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일본과 중국 사이의 갈등이 커지는 가운데 한-미-일 군사협력이 강화되고 있다. 자칫하면 대중국 봉쇄망을 강화하려는 미국과 일본의 구상에 우리나라가 편입돼 한반도 북쪽뿐만 아니라 남쪽까지 동북아의 뇌관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미·일과 군사정보 공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실무그룹을 구성하기로 지난 31일 합의한 것은 섣부르다. 정부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과 관련된 정보에 국한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미·일의 의도는 그렇지 않다. 미국은 대중국 공동전선 구축을 위해 우리나라와 일본의 안보협력 강화를 압박해왔다. 일본 역시 한반도와 주변 지역에 대한 발언권을 키우고 재무장의 속도를 내기 위해 우리나라와의 군사협력 강화를 바란다.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 자체가 동북아의 불안요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가 북한 핵·미사일 관련 정보를 일본한테서 얻어야 할 이유도 없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이번 합의가 한-미-일 미사일방어(엠디) 체제 구축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 가능성이다. 최근 미국 의회가 우리나라의 엠디 체제 편입을 압박하는 법률을 통과시킨 데 이어 미국 정부는 핵심 장비인 사드(THAAD:고고도 방어체계)를 주한미군에 배치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의 핵심 수단인 패트리엇 미사일이 과거 주한미군에 먼저 배치됐던 것처럼, 우리나라로 하여금 사드를 사들이게 하여 한-미-일 MD체제를 완성하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는 중국 반발을 부를 것이 확실하다. 특히 중국을 겨냥한 사드가 한반도에 배치되는 등 한-미-일 MD체제가 진전되면 한-중 관계는 격랑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북한 핵 문제 등 한반도 관련 사안도 풀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정부 태도는 명확치 않다. 국방부는 우리 여건에서 사드가 필요하지 않다면서도 ‘한-미 연합전력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되면 사드 운영·유지 비용을 방위비 분담금에서 부담할 수도 있다’고 했다. 정부가 전시작전권 환수 연기와 한-미-일 MD체제 편입을 맞바꾸려 한다는 추측이 이어지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한-미-일 군사정보 공유와 관련한 논의는 더 신중해야 한다. 특히 정부는 사드 등 미국 MD의 핵심 장비가 한반도에 배치되지 않도록 단호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지금 해야 할 일은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가 아니라 북핵 문제 해법을 찾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비경제분야 부총리직을 신설해서 총리, 2명의 부총리,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4륜 구동형’ 책임내각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경제분야와 비경제분야의 부총리는 행정부 소속이다. 이들이 책임내각을 구성하는 것은 ‘작은 정부’라는 이 정부의 철학에는 맞지 않지만 법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통일부, 외교부, 국방부 등 행정부처를 이끄는 것은 행정부의 부총리가 책임내각을 이끄는 것과는 전혀 다른 법률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청와대와 행정부는 법에 직무범위가 규정되어 있다. 대통령이라도 이를 무시할 수 없다. 청와대에 있는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은 정부조직법에 따라 모두 대통령을 ‘보좌’하는 직무를 수행하게 되어 있다. 행정 각부는 대통령비서가 아니라 행정 관련 사무를 관장하는 부서들이다. 법적으로는 국가안보실은 대통령을 ‘보좌’하고, 행정부처는 ‘행정사무 관장’으로 서로 직무가 구분된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대통령을 효율적으로 보좌하기 위해 각 부처 업무를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이 국가안보실이 컨트롤타워를 한다는 의미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행정부처들을 직접 관장하면서 책임내각을 구축하는 것은 위법이다.
 
실제 대통령을 보좌하는 과정에서는 청와대 수석비서관이나 국가안보실장의 파워가 행정부의 장관들보다 더 센 경우가 종종 생기기도 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파워게임의 결과에 따른 것이지 청와대가 직접 부처를 관장하는 법적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청와대와 행정부의 분리는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조선시대에도 청와대 비서실 격인 승정원에는 행정부 격인 이조, 병조, 호조, 예조, 형조, 공조의 6조에 대응하는 6부가 있었다. 6부를 담당하는 승지들은 왕명 출납과 같은 왕의 비서 역할로 왕을 보좌했다. 책임내각으로서 6조의 행정업무를 관장하지는 않았다.
 
