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헌법재판소의 오래된 월권

● 칼럼 2015. 1. 16. 19:34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통합진보당을 해산하고 소속 국회의원 전원의 직을 박탈한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은 A4로 347쪽 분량이다. 여기서 재판관 한 명이 쓴 반대의견 180쪽과 이를 반박한 다른 재판관 두 명의 보충의견 20쪽을 제외하면 이번 결정의 근거가 되는 재판관 여덟 명의 법정의견은 147쪽이다. 이는 다시 정당 해산 관련 144.5쪽, 국회의원직 박탈 관련 2.5쪽으로 나뉜다.
이 결정문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헌재 스스로 “헌법이나 법률에 명문의 규정이 없다”고 하고서도 의원직 박탈을 정당화한 이 2.5쪽이다. 200자 원고지로 10장 남짓한 이 대목은 그 분량만으로도 재판관 8명의 지적 수준과 논리 전개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기서 국민이 선출한 입법부의 의원직을 사법기관인 헌재가 박탈할 수 있는가라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둘러싼 깊은 성찰 같은 것은 발견할 수 없다. 당을 없애기로 한 마당에 의원직을 남겨 놓아서는 정당 해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그러니 의원직까지 함께 박탈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조야한 주장이 있을 뿐이다.

철학의 빈곤만이 아니다. 이 2.5쪽은 헌재가 헌법과 법률에 규정이 없는 사안에 대해서는 헌법의 이름을 빌려 임의의 결정을 하겠다는 ‘재판관 입법’ 선언으로 읽힌다.
기실 헌재의 ‘월권’은 뉴스가 아니다. 헌재는 1988년 창설 직후부터 ‘변형결정’이라는 이름으로 헌법불합치, 한정위헌, 한정합헌을 선고하고 있다. 그러나 그 근거는 헌법재판소법 어디에도 없다. 그 법에는 “법률 또는 법률 조항의 위헌 여부만을 결정한다”(제45조), “위헌으로 결정된 법률 또는 법률의 조항은 그 결정이 있는 날부터 효력을 상실한다”(제47조 2항)고 돼 있을 뿐이다. 헌재는 위헌이나 합헌 중 하나만 선고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헌재는 45조를 무시하는 동시에 47조 2항의 적용을 중지시키는 방식으로 법에 없는 변형결정을 27년째 계속해오고 있다.


변형결정은 종종 단순 위헌 심사를 넘어 입법권을 침해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가장 가까운 예로 지난해 10월 국회의원 선거구별 인구 편차를 현행 3 대 1에서 2 대 1로 줄이고, 이를 반영한 법 개정을 2015년 말까지 완료하라고 한 헌법불합치 결정은 국회가 논의하고 결정해야 할 대체 입법의 원칙과 시한까지 제시했다. 결국 선출된 -‘민주적 정당성’이 있는- 권력인 국회를 선출되지 않은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권력인 헌재의 명령 수행자로 만들어 삼권분립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국회는 헌재의 ‘습관적 월권’을 방임해왔다. 변형결정의 위법성을 입법으로라도 해소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오히려 스스로 해결해야 할 난제들을 헌재로 들고 가는 이른바 ‘정치의 사법화’를 통해 헌재의 권능만 강화시켜줬다. 재판관 후보자 인사 청문 과정에서는 도덕적 흠결을 찾는 데 매몰돼 자질과 능력의 검증은 소홀히 넘기기가 다반사였다.


학자들과 언론도 입맛 따라 ‘사법적극주의’라는 평가와 ‘사법자제’ 요구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헌재의 월권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너무 작아 무시되었다. 먹고살기 바쁜 일반 국민에게 헌재는 법원•검찰과 달리 한참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다. 헌법에도 법률에도 없는 의원직 박탈 결정은 어느 날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헌재의 월권은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는 독점적 권한을 부여받은 그 순간부터 시작된 것일 수 있다.
예전엔 “판사가 헌법이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헌법이다”(찰스 휴스 전 미국 연방대법원장), “연방대법원이 곧 헌법이다”(펠릭스 프랭크퍼터 미 연방대법관)라는 등속의 호언이 그저 남의 얘기처럼 들렸다. 그런 말들에 ‘재판관 9인의 과두지배’라는 비판이 제기돼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 강희철 - 한겨레신문 사회부장 >



회복을 외치고 희망을 전하는 전령사로

● 칼럼 2015. 1. 11. 21:05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회복의 한 해를 기원하며‥ 창간 9주년에 드리는 인사말씀

