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개성공단 문제를 풀려면

● 칼럼 2015. 3. 28. 13:10 Posted by SisaHan

개성공단이 2년 만에 다시 어려움에 처했다. 2년 전엔 한-미 연합훈련 때문이었는데 이번엔 일단 임금과 토지사용료 때문이다.
2004년 개성공단 가동을 앞두고 남북은 공단운영에 관한 사안은 쌍방이 합의한 내용을 북한 법령으로 제정해 적용하기로 했다. 법령의 시효는 10년으로 하고 시효 만료 전에 개정 내용을 협의하기로 했다. 남북은 초기 3년은 임금 인상을 안 하고 4년차부터 매년 5%씩 인상해주기로 했다. 토지사용료는 10년 후부터 내기로 했다. 그런데 최근 북한이 10년 시효가 지난 시점에 남북 협의 없이 법령을 개정하면서 임금을 기본 5%보다 0.18% 더 올리고 토지사용료는 평당 5~10달러씩 내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2013년 한-미 연합훈련 때문에 공단을 4개월 폐쇄했다가 8월에 재가동하면서 남북은 ‘개성공단 공동위원회’를 구성하여 공단운영 문제를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10년 시효 만료를 앞둔 조처였다. 그런데 그런 약속을 한 지 1년여 만에 북한이 개성공단 노동규정 등 13개 관련 법령을 개정하면서 임금과 토지사용료 액수를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4월부터는 그걸 내라고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 개성공단 공동위원회를 열자는 정부의 통지문도, 기업들의 건의문도 접수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왜 이러는가? 돈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의 다른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도록 만들려는 ‘돌려차기’인 것 같다. 군사훈련 중지, 대북전단 살포 중지, 통일준비위원회 해체 등 여러 가지 요구가 있지만, 북한 정치문화를 고려하면 자기네 ‘최고존엄’을 건드리는 대북전단 살포 중지가 최우선 요구일 것 같다. 북한이 이번 조처를 취한 시점에서 북한의 그런 속내가 읽힌다.


지난해 10월 초 북한 고위층의 전격 방남을 계기로 남북 고위 당국자 간 대화가 있었다. 그 결과 2차 남북 차관급 대화가 성사될 뻔했으나 무산됐다. 대북전단 살포를 막아달라는 북한의 요구를 우리 정부가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11월은 당연히 남북관계가 경색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러한 시점, 10년 시효는 지났고 남북 협의는 불가능한 시점에 124개나 되는 기업들 때문에 남한 정부가 자기네 요구를 들어주면서 대화에 나올 수밖에 없도록 만들자는 계산을 했다고 본다. 돈 때문이었다면 임금을 0.18%만 더 올리진 않았을 것이다. 토지사용료도 평당 5~10달러라고 여유를 두지 않았을 것이다. 돈 문제는 협상의 여지가 있다는 암시로 보인다.
북한이 10년 전의 악속, 1년 전의 약속을 깨고 일방적 결정을 밀어붙이려고 한다고 우리 정부가 이번에도 ‘원칙’이니 ‘진정성’이니 하면서 문제해결을 미루면 안 된다. 남북 당국 사이에 낀 공단 기업들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새 통일부 장관은 이 문제를 풀면 ‘아무나’가 아니라 ‘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개성공단 문제를 풀려면 남북회담부터 성사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북전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대북전단 살포를 중지시키기 위해서는 그걸 ‘표현의 자유’로 보는 대통령부터 설득해야 한다. 신임이 두터운 비서관 출신 장관이기 때문에 가능하리라 본다.
북한 당국도 무리수를 두면 안 된다. 이번에 개성공단 문제를 잘못 처리하면 2013년 11월부터 야심차게 시작한 18개 경제개발구 사업 추진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1990년대 초 북한은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에 외국투자를 유치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투자 희망자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고압적 태도와 까다로운 제도 때문이었다. 그런 경험이 있는 북한이 이번에 또 개성공단에서 ‘갑질’을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외국 기업들이 그걸 보고도 외국투자가 절대 필요한 18개 경제개발구에 투자하겠다고 선뜻 나서겠는가? 북한 당국은 무엇이 김정은 시대 경제치적 쌓기에 장애를 조성하는 일인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 정세현 - 전 통일부 장관 >