통일·외교·국방 분야에서 책임내각이 필요할 수는 있다. 이렇게 하려면 외교장관, 통일장관, 국방장관 중 한명이 책임내각을 이끌도록 힘을 실어주고 청와대가 이를 지원하면 된다. 또는 참여정부 시절 정동영 장관이 통일부 장관으로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겸하면서 안보분야에서 책임장관 역할을 했던 방식을 취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청와대 구조는 어느 것도 할 수 없는 기형적인 구조다. 지금 청와대에는 노무현 정부 시대의 국가안전보장회의,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수석실, 박근혜 정부가 신설한 국가안보실이라는 세 개의 안보부서가 모두 존재한다. 청와대 국가안보 기능이 너무나 복잡하고 비대해져 버렸다. 심플한 조직이라는, 튼튼한 안보를 구현하기 위한 기본원칙은 이미 무너졌다.
 
북방한계선(NLL)에서 북한이 포를 쐈다는데 그 긴장의 순간 120억원을 들여 구입한 대포병 레이더인 ‘아서’가 가동되지 않았다. 국방부는 북한이 어디서 무슨 포를 쏘았는지도 모르고 있다. ‘송골매’라는 우리 무인기 전력을 성급하게 공개하거나 부서진 화장실문 조각을 북한 무인기로 발표하기도 했다. 국방부 대변인은 북한이 없어져야 할 나라라는 불필요한 막말로 안보장사를 하였다. 그 결과 6.4 지방선거 이후에는 국민을 불안하게 할 정도로 남북관계가 심각해질 전망이다.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통일부, 외교부, 국방부의 업무분장도 잘 모르는 상황이니 자꾸 이런 안보 무능, 안보 불안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 김창수 - 통일맞이 정책실장 >


[1500자 칼럼] 비겁을 벗어나는 길

● 칼럼 2014. 6. 2. 17:00 Posted by SisaHan
김기덕 감독의 영화 <일대일>이 개봉했습니다. 양우석 감독의 <변호인>이 나온 게 지난해 12월이니 반년도 못 되어 다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리는 영화가 나온 겁니다. 김 감독은 노 전 대통령의 ‘깊은 뜻’을 헤아리기 위해 이 영화를 연출했다고 합니다. 그의 제작노트를 보면 그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일대일>은 내가 살고 있는 이곳, 대한민국에 대한 영화다. ‘나 역시 비겁하다’는 것을 먼저 고백하면서 이 시나리오를 썼다. 나는 이 땅에 살면서 매일 충격을 받는다. 부정부패도 성공하면 능력이 된다.”
영화 도입부에서 살해되는 여고생의 이름이 ‘민주’인 걸 보면 김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대일>의 관객 수를 점치긴 이르지만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 모두 김 감독처럼 ‘나 역시 비겁하다’고 깨달으면 좋겠습니다.
 
비겁에는 능동적 비겁과 수동적 비겁이 있습니다. 제가 기자 노릇을 하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앞장서서 청와대를 기쁘게 하는 기사를 쓰려는 기자들도 있었지만, 청와대에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쓰는 수동적 비겁자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세월호의 침몰과 승객 구조의 실패는 능동적 비겁과 수동적 비겁이 한데 어울려 초래한 비극입니다. 능동적 비겁자로 밝혀진 선장과 선원들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부정, 부패, 부실에 눈감은 사람들, 정부와 기관들의 잘못을 보고도 침묵한 우리 수동적 비겁자들도 공범입니다.
다행히 비겁하게 살던 사람도 비겁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누가 시키든 옳지 않은 일은 하지 않고, 잘못된 걸 보면 잘못됐다고 하고, ‘무엇이 이익인가’보다 ‘무엇이 옳은가’를 추구하면 비겁자의 삶을 끝낼 수 있습니다.
 
물론 비겁이 체질화되어 끝내 변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요. 세월호 승객의 가족들이 여의도 한국방송으로 찾아갔을 때는 못 본 척하다가 그분들이 청와대 쪽으로 가니 그때에야 그곳에 나타나 사과한 길환영 <한국방송> 사장, <에스비에스>의 ‘그것이 알고 싶다’ 팀이 세월호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하려 하자 제작을 중단시켰다가 피디들이 총회를 열 것이라는 말을 듣고 중단을 철회한 에스비에스의 높은 사람들이 좋은 예일 겁니다.
세월호 참사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낙하산 인사로 인한 전문성 결여라는 게 밝혀졌지만 여전히 계속되는 낙하산 인사, 희생자 수습을 책임진 해양경찰을 해체한다고 전격 발표하여 유가족들을 망연하게 하고 곧바로 남의 나라 원자로 설치를 보러 간 대통령, 세월호가 침몰한 날 재가동 승인된 국내 최고령 원전 고리 1호기의 수명을 10년 더 늘리려고 눈치 보고 있는 관계당국과 한국수력원자력, 이들 모두 체질화된 비겁을 보여줍니다.
 
