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에서 10~11일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정상회의에 참석한 주요 나라들이 치열한 정상외교를 펼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11일 미국, 10일 중국과 정상회담을 했고 같은 날 저녁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도 전격적으로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재편되는 외교 구도 속에서 우리나라는 충분한 주도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북한 핵 문제에서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북한이 (대미) 관계 개선을 원한다면 핵무기에 대한 태도를 바꿔야 한다”며 ‘북한의 선조처’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전략적 인내’ 정책이다. 한-중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핵 포기의 전략적 선택이 가능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고 하지만 어떤 노력인지 알 수가 없다. 오히려 시진핑 주석은 ‘6자회담 재개 방안을 하루빨리 찾아야 한다’고 했으나 우리 정부의 설명에서는 6자회담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정부가 6자회담 재개에 힘을 기울이지 않고 ‘기다리는 전략’에 머물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장 눈에 띄는 나라는 주최국인 중국이다. 중국은 일본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정상회담을 함으로써 동아시아의 중심국임을 과시했다.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계획이 각국의 호응을 얻은 것도 성과다. 중국은 이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실크로드 경제지대,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구상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을 엮어서 ‘아태 지역의 융합과 발전’을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일본도 이번에 북한에 이어 중국과 새 관계를 모색해나가는 발판을 마련했으며, 오바마 대통령은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재시동에 나섰다.
 
미·중·일·러 등 한반도를 둘러싼 4강은 동아시아 전체의 주도권을 놓고 ‘그레이트 게임’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균형 외교를 통해 이런 움직임이 큰 갈등으로 비화하지 않고 모두의 평화와 번영으로 이어지도록 주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핵 문제 등 한반도 관련 사안이 왜곡되거나 나빠지지 않고 평화롭게 해결되도록 구도를 짜나가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외교에는 동아시아 전체를 염두에 둔 큰 시야와 한반도 현안을 풀려는 적극적인 노력 모두 부족하다.어떤 경우든 최우선 과제는 북한 핵 문제 해결이다. 우리가 창의적인 발상과 추진력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상황은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


[칼럼] 우리들의 안보

● 칼럼 2014. 11. 18. 17:47 Posted by SisaHan
군대가 나라를 지켜야 하는데, 나라가 군대를 걱정한다. 방산비리를 보라. 구조할 수 없는 구조함, 쏠 수 없는 총, 방탄이 되지 않는 방탄복,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형용모순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부족한 세금을 거두기 위해 시민들의 주머니를 박박 털면서, 한쪽에서는 천문학적인 국민의 혈세가 줄줄 새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군대의 고위층들은 군사주권을 포기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그들의 일그러진 안보’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다. 
과연 그들만의 책임일까? 우리들의 안보는 문제가 없을까?
야당 근처에 가면, ‘안보는 보수적으로’라는 말을 마치 대단한 전략인 것처럼 말하는 얼치기들이 적지 않다. 무지하거나, ‘안보 콤플렉스’가 있거나, 아니면 정치를 속임수로 하는 부류들이다.
 
그런 성향의 야당 지도자들은 선거철이면 ‘군복 분장’을 하고, 예비역 장성들을 병풍으로 세워 사진을 찍는다. 대선에서 군인들이 댓글을 달고, 군대의 인권 수준은 여전히 ‘자유당 시절’이며,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색깔론이 넘쳐나는데, 야당 정치인들은 군대의 실상에 관심이 없다. 지난 대선 안철수 후보의 국방공약을 봐라. ‘안보는 보수적으로’라는 ‘정치인의 무책임’과 선거철만 되면 우르르 몰려다니는 ‘군피아들의 욕심’이 결합되어, 박근혜 후보보다 더 보수적인 국방공약을 제시했던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과거 민주정부 시절의 국방정책에 대해서도 반성해야 한다. 이 참혹한 현실에서, ‘우리 때는 잘했는데’라는 과거 회상이 그렇게 중요할까? 참여정부 시절에 연평균 8%의 국방예산을 증액했다는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운 일인지, 이해할 수 없다. 방산비리는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마치 연속극의 재방송처럼 반복되어온 이유가 있다. 구조적 문제가 있고, 결코 민주정부도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것은 바로 군에 대한 문민통제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군인 출신이 국방부 장관인 나라는 한국, 이스라엘, 멕시코, 체코뿐이다. 미국은 1947년 조지 마셜을 제외하고, 모든 국방장관이 민간인 출신이다. 스페인이나 칠레처럼, 오랜 군부독재 경험이 있는 나라에서도 여성이 국방부 장관을 맡는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총리였던 클레망소가 말했듯, “전쟁은 군인들에게 맡겨 놓기에는 너무도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군에 대한 문민통제는 민주주의의 기초다. 우리는 군대를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유일하게 ‘변화하지 않은 사각지대’로 방치했다. 민주주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불편해한다. 그러나 문민통제만이 군을 살리는 길이다. 
부패를 막아야 군인복지가 향상되고, 군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국민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 민군관계를 재정립해야, 나라도 살고 군대도 산다.
 
