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김무성 대표 체제로 개편됐다. 김 대표는 7.14 전당대회에서 ‘친박 좌장’ 서청원 의원을 압도적 표차로 따돌렸다. 최고위원회도 ‘비박’ 3명과 ‘친박’ 2명으로 구성됐다. ‘친박 일색’이던 이전 지도부에 견줘 친박 색채가 눈에 띄게 약해졌다. 당청관계에도 적잖은 변화가 예상된다.
새누리당은 그동안 ‘박근혜 당’의 한계를 벗지 못했다. 대통령의 심기를 헤아리고 청와대의 눈치를 살피는 데 급급했다.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국회에서 청와대 요구를 관철하는 ‘거수기’ 노릇에 충실했다. 대통령을 지켜달라고 읍소하는 ‘박근혜 마케팅’에 의존해 겨우 지방선거를 치른 게 새누리당의 현주소다. 자생력을 상실한 집권당은 순식간에 청와대의 ‘하청 정당’으로 전락했다.
 
‘집권당의 자생력 확보’를 내건 김 대표가 서청원 의원을 제친 데 담긴 의미는 명확하다. 청와대만 바라보는 ‘청바라기 정당’에서 벗어나라는 요구다. 여당의 자생력은 청와대가 아니라 국민 관점으로 정치를 바라볼 때 싹을 틔울 수 있다. 때론 청와대에 ‘노’(NO)라고 말하는 정당이 제대로 된 집권당의 모습이다.
청와대가 집권당에 행사한 과도한 영향력은 정치 실종을 초래한 주된 요인이기도 했다. 이전의 ‘친박 지도부’는 야당을 공격하는 최선봉에 섰고, 정치는 실종됐다. 집권당이 ‘청와대 수호대’를 자처하면서 빚어진 일이다. 김 대표에겐 야당과 대화하고 타협하는 정치 본연의 모습을 되살리고 입법부의 기능과 위상을 정상화할 책무가 있다.
 
이번 전당대회는 극심한 계파갈등 속에 ‘살생부’, ‘친박 5적’ 따위의 막말이 난무하는 구태의연한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다. 김 대표 역시 금품 관련 유죄판결 전력 등 구태정치에서 썩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다. 무거운 책임감으로 집권당의 면모를 일신해내지 못하면 ‘구태정치’ 꼬리표도 영영 떼지 못할 것이다.
김 대표는 박 대통령에게 마음껏 할 말을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그는 한때 박 대통령 휘하에서 ‘친박 좌장’을 했다. 19대 총선에서 공천을 못 받은 그는 박 대통령이 반대했다면 국회에 다시 들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김 대표는 어느 때보다 강한 힘을 지닌 집권당 대표다. 2016년 총선 공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이며, 차기 대선주자 후보군에 속해 있다. 힘이 커지면 책임도 무거워진다. 김 대표가 정치발전에 기여하려면 여당의 자생력이 저절로 확보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설] 북한은 ‘미사일 도발’ 중단해야

● 칼럼 2014. 7. 21. 20:05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북한이 13일 새벽 또 예고없이 단거리 미사일을 동해 쪽으로 발사했다. 북쪽이 올해 발사한 중·단거리 미사일과 로켓, 방사포 등은 14번에 걸쳐 97발에 이른다. 지난해의 3~4배에 이르는 발사횟수다. 북쪽은 이런 도발 행위를 그만두기 바란다.
북쪽의 미사일 발사는 ‘저강도 도발’의 성격을 갖는다. 곧바로 국제사회의 제재 대상이 될 장거리 미사일을 피해 중·단거리 발사체로 무력시위를 하는 것이다. 발사 지점도 점점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다. 13일에는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20여㎞ 떨어진 개성 북쪽에서 발사했다. 마음만 먹으면 남한 전역을 대상으로 어디서나 미사일을 쏠 수 있다고 과시하려는 뜻으로 보인다. 발사 시각도 탐지가 쉽지 않은 새벽시간대에 집중되고 있다.
 
북쪽은 미사일 발사가 ‘외부 도발을 제압하는 자위적 억제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12일에는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 담화를 통해, 이달 중하순 남·서해에서 벌이는 수색·구조 훈련을 위해 미국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가 부산에 입항한 것을 비난했다. 북쪽은 또 지난 7일 내놓은 ‘국방위원회 특별제안’을 남쪽이 받아들일 것을 지속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북쪽의 미사일 발사는 관련국들의 경계심을 높여 한반도 정세를 더 불안하게 만들 뿐이다. 북쪽이 진정으로 대화를 바란다면 미사일 발사를 비롯해 호전적인 언행부터 중단해야 한다. 남·서해에서 이뤄질 훈련도 예년과 별로 다르지 않은 내용이다.
 
