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성완종 수사,대통령 표정에 보인다

● 칼럼 2015. 7. 10. 18:15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자금 수사 결과가 발표됐다. 이상수 의원이 32억6천만원을 받아 최다액수를 기록했다. 죄가 가장 무겁다. 그런데 대통령은 감동을 받았다. 32억6천만원은 선거 때 이 의원이 대선캠프로 가져온 액수와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이다. 여러 군데에서 받은 거니 조금 비어도 눈치채는 사람이 없으련만 1만원짜리 한 장 새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이 의원을 ‘마음으로 쫓기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며 미안해했다. 나중에 노동부 장관을 시켜줬다.
반면 어느 의원은 10분의 1도 안 되는 돈을 받았는데 대통령이 실망했다. 실제 캠프에 들어온 돈이 검찰 발표액의 절반밖에 안 된 것이다. 반은 캠프에 내놓고 반은 개인적으로 쓴 거다. 대통령은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았으나, 다시는 그를 청와대로 부르지 않았다. 그 의원은 지금 ‘비노’로 분류된다. 검찰에게는 불법자금의 많고 적음이 중요하겠지만 대통령의 판단 기준은 ‘정확한 배달’이다.


# 검찰은 2일 성완종 리스트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명단에 오른 8명 가운데 이병기 비서실장을 포함한 6명은 처벌하지 않기로 했다. 공교롭게도 모두 대선자금 성격의 돈이다. 사건 초기에 6명은 다들 대통령에게 해명을 했다고 한다. 돈 받은 적이 절대 없다고. 그러니 이제 개운해진 걸까? 그저 죽은 자의 억하심정이었을 뿐인가? 아마도 가장 찜찜한 사람은 대통령일 게다. 대선 자금의 내막을 훤히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진짜 듣고 싶은 얘기는 이런 거다. “3년 전 보고드렸던 돈이 바로 성완종으로부터 온 겁니다.” 그리고 액수가 1만원짜리 한 장 빠지지 않을 때 한없는 신뢰가 솟아날 거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귀를 씻어내도 “사기꾼은 결코 자살하지 않는다”는 말이 귓전을 맴돌 것이다.


# 요즘 나라 걱정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병기 비서실장이 큰 걱정이다. ‘소통의 달인’이라고 해서 비서실장에 앉혔는데 도대체 존재감이 없기 때문이다. 메르스로 난리가 나도, 유승민으로 시끄러워도 어디서 뭘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이 때문에 문고리 3인방으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다느니, 대통령과 독대 한번 못 한다느니 하는 소문들이 곰팡이처럼 피어나고 있다. 나도 어느 장관으로부터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자주 전화를 걸어와 이런저런 문제를 상의했는데, 이병기 실장이 와서는 전화가 뚝 끊겼다고 한다. 어쩌다가 전화를 해도 텔레비전 저녁 뉴스에 나온 걸 두고 “어떻게 된 겁니까”라고 묻는 정도란다. 그나마 대통령이 뉴스를 보다가 전화로 물어보니 어쩔 수 없이 대신 묻는 분위기란다. 그야말로 ‘전화연결원’의 역할이다.
이병기 실장이 누구인가. 노태우 김영삼 박근혜 대통령을 만들어낸 ‘킹 메이커’다. 특히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시절 ‘천막 당사’를 생각해내 당을 구해낸 책사 아닌가. 그토록 출중하던 능력이 연기처럼 사라진 거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지만 난 자꾸 돈 냄새가 맡아진다.


# 근래 대통령이 사람을 피한다고 한다. 꼭 유승민, 정의화만의 문제는 아니다. 공식행사 때는 대개 접견실에 먼저 들러 내외빈과 담소를 나누고 행사장에 함께 들어가는 게 관례인데, 요사이는 시간에 딱 맞춰 행사장으로 직행한단다. 바야흐로 불신의 계절이다.
대통령은 속마음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성격이다. 그러니 성완종 수사가 제대로 됐는지 여부는 굳이 특검 결과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대통령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면 짐작할 수 있다. 문제가 된 김기춘, 허태열, 홍문종, 이병기, 서병수, 유정복을 만나는지, 만나면 예전처럼 반갑게 맞이하는지가 시금석이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일이 하나 더 늘었다.
< 김의겸 - 한겨레신문 디지털부문 기자 >



