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엄마’란 이름을 더럽히는 사람들

● 칼럼 2014. 7. 31. 13:08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세상에 태어나 처음 입을 떼 불러보는 이름이 엄마다. 살다가 힘들거나 외로울 때 나지막이 불러보는 이름이 엄마다. 생을 거둬들일 때 마지막으로 불러보는 이름도 엄마다. 무엇보다도 죽음의 공포가 밀려올 때 무의식중에 튀어나오는 말이 엄마다. 살려달라고….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은 단원고 아이들도 바닷물을 토해내며 마지막으로 내지른 외마디는 엄마였을 것이다.
그런 엄마의 이름을 내걸고 독사의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무리가 있다. 대한민국 엄마부대 봉사단(엄마부대)이다. 이들은 지난 1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세월호 가족 단식농성장’ 앞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것도 아닌데 이해할 수 없네요”, “유가족들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의사자라니요” 등이 쓰인 손팻말을 들고 특별법을 반대한다며 집회를 열고 큰 행패와 소란을 벌였다.
 
우선 사실관계를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의사자 부분이다. 세월호 사건으로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엄마들이 요구하는 건 보상이 아니라 진실이다. 이들은 “의사자도, 대학특례도, 평생지원도 요구하지 않는다. 오직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힐 것과 책임자 처벌만을 바랄 뿐”이라고 여러차례 밝혔다. 그런데도 엄마부대가 의사자 운운하는 건 유족들의 뜻을 의도적으로 비틀고 오도하는 것이다.
자식을 잃은 엄마들은 요즘도 무척 힘든 나날을 이어가고 있다. 국회에서는 일주일째 한낮의 뙤약볕 아래 땀범벅이 되어 농성을 하고, 저녁엔 얇은 홑이불 하나로 견뎌내고 있다. 유족들이 이렇게 버티는 건 더이상 이 땅의 아이들이 내 자식처럼 억울한 죽음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자식 잃은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알기에 다른 부모들은 똑같은 슬픔을 겪지 말라고 밑도 끝도 없는 시간을 대신해 참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게 엄마의 마음이다.
 
엄마봉사단은 요즘 보수 우파 단체에서 ‘주력부대’로 표현할 만큼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정치적으로 견해가 다른 사안들에 대해 나름의 주장을 펴는 것은 좋다. 하지만 자식 잃은 엄마의 심장에 또다시 비수를 꽂는, 그것도 엄마의 이름으로 하는 짓만은 말아야 한다. 19일 서울광장 집회에서는 단원고 학생의 미공개 동영상이 공개됐다. 이 동영상에서 숨진 학생은 “진짜 살고 싶다. 아 무서워, 나는 꿈이 있는데…”라는 육성을 남겼다. 엄마부대 단원들도 이 동영상을 한번씩 보기 바란다. 그리고 자기 자식을 한번쯤 떠올렸으면 좋겠다. 엄마의 이름으로 죽임의 언어를 구사하는 잔인한 짓은 더이상 말아야 한다.


