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인종문제 심각성 재확인한 미 볼티모어 사태

● 칼럼 2015. 5. 9. 14:53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뉴욕, 퍼거슨, 볼티모어. 지난해 7월 이후 미국에서 흑인 소요의 진원지가 된 도시다. 양상도 비슷하다. 흑인 젊은이가 경찰에 의해 숨진 뒤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소요·폭동으로 비화하고 전국 주요 도시로 확산된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것은 미국 사회의 구조적 취약성을 보여준다.


2주일가량 이어진 볼티모어 사태는 1일 주 검찰의 신속한 행동으로 전기를 맞았다. 관련 경찰관 6명이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물론 불씨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법적·사회경제적 측면에서 흑인들의 불만이 그대로다. 앞서 뉴욕과 퍼거슨 사건과 관련된 경찰관들은 대배심의 지루한 공방 끝에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소요의 상처도 작지 않다. 가장 격렬했던 4월27일 시위는 폭동으로 돌변해 차량 140여대와 건물 15채가 불에 탔다. 이번 사태에서 약탈 등의 피해를 당한 한인 업소만 해도 100곳이 넘는다.
소요가 쉽게 전국으로 확산되는 것은 주요 도시 흑인들의 사정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볼티모어에서는 흑인과 백인 거주지가 엄격하게 분리돼 있다. 숨진 흑인 청년의 거주지인 샌드타운에서는 노동가능연령(15~64살)의 실업률이 51.8%나 된다. 미국에서는 볼티모어보다 인종간 거주지 분리 현상이 심각한 도시가 시카고, 애틀랜타 등 여러 곳 있다. 경찰의 업무 중 총격에 의한 사망 사건도 지난 10년 동안 수천건에 이르지만 기소된 경찰은 수십명에 그친다. 피해자의 절대다수는 흑인이다.


흑인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집권 기간에 흑인 소요가 빈발하는 것은 역설적이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인종문제가 더 심각해졌을 수도 있고, 오바마 정부에 대한 흑인들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었을 수도 있다. 흑인 소요를 대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태도도 일관돼 있지 않다. 인종문제에는 미국의 정치·사회·경제적 모순이 집약돼 있다. 미국이 이 문제를 풀지 못한다면 다인종 국가로서 정체성과 통합 역량도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세계화가 진전될수록 다문화·다인종과 관련된 갈등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런 문제에서 미국보다 훨씬 경험이 적다. 흑인 소요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사설] 무력한 한국 외교, 사람·전략 모두 바꿔야

● 칼럼 2015. 5. 9. 14:51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한국 외교가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 외교 전략을 주도적으로 펼치기는커녕 한반도 관련국들에 대한 우리 입지마저 좁아지는 양상을 보인다. 기존 진용과 접근방식으로는 더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 외교 전략과 체제, 사람 등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때다.


무력한 한국 외교를 실감케 한 최근 사례는 미-일 신밀월 체제의 구체화다. 아베 신조 일본 정권은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과거사 문제에서 역주행한다. 미국은 은근히 ‘과거사 묻어두기’를 우리나라에 요구하면서 중국을 겨냥한 일본의 군사역할 및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를 밀어붙인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문제는 미-중 사이에 낀 우리 처지를 잘 보여준다. 이런 문제는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 게다가 박근혜 정권 3년차를 맞았지만 핵심 외교전략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은 전혀 진전되지 않고 있다. 북한 핵 문제와 남북관계도 개선될 조짐이 없다.
외교 위기가 이렇게 심화하는데도 정부는 무신경하다. 4일 국회에 나온 윤병세 장관은 반성하는 모습 대신 ‘잘하고 있는데 왜 그러나’라는 식의 태도를 나타냈다. 박 대통령이 이날 한-미 관계와 관련해 전작권 환수 재연기, 방위비 분담 협상, 원자력협정 개정 등을 성과로 꼽은 것도 급변하는 현실과 동떨어진다. 박 대통령이 중-일 정상회담이 전격적으로 열린 반둥회의 60돌 기념 아시아·아프리카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남미 순방에 나선 것은 우리 외교 전략이 얼마나 겉도는지 잘 보여준다. 이렇게 가다간 한반도 관련 사안에 대한 최소한의 통제력조차 잃어버리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우선 인적 쇄신이 절실하다. ‘자화자찬 외교’의 진원지인 윤병세 장관은 이미 외교의 구심점이 될 역량을 잃었다. 외교안보 전략의 가온머리(컨트롤타워)가 돼야 할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제구실을 못하는 것도 큰 문제다. 책임자 교체까지 염두에 두고 어떤 식으로든 정비가 요구된다. 외교 전략을 전체적으로 점검해 다시 설정하고 적절한 실행 방안과 체제를 갖추는 것은 더 중요한 과제다. ‘미·일 대 중국’이라는 대결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동북아 평화협력 구조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려면 균형외교가 필수다. 한-미-일 안보협력을 꼭 필요한 수준에서 제어하면서 일본이 과거사 문제 해결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북한 핵 문제를 풀기 위한 노력이 외교 재정립에 핵심이 돼야 함은 물론이다. 한반도 관련 현안을 방치한 채 주변국들의 움직임에 사안별로 대처하는 기존 방식으로는 외교 주도력이 생길 수가 없다. 정부는 사태의 급박성부터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임기는 곧 내리막길을 걷게 되며 내년에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다. 외교를 재정립해 실행할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



