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통일의 희망을 향해 걸으며

● 칼럼 2015. 5. 29. 16:35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5월의 땡볕에 임진각으로 향했다.
‘평화와 군축을 위한 세계 여성의 날’인 5월24일을 맞아 세계 여성들이 분단의 나라인 코리아를 북쪽에서 남쪽으로 육로를 통해 걷겠다는 기획이었다. ‘세계여성걷기 대회’(WomenCross DMZ Peace Walk 2015)는 그렇게 추진되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일랜드의 메어리드 매과이어와 라이베리아의 리마 보위 그리고 세계적인 여성학자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주축이 되어 마련된 행사였다. 이런저런 염려와 반대 등 행사 전부터 부정적인 말들이 오갔고 그 가운데는 일리가 있는 것도 있고 부적절한 것도 있고 억지인 것도 있었다. 그래도 여든두살의 글로리아 스타이넘을 비롯한 참가자들이 어렵게 남과 북 정부의 승인을 얻은 행사다. 판문점을 통과해 걸어오는 세계 15개국에서 온 여성들을 마중하여 같이 비무장지대를 걸어본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 될 것 같았다.


친구들 여남은명이 참가신청을 내고 소풍 가는 기분으로 김밥과 삶은 달걀, 과자 등을 싸들고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파주가 가까워지자 행사를 반대하는 단체들의 현수막이 곳곳에 나부끼고 확성기로 북으로 가라고 저주 섞인 고함을 지르는 무슨 부대, 무슨 연합의 소음이 울려 퍼졌다. 임진각 근처 평화공원은 평화로웠다. 소풍 나온 가족들과 유모차에 아기들을 데리고 거니는 젊은 부부들, 자전거 동아리들의 대회도 열리고 있었고 새파란 하늘 위로 갖가지 연을 날리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곳곳에 쳐져 있는 그늘막엔 열두시가 되기 전인데도 연인들이 껴안고 잠들어 있기도 하고 이른 여름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는 동안 긴장했던 마음이 풀렸다. 기독교단체, 여성단체의 안내소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고 개인참가자들은 따로 등록을 하였다. 수녀님, 원불교 정녀님, 외국인들도 보였다. 대규모 소풍 같은 분위기가 걷는 내내 계속되었다. 찬송가를 부르는 사람, 애국가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는 사람, 오카리나를 부는 사람도 있었다. 동네에서 자주 본 대학교수도 만났고 수십년 만에 만난 대학 동기도 있었다. 주최 쪽이 부탁한 것은 딱 한가지. 주변에서 횡포를 부려도 맞대응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염려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 경찰들이 동원되어 걷는 여성들을 보호하고 있어서 그들이 걷는 사람들 사이로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중간에 비무장지대는 걸을 수 없고 북에서 내려오는 여성들도 판문점을 경유하지 못하고 경의선 육로를 따라 버스로 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비무장지대를 걸어본다는 애초의 기대는 사라졌지만 철책선을 따라 걷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가는 곳마다 미리 가 있는 행사 반대 단체들이 소리를 질러대었지만 네시간에 걸친 행사는 평화롭고 즐겁게 끝이 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소한 일상의 기쁨을 행복으로 알고 산다. 나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일상을 핍박하는 것은 분단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하루하루의 삶의 고단함이나 취업 결혼 노년 빈곤 가족관계 등 복잡다단한 일상에 허우적거리며 산다. 분단된 나라에 살고 있고 그것이 70년이나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종종 잊고 살 수밖에 없다.