[1500자 칼럼] 교회의 위기 Ⅱ

● 칼럼 2015. 6. 26. 15:51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앞에서 우리는 교회의 위기를 말하면서 교회는 태생적으로 죄와 적그리스도의 공격에서 위기를 맞고 있음을 말했다. 기독교회사에 있어 위기가 늘 있어 왔음을 기억하고 오늘의 위기에도 극복하고 이겨야 함을 생각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내적 진단을 하려고 한다. 사람의 몸이 약해지면 추위나 더위도 견디지 못해 쓰러지고 작은 감기라 생각한 것이 폐렴으로 발전하고 생명을 잃게 되기도 한다. 그것은 질병을 이겨 낼만한 건강하지 못한 육체 때문이다.
오늘의 교회는 어떤가? 실제로 다양한 적들의 공격을 감당할 수 있는 건강한 교회가 아닌 것 같다. 지금 교회의 모습은 아직 공격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고 또는 공격이 있다 해도 능히 이긴다는 자기 과신에 빠져있는 것 같다. 이유는 아직도 교단간의 파벌 싸움이나 교회 내의 부패상을 진단해 보면 뻔한 이야기가 된다. 생각해 보라. 전쟁이 일어나는데 부부싸움 또는 정쟁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그럼 어떻게 교회는 이런 허약한 체질이 됐는가? 그동안 한국 교회를 보면 어느 정도 감지가 된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성장 위주의 교회로 교인만 많으면 목회의 성공으로 생각하여 작은 교회를 무시하고 대형교회를 이루기 위해 발버둥질을 쳤다. 그래서 전도가 아닌 사람을 끌어오기만 하면 금반지를 주고 세탁기를 주기도 했다. 오죽하면 대형교회가 한국 교회를 망쳤다는 말이 있겠는가?
대형교회의 모습도 그렇다. 한 대형 교회의 목사님의 고백에 의하면 자신이 그 교회에 부임할 때 4만 명의 교인이라 들었는데 부임하고 보니 1만5천명 정도였다고 했다. 이 말은 이사를 갔거나 다른 교회로 옮겨도 자존심 때문에 재적수에 그냥 두고 허수를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한 때 한국 기독교인 수가 천만 명 이상이라 했으나 지금 반 토막이라는 말도 있다.


성경공부를 했지만 이론적으로 그리고 이성과 논리 위주의 공부였지 말씀에 감동하여 변화를 일으키지는 못했다. 과거 교회는 말씀 앞에 설 때 눈물과 함께 대 각성 그리고 회개의 시간이었다. 그래서 사경회와 부흥회를 통해 회개의 운동이 크게 넘쳤다. 그런데 부흥회는 프로 부흥사들이 강단 위를 펄쩍펄쩍 뛰는 재주나 성대묘사 같은 것으로 마치 극장 쇼를 보는 기분을 느끼게 만들어 말씀의 시간이 코메디의 한 부분과 같았고 그런 사람들이 인기 부흥사였으니 성도는 어찌 되었겠는가?
회개가 그리 쉬운가? 말씀에 깊이 뛰어들지 않으면 결코 회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목회자들이 회초리를 들고 대중이 보는 앞에서 자신들의 종아리를 때리는 모습을 본다. 자성의 모습이라 보이지 않는 것은 왜 그럴까? 어찌 한 두 마디로 교회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이런 저런 결과로 목회자에게는 패배의식이 팽배했다. 이렇게 저렇게 한다고 되겠는가? 하는 그런 마음이 부흥회를 한다고 되겠는가? 부흥회? 그냥 교회 행사로 때우기도 하고 모이지도 않을 부흥회를 뭣 때문에 하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보신주의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목회자나 성도가 모두 허약한 체질이니 어찌 외부에서 들어오는 박테리아를 막겠는가? 그러니 교회당 문에 신흥이단이라 말하는 신천지 교인이 교회에 출입하지 말라는 경고문을 부치는 것으로 막아낼 줄 안다. 어떻게 보면 마치 질병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방문에 걸어놓고 우리는 건강합니다 하는 식이 아닐까? 도무지 질병에 대한 면역성을 지닌 건강한 교회가 아닌 것 같다.