[칼럼] ‘성완종 게이트’와 유체이탈 언론

● 칼럼 2015. 5. 9. 14:50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보수언론이 보수정권·자본과 유착해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현상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미국의 언론학자 로버트 맥체스니 교수는 “언론의 힘으로 영국 정치에서 한때 ‘상왕’ 역할을 한 루퍼트 머독이 미국에서는 토크쇼 방송 <폭스뉴스>를 통해 언론·권력·돈(자본)의 3자 통합망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한국은 어떤가? 미디어 전문 매체인 <미디어오늘>의 지난주(4월22~28일) 1면 기사 ‘정권위기, 권언복합체 가동했다’가 눈길을 끈다. 보수언론들이 ‘이완구는 치고 박근혜는 구하는’ 물타기 왜곡보도로 정국을 조종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고 성완종 회장의 선거자금 리스트 보도와 관련해 5대 일간지 기사를 분석한 논평이다. <기자협회보>와 민주언론시민연대(민언련)의 신문모니터링 보고도 같은 분석을 내놓았다.


국가정보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야당후보 폄훼 댓글’ 사건으로 항소심에서 국정원의 불법선거운동 개입 판결이 나온 상태에서 불법 선거자금 제공 사실까지 확인된다면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이 크게 흔들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불법 대선자금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강조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사설 ‘성완종 리스트 수사, 대선자금 의혹도 파헤쳐야’(4월13일자)에서 “검찰이 주춤거리면 권력의 시녀란 딱지를 떼지 못할 것“이라 지적했다. 반면 처음부터 국정원의 선거운동 댓글을 문제삼지 않고 박근혜 대통령을 엄호해온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핵심 문제보다 수사 상황과 수사 대상 쪽에 보도를 집중했다. 이들 두 신문은 거액의 선거자금을 받은 권력 핵심자들에 대한 수사촉구를 하기보다 엉뚱하게 야당의 정치자금도 조사해야 한다는 ‘물귀신 작전’을 벌이는가 하면, 성 회장의 2차 특별사면 문제를 제기해서 수사를 질질 끌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언론의 보도 태도는 박근혜 정권을 엄호해 주기 위해 ‘박근혜식 유체이탈 화법’을 적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문제의 핵심에서 관심을 돌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인터넷 매체인 <허핑턴 포스트> 한국판은 지난해 세월호 참사 직후 대통령의 담화를 비판하는 한 블로거의 글을 실었다. 이 글은 박 대통령이 세월호 선원들을 호되게 꾸짖은 담화를 예로 들며 “세월호 선장과 마찬가지로 최종 책임을 져야할 자리에 있는 사람이 순전히 자기 편의에 따라서 ‘피해자’로, ‘심판자’로, 또는 ‘관찰자’로 마구 입장을 바꿔가며 남을 비판했다. 항상 박 대통령은 자신이 스스로 고개를 숙여야 할 때 아랫것들을 꾸짖고 자기 자신이 먼저 나서야 할 때 남들 눈치를 본다. 이 나라에서 공적 직무의 유일무이한 상징인 대통령으로서 최고의 권력을 휘두르는 인물이 이런 식으로 전체 시스템에 유령처럼 빌붙어서 혼돈을 야기시키는 게 과연 적절한지 의문이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월17일치 1면에 “여야 인사 14명의 성완종 장부가 나왔다”는 내용의 ‘단독’ 기사를 보도했다. 여당뿐 아니라 야당 인사도 들어있다는 인상을 주려는 물귀신 작전의 의도가 풍기는 ‘가공보도’라는 비판을 받았다. 진실이 아니면 보도해서는 안 되는 언론윤리에 정면으로 위반되는, 실체가 없는 유체이탈식 보도였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유체이탈 화법도, 유체이탈 보도도 모두 추방해야 한다.
< 장행훈 - 언론광장 공동대표 >



