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이버로 확장한 미국의 ‘패권’

● 칼럼 2015. 1. 30. 18:12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지난달 발생한 소니픽처스에 대한 사이버 공격 사건은 전형적인 추리물이다.
셜록 홈스 역을 맡은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가상의 범죄현장을 찾아가 증거를 수집했고, 잠재적 범인의 범죄동기를 규명하려 했다. 연방수사국의 수사 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이 범인이라고 선언했다. 범죄동기도 분명해 보였다. 북한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암살을 묘사한 영화 <인터뷰>가 거슬렸다. 해커들은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들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아주 간단한 사건이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추가 대북 제재 조처를 취했고, 의회 강경파들은 북한을 테러 지원국으로 재지정하라고 압박했다.


보안업계 전문가들이 북한의 소행으로 단정한 정부의 주장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의문이 불거졌다. 해커들이 한 언론인에게 보낸 쪽지 속 한글 문장은 문법에 맞지 않았다. 김정은에 대한 존칭도 제대로 쓰지 않았다. 불만을 품은 소니의 내부 직원, 자신들을 ‘리저드 스쿼드’(도마뱀단)라고 자칭한 집단도 잠재적 범인으로 떠오르면서 북한 소행설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때 <뉴욕 타임스>가 거대한 ‘반전’을 폭로했다. 미국이 먼저 북한을 해킹해 오고 있었다. 그 시기는 201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국가안보국(NSA)은 단순히 기웃거린 게 아니었다. 국가안보국은 북한에서 사이버 공격을 담당하는 것으로 추정돼온 정찰총국 산하 121국 같은 기관의 활동을 감시하기 위해 북한 컴퓨터들에 악성프로그램을 심었다.
그게 처음도 아니다. 사이버해킹을 지원한다고 다른 나라들을 비난하면서 미국은 똑같은 사이버해킹을 해왔다. 이란의 핵 시설을 공격하려고 몇 종류의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투입했다. 또 사이버상에서 새로운 군비경쟁을 하며 중국과 정면으로 부딪치고 있다. ‘전방위 지배’를 확보하려는 미국의 목표는 사이버상으로까지 확장됐다. 미 국방부는 이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민간 부문에서 전문가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국방부는 ‘플랜 X’를 통해 평범한 군 관계자가 비디오 게임을 하듯 쉽게 사이버 전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아무튼 북한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에는 몇가지 흥미로운 허점이 있다. 국가안보국이 북한을 감시하고 있었다면, 왜 소니에 미리 경고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미 정부는 소니의 전산망이 뚫리는 것을 막기보다 북한의 능력을 시험해보는 데 더 관심을 가졌을 수 있다.
이 사건에서 흥미로운 또 하나의 의문점은 남한의 역할이다. <뉴욕 타임스> 보도를 보면, 국가안보국은 남한의 도움을 받아 북한의 인터넷망을 해킹했다. 하지만 에드워드 스노든이 공개한 다른 문서들에는 국가안보국이 한국 정보 시스템에 잠입해 북쪽 시스템에 접근한 것으로 나온다. 자, 그렇다면 한국은 동맹국인가 표적인가?
거기에 사이버세계의 가장 도발적인 도전이 도사리고 있다. 적도 동지도 없다는 점이다. 정보당국들은 적들의 비밀만큼이나 동맹국의 비밀에도 관심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스노든의 폭로가 파괴적일 수밖에 없었다. 독일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휴대전화가 도청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브라질은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이메일과 휴대전화가 도청당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독일과 브라질은 미국의 동맹국들이지만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나라들이기도 하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그들에 대한 감시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에 더해 미국은 스노든이 문서들을 폭로하자 미국인들에 대한 감시망도 구축할 필요성을 느꼈다. 혹여나 미국 시민들의 개인적 관심이 국가 이익과 배치될까 우려했다.


외국 정상들을 엿보고, 자국민을 감시한다? 갑자기 미국이 북한과 무척 닮아 보인다. 북한은 인민들에 대한 강도 높은 감시를 하는 걸로 유명하니까. 북한 정권은 중국과 러시아 같은 최근까지 동맹이었던 나라들의 움직임에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물론, 북한이 미국에 손을 뻗치기 전에 미국이 먼저 나서 북한에 대한 해킹 공격을 했다.
소니 해킹 사건은 북한의 특기인 ‘비대칭전’의 예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들은 주로 미국과 같은 강대국을 상대할 때는 약자의 무기에 의존한다. 하지만 사이버상에서는 스파이웨어라는 동등한 무기가 숨어 있었다. 스파이웨어는 곳곳에 널려 있다.
< 존 페퍼 - 미국 외교정책 포커스 소장 >