[한마당] 누구를 위한 법인가

● 칼럼 2014. 7. 31. 13:05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15년 전 어린이 19명이 불에 타 숨진 씨랜드 참사 현장에는 여전히 불법 가건물로 가득한 캠핑장이 운영되고 있다. 
태안의 사설 해병대 캠프에서 다섯 청소년이 익사한 지 1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캠프는 영업 중이고 여행사 대표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사고가 날 때마다 온 국민이 울고 국화꽃이 쏟아졌건만, 그리고 정부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 약속했건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참사는 반복되었다.
왜인가? 철저한 진상 규명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고 뒤 이뤄진 조사는 원인을 제공한 악덕 기업이나 개별 범죄자에 머물렀지 그 뒤를 봐 주던 정관계의 공모 구조를 밝히지 못했다. 또 현행법상의 위법 여부만 따졌을 뿐 안전과 관련된 법제도 전반을 점검하여 어디가 어떻게 부실한지도 밝히지 않았다.
형식적인 진상조사로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빠져나갔고 재발을 막는 제도 장치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국가는 사실상 ‘기억’의 소멸을 조장해왔다. 그 결과가 바로 세월호 참사다.
이제는 이런 비극을 끝내야 하지 않을까? 잠시 눈물짓다가 일상으로 돌아와선 나와 가족이 언제 어느 바다에서, 건물에서, 휴양지에서 죽음을 당할지 모르는 위험사회에 떨며 살아가는 일을 멈춰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바로 세월호 특별법, 아니 4.16 특별법을 제정해야 하는 이유다.
유족들이 350만명의 서명을 받아 제출한 4.16 특별법의 목적은 ‘또 다른 세월호 참사를 막고 안전사회를 세우는 것’이다. 왜곡되고 오해되는 것처럼 유가족들에게 특혜를 주는 법이 아니다. 특별법의 핵심은 ‘수사권·기소권을 지닌 독립적 진상조사 특별위원회’이다. 이전의 진상조사가 겪었던 한계를 넘어 사태를 뿌리부터 규명하려는 유족들과 시민사회의 의지인 것이다. 
진상조사가 이뤄져 벌 받아야 할 사람들이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벌을 받을 때, 권력자나 기업은 부패의 단맛보다 법의 엄정함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특별위원회는 재발방지 조처를 연구하여 정부에 권고하고 정부는 그 권고를 이행할 의무를 지게 된다. 이럴 때 대한민국은 반복되는 재난공화국에서 안전한 사회를 시민권으로 보장하는 참된 민주공화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것이 유족들이 국회에서 단식하며 요구하는 것이다. 
4.16 특별법은 유족들만을 위한 법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법, 다음 세대를 위한 법이다. 대한민국이 세계의 복지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한 법이다.
그러나 여야는 유가족의 법안이 아닌 자기들의 법안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야당은 기소권은 쏙 빼고 수사권만 주장하고 있으며 여당은 수사권마저 못 받겠다고 한다. 여당은 조사기구에 수사권을 주는 게 “전례가 없다”고 하는데, 그런 전례가 없었기에 지금껏 사고의 진실 규명이 흐지부지되고 참사가 반복됐던 것이다.
 
이번 사고처럼 총체적인 재난 대응 부실의 원인을 밝히려면 청와대를 추궁해야만 한다. 법무부 장관의 지휘를 받는 검찰이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국정조사에서 봤듯이 ‘VIP’ 보호에 급급한 새누리당이 주도하는 국조특위가 할 수 있을까? 국회가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특검이 할 수 있을까? 
특단의 사태에는 특단의 선택이 필요하다. 이제 국민이 일어나서 여야를 압박하고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하는 수밖에 없다.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암살되기 전날 이렇게 연설했다. “어떤 어려움에도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저는 산꼭대기에 올라 ‘약속된 땅’을 보았습니다.” 
4.16 특별법은 사람이 존중되는 안전한 나라로 가는 길이다. 우리에겐 그 길을 갈 충분한 힘이 있다.
< 오준호 작가 >


[1500자 칼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 칼럼 2014. 7. 21. 20:10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미니총선’이라고 불리는 7.30 재보궐선거에서 여야가 운명을 건 한판 승부를 벌인다고 한다. 여당의 과반의석 확보 여부가 걸려 있어 향후 정국을 뒤흔들 선거라는 거다. 과연 그럴까? 국민들이 기다리는 큰 변화를 이번 선거가 가져다줄까?
 
