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인적 쇄신 작업이 13일 경제부총리 등 7개 부처 장관을 바꾸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쇄신은 ‘나쁜 폐단이나 묵은 것을 버리고 새롭게 한다’는 뜻인데 아무리 봐도 박 대통령 인사에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폐단’은 오히려 깊어졌고, 마땅히 물러나야 할 ‘묵은’ 사람은 여전히 버티고 있으며, 새로운 사람은 전혀 새롭지 않다.
청와대의 오만함은 ‘망언 열전’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하겠다는 데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여당 일부 의원들까지 공식적으로 부적격 판정을 내릴 만큼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문 후보자는 청와대의 응원에 용기백배해 언론사를 상대로 한 법적 소송까지 들먹이고 있다. 이것은 쇄신이 아니라 흙탕물 범벅이다.
 
문 후보자는 이미 ‘국제적인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내 나라가 남의 식민지가 된 것을 신의 뜻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총리로 지명했으니 해외토픽감이 아닐 수 없다. 일본 극우파 쪽에서는 희색이 만면해 “조선을 벌한 것은 신의 뜻이었다”는 맞장구까지 치고 있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로 대한민국은 국제사회가 공인하는 ‘안전 후진국’이 된 데 이어 이제는 식민시대 찬양자를 총리로 내세우는 ‘신비한 나라’가 됐다.
문 후보자가 총리로서 부적합한 이유는 그릇된 역사관과 민족관 때문만이 아니다. 이런 망언들에 가려 있지만 ‘종교적 맹신’ 자체만으로도 총리 자격이 없다. 국가 지도자는 되도록 한쪽 종교에 치우치지 않은 사람, 종교가 있더라도 국민에게 이질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사람이어야 한다. 이념·지역·계층 등으로 갈가리 찢긴 우리 사회가 종교 문제로까지 갈등을 빚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입만 열면 “신의 뜻”을 외쳐대는 ‘극우 인사’ 말고는 도대체 이 나라에 사람이 없다는 뜻인지 청와대는 새로운 갈등의 뇌관에 불을 붙이고 있다.
 
내각과 청와대 개편에서 확인된 ‘강화된 친정체제’의 정점에는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있다. 새로 꾸려진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은 예전과 달리 임명 과정에서부터 김 실장의 입김이 작용한 사람들이다. 명실상부한 충성 체제가 작동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총리 후보자라는 사람은 국정 경험도 없고 이미 인준 과정에서부터 만신창이가 됐다. 설사 총리가 된다 해도 ‘부통령 실장’ 앞에서 말도 제대로 못하는 허약한 총리가 될 게 뻔하다. 장관들은 청와대 지시사항을 받아쓸 더욱 두툼한 공책을 준비해야 할 상황이다.
6.4 지방선거가 끝난 뒤 청와대는 “한표 한표에 담긴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해석한 ‘국민의 뜻’과 ‘표심’은 대다수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국민의 뜻’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겸허’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보기 힘들다. 박 대통령이 선거 전에 흘렸던 눈물의 실체가 바로 이것인 모양이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 내정된 김명수 한국교원대 명예교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한국사 학계의 중추를 이루는 7개 학회가 16일 김 교수를 “시대착오적 역사 이념을 지닌 편향된 인물”이라고 평가하기에 이르렀다.
더 본질적이고 심각한 건 그의 교육관이다. 철저하게 경쟁교육을 신봉하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세월호 참사와 진보 교육감의 대거 당선은 ‘교육만큼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는 국민의 열망이 분출한 것으로 봐야 한다. 세월호의 비극을 겪고 나서, 이제는 우리 아이들을 무한경쟁의 쳇바퀴 안에서 질식시키지 않겠다고 결단을 내린 것이다. 무한경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탐욕을 충족시키려는 이기적 인간을 키워냈고, 그런 사회에서는 원칙과 기본을 지키는 최소한의 공동체적 가치도 자리를 잡을 수 없다는 걸 부모들이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이런 흐름에 역행하는 인물이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그동안 정부가 외고, 특목고, 자사고 등 수월성 교육을 위해 간신히 숨통을 텄던 노력이 자칫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며 진보 성향 교육감들의 정책을 “교육이 하향 평준화로 가는 역주행”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다 보니 “가장 크게 벤치마킹할 수 있는 고등학교는 민족사관고등학교와 상산고등학교”이고, 국제중학교 설립도 찬성한다. 자사고 축소와 혁신학교 신설 등으로 교육의 경쟁과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진보 교육감들과는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는 심지어 현 정부의 정책 기조조차 비판할 정도로 보수적이다. “학습능력이 우수한 학생의 학습열을 선행학습 금지라는 이유로 제한하는 것은 일종의 개인 기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게 대표적이다. 그의 눈에는 지금 교육부조차 진보로 비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이 그를 지명한 것은 진보 교육감 13명에 맞서 싸우라는 뜻으로 밖에는 해석되지 않는다. 하지만 진보 교육감은 전국 학생의 85%인 605만명을 맡고 있다. 대통령도 장관도 4년 임기 선출직 교육감을 어찌할 수는 없다. 전쟁 치르듯 맞설 사안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교육장관은 노동·복지·여성 등 사회분야를 총괄할 사회부총리도 겸하게 된다. 사회 전반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을 이끌어내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는 자리다. 세월호 참사로부터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 채, 더욱 분열과 갈등으로 치닫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설 뿐이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역사인식은 일본의 극우파들이 즐기는 수준이다. 차이라면 약육강식의 사회진화론 대신에 엉뚱하게 그 자리에 하나님을 얹어서 기독교 정신을 훼손한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남북분단이 한민족의 게으름을 고치기 위한 하나님의 뜻으로 이뤄진 역사”라는 취지는 일제의 식민사관을 옹호하기 위해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매신행위다.
마치 빌라도가 예수를 처형한 것이 유대 민족의 게으름을 심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식의 억지와 같다. 그는 기독교의 섭리사관을 거꾸로 인식한 듯하다.
 
