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3.1은 운동이 아니라 혁명

● 칼럼 2015. 3. 14. 17:30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지난 3월1일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라는 단체의 기념행사에 참석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특강을 했는데 메시지에 울림이 담겼다. 그는 3.1운동을 3.1혁명으로 이름을 바꾸자고 주장했다. 제헌절, 광복절, 한글날, 개천절은 이름이 확연한 의미를 지니는 반면에 왜 3.1절만 의미가 거세되어 단순한 숫자로만 표현되느냐는 것이다. 1919년 3~4월에 일어난 세계사적으로 위대한 혁명적 거사를 ‘3.1운동=스리 콤마 원 스포츠’로, 외국인이나 어린이가 오인하도록 만들 이유가 없다는 문제제기였다.

3.1혁명은 중국 신해혁명, 러시아혁명과 함께 유라시아의 3대 혁명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겠다. 무엇보다 기본가치로 볼 때 체제를 완전히 변혁하고자 했다.


첫째로 자주독립을 선언하고 일제 식민지배를 거부하였으며, 둘째로 4000년 동안 내려온 봉건왕조를 거부하고 민주공화주의를 주창했다. 셋째, 여성이 역사 현장에 주체적으로 등장하여 신분, 세대를 넘는 범민족적 항쟁을 벌였다. 당시 피검자 1만9525명 중 학생과 교원이 2355명인데, 이 가운데 여성이 218명이었다. 여성의 취학률이 남성의 100분의 1도 안 될 때이니 대단한 숫자다. 넷째, 전근대적 신민의식이 근대적 시민의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3.1혁명은 역사의 여러 흐름이 유입되었다가, 새로운 흐름을 발생시키는 발원지이며, 거대한 호수로 비유되기도 한다. 실제로 동학혁명, 갑오개혁, 만민공동회, 의병전쟁, 의열투쟁 등의 흐름이 3.1혁명으로 만나, 무장투쟁, 임시정부, 조선의용대, 광복군 등의 독립전쟁 흐름을 만들어냈다. 대한민국의 정체가 된 민주공화주의는 3.1혁명에서 발아했다.


1930년대 이후 독립운동가들은 대부분 3.1혁명이라 불렀다고 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1941년 조소앙이 기초한 건국강령 제정 이후 3.1혁명 또는 3.1대혁명을 공식 호칭으로 썼다. 중국 역사가와 언론매체들도 모두 혁명이라 하였다. 다만, 일본 언론이 소요, 폭동 따위로 불온시하다 간혹 ‘운동’이란 말을 썼다고 한다.

혁명이 운동으로 공식 격하된 것은 엉뚱하게도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에서다. 당시 헌법기초위원회는 전문위원 유진오가 마련한 초안을 중심으로 논의했다. 초안은 전문에서 “3.1혁명의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라고 했고 30명의 헌법기초위원이 모두 동의했다.
그러나 한민당 계열 일부 의원들이 혁명이란 용어에 거부반응을 보이면서 5인 소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고, 친일파 출신 이종린 등이 주도한 소위가 3.1혁명을 기미 3.1운동으로 고친 수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상정했다. 제헌국회 실세이던 이승만은 “혁명이라면 우리나라를 전복하자는 것”이므로 부당하다는 엉뚱한 발언을 하고, 일본 제국대학 출신 이주형 의원의 찬성 발언만을 허용한 다음 표결에 부쳤다. 친일세력과 역사의식이 박약한 이승만의 농간으로 3.1혁명이 박제화된 것이다.


앞으로 3.1운동을 3.1혁명으로 공식 수정하면 좋겠다. 무엇보다 사물의 실체와 이름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공자는 정명사상을 주장했다. 아울러 식민지 근대화론, 뉴라이트 인사들의 건국절 지정론 따위의 그릇된 역사관을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승만은 3.1혁명을 격하시킨 것을 봐도 건국의 아버지로 높임을 받을 자격이 없다.
일본 아베 정권이 전쟁 책임을 부인하고, 그 행태를 미국이 은근히 두둔하고 있다(웬디 셔먼 미 국무부 정무차관). 재균형이라는 이름 아래 중국 포위망을 짜려는 미국과 신형 대국관계를 추구하는 중국이 맞서 동아시아에 갈등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다. 올바른 역사인식은 갈등 대신 균형과 평화의 질서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출발점이다. 3.1혁명 이름 되찾기는 동아시아 차원의 의미도 크다.
< 한겨레신문 박창식 논설위원 >



[1500자 칼럼] 세상의 최고 나쁜 갑질 ‘돈질’

