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소망] 순교자 손양원

● 교회소식 2018. 2. 6. 20:56 Posted by SisaHan

손양원 목사는 <옥중서신> 1943년 9월 4일자에 누이 손양선에게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사랑하는 누이야! 나는 솔로몬의 부귀보다 욥의 고난이 더욱 귀해 보이고 솔로몬의 지혜보다 욥의 인내가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솔로몬의 부귀와 지혜는 나중에 죄악에 빠지는 매개물이 되었으나, 욥의 고난과 인내는 최후의 행복이 되었단다. 사람의 행복이란 최후에 어찌 되는지 살펴 보아야 한다. 참다운 지혜란 죄악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순교자의 삶의 모델은 솔로몬이 아니라 욥이었습니다. 여기서 순교자 손양원 목사는 바로 고난 중에 드리는 감사의 기도로 이어집니다. 그의 입에서 저절로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아들이 죽어도 감사, 유학의 길이 막혀도 감사, 옥중에 들어가도 감사, 식당 종업원에게 물 한 잔을 달라고 할 때에도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물건을 팔아준 사람에게, 주차를 안내해 준 사람에게, 내 아이를 위해 기도해 준 사람에게 나도 모르게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게 됩니다. 왜 그런 사소한 일들에 감사할까를 생각해 봅니다. 결론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감사하기에 모든 일이 감사합니다.”
순교자가 천국에서 받을 흰옷과 면류관의 상급이란 바로 이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죽고 끝난 인생인데 순교자의 죽음은 제단 앞에서 영원히 살아계신 부활의 주님으로 새 생명을 덧입게 됩니다. 나를 위해 어떤 일을 해준 것이 감사한 것이 아니라, 그 보다 오늘 내가 아직 살아 있어 누군가의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순교자는 그가 받은 면류관의 상급까지 주님께 벗어드립니다. 이는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감사는 내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먹을 수 있는 것이 감사하고, 아픈 것이 감사하고, 고난 받는 것이 감사하고, 참을 수 있고 기도할 수 있는 것 등 모두가 감사할 뿐입니다. 충북 음성에 세워진 걸식자들을 위한 ‘꽃동네 마을’에 선 비석에는, “빌어먹을 힘만 있어도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한 때 나는 감사기도가 어색할 때가 있었습니다. 내 주권만 인정할 때입니다. 모든 일을 제가 한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나는 당연히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고, 더 가져야 하고 더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님께서 나에게 이미 모든 것을 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윗’이 이것을 깨닫는 순간 평범한 왕이 아니라 메시아의 계보를 잇는 위대한 영원한 왕이 되었습니다.
순교자 손양원 목사가 우리 민족에게 준 가장 큰 위대한 유산은 바로 최고의 고난 중에 드린 감사의 기도입니다.