아침 신문에서 우크라이나의 스물여덟살 여성이 군대에 자원입대한 동기에 대해 개인의 꿈보다는 우크라이나의 독립이 우선이라고 한 말이 놀랍게 가슴에 와닿았다. 일제 식민지 시대를 거치며 자신의 행복이나 꿈을 포기하고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나 자신 너무 잊고 살지 않았나 싶었다. 거대담론이 때로는 더 큰 전쟁을 키워내고 이쪽의 정의와 저쪽의 정의가 부딪칠 때 개인의 존재는 무의미해지는 것을 역사를 통해 겪어 보았기에 통일을 마음 저쪽으로 치워두고 살았던 탓이 아닌가 싶었다. 아마도 분단이 우리 민족의 뜻과 상관없이 만들어졌듯이 통일도 우리 손으로 해결될 수 없으리라는 열패감이나 무기력함이 우리 모두를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온갖 상념에 잠겨 한반도를, 평화, 무기 없는 세상, 여성들이, 어머니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며 테레사 수녀의 말을 기억했다. ‘작은 물방울이 모여서 바다를 이루는 것’이라는 희망을 향해 오랜만에 마음을 열어본 뿌듯한 하루였다.
< 김선주 - 언론인 >



[한마당] 왜 그들에게는 묻지않나?

● 칼럼 2015. 5. 29. 16:31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전선의 지휘관은 적의 포성이 들리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 불확실하고 위험한 상황이 되면 우연과 도박에 운명을 걸어야 하는 군 지휘관의 어려움이 가중된다는 이야기다.
군사사상가 클라우제비츠는 이를 ‘전장의 안개와 마찰’이라고 했다. 전쟁터에서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간을 상대로 하는 전쟁이 동물을 상대로 하는 사냥과 다른 것은 그 불확실성과 높은 위험에 있다. 역설적으로 이 점이 전쟁에 대해 어설픈 민간인보다 군인이 더 신중해지는 이유가 된다.
그러나 전쟁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민간인들은 전쟁을 마치 사냥하는 것과 같은 간단한 문제로 생각한다. 조지 부시 대통령과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불과 13만명의 병력으로 이라크를 침공하려고 했을 때 미국의 대다수 정통 군사지도자들은 이를 극력 반대했다. 그 여파로 에릭 신세키 육군 대장이 경질되었다.
선조 임금과 권율 도원수가 부산에 있는 왜군을 치라고 했을 때 이순신은 이를 극력 반대했다. 그 여파로 이순신은 봉고파직되고 고문을 받았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군인이 전쟁광이고 호전적이라는 고정관념은 맞지 않는다. 통찰력이 있는 군인이라면 호전적인 민간인 대통령이 적보다 더 무서운 법이다.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 7년을 되돌아보면 마치 북한을 사냥하듯이 다루고 싶어하는 어설픈 안보논리가 지배한 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말로 이상한 것은 군대 갈 나이만 되면 이상한 병을 앓아서 그 핑계로 병역을 면제받은 사람들이 북한에 강압적인 군사논리를 앞서서 전파해왔다는 점이다.
군에 대해서는 털끝만치도 모르는 대통령, 국무총리, 여당 대표, 국정원장, 비서실장, 안보전략비서관 등등 이제는 일일이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게다가 면제 사유를 보면 폐결핵, 하악관절염(턱뼈관절염), 수핵탈출증(허리디스크), 근시, 만성담마진(만성두드러기) 등 청와대와 정부·여당은 내과, 안과, 외과 종합병동이라고 불러도 될 허약체질 집단이다. 이런 약골들이 어떻게 국정을 이끌었는지 이해하기도 어렵지만, 아예 대놓고 고의로 징병검사를 연기하여 고령으로 면제되거나 석사장교로 단 하루만 군생활을 한 여러 여당 실세들 사연을 보면 정신이 아찔해진다.


