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박근혜의 하얀 손수건

● 칼럼 2015. 4. 18. 19:23 Posted by SisaHan

지난해 7.30 재보궐선거 때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주세요’라는 말을 처음 꺼낸 건 당시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다. 이 희한한 개그 캠페인은 선거전 내내 계속됐고, 선거판에 먹혔다. 새누리당은 압승했고, 박 대통령은 눈물을 말끔히 씻어버렸다.
당시 이 캠페인을 앞장서 실천한 것은 다름 아닌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였다. 그들은 세월호 참사를 저희가 타고 갈 꽃가마쯤으로 여겼다. 나뭇가지라도 꽂으면 된다고 생각했는지, 온갖 공천 장난을 다 쳤다. 유권자는 안중에도 없었고, 지기로 작정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짓이었다. 그로 말미암아 ‘박근혜의 눈물’만 씻어주었고, 유가족들에겐 더 많은 피눈물을 요구했다.
야당으로부터 압승을 진상받은 뒤 이 정권은 일찍이 유례가 없었던 무능과 무책임에 교만까지 더했다. 그 추종자들은 심지어 시체장사라는 패륜의 욕지거리까지 입에 올리며 희생자와 유가족을 조롱했다. 그건 지금까지 계속된다. 국가예산에서 배정하는 건 쥐꼬리만큼에 불과한데, 총 배상금이 칠팔억이라느니, 누구는 십억이라느니… 유가족을 돈에 환장한 사람들로 몰아간다.


유가족들이 간절하게 요구해온 진상 규명에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10개월여 동안 진을 뺄 대로 뺀 다음 조사권만 갖는 진상규명특별위원회 구성에 동의했다. 그리고 근자엔 특별조사위원회를 정부가 통제하도록 하는 시행령(안)을 제시했다. 피의자가 수사권을 갖게 한 것이다.  선령을 30년 이상으로 늘리고, 증개축을 허가하고, 과적을 눈감아 주었던 게 바로 그들이었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을 때 구조요청도 제대로 접수하지 않았고, 뒤늦게 출동해 승객을 버린 승무원들만 구했고, 승객을 구조하려는 민간 어선들을 위험하다며 막았던 것도 그들이었다. 침몰한 뒤 희생자 수습도 온갖 핑계를 대며 늑장을 부렸다. 선체 인양을 처음 주장한 것도 다름 아닌 이 정부였다. 참사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다. 수습이 끝나가는 듯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이 정부는 인양 비용이 수천억, 많게는 5천억원이나 든다며 인양 불가론을 폈다.


그 꼴을 다 보고 들은 국민 앞에서, 박 대통령은 ‘선체 인양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다. 조사위를 바지저고리로 만드는 시행령(안)에 대한 반발이 비등할 때였다. 그걸로 논란을 덮자는 뜻이었다. 대통령령 즉 대통령의 명령인 시행령에 대해 그가 일언반구도 안 한 것은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행령(안)을 성안한 건 해수부라지만, 대통령의 이름으로 반포하고 집행하는 것이니, 그 내용은 대통령의 뜻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소관부처라고 함부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선체 인양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에 필요한 하나의 조처일 뿐이다. 물론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안전사회에 대한 국민의 염원을 상징하는 장치가 될 수도 있겠지만, 조사 과정에서 세월호는 조사의 출발점일 뿐이다. 진상 규명에 선행하는 조처가 될 수 없다. 유가족들이 그렇게 선체 인양을 요구해온 것도 다름 아닌 진실 때문이었다. 선체는 진실 규명과 맞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게 이 정부는 지금까지 유가족과 뜻있는 국민을 속이려 했다.


