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궁금했었다. 어떻게 이민자로서 서툰 언어와 낯선 문화를 극복하고 상류층을 상대로 하는 고급의상 비즈니스를 성공시킬 수 있었을까. 그녀가 수줍게 소개한 동영상은 예사롭지 않았다. 그것은 토론토 다운타운에서 32년째 에미스 부티크(Emy’s Boutique)을 경영하고 있는 송 여사의 케이블 TV 인터뷰였다. 그녀는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교회와 패션과 예술인데 무엇보다도 패션에 민감한 가정에서 성장하여 예술 감각을 자연스럽게 키우며 좋아하게 되었다고 소개했다. 두 말할 것 없이, 이 땅에서의 직업이 자신이 꼭 하고 싶은 일인 동시에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한번에 두 마리 토기를 잡은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사업비결은 섬세한 고객관리와 뛰어난 의상감각에 있었다. 얼마나 고객관리를 잘했으면 30년을 지나며 단순한 고객관계를 진한 우정관계로 발전시킬 수 있었겠는가. 그녀 주위에는 여행, 영화, 음악회에 동행하는 코드가 맞는 고객들이 많은 것을 보면 사람의 진심은 언어와 문화의 벽도 가볍게 넘어설 수 있는 것 같다. 그녀는 손님에게 어울리는 옷과 액세서리로 콤플렉스는 가리고 매력은 돋보일 수 있는 패션을 제안하는 코디네이터인 동시에 고정관념을 뛰어넘게 만드는 조언자로 어울리는 의상전문가이다. 무엇보다도 그녀를 향한 나의 감동은 단순히 이익을 남기기 위한 사업가라기보다 손님과의 관계를 통해 인생을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으로 보인다는 점에 있다.
오래 전 플로리다 팜 비치에서 만난 사람이 떠오른다.
그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명품상가에서 자신의 이름을 상표로 단 핸드백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자신이 직접 디자인하고 한국에서 제조한 그 핸드백에 대한 우월감과 열정이 남달랐다. 대나무의 왕골과 가죽을 이용한 사시사철 사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특이상품임을 열심히 설명했으나 문제는 고가(高價)에 있었다. 명품은 고가여야 한다는 그의 지론에 설득력은 실렸지만 정작 그는 세일즈맨으로서의 품격에 문제가 보였다. 누구나 알만한 세계적인 명품가게들이 즐비한 그곳에서 고가를 다루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과 헤어스타일, 그리고 초라한 가게 진열대로 어떻게 다른 유명 디자인 상품과 경쟁을 하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행객이 밀려드는 세계적인 관광지만을 골라 비즈니스를 옮겨 다니는 그의 경영방식도 보통사람과 달랐다. 6개월 혹은 1년의 짧은 계약기간으로 비싼 임대료를 내니 적자운영은 당연한 귀결로 보였다. 그런데도 분주한 관광지에 가게를 내야만 자신의 물건을 알아주는 고객들을 만날 수 있다고 주장하니 난감한 일이 아닌가. 단골이 아닌 뜨내기 손님을 상대하는 그의 상식을 넘어선 아집 때문에 집시처럼 떠돌이로 살다가 결국은 가정도 깨지고 곁에 남아있는 친구도 더 이상 없다고 하니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외곬 인생으로 세상에서 완전 외톨이가 되었는데도 사업을 향한 아집만은 밧줄같이 질겨 보이던 그. 오늘도 미국의 대도시 어딘가에서 자신의 상표를 알아주는 고객을 찾아 다니고 있을 그의 외로운 모습이 눈에 선하다. 명석한 머리로 순탄치 못한 환경을 딛고 일류 대학까지 나온 그의 아메리칸 드림은 정녕 이런 것이 아니었으리라. 마치 미지의 섬에 혼자 남겨놓은 듯 위태로워 보이던 그가 오늘 갑자기 송여사 인터뷰 사이에 모습을 드러냄은 두 사람의 대조적인 비즈니스 방식 때문이 아닌가 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지 아니?”
“흠,,, 글쎄요. 돈 버는 일? 밥 먹는 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대화 내용이다. 흔히 성공적인 삶은 원만한 인간관계로부터 좌우된다고 하는데 하물며 이윤을 남기는 비즈니스 세계는 오죽할까 싶다. 오랜 세월에 걸쳐 서로 신용이 쌓이지 않으면 결코 얻을 수 없는 이윤이 바로 사람을 남기는 일일 것이다. 오늘의 송 여사가 더욱 빛나 보이는 이유도 바로 사람을 얻을 줄 아는 그녀의 비범함에 있다고 본다.
< 원옥재 - 수필가 / 캐나다 한인문인협회원, 전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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