정치를 잘 모르기는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야당의 ‘한심한 짓거리’와 여당의 ‘간교한 정치상술’, 그리고 6070과 영남의 ‘우직한 박 사랑’은 지난 6.4 지방선거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 선거 결과도 그때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역적 정치편향을 감안해서 보면 대충 무승부가 되거나, 아니면 피차에 적당히 이기고 적당히 지는 선에서 끝날 것 같다. 정치 담당 기자들은 이를 두고 유권자들이 또다시 절묘한 선택을 했다고 감탄사를 쏟아낼지 모르겠지만, 경제학자인 필자의 생각에 이는 우리나라를 망치는 최악의 결과다. 변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시점에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정치든 경제든 말로는 미래, 창조, 행복, 혁신 등 좋은 말은 다 들먹이지만 실제로는 과거의 폐습을 계속하면서 이를 모두 죽이는 적폐를 더 쌓아오지 않았는가. 벌써 여러 번 보았는데 무슨 다른 말이 더 필요할까. 여당이 이기면 지금처럼 청와대와 여당이 국민을 무시하고 대통령만 쳐다보는 ‘오만한 짓거리’를 계속할 테고 적당히 져도 마찬가지일 거다.
 
야당은 내 당권, 내 지역구, 내 권력만 지키면 됐지 다른 게 다 무슨 필요가 있냐는 식으로 ‘독점적 2등 권력’을 지키는 데만 급급했다. ‘2등 권력’이라도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는 훨씬 좋으니 이번이라고 야당 인사들의 행태가 쉽게 바뀌겠는가. 야당이 이기면 지금처럼 ‘내 당권’, ‘내 정치적 이익’만 생각하는 ‘한심한 짓거리’를 계속할 테고 적당히 져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대충 무승부가 되면 여야 모두 ‘한심한 짓거리’와 ‘오만한 짓거리’를 각자 열심히 계속할 테지.
지금 우리 경제는 퇴락과 붕괴의 길로 가고 있다. 서민·중산층이 죽어가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미래도 없다. 노령층에게 안정적인 노후도 없다. 지금 우리 경제는 근본적인 혁신과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서 있다. 지금 변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는 영원히 회복하지 못할 함정에 빠져들 위험에 직면해 있다. 이번 선거가 그러한 혁신과 전환의 계기가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번 선거에서 여당이든 야당이든 어느 한 당이 존립을 위협받을 정도로 대패해야 한다고 필자는 감히 주장한다. 국민의 열망을 무시하는 당, 진정 변하지 않는 당, 사리사욕만 취하는 당은 어느 당이든 죽는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고 과연 그들이 변할까? 여든 야든 한쪽이 크게 변하지 않고 다른 당이 변할까? 독점적·안정적인 양당 권력구조에서 여야의 암묵적인 정치 담합이 그러지 않고서야 깨지겠는가. 당내 기득권층이 제거될 만큼 큰 충격을 받아야 한다.
 
지금 우리 국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비전과 희망이다.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직장을 얻어 평생을 안정되게 일할 수 있고, 은퇴 후에도 큰 걱정 없이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우리가 열심히만 하면 우리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 우리 사회의 내일이 오늘보다 좋아질 것이라는 비전.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는 그런 비전도, 희망도, 그 어떤 미래도 없다. 그런 비전과 희망을 보여주는 정치 지도자가 없다. 무능한 대통령과 사리에만 밝은 양대 정당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여야가 똑같은데 누굴 찍나? 정말 답답하다. 하지만 길게 보고 냉혹한 선택을 해야 한다. 지역적 연고와 개인적 이해에 얽매인 선택이 훗날 자신을 죽이는 부메랑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6070과 영남은 맹목적인 ‘박 사랑’을 내려놓고 여당을 죽여라. 그들이 여당을 못 죽이겠다고 하면 우리라도 야당을 죽이자. 야당이라도 다시 태어나야 한다.
국가와 국민들에게 비전과 희망을 제시할 수 있는 정당과 정치 지도자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도 국민들의 몫이다.

