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부터 시작된 여야의 세월호 참사 희생자 피해구제 입법 논의를 앞두고, 정부가 국가배상 방안을 배제한 특별법 초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법 이름에서 ‘배상’을 뺀 것은 물론, 내용에서도 ‘배상’ 대신 ‘보상’과 ‘지원’에 초점을 맞췄다. 새누리당도 그동안 위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배상’보다는 피해 구제를 위한 ‘보상’이 적절하다고 주장해왔다. 국가의 ‘배상’ 책임을 받아들이면 정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될까 그러는 모양이다.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꼴이다. 세월호가 가라앉고 눈앞에서 304명이 수장되는 참사로 번진 데는 정부 잘못을 물어야 하는 대목들이 분명히 있다. 선박 개축을 허가해 복원력을 떨어뜨리고 과적과 부실 고박을 방치한 채 배를 출항시키도록 하는 등 감독 태만의 책임과 함께, 적극적인 구조를 회피하는 등 구호의무를 다하지 않은 책임도 크다. 이들 과실은 검찰 수사로도 일부 드러났다. 그런데도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부인하려 해선 안 된다.
대형 사고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전례도 이미 여럿 있다. 1993년 서해훼리호 사건 당시 일괄적 보상금 지급에 반발한 유족들이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법원은 선사와 해운조합은 물론 국가에 대해서도 ‘지방해운항만청 직원이 선박 운항 상태에 대한 감독의무를 게을리한 과실이 있다’며 공동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2005년 경기도 화성시 입파도 보트 침몰사고의 유족들이 낸 소송에서도, 법원은 늑장 구조 등 해경의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국가가 국민의 신체와 생명 보호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 판결이다. 선진국에선 국가 책임을 조금씩 더 넓게 인정하는 경향이기도 하다.

여야는 이런 사정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국가든 누구든 잘못이 있다면 그 잘못을 묻는 일부터 어렵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예컨대, 일반인이 자세한 내용과 전문지식을 알기 힘든 이번 사건 같은 경우에까지 일반 손해배상 소송처럼 피해자인 원고더러 사실관계를 입증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대신, 국가나 선사 등 피고가 주의의무를 다했음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원칙적으로 배상 책임을 지도록 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제조물책임법 등이 그렇게 하고 있다. 적어도 재정적·정치적 부담을 앞세워 ‘국가 배상’을 제외하는 따위로 유족과 국민을 기만하는 일만은 말아야 한다.


[사설] 방산비리 수사, 몸통을 겨누라

● 칼럼 2014. 12. 4. 15:32 Posted by SisaHan
방위사업 비리 합동수사단’이 21일 출범했다. 검찰을 중심으로 국방부, 경찰청, 관세청, 금융감독원, 예금보험공사 등 분야별로 사정을 맡은 거의 모든 정부기관이 참여한 사상 최대 규모 수사단이다. 정부의 의지가 느껴지지만 의미있는 결과를 내려면 처음부터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합수단은 ‘방위산업체 비리’에 초점을 맞추려는 듯하다. 납품 계약과 관련한 기밀 유출과 뇌물 수수, 시험성적서·세금계산서 등의 위·변조와 허위자료 제출, 불법적 브로커 활동 등이 그것이다. 실제로 이런 비리는 손꼽기 어려울 정도로 만연해 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비리 의혹만 해도 31개 전력증강사업에서 47건에 이르며, 국방부도 이 가운데 다수에서 비리 가능성을 인정한다. 세월호 사건으로 불거진 통영함의 경우 2012년 9월 진수식을 했으나 거액의 뇌물이 오간 불량부품 납품 등으로 여태껏 제대로 배 구실을 하지 못하는 상태다.

하지만 이 정도의 수사에 그쳐서는 안 된다. 더 심각한 것은 해외 무기 도입과 관련한 비리다. 해외 무기업체들이 군 출신 무기중개상을 통해 얻은 기밀과 강한 로비력을 토대로 계약을 따낸 뒤 가격을 부풀리는 것이 패턴처럼 돼 있다. 해외 업체는 납품 기일 등을 어기더라도 대개 제재에서 벗어난다. 게다가 국내 개발 무기 사업이 보통 수백억~수천억원 규모인 데 비해 해외 무기 도입 사업은 수조원대에 이른다. 무기와 관련된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도 조사 대상이 돼야 한다. 정책이 합리적이지 못하고 그때그때의 정치적 분위기나 결정권자의 섣부른 판단에 좌우된다면 비리 구조가 온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7조3000억원 규모의 차기전투기 도입 사업의 협상대상자가 갑자기 바뀐 경위는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방위사업 비리는 구조화한 성격과 비밀성 등에서 지난해 가을 중간수사 결과가 발표된 원전 비리에 비견된다. 당시 검찰은 납품 비리와 서류 위조 등에 초점을 맞췄을 뿐 원전 계획과 건설 때부터 시작되는 이권 구조 척결에 대해서는 손을 놓았다. 이후 원전 비리가 근절됐다고 보는 이는 아무도 없다. 방위사업 비리 수사도 그런 식이어서는 안 된다. 필요하다면 외국 수사기관과의 공조도 추진해야 한다.
지금 국민은 쏟아지는 군 인권 문제와 방위사업 비리 등을 지켜보면서 ‘군이 내세울 게 도대체 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번 수사에 대한 적극적인 협력과 더불어 군의 비장한 각오가 요구되는 이유다.