비정상의 정상화, 믿음 회복과 부흥을 기원
한인사회에도 흐림이 걷히고 원기와 활력을

어언 9년입니다. 강산이 바뀐다는 10년에는 한 해가 적지만, 그 세월 역시 간단치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 한인사회만 보아도 첫 신문을 내던 초창기는 ‘이민자와 유학생’이 제법 많았고 ‘돈’이 돌아 사람들 삶에도, 표정에도 여유와 활력이 있었던 듯 한데, 지금은 참 많이들 무덤덤하고 팍팍해진 듯 합니다.
회원 3천을 헤아리던 실협이 와글댈 때는 생업의 열기가 넘쳤고, 한인회 집행부가 돌연 장소이전을 추진하자 ‘어떤 건물인데 팔아 먹으려느냐’며 들고 일어난 소동에는 동포들 패기가 달아올라 기자들도 바빴던 때였습니다. 갓 인쇄된 신문을 배포할 때면 “뭐 좋은 것 실렸어요?” “아이구 어려운 일, 고생도 많으시네” 하면서 반기던 분들, “우리 광고 하나 실어줘요”하며 적극적인 관심과 응원을 보내던 따스한 풍경이 그 사이 ‘넘쳐나는 인쇄물들‘까지 겹쳐 많이 달라진 듯 느껴지니까요.


하지만 지난 세월만큼 우리 모두가 진화하고 성장했으면 했지, 설마 거꾸로야 가겠습니까. 어쩌면 한층 성숙해진 것은 아닐지요. 다만 주변 세상을 둘러볼 때 예전보다 오히려 험해졌고, 흉흉해져서 우리들 한인사회도 덩달아 불안과 위축의 그림자가 드러워진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다민족사회의 일원으로 세계사회에 연결돼 있고, 배달민족으로 모국의 트렌드에 직결된 우리들의 예민한 존재 특성을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지난 연말 ‘역사는 과연 발전하고 진보하는지 모르겠다’는 의문을 던진 바 있습니다만, 지구촌의 근황과, 모국 한국의 세태에서 우린 그런 불안의 현실을 봅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들리는 소식은 살상과 인간파괴, 갈등과 차별과 적대, 탐욕과 위선 등의 표출입니다. 한마디로 암울 그 자체입니다.


지난 9년간 신문을 만들면서 지면을 장식하는 단어들의 체감빈도를 보면 실감합니다. 밝고 바른 소식, 아름답고 사랑이 넘치는 기사들로 ‘희망의 전령사’가 되겠다는 다짐을 늘 해왔지만, 도로 답답한 스토리들이 지면을 채우곤 합니다. 아무리 사람이 개를 물어야 기사거리라고는 해도, 세상이 바로가면 밝은 소식들이 늘어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권력과 명예에 탐닉하고 사리사욕에 매몰돼 부정과 불의에 기대며, 생명과 평화를 짓밟고 비정상이 떵떵거리는 가슴 아픈 일들이 늘어갑니다. 그래서 소위 정론직필이라는 언론의 양심과 상식에서 분통이 터지고 정의감이 기본인 기자정신으로는 혈기가 돋기도 하는 것입니다.
새해, 그리고 10년을 내다보며 시사 한겨레의 소망은 단 한가지, 모든 것이 ‘회복’을 향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비정상의 모든 것이 정상으로, 막힘이 뚫림으로, 퇴보가 진보로 회복되어 가기를 간절히 염원합니다. 그래서 다시 우리네 가슴과 한인 이민사회에도 흐림이 걷히고 원기와 활력이 되살아나기를 소망합니다.


올 한해 약자와 ‘을’들의 아픈 상처가 치유되고, 염치와 양심들이 돌아오며, 불의가 정의로 바뀌기를 바랍니다. 생각이 다르다고 욕하고 적대하지 말고 역지사지의 공존과 상생의 지혜를 되살렸으면 합니다. 민주정치도 남북관계도 제발 전진하고 풀리길 소원합니다. 교계에도 성도들 믿음이 회복되고 교회마다 초심의 회복과 부흥의 역사가 일기를 기원합니다. 온 세상이 교수들의 지적처럼 사슴을 말이라 우기는 ‘지록위마(指鹿爲馬)’에서 ‘정본청원(正本淸源)’의 제자리로 돌아가기를 간구합니다.
저희 시사 한겨레는 동포의 번영과 겨레의 미래를 생각하며, 성실한 보도로 따뜻한 신문의 길을 걷겠다고 나름 노심초사 해왔습니다. 미흡하고 역부족이었지만, 많은 애독자와 후원인사 여러분의 음덕에 이 아침 다시 또 용기를 냅니다. 올 한해 회복을 외치고 희망을 전하는 ‘회복과 희망의 전령사’로, 의롭고 선한 신문의 외길에 열정을 쏟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힘과 지혜를 부어주소서!