< 이동걸 -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


[한마당] 균형자의 비전과 의지

● 칼럼 2014. 7. 21. 20:08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중국은 여러 면에서 지구촌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다. 
중국의 일인당 소득(구매력 기준)은 지구촌 평균치에 거의 접근했다. 중국의 심각한 빈부 격차도 지구촌 전체와 닮았다. 중국의 선진적인 부문은 세계 정상급이지만 뒤처진 지역·부문은 최빈국과 다를 바 없다. 정치 발전 정도도 지구촌의 중간 정도다. 곧, 중국은 지구촌을 5분의 1로 축소한 하나의 세계다.
지구촌의 모든 문제가 중국에 있고 그 문제들에 대한 해법의 실마리도 중국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불과 한 세대 남짓 만에 지금의 위치에 도달했다. 중국은 지금 고속철 건설에 박차를 가한다. 미국이 1930년대부터 전국 고속도로망을 구축한 일을 연상시킨다. 중국 전역이 하루생활권으로 되면 지구촌 전체가 하나로 합쳐지는 과정에서 나타날 문제들을 미리 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이 국민통합에 성공할 경우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중국몽’이 현실화한다. ‘21세기는 중국의 세기’라는 말은 중국이 지금부터 한 세대 안에 이 꿈을 이루는 것을 전제로 한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미-중 대결은 이 꿈과 긴밀하게 얽혀 있다. 
하지만 지난주 미-중 전략경제대화가 별 성과 없이 끝난 데서 보듯이 미국은 이 꿈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지금 동아시아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갈등과 이합집산 양상을 해석하는 큰 틀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중국의 도전이라는 핵심 변수를 인정하더라도, 미국의 패권 구도는 공고하며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 동안 유지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 미국과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언급은 대체로 이와 일치한다. ‘평화롭고 안정적이며 번영하는 중국의 부상’, ‘신형대국관계 구축’ 등이 그것이다. 실제로 군사·외교·문화 등의 면에서 미국의 우위는 분명하다. 미국의 패권 구도는 이제까지 중국의 발전에 유리하게 작용해왔고 적어도 앞으로 수십년 동안은 유효하다. 이런 시각에 서면 지금 중국과 일본이 남북한에 각각 접근하는 현상은 기존 틀 속에서 자신의 입지를 넓히려는 ‘찻잔 속의 태풍’일 뿐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의 뜻과는 달리 중국으로 패권이 넘어가는 과정이 이미 시작됐다고 보는 시각이다. 이 과정은 성패가 명확해질 때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으므로 전선의 약한 고리에서 폭력적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 무대는 한반도나 대만·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남중국해일 수 있고, 격렬한 미-중 경제전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충돌은 패권 이동 또는 대결적 양극질서의 고착으로 귀결될 것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도 최근 “아시아에서는 계산 착오 때문에 다양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중대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했다.
 
합리성에서는 앞쪽 시나리오가 더 타당해 보이지만 과거 역사를 살펴보면 뒤쪽 시나리오로 진행될 가능성이 적잖다.
분명한 것은 어느 쪽이든 우리나라는 중간자적 존재라는 점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 모두에게 ‘전략적 요충지’이자 ‘동아시아 외교의 핵심 기둥’이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이점과 전략적 가치는 갈수록 더 커질 것이다. 남북한이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패권의 내용과 향방도 크게 영향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이점은 아직 충분히 발현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노력이 적절하지 못하다면 거꾸로 전략적 취약점이 될 수도 있다. 분단 구조가 더 견고해지거나 최악의 경우 한반도가 새로운 분쟁지가 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실제로 과거 패권재편기에 한반도는 늘 전쟁터가 됐다.
 
우리의 과제는 새 질서 구축을 위한 가교 구실을 하는 것이다. 이에 가장 가까운 표현은 ‘균형자’다. 이를 위해서는 대결적 사고에서 벗어난 창의적 발상이 필수적이다. 
그 출발점은 남북 관계 개선이다. 남북한이 같은 방향의 동력을 갖는다면 평화롭고 협력적인 질서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그 과정에서 북한 핵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관련 사안들의 우선순위가 높아져 해법 찾기도 쉬워진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확실한 비전과 의지다.
< 한겨레신문 김지석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