[칼럼] MB 회고록, ‘진실은 없다’

● 칼럼 2014. 12. 4. 15:30 Posted by SisaHan
‘소설도 자서전이 될 수 있지만 모든 자서전은 어김없이 소설이다’ ‘기억을 잃어버렸거나 기억할 만한 가치 있는 일을 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 회고록을 쓴다’ ‘자서전은 마지막회분만 남긴 시리즈 형태의 부음 기사다’….

자서전이나 회고록에 대한 이런 촌철살인의 경구들은 특히 유명 정치인들의 경우 더 공감을 자아낸다. ‘공’은 부풀리고 ‘과’는 숨기는 식상한 자서전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도 시큰둥하다. 그나마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자서전 <나의 인생>이 225만부가 넘게 팔린 것은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 등 사생활을 나름대로 솔직히 털어놓은 덕분이다.
“인간의 기억은 현재의 이해관계에 따른 과거의 왜곡이 될 수밖에 없다.”(폰 브로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내년 초 회고록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맨 먼저 떠오르는 말이다. 사실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 집필 시기는 역대 대통령들의 예에 비춰보면 무척 이른 편이다. 시기적으로도 ‘4자방’ 국정조사 문제 등으로 매우 미묘한 시점이다. 굳이 이 시점에서 회고록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말 그대로 회고록이 ‘현재의 이해관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가장 관심을 끄는 대목은 뭐니뭐니해도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를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다. 2007년 당내 경선에서의 승리 과정, 재임 기간 동안의 끊임없는 밀고 당기기, 그리고 2012년 대선을 앞둔 ‘보험 들기’ 등 독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소재는 널려 있다. 이런 내용들이 ‘비화’ 중심으로 소상히 담긴다면 ‘MB 자서전’은 아마 클린턴 자서전은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대박’을 터뜨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전 대통령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자서전에 박 대통령과 관련된 내용은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쪽에서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 “과거 수집했던 박근혜 엑스파일 활용 여부도 검토해야 한다”는 등의 협박성 발언도 동시에 나온다. 청와대를 겨냥한 고도의 심리전이 느껴진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살아 있는 권력을 움직이려는 죽은 권력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회고록을 4자방 사업 변호 등 ‘과거의 왜곡’ 수단으로 활용하는 차원을 넘어서 ‘회고록을 쓰겠다’고 말하는 것부터가 교묘한 정치적 행보인 셈이다. 따라서 회고록이 내년 초에 꼭 나오리라는 보장도 없다. 칼은 칼집에 들어 있을 때가 가장 무서운 법이다.

“자서전은 수치스러운 점을 밝힐 때만이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자신을 스스로 칭찬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거짓말을 하고 있다. 어떠한 삶이든 내적인 관점에서 보면 패배의 연속이기 때문이다.”(조지 오웰) 이 전 대통령만큼 재임 기간 ‘수치스러운 일’이 많았던 전직 대통령도 근래에 흔치 않다. 민간인 불법사찰을 비롯해 내곡동 사저 땅 문제에 이르기까지 반성하고 참회할 내용이 많다. “만약 내가 자서전을 쓰면 저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해야 할 것”이라는 위트 넘치는 말을 한 작가도 있지만, 진실을 제대로 기록하기로 치면 이 전 대통령이 ‘저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싶은 항목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런 내용을 언급할 가능성은 전무해 보인다. 책은 그 사람의 거울이다.

