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서 신상필벌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상과 벌은 그 행위에 비해 넘쳐서도 모자라도 안 되며, 그 과정은 투명하고 공정해야 한다. 그런데 신현돈 전 육군 제1군 사령관 강제전역 파동에서는 상벌의 원칙과 기준이 무엇인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다. 4성장군이 음주 문제로 말썽을 일으킨 것부터 꼴사나운 일이지만, 그 사건의 처리 과정은 완전히 뒤죽박죽이다. 우리 군 수뇌부의 의사 결정과 일 처리가 얼마나 엉터리인지를 다시 한번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사태의 진상을 둘러싼 국방부의 오락가락 설명은 참으로 가관이다. 엊그제 국방부 대변인이 나와 ‘만취 추태’와 ‘민간인과의 실랑이’ 등에 대해 9월에 한 발표를 뒤집더니, 하루 만에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직접 나서서 대변인의 말을 반박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국방부의 갈지자 행보를 보노라면 정작 술에 취한 것은 신 전 사령관이 아니라 국방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상황을 종합해보면 신 전 사령관의 행동은 애초 알려졌던 것처럼 ‘만취 추태’는 아니었으며 국방부도 그를 강제전역 조처할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국방부가 비공개 경고 정도로 끝내려던 생각을 갑자기 바꾸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보고를 받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크게 화를 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실제로 이런 언론 보도가 잇따르는데도 청와대가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사실상 이를 시인하고 있는 셈이다.
 
제대로 된 군통수권자라면 이런 상황에서는 ‘진상을 철저히 파악해서 이에 합당한 조처를 취하라’고 지시해야 옳다. 자신의 해외 순방 기간에 최전방을 책임진 군사령관이 위수지역을 벗어나 음주로 말썽을 빚었다는 보고에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징계 조처에는 정해진 절차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신 전 사령관 사건에서는 이런 상식이 깡그리 무시됐다. 그리고 한민구 장관을 비롯해 국방부와 청와대 안의 어느 누구도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채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모시기에 바빴다. 그래서 다짜고짜 옷부터 벗기고 나서 뒤늦게 진상조사를 벌이다 보니 모든 일이 엉망으로 꼬여버린 것이다.
신상필벌의 원칙이 제대로 서 있지 않은 군대에서 사기와 단결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소신도 원칙도 없는 장수가 이끄는 군대는 결코 정예 강군이 될 수 없다. 군 수뇌부는 제발 정신을 차리기 바란다.


남북이 10월 말부터 11월 초 사이에 하기로 한 고위급 접촉이 무산되고 남북 관계가 그 전보다 더 나빠졌다. 양쪽의 경직된 태도가 모두 문제지만 관계 개선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한 우리 정부의 책임이 더 크다. 무엇보다 상황 악화를 방치하는 듯한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부는 고위급 접촉 무산의 직접적 원인이 된 대북 전단 살포 문제와 관련해 더욱 강경해졌다. 전단 살포를 막을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입장은 이전과 동일하지만 이제는 전단 살포 자제를 당부하는 말이 사라졌다. 이것이 대북 전단 살포를 방치하겠다는 뜻이라면 남북관계를 풀어가야 할 당사자로서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다. 실제로 10월31일 탈북자단체가 경기 포천시에서 대북 전단 100만여장을 살포하는 동안 경찰은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북한 체제의 붕괴를 주장하는 극소수 단체가 남북 관계를 쥐고 흔드는 것을 그대로 용인하는 모양새다.
 
정부의 강경한 태도는 경기 김포시 최전방의 애기봉 등탑 철거 문제에서도 확인된다. 관할 해병대의 지휘관이 지난달 중순 이 등탑을 철거할 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 제기가 없었다. 이 지휘관은 안전 문제를 이유로 등탑을 철거하기로 하고 국방부 쪽과 여러 차례 논의를 거쳤다고 한다. 하지만 철거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며칠 뒤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회의에서 이를 질책했고, 이후 정부는 철거 경위를 조사하는 등 부산을 떨었다. 북한이 이 등탑의 십자가 조명 등에 반발해왔으므로 등탑 철거는 정부가 남북 관계 개선을 꾀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정부 안 분위기가 얼마나 경직돼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북한이 전단 살포 중단을 고위급 접촉의 조건으로못박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잘못이다. 이 사안을 논의하고 싶으면 고위급 접촉에서 의제로 제기하면 된다. 북한이 이 사안을 최근 유엔에서 논의 중인 대북 인권 결의안 문제와 연계시키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북한은 ‘우리의 존엄(김정은)과 체제를 악랄하게 헐뜯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으나 국제사회의 흐름에 눈감는 독단일 뿐이다. 이제 올해 안으로 남북 관계가 풀리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커지고 있다. 곧 육·해·공군이 함께 벌이는 대규모 호국훈련이 예정돼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남북관계 악화를 막고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정부는 앞장서서 전기를 마련하는 유연한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 


