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회의 역사에서 위기가 없은 적은 없다. 초기 기독교는 신앙의 박해로 과연 교회가 온전히 설 수 있겠는가 하는 위기로 갔으나 성도와 교회는 모든 박해를 이겨냈고 결국 로마의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 신앙의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그 신앙의 자유는 오히려 위기를 가져왔으니 신학의 정립을 위한 교회 내의 갈등이 있었고 그에 따라 이단과 사이비 종파들의 범람으로 신경을 제정하기에 이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보담 더 큰 위기는 교회의 자유에 따른 부패였다. 성직자나 성도들의 윤리와 도덕은 여지없이 무너졌고 그 모든 죄악에서 벗어나고자 수도원 운동으로 세상과 교회를 벗어나려고 했다. 그래서 루터와 칼빈이 교회의 개혁을 부르짖으면서 결국 교회는 로마 가톨릭과 오늘의 기독교회로 나누어졌다.
그러나 그렇게 개혁을 부르짖은 기독교회가 모든 문제를 해소한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도 역시 갈등이 생겨 나름의 신학적인 주장과 자세에 따라 교파가 생겨났으며 그와 함께 19세기에 들어와 이성과 자유주의 물결이 교회를 흔들었으니 기독교의 근간이 되는 성경이 부정되는 위기도 있었다.
그 후 다윈과 같은 진화론자들이 성경의 창조론을 비판하고 나설 때 교회는 큰 위기를 맞는 것 같았다. 구라파와 미국의 학교는 진화론을 가르쳤고 교회가 가르치는 창조론은 근거가 없는 것처럼 보여졌다. 그러나 교회는 이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창조를 믿고 있다.
오늘에 와서 교회는 또 위기를 맞고있다. 그것은 소수 성애자를 위한 인권의 차원에서 나온 것이라 주장하여 동성애 용인이 각 나라와 교회에서 크게 주장되고 있다. 캐나다는 이미 동성 결혼이 법제화되었고 오늘의 공립학교는 그 교과과정에서 지나치다 할 정도로 성생활을 가르치게 하려고 한다.
미국의 기독교단들도 서서히 인정을 하고 무너지고 있다. 교단의 분립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대세를 이루고 있으니 진정 바른 믿음을 가진 교회는 다시 외로워지고 골리앗과 대적하는 전투에 혼자 싸워야 하는 다윗의 입장에 서 있는 것 같다. 청교도의 정신으로 세워졌다는 미국도 앞으로 기독교회들이 핍박받을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하는 빌리 그래함 목사의 아들 프랭크 그래함 목사가 한 말은 무엇일까?
세상은 어쩌면 무관심하면서 오늘의 기독교회의 위기를 그리고 신앙적 전쟁을 구경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모든 결과는 공립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모든 부모와 가족들에게 돌아오는 결과물일 것인데.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언제 교회에 적과 위기가 없은 적이 있는지. 미국의 로렌 미드 박사는 서구 교회의 쇠퇴 원인으로 교회에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으니 이제 적이 생겼고 공격을 받고 있다면 교회가 다시 새로워질 기회가 아닐까?
문제는 위기가 아니다. 위기를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교회의 안일함이다. 바리새인을 비난하고 그들의 외식을 비판하던 교회들이 언젠가 그들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그대로 애기를 낳으려 하나 힘이 없어 산모와 애기 둘 다 죽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이제 교회는 진정으로 개혁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목회자부터 그리고 성도들이 결단하고 주께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왔다. 사무엘의 부르짖음에 따라 미스바로 모이던 것처럼.
< 김경진 - 토론토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담임목사 >
'●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설] 인종문제 심각성 재확인한 미 볼티모어 사태 (0) | 2015.05.09 |
---|---|
[사설] 무력한 한국 외교, 사람·전략 모두 바꿔야 (0) | 2015.05.09 |
[칼럼] ‘성완종 게이트’와 유체이탈 언론 (0) | 2015.05.09 |
[사설] 구조엔 무능, 진압엔 잔인한 정권 (0) | 2015.04.26 |
[사설] ‘지중해 난민 참사’와 유럽의 책임 (0) | 2015.04.26 |
[기고] 우리는 모두 ‘416 세월호 세대’ 다 (0) | 2015.04.26 |
[1500자 칼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0) | 2015.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