문 후보자의 역사인식은 식민사관의 종합판이다. 일제는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반도적 성격론, 타율성 이론, 정체성 이론, 당파성 이론을 날조했다. 한반도는 주변의 강대국들로 인해 독립국가가 되지 못하고 타율에 의해 국운이 좌우되어 당쟁이나 일삼고 정체된 민족이라는 비하였다. 역사가 지리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이다. 이탈리아는 반도국가인데도 로마가 지중해 세계와 유럽 대륙을 석권하고, 중국과 인도는 거대한 대륙인데도 식민지, 반식민지가 된 사례는 외면했다. 
일제는 특히 한민족의 당파성을 문제 삼았다. 어느 나라나 당파싸움은 있다. 중국 송나라의 탁당·낙당, 일본 남북조 시대의 당쟁, 영국 토리당과 휘그당, 프랑스 지롱드당과 자코뱅당의 피비린내 나는 대립과 살육은 널리 알려졌다.
 
문창극 후보자는 한민족이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다고 일제 식민사관을 그대로 답습한다. 한국 노동자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동시간이 가장 길고, 삼국시대는 물론 고려 통일 이후 일제 병탄 때까지 우리는 자립국가였다. 중국 주변 민족국가 대부분이 소멸되거나 소수민족으로 중국에 예속된 데 비해 한민족은 비록 분단 속에서나마 당당한 주권국가로 국제 무대에 서고 있다. 정작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한 것은 기회만 있으면 외세에 의존하려는 소수 사대주의 지배층일 뿐이다.
조선 총독부는 어용학자들과 거금을 동원하여 한국의 역사를 왜곡 날조하는 <조선반도사>(35편)와 <사료총서>(102편) 등을 편찬했다. 이것이 해방 후 친일사학자들에게 이어지고 뉴라이트 계열로 전승되면서 교학사 교과서 파동으로 나타났다. 문창극 후보자의 사관도 여기에 뿌리가 닿는 듯하다.
 
남북분단을 하나님의 뜻 운운하는 대목에서는 말문이 막힌다. 제2차 대전 종전을 앞두고 미국과 소련이 일본군 무장해제의 명분으로 한반도를 두 동강 내고, 그 ‘원인 제공’은 일제라는 것은 웬만한 중학생도 아는 현대사의 상식이다. 그럼에도 굳이 ‘하나님의 뜻’을 역설한 데는 주류 세력의 뿌리인 친일파를 덮고, 독립운동가들의 역할을 지우고, 미·소의 책임을 면제하려는 고도의 언술이 밴 것 아닌가 의심된다. 반지성주의는 국민을 속일 수 없다.
문 후보자의 역사인식은 참으로 한심한 수준이다. “이조 500년의 허송세월” 부분은 신문사 주필을 지낸 분의 용어인가 의심스럽다. 우리나라 역사에 ‘이조’란 나라는 없다. 이성계가 창업한 나라는 조선이고, 1897년 고종이 청국과의 전통적 종속관계를 청산하고 완전한 자주독립국이 된 것을 선포하면서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1910년 국치를 당하면서 국호는 사라졌다.
 
일제는 조선을 ‘이조’라 불렀다. 한 나라가 되지 못하고 이씨의 부족사회 수준으로 깔보는 멸칭이었다. 그래서 조선백자는 ‘이조백자’, 조선왕조실록은 ‘이조실록’ 따위로 불렸다. 한국의 식민사학자들이 따라 하고 아직도 잔재가 남아 있다.
일제 식민지배가 축복이라는 논리는 그동안 일본관학자들과 극우정치인들 사이에 끊이지 않았고 한국의 식민지근대화론자들에게 전승되었다. 일제가 패전 때까지 조선에 투여한 자금이 60억~70억엔 정도이고, 빼앗아 간 자금과 물자는 440억엔이 넘는다. 수백만명에 이르는 인명살상과 여성 위안부, 문화재 탈취 등은 계량하기 어렵다. 36년 식민지배로 근대적 발전의 기회를 빼앗고 민족분단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용납되기 어려운 일본의 죄업이다.
일본 언론들이 문 후보자의 총리 지명을 반기고 조롱하는 것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역사정의’가 침몰하는 것 아닌가 두렵고 분노한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박근혜 대통령의 적폐 청산과 정부·관료 개혁은 시작부터 잘못됐다. “그동안 쌓여온 모든 적폐”를 도려내겠다고 하는데 도려내기는커녕 반대로 적폐를 더 쌓을 태세이고, 국가개조를 하겠다고 하지만 아무리 잘 봐주려고 해도 좋게 개조되기는 틀린 것 같다.
 