“독자가 아닌 자기 자신과, 자신을 어여삐 봐줄 먼 훗날 역사 기록자를 위해 주절대는 한 남자의 소리일 뿐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 자서전에 대한 <뉴욕 타임스> 서평의 일부다. 이 전 대통령의 자서전이 경제위기 극복이니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개최니 하는 자신의 ‘치적 자랑’에 그친다면 장차 나올 서평도 이보다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은 이미 서울시장 시절 자서전 <신화는 없다>를 펴낸 바 있다. 이번 회고록에 진실을 담지 않을 요량이라면 ‘자서전 속편’ 제목은 아예 <진실은 없다>로 정하는 것은 어떨지. ‘미리 쓰는 서평’이 너무 모욕적으로 느껴지시는가? 그렇다면 이런 예상 서평이 보기 좋게 빗나가게 한번 제대로 된 회고록을 써보시기 바란다.
< 김종구 -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


[한마당] 교육혁신과 한국의 미래

● 칼럼 2014. 12. 4. 14:10 Posted by SisaHan
수능이 끝나자 어김없이 또 출제 오류가 드러나고, ‘물수능’ 논란이 제기된다. 그런데 문제를 비틀어서 다섯 개 중 하나의 답안 맞히라는 시험에서 100% 정답이 있을까 의문이다. 그리고 이런 수능에서 ‘오류’ 논란은 예고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물수능’ 공격은 상위 1, 2% 학부모들의 관심을 표현한 것인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결국 변별력이라는 명분으로 본고사를 부활하자는 이야기가 하고 싶은 것일 게다. 모든 사람이 “수능 이대로는 안 된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이유와 대안은 완전히 다르다.
‘미신’은 자연력이 인간의 운명을 지배하던 시대의 일이라고들 말하지만, 이 문명사회에서도 인간이 자신이 만든 세상을 마치 불가항력의 자연처럼 믿고 따르는 일이 있는데 한국에서 ‘일류 대학’이라는 미신이 바로 그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상당수의 학부모들은 남들이 모두 ‘거름 지고 장에 가니’ 자신도 ‘거름 지고 장에 갈 수밖에 없다’고 습관처럼 수천만원을 사교육과 대학 등록금으로 쏟아부을 것이다. 64만명의 수험생 중 63만명은 최상위 1만명들에게 해당되는 ‘게임’에 들러리 서고, 그 1만명의 지위 세습을 위한 게임에 온 국가와 사회가 심각한 홍역을 치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중고등학교는 ‘교육 불능’ 상태가 된 지 오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행복감이 가장 낮은 수백만명의 청소년들은 학교가 감옥이며, 가정 경제를 마비시키고서 대학 졸업장을 가져도 실업자로 전락한다. 그런데 혹독한 입시경쟁의 승리자들은 과연 행복할까? 서울대 학생들 중 약 7%가 자해 또는 자살 충동을 지닌다는 연구 결과가 있으며 3~8%의 학생들은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한 상태이며, 수백명이 여러 이유로 자퇴를 한다고 한다.
한국의 일류 대학들은, 잠재력은 있으나 입시 성적은 떨어지는 학생들을 잘 교육해서 국가나 인류문명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로 길러내야 진정한 일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적 우수 학생 싹쓸이하는 데 온 신경이 곤두서 있는 ‘학부’ 대학은 우리의 대안이 아니다. 더구나 지식융합, 지식팽창의 시대, 세계 유명대학 교수들의 강의를 온라인으로 들을 수 있는 시대에 지금과 같은 한국의 대학이 30년 이후에도 남아 있을지도 의문이다.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한 문제다. 그러나 사람이 만들어낸 세상을 사람이 못 바꾼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우리는 한국에서 교육 문제는 노동 문제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고 땀 흘리는 노동자를 사람대접하는 일이 대학 문제, 곧 교육 문제 해결의 기본 원칙이요 길이라고 본다. 노동시장에서의 학력별 임금 격차 축소와 차별 철폐, 공기업이나 대기업의 고졸자 특례 채용의 활성화 등을 통해 대학 진학의 유인을 확 줄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능은 기초학력 평가 정도의 시험으로 정착시키고, 내신 성적으로만 단일화해서 입학생 선발을 하되 졸업정원제를 실시해서 대학을 학문하는 곳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방 국립대학을 무상으로 하고 계층 할당을 확대하여 잠재력 있는 학생을 흡수하되, 전국의 모든 국립대학을 통합운영해서 학생, 교수 이동을 활성화하여 자연스럽게 특성화하도록 해야 한다. 서울대의 학부는 없애고 대학원 대학으로 육성해야 한다. 전국 단위 대학평가는 대학 단위가 아니라 학과 단위로 해서 지원을 차등화하면 학벌 간판의 폐해도 줄일 수 있다. 학령인구가 크게 줄어드는 시대에 상당수 대학은 평생교육기관으로서 기능을 해야 할 것이다.
‘대입성적 = 능력 = 높은 보상’이라는 신화에 사로잡힌 기성세대, 특히 우리 사회의 상층 사람들의 생각과 기득권을 건드리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그분들의 게임’의 허구성을 간파한 청소년들이 이미 거리에 넘쳐난다. 국민의 99%가 피해자인 이 대입, 교육 제도를 근본적으로 혁신하기 해서 국민들이 주체로 나서야 한다.
<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