혁명이 어려우니, 선거를 통해 집권자의 무능 무책임 실정 오판 교만을 심판하자는 게 민주주의고, 국민을 대신해 견제자이자 심판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게 야당이다. 그러나 지난해 이 나라 야당은 심판은커녕 정권의 방패막이 구실만 했다. 유권자로 하여금 도저히 저희를 선택하지 못하도록 분탕질과 자중지란을 벌여 ‘박근혜의 눈물’이나 닦아주고, 결과적으로 정권에 면죄부를 주는 밑씻개 노릇을 했다.
그 참담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한데, 야권에선 다시 그 판이 벌어지고 있다. 당 대표까지 한 사람들이 당에서 뛰쳐나가, 저희가 망가뜨린 새정치민주연합을 심판하자며 선거판에 뛰어들었다. 당내 소지역주의자들은 이 분란을 이용해 지분이나 챙기자고 등 뒤에서 총을 쏘아댔다. 차라리 조용히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을 일이지, 세월호 참사의 제상에 침이나 뱉고 있었던 것이다. 국민의 떼죽음을 방관했던 자들이 나라마저 침몰시키는 걸 소원하지 않고서야 할 수 있는 짓이 아니다.


청와대가 찌라시 공작소로 전락하고, 내시들이 국정을 쥐락펴락하고, 그들이 이편저편 나뉘어 권력 투쟁을 벌여도 정권이 무사한 건 그런 야권 정치인들 때문이다. 나라 살림을 수십조원씩이나 구멍 내고, 담뱃세 왕창 올리고 샐러리맨 월급봉투를 탈탈 털어내어 구멍을 메우려는 이 정부가 멀쩡한 것도 그런 야당의 존재 때문이다. 박종철씨 고문치사 및 축소 왜곡 사건을 정권의 각본대로 수사한 검사가 이 나라의 대법관 후보자가 되어 큰소리칠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참사 고통을 함께 나누는 이들이 간절히 원하는 건 하나다. 진실 규명으로 유가족 피눈물을 씻어주는 일이다. ‘박근혜 가짜 눈물’을 닦아주는 게 아니다.
< 곽병찬 - 한겨레신문 대기자 >



[한마당] 부활한 백합과 측은지심

● 칼럼 2015. 4. 11. 17:55 Posted by SisaHan

부활절을 앞두고 어느 목사님이 예쁜 백합 화분을 하나 선물해 주셨다. 고맙고 기쁜 마음으로 집에 들고 와 백합이 든 비닐봉지를 꺼내놓는데… 이런! 봉오리 하나가 고꾸라져 있지 않은가. 운반도중 봉지 속에서 아마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 3개의 봉오리 가운데 하나는 활짝 피어 우아하고 예쁜 자태를 뽐내며 잘 버티고 있는데, 통통해서 곧 피게 될 봉오리 2개 중 하나가 꽃대의 상처로 고개가 푹 꺾여진 것이다. 이를 어쩌나, 이 봉오리는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시들어버리게 될까. 가여운지고… 안타까운 마음에 응급조치를 해보기로 했다. 꺾인 꽃줄기 부분에 반창고를 두르고, 옆 꽃대에 고무줄을 걸어 버틸 수 있게 바로 세웠다.
그런데, 이렇게 반가울 수가! 꽃봉오리가 생기를 띄는 것 같더니 부풀어 올라 꽃잎을 내밀기 시작한다. 마침내 부활절 아침, ‘부활절의 꽃’ 답게 웃음 가득 머금은 곱고 뽀얀 얼굴로 활짝 피어난 것이다. 아이구 하나님, 감사합니다! 백합에게도 부활을 주셨군요!
하찮은 식물도 상처를 싸매는 작은 손길 하나가 부활의 기쁨을 안기는구나~. 신기함과 뿌듯함에 부활절의 의미가 더욱 새로워진 것은 물론이다. 죄악과 온갖 상처에 찌든 사람들에게 생명의 부활을 깨우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대속(代贖)이란…도저히 비교할 수야 없는 일이지만.