그나마 군대생활 했다는 한 국무총리는 장교로 재직하는 동안에 석사학위를 마친 ‘꽃보직’이었다. 권력 실세들 중에 의병 전역자, 심지어 의가사 제대자도 부지기수다. 국내 정치에서 야당에 대한 종북몰이를 주도하고 북한에 강압적인 군사정책을 주장한 이들이 주로 이런 병역 특혜자들이라는 사실은 뭘 의미하는 걸까?
남들 고생할 때 빠른 출세 길을 먼저 찾아간 용의주도함을 보이면서도 전쟁과 군대의 본질에 대한 감수성이 빈곤한 집단문화, 안보로 장사하는 그들이야말로 국가안보를 동물 사냥처럼 인식한다는 이야기다. 그렇지 않다면 군대생활 제대로 한 국무총리 한 명을 탄생시키는 게 이렇게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수 유승준이 병역 기피로 국내에서 매장되었다가 이제 와서 귀국하겠다고 하니까 여론이 난리다. 병무청은 유씨 주장의 허구성을 들춰내며 괘씸죄를 묻고 있다.


그렇다면 같은 잣대를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에게도 적용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유승준은 안 되는데 왜 황교안은 되느냐는 의문에 답을 듣고자 한다. 대부분 완치가 되는 만성두드러기가 왜 황교안에게는 불가능했는지, 그런 중증 환자가 어떻게 사법시험을 보고 출세가도를 달린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이런 허약체질들이 국정을 이끌면 국방이 괜찮겠느냐는 더 절박한 의문에도 답이 필요하다. 이런 답을 하지 않고 또 무슨 국가안보와 공안을 말할 것인가?
< 김종대 -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



[1500자 칼럼] Thank You and Sorry

● 칼럼 2015. 5. 15. 18:52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처음 이민 왔을 때, 신기한 일 중의 하나는 여기 애들이 말을 할 때, ‘Thank You’ 와 ‘Sorry’를 너무 자주 그리고 쉽게 쓰는 일이었다. 정말 입만 벙긋하면 그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당시의 내 입에서는 정말로 감사하고 싶은 경우에도 쉽게 튀어나오는 말이 아니었다. 그 것이 우리 문화이기도 했다. 동시에 감사나 사과의 말을 너무 쉽게 하는 것은 그 진실성을 의심하게 만들기도 하고 사람을 가벼워 보이게도 했다. 그에 반해 내쉬는 숨소리처럼 해대는 이 곳 사람들을 볼 때 처음에는 참 예절이 바르고 매너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나아가서는 그 것이 가진 자의 여유이며 풍요로운 서양문화의 특징일 거라고 지레 짐작을 했다.

지금이야 그 단어들이 그냥 습관적으로 튀어 나오는 것이지, 진심이 담겨 있을까 의심해야 하는, 적지 않은 경우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일상생활을 하며 어느 단어보다 자주 써야하는 단어가 아닌가 생각한다. 하루 살아가며 알게 모르게 자주 써야만 하기 때문이다.


학교 교실이나 직장에서 사소한 다툼이 있을 때,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한 쪽에서 ‘Sorry.’라고 하면 문제가 간단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나같은 경우는 분명히 내가 잘못한 일도 상대방에게 먼저 미안하다고 말 할 수가 없었다. 자존심 문제만은 아니고 그 간단한 말이 자주 하던 말이 아니어서 입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상대방이 먼저 손을 내밀며 미안하다 했을 때, 마지못해 손을 잡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의 유교 문화의 전통 때문이었을까? 나는 군자 내지는 선비의 후손? 왠지 먼저 사과를 하면 상대방에게 굽히고 들어가는 것 같았다.


사과의 말은 그렇다 치더라도 감사의 말, 고맙다는 말도 그때는 이상하게 입에서 잘 나오지 않았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일이 있다. 그 때 혼자 한국식당에 간 적이 있는데, 늦은 오후여서 손님도 별로 많지 않을 때였다. 마침 내 옆에 내 또래의 백인 녀석이 앉았다. 지금 같으면야 한국식당에 백인이 앉아있는 것이 흔한 일이었지만 그 때는 흔치 않을 때였다. 근데 이 녀석이 연신 ‘Thank you.’ 그러는 것이었다. 자리에 앉으면서 시작하여, 물컵을 받으면서, 메뉴판을 받아 들면서, 반찬, 음식, 계산서, 거스름돈…기타 등등, 처음에는 무심히 들어서 정확히 세어보지 않았지만, 적어도 10번은 넘게 말했던 것 같다. 나야 다 먹고 나오며 감사합니다 딱 한 번 했지만….., 나오면서 그는 도대체 식당에 밥을 먹으러 온 것인지 감사하다는 말을 하러 온 것인지 의문이 갔다.


