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글마당] 부르심 받은 성도

● 교회소식 2015. 6. 12. 16:50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어느 때 어느 곳에 있든지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신 주 예수님을 생각하며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주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지켜 주시기 때문이다.
인생 황혼기에 접어 들면서 나도 부름 받은 성도인가? 반추하게 된다. 그렇게도 많은 은혜 가운데 살았으면서도 원망과 불평 속에 살았으며, 또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가고 있건만 스스로 교만하고 절망하고 낙심하며 때로는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을 망각하면서 세상 것만 바라보면서 두려움에 떠는 불신앙적인 행위를 하기도 하였다. 새로운 은혜 앞에서 밝은 미래를 바라보지 못하고 미련하게도 험악한 세상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낙심하며 아무 뜻도 새롭게 거듭나지 못했음을 후회한다. 이제는 주님께서 강한 팔로 때로는 능력으로 붙들어 주셔서 신령한 생활 경건한 생활로 이끌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 올린다.


신령하고 경건한 믿음생활의 새로운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오직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 상에서 돌아가신 주님의 사랑 밖에 없다. 그러므로 사도인 바울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 하였다고 말하고 있다(고전2:2). 십자가 사건은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지혜인 것이다. 반대로 불신자들 즉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십자가의 사랑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믿는 자들을 미련한 자들로 보고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소위 지혜롭고 총명한 믿는 백성이라 칭하며 입과 입술로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면서 마음으로 멀리 떠나있고 인간의 지혜와 총명 그리고 계명에 따라 경외한다고 하고 있으니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대해 기이하고 기이한 일을 행하신다고 하시며 그들 중에서 지혜자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지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사29:14).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고전1:19).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의 지혜를 알 수도 없으나 알지 못하게도 하셨다. 철학적, 논리적 지식, 또한 표적 등의 인간적 지혜인 세상 지혜로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사랑과 진리를 알 수 없도록 폐하시고는 세상적인 지혜와 총명의 가식적 믿는 자들이 미련한 자들이라고 인정하는 부름받은 믿는 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십자가의 도 즉 구원의 복음을 전한다고 하셨다.
오늘날 세상을 바라 보노라면 한마디로 험악한 세상이다. 불법과 불의, 반목과 대립, 거짓과 술수, 더욱이 믿음과 사랑은 조금도 찾아보기 힘든 세상에서 신자나 불신자 모두가 근심과 걱정 좌절로 활력이 없이 어두운 모습의 삶을 볼 때 가슴이 아플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슬픔과 고난을 당함으로 영생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의 고달픈 삶은 그 자체로서는 아무 가치도 없을지 모르나 하나님의 나라가 갑자기 도래하는 날에 그 가치를 인정 받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현세적인 삶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도록 노력해야 하는 순례의 과정임을 깨닫고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 은혜와 평강 속에서 반드시 승리 해야만 할 것이다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고전7:23-24).

< 이승고 - 토론토 영락교회 장로 >



[기쁨과 소망] 1마리를 찾아 나서라

● 교회소식 2015. 6. 12. 16:47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99명이 행복하고 1명이 불행할 때 자본주의에 물들은 사회는 그 불쌍한 1명을 희생 제물로 삼는다.
사고가 일어나고 적어도 한 번에 몇 백명이 희생당해야 사회가 조금 술렁인다.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메르스 사태에 현재까지 적은 희생자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 가운데 파장이 커지는 이유는, 내가 바로 그 1명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자신들의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작은 교회 목회를 하다보면 문제 가운데 있는 1명의 성도 때문에 설교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때가 있다.
그래서 가끔 상상해 본다. 1명 정도는 무시할 수 있는 정도의 많은 성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아니면 1명 정도 보이지 않아도 무시하고 설교를 할 수 있는 담대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고민하고 싶지않고 괜한 일에 말려 귀찮은 일을 해야하고 싶지 않다. 1명 정도는 무시해도 교회는 굴러간다.
여전히 성실히 봉사하고 순종하는 성도들이 있고, 사랑의 교제가 있으며 우리들은 화목하고 교회는 안전하다.
다수결의 원칙이 익숙한 사회와 교회에서 우리는 1명의 불행을 돕기 위해 다수가 희생하는 일들은 쉽게 결정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소수의 부와 권력을 위해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죽음을 강요하는 지배자가 많고 교회 안에서도 존재한다.

