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사이먼 협회장 “공정하고 투명한 조사 촉구”

 

            중국 여자테니스 선수 펑솨이. AP 연합뉴스

 

세계여자테니스협회(WTA)가 앞으로 중국과 홍콩에서 대회를 개최하지 않기로 했다. 중국 여자 테니스 선수 펑솨이의 성폭력 폭로와 관련한 의혹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티브 사이먼 세계여자테니스협회 의장은 1일 협회 누리집에 올린 성명을 통해 중국에서 대회 개최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이먼 의장은 펑솨이가 폭로한 중국 최고위급 정치인의 성폭력 주장에 대해 중국 당국자들이 신뢰할 만한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고 있는 것을 대회 개최 중단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 당국은 펑솨이에 대한 검열을 중단하고, 펑솨이가 간섭이나 위협 없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며 “불행히도 중국 지도부는 이 문제를 신뢰할 만한 방식으로 다루지 않았다. 우리는 펑솨이의 성폭행 주장에 대해 공정하고 투명한 조사를 촉구한”고 밝혔다.

 

사이먼 의장은 “펑솨이가 자유롭게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자신의 성폭력 주장을 부정하도록 압박을 당하는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양심상 우리 선수들이 그곳에서 시합하라고 요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펑솨이는 지난달 2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이 장가오리 전 중국 국무원 부총리의 집에서 강제로 성관계를 가졌다고 폭로했다. 장가오리는 2013~2018년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을 지냈으며, 당시 중국 내 정치 서열 7위 안에 들었던 최고위급 정치인이다.

 

펑솨이의 폭로 글은 수십 분 만에 삭제됐고, 그는 2주 가까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세계 각국의 운동선수들과 인권 단체 등이 펑솨이의 안전을 걱정하는 메시지를 낸 뒤에야 펑솨이는 이메일과 화상 통화 등을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펑솨이는 자신의 성폭행 폭로가 사실이 아니라고 뒤늦게 부인해, 중국 당국의 강요로 인해 성폭력 주장을 번복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최현준 기자

 

‘아프간 탈출’ 여자축구 선수들이 유독 많을 수 있었던 건…

 레전드 포팔·나딤, 후배들의 ‘탈 아프간’ 용기 북돋다

포팔, 선수 엑소더스 지원…‘걸 파워’ 조직해 난민 여성 도와

스타 나담은 ’롤 모델’ 구실, 미국 리그 활약하며 의사 꿈도

 

지난달 18일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한 여자 청소년 축구 선수와 가족들이 영국 런던 공항에 도착해 버스로 이동하고 있다. 칼리다 포팔 트위터 갈무리.

 

지난 8월15일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뒤, 아프간 여자 축구 선수들의 집단 탈출이 이어지고 있다. 선수 수십명 혹은 가족을 포함한 100명 넘는 인원이 카타르, 포르투갈, 영국 등으로 탈출하는 사례가 이어지며 세계 언론이 주목하고 있다. 왜, 유독 여자 축구 선수들의 탈출이 이어지고 있을까?

 

첫 시작은 탈레반 함락 직후인 지난 8월 말에 있었다. 아프간 여자 축구 대표 선수와 가족 등 70여명이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의 도움으로 아프간을 탈출했다. 9월에는 여자 청소년 축구팀 선수들이 포르투갈로, 10월에는 여자 대표팀 선수 20여명과 그 가족 등 100여명이 카타르로 탈출했다. 지난달에도 청소년 축구 선수와 그 가족 등 100여명이 파키스탄을 거쳐 영국으로 이동했다.

 

여자 축구 선수들이 아프간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국가와 단체는 물론 유명 인사들의 협력과 지원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프간 출신 두 여성 축구인이 직간접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칼리다 포팔. 본인 트위터 갈무리

 

‘걸 파워’ 이끄는 칼리다 포팔, 탈출 주도

 

칼리다 포팔(34)은 자신이 이끄는 비영리 단체와 관계망을 활용해 아프간 여자축구 선수들의 탈출을 여러 차례 주도했다. 본인 역시 아프간 난민 출신인 포발은 현재 덴마크에 정착해 활동하고 있다. 어린 시절 체육 교사였던 엄마에게 몰래 축구를 배운 뒤 탈레반이 1차 집권(1996~2001)을 끝내고 물러가면서 2007년 아프간 축구협회의 도움으로 여자축구 리그를 만들었다. 그는 아프간 여자축구 국가대표팀 주장을 맡기도 했다.

 

뛰어난 실력은 곧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반여성주의자 등의 살해 표적이 됐고 위협에 시달리다가 결국 2011년 아프간을 떠났다. 그는 2017년 영국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떠나지 않으면 총에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만 말씀 드리고 아프간을 떠났다”고 했다.