● 칼럼 2015. 3. 7. 18:25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90년대인가 친척이 돈과 관련된 민사소송을 한 일이 있었다. 당시 꽤 유명한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겼는데 그가 판사에게 줄 돈을 요구한다고 했다. 재판 중이고 승소한 것도 아닌데 사례금도 아니고 무슨 돈이냐니까 ‘판사가 양쪽에서 돈을 받고 이기는 쪽 돈은 안 돌려주고 지는 쪽 돈은 틀림없이 돌려주는 것이 관행’이라고 변호사가 말했다는 것이다. 승소 아니면 패소이니 판사는 확실하게 절반은 건지는 셈이다.
물론 모든 판사와 변호사가 그럴 리는 없을 것이라고 믿었고 변호사가 자기 뱃속 채우기 위해 거짓말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지만 그 변호사의 승소율이 높은 것이 그런 연유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살이 떨렸다. 그래도 판사는 상대적으로 부패의 정도가 심하지 않을 거라고 여겼던 믿음이 무너졌다.


국회 통과를 앞두고 과잉입법이며, 지킬 수 없는 법이라고 갑론을박하는 김영란법을 보면서 갑자기 20년 전의 그 일이 생각났다. ‘… 관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금품수수를 막고 …’ 초안에 들어 있는 문구는 금품수수를 일부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너도 하고 나도 하는 관행으로 못박고 있다. 애초에 대상이 1800만명이었는데 300만명으로 축소되었다고 한다. 돈뿐 아니고 대상이 선물 부동산 증권 숙박권 회원권 입장권 할인권 초대권 골프 술접대 빚면제 일자리제공 등 가지가지다.
엄중한 직업적 윤리를 지켜야 하는 직종의 사람들이 관행적으로 돈을 주고받으며 자녀들의 얼굴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그 장면을 자식이 본다고 생각하면 온몸이 오그라들지 않았을까. 주변 사람들에게 물으니 천만의 말씀이라고 한다. 이 돈을 내가 쓰나, 다 아이들 교육시키고 과외 외국유학 결혼자금 그리고 손자들까지 쓸 거니까 하며 눈 딱 감는다는 것이다. 한번이 어렵지 대통령도 하고 대학 총장도 하고 대법관도 하고 별 다섯개도 하고 자기 윗사람도 다 하는데 아무런 죄의식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권력과 부와 교육 기회의 대물림은 이렇게 해서 우리 사회의 상층부를 형성하고 있다. 6.25전쟁 이후 국민 대부분이 가난했던 시대를 지나 지금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대학 등 모든 분야에서의 3대 대물림이 확실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는 동안 빈부의 격차는 심해지고 돈이 모든 것을 장악하고 그 대열에 끼지 못한 젊은이들은 결혼도 출산도 하기 어려워진 세상이 된 것이다.
‘세상에는 돈으로 거래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지난해인가 성매매의 비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키기 위해 나온 슬로건이다. 나는 분명하게 몸을 사고파는 것보다 정신을 팔고사는 것이 더 옳지 못한 일이라고 믿는다.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고 연금이 노후를 보장해주는데도 그 자리를 이용해 돈을 주고받는 비열함…. 세상에 돈으로 거래할 수 없는 것은 성매매보다 그쪽이라고 나는 단언한다. 방위산업 비리의 규모와 내용을 보며 군대조직과 국방비가 날로 비대해지는 것이 별들의 비리잔치를 위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완구 총리가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한 너희들도 무사하지 못할 거라던 반협박조의 발언이 평생 그 직업에 종사한 나를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게 한다.


최근 3대째 대물림한 누군가를 위해 비 오는 날이면 그가 잠시 내딛는 질척한 길 앞에 카펫이 깔린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다. 땅콩 회항도 믿을 수 없었지만 사실이었던 것처럼 명품 구두와 옷에 빗물이 튈까 봐 카펫질을 하는 것도 사실일 수 있다.
내가 판사라면 성매매보다 인격, 도덕, 사회적 지위, 책임 이런 것을 버린, 돈으로 국방비를 엿 바꾸어 먹은 인간들을 더 강력하게 처벌하고 싶을 것이다. 얼굴도, 그동안의 이력도, 사는 곳도 명기했으면 싶다. 법보다 처벌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 맞다. 법이 통과되어도 얼마든지 법망을 피해 갈 방법이 또 나올 것이니까.