[한마당] 캐나다까지 온 세월호 유족

● 칼럼 2015. 3. 28. 13:08 Posted by SisaHan

우리에게는 2건의 끔찍한 대형 침몰사고가 기억에 생생하다. 하나는 1300톤의 군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6800톤이 넘는 여객선이었다. 5년 전에 서해 북방해역에서 두 조각이 나 가라앉은 천안함, 그리고 다른 하나는 1년 전 서남해 진도 앞바다에서 수장된 세월호 사고다.
두 선박의 침몰사고는 군함과 여객선이라는 선박의 특성과 사고의 성격에서 원래 큰 차이가 있었지만, 사후 뒤처리에서 신속히 원인을 따지고 서둘러 마무리한 천암함과 달리, 원인과 진상규명이 더디고 답답한 점에서 천암함과 세월호는 크게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두 사고는 대형선박 사고라는 공통점 외에 둘 다 가까운 연근해에서 어이없게 사고가 났다는 점, 무고한 인명이 각각 46명과 304명이나 유명을 달리해 가족과 국민들에게 충격과 슬픔을 주었다는 점, 그리고 구조와 신속대처에 부실했던 점도 비슷했다.
그러나 가장 비슷하게 닮은 사실은, 하나는 일단 결론을 냈고 하나는 규명작업이 지지부진하긴 하지만, 어찌되었든 두 사건 모두 원인이 명쾌하게 납득할 만한 것은 여전히 나오지 않은 채 의혹과 미궁을 맴돌고 있다는 사실이다.


천암함은 북한의 잠수정에 의해 전광석화처럼 불의의 어뢰공격을 당해 침몰했다는 결론과 해저에서 건져올린 어뢰 부속품들이 증거로 제시되었다. 군과 정부, 대부분의 언론들이 이를 근거로 북한을 범인으로 단정해 비난공세와 대화단절의 압박에 나섰고, 덩달아 동맹국들도 북한비난에 가세했다. 이같은 정부와 군의 조사내용과 결론을 일부러 믿지 않으려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명확한 범행의 근거와 전후 상황, 부인할 수 없는 증거물이 나왔는데 어느 누가 의심을 할까.
하지만, 단 몇가지 만으로도 어쩐지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어뢰 표기글자가 어떻고 분말성분이 어떻고 등의 논란은 제쳐두어도 그렇다.
당시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전개되던 해역인데, 북의 잠수정이 몰래 침투해 어뢰를 쏘아 군함을 격침시키고 유유히 달아났다는 북한 해군의 세계 최상급 신출귀몰 작전능력을 과연 믿어야 하는가. 접적지역에서 적의 침투공격도 전혀 탐지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당해, 꽃같은 부하장병 46명을 잃고 함정마저 폭발해 가라 앉았는데, 배와 생사를 같이 했어도 모자랄 함장과 그 윗선 지휘자들 모두가 패장들이련만 어느 한사람 책임지기는커녕 오히려 당당하고 승승장구하는 이상한 군대, 그렇게 서둘러 봉합한 정부….


1년이 다가오는 세월호 참사 당시를 회고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려온다. 화면을 통해 전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거대한 선박이 서서히 기울고 바다에 잠겨가는 그 순간에, 해경 구조선이랍시고 주변을 맴돌다 선원들만 건져 올려 사라져간 줄도 모르고 공포의 배 안에서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며 기다리며 또 애태우고 발버둥 쳤을 3백여명의 무고한 젊은이들과 부모 형제 자매들…, 발만 구르며 타는 가슴을 찢었던 그들의 가족들-.
그렇게 세기적인 무능과 무책임의 희생자들이 된 억울한 수장자들의 유족 가운데 단원고학생 부모 두 명이 지난 주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 초청으로 캐나다를 찾았다. 그들은 토론토와 윈저, 밴쿠버를 방문해 한인동포들을 만나, 사고 그 이후의 가시밭길을 소개하고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가시밭길’이란 은폐와 차단과 오도와 방해, 망각과 지연과 적대 등 그들 앞을 가로막은 온갖 장벽들과의 투쟁이며, 진실과의 싸움이다.


해외에 와서까지 도움을 청해야 할지 망설였다는 그들의 하소연은 우리를 더욱 안타깝고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 엄청난 사건이 1년을 맞는데도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것, 부정과 불합리 개선의 계기가 될 것이라던 기대가 사그러들고 있다는 것, 권력이 개과천선 하기는 커녕 진실을 덮고 호도하기에 급급한 현실이 다시 분노를 일군다. 억울하게 수장된 이들의 꿈과 희생이 헛되어가고 있는 망각의 허탈감, 유족의 처절한 아픔과 트라우마가 위로와 치유를 향하는 것이 아닌 갈등과 적대의 중병으로 몰아가는 세태가 슬픔을 안긴다,
과연 세상은 진실과 정의 보다는 거짓과 눈가림과,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원리로 돌아가는 것인가를 다시 묻게 된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듯한 유족들의 몸부림을 감싸며 박수와 응원으로 마음을 전하는 소수 동포들의 뜨거운 인정 뒤에서, 역시 거대한 벽 앞에 선 듯한 답답함의 속내들을 보는 것은 동시대 우리 모두의 아픔과 숙명인 것일까.