[1500자 칼럼] 샤를리 에브도와 안산 원곡동

● 칼럼 2015. 1. 23. 20:53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국가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특히 인종적 특성으로 국가를 규정하려는 방식은 세계 각국이 다문화 국가가 되면서 그 정당성을 잃었다. 반만년 역사의 한민족이라는 국가정체성은 2015년 대한민국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2013년을 기준으로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150만명을 넘어섰다. 광주광역시 인구를 훌쩍 넘는 수치다. 국민 100명 중 3명이 외국인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에 75만명 내외의 귀화한 다문화 가족이 존재한다. 국제결혼이 전체 결혼의 10분의 1에 육박하고, 농촌지역 결혼의 절반이 국제결혼이다. 신생아 20명 가운데 1명은 다문화 가정 출신이고, 그 결과 다문화 가정 자녀 수는 20만명에 이른다.


2020년이 되면 청소년 인구의 20%가 다문화 가정 출신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한국은 급격한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으며, 출산율 최저의 고학력 사회다. 당분간 이주노동자의 유입이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으며, 이로 인한 한국 사회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다문화 정책은 국가 생존의 필수요소가 되었다.

셰리프와 사이드 쿠아시 형제, 프랑스 샤를리 에브도 테러의 범인들이다. 언론은 테러의 폭력성과 프랑스의 분노만을 다루고 있을 뿐, 테러범들이 어떤 사회적 배경을 지니고 있는지에 주목하지 않는다. 쿠아시 형제가 태어나 자란 곳은 파리 10구와 19구, 그리고 방리외 지역이며 바로 여기가 프랑스 다문화 정책의 적폐가 누적된 장소다. 프랑스의 이민자 비율은 약 10%로 추산된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촉발된 이민의 물결은 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북아프리카 식민지의 대규모 이민을 포함해 20세기 말까지 꾸준히 이어져 지금에 이르렀다.


프랑스의 동화주의 이민정책은 한계에 봉착했다고 평가된다. 방리외 지역의 거대 공공아파트는 빈곤의 상징이 되었고, 이를 모티브로 한 영화가 여러편 제작되었을 정도다. 한 영화의 제목은 <증오>다. 방리외 지역의 청년실업은 33%에 달한다. 실제로 몇년 전 프랑스 청년들의 폭력봉기 사태도 이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했다. 동화주의의 실패는 프랑스 저소득층에 광범위하게 퍼진 무슬림과 아프리카 문화로 증명된다. 방리외 지역의 젊은이들은 유사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으며 이들의 가난은 사회계급 간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쿠아시 형제는 이런 곳에서 태어나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소매치기로 삶을 연명하다 지하디스트, 즉 무슬림 급진주의자가 되었다. 그들의 폭력은 용서받을 수 없으나, 테러의 사회적 배경 또한 무시될 수 없는 것이다. 이 사건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보도한 아까이소라의 말처럼 “프랑스 사회 역시 이 사건의 원인제공자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다.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엔 39개국에서 모여든 3만5000여명의 외국인이 집단 거주한다. 정부는 이곳을 ‘다문화 1번지’로 소개하며 다문화 정책의 홍보수단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곳을 오랫동안 연구한 오경석에 따르면 원곡동은 모순의 공간이다. “원곡동은 한국의 다문화 1번지라기보다는 한국 다문화주의의 이중성을 가장 극명하게 표출하는 공간적 사례”라는 것이다. 이주 노동자의 대부분이 거쳐가는 원곡동이 관용의 공간이 아니라 차별과 관료주의 포장의 공간으로 변질된다면, 그 적폐는 용서받을 수 없는 결과로 나타날지 모른다.
이주 노동자들과의 일자리 경쟁이 심화되고, 학교에서 다문화 출신들이 차별받고, 그들이 게토로 소외되고, 분노가 증오로 폭발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우리에게 샤를리 에브도 테러가 없으리라 보장할 수 없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는 분명하다. 다문화 국가는 피할 수 없는 길이다.
< 김우재 - 초파리 유전학자 >