남편과 아들 둘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가 이런 생각을 한다. 저들이 성매매법에 걸리는 게 부끄러울까 돈을 먹는 게 부끄러울까…. 답은 분명했다. 성매매는 용서해도 돈 먹은 것은 결코 용서하지 못할 것 같다.
< 김선주 - 언론인 >



[사설] 한-미 관계 해치는 미국 국무차관 망언

● 칼럼 2015. 3. 7. 18:23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이 지난달 27일 일본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이해하기 어려운 발언을 했다. 미국 정부의 납득할 만한 후속조처가 없다면 한-미 관계를 해칠 수 있는 내용이다.
“(동북아에서) 민족주의 감정이 여전히 이용될 수 있으며, 어느 정치지도자도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런 도발은 진전이 아니라 마비를 초래한다”는 그의 말은 분명히 중국과 한국을 겨누고 있다. 과거사 해결에 소극적인 것도 모자라 문제 자체를 부인하는 아베 신조 일본 정부의 입장을 적극 두둔하는 발언이다. 미국 국무부 4인자로 동아시아 정책을 총괄하는 고위 관리의 언급으로 믿기지 않는다. 그가 일본의 사과와 반성을 촉구하는 의례적인 요구조차 하지 않은 것은 그의 의도를 잘 보여준다. ‘한·중·일 모두 똑같이 문제가 있으니 이제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지 말아달라’는 주문인 것이다.


그가 왜 이런 발언을 했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패권국 위상이 떨어진 상황에서, 중국을 겨냥한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밀어붙이기 위해 일본과 적극적으로 손잡겠다는 것이다. 한국에 대해서는 미국·일본 쪽에 확실히 서라는 요구로 읽힌다. 4월 방미를 앞둔 아베 총리에게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을 빨리 마무리하라는 압박의 뜻이 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반역사적인데다 과거사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어 갈등을 심화시킬 뿐이다. 자국 전략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처지가 어떻든 무슨 행동도 할 수 있다는 오만한 발상이기도 하다.


미국은 ‘한·중·일이 과거 교훈을 거울삼아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지향적인 협력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표명해왔다’고 우리 정부에 해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셔먼 차관의 발언 내용과 어긋난다. 이 정도 설명에 그친다면 많은 한국인은 미국이 일본 과거사 문제를 부인하고 과거 일제의 잘못을 옹호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한국인들은 미국이 이제까지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반성을 통해 과거사 문제를 풀고 미래로 나아가자’라는 입장인 것으로 믿어왔다.
북한 핵 등 동북아 현안에 대한 관련국의 협력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현실적인 요구가 과거사 문제 자체를 대체할 수는 없다. 미국은 ‘치고 빠지기’식 발언으로 한-미 관계를 흔들지 말고 무엇이 옳은 모습인지를 다시 생각해보기 바란다.



[사설] ‘향우회 정부’ 만들려고 정권 잡았나

● 칼럼 2015. 3. 7. 18:22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대통령에서 감사원장까지 국가 의전서열 10위 안에 든 11명 가운데 8명이 영남권 출신이다. 검찰·경찰·국세청을 비롯한 이른바 5대 권력 기관장은 모두 영남이 싹쓸이했고,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여러 공공기관장도 역시 영남 일색이다. 박근혜 정부 편중인사의 심각성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이 2일 발표한 현 정부 고위직 인사들의 출신 지역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나타난 대한민국의 권력지도 모습은 참담하기만 하다.


윗자리가 특정 지역 출신 인사들로 채워지면 밑의 노른자위 자리들도 자연히 그쪽 동네 사람들의 차지가 되는 법이다. 지금 정부 각 부처와 주요 기관들의 핵심 요직에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거의 ‘영남향우회’ 수준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들이 끼리끼리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축배를 들고 있는 한쪽 편에서는 소외된 지역 사람들의 울분과 원망이 차곡차곡 쌓여 간다. 이런 인사의 빛과 그늘 속에서 국가의 통합이며 화합 따위는 아득히 먼 나라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박근혜 정부의 편중인사 특징의 하나는 염치며 체면 따위를 과감히 벗어던졌다는 점이다. 과거 정부에서도 편중인사니 코드인사니 하는 논란이 있었으나, 그래도 형식적 균형이라도 유지하려 애썼다. 검찰총장이 호남이면 법무부 장관은 영남 하는 식으로 모양새라도 갖추려 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이제 그런 시늉도 하지 않는다. 예전에 흔히 쓰이던 지역안배라는 말이 사라진 지도 오래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은 새해 기자회견에서 편중인사에 대한 질문을 받고 “능력과 도덕성을 겸비한 인재를 찾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답변했다. 잘못된 인사에 대한 국민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귀담아듣겠다는 자세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처럼 능력있는 사람들만 발탁하는데도 이 정부가 역대 최악의 무능한 정부라는 평을 듣는 이유는 무엇이며, 지금까지 임명한 장관 중 어느 누구 하나 도덕성 흠집이 없는 사람을 발견하기 힘든 이유는 또 무엇인지 궁금할 뿐이다.
‘동종교배 퇴화의 법칙’이 동물뿐 아니라 인간 사회에도 적용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같은 고향 사람들, 같은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 비슷한 학교와 배경을 지닌 사람들만 옹기종기 모인 조직이 걸어갈 길은 뻔하다. 더 나은 진화와 발전은커녕 퇴보만을 거듭할 뿐이다.
지금 이 정부가 총체적 난조에 빠져 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