우리는 듣지도 보지도 말도 못하는 헬렌 켈러를 사랑으로 돌본 앤 설리반 선생의 이야기를 안다. 하지만 설리반 자신도 엄청난 상처와 장애를 극복한 인간승리의 주인공임을 아는 이는 많지않다. 설리반은 엄마가 죽고 아빠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보호소에 보내져 동생마저 죽자 그는 충격에 자살을 시도하고 실명과 정신이상이 됐다. 치료도 포기상태에서 로라 라는 한 간호사가 그녀를 자원해 돌보기 시작했다. 철벽처럼 닫히고 굳어진 설리반의 마음이 변하고 열린 것은 2년이라는 긴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그렇게 로라의 사랑의 손길은 그녀를 신앙으로, 또한 학교 우등생으로 부활시켰다. 그리고 설리반이 눈 수술로 시력을 되찾아 읽은 한 신문에서 ‘보도 듣도 말도 못하는 아이를 돌볼 사람을 구한다’는 구절을 읽고 “내가 받은 사랑을 갚겠다”며 찾아가 48년간이나 헌신해서 길러낸 인물이 바로 헬렌 켈러였던 것이다.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린 ‘생명을 구하는 포옹’(The Rescuing Hug) 혹은 ’사랑의 터치’라는 사진과 실화가 있다. 95년 미국 매사추세츠의 메모리얼병원에서 12주나 빨리 태어난 쌍둥이 조산아 자매가 서로 다른 인큐베이터에서 자라게 됐다. 그런데 심장에 문제가 있던 한 아이의 상태가 갈수록 나빠져 생명이 희미해져 갔다. 마침 오랜 경력의 간호사가 엄마 뱃속처럼 한 인큐베이터에 넣어보자고 제안해 같이 있게 했을 때,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아직 눈도 뜨지 않은 상태인데, 건강한 아이가 손을 뻗어 병약한 아이를 감싸 안았고, 죽을 고비를 헤매던 아이는 놀랍게도 호흡과 맥박이 정상으로 돌아와 나날이 호전되어 갔다. 이후 무럭무럭 자란 아이들이 꿈에 부푼 소녀들로 자랐다는 사실을 조엘 오스틴이 ‘긍정의 힘’에 소개해 세상에 감동을 전했다.

크든 작든 따뜻한 사랑의 손길이 사람을 살린 사례는 드물지 않다. 그 사랑의 힘은 우리가 함께 어울려 살아가며 서로 돌보고 서로 부축해 주어야 함을 일깨운다. 상처와 고통으로 낙심하고 절망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힘과 용기가 되어주는 일. 눈물 흘리는 이들을 위로하고 감싸주는 마음, 그런 측은지심(惻隱之心)과 긍휼의 발로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가르친 예수는 원수도 사랑하라고 말씀했다. 맹자는 측은지심을 남의 불행과 어려움, 고통을 보면 불쌍히 여겨 도우려는 사람의 본성이라면서, 그런 마음이 없다면 인간이라 할 수 없다고까지 단언했다.
우리는 아주 작고 하찮은 손길에도 위대한 결실을 맺는 사랑의 힘을 목도하며 감동하곤 한다. 그런데도 말처럼 쉽지 않은 게 또한 사랑과 긍휼의 손길 내밀기다. 이런저런 형편 때문에, 바빠서, 내 일이 아니니까, 내편이 아니어서…, 그렇게 메마르고 무정할 때가 너무나 많다. 부족한 이들을 비웃고, 모자라다고 업신 여기고 짓밟고, 아파하는 이들의 가슴을 후벼파지 않으면‥그마나 다행일 정도다. 그런 매정함에 둔해져 가는 현실이 더 무섭다. 갈수록 인간다움을 잃어가며 삭막한 기계인간의 세상으로 달려가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에 스스로도 자문해본다. 너의 측은지심은 살아있는가. 주변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가. 사랑의 손길을 내밀 줄 아는가? 나의 작은 ‘사랑의 터치’가 언제 나에게 닥쳐올 ‘생명을 살리는 손길’이 될지 알 수 없다는 것을 아는가.


< 김종천 편집인 >



일본 문부과학성이 6일 ‘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이고 한국이 이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긴 중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를 확정했다. 구체적인 검정 결과를 보면, 사회과의 역사(8종), 공민(6종), 지리(4종) 등 모두 18종의 교과서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빠짐없이 위와 같은 일본 정부의 견해를 반영한 독도 기술이 들어갔다.