정부는 방산비리 척결을 외친다. 그러나 비리는 계속될 것이다. 대통령이 가진 군통수권을 군에 반납하고,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포기한 정부가 비리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야권조차, ‘안보는 보수적으로’, 그런 어이없는 상투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는 망국의 길로 접어들 것이다.
아는가? 국방이 바로 민생이다. 현재 병역제도나 복무기간만큼 뜨거운 관심을 가진 현안이 있을까? 또한 예비군·민방위 제도는 시민들의 생활과 직결되어 있다. 시민들은 자랑스러운 군대를 원한다. 야권이 집권을 원하는가? 그러면 먼저 얼치기들이 만들어 놓은 상투적인 안보프레임에서 탈출해야 한다. 군산복합체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는 아이젠하워의 경고를 기억하면서, 이제 국방개혁의 길을 제시할 때다.
< 김연철 - 인제대학교 통일학부 교수 >


대통령 비서들의 오만과 뻔뻔함이 도를 넘고 있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듯 오직 대통령 보위에만 매달린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로서 그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하기엔 정도가 너무 심하다.
대통령 비서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심 대상이 되는 건 그들의 발언과 행위가 대통령 의중을 담고 있는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들의 인식은 국정에 그대로 반영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점에서 엊그제 열린 대통령비서실에 대한 국정감사에서의 비서들 발언은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나갔다. 그들의 발언 수위는 박근혜 대통령을 거의 신격화하고 있는 정도다.
 
비서들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국정감사에 임하면서 했던 몇몇 발언을 보자. 사실상 ‘부통령’으로 불리는 김기춘 비서실장은 이번 국감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이고, 주무시면 퇴근”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박 대통령은 눈만 뜨면 어디든 집무실에 있는 것과 같으니 세월호 참사 당일 구체적인 행적을 밝힐 필요 없다는 투다. 오만하기 그지없다.
청와대 ‘문고리 권력’으로 알려진 이재만 총무비서관의 답변은 더 가관이다. 이 비서관은 ‘대통령 개인트레이너’로 의심받는 제2부속실 3급 행정관(국장급)의 나이를 묻는 질문에 “국정 최고책임자를 보좌하기 때문에, 국가기밀사항을 다룰 수 있기 때문에”라며 나이 밝히기를 거부했다. 만천하에 공개돼 있는 윤전추 행정관의 나이는 34살이다.
이들의 발언은 박근혜 대통령의 위상이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 아닌 전제군주 시대의 여왕쯤으로 격상돼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국민과 대통령의 관계를 역전시키는 것이다. 민주공화제 아래에서 대통령은 선거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국정 운영 권한을 한시적으로 위임받은 ‘상머슴’이다. 따라서 대통령의 권한 행사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하고, 늘 국민 여론과 함께 가는 게 순리다.
 
하지만 ‘제왕적 대통령’이 되는 순간 이런 제약은 대통령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사문화된 헌법 조항으로 전락한다. 대통령은 일방적 지시를 내리고, 비서나 장관은 제왕의 명령을 받들어 밀어붙이기 바쁘다. 이미 그런 현상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연기나 공무원연금법 연내 개정 강행 등이 그것이다.
주요 국정 과제들이 폭넓은 국민 여론 수렴 없이 대통령과 소수 측근들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면 그 결과는 국가 장래에 치명적이다. 특히 대통령의 무지나 잘못된 소신에 의해 일방적으로 정책이 결정될 경우 국정 운영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제왕적 대통령 아래서는 이를 제지할 수 있는 기제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도 그 위험성을 더 키운다. 지금 박 대통령은 이미 그런 길로 들어선 듯하다.
과도한 비밀주의도 문제다. 경호상 문제 등으로 대통령의 모든 일정을 투명하게 밝히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빌미로 청와대 행정관의 나이까지 감출 정도가 된다면 지나치다. 이런 비밀주의가 청와대에 국한되리란 보장도 없다. 보안을 강조하는 군대는 물론 정부 부처나 각 공공기관에서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정보 공개를 기피할 게 뻔하다. 이런 불투명성은 필연적으로 부패로 이어진다는 게 역사적 교훈이다. 우리 사회의 부패지수가 여전히 고공행진을 계속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사실 비서들을 탓할 일은 아니다. 비서들이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의원 앞에서조차 이처럼 뻔뻔하게 큰소리를 치는 건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뒤를 봐준다는데 국민이고 국회의원이고 눈에 들어오겠는가.
그러면서도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손에는 구정물 한 방울 묻히려 하지 않는다. 비서들의 ‘결사옹위’를 받으며 생색나는 일에만 얼굴을 내민다. 국회 시정연설에서도 전작권 환수 연기나 세월호 특별법 등 골치 아픈 현안에 대해선 한마디 언급 없이 경제 살리기만 역설했다. 악역은 비서들에 맡기고 자신은 뒤로 숨는 행보를 계속하는 셈이다. 국정 전반을 책임지는 대통령이라고 하기엔 너무 비겁하다.
< 정석구 - 한겨레신문 편집인 >