< 김종천 편집인 >



우리 한국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행복감이 세계 최저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유엔이 ‘국제 행복의 날’(3월20일)에 맞춰 세계 143개국을 상대로 행복감 조사를 한 결과, 우리나라가 118위를 기록했다. 중국·일본은 물론이고 중동의 팔레스타인, 아프리카의 가봉과 같은 수준이라고 한다. 더구나 지난해보다 순위가 94위에서 24계단이나 떨어졌다. 놀랍고 부끄럽고 한번 더 생각하면 참담하기 짝이 없는 결과다.


설문 내용을 살펴보면, ‘그런 결과가 나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조사 전날 많이 웃었는지, 피로는 잘 풀었는지, 온종일 존중받으며 지냈는지, 하루의 상당 부분을 즐거운 감정 상태로 보냈는지, 뭔가 흥미로운 것을 하거나 익혔는지를 물었다. 어제 하루를 돌아보며 이 물음에 자신있게 ‘네’라고 답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많이 웃기보다는 표정 없이 긴장하여 지내고, 존중받기보다는 무시당하고, 피로를 풀기보다는 피로가 거듭 쌓인 채로 허덕거리며 지내는 것이 이 시대 많은 사람의 일상이 아니겠는가. 손학규 전 민주당 의원이 ‘저녁이 있는 삶’을 구호로 내걸어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것도 이런 현실의 반영일 것이다.


이번 조사 결과를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병증에 대해 경고음을 보낸 것으로 해석하는 게 옳다. 우리는 극히 성과 지향적인 문화에서 살고 있다. 인간에 대한 존중보다는 물질로 치환되는 성과를 앞세우는 게 현실이다. 또한 우리는 극단적으로 경쟁 지향적인 문화에서 살고 있다. 낙오하지 않으려면 잠시도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 늘 피로감이 누적된 상태로 살아가야 하는 ‘피로사회’이기도 하다. 수평적인 대화 문화도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권위적이며 위계적이고 억압적인 분위기가 많은 조직을 지배하고 있다. 우울증 환자가 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1위가 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불균형 성장과 억압적 질서 속에서 우리 생활문화의 결 자체가 깊이 뒤틀려 있음을 이번 조사 결과가 압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몸에 병이 나면 우선 쉬어야 한다. 쉬면서 어디에 고장이 난 것인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라고 병이 몸에 신호를 보낸 것이다. 국민 행복감이 세계 최저 수준에 그친 것은 심각한 신호다. 우리 사회가 그동안 달려온 것과 같은 속도와 방향으로 더 이상 갈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문제로 인식하는 게 늘 해결의 첫걸음이다.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세월호 특위)를 훼방하는 정부의 행태가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특위의 정식 출범을 한없이 늦추고, 조직과 예산을 축소하려 드는가 하면, 파견 공무원을 통해 특위 활동을 일일이 감시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다. 무엇이 두렵고 켕기기에 이러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 특위의 이석태 위원장은 23일 기자회견을 열어 “특위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해치는 일련의 사태”와 관련해 대통령 면담을 요구했다. 그가 전하는 특위의 사정은 참담하다.
특위가 공식 활동을 시작하려면 조직과 예산이 정해져야 하는데, 정부는 2월17일 특위가 내놓은 조직·예산안의 처리를 한 달 넘게 미루고 있다. 특위 위원들은 5일 임명장을 받은 뒤 조사활동은커녕 실무직원 선발도 못한 채 안타깝게 시간만 보내고 있다. 참사 1주기인 4월16일 이전에 특위가 출범하려면 이번주 안에 조직·예산안이 확정돼야 하는데, 주무 부처인 해양수산부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고 관련 부처 사이엔 협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특위 출범을 방해하고 고사시키려는 게 아니라면 이럴 수가 없다.


특위의 조직과 예산 축소가 검토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특위는 이미 새누리당 추천 위원들의 문제제기 등에 따라 애초 구상했던 조직과 예산을 대폭 축소한 터다. 사업비는 38%나 줄였다. 정부·여당이 여기서 더 줄이려 든다면 특위의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해진다고 한다. 그렇게 특위를 파행에 몰아넣는 데만 열중한다면 비판과 저항은 피할 길 없을 것이다.


정부는 특위의 독립적 조사활동을 마뜩잖게 여기고 경계하는 모양이다. 1월에도 해수부 파견 공무원이 함부로 가공한 자료를 근거로 친박 실세라는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이 특위를 “세금 도둑”이라고 헐뜯는 일이 벌어지더니, 며칠 전에는 파견 공무원이 특위의 주간 활동 내역과 다음주 활동 계획이 담긴 내부 문건을 청와대, 새누리당, 해수부, 경찰 정보과 등에 이메일로 유출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세월호 특별법의 명문규정을 어긴 위법으로, 특위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뿌리부터 흔드는 행위다. 개인적 일탈일 수 없는 만큼 배후를 찾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지금은 세월호 특위가 정상적으로 출범해 활동할 수 있을지가 의심되는 위기상황이다.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다짐한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특위를 가로막는 온갖 행태를 멈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