박 대통령이나 전임 이명박 대통령이나 부지런하기로 치자면 우리 헌정사상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나. 그러나 이 대통령이 그렇게 열심히 일해도 대통령으로서 실패했듯이, 박 대통령도 ‘깨알 지시’를 해가며 부지런히 일해도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근정’(勤政)의 바른 뜻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오직 부지런해야 하는 것만 알고 부지런해야 하는 바를 모르면, 그 부지런하다는 것이 오히려 번거롭고 세밀하게 흘러 보잘것없는 것이 된다”고 했다. 예부터 “임금은 사람을 알아보는 것을 밝음으로 삼는다”고 하였고, 오직 “어진 이를 구하는 데에 부지런하고 어진 이를 쓰는 데에 빨리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옆 나라 아베의 수첩을 몰래 훔쳐보고 뽑았냐는 비아냥이 돌 정도인 ‘이상한 사람’을 일국의 총리랍시고 지명해놓고, 무엇이 문제냐는 듯이 밀어붙일 기세다. 적폐의 누적이다.
 
새로 교체된 장관, 수석비서관이란 사람들도 대부분 충성스러운 측근들 돌려막기 수준이라니, 이들 또한 개혁과는 거리가 상당히 먼 것 같다. 하기야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휘두를 수 있는 힘은 인사권에서 나오고, 궁지에 몰릴수록 그 인사권을 가지고 자신의 주변을 맹목적인 충성파들로 둘러싸는 것이 다반사이니 그런 인사를 한다고 놀랄 일은 아니지만 국가개조 운운하는 대통령이 할 인사는 아니다. 더욱이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리고 관료·정부 개혁이 화두가 되니 정치적 계산에 따라 적폐 청산, 관료개혁에 혼신의 힘을 다 바칠 것처럼 말하지만 선거만 끝나면 다시 흐지부지될 것은 뻔하다. 경제민주화, 복지를 단물만 빨아먹고 버렸듯이. 정치적 계산에 따라 오직 개혁하는 척만 할 뿐이지, 개혁해야 하는 바는 알고 싶지 않다는 것인가. 그러니 무엇을 개혁해야 하는지, 왜 개혁해야 하는지,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지, 누가 개혁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이다. 무엇이 적폐이고 왜 그것이 적폐인지, 그 적폐를 어떻게 청산해야 하는지, 그리고 누가 그 적폐를 청산할 수 있는지를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개혁방안이랍시고 며칠 만에 밀실에서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처음으로’ 듣기만 했다고, 그것도 장장(?) 세 시간 동안이나, 자랑스럽게 보도자료를 뿌려댔다. 그리고 청와대 밀실에서 주말 내내(?) 열심히 일해 만들었다니 참 대단하다. 그렇게 졸속으로 만들어낸 것을 가지고 국가개조를 하겠다니 국가개조라는 것이 그렇게 가벼운 것이었던가. 그런 개혁방안이 제대로 되었을 리 만무하다. 그러니 해경을 해체하네, 소방청을 해체하네 하는 황당한 방안을 내놓고 있다. 관피아를 청산하겠다면서 여전히 ‘정피아’ 내려보내기 바쁘고, 관료개혁은 고작 5급 행정고시 공채를 줄이고 민간 경력자 몇 명 더 늘리겠다는 것이 전부이니 관료개혁이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었던가.
대한민국 정부부처에는 부처당 장관 이하 선임사무관까지 평균 480여명이나 상급자들이 있는데, 이런 층층시하 명령조직에 민간 경력 신입 5급 사무관을 매년 부처당 두어명씩 더 뽑아 보낸다고 관료개혁이 되겠나. 황당하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오직 개혁하는 척만 하고자 할뿐인 것 같다.
 
진정 적폐를 청산하고 관료•정부 개혁을 하고자 한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부터 시작해서, 우리 사회가 개혁해야 할 적폐가 무엇인지, 왜 그것이 문제인지, 그리고 어떻게 청산해야 하는지 국민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찾아내야 한다. 여야, 시민단체가 참여한 범국민 위원회를 만들고 대통령은 이 일에서 손을 떼야 한다. 대통령도 조사 대상이고 개혁의 대상이니까.
< 이동걸 -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