[칼럼] 식민지 군대의 ‘똥별’ 들

● 칼럼 2014. 11. 11. 20:04 Posted by SisaHan
10년 전이다. 이해찬 당시 총리가 ‘진보정상회의’에 참석했는데, 한국의 발전이 화제로 떠올랐다. 그러자 아프리카의 몇몇 대통령들이 “무슨 소리냐.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인데…”라는 싸늘한 반응들을 보였다. 이 총리는 “1950~60년대까지는 미국의 원조를 많이 받았지만 지금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항변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도 이 총리의 말을 거들었다고 한다.
 
어느 사석에서 그의 말을 들었을 땐 어이가 없었다. “식민지라니, 어디에다 대고….” 그러나 이제는 “그런 말 들어도 싸네”라는 자괴감이 든다. 우리나라 국방장관이 전시작전통제권을 사실상 영구히 미국에 갖다바쳤기 때문이다.
가장 쓰라린 건 용산기지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용산을 되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퍼붓고 피를 흘렸던가. 평택에 새 기지를 만들어주느라 한 20조원은 들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추산이다. 땅을 확보하느라 대추리의 농민들 가슴에는 대못을 박았다. 그런데 노른자위는 여전히 미군 땅이란다. 20조원을 쓰고도 허리 잘려 못 쓰게 된 땅을 받았으니 ‘박근혜 판 4대강 사업’이 되고 말았다.
10년 전에도 한미연합사 잔류 문제는 시끄러웠다. 연합사 터를 얼마나 남기느냐를 놓고 한-미 간에 줄다리기가 벌어졌다. 그러다 당시 도널드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헬기로 용산기지 상공을 둘러본 뒤 완전히 옮기는 쪽으로 방침을 굳혔다. 그때 그가 했다는 말이 이거다. “뉴욕 센트럴파크 공원에 외국 군대가 주둔한다면 미국민이 수용하겠느냐?”
 
우리 정부는 연합사 잔류의 이유로 “전작권 환수가 연기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궁색한 변명이다. 연합사가 평택으로 내려가기로 결정난 건 2004년으로 그때는 전작권 환수의 전 자도 나오지 않았다. 핑계일 뿐이고 실제는 생활상의 편리 때문일 게다. 먼지바람 이는 벌판에 선 평택 기지는 황량하기 그지없다. 독신인 사병들은 그럭저럭 견딘다 쳐도 가족이 딸린 장교들은 심란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뉴욕 못지않은 문화생활과 교육환경을 누릴 수 있는 용산은 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운 곳이다. 게다가 미국의 국방비는 대폭 감축해 평택 기지 안에 아늑한 주거공간을 마련할 처지도 못 된다.
용산에 남는 미군기지는 보안이 취약하니 담장은 더욱 높아질 것이고 철조망은 한층 날카로워질 것이다. 경계병의 총끝은 더 날이 설 테고 순찰차의 엔진은 더 바빠질 것이다. 공원 한복판이 그 모양이니 ‘민족공원’은 고사하고 마음 편히 돌아다니기도 쉽지 않을 게 뻔하다. ‘뉴욕 센트럴파크 같은 공원을 내 집 정원처럼 누릴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 비싼 돈 주고 기지 주변 아파트를 산 사람들은 손해배상 소송이라도 내야 할 판이다.
 
우리 군은 작전권을 행사할 능력이 안 된다고 한다.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 우리가 북한보다 국방비를 더 쓰기 시작한 지 30년은 됐고, 지금은 북한보다 30배도 더 되는 예산을 쓰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는 정치 민주화를 이뤄냈고, 스마트폰·자동차·선박 등의 제조능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한류는 세계를 휩쓸고 있으며 올림픽이든 월드컵이든 무시 못할 존재가 됐다.
그런데 왜 유독 국방만 이 모양인가. 그것도 가장 가난한 북한 하나 제대로 상대를 못해 미국 뒤꽁무니에 숨고 있으니 말이다. 군대를 이 지경으로 만든 장성들은 ‘똥별’ 말고는 달리 부를 말이 없다. 숫자는 500명 가까이 되니 많기도 하다. 세월호 구조를 못해서 해경은 해체된다. 나라를 구하지 못했으니 그들의 계급장을 떼야 한다. 대신 바티칸을 지키고 있는 스위스 용병을 불러들이자. 아마 몇년 안에 자주국방이 달성됐다는 보고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김의겸 - 한겨레신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