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교회 어린이들이 16일 저녁 성탄뮤지컬 The King and Me를 공연하고 있다.

성 탄 절
교회들 기쁨과 감사로 경건한 준비

성도들 다양한 축하행사와 사랑 나눔
양로원 위문찬양… 원주민 단기 선교도

‘기쁘다 구주 오셨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절을 맞이하여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기쁨과 감사로 다양한 축하행사를 열고있는 교회들이 12월24일 성탄주일 혹은 25일 성탄절 예배를 드린다.


각 교회는 지난 3일 주일 PCC한카동노회가 서부장로교회(담임 박헌승 목사)에서 연합찬양 예배를 드린 것을 시작으로 대림절에 접어들며 다양한 축하이벤트들을 진행했다. 교회들은 성탄음악회와 성가대 칸타타, 뮤지컬, 찬양제, 이웃초청 성탄 축하의 밤 등 다채로운 행사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며 이 땅에 오신 의의를 되새기는 행사들로 성탄의 기쁨을 예비하고 이웃나눔을 통해 사랑을 전하는 행사도 진행하고 있다.

교회들은 성탄 주일인 24일 성탄축하 예배를 드리거나 성탄절인 25일 연합예배를 드리면서 칸타타와 성찬식 등 행사와 함께 성도들이 애찬을 나누는 등 제각기 의미있는 예식과 행사를 통해 구세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가 세상의 어두운 곳들에도 충만히 임하게 되기를 염원하는 나눔 프로그램을 갖는다.


성탄절을 앞두고 산타복장의 디모데장로교회 늘푸른합창단이 캐슬뷰양로원을 위문 찬양했다.

디모데 장로교회(담임 김인기 목사)는 지난 17일 주일 오후 성탄축제를 열고 각 찬양팀 연주와 어린이 공연 및 Dorr Prize 등 이벤트로 성탄의 기쁨을 함께 했다. 앞서 14일은 늘푸른합창단이 성탄맞이 캐슬뷰양로원 한인노인들을 위문 공연했다.
성산장로교회(담임 유윤호 목사)는 지난 16일 오후 성탄축하의 밤을 개최, 불신자와 지인, 주변 이웃등을 초청해 대접하며 성탄절의 기쁨과 이웃사랑의 뜻을 전했다.
본 한인교회(담임 한석현 목사)는 22일부터 25일까지 성탄기념 이웃초청 캠페인을 벌여 성도들이 기간 중 1회는 이웃을 초청해 디너를 나누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또 성탄절 감사헌금 4만2천달러를 모아 월드비전을 통해 50명의 불우어린이돕기와 북방 고아원 운영비에 사용하기로 했다.


서부장로교회는 성탄절인 25일 오후에 생명수 아랍공동체 이웃초청 잔치를 교회 친교실에서 열어 대접하고 함께 성탄절의 의미를 되새긴다.
 염광교회(담임 이요환 목사)는 이번 성탄절에 불우이웃돕기 물품을 모아 인근 마캄지역의 형편이 어려운 6가정에 이를 전달하고 격려할 예정이다.
한편 캐나다 동신교회(담임 박태겸 목사)등은 성탄절 직후인 22일부터 일주일간 롱렉지역과 아롤랜드 원주민선교에 나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한다.
한편 교회들은 오는 31일 주일 저녁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면서 2017년을 보내고 2018 새해를 맞는다. 각 교회들은 새해 초 특별 새벽기도회와 축복성회, 금식성회 등으로 2018년 한해 평안을 기원하면서 믿음의 성숙과 신실한 신앙의지를 다짐할 예정이다.