성경은 99마리의 양들을 들판에 버려두고 잃어버린 1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는 예수님의 목양 철학을 소개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참 바보같은 결정을 하신 것이다. 99마리를 떠나 1마리를 위해 험한 곳을 찾아다니는 위험과 희생을 선택하신 것이다.
특정한 한 마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한 마리 한 마리, 그렇게 백 마리 모두를 똑같이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이런 예수님의 마음으로 목회가 이루어지고, 정치가 이루어져야만 한다면 아마도 목사의 숫자와 정치가의 숫자는 엄청나게 줄어들 것이다.
99마리에 속해 있으면서 잃어버린 1마리를 위해 희생하는 목회를 따라야 한다면 아마도 성도의 숫자도 많이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길을 걸으셨다. 리더는 희생으로 다스리는 것이라고 그 길을 몸소 보여 주시고 제시해 주셨고,
이제 이 땅에 숨 쉬고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99마리의 안정을 떠나 잃어버린 1마리를 찾아 나서라고 명령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 명령에 순종한 분들에 의해 신앙은 전해지고 이어져 우리에게로 왔다.
1마리의 양을 소중히 여기듯 백성 하나를 소중히 여기는 지도자 때문에 우리에게 자유와 평등이 허락된 것이다.
우리들의 기쁘고 풍성한 축제 시간에도 예수님의 마음은 잃어버린 1마리의 양을 바라보고 계신다.

< 임함남 목사 - 베다니침례교회 담임목사 >



“예수 잘 모르고,동행 착각않나”

● 교회소식 2015. 6. 5. 17:35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밀알교회 창립20주년 감사부흥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고명진 목사와 경청하는 성도들.


밀알교회 부흥회, 고명진 목사 ‘오직 예수!’ 말씀

창립 20주년을 맞은 밀알교회(담임 노승환 목사)가 교회 창립에 참여했던 고명진 목사(수원 중앙침례교회 담임)를 강사로 초청해 20주년 감사부흥회를 5월29일부터 31일 주일까지 개최, 성도들이 풍성한 말씀의 은혜를 나눴다.


‘오직 예수!’(빌 2:5)라는 주제로 가진 이번 부흥회에서 고명진 목사는 첫날 ‘오직 예수!’(눅 2:41~51)라는 제목으로 설교한데 이어 사흘간 ‘인정받는 기도’(눅 18:9~14),‘만선보다 귀한 고백’(눅 5:1~11)등과 주일예배 ‘이렇게 살 순 없을까?’(마 21: 1~11), 청년예배 ‘요셉의 영성’(창 39: 1~6) 등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또 30일 오전 리더쉽 세미나에서는 ‘한 사람’(렘 5:1)이라는 제목으로 직분자들에게 말씀을 주었다.


고 목사는 ‘오직 예수!’ 제목의 설교에서 “우리들 인생과 신앙의 궁극적 목적지는 어디인가?. 목적지가 분명치 않고, 중요한 것을 잃었을 때는 불행하며 큰 상실감에 빠질 수 밖에 없다”며 “영원한 푯대 되시는 오직 예수를 바라보자”고 말씀을 전했다. 고 목사는 “우리는 예수를 잘 알고 함께 있다고 생각하지만, 잊고 살고 잃어버릴 때가 얼마나 많은지, 예수의 육신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도 유월절에 예수님을 잃어버렸음을 성경본문이 말씀하고 있다”고 상기시켰다.


그는 “신실했던 요셉과 마리아 조차 예수님을 잃어버린 이유는 ‘아버지 하나님의 집에 머무신’예수님에 대해 잘 몰라서였고, 자신들과 동행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했으며, 절기의 반복되는 형식과 습관으로 흐른 데다, 삶에 바빠서 챙기지 못했던 것”이라며 “우리들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고 지적했다. 고 목사는 “예수님을 지식으로만 알고 가롯 유다처럼 선생으로 여기는 게 아닌 구주로 알고 받아들이는 하나님의 참된 자녀로, 어느 누구 무엇보다 주님의 인정을 받으며, 영적으로 늘 옆에 계시지 않으면 혼미에 빠질 수밖에 없음을 알아 항상 초심을 회복하여 삶의 중심에 예수님 한분만을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자”고 역설, 성도들에게 깨우침과 은혜를 전했다.