 

인도와 노르웨이를 거쳐 덴마크에 정착한 포팔은 무기력했던 난민 센터에서의 경험을 살려 ‘걸 파워’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스포츠를 통해 무기력과 불안 상태에 놓인 난민 여성들의 체력과 자존감을 되살리는 활동을 했다. 이 단체를 통해 국제 인권단체 등과 협력하는 경험을 쌓았다. 이는 최근 아프간 여자축구 선수들의 탈출에 큰 도움이 됐다.

 

포팔은 카불 함락 직후인 8월 중순 <비비시>(BBC)와 <에이피>(AP) 통신 등과의 인터뷰에서 아프간 여자운동 선수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도움을 호소했고, 지난달 18일 청소년 여자축구 선수 등 130여명이 영국 런던 공항에 오자 “큰 기쁨의 날”이라며 이들의 도착을 축하했다.

 

나디아 나딤. 파리 생제르맹 누리집 갈무리

 

축구, 의학, 9개국어…아프간 소녀들 축구로 이끌어

 

포팔이 아프간 여자축구 선수들 탈출을 직접적으로 주도했다면, 아프간 출신으로 덴마크 국적의 세계적인 축구 스타 나디아 나딤(33)은 아프간 여성들을 축구의 세계로 끌어들인 롤모델 역할을 했다.

 

나딤은 12살에 아프간을 탈출해 덴마크에 왔다. 육군 장교였던 아버지가 2000년 탈레반에 처형당하면서 온 가족이 생명에 위협을 느꼈다. 위조 여권을 활용해 파키스탄-이탈리아-영국을 거쳐 덴마크 난민 캠프에 도착했다.

 

난민 캠프에서 축구에 몰두하기 시작한 나딤은 2005년부터 덴마크 여자 축구팀에서 공격수로 활동했고, 이후 스코틀랜드와 미국, 영국, 프랑스 리그를 거쳐 현재 미국 리그에서 뛰고 있다. 2009년부터 덴마크 여자축구 국가대표로 활동하며 총 99경기에 출전해 33골을 넣는 등 덴마크 여자 축구계의 레전드로서 입지를 굳혔다.

 

그의 성공 경험은 ‘롤 모델’로 작용해, 많은 아프간 소녀들을 축구의 세계로 이끌었다. 아프간 축구리그를 운영했던 샤픽 가와리는 2017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나딤은 많은 아프간 소녀들, 특히 축구 선수들의 롤 모델”이라며 “해외에서 활동하는 아프간 운동선수와 예술가들은 모두 아프간 청소년 수만 명을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아프간에서는 2007년 여자 국가대표 축구팀이 처음으로 네팔과 해외 경기를 치렀고, 같은 해 여자 축구리그가 꾸려졌다.

 

나딤의 인생 경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축구 선수로 뛰면서 외과 의사가 되기 위해 대학에서 의학 공부를 계속하고 있고, 아프간 언어인 다리어를 비롯해 덴마크어, 영어 등 9개 국어를 구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지난 9월 (CNN)과 인터뷰에서 “ 나는 탈레반이 여성들에게 원하지 않는 모든 것을 하고 있다”며 “나는 내 목소리를 내고, 평등하게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행사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무관중 개최’ 도쿄올림픽 전철 밟을 가능성 갈수록 커져

스위스 유니버시아드·남아공 주니어하키 등 잇따라 취소

 

대회 진행요원들이 지난 27일 중국 허베이 장자커우 겐팅 스노우 파크에서 열린 국제스키연맹(FIS) 스키 크로스 월드컵에서 마스크를 쓴 채 사회적 거리두기 안내판을 들고 있다. 이곳 경기장에선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프리스타일 스키 경기 등이 열린다. 장자커우/로이터 연합뉴스

 

개막을 약 두 달 앞둔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이 잇단 악재로 흔들리고 있다. 미국과 영국 등이 잇달아 외교적 보이콧을 시사한 데 이어 새로운 코로나19 바이러스인 오미크론 변이까지 등장하며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오미크론이 이미 홍콩까지 들어온 데다, 돌파 감염이 발생한 사실이 확인되며 우려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겨울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델타 변이가 퍼져 무관중으로 개최했던 도쿄올림픽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오미크론은 이미 각종 국제 스포츠 행사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은 다음 달 11∼21일 스위스 루체른에서 열릴 예정이던 2021 겨울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취소했다. 연맹은 29일(현지시각) 성명을 내 “코로나19 사태의 변화무쌍한 진행과 여행 제한으로 학생 선수를 위한 가장 큰 종합 스포츠 행사의 개최가 불가능해졌다”고 밝혔다.