“적과 싸워서 이기는 길은 비단 병력의 수, 장비의 우열에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전승의 요체는 군의 정신 전력에 있다. 즉, 엄정한 군기, 왕성한 사기, 그리고 필승의 신념에 있다.” “우리의 국방을 남에게 의존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우리 땅과 우리의 조국은 우리가 지켜야 하고, 우리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해 나가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4년 3월29일 육사 제30기 졸업식과 1977년 3월29일 육사 제33기 졸업식에서 한 연설의 일부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육사 31기이고, 김요환 육군 참모총장이 육사 34기이니, 사관생도 시절 선배들의 졸업식장에서 이 말을 직접 들었다는 이야기다. 비단 그들뿐 아니다.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등 70년대에 초급 장교 생활을 시작한 전·현직 군 수뇌부들은 모두 자주국방의 세례를 받으며 성장한 세대다. 그러니 참으로 역설적이다.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인 시대에, ‘박정희 키즈’들에 의해 자주국방의 날개가 무참히 꺾였으니 말이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계획 포기에 대해 우리 군은 “한국군이 아직 북한의 위협에 주도적으로 초동대응을 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북한에 비해 30배가 훨씬 넘는 국방비에,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우리 군이 아직도 스스로 허약한 군대임을 자인한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 바로 “엄정한 군기, 왕성한 사기, 필승의 신념” 등 정신 전력에서 북한을 도저히 따라가지 못한다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다. 하기야 총기 난사, 병영 내 가혹행위, 사단장까지 가세한 성추행, 방산 비리 의혹 등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무슨 엄정한 군기며 왕성한 사기, 필승의 신념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참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다. 그런 말을 하는 군의 태도다. 정신이 온전히 박힌 군 수뇌부라면 부끄럽고 창피해서 얼굴을 못 드는 것이 정상일 텐데 전혀 그런 기색이 없다. 오히려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아온 큰 전공이나 세운 것처럼 의기양양하다. 그리고 고작 하는 말이 “북한의 위협이 진화”하는 상황에서 전작권 전환은 ‘시기’가 아니라 한국군의 대응 능력 등 ‘조건’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연코 말하건대 부끄러움을 모르는 군에게 그 ‘조건’이 충족되는 날은 결코 오지 않는다. 그리고 영원히 다른 나라 군대의 품 안에서 응석받이로 지내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가장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김관진 안보실장이다. 그가 합참의장 재직 시절에 전작권 전환을 위한 전략적 이행계획에 서명한 당사자였다가 이번에는 자신의 손으로 그것을 파기했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은 아니다. 그는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전작권 전환이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며 상부 지휘구조 개편을 내용으로 하는 국방개혁을 지상과제로 내걸었다. 국방개혁에 “(장관직뿐 아니라) 혼을 걸겠다”는 말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장관직에서 물러나지도 않았을뿐더러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국방개혁 문제는 아예 입 밖에 꺼내지도 않는다.
김 실장은 이번 전작권 환수 포기에 대해 “대통령의 지시”라고 설명했다. 군인이 군 통수권자의 뜻에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의무다. 하지만 일개 장성도 아니고 한 나라의 안보정책을 책임지는 사람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앞선 행동을 스스로 부인하면서 ‘대통령의 뜻’이라는 말 하나로 정당화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그것은 “혼을 거는” 사람이 아니라 “혼이 없는” 사람의 표상이다.
 
그가 국방장관 시절 내걸었던 구호는 ‘싸우면 이기는 전투형 강군’이었다. 하지만 실제 나타난 현실은 ‘싸우기 겁내는 종이호랑이 군대’가 됐다. 그렇다고 그가 외교안보 분야에 대한 폭넓은 시야와 유연한 전략적 사고로 한반도 평화 정착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기를 기대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다른 모든 것을 떠나, 자신의 손으로 서명한 전작권 환수 계획을 스스로 백지화했다면 최소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도리이고 상식이다. 
그를 보면서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대한민국에 과연 진정한 무인(武人)이 있는가. 그저 권력의 바람 부는 대로 정치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출세지향주의자들뿐!
< 한겨레신문 김종구 논설위원 >