가끔 지하철에서 보는 풍경이다. 특히 센트 조오지역에서 출입문이 바뀌는 것을 모르고 문을 가로 막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 전 역인 스파다이나에서는 바깥 쪽 문이 열리지만, 안 쪽 문이 열린다. 그 사실을 모르고 친구와 이야기하며 서있는 경우가 있다. 짜증을 내는 사람도 잘못이지만 뒤늦게 알았으면 미안하다는 한 마디로 비켜서면 되는 것이다. 그냥 머뭇거리면 상대방은 인상을 쓰며 욕을 하고 나갔다. 지하철 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도 그렇다. 오른 쪽으로 붙어 서있는 것이 예의다. 친구와 이야기 하느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실례다. 물론 두 경우 그 분들은 옷차림이나 한국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이곳 실정에 밝지않은 분들 같았다. 그 상황에서 판단을 하여 ‘Sorry.’라고 한마디 했다면 욕을 먹는 일이 없었을 것이고 본인도 기분 상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몰랐기에 그런 상황이 벌어졌지만, 사과를 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여기 애들 같으면 Sorry라는 말이 거의 반사적으로 튀어나온다. 전혀 잘못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도….


나도 이제 오랜 이민생활 끝에 ‘Thank and Sorry’ 를 입에 달고 다닌다. 입만 열면 생각없이 반사적으로 튀어 나온다. 가끔 나는 살면서 만나는 많은 이들에게 감사하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 진심으로 하고 있는지 물어 보지만…., 아무튼 빈말을 하기 싫다해도,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Thank you, Sorry는 적절히 사용해야 하는 것 같다.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



[한마당] “북의 찬물에는 뜨거운 의지로…”

● 칼럼 2015. 5. 15. 18:49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남북이 철저히 단절된 근래, 그나마 북한 지원의 명백을 잇고있는 것은 해외동포들 특히 한인 기독교계다. 그런데 북한은 돌연 토론토 큰빛교회 임현수 목사를 억류했다. 그리고 3개월이 넘도록 일언반구 언급도 하지않아 답답하게 속을 태우고 있다. 북한선교의 대부격인 임 목사를 구금한다는 것은 북 정권의 악수임에 틀림없다. 그의 억류는 북한 돕기에 찬물을 끼엊는 사건이 됐다. “그런다면 누가 어떻게 북 지원에 나서겠느냐”는 선교단체들의 비판과 활동중단이 뒤따른 것이다.
이렇게 냉각된 와중에, “그래도 중단해선 안된다, 그럴수록 속히 더 나서야 한다”는 교계움직임이 일고있어 주목된다. ‘어둠이 짙으면 새벽이 가깝다’는 말처럼 크리스천들의 믿음과 선교열망은 ‘통일 준비’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북한선교단체 ‘모퉁이돌 선교회’가 지하교회 실상을 전하며 토론토에서 선교훈련을 가진데 이어 토론토 영락교회는 서울 영락교회 등과 공동으로 통일준비 사역훈련인 ‘So One(소원) 통일 선교세미나’를 5월15~17일 개최한다. 뒤이어 ‘기드온 동족선교회’가 북한의 동족구원과 지하교회 지원 등에 캐나다 동포들이 동참해 줄 것을 적극 호소하고 나섰다.
기드온선교회는 북한정권 간부가 16년이나 고통을 견디며 지하교회 확장에 노력하다 순교한 간증일기를 발굴해 책으로 펴내 큰 반향을 불렀다. 북의 혹독한 동토에 번진 지하교회는 영적해빙을 통한 북의 군열과 통일의 소망이라고 진단한다.
얼어붙은 북한 땅을 녹이고 동포들에게 자유를 안길 일이라면 무슨 수든 써야한다. 그래야 통일의 기운이 무르익고 민족이 하나가 되어 열방을 호령할 때가 오지 않겠는가.