< 문의: 416-226-4190 >



[평신도 글마당] 복음과 사역과 기도 (3)

● 교회소식 2015. 6. 5. 17:31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성서의 모든 말씀(福音) 은 성령의 말씀으로 간주되어야 하며, 성서가 가지고 있는 모든 평이하고도 단순하며, 능력과 덕이 함양 되어 있으며, 우아함이 있고 예의가 바른 말씀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인정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복음(성서)은 성령에 의해 감화받고, 영향받고, 도움을 받은 거룩한 사람들에 의해 쓰여진 책(복음, 성경,말씀)으로써 존중히 여김을 받는 주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고로 우리는 먼저 그 신성을 깨달아야 하고 또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의 관심을 다른 책들로부터 성서로 돌리며, 성경이 우리의 유일한 규범이라고 하여 <복음>을 우리의 행동 지침으로 삼기 위해서는, 먼저 나(우리)의 전 존재가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책이며, 거기에는 참으로 주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수록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시인하고 전적으로 믿어지고, 믿어져 야만 한다.


성서는 우리의 영혼을 점점 더 밝게 하여주고 우리의 인격을 점점 더 증진시켜 준다(잠4:18). 나는 내자신의 어두움을 인식하고 있는가? 이 성서(복음)의 말씀의 빛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나의 소경된 마음과, 어두어진 지각에 비추어 질 때, 나의 심령에는 영적인 새 아침의 서광이 비추어 오고, 샛별이 떠오르게 되고 이처럼 여명의 빛이 어두운 마음을 밝히고, 드디어는 원만한 광명에 이르러 성도의 교제에 큰 모본을 보이고 실천하는 아름다운 모습의 빛에 가까이 이르게 되어 <성도>간에 참 사랑을 가지는 형제,자매가 되는 것이다. 크리스천들은 모든 은사가 심령속에 내재하게 될 때 그 은사들은 성도 피차 간에 증진 시키게 되며, 강화시키게 되고, 또한 격려하고 새롭게 하여 준다. 즉 은사가 충만하면 선한 행위도, 경우에 합당한 말도, 풍성하게 된다.


우리는 크리스천에 입문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우리는 죄에 대항하여 거룩한 싸움을 싸워야 하며, 육과 세상 그리고 사탄 마귀와 싸우도록 소집을 당한, 거룩한 신앙인(성도)이 되었기에 ‘육과 영의 모든 더러움’을 벗어 버리고자 하였던 무리들의 진취적인 마음과 결단을 때때로 기억해 내면서 신앙생활을 하여야 될줄 믿는다. 모든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종이다. 모든 그리스도 인은 자유인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뭇 사람’을 공경하여야 되고, 형제를 사랑하여야 되고, <주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며>, 정직한 국민이 세워준 <정직한 권위자들>에게 최상의 공경을 드려야 한다. 진실함이 없는 칭찬과 아첨은 참된 그리스도인을 이루지 못하며, 거룩한 애정의 진실한 표현과, 사랑의 봉사와 수고만이, 그리스도인을 이루게 한다. 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만 우리의 행실은 진실되며 우리의 말은 참될 수 있다.


크리스천들은 얼마나 지혜롭고 조심성이 있어야만 하는가! 세상에는 다른 사람들의 범죄에 참여하게 되는 길이 너무나 많다. 즉 그것은 불의한 침묵, 게으름, 무관심, 사적인 기여, 공적인 지지와 협조, 내적인 시인, 또는 공적인 변호와 방어로써 이루어진다. 주여! 다른 사람의 죄에 동참한 나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지 않을수 없다.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거기에 자신을 적응시키고 참으며 그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과하신 것으로 여기는 것이 매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어떤 생활 형편에서라도 있는 그대로의 삶을 최대로 선용하는것, 그것은 우리의 지혜이며 의욕인 것이다. 세상이 ‘여호와의 것이라면’ 주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어디로 가든지 그곳이 곧 아버지의 땅이요, 즉 우리가 쉼을 얻을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우리의 두번째 고향인 <캐나다>인 것이다.


어느곳에서든지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될 수 있고 일치 되어야만 한다. 우리는 고통 중의 경멸 당함은 일반적인 다른 어느 것만큼이나 두려운 것임을 알자! 아름다운 마음을 지니고, 열심히 의무에 성실한 크리스천에게는 하나님께서 마음을 보살펴 주시는 것처럼 미덥고 위안스런 일은 없다. 주 하나님은 우리의 정직히 갈구하는 바를 성령의 역사 하심으로 우리의 갈구를 들어주신다. 주 하나님은 “아버지의 뜻에 맞는 것을 청하면 무엇이든지 얻게 되리라.” 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속에서 조금씩 변화를 일으켜 그 변화를 지속하도록 할 때, 나의 마음을 바꾸고, 새롭게 하는 것이 <갱신>하는 것이다. 즉 나의 체질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질적인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영적인 생활을 하는 정직하고 겸손한 사람은 늘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실천 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 김진규 - 밀알교회 장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