[1500자 칼럼] 교회의 위기 Ⅰ

● 칼럼 2015. 4. 26. 11:09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기독교회의 역사에서 위기가 없은 적은 없다. 초기 기독교는 신앙의 박해로 과연 교회가 온전히 설 수 있겠는가 하는 위기로 갔으나 성도와 교회는 모든 박해를 이겨냈고 결국 로마의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 신앙의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그 신앙의 자유는 오히려 위기를 가져왔으니 신학의 정립을 위한 교회 내의 갈등이 있었고 그에 따라 이단과 사이비 종파들의 범람으로 신경을 제정하기에 이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보담 더 큰 위기는 교회의 자유에 따른 부패였다. 성직자나 성도들의 윤리와 도덕은 여지없이 무너졌고 그 모든 죄악에서 벗어나고자 수도원 운동으로 세상과 교회를 벗어나려고 했다. 그래서 루터와 칼빈이 교회의 개혁을 부르짖으면서 결국 교회는 로마 가톨릭과 오늘의 기독교회로 나누어졌다.

그러나 그렇게 개혁을 부르짖은 기독교회가 모든 문제를 해소한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도 역시 갈등이 생겨 나름의 신학적인 주장과 자세에 따라 교파가 생겨났으며 그와 함께 19세기에 들어와 이성과 자유주의 물결이 교회를 흔들었으니 기독교의 근간이 되는 성경이 부정되는 위기도 있었다.

그 후 다윈과 같은 진화론자들이 성경의 창조론을 비판하고 나설 때 교회는 큰 위기를 맞는 것 같았다. 구라파와 미국의 학교는 진화론을 가르쳤고 교회가 가르치는 창조론은 근거가 없는 것처럼 보여졌다. 그러나 교회는 이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창조를 믿고 있다.

오늘에 와서 교회는 또 위기를 맞고있다. 그것은 소수 성애자를 위한 인권의 차원에서 나온 것이라 주장하여 동성애 용인이 각 나라와 교회에서 크게 주장되고 있다. 캐나다는 이미 동성 결혼이 법제화되었고 오늘의 공립학교는 그 교과과정에서 지나치다 할 정도로 성생활을 가르치게 하려고 한다.

미국의 기독교단들도 서서히 인정을 하고 무너지고 있다. 교단의 분립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대세를 이루고 있으니 진정 바른 믿음을 가진 교회는 다시 외로워지고 골리앗과 대적하는 전투에 혼자 싸워야 하는 다윗의 입장에 서 있는 것 같다. 청교도의 정신으로 세워졌다는 미국도 앞으로 기독교회들이 핍박받을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하는 빌리 그래함 목사의 아들 프랭크 그래함 목사가 한 말은 무엇일까?

세상은 어쩌면 무관심하면서 오늘의 기독교회의 위기를 그리고 신앙적 전쟁을 구경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모든 결과는 공립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모든 부모와 가족들에게 돌아오는 결과물일 것인데.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언제 교회에 적과 위기가 없은 적이 있는지. 미국의 로렌 미드 박사는 서구 교회의 쇠퇴 원인으로 교회에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으니 이제 적이 생겼고 공격을 받고 있다면 교회가 다시 새로워질 기회가 아닐까?

문제는 위기가 아니다. 위기를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교회의 안일함이다. 바리새인을 비난하고 그들의 외식을 비판하던 교회들이 언젠가 그들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그대로 애기를 낳으려 하나 힘이 없어 산모와 애기 둘 다 죽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이제 교회는 진정으로 개혁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목회자부터 그리고 성도들이 결단하고 주께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왔다. 사무엘의 부르짖음에 따라 미스바로 모이던 것처럼.

< 김경진 - 토론토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