독도와 관련한 일본 교과서의 왜곡 기술이 보편화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4월 이번과 비슷한 내용의 초등학교 5,6학년 사회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킨 때부터다. 이번 중학교 교과서는 그 후속인 셈이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의 근원은 2006년 아베 신조 제1차 내각 때 통과된, 애국심을 강조하는 내용의 교육기본법 개정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베 정부는 이 법에 따라 지난해 1월 교과서 검정 기준과 학습지도요령 해설서를 개정해 본격적인 초중등 교과서 왜곡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사이에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2012년 8월10일)을 계기로 갈등의 수위가 높아지긴 했지만, 교과서를 통한 독도 도발은 기본적으로 보수화하고 있는 일본 정부의 ‘장기 기획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일본의 독도 도발에 엄정하고 강력하게 대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독도 도발은 일본이 물리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한 명백한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가 점유하고 있다는 현상을 변경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영토와 관련해 국민정서가 예민하다고 해서 새로운 시설물을 설치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과잉 대응하는 것은 금물이다. 독도를 ‘국제분쟁지화’하려는 일본의 전술에 말려들 수 있다는 점까지 고려해 한두 수 앞을 내다보는 냉정함이 필요하다.


교과서 문제에서 더욱 우려스럽고 심각한 것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 및 침략과 관련한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점이다. 1997년 교과서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기술이 모두 들어가 있었는데, 요즘은 눈을 씻고도 찾기 어려운 지경이 됐다. 이번 중학교용 한 교과서에 사라졌던 위안부 기술이 다시 등장했다고 해서 ‘일부 개선된 점도 있다’고 위안 삼을 일이 아니다.
역사 인식에 대한 퇴행적 기술은 일본이 1982년 교과서 파동 때 약속했던 이웃나라를 배려한다는 ‘근린제국 조항’과 위안부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역사의 교훈으로 직시해 가겠다”고 한 1993년 고노 담화의 약속을 파기하는 것이다. 정부는 독도 문제만이 아니라 위안부 문제 등 역사 왜곡을 시정하는 데 더욱 힘써야 한다.



감사원이 3일 발표한 해외자원개발사업 감사 결과는 이명박 정부가 내세웠던 ‘자원외교’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부실을 예상하긴 했으나 감사원이 밝힌 실상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특별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앞으로 수십조원을 더 손해 볼 수 있으리란 전망에선 말문이 막힐 정도다. 현실이 이런데도 행정부를 감시·견제해야 할 국회에선 자원외교 국정조사를 종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니 참으로 가당치 않다.


감사원의 발표를 보면, 2003년 이후 석유·가스·광물자원공사가 해외자원개발에 투자한 액수는 31조4천억원이며 앞으로 34조3천억원을 더 투자해야 하지만 투자금 회수 전망은 극히 불투명하다고 한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투자가 대부분 이명박 정부에서 이뤄졌다는 점이다. 31조4천억원 가운데 노무현 정부 시절 투자분은 3조3천억원이며, 나머지 27조여원은 이명박 정부에서 투자됐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이는 국회의 자원외교 국정조사를 파행으로 치닫게 한 핵심 쟁점인 ‘청문회 증인’ 문제에서, 여당인 새누리당 주장이 얼마나 엉터리인지를 보여준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자원외교를 국가사업으로 추진한 이명박 전 대통령과 그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낸 최경환 경제부총리 등을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새누리당은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해외자원개발을 해왔으므로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도 증인으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감사원 발표를 보면, 해외자원개발 실패의 주범이 이명박 정부임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런데도 증인 공방을 이유로 7일 종료되는 국정조사의 시한 연장을 거부하는 것은 국회의 기본 임무를 방기하는 일이다. 지금 논란이 되는 학교 무상급식에 드는 재정이 연 2조원 정도라고 한다. 그 열 배가 넘는 돈을 허공에 날려버린 정부를 그냥 눈감아준다면 도대체 국회가 존재할 이유는 무엇인가.


이명박 정부가 날린 수십조원의 공기업 투자액은 결국 국민 세금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 의원들에겐 국민보다 전직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 더 중요한지 묻고 싶다. 새누리당은 지금이라도 태도를 바꿔, 자원외교 국조를 연장하고 증인 채택에 성역을 두지 말아야 한다. 국민의 피 같은 돈이 더는 밑 빠진 독에 투입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는 데 국회가 앞장서야 한다. 그게 국회의원들이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책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