한 나라의 권력자와 그 수하가 능동적 비겁에 젖어 힘없는 사람들을 길들이면 그 나라는 평형을 잃은 배처럼 기우뚱거리지만, 우리에겐 비겁하지 않았던 대통령 노무현이 있고, 그의 뜻을 이어가는 김기덕 감독과 무수한 동행이 있습니다.
게다가 열흘 후엔 비겁에서 벗어날 절호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바로 지방선거입니다. ‘부정부패도 성공하면 능력’이 되고 ‘돈 있고 백 있는 사람 옆에 있어야 이익’이라지만 ‘돈과 백’을 거부하고 바르게 살아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투표하면 비겁의 사슬을 끊을 수 있고 그래야 세월호 승객들의 희생에 답할 수 있습니다. 다른 것 보지 말고 사람 보고 투표해주세요! 비겁을 벗어나 ‘사람 사는 세상’으로 가는 첫걸음, 투표입니다.

< 김흥숙 - 시인 >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주미 한국대사관 인턴 성추행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났다. 청와대는 이 사건이 언론에 등장하는 게 반갑지 않겠지만 1년이 지나도록 사건 처리가 이뤄지고 있지 않으니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지난 21일 워싱턴 검찰청에 전화를 걸었다. 2주 전 한국 언론들이 미국 검찰의 늑장 처리를 비판하는 기사들을 내보낸 이후 변화가 있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사건을 계속 검토 중이고 말해줄 게 없다”는 것이었고, 수사팀 인터뷰 요청에는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 내 분위기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태도다.
 
일각에선 법리적 검토에 시일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이 사건과 관련해 법리적으로 검토할 부분은 두가지뿐이다. 하나는 ‘경죄’인지 ‘중죄’인지를 판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외교면책특권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법조인들은 이 사건은 복잡하지 않아서 경죄·중죄 여부를 판단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다고 말한다. 이 정도 사건이면 이미 법리 검토를 서너차례도 더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외교면책특권은 적용 가능성 여부를 떠나 당사국(한국)이 행사 의사를 표시해야 효력을 발효하는 것인데, 한국 정부는 이미 이것을 사실상 포기한 상황이어서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결국 사건 처리가 미뤄지는 이유는 사건 수사나 법리 검토 이외의 다른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세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는 미국 정부의 수동적인 태도다. 대통령의 외국 순방 때 불미스러운 일을 저지른 수행원을 처벌할 경우 나중에 미국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을 우려할 수 있다. 미국은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콜롬비아 순방 때 비밀경호국 요원들이 성매매를 하다 들통나 미국으로 소환한 바 있다. 미국이 이번에 윤 전 대변인을 강하게 처벌할 경우 외국이 미국 관료를 처벌하는 선례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한국 정부의 안이한 태도다. 우리 정부는 당시 미국 쪽에 신속한 수사를 요청했으나 그 이후엔 사실상 나 몰라라 하고 있다. 그 이후 외교 채널을 통해 신속한 수사를 요청한 적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미국 법무부를 통해 사건 진행 경과를 파악하는 수준인데, 미국 쪽은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셋째는 윤 전 대변인 쪽이 미국 검찰을 상대로 만만찮은 로비를 하고 있는 점이다. 현재 윤 전 대변인은 법무법인 에이킨 검프 변호인 4명의 조력을 받고 있는데, 이 법무법인은 워싱턴에서 로비력 1~2위를 다투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피해자 가족은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20대 딸을 가진 부모의 심정상 신원 공개 등 ‘2차 피해’를 우려한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 언론의 감시 범위에서도 사실상 벗어나 있는 미국 검찰은 아마도 ‘시장의 논리’에 순응해 이 사건을 흐지부지해도 별 타격이 없다고 여기는 것 같다.
 
이 사건이 일벌백계는커녕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흐지부지될 개연성이 높아지는 것을 보며 국가 기관은 왜 존재하는지 다시 묻게 된다. 약자 보호보다는 권력자들을 가급적 ‘불편’하지 않게 하려는 분위기가 역력한 탓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년 전 이 사건과 관련해 “이 문제는 국민과 나라에 중대한 과오를 범한 일로, 어떠한 사유와 진술에 관계없이 한 점 의혹 없이 철저히 사실관계가 밝혀지도록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국 정부에 다시 신속한 수사를 요청해 그 약속을 지키길 바란다.

< 박 현 - 한겨레신문 워싱턴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