올해로 분단 67년이다. 남과 북이 갈려 총부리를 겨누고 이념과 언어와 문화와 생활이 단절된 이래 갈수록 괴리의 골은 깊어만 간다. 그 사이 수많은 대화와 협상이 있었고, 한 때는 통일의 기대가 부푼 때도 없지 않았지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곤 했다. 최근에는 아예 그마저 끊기고 북이 핵개발에 틈만 나면 미사일을 쏘아대니 긴장파고가 오히려 높아만 간다. 젊은 층의 통일을 원치 않는다는 응답 통계수치가 늘어가는 현실은 정말 가슴 아프다. 남과 북의 분단상황을 교묘히 활용하는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외교적·군사적 손실과 불이익을 감내해야 하는 처지를 분별한다면, 한민족 어느 누구도 통일을 간절히 원할지언정, 반대할 이유란 전혀 없을 터임에도, 그저 지금 안락하다는 이유로 현상에 안주하려는 속물적 단견에는 참 안타깝고 속이 쓰릴 뿐이다.
요즘 미-일의 밀착과 한국경시, 중-러의 연대와 미-중 대결 첨예화 와중에 한국 입지는 더욱 쪼그라들고 방향을 잃은 듯하다. 거기에 제어조차 못하는 북한의 잇단 돌출망동이 겹치니, 나라와 민족의 장래가 어찌될지, 마치 조선말의 위기를 보고있는 것 같은 걱정도 커진다.


어찌보면 진통제로 통증을 덮은 암환자에 비유될까. 세계적 경제강국을 자부한다고 위세를 부리지만, 속으론 모래 위에 궁성을 지은 것처럼 취약하고 불안할 수 밖에 없다. 그 불안한 평화는 항상 주변 4강의 꽃놀이패에 그칠 뿐이며, 남북 균형이 깨져 단 한방이면 경제도 나라도 뒤뚱거린다. 그러니 통일 때까지 분단고통은 민족 최악의 아킬레스건이요 발전 저해요소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만일 통일이 이뤄진다면, 외교·군사부문 뿐만 아니라 스포츠 분야에 이르기까지 국력의 확장을 가져 올 시너지 효과는 헤아릴 수가 없다. 굳이 독일의 사례를 들지 않아도, 비용이 얼마에 이르건 어서 속히 통일을 이루기 위해 모두가 팔을 걷어 부쳐야하는 이유다.


그동안 남북관계를 보면, 그래도 교류와 협력이 활발하던 시기에 통일의 기대가 높아졌다. ‘퍼주기’ 운운 억지비판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햇볕정책’이 본격화 됐을 때 화해와 해빙의 기운이 번졌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든 북과 대화하고 소통의 문은 닫지 말았어야 한다. 설령 일부가 고대하고 장담하듯 북한 정권이 일거에 무너진다 쳐도, 소통과 협력의 통로가 뚫려있는 쪽이 훨씬 충격파와 후유증 수습에 도움이 될 것임은 물론이다.
북을 궁지로 몰아 ‘발악’을 유도하는 데만 몰두하고, 북녘동포를 도우려는 혹은 소통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친북이니 종북으로 몰아 남한 내에서도 갈등과 적대의 벽을 쌓는 것은 지극히 멍청한 일임을 깨달아야 한다. 민족통일의 열망과 실행의 열정을 가진 많은 동포들을 딜레마에 빠뜨리는 어리석음을 이젠 멈출 때가 되었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