< 김종천 - 시사 한겨레 발행인 겸 편집인 >



[1500자 칼럼] 빚진 자의 몫

● 칼럼 2014. 12. 26. 18:42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오늘도 그 편지를 받았다. 12월에 들어서며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여러 자선단체들이 앞다투어 보내는 기부금 요청서, 그것은 평상시 잊고 지내온 이 사회를 위해 내가 한 일보다 받은 혜택이 더 많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만든다. 우송된 여러 단체 중 너더댓을 선정하여 작은 마음을 담아 보내는 일이 내 연례행사가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나마 한 해의 마무리로 내가 소속한 사회에 빚진 몫을 감당하고 나면 묵직했던 가슴이 한결 가벼워왔다. 이미 상품화되어 진정한 의미를 상실한 주인공 없는 크리스마스도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래 전, 어머니께서 암수술을 받으셨다. 담당의사는 초기 증세인데다 이미 80세 고령이시니 수술 후에 키모 대신 방사선 치료를 권했다. 토론토 다운타운에 있는 암 전문병원에서 1주에 세 번씩 한 달간 방사선치료를 받아야 했다. 당시 우리 삼형제는 모두 시외에 살고 있어 토론토에 계신 어머니를 모시고 다운타운에 있는 그 병원을 왕복하자면 꼬박 하루를 소모해야 할 형편이었다. 더구나 모두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으니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의 어려운 사정을 접한 담당의사는 암환자를 위한 자선기관(Cancer Society)을 소개해줬다. 그곳에서는 치료 스케줄을 검토한 후 쾌히 무료 픽업서비스를 약속해줬다. 환자의 치료를 돕기 위한 무료 픽업서비스라니, 말로만 들어온 그들의 봉사활동이 냉가슴을 녹였던 것이다.


방사선 치료기간 동안 그 단체에 속한 자원봉사자들이 어머니 아파트로 와서 병원에 모시고 갔다가 치료가 끝나면 다시 집으로 모셔다 드렸다. 영어를 못하는 어머니를 위해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매번 나타났기에 안심하고 모든 치료를 마칠 수 있었다. 그들의 픽업환자는 어머니 혼자만이 아니라 이곳 저곳 들려 다른 환자들도 여럿이었기에 어머니께서는 동병상련의 위로도 받으실 수 있었다. 이 일로 캐나다정부가 자식보다 낫다는 말이 헛말이 아님을 실제로 경험했다. 사실 캐나다에 살면서 의료보험 혜택을 받고 사는 것도 감사한데 이렇게 자원봉사자들의 활약이 사회 전반에 걸쳐 일사불란 하게 펼쳐지는 줄은 전혀 알지 못했으니 말이다. 더욱이 대부분의 운전봉사자들이 칠십이 훨씬 넘은 백발의 은퇴 노인들이었으니 신선한 감동을 받았다. 건강한 사회, 아름다운 사회 뒷면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세심한 배려와 숨은 희생이 있었던 것이다. 그 일은 나로 하여금 소극적이나마 기부문화에 동참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몇 년 전 모국을 방문했었다. 십여 년 만에 만난 친구 J는 물질에 대한 집착을 버린 사람 같았다. 자신이 아끼는 이웃을 위해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 그랬다. 지인들은 그녀로부터 깜짝 선물을 받는 일이 잦았다. 어느 날 우연히 그녀의 손 지갑에서 작은 사각으로 접힌 지폐들이 가득한 것을 보았다. 아직 손주도 없고 장성한 두 아들뿐인데 이것을 무엇에 쓸 거냐고 물었다. 대답은 의외였다. 어느 장소에서나 쉽게 꺼낼 수 있게 미리 준비해 놓은 거란다. 출퇴근 길에서, 전동차 안에서 만나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건네주려고 가장 편리한 손 지갑 속에 챙겨놓고 다닌다는 나의 친구 J.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외면하고 지나가는데 유독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는 그녀에게서 훈훈한 사람냄새가 풍겨 나왔던 것이다. 근래에 와서 보편화된 해외여행도 한번 가보지 못한 그녀지만, 충만한 기쁨으로 옹달샘 같은 소박한 삶을 이어가는 모습은 결코 평범하다고 볼 수 없었다.


이웃들과 마음을 나누는 사랑과 평화의 절기, 크리스마스를 맞으며 새삼 그녀 앞에 부끄러움으로 선다. 나날이 나와 내 가족만을 챙기는 근시안적 사랑에 파묻혀 타인에게는 따듯한 눈길조차도 건네지 못하는 메마른 내 얼굴이 확대돼오니 말이다. 이 시간만이라도 촉촉하고 넉넉한 사랑을 향해, 타오르는 열망을 가득 품는다. 더한층 아름다운 새해를 꿈꾸며.

