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무릎 꿇는 사회

● 칼럼 2014. 12. 21. 17:36 Posted by SisaHan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우리에게는 난해하기로 소문난 책 <계몽의 변증법>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가 오늘날의 독일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유대인이었던 아도르노는 나치가 집권하자 호르크하이머, 마르쿠제, 프롬 등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동료 학자들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고, 서독이 세워진 직후인 1949년 독일로 돌아와 1969년 사망할 때까지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철학과 사회학을 가르쳤다.
독일로 귀환하기로 결심했을 때 그에게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그것은 독일이 다시는 나치즘과 같은 야만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완전히 ‘새로운 독일’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가 가장 중요시한 것이 바로 과거청산이었다. 오늘날 독일이 ‘과거청산의 나라’, ‘역사 민족’이라고 불리며 주변국들로부터 도덕적 권위와 신뢰를 회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유럽연합의 중심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아도르노의 역할이 컸다.


아도르노는 과거청산이 제도적·인적 청산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단언했다. 왜냐하면 “과거청산의 본질적인 문제는 드러내놓고 극우적인 집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속’에서 살아남아 민주주의를 내부로부터 위협하는 권위주의적인 성격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권위주의적 성격을 극복하기 위해 그가 강조한 것이 ‘반권위주의 교육’과 ‘비판교육’이었다. 권위 앞에서 쉬이 순종하는 ‘약한 자아’가 민주주의에 가장 위협적인 요소이기에, 학생들의 비판의식을 고취해 강한 자아를 가진 시민으로 길러내는 것이 민주주의 교육의 요체라는 것이다. 그는 호르크하이머와 함께 부당한 권력에 굴종하지 않고 맞서는 능력을 키워줄 ‘저항권 교육’을 특히 강조했다. 이는 오늘날 독일 교육의 중요한 구성요소가 되었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교육부의 기본지침에는 “수용할 수 없는 지배관계와 사회적 억압에 대한 저항능력”, “저항기술에 대한 지식”, “개혁적 혹은 혁명적 성격의 기획을 실현하는 능력”, “주어진 사회적 규범을 자유로이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규범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되어 있다.


오늘날 독일은 - 일본과는 달리 - ‘반권위주의 교육’, ‘비판교육’, ‘저항권 교육’을 통해 나치즘의 과거를 성공적으로 청산한 ‘과거청산의 모범국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 사회의 숨겨진 본성을 처연하게 드러낸다.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거대한 권력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무력하고 왜소한 존재인지, 사회적 약자가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한국 자본주의가 얼마나 천민적이고 야만적이며 재벌들이 얼마나 오만하고 폭력적인지, 우리는 새삼 확인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최근의 사건들이 보여준 것은 우리가 여전히 권위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항공기 사무장이 무릎 꿇고, 승무원이 무릎 꿇고, <카트>의 계약직 노동자가 무릎 꿇고, <미생>의 직장인들이 무릎 꿇고, 강남의 아파트 경비원이 무릎 꿇는다. 이는 한편으로는 부당한 권력의 폭력성을 보여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현시한다.


‘무릎 꿇는 사회’는 민주사회가 아니다.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는 사상누각이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려면 이제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능력을 갖춘 민주주의자를 학교에서 길러내야 한다. 더 이상 무릎 꿇는 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의 권위주의적 구조와 불평등을 극복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민주주의 교육’, 특히 ‘저항권 교육’이 시급하다.
< 김누리 - 중앙대학교 독문과 교수 >



[한마당] 올바른 사과가 없는 나라

● 칼럼 2014. 12. 20. 16:48 Posted by SisaHan

‘통석(痛惜)의 염(念)’이라는 이상한 말이 있었다. 1990년 우리나라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한국 대통령을 환영하는 만찬장에서 일본 국왕이 쓴 말이다. 일찍이 들어보지도 못한 말이라 학자들은 그 말의 언어적 의미에 대해 골몰하다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에 대해 ‘애석하고 안타깝다’는 뜻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그 뜻대로라면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한 일이 애석하고 안타깝다는 것인데, 그러나 정말 애석하고도 안타깝게도 그때 일본 국왕이 사용한 ‘통석’의 뜻은 그 너머에 있다. 한국 대통령이 자기 나라를 방문하고 이제 일본도 관계개선을 위하여 사과의 말을 담아야 하는 입장에 처한 것이 너무도 비통하고 답답하다는 뜻이다. 그는 자기 나라 국민에 대해서도 외국에 대해서도 절대 사과의 말 같은 것은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절대적 위치에 있는 이른바 이름도 거룩한 그들의 ‘천황’이기 때문이다.

