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 칼럼 2015. 4. 18. 19:28 Posted by SisaHan

늘 궁금했었다. 어떻게 이민자로서 서툰 언어와 낯선 문화를 극복하고 상류층을 상대로 하는 고급의상 비즈니스를 성공시킬 수 있었을까. 그녀가 수줍게 소개한 동영상은 예사롭지 않았다. 그것은 토론토 다운타운에서 32년째 에미스 부티크(Emy’s Boutique)을 경영하고 있는 송 여사의 케이블 TV 인터뷰였다. 그녀는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교회와 패션과 예술인데 무엇보다도 패션에 민감한 가정에서 성장하여 예술 감각을 자연스럽게 키우며 좋아하게 되었다고 소개했다. 두 말할 것 없이, 이 땅에서의 직업이 자신이 꼭 하고 싶은 일인 동시에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한번에 두 마리 토기를 잡은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사업비결은 섬세한 고객관리와 뛰어난 의상감각에 있었다. 얼마나 고객관리를 잘했으면 30년을 지나며 단순한 고객관계를 진한 우정관계로 발전시킬 수 있었겠는가. 그녀 주위에는 여행, 영화, 음악회에 동행하는 코드가 맞는 고객들이 많은 것을 보면 사람의 진심은 언어와 문화의 벽도 가볍게 넘어설 수 있는 것 같다. 그녀는 손님에게 어울리는 옷과 액세서리로 콤플렉스는 가리고 매력은 돋보일 수 있는 패션을 제안하는 코디네이터인 동시에 고정관념을 뛰어넘게 만드는 조언자로 어울리는 의상전문가이다. 무엇보다도 그녀를 향한 나의 감동은 단순히 이익을 남기기 위한 사업가라기보다 손님과의 관계를 통해 인생을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으로 보인다는 점에 있다.


오래 전 플로리다 팜 비치에서 만난 사람이 떠오른다.
그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명품상가에서 자신의 이름을 상표로 단 핸드백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자신이 직접 디자인하고 한국에서 제조한 그 핸드백에 대한 우월감과 열정이 남달랐다. 대나무의 왕골과 가죽을 이용한 사시사철 사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특이상품임을 열심히 설명했으나 문제는 고가(高價)에 있었다. 명품은 고가여야 한다는 그의 지론에 설득력은 실렸지만 정작 그는 세일즈맨으로서의 품격에 문제가 보였다. 누구나 알만한 세계적인 명품가게들이 즐비한 그곳에서 고가를 다루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과 헤어스타일, 그리고 초라한 가게 진열대로 어떻게 다른 유명 디자인 상품과 경쟁을 하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행객이 밀려드는 세계적인 관광지만을 골라 비즈니스를 옮겨 다니는 그의 경영방식도 보통사람과 달랐다. 6개월 혹은 1년의 짧은 계약기간으로 비싼 임대료를 내니 적자운영은 당연한 귀결로 보였다. 그런데도 분주한 관광지에 가게를 내야만 자신의 물건을 알아주는 고객들을 만날 수 있다고 주장하니 난감한 일이 아닌가. 단골이 아닌 뜨내기 손님을 상대하는 그의 상식을 넘어선 아집 때문에 집시처럼 떠돌이로 살다가 결국은 가정도 깨지고 곁에 남아있는 친구도 더 이상 없다고 하니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외곬 인생으로 세상에서 완전 외톨이가 되었는데도 사업을 향한 아집만은 밧줄같이 질겨 보이던 그. 오늘도 미국의 대도시 어딘가에서 자신의 상표를 알아주는 고객을 찾아 다니고 있을 그의 외로운 모습이 눈에 선하다. 명석한 머리로 순탄치 못한 환경을 딛고 일류 대학까지 나온 그의 아메리칸 드림은 정녕 이런 것이 아니었으리라. 마치 미지의 섬에 혼자 남겨놓은 듯 위태로워 보이던 그가 오늘 갑자기 송여사 인터뷰 사이에 모습을 드러냄은 두 사람의 대조적인 비즈니스 방식 때문이 아닌가 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지 아니?”
“흠,,, 글쎄요. 돈 버는 일? 밥 먹는 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대화 내용이다. 흔히 성공적인 삶은 원만한 인간관계로부터 좌우된다고 하는데 하물며 이윤을 남기는 비즈니스 세계는 오죽할까 싶다. 오랜 세월에 걸쳐 서로 신용이 쌓이지 않으면 결코 얻을 수 없는 이윤이 바로 사람을 남기는 일일 것이다. 오늘의 송 여사가 더욱 빛나 보이는 이유도 바로 사람을 얻을 줄 아는 그녀의 비범함에 있다고 본다.