< 원옥재 - 수필가 / 캐나다 한인문인협회원, 전 회장 >



[한마당] 이 어둠에 다시 송년의 촛불을 켜며

● 칼럼 2014. 12. 26. 18:39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역사는 발전하고 진보하는가? 올 한해 끊임없이 의문을 가져온 질문이다.
2014년의 대미를 맞이하면서 다시 묻게 된다. “지난 1년 동안 세상은 발전하고 진전을 이뤘는가?”. 불행히도 플러스 마이너스를 따져본다면 전혀 진전이 아닌 퇴보와 퇴행의 한 해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원시 이래 물질적 풍요와 과학의 발달, 질병치료와 생명연장, 인권신장 등 모든 부분에서의 발전을 인류역사의 진보라고 표현한다면, ‘시간과 역사발전은 정비례한다’는 계몽주의적 시각은 맞다.


그러나 학문적인 역사발전의 의미를 떠나 단순하게 우리들 삶의 가치로, 나아가 소시민들의 생활철학-, 아니 그냥 생활감각에서 조망해 보자. 가령, 자연과 벗하고 싸운 원시적 삶에서 누린 심적·정신적 평안과 행복감이 오히려 지금의 그 것보다 훨씬 나았다는 말들을 한다. 그렇다면 과연 ‘발전’의 소산들인 요즘의 풍요와 편리와 정치·사회의 현대적 시스템들이 우리에게 안겨주는 불안과 스트레스들을 인류사의 진보로 인한 혜택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단순한 예로 저 네팔이나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지구상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는 말을 떠올려보라. 귀가 아프게 듣는 “기름진 음식과 정크 푸드류를 먹지말고 ‘원시인처럼’ 채소와 과일을 즐기라”는 건강비결을 보아도, 현대 우리의 처지가 결코 발전이나 진보한 삶이라고 큰소리 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간단히 말해 『사람답게, 마음 편하게, 얼마나 더 행복감을 느끼게 되었느냐』는 척도를 인류사의 진보와 발전의 가치로 삼아보자는 이야기다. 그렇게 본다면, 올 한해는 그야말로 뒷걸음질 뿐인 한해가 아니었나 하는 답답함과 회한이 스칠 뿐이다. 그것도 사람들이 발전과 진보의 결실들로 자랑하는 가치기준과 정치·사회·문화·과학 등의 산물(産物)에 의해 퇴행이 두드러졌으니, 그야말로 자승자박이며 자업자득이라고 해야할까. 구체적으로는 전쟁과 테러, 감시와 압박, 갈등과 적대가 한층 심화된 사실들만 보아도 그렇다.


지구촌을 돌아보면, 에볼라라는 공포의 질병이 인류 의술의 한계와 불안을 통감하게 한 것을 비롯해, 정치체제와 힘의 대결에서 이른바 ‘신냉전’기류가 먹구름으로 밀려왔고, 테러가 일상화 되다시피 하면서 IS라는 기형적 세력이 맹위를 떨쳤다. 스노든의 폭로로 가시화된 감시와 감청이 더욱 폭넓고 교묘하게 사생활을 옥죄는 현실은 사람들을 신경쇠약으로 몰아갔다. 인간성을 말살하는 비인간적 고문이 ‘인권 선진국’ 미국에 의해 자행됐다는 배신감은 친미주의자들의 뒤통수를 쳤다.
한국은 어떤가. 충격적인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의 행태는 국가와 정치의 존재의의에 의문부호를 던졌다. 오만방자한 지도자의 불통과 위선에, 또한 비선들의 권력 주무르기에 모두가 피곤하고 나라는 방황했다. 국가기관의 정치개입과 권력 시녀화, 곡학아세 언론의 횡행에 국민들은 두통과 심통을 겪으며 분열하고 다퉜다. 국민 권익의 수호자요 민주주의의 보루여야 할 사법기관 마저 권력의 입김에 놀아나는 실망과 유전무죄·권력만능의 현상들, 부익부 빈익빈에 졸부들의 꼴사나운 작태들이 소시민과 근로자들의 가슴을 치고 눈물을 쏟게 했다. 밖으로는 극으로만 치달은 남북관계과 외교력 부재까지….


다양과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이견과 비판을 질시하며 차별하고 적대하는 중병의 고질화에 국민들은 짜증나고 근로자들은 고통스럽고, 나라는 찢기고 대립했다. 심지어 그 중증의 전염성이 이민사회에도 전염돼 심하게 발호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는가.
그렇게 한 해가 흘러갔다. 그래도 덩달아 눈물 흘리고 아파하고 외친 사람들, 더 많은 소리없는 함성들에게서나마 위안을 얻을까.
이제 이 어둠에 다시 송년의 촛불을 켜며, 제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고 상생하며, 마음도 정신도 화평하게, 모두가 행복한 세상으로 발전·진보하는 새 날들이 오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