집안 어른 중에 1950년대에 군대에서 사단장의 운전병을 한 사람이 있다. 이 어른은 자기가 운전하여 태우고 다닌 사단장을 ‘각하’라고 불렀다. 그 말을 들은 게 1970년대의 일이라 매우 낯설게 들려 일부러 사전을 찾아보았더니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 대한 경칭’이란 풀이가 나와 있었다. 그래, 그렇다면 못 부를 말도 아니다. 장관 각하, 도지사 각하, 사령관 각하. 일반적으로 그렇게 불렀다고 했다.


그러던 말이 1961년 군사정변 이후 오직 한 사람의 정치적 권력적 지존에게만 쓰는 말로 바뀌었다. 그 말이 너무도 권위적으로 쓰여 20년 전 문민정부 시절 대통령부터 쓰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민주정부 시절을 거치면서 거의 사라진 말이 되었다.
그 말이 최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과 집권여당 지도부의 오찬 자리에서 여당 원내대표가 이렇게 불러주어 감사하다는 극존경의 인사말 속에 세 번이나 ‘대통령 각하’를 언급하며 되살아났다. 국민보다 자기의 정치생명을 좌지우지하는 절대권력에 대한 아부가 먼저이기 때문이다. 이제 어떤 회동에서도 참석자 모두 그 말을 다시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게 생겼다. 대통령이 원해서 부른 말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말로써 정치적 지존의 위치로 ‘받들어 모셔지는’ 사람은 앞의 일본 왕의 예에서 보듯 존재의 위치상 사과의 말을 입에 올리기 어렵게 된다. 사과를 하더라도 자기 자신은 뺀 주어 없는 사과를 하거나 남 탓의 사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멀리 가지 않고 세월호와 최근 십상시 난장의 일만 돌아보아도 충분히 짐작되는 일이다.


‘땅콩 회항’으로 국제적 웃음거리가 된 대한항공의 사과문 역시 그렇다. 부사장 자신이 아니라 회사 홍보실 차원에서 썼을 것이다. 쓰면서 그들도 그렇게 쓰면 더 웃음거리가 되고 국민적 저항에 부딪친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도 그렇게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은 고객이나 국민보다 당장 자기의 밥줄을 쥐고 있는 오너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아들이 술집에서 싸움질하다가 맞고 들어왔다고 조직폭력배를 앞세우고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며 진두지휘한 어느 재벌 총수의 사적 보복행위가 물의를 빚었을 때도 회사 차원에서 뿌려진 사과문에는 그것을 세상에 둘도 없는 ‘아버지의 애틋한 부정’으로 변명했다. 세상이 어지럽고 먹고살기 어렵다 보니 우리의 아름답고 멀쩡한 말들이 생으로 고생한다.
다시 ‘통석의 염’을 빌려와 그때나 지금이나 애석하고도 안타깝게 우리는 여전히 안으로도 밖으로도 제대로 사과다운 사과조차 받지 못하고 사는 장기판의 졸 같은 국민인 것이다.
< 이순원 소설가 >



[1500자 칼럼] 십이월의 두 그림자

● 칼럼 2014. 12. 16. 20:39 Posted by SisaHan

저녁 외출을 하다가 크리스마스 장식을 거창하게 한 동네를 지났다. 집집마다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더 화려하게, 더 크게, 더 개성 있게 한껏 멋을 낸 조형물과 트리들이 저마다 빛을 발하며 눈길을 앗아갔다. 좌우로 고개를 열심히 돌리며 크리스마스트리 터널을 지나는 동안 어딘가에 박혀있던 나의 동심이 꿈틀거리며 시샘 아닌 시샘을 한다. ‘저런 것들을 보고 자라는 요즈음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나는 꿈도 꾸어본 적 없는데.’ 하고.
해마다 12월에 접어들면 내 마음을 은근히 짓누르는 일이 하나 있다. 남들은 즐기면서 하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나에게는 큰 숙제로 다가오는 탓이다. 그것을 꼭 설치해야만 될까.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지만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다. 실내 장식이야 기분 내키는 대로 하면 그만이지만 뭇 시선이 오가는 밖은 나름 신경을 좀 써야 하는 게 아닌가. 이웃과 더불어 살면서 기울어지지 않을 정도의 보조는 맞추어야 하련만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번번이 시기를 놓치기 일쑤다.