북쪽의 미사일 도발은 경색된 남북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북쪽이 지금처럼 위협을 통해 우리 정부의 태도 변화를 압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러나 정부가 북쪽에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북쪽의 압박에 의해서가 아니라 일관된 계획 아래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은 한반도와 연관된 모든 현안을 풀어가기 위한 전제가 된다. 특히 남북관계가 진전되지 않으면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재개도 쉽지 않다. 거꾸로 남북관계가 더 나빠진다면 한반도 관련 현안에 대한 우리 입지가 더 좁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남북 사이에 돌발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을 높인다.
북쪽의 미사일 발사는 자신에게도 피해를 준다. 미사일 발사가 계속될 경우 국제사회의 새로운 제재를 불러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북관계 개선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음을 북한은 알아야 한다.


[칼럼] ‘4.16 특별법’ 제대로 만들자

● 칼럼 2014. 7. 21. 20:03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7월16일이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3개월이 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4.16 참사는 아직 진행형이다. 7월14일 현재 희생자는 293명, 실종자는 11명이다. 승객의 대부분을 차지한, 봄날 수학여행의 꿈에 부풀었던 남녀 고등학생들이 무참히 수장된 이 비극은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대한민국호의 실체에 대하여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주었다. 이 나라는 과연 보통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만한 공동체인가. 4.16 참사는 한마디로 우리 사회에 누적되어 온 총체적, 구조적 부실과 비리의 충격적인 산물이라 할 만하다. 그래서 이 사건 이후 국가의 운영 책임자인 정부를 성토하는 전 국민적인 공분이 일어났다.
 
배에 탄 학생들 대부분이 생존하였다는 처음의 허위 발표에서부터 시작된 분노가 그 이후에도 우왕좌왕하는 정부의 무능력과 무대책에 대한 비판에 이르기까지 확산 일로에 이르자, 5월19일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특별담화를 발표하였다. 박 대통령은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습니다”라고 사과하였다. 이어서 박 대통령은 이번에 드러난 구조적 비리와 부패의 척결을 위해 “필요하다면 특검을 해서 모든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고 엄정하게 처벌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야와 민간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포함한 특별법을 만들 것도 제안합니다”라고 다짐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담화 후 두달이 가까워 오는 지금 정부는 담화에서 공언한 특별법 제정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대신 여야가 별도로 성안한 세월호 참사 관련 특별법안이 따로따로 국회에 발의되고 여야로만 구성된 티에프(TF)가 특별법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세월호 가족대책위와 변협, 그리고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국민대책회의는 7월9일 공동으로 ‘4.16 참사 진실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을 마련하여 국회에 입법 청원하였다. 이 ‘4.16 특별법’의 목적은 4.16 참사의 직간접적, 구조적 원인을 규명하고 그 진상을 밝히며, 다시는 이와 같은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난 방지 및 대응책을 수립함으로써 대한민국을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 법안에 따라 설립되는 4.16 참사 특별위원회는 민간의 참여가 협소한 여야안과 달리 ‘여야 및 민간’의 참여가 동등한 비율로 구성되도록 하였다. 이 위원회는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 등을 위한 공개 청문회를 열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여야안과 달리 그 산하 1개 소위원회에 수사와 기소 권능을 갖는 특별검사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이처럼 여야와 민간이 동등하게 참여하고, 공개 청문회와 함께 필요한 경우 기소를 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검사 등을 둔 이 안은 그 주요 내용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4.16 참사 특별담화의 핵심과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여당은 이를 거부할 명분이 없으며, 야당의 경우도 이 안이 야당안과 비교하여 진일보한 면이 있는 만큼 이 안이 통과되도록 힘을 모으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진행 중인 4.16 참사의 슬픔을 하루속히 극복하고 우리 모두의 염원이라 할 ‘안전한 사회의 기초’를 마련하느냐의 여부가 이번 특별법안 제정 여부에 달려 있다. 국민들은 여야가 당리당략에 치우쳐 이 중차대한 시대적 과제를 게을리하는 일이 없도록 감시의 눈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이석태 - 참여연대 공동대표 >

 

[1500자 칼럼] 커뮤니케이션

● 칼럼 2014. 7. 14. 18:05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아까부터 두 녀석이 귓속말을 나누고 있다. 이따금씩 나를 슬며시 돌아보는 폼이 의심스럽다. 장난기 어린 눈웃음까지 은근하게 내비치는 터라 이 녀석들이 어떤 장난을 칠지 조금은 긴장이 되었다. 잠시 후 긴 갈색 머리칼을 휘날리며 손녀가 깡충깡충 뛰어온다.
 