[평신도 글마당] 낚시

● 교회소식 2017. 12. 20. 14:31 Posted by SisaHan

낚시는 어려서부터 틈나는 대로 즐겼던 취미였지만, 정작 낚시의 재미에 빠지게 된 것은 4~5년 전 부터 입니다. 아내도 몇 번 따라 다니다가 어느 사이 손맛(?)에 빠져서 나보다 더 적극적인 낚시광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말을 하지 않아도 ‘내일은 낚시 가자’를 결정하기가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특별히 올해는 연어낚시와 송어낚시에 깊이 빠져서 틈나는 대로 낚시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낚시를 하는 여자분들이 거의 없다보니 아내는 항상 낚시터에서 주목을 받게 됩니다. 부부가 함께하는 모습을 부러워 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제 제법 낚시를 하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갈 때마다 또 다른 낚시의 비법들을 배우게 됩니다. 아마도 내년 쯤이면 우리만의 노하우도 생기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낚시에도 ‘도’가 있습니다. 가까이 낚싯대를 드리우다 보니 서로 얽히지 않도록 해야하고, 직선이 아닌 사선으로 낚싯줄을 던져도 안됩니다. 한 사람에게 물고기가 낚이면 주변 분들은 모두 낚싯줄을 거두어 들여서 그 물고기를 건져 올릴 때까지 기다려 줍니다. 그런데, 낚시터가 쓰레기로 조금씩 더럽혀 지는 것이 보여서 청소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우리들이 가는 곳은 언제나 깨끗하게 되고, 서로 조심하며 또 다른 분께서도 봉투를 준비하시고 청소를 하십니다. 그렇게 한여름과 가을을 보내면서 나름 낚시에 대한 철학이 생겼습니다. 3일 4일 연속으로 하루 종일 앉아 입질 한번 받아보지 못한 날도 있습니다. 너무 큰 연어가 계속 낚여서 팔힘이 없어서 낚시를 던지면서도 또 잡힐까 봐 겁이 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날은 그저 기다리는 것입니다. 바로 ‘낚시는 기다림’이라는 것을 알 때가 되면 ‘진정한 낚시꾼’이 되어서 하루종일 기다려도 지루하지가 않게 됩니다. 소풍날을 기다리던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여행날짜를 잡아놓고 기다리던 때가 생각납니다. 멀리 떨어져 사는 자식들과 만날 날이 정해질 때의 그 기다림이 생각납니다. 기다림은 설레임 입니다. 기다림은 기쁨이며 희망입니다.

어느 덧 한해를 마무리하는 날이 되었지만, 저는 새해를 기다리는 마음이 있기에 설레임과 기쁨으로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기다려 주셨던 주님을 생각해 봅니다. 주님께서도 설레임과 희망을 품으시고 저를 기다려 주셨을 것 입니다. 연일 공치는 낚시만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물고기들이 입질을 하고 여기저기서 환호하며 즐거워 하는 소리가 낚시터를 가득 채울 때가 있습니다. 조금씩 낚시를 더 배워가는 즐거움도 있지만 맑은 공기 마음껏 마시며 한 마리의 물고기를 기다리는 재미는 어디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아내는 낚시를 나가면서 어떤 형태로든 점심을 몇 인분 준비하여 나갑니다. 자주 뵙게 되는 한국분들에게 같이 나누고자 하는 마음에서 입니다. 주로 김밥을 많이 준비하는데 5~6인분을 준비 합니다.

새벽같이 낚시터에 나오신 분들에게는 반가운 점심이 되곤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늘 가까이서 낚시를 하시던 ‘A’선생님께서 저희 교회 이름을 물으시고, 아직 한 번도 나가보지 않았던 교회를 나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드디어 ‘A’선생님 부부께서 첫 출석 하신 날, 찬양을 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물고기를 낚으러 다니면서도 사람의 마음까지 낚을 수 있는 이 기쁨은 누가 주신 은혜일까요??.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가장 큰 선물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기다림은, 언제나 우리에게 가슴 떨리는 선물을 준비하고 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 마가복음 1장 17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 정훈태 - 동산교회 장로 >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 세대는 비주얼 문화의 시대이다. 즉 눈에 보이는 것이 중요한 시대이다. 사실 눈으로 보는 것은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보이는 것(What is seen)을 요구한다. 이렇게 보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인간을 인간학에서는 호모 이마기쿠스(Homo Imagicus)라고 부른다. 그리고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내적 욕구는 보아서는 안될 곳도 보고 싶어한다. 그래서 몰래 카메라가 곳곳에서 불의한 욕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텔레비전, 영화 등 미디어 산업의 부흥은 보는 것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확장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세대는 음악을 듣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않는다.

그래서 음악과 영상이 결합된 뮤직 비디오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교회에서도 성도들은 설교를 듣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무엇인가를 보기 원한다. 그래서 목사들은 영상이나 연극 혹은 예술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줌으로서 성도들의 눈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노력한다. 결국 이 세대는 보이는 것, 즉 이미지(image)의 시대이다. 이미지가 곳곳에서 유혹의 눈짓을 보내고 있다. 이미지가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아는 것이 힘(Knowledge is Power)이었던 근대를 넘어 보이는 것이 힘이 되어 버린 이미지 권력의 시대가 되어 버렸다. 결국 이 세대는 눈에 보이는 대로 행하는 세대이다.


나무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부분은 뿌리이다. 나무의 뿌리는 제일 중요한 것이면서도 땅속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때론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하고 가치있을 때가 많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가치에 사로잡혀 있어서 그 너머의 진정한 가치를 보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의 위대함을 볼 수 있는 영안(Spiritual Eyes)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필요하다. 그러나 보이는 것, 즉 육체적인 것은 항상 반(anti)영적이고, 영적인 것은 항상 비육체적이고 비가시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은 항상 대립적인 이원론의 양태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죽은 육신과 타락한 영혼이 온전히 하나된 구원의 모습으로 부활하는 것이다. 하늘과 땅이 하나된 새 하늘과 새 땅이 그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의 이상이었다. 그러므로 인간이라는 존재는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이 모두 필요한 존재이다. 영이 없는 육신, 육이 없는 영혼은 둘 다 불완전한 모습이다.