올해도 어김없이 갈등 속에 있다가 용기를 내서 전지가위를 들었다. 집 모퉁이에 서 있는 호랑이 발톱나무 가지를 가시에 찔려가며 한 아름 잘랐다. 그리곤 일 년 내내 차고 구석에 있던 항아리와 자작나무 둥치를 꺼내어 가지들을 수북이 꽂았다. 하얀 자작나무 지주에 파란 잎과 빨간 열매가 조화를 이루어 제법 분위기가 났다. 내친김에 조금 더 욕심을 내려다가 주춤했다. 초자 실력으론 감당이 안 될 만큼 화려한 이웃집의 작품들이 눈에 밟혀 무리수를 둘 수가 없었다.
처음 이곳에 정착했을 때 가장 부러웠던 것 중의 하나가 할로윈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축제일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함께 꾸미고 즐기는 어른들의 여유가 생경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세상 모든 아이들의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월트 디즈니의 ‘미키마우스’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혹은 ‘해리포터’ 같은 캐릭터들은, 작가의 이런 생활방식이 밑바탕 되어 탄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도 쉽게 그 쪽으로 접근이 안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크리스마스 장식은커녕 크리스마스 선물도 받아보지 못하고 자란 세대이기에 이 시즌에 갖는 부담감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의 본질에서 많이 어긋나 있는 작금의 시류에 편성하기보다 내 방식대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며 한 해를 마무리해야겠다.
12월도 중반을 향하고 있는 지금, 무사히 한 해를 살아 낸 뿌듯함과 동시에 또 한 해를 떠나보내야 하는 허전함이 교차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느끼는 기분이지만 어쩔 수 없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의 마지막을 어떻게 마무리 할까 하다가 아이의 전자 메일이 생각났다.
며칠 전 객지에 나가 있는 큰 아들에게서 가슴 찡한 소식이 왔다. 집안의 대소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아쉬움과 함께 내년엔 온가족이 모두 모여 행복하게 살자는 희망 메시지 끝에 진심어린 한 문장이 내내 가슴을 얼얼하게 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많이 그립습니다.’ 아이의 힘겨운 타지 생활이 그대로 느껴져 잠시 눈시울을 적시긴 했지만 정감어린 그립다는 표현이 그렇게 신선할 수 없었다. 가까운 사람끼리 이심전심도 좋지만 표현에도 게으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 그립습니다.
 친구야 보고 싶다.
 여보, 사랑해요.
 
갈수록 사용 빈도가 줄어드는 이 아름다운 말들이 다시 생기를 찾을 수 있도록 얼마 남지 않은 올해 많이 애용 할 참이다.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등단 >