< 원옥재 - 수필가 / 캐나다 한인문인협회원, 전 회장 >



[한마당] 세월호 참사마저 묻힌다면

● 칼럼 2015. 4. 18. 19:26 Posted by SisaHan

세계인이 지켜보는 눈 앞에서 거대한 여객선이 기울며 바다 속으로 빠르게 잠겨갔다. 그 안에 3백명이 넘는 귀중한 생명이 아직 남아 생사의 갈림길을 벗어나려 절규하고 있는데, 더구나 불가능을 모르는 팔팔한 도전의 꿈과 생동하는 젊음을 지닌 고등학생들이 대부분인 것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세월호의 절망적인 최후, 그렇게 안타까운 4.16 참사가 1년을 맞았다. 그 대참사의 상처가 아물기에 1년이란 너무 짧은 시간인 것일까. 그래도 망각의 동물인 사람들에게 1년 365일이면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고 고통의 강도가 약해지는 상당한 시일이다. 그런데 여전히 세월호 상처는 피를 멈추지 않은 채 쓰리고 아린 통증이 가실 줄을 모른다. 어쩌면 유족들과, 그들을 자기 일처럼 여기는 사람들에게만 아직도 깊은 고통으로 남아있을 뿐, 남의 일이고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벌써 아련한 옛 일로 잊혀가는, 어서 잊어버리고 싶은 귀찮은 ‘교통사고’로만 남아있는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무리 잊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들의 뇌리에 뿐만 아니라 그들의 현생과 미래 그 자손들에게까지도, 우리 시대 함께 사는 모두에게는 결코 잊혀지지 않을 ‘주홍글씨’로 각인되어 전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 까닭은 사고의 규모나 경위, 배경, 이후의 진상덮기와 방해 등 총체적인 상황 모두와 의혹들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럿 가운데서도, 진실을 차단하고 훼방하는 무능 무책임한 권력의 끝없는 만행이 역설적으로 세월호의 역사성을 강화시켜 주고 있다는 점이다. 전세계가 주시하는 데도 수많은 생명이 생매장 되어가는 충격적 현장을 보고만 있어야 했던 ‘죽음 방조’의 국민적 공동 책임의식과 ‘대한민국 침몰’을 본 수치심과 분노가 그 다음일 것이다. 자식들을 졸지에 수장시킨 부모들의 찢긴 심정을 아는 수많은 부모들이 가슴 아파하며 잊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근대사를 되짚어 보노라면 세월호의 연원은 어제 오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역사가 자유를 위한 압제와의 투쟁, 진실을 향한 불의한 권력과의 대결로 점철돼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처럼 자유와 진실이 꽃을 피우지 못한 채 꺾이고 잘리고 덮여버린 역사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적어도 동방의 선비나라인 조선시대까지는 나라에 재앙이나 환난이 닥치면 임금 스스로 부덕을 탄식하며 백성을 위로했고, 재상 관작들은 직을 물러나 책임을 자청하곤 했다. 그러나 조선말 외세의 침탈 이후 책임을 방기하며 강압으로 진실을 덮어버리고 봉합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상처가 치유되지 못한 채 속으로 곪고 퍼져 오랜 병소가 되고, 또 생겨난 상처는 그 위에 가림막으로 포장만 하는, 만성 골병을 앓게 된 습관적 병자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본다. 지난 질병의 원인균들이 깨끗이 박멸되지 못하고 그대로 잠복해 있다가 다시 재발되곤 하는 만성질환의 하나로 세월호 참사가 터진 것이다.


세계적 민중혁명인 동학의 실상은 일제에 의해 철저히 묻혀버렸다. 3.1 독립투쟁 역시 민족자존과 민족 자결주의 물결에 기름을 부은 혁명이었지만, 일제와 친일세력들에 의해 박해되고 ‘운동’으로 격하되고 말았다. 해방 이후 민족정기를 바로잡으려 제헌국회가 만든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는 이승만 정권에 의해 무참히 와해되어 친일파 색출은 물거품이 됐고 이후 친일후예들이 권력주류인 나라가 되고 말았다. 이후 그런 사례는 관성이 붙은 듯 끝이 없게 되었다. 최근의 대표적인 자원외교 비리, 천안함 논란, 대선 댓글공작과 남북대화록 유출, 정윤회 의혹 등등까지 밝혀지지 않은 진실들이 꼬리자르기와 물타기로 묻혀가는 사이, 그 연장선에서 잠재된 병소가 부풀어 세월호 참사가 나고, 역시 습성대로 진실덮기와 눈가리기의 되풀이인 것이다. 그러니 ‘성완종 리스트’ 규명은 어떤 결말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벌써 ‘물타기·물귀신’ 작전이 등장하는데….


세월호 유족들의 절규는 그런 골병과 악순환의 고리를 끊자는 하소연이며 애국충정에 다름 아니다. 그들을 힐난하는 이들과 세월호 규명을 한사코 막는 세력이야 말로 나라의 골병을 그냥 안고가자는, 국가 품격의 도약을 가로막는 망발임을 아는 것일까. 세월호 참사마저 진실을 그럭저럭 덮고 간다면 또 다른 참사와 비리가 잇따를 것이다.


