월 14일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첫 세습 반대 기도회가 열렸다. 2017년 12월부터 2018년 1월까지 예장통합 총회 회관 앞에서는 김동호·방인성 목사부터 시작해 손봉호 교수, 정주채 목사, 박득훈 목사 등 교계 원로들이 릴레이 피켓 시위를 했다. 이후에도 장신대 학생회, 장신대 교수 모임 등이 돌아가며 거의 매주 세습 반대 기도회를 열었고, 총회 재판국 심리 날짜가 정해지면 ‘공정 재판 촉구 기도회’라는 이름으로 연합 기도회를 지속적으로 열었다. 재판 선고 전날인 8월6일에도 2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마지막 기도회가 열렸다. 설교를 맡은 이수영 목사(새문안교회 은퇴)는 “만약 총회 재판국이 세습을 용인하는 판결을 내린다면, 신사참배에 버금가는 결정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이 때문에 청빙무효 재판 결과와 관련, SNS에는 교수와 목회자들을 비롯한 여러 목소리들이 잇따라 터져나오고 있다.


예장통합 전국노회장협의회 회장 박은호 목사(정릉교회)는 “총회 기관의 질서와 권위가 무너지게 생겼다. 총대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전국노회장협의회는 지난해 12월, 명성교회 세습의 본질은 “맘몬 숭배, 하나님 신앙을 이용한 기복신앙과 번영신학에 있다”며 세습 철회를 요청하는 성명을 냈었다. 박 목사는 “성명을 낼 당시 서울동남노회를 제외한 전체 67개 노회 중 70%가 명성교회 세습이 잘못됐다는 입장을 보였다. 법을 어겨 가면서까지 세습을 강행한 명성교회에 총회가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총회 한 관계자도 9월 정기총회가 명성교회 문제로 시끄러울 것으로 봤다. 그는 “총대 전반적으로 대형 교회 세습에 대한 반감이 크다. 2013년 98회 총회에서 84% 찬성으로, 그것도 명성교회 예배당에서 통과시킨 법이다.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 같다. 최근 불거진 재판국원 향응 수수 의혹 건까지 더해 상당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국교회사 학자인 옥성득 교수(UCLA)는 재판 결과가 알려진 뒤 ‘통합 목사직 사직’을 선언했다. 그는 “이 판결이 부당하므로 항의하며, 다음 총회 헌법에 따라 예장 통합측 목사직을 ‘자의 사직’할 것”이라며 “세습 인정 판결로 장로교회는 80년 전 신사참배 결의보다 더 큰 죄를 범했다”고 밝혔다. 옥 교수는 “당시는 일제의 강제로 결의했으나, 오늘 통합측 재판국은 자의로 결정했기에 통합 교단 최대 수치의 날이자 가장 큰 불의를 범했다. 통합 교단은 오늘자로 죽었다”며 “그러나 언젠가 통합 총회가 재를 덮어쓰고 회개하여 오늘의 결의를 무효로 돌리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주여, 통합 교회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라고 발표했다.
또 김운용 교수(장신대)는 “신사참배를 결의했던 부끄러운 이름을 기억하듯, 역사는 당신들의 이름을 기억하리라”며 “역사의 주인께서 하나님의 교회를 욕되게 한 당신들의 행위를 심판하시리라. 아 부끄럽다!”고 썼다.


차정식 교수(한일장신대)는 “세습 반대 신학교수 서명운동에 두 번이나 동참한 입장에서 허망하고 서글프다. 이제 총대들의 거룩한 반란을 기대하는 수 밖에 없다”며 “통합 교단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려면 총대들이 돈이나 권력에 매수되지 않고 대대적으로 봉기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 비둘기처럼 순결한 명분을 지키려면 뱀과 같이 교활해야(phronimos) 한다”는 소회를 전했다.
김근주 교수(느헤미야)는 “명성교회 세습조차 그 부당함을 바로잡지 못하는 통합 측, 교회에 아무런 피해도 잘못도 하지 않은 동성애에 대해서는 교단 차원의 결의에, 학생들 징계까지 했지만, 막상 최대 쪽수 교회의 탐욕스러운 짓거리 앞에서는 맥없이 굴복한다”며 “앞으로 추악한 명성교회와 비겁한 통합 측은 복음의 수호 운운하며 또 얼마나 약자를 괴롭히고 짓밟는 일에 게거품을 물며 나설런지. 가히, 통탄할 일”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