[한마당] 십상시와 찌라시 개념

● 칼럼 2014. 12. 16. 20:36 Posted by SisaHan

조선의 임금 연산군은 악행과 음행으로 소문난 군주였다. 어머니로 인해 일찍부터 한을 품었던 그는 왕위에 오르자 천성적으로 좋아한 술과 여자를 탐닉하느라 국정과 백성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졌다. 궁중에 수많은 궁녀를 두었음에도 기생은 물론 평민여성들과 조정의 부인들, 심지어 친족인 큰아버지 월산대군의 부인까지도 욕보여 자결케 했다. 반반한 아내를 둔 ‘어이없는 죄’로 아내를 임금에게 뻬앗긴 남편들의 억울한 목이 수없이 날아갔다.
학문의 전당인 성균관을 놀이터로 만들고, 유생들은 모두 쫓아내거나 죽였으며, 주색을 즐기기 위한 토목공사들로 국고가 탕진되었다. 참다못해 폭정을 시정하라 간하는 신하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처단하였으니 충신은 목숨을 부지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면서 조정의 대신들에게 “입은 재앙을 초래하는 문이요, 혀는 몸을 죽이는 도끼이다”라고 쓴 패를 차게 하여 충언을 하려거든 재앙과 도끼를 각오하라고 협박, 주변에선 올곧게 입을 여는 사람의 씨가 말라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일개 내관, 즉 내시였던 김처선이라는 사람이 보다 보다못해 목숨을 걸고 나선다. 김처선은 도끼날이 번득이는 살벌한 왕명을 어기면서 연산에게 ‘제발 처신을 바로 하소서’라고 충직하게 간언을 했으니, 그의 용기와 충성심은 역사에 기록되고도 남을 만했다. 그는 각오한대로 연산이 직접 쏜 화살에 맞아 참혹하게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그의 집터는 파헤쳐져 연못이 되었고 아무 죄없는 친척들에게까지 화가 미쳤다.
당시 김처선이라는 충신 환관을 어리석다며 비웃듯 극명하게 대조적인 김자원이라는 내시가 있었으니, 그는 조선시대 가장 악랄한 내시로 역시 사초에 이름을 남겼다. 폭군의 비위를 맞추며 권세를 휘두른 김자원이란 자의 위세는, 조정의 모든 관료들이 그를 통하지 않고는 왕을 알현할 수 없을 만큼 막강했다. 그가 승정원에 출입할 때는 일개 내시 신분임에도 모든 승지가 머리를 숙여야 했고, 그가 행차하는 곳에서는 아무리 고관대작에 양반이라 해도 말에서 내려야 했다. 김자원이 이렇게 행세할 수 있었던 것은 절대궐력자 연산을 업은 호가호위(狐假虎威)였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왕명의 출납을 악용한 오만방자요 행패였다. 그를 수족삼아 무능한 군주 연산군은 자신의 부도덕과 악행을 감추고 최대한 활용하는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이었던 것이다.


최근 정윤회 국정개입 파문을 빚은 청와대 유출문건에 ‘십상시’(十常侍)라는 말이 거론돼 사람들 입에 회자되고 있다. 중국 후한 말 영제(靈帝, 156~189)때 환관 10명이 어리고 물정에 어두운 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들고는 권력을 휘두르며 국정을 농단한 사건에서 유래한 10명의 내시, 곧 ‘중국판 김자원’들을 일컫는 말이다. 중국의 ‘후한서’(後漢書)와 나관중의 역사소설 ‘삼국지’(三國志演義)에 나오는 이들 삽상시는 그러나 일장춘몽의 권력 꿀맛을 본 뒤, 차례로 모조리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물론 그들이 지탱했던 나라도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음은 당연한 섭리다.
21세기 민주주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2천년 전 중국 땅에 설쳐댔던 환관들의 이야기가 되살아나는 현상은 무얼 말해주는가. 유출문서를 ‘하찮은 찌라시’라며 스스로 국가 최고 권부인 청와대를 ‘찌라시 제작소’로 추락시켜 버린 이가 바로 청와대 주인이다. 자신의 국정리더쉽이 얼마나 허술하고 미숙했으면, 최측근 비서관들이 십상시에 비유된 문서를 가까운 청와대 고위직들이 만들어 보고했겠는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 듯하다. 본질은 외면한 채 ‘찌라시’라고 반박하며 검찰에 ‘찌라시’임을 증명하라고 수사엄명을 내리는 스스로의 모순과 무개념이 새삼 놀라울 뿐이다.


십상시를 지적한 유출문서가 ‘근거 있는’ 찌라시로 끝날 가능성은 거의 없는 듯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십상시의 소문은 이미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수사와는 상관없이 사람들 머리에 실감나게 각인되고 말았다. 그것은 떠돌던 풍설들이 문자화까지 된 현실, 그동안 여러 정황들로 볼 때 상당한 심증을 주어온 현실, 그리고 문체부와 승마협회, 군 인사 등을 둘러싼 근래의 이상한 징벌적 조치와 살생부 운운 등이 그 심증에 부가자료를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현 정권은 앞으로도 3년이 남았다. 지난 2년도 온갖 잡음들로 허송하며 국민들이 시달린 마당에, 국내외적으로 중차대한 시기, 남은 세월마저 후회와 탄식만 쌓아갈 국정은 제발 그치고 바로잡아야 한다. ‘십상시’와 ‘문고리권력’이 뭘 의미하는지 깊이 성찰하고 당장 리더쉽을 쇄신하지 않으면 안된다. 차제에, 아무리 지적해도 무슨 말이냐 이해가 안된다면, 차라리 포기하고 내려오는 게 국민과 나라를 위한 일이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