이쯤에 이르러 우리는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하고 탄식하시던 주님의 음성이 한국교회야 한국교회야 하고 부르짖는 것 같아 참으로 괴롭다. 이제 우리는 각성을 하고 감람산으로 올라가 기도하고 누군가 앞장을 서 골고다에서 희생의 번제를 드려야 할 것이다.

< 김경진 - 토론토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담임목사 >



[한마당] 영혼을 훔친 글쟁이

● 칼럼 2015. 6. 26. 15:48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신경숙 씨가 표절논란에 휩싸였다. 일본의 극우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지적이 나오더니, 흡사 고구마 줄기를 뽑아올리는 것처럼 수많은 표절 사례들이 ‘치맛자락 걷어 올려지듯’ 민망하게 들춰지고 있다. 일주일 만에 시인과 사과의 뜻을 밝혔지만, 영 입맛이 개운치가 않다. 한국문단의 체면을 구긴데다. 수많은 그의 독자들 자존심과 순수한 문학정서에 큰 상처를 주었기 때문이다. 몇몇 출판사가 인기작가를 에워싸고 돈과 권력을 누리며 표절논란을 뭉개왔다는 치부까지 드러났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한국 사람들은 여러 부문의 스트레스와 자괴감에 안절부절인 상황이다. 세월호 참사와 뒤이은 메르스 사태, 그 전후로 쉴 새 없이 터지고 운위되는 스캔들과 무책임과 퇴행의 현상들에 피로감이 치솟은 상태다. 먹고살기 힘들고 취업난이 극에 달한 경제나 나아지면 좋으련만, 호전의 기미가 도무지 안보인다고 한숨들이다. 무엇보다 민주주의 후퇴와 독재적 리더쉽 부활, 안보불안, 인권 경시 등 정치적·사회적 후진성이 국민을 지치게 만들고 해외에서도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 마당에, 문화 영역까지도 국제사회의 웃음거리를 제공했으니, 그야말로 총체적인 난맥상이 아닐 수 없다. 이젠 어디서 또 한국의 민낯을 드러낼지 두려울 정도다. 부끄럽고 슬프긴 하지만 어쩌면 이 시대와 사람들과 권력이, 그 의도와는 달리 그동안의 한국적인 허상과 거품을 들추고 걷어내는 자학적이고도 역설적인 전환기를 만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로소 솔직·정직한 자화상을 드러내고 인식할 반면교사로 말이다.


신경숙이 표절했다는 ‘우국’은 어떤 작품이며, 미시마 유키오는 어떤 인물인가. ‘우국’(憂國)은 일본 군국주의 극우 천황파 청년장교들의 쿠데타인 1936년 2.26사건을 소재로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하기 위해 할복자살을 감행하는 젊은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소설이다.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는 노벨상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후배이며 화려한 문체의 탐미적 작품들로 당대 최고의 명성을 누린 작가이긴 하지만, 그 역시 극우 군국주의자였다.
필자의 졸저 ‘일본의 망령, 우익-그 뿌리와 번식’(1997)을 보면 297~301페이지에 미시마 유키오의 사상과 충격적인 할복사건 전말이 상세히 나온다. 1970년 11월25일 도쿄의 육상자위대 동부방면 총감부 건물에 자신이 조직한 ‘방패회’(楯の會) 회원 5명과 함께 난입해 총감을 결박하고 위협해 자위대원들을 연병장에 집합시킨다. 그리고 천황 친정체제 복귀를 위해 자위대가 총궐기하자고 피를 토하듯 연설하다 반응이 없자 돌연 일본도를 꺼내 배를 갈랐다. 그는 국가주의와 천황사상에 함몰되어 허상을 좇은 이른바 ‘예술우익’이었다.


아무리 그의 문체가 아름답기로서니, 식민의 원흉인 군국주의에 물든 일본작가의 문장을 훔쳐서 한국 대표작가의 명성을 쌓았다는 것을 어찌 봐야할까. 요사이 군국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아베 정권의 득세와 교만의 눈에 한국과 한국의 문학은 과연 어떤 모양으로 비칠까.
 『글에도 마음씨가 있습니다/ 고운 글은 고운 마음씨에서 나옵니다/ 고운 마음으로 글을 쓰면/ 글을 읽는 사람에게도/ 고운 마음이 그대로 옮겨 가서/ 읽는 사람도 고운 마음이 되고~
글에도 얼굴이 있습니다/ 예쁜 글은 웃는 얼굴에서 나옵니다/ 즐거운 얼굴로 글을 쓰면/ 글을 읽는 사람에게도/ 정겨운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서/ 읽는 사람도 웃는 얼굴이 되고…』
오광수 시인은 ‘글에도 마음씨가 있습니다’라고 썼다.