그래서 인간은 영과 육에 모두 다 갈증을 느끼는 존재이다. 하지만 심각한 문제는 영(적인 것)은 어떤 의미에서 매우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것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우리는 늘 육신의 것들에 일차적으로 노출되고 그래서 보이는 것들, 세상의 것들에 함몰되어 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온전히 성화(Holification)되지 못한 우리의 육은 우리의 주변 물질 세계를 통제할 힘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우리의 육체적 욕망을 제어할 내면의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내면의 힘을 기르고 훈련하는데 너무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영적인 갈급함에 너무 둔하다. 그래서 육의 비대함으로 기형아가 되어 버린 우리의 존재를 영의 회복으로 정상화시켜야 한다. 보이는 것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의 가치 기준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이전되어 균형을 잡아야 한다. 믿음은 가치에 대한 눈이 바뀌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세상의 가치에 끌려 다닐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끌고 가야한다. 그러한 목적을 가지고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셨다. 어두운 세상에 한 줄기 빛으로.

< 박원철 목사 - 늘사랑교회 담임목사 >


2017년 10월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달이었습니다. 개신교 신앙은 마틴 루터의 성경번역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종교개혁가들은 교회의 전통이나 의식이나 교황의 말이 신앙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신앙의 전통이 되어야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말씀을 붙잡고 씨름하고 공부하고 질문하는 사람이 개신교인입니다. 말씀을 읽을 때는 성령의 도움도 받아야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성의 도움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읽고 해석하고 묵상해야 맹목적인 신앙인이 아니라 성숙한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함석헌 선생님도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말씀을 읽고 공부하고 기도하고 묵상하고 생각하고 질문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역사와 함께 읽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을 잘못되게 적용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구약성경 여호수아를 읽으면 히브리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원주민들을 다 죽이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학자들은 히브리 백성들이 가나안 산악지대로 이주했다고 추측합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서는 히브리 백성들이 가나안의 모든 생명들을 다 죽이고 그 땅을 차지한 것처럼 설명했습니다. 이런 말씀을 읽을 때는 여호수아서가 이스라엘 민족주의 관점에서 쓰여졌다는 것을 알고 읽어야 합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여호수아서와 같은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유럽 개척자들이 북미에 도착해서 원주민들을 다 죽였는데, 그들은 여호수아서를 읽으면서 여호수아가 가나안 원주민들을 다 죽인 것처럼 자신들도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다 죽여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구약성경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를 읽으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히브리 백성들이 페르시아 제국이 들어서고 난 후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와서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면서 이스라엘을 다시 일으키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고향에 사는 유대인 남자들이 다른 나라 부인들하고 결혼해서 살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칙령을 발표해서 민족을 다시 일으키려면 피가 섞이면 안 되니까 유대인 남편들에게 이방 부인들과 헤어지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강제로 가족을 해체시키고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을 쫓아내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다른 민족 사람과 결혼했다면 그 사람을 나의 가족으로 여기면서 함께 살아야 합니다. 이런 말씀을 문자 그대로 적용하려고 하면 우리들도 배타주의/국수주의/민족우월주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또 요한복음에는 정통 유대인들을 저주하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유대인들을 가리켜서 “너희들은 악마의 자식이라” 고 표현을 했습니다. 당시 요한교회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유대회당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정통 유대인들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예수님도 유대인이고 제자들도 유대인입니다. 유대인이 예수님을 죽인 것이 아니라 부패하고 타락한 정치/종교 권력자들이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요한복음의 이런 말씀들이 인종차별/반유대주의의 근거가 되어서 히틀러 같은 사람은 유대인들을 수백만 명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반드시 역사와 상황과 배경을 알고 읽어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과 이성의 도움과 역사의 배경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성경말씀을 읽을 때, 우리들은 말씀 속에 숨겨진 깊은 영적인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옛날 신앙의 선배들이 무엇을 고민했는지,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찾고 고백했는지, 그들이 만난 시련은 무엇이었는지, 그들이 그 시련을 어떻게 신앙으로 극복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역사와 함께 읽을 때, 성경의 진리는 더 밝게 빛날 것입니다. 성경말씀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성경말씀의 진리가 역사와 함께 우리들에게 전달되어 우리 삶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정해빈 목사 - 알파한인연합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