< 김종천 편집인 >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2013년 국회의원 재선거 당시 이완구 국무총리에게 3000만원을 주었다고 숨지기 직전 언론 인터뷰에서 폭로한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 이 총리는 “돈을 한 푼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지만, 이 총리에게 쏠리는 의혹은 점점 짙어지고 있다. 이 총리가 성 전 회장의 측근들에게 15차례나 전화를 걸어 성 전 회장이 숨지기 전 나눈 대화 내용을 집요하게 캐물었던 것도 3000만원 수수 주장의 신빙성을 더하는 정황증거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현직 국무총리가 불법 정치자금 수수 피의자가 된 사상 초유의 사태는 결코 범상히 보아 넘길 수 없다. 이 총리는 “돈 받은 사실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나면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으나, 현 단계에서도 총리직을 수행하기 어려운 처지가 되고 말았다. 사실, 검찰 수사 결과 돈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 총리직을 그만두는 정도가 아니라 감옥에 가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 총리는 그런 하나 마나 한 소리를 할 게 아니라 검찰 수사에 앞서 총리직에서 물러나든가, 아니면 최소한 무죄가 밝혀질 때까지는 총리직을 수행하지 않는 게 옳다.


우선 검찰 수사의 공정성이나 신뢰성을 위해서도 이 총리가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검찰이 현직 총리를 수사하는 데 느끼는 부담감이 얼마나 클지는 긴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게다가 총리는 마음만 먹으면 검찰 수사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 수사의 독립성이나 공정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설사 이 총리가 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하더라도 검찰 수사 결과를 온전히 믿을 국민은 아무도 없다. 모든 것을 떠나 현직 총리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청사에 출석하는 참담한 모습은 나라의 큰 수치다.


게다가 이 총리는 내각을 통할할 권위와 체통을 잃어버렸다. ‘피의자 총리’의 지시가 공직사회에서 무슨 영이 서겠는가. 자신도 범죄 혐의 방어가 일차적 과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나랏일이 손에 잡힐 리 만무하다. 결국 이 총리가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한 국정운영은 헛바퀴만 돌아가고 내각은 식물 상태로 빠져들게 돼 있다. 이 총리의 첫 대국민담화 주제는 부정부패 척결이었다. 하지만 그가 쏘아 올린 사정의 화살이 부메랑이 돼 돌아와 자신이 “사정 대상 1호”로 지목되면서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차라리 물러나 자신의 무죄 입증에나 힘을 쏟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나 좋은 일일 것이다.



[사설] 세월호 1주기를 모독하는 정부

● 칼럼 2015. 4. 18. 19:24 Posted by SisaHan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정부의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안 폐기를 요구하는 유가족 등 시민들을 향해 경찰이 최루액을 뿌렸다. 11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문화제를 연 유가족과 시민들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려 하자 차벽을 설치하고 캡사이신 최루액을 뿌려 진압한 것이다. 경찰이 세월호 관련 집회에 대응해 최루액을 사용한 것은 처음이다. 참사를 애도하고 책임을 통감해야 할 공권력이 되레 추모 행렬에 주먹질을 한 셈이다. 참사 1주기가 다가오면서 정부가 내놓는 ‘세월호 인양 검토’ 등 온갖 유화 발언보다 이런 행동 하나야말로 세월호를 대하는 정부의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 보여준다.


경찰은 ‘집회 참가자들이 여덟 차례 해산명령에 불응하고 경찰 방패를 뺏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고 이유를 댔다. 정당한 요구를 표출하는 시민들을 가로막은 뒤 충돌이 벌어지면 폭력행위자로 매도하는 낡은 수법이다. 유가족과 시민들의 평화로운 행진을 경찰이 폭압적으로 차단하지 않았어도 그런 충돌이 벌어졌겠는가. 나아가 정부는 시민들이 왜 분노하는지부터 헤아려야 했다.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안은 누가 봐도 진상 규명을 방해하는 독소조항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시행령안을 고치라는 요구를 보름 넘게 묵살해온 정부가 급기야 그 요구를 최루액으로 틀어막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어이없는 행보는 이뿐만이 아니다. 세월호 인양을 두고도 말이 뒤죽박죽이다. 모르쇠로 일관하던 박 대통령이 6일 “선체 인양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밝히더니, 9일에는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이 인양의 위험성과 실패 가능성, 추가 비용 등을 고려해 인양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신중론을 폈다. 대통령과 장관의 말이 전혀 다른 뉘앙스다. 게다가 하루 뒤인 10일에는 해양수산부가 ‘세월호 인양이 가능하다’는 기술 검토 결과를 예정보다 이틀이나 앞당겨 급작스레 발표했다. 마침 ‘성완종 리스트’가 보도된 날이었다. 이렇게 속 보이는 태도를 취하니 정부의 진정성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는 세월호 참사 1주기인 16일 당일 추모제 대신 ‘국민안전다짐대회’를 연다. 참사와 관련된 내용도 담지 않은 고색창연한 관변행사나 열겠다는 발상이 한심하다 못해 놀랍기만 하다. 반면 유족과 시민들이 참여하는 16일 추모집회에는 다시 경찰 차벽을 설치하겠다고 경찰청장이 나서 당당히 밝히고 있다. 박 대통령은 그날 외국 순방을 떠난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뻔뻔한 정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