글에 어디 마음씨 뿐인가. 글에는 사상과 철학과 삶이 녹아 들어있다. 쓰는 손은 한낱 도구일 뿐, 글은 온 몸으로, 영혼으로 쓰는 것이다. 글은 남이 읽으라고 쓰는 것이다. 자기만 읽겠다고 쓰는 일기조차 사실은 남겨서 남에게 보이겠다는 욕망이 숨어있기도 하다. 일기를 책으로 펴낸 이들도 많찮은가. 그렇게 글은 남의 생각과 정신세계에도 영향을 준다. 기자들의 글이 때론 세상을 바꾸듯이, 작가들의 글은 수많은 독자들의 삶과 영혼에 빛과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래서 글쓰기가 어렵고 두렵고…쓸 때마다 떨리는 것이다.
틀림없이 명문·명작을 만들겠다는 욕구와 강박감이 커질수록 베끼기와 짜깁기 유혹 또한 강하게 밀려들게 마련이다. 그 치명적인 유혹을 떨쳐내느라, 글쟁이들의 머리가 쇠고 유명작가들이 영육(靈肉)의 진을 쏟아내는 것이리라. 표절은 그런 원작자의 마음과 영혼을 훔치는 도적행위에 다름 아니다. 비단 문학작품이나 보도용 글 뿐만이 아니다. 온갖 논문을 표절하는 교단과 학술계의 몰양심적 행태들도 뿌리 뽑아야 할 적폐다.


< 김종천 편집인 >



[사설] 북한인권사무소 개설과 남북관계

● 칼럼 2015. 6. 26. 15:46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유엔 북한인권사무소가 23일 서울 종로구에서 문을 열었다. 북한 인권 상황을 점검하고 개선책을 마련하기 위한 유엔 차원의 첫 현장사무소다. 예상대로 북한은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북한 인권 증진이라는 목표를 이루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북한 당국은 최근 ‘북한인권사무소가 서울에 끝끝내 설치된다면 공공연한 대결 선포로 간주하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무자비하게 징벌하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북한은 또 사무소 개설 등을 이유로 새달 열리는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통보해왔다. 북한의 이런 태도는 국제사회와의 골을 더 깊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해 2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1년 동안의 조사를 토대로 북한에서 반인도적 범죄가 자행된다는 보고서를 냈으며, 이번 사무소 설치는 그 후속 조처 가운데 하나다. 인권은 보편적인 가치다. 북한은 자신의 인권 문제를 부인할수록 국제사회의 압력이 더 커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 또한 중요하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식이어서는 갈등의 가능성만 키우고 실제 북한 주민의 인권은 더 나빠질 수 있다. 북한 당국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인권 대화’의 틀을 만들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인권 문제 제기가 체제에 대한 공격은 아니라는 점을 북한 권력층에 확신시켜야 한다. 북한 체제가 바뀌지 않으면 인권 문제도 풀리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이 적잖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과거 여러 사례를 보더라도 체제 문제를 앞세워서는 인권 문제에서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


남북관계에서도 새로운 접근이 요구된다. 북한은 인권사무소를 눈엣가시처럼여길 것이다.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나쁜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그럴수록 남북관계를 잘 풀어야 할 당위성이 커진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가장 실효성 있는 접근법은 남북 교류·협력을 활성화해 양쪽 당국이 함께 북한 주민의 삶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곧 남북관계와 북한 인권 문제 개선 노력이 함께 가야 한다. 이는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고 핵·미사일 등 안보·정치 문제를 풀기 위한 기반을 강화하는 일이기도 하다.
북한 인권 문제는 양날의 칼이다. 남북관계가 좋으면 북한 주민의 실질적인 인권 증진으로 이어지고, 남북관계가 나쁘면 새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 북한인권사무소 활동보다 중요한 것은 꽉 막힌 남북관계를 푸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