[사설] 자원외교 국정조사 제대로 할 생각인가

● 칼럼 2015. 1. 23. 20:52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현장에서 확인한 이명박 정부 자원외교 실패의 실상은 상상 이상으로 참혹했다. 한국석유공사가 무려 6억달러(약 6600억원)의 인수자금을 쏟아부은 석유회사 ‘사비아페루’가 있는 페루 북부 도시 탈라라를 <한겨레> 취재진이 직접 찾아가 확인한 내용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몇년째 새 유전을 발견하지 못하는데다가 어이없는 계약 조건에 묶여 생산된 석유마저 국내에 들여오지 못하고 있다. 이 분야의 전문가인 현지 대학교수는 “한마디로 사기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묻지마 투자’의 참혹한 결과는 단지 ‘사비아페루’만이 아니다. 사상 최대 규모의 유전투자로 관심을 모았던 캐나다의 에너지회사 하베스트사도 인수해놓고 보니 부실투성이였고, 멕시코 볼레오 동광 개발 사업, 이라크 쿠르드 유전 개발 사업, 파나마 코브레 구리광산 등 이명박 정부가 성공 신화로 내세운 자원외교의 실패 사례를 일일이 열거하려면 숨이 가쁠 지경이다. 이런 부실덩어리 해외투자의 실상과 비리 의혹을 낱낱이 파헤쳐야 할 책무가 국회 국정조사특위에 있다.
하지만 국회 국정조사가 흘러가는 모양을 보면 우려가 앞선다. 지난 12일 국정조사 계획서가 국회를 통과했으나, 조사 대상에 이명박 정부뿐 아니라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포함시킬 수 있게 했다. 애초 국정조사 논의가 엠비 정부의 자원외교 실상을 파헤치기 위해 시작된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엉뚱한 결과다. 앞으로 새누리당이 이명박 정부에 쏠리는 화살을 피하기 위해 ‘물타기 작전’을 펼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게다가 국정조사가 시작되는 날짜 역시 국조 요구서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난해 12월29일로 돼 있다. 국정조사 기간 100일 중 벌써 20일 이상을 허송세월로 흘려버린 셈이다. 예비조사가 시작되는 1월26일까지는 특별한 일정도 없다. 그러면서도 국정조사에 출석할 증인 명단은 아직 확정도 하지 못한 상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최근 자신의 국조 출석에 관해 “구름 같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자원외교 실패로 천문학적인 혈세를 낭비한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는데도 정작 당사자들은 뻔뻔하기만 하다. 새누리당은 “실패한 정책이 아니다.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실패한 국정조사’라는 평가가 나오게 된다면 그 책임은 오롯이 야당으로 돌아갈 것임을 잊지 말고 신발끈을 단단히 조이기 바란다.



[사설] 검찰의 민변 변호사 집중 수사, 개운치 않다

● 칼럼 2015. 1. 23. 20:48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과거사 청산을 위한 위원회에서 활동할 때 다뤘던 사건을 나중에 수임한 혐의로 변호사들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상당수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이다. 검찰은 몇몇 변호사에게 소환을 통보했고, 금융계좌도 추적중이라고 한다.


변호사법은 공무원·조정위원·중재인으로서 직무상 취급했던 사건의 수임을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나 과거사정리위원회 등 국가위원회에서 상임위원, 조사위원 등으로 활동했다면 공무원에 준하는 신분이라고 볼 수 있다. 위원회의 결정에 참여하는 등 직무상 취급했던 사건과 관련해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의 대리인으로 나섰다면 변호사법 위반 혐의를 피하기 어렵다. 이를 통해 정해진 액수 이상의 거액 수임료를 받았다면 도덕적 비난도 당연하다. 해당 변호사들이 ‘법에 저촉될 수 있다’는 생각 없이 사건을 맡았다고 하더라도 그 경솔함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상당수 변호사가 법을 어겨가며 쉽게 돈을 번다는 외부의 불신도 이로써 더 깊어질 것이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검찰은 과거사 사건에서 과다 지급됐던 손해배상액을 되돌려받기 위해 과거사 피해자들의 금융계좌를 가압류하는 과정에서 위법 정황을 포착해 지난해 9월 수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9월 검찰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국정원의 증거조작 사실을 드러내 무죄를 이끌어낸 주역은 각종 공안사건에서 검찰과 사사건건 맞섰던 민변 변호사들이었다. 검찰은 11월 이들을 포함한 민변 변호사 7명에 대한 징계를 대한변협에 요청했다. 이번 수사 역시 징계 요구와 마찬가지로 패소한 검찰이 법정 밖에서 어떻게든 티끌을 찾아내 보복의 칼을 뽑은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올 수밖에 없는 정황이다.


과거사 사건에 대한 국가의 잘못과 책임은 과거사위 등의 활동으로 분명히 드러났지만, 국가는 마땅히 해야 할 사과와 일괄 배상을 미루기만 했다. 기다림에 지친 상당수 피해자들은 사정을 잘 아는 변호사에게 도움을 요청해 소송을 시작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의뢰인인 피해자들이 변호사들을 옹호하고 나선 것도 그런 사정 때문이겠다. 과거사 사건에는 변호사법 수임 제한 규정을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런 마당에 검찰이 피의사실을 흘려 민변을 겨냥한 여론몰이에 열중하는 건 개운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