 

다음 달 5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릴 예정이던 국제하키연맹(FIH) 여자 하키 주니어 월드컵도 취소됐다. 남아프리카는 오미크론이 비교적 심각한 지역이다. 대회 참가를 위해 남아프리카에 갔던 일부 선수는 세계 각국이 이곳 방문자에 대한 입국을 통제하며 발이 묶였다. 포르투갈에선 프로축구 구단에서 선수 17명이 코로나에 확진돼 몰수패를 당했는데, 이들 가운데 13명이 오미크론에 감염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세계적으로 국경을 통제하는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델타 변이 우려 속에서도 도쿄올림픽을 강행했던 일본 정부는 30일부터 외국인 입국을 전면 제한했다. 이미 오미크론 확진자가 발생하고, 호텔 내에서 돌파 감염도 확인된 홍콩은 30일부터 아프리카 일부 나라 입국자를 모두 막기로 했고, 다음 달 2일부터는 21일 내 오스트리아·벨기에 등 방문 이력이 있는 외국인 입국도 금지한다.

 

이처럼 국경 통제 움직임이 강화하면, 베이징올림픽도 악영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올림픽 등 국제대회 전문매체인 <인사이드더게임즈>는 29일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도쿄올림픽은 인류가 처한 (코로나) 터널의 끝이자 빛이 될 것’이라고 했지만, 매우 슬프게도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라며 “우리는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스포츠 이벤트(올림픽)의 운명을 걱정했던 때와 같은 상황에 있다”고 했다.

 

다만 중국은 아직 추가적인 외국인 입국 통제 정책을 내놓지는 않고 있다. 이미 모든 국외 입국자에 3주의 격리를 의무화하는 강력한 정책을 시행 중에 있어 올림픽 개최에 대한 불안감 확산을 막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특히 <환구시보> 등 중국 관영 매체는 이른바 ‘위드 코로나’로 불리는 단계적 일상 회복 정책을 비판하고, 중국의 강력한 봉쇄 정책을 지지했다. 또 중국은 ‘제로 코로나’ 상태이며, 중국이야말로 바이러스에 맞서는 ‘철옹성’이라고 강조했다. 이준희 기자

 

골프다이제스트 인터뷰서 투어 출전 희망

“한쪽 다리 잃을 위기감 있었다” 토로

 

   2019년 마스터스 대회에서 우승한 타이거 우즈. AFP 연합뉴스

 

“언젠가 복귀하지만, 풀타임은 아닐 것이다.”

 

지난 2월 자동차 사고로 재활 중인 타이거 우즈(44·미국)가 29일 <골프다이제스트>와 인터뷰에서 투어 복귀 희망을 내비쳤지만, 풀타임을 소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우즈는 “언젠가 투어에 복귀하지만 절대로 풀타임이 아닐 것이라 생각하는 게 현실적이다. 벤 호건이 그랬던 것처럼 1년에 몇 개 대회를 골라서 출전할 것 같다”고 말했다. 호건은 1949년 부인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버스와 정면충돌해 심한 부상을 입었지만, 재활에 성공해 이후에도 주요 대회에서 우승한 바 있다.

 

사고 뒤 처음 인터뷰에 응한 우즈는 30분간 이뤄진 화상 대화에서, “이것이 불행하게도 현실이다. 받아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허리를 다친 뒤에도 에베레스트 산을 올랐지만 이제 내 몸은 에베레스트 산을 오를 수 없다”고 인정했다.

 

우즈는 병원에서 겪었던 절망감도 소개했다. 오른쪽 다리뼈가 조각났던 그는 “(다리 절단 가능성이) 50대50에 가까워 다리 하나로 병원에서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 손은 남아 있는지 알아보려고 (여자친구) 에리카한테 아무거나 던져보라고 했던 적이 있다”고 돌아봤다.

사고 뒤 병상에 있으면서도 갖고 놀 골프채를 요구했던 우즈는 휠체어에 이어 목발로 옮겨가며 재활에 성공했고, 최근에는 연습장에서 스윙하는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우즈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중간도 못 왔다. 다리 근육과 신경을 더 발달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아버지한테 배운 강인한 정신력이 재활을 도왔다”는 우즈. 우즈는 “아무리 긴 고통이라도 하나씩 잘라서 견디라는 게 아버지의 방식이었다. 9개월 동안은 지옥이었지만, 두세 시간은 견딜 수 있다. 두세 시간 견디는 걸 반복하면 몇 달이 된다. 그게 쌓여서 이만큼 왔다”고 설명했다. 김창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