< 박태겸 목사 - 캐나다 동신교회 담임목사 >


기독교 신비주의자인 에크하르트(Meister J. Eckhart)는 “태양은 하늘의 눈이고 꽃은 땅 위의 태양이다. 꽃이 태양을 볼 때 사실은 태양이 태양을 보는 것이고 눈이 눈을 보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참 재미있는 말이다. 공자 같은 분도 사람을 나무에 핀 꽃이라 했다. 이런 말을 들으면 하나님이 내 안에 있고 내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조금 짐작이 간다.
세상의 모든 초목은 태양을 향해 줄기를 뻗어 간다. 그것을 향일성(向日性)이라 하는데 기독교로 말하면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해 주셨으므로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제일 보고싶어 한다. 그런데 하나님을 보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그건 ‘나’라고 하는 풀에 꽃을 피우는 것이다. 나라고 하는 풀에 꽃을 피울 때만 꽃과 하늘의 태양이 마주보게 된다.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나라고 하는 풀에 꽃을 피우는 것이다. 예수라는 풀에 그리스도라는 꽃이 피었다. ‘내가 내가 된다’라는 뜻은 무슨 말인가? 나라고 하는 풀에 그리스도라는 꽃을 피우는 것이다. 결국 믿음이라는 것은 나라고 하는 풀에 꽃을 피운다는 것이다. 히브리서11장1절에 “믿음이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못하는 것의 증거다”라고 했다. 바라는 것의 실상이 태양이라면 보지못하는 것의 증거는 꽃이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나라고 하는 풀에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옛날부터 이 문제에 대해 많이 연구했다. 어떤 사람이 성 프란시스에게 가서 물었다. “선생님, 암만해도 내 속에는 믿음이 없는데 어떻게 하면 믿음이 생깁니까?” 그랬더니 성 프란스시는 옆에 있는 도끼로 나무를 절반 딱 쪼개더니 “이 나무 속에 꽃이 있느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선생님, 그 나무 속에는 꽃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성 프란시스는 그에게 “꽃을 나무 속에서 찾지 말라”고 말했다. 우리는 자칫 내 속에서 믿음을 찾으려고 한다. 아무리 뒤져보아도 내 속에는 믿음이 없다. 저 사람은 교회에 잘 다니고 봉사 잘하니까 믿음이 있겠지? 라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내 속에도 저 사람 속에도 믿음은 없다. 꽃은 내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봄이 오면 꽂이 핀다. 즉 태양을 만나면 꽃이 핀다. 내 속에 꽃이 있는 것이 아니라 봄이 되어야 꽃이 피는 것이다. 봄이 된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태양을 만난다는 뜻이다. 기독교로 말하면 그리스도를 만난다는 말이다. 그리스도를 만나면 거기에 믿음의 꽃이 피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믿음이 있어야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으로 생각하는 데 그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만나면 믿음의 꽃이 피어나게 된다.


기독교의 죽음은 더 큰 일을 하기 위해 가는 것, 그것이 죽음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내가 이제 곧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하신 그 말씀은 내가 이제 십자가에서 못 박혀 피를 흘릴 때 위대한 꽃을 피울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도 이와 같이 삶 속에 그리스도란 꽃을 피워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복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정태환 목사 - 한인은퇴목사회장 >


구원을 받은 사람은 십자가의 교리에 적용되고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그리스도의 신비를 알게 된 사람들임을 명심하자.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후13:5) . 이 말씀은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이다. 즉 나 자신의 영적 상태를 살펴야 한다. 즉 우리가 신실한 믿음 안에 있는지 시험해 보아야 한다. “사람이 자신과 자신의 마음을 살피지 않는 것이 얼마나 책망할 일이겠는가?” 거룩한 신앙을 장식하는 가장 좋은 길은 “선을 행하며 칭찬을 받으며 주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특별히 가난한 자에게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주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우리가 행하지 않으면 우리의 모든 신앙 활동이 주 하나님에게서 와서 주 하나님에게 상달되지 않는다. 신실한 크리스천들은 그들의 충성에 의하여 인정 받고 보상 받음을 알자! 즉 우리가 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 때에 주 하나님의 자비를 받을 자격이 부여됨을 알자! 사역자(목회자)들은 자기들의 사역에 영광을 누리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하며 성공과 영광을 주 하나님께 돌려야 된다. 자기 자랑은 교만 만큼 헛된 짓이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도록 노력 하여야만 한다. 한편 참된 신앙인 이라면 누구나 다 “주여 내 것은 다 주님의 것입니다”. 라고 무제약적으로 말 할 수 있어야 된다. 모든 것을 그의 발 아래 두고 그를 섬기는 일에 쓰여져야 할 것 이다.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을 주 하나님의 기호와 축복 속에 안심하고 맡겨 그의 쓰심에 합당하게 쓰여질 수 있게 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이렇게 말 할 수 있어야 한다. “주여 내 가진 것을 돌보소서! 왜냐하면 내 것이 다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라고….,(요한복음17:10). 주 하나님의 말씀(그리스도의 계명)은 복종하는 자만이 간직했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계명을 가르치는 사람들(사역자)은 스스로 <말씀의 준행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즉 그들에게 위임된 말씀(복음)을 지키는 것이 필수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 의하여 <복음>은 모든 시대에 걸쳐 각처에 전달(전파) 되어야 하겠기 때문이다. 악한 자는 심판날을 위하여 남겨져 있는 것처럼 의인은 축복의 날을 위하여 보전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주님에게 주어진 모든 사람들을 틀림 없이 보전 하신다. 우리가 우리의 죽음의 선고를 받게 된다면 거룩한 승리감에 도취되어 다음과 같이 말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한다”. 이 어둡고 속임수로 가득찬 세상, 가련하도록 공허하며, 불결한 유혹으로 가득찬 세상, 가시덤불 같은 이 세상 때문에 더 이상 괴롭힘을 당하지도 않겠고 그 함정과 그물의 위협도 더 이상 받지 않을 것이다.