[1500자 칼럼] 비빔밥 가족

● 칼럼 2014. 11. 3. 19:33 Posted by SisaHan
한식에 대한 인기가 북미에서 나날이 높아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한식 세계화’를 위한 다양한 행사가 국내외에서 자주 열리고 있다. 우리 고유의 전통 음식을 만드는 경연대회는 물론이고 한식의 우수성과 색채의 다양화에 착안한 강습회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어떻게 하면 한국 음식도 일본의 스시, 타이의 패타이, 이태리의 스파케티와 피자처럼 세계인이 즐겁게 자주 찾을 수 있게 만드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한식 본연의 모습을 갖추고도 외국인의 입맛에 맞게 조리와 세팅(setting)에 중점을 두고 한식의 독특한 맛과 향을 내어 고유의 맛을 살리는데 주력해야 하리라. 특히 세계 만방에 한국기업들이 진출하고, 싸이 김연아 박세리 같은 월드 스타들을 배출하며, 세계 경제를 이끌어가는 G20국에 속하여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치솟고 있는 현실이니 국가 이미지 상승과 직결될 수 있는 한식의 인기를 드높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의 며느리와 사위는 한식을 특별히 좋아하는 서양인들이다. 우리 가족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한결같이 한식을 기대하고 있어 장거리에 살고 있는 그들을 방문할 때마다 내 몸은 분주하고 고달프다. 그러나 마음만은 날아갈 듯이 가볍다. 결혼한 자식들로부터 한국음식 조리법에 대한 문의를 들을 때나 함께 한식을 나눌 때만큼 보람된 일은 없다. 저절로 신바람이 나서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을 준비하면서도 입은 함박만하게 벌어진다. 그들 역시 우리 식구가 되어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이제는 한식 몇 가지는 자신 있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한식의 맛도 제법 낼 줄 알아 자신감이 붙은 며느리는 김치 담그는 일에 도전장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한 집안에 동, 서양의 혼합문화가 있으니 조심스러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언어 소통이 수월치 않은 나와 음식을 공유할 수 있음은 천만다행이다. 한식의 독특한 맛을 즐기는 그들과 적어도 음식문화의 벽은 허물었으니 말이다. 만약 한식에 손을 대지도 않고 관심조차 두지 않는 가족 구성원이 한자리에 있다면 밥상머리에서 나누는 가족애가 정상적으로 자라날 수가 없지 않은가. 서로 음식 냄새에 신경을 쓰다 보면 모처럼 마련한 그 자리가 불편하기만 할 것이다. 
 
비빔밥은 우리 애들이 자주 만드는 한식 메뉴다. 갖은 색상의 나물을 썰고 볶아 그 위에 계란 후라이를 보기 좋게 얹어 내 놓으면 먹기 아깝다고 근사하다고 사위는 사진기를 들이댄다. 고추장과 참기름 소스로 그 나물들을 비벼 먹으면 맛이 최고다. 그 맛에 빠져 건강식 메뉴인 비빔밥에 관심을 둔 아들 내외에게 몇 해 전 돌솥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었다. 그들은 고슬고슬하고 따끈한 돌솥비빔밥을 지으며 한식의 우수성을 말하곤 한다. 우선 맛있고 모양있는 건강식이란다. 한 가지를 더 추가한다면 온 가족 사랑이 담긴 음식이 아닌가 한다. 서로 다른 개성들이 가족으로 모여 양보하고 신뢰하고 배려하며 마치 각종 나물들이 고추장 소스를 통해 하나가 되듯 서로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가족 같은 비빔밥이니 말이다. 음식만큼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자리는 없을 것이다. 입이 즐거우면 자연히 마음이 열리고 따뜻한 정감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언젠가부터 돌솥비빔밥은 아들 집의 손님상 메뉴로 당당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우리 가정의 인기 메뉴인 비빔밥이 한식 세계화 메뉴로 선택되었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다만 한식 메뉴의 서비스와 요리사의 청결위생에 대한 의식과 한국인의 정서를 드러내는 인테리어 구상에도 힘쓴다면 ‘한식 세계화’의 전망은 밝다고 본다. 
 
온 지구촌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세계 방방곡곡은 인종을 초월한 여행객들로 넘쳐나고 다른 문화와 종교, 음식과 언어에 대한 관심의 열기가 더해가고 있지 않은가. 아마도 머지않아 각 나라의 고유문화를 뛰어넘으며 세계인이 하나로 큰 조화를 이루는 비빔밥 시대가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원옥재 - 수필가 / 캐나다 한인문인협회원, 전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