“할머니, 우리 Zoo에 갈 수 있어요?”
“Zoo에 가자구? 물론이지”
“할머니, Zoo… 해보세요”
“쥬? 즈으? ” 두 녀석들이 키득키득 웃는다. 
“ Not joo, zoo… ” 그들의 의도를 알고 있는 나는 신경을 써서 아랫니 안면에 혀끝을 대고 “즈으”하고 맞는 발음을 내니 이번에는 저희들 기대에 어긋났는지 김빠진 얼굴이다.
 
손주들이 유치원에 다니면서부터 나의 잘못된 한국식 영어 발음을 고쳐주기 시작하였다. 면목이 안 선 나는 어느 날, 한국인들이 정확하게 내지 못하는 영어발음에 대해 왜 그런지 설명을 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어 자음의 ㅂ은 영어 알파벳으로 B와 V이고, ㄹ은 R과 L이고, ㅈ은 J와 Z이고, ㅍ은 P와 F이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한국어에 익숙한 사람은 그 두 영어 발음을 구분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이 충분히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려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렇게 나를 놀려대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손주들 역시 처음 태권도를 배울 때 내게 물은 적이 있다. 
“할머니, 쩬찐이 무슨 뜻에요.“ 또 “훅찐은 무슨 뜻에요”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이 내는 발음만 듣고는 무슨 한국어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자 손녀가 앞으로 한 발짝 나서면서 쩬찐이라고 하며, 뒤로 한 발짝 물러나면서 “훅찐” 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바로 전진과 후진이라는 구령이었다. 참으로 요상하지 않은가. 비록 액센트가 실리긴 했지만 어찌 이곳에서 태어난 손주들 귀에는 그런 엉뚱한 발음으로 들린단 말인가. 역시 이 땅에서 40년을 살았다 해도 겨우 네 살인 손자도 따라 하는 영어노래 가사를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가 없는 나와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이것이 이민 1세와 3세간에 일어나는 소통의 거리이다.
 
캐나다 속에 작은 한국을 심으며 살아온 이민 1세 언어는 비록 한국에서 산 세월보다 이곳에서 더 오래 살았다 해도 계속해서 공부하지 않으면 제자리걸음에 머물고 만다. 생업에 필요한 일상 언어는 별무리 없이 통할 수 있으나 세월이 갈수록 전문용어나 깊이 있는 언어구사 능력은 장벽에 부딪히고 만다. 더군다나 이곳에서 태어난 2세들이 타민족과 결혼하여 다민족가족을 이루는 상황이니 1세와 3세간 끈끈한 가족관계가 수월하지 않다. 3세인 손주들과는 언어뿐만 아니고 문화 차이도 심하여 그들과 함께 동요나 놀이도 함께 즐길 수가 없다. 사실 내 아이들을 키울 때는 낯선 풍토에 뿌리를 내리는 일이 우선이었기에 이곳 문화에 대해 무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손주들을 보면 내 아이들을 키울 때 보고 듣지도 못한 새로운 문화를 자주 접하고 있다. 더군다나 요즘 그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들 모두가 Ipad, Iphon, Ipod같은 디지털 산물이니 그들을 돌봐주는 일에도 소통이 문제될 때가 다반사다. 일방적인 손주사랑에 빠진 아날로그 세대는 숨이 가쁘고 아쉬울 뿐이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는 언어만이 소통의 수단이 아니다. 말 없이 눈만 바라보아도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센스와 감정, 즉 마음의 언어가 있지 않은가. 그 사랑의 언어인 만국공용어가 있어 구태여 많은 말을 소통하지 못해도 손주들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에 대해선 절대적인 신뢰를 갖게 되는 것 같다. 언젠가 내 영어를 못 알아듣고 어리둥절한 사촌들에게 유치원생이던 손녀가 직접 다가가서 정확한 발음으로 다시 말해 주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나의 부정확한 영어라 할지라도 내 손녀는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발견이었는지,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았었다. 오늘도 내 가슴 안에 쏙 들어오는 두 녀석들과 진한 허깅으로 무지갯빛 사랑을 나눈다. “귀여운 나의 토끼들!”

< 원옥재 - 수필가 / 캐나다 한인문인협회원, 전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