이제 바람이 거센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지도 않으리라. <이제 나는 더 세상에 있지 아니하노라>, 기쁜 마음으로 세상을 작별하며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노라, 라고 말이다. “이제 나는 내가 택하고, 섬겼으며 내 영혼이 그토록 간구하던 주님에게로 갑니다”. 빛과 생명의 근원이시며, 축복과 기쁨의 왕관이시며 중심이신 주님께로 갑니다. 이제 나의 그리움이 충족될 것이며, 나의 소망이 성취되며, 나의 행복이 완성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내가 주님에게 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약 이 거친 세파를 다 거쳐 목적지에 거의 이르렀다고 하면, 이제야 이 세파에 뛰어드는 자들을 동정해야 하며, 우리가 세상을 떠난다면 아직 세상에 남아 있어야 할 사람들을 동정해야 한다. 신앙으로 살려는 사람들은 세상이 주는 이익에 얽매여서는 안되고 또 세상을 섬기는 일에 자기를 드려서도 안된다.

우리는 주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꼭 알맞는 휘황찬란한 갑옷이요, 주 하나님 앞에 가장 귀한 <성령의 은혜>인 ‘빛의 갑옷’을 입은 신분을 가진 <성도>들이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갑옷’을 입어야 한다 (엡6:13). 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미 크고 튼튼하며 따스하고 질긴 가죽옷을 준비해 주셨다. 그것은 우리가 세례받음으로 이미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고 고백했다(갈3:27) 우리 크리스천들은 두 가지 금지 사항이 따르고 있음을 알자! “무리한 염려로 고민하는 것” “못된 욕심에 탐닉하지 말 것” 크리스천들은 서로 사랑을 빚지고 있으며 이것을 갚아야 한다. ‘정다운 사랑’ 즉 우리들로 하여금 더 없이 겸손하고 공손하게 말과 행동으로 우리 자신을 나타내게 하자! 주 하나님!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것을 도모할 수 있게 도와주시고 나와 교제하는 모든 믿지 않는 사람에게 주예수를 믿는 신앙을 추천할 수 있도록, 주 하나님의 영광에 보탬이 되고 믿는 자들의 신용에 위로거리가 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할렐루야! 아멘.

< 김진규 - 밀알교회 장로 >


소망기도원 축복성회

● 교회소식 2018. 1. 30. 20:15 Posted by SisaHan

토론토 소망기도원(원장 서인구 소망교회 담임목사, 원목 유재혁 목사)은 지난 1월4일부터 7일 주일까지 문이삭 선교사(PCA 와싱톤 수도노회 목사)를 강사로 2018 신년 축복성회를 열고 은혜를 나눴다.

‘삶으로 증명하라’는 주제로 가진 이번 축복 성회는 주일인 7일 소망교회 집회까지 모두 8차례 열려 문 선교사가‘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 21: 15~17), ‘주의 길을 예비하라’(눅 3: 1~6) 등의 말씀을 전해 새해를 말씀과 뜨거운 기도로 시작해 삶으로 그리스도인의 능력을 증거하는 값진 한 해를 다짐하는 집회가 됐다. 한편 소망교회는 문이삭 선교사와 박 에스더 선교사 부부를 협력선교사로 지원하기로 했다.


< 문의: 905-683-3623, 416-391-31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