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장님과 코끼리

● 칼럼 2014. 3. 23. 15:42 Posted by SisaHan
코끼리 한 마리 얼마나 
다른 모습 가지고 있는지
길다란 코, 부채같은 귀, 
줄같은 꼬리, 기둥같은 다리,
 
당신 손으로 더듬어 만져본 
코끼리가 코끼리라고 
가슴을 닫고 눈을 감은
자신과 옆사람에게 외친다.
 
코끼리는 코가 손이고
기둥같은 다리로 걸어다녀도
코끼리의 눈물을 보았는가
배가 고파 울지만 아파도 운다.

  ‘장님과 코끼리’, 옛날 동화책에서 읽은 이야기다. 
장님들이 서로 다른 부분의 코끼리를 만져보고, 코끼리가 어떻다고 자기 나름대로 만져 본 부분을 이야기한다. 
다리를 만져 본 사람은 코끼리는 기둥 같다고, 꼬리를 만져본 사람은 줄 같다고, 몸통을 만져본 사람은…,
우리는 두 눈을 뜨고있지만, 사물을 판단할 때, 자기가 본 부분만, 또는 알고 있는 사실만 가지고서 전체를 말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생각해본다. 극히 일부분, 그것도 직접 만져본 부분이 아니라 누가 말한, 다른 사람이 발표한, 한 부분을 가지고 마치 그것이 전체인 양, 단정을 내리고 말을 한다.
 
특히 해외에서 살면서 국내 사건을 두고 말할 때, 누가 발표한 몇 마디 말로, 신문 기사나 인터넷 상에 떠도는 이야기를 근거로 모든 것을 단정한다. 누가 말을 하면 그 말의 앞과 뒤를 분석해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중에 뽑아낸 한 두 마디 말로 전체를 판단하는 것이다.  
사실 전체를 다 듣고서도 판단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일인데, 우리는 너무 쉽고 빠르게 생각없이 판단을 내리고 단정을 짓는다. 나 자신 그런 사람 중의 하나다. 굳이 일부분이라도 확인해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또 모르는 사실을 알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가지고 있는 좁은 상식에 의한 편견으로 대부분의 일에 미리 단정을 내린다. 그리고 그 단정을 변호하기 위해, 비슷한 사실들을 끌어 모으는 식이다. 
모든 것은 알고 있는 것만큼 보인다는데, 그렇다면 사실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극히 좁은 셈이다. 특히 이곳 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보는 시야가 상당히 좁아졌음을 느낀다. 어딘지 모르게 제한된 생활을 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근시안이 되었다고 할까? 자신의 하루 생활권에 벗어난 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리고 이민자여서 그런지 만나 대화하는 사람의 범위가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
 
정치나 사회적인 현상의 실체가 눈앞에 보이는 코끼리를 보듯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특히 정치에서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못할 말 없는 것이 정치인의 말이다. 그들은 대중들의 표로 자리를 얻기에, 어떤 술수를 써서라도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편이 되게 하여, 선거에 있어 자신을 찍도록 만들어야한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정적을 깎아내리기 위해 온갖 음해를 할 것이다. 정치란 권모술수라는 것을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말해왔다. 어느 정치인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은 만들어낸 신화가 아닌가 의심해보아야 한다. 그들의 말과 행동은 고도로 계산된 것일 수밖에 없다. 
사실 떠나와 살면서 모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일일이 관심을 가질 수는 없다. 그러나 중요한 일에 관심을 가질 때,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어느 일부분을 놓고, 그것이 전체인양 생각하고 말하는 실수를 저지르지는 말아야겠다.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


편파·막말 보도로 지탄을 받아온 종합편성채널(종편) 3사가 재승인 심사를 사실상 통과했다. 종편 재승인 심사위원회가 <TV조선> <채널A> <JTBC> 등 종편 3사와 보도채널 <뉴스Y>에 대해 재승인 심사를 한 결과를 보면, 모든 사업자가 재승인 통과 기준점인 650점 이상을 얻었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종편 사업자들이 재승인 심사 때 제출한 사업계획서를 검토한 뒤 조건을 달 수 있다며 의결을 이틀 뒤로 미뤘으나, 형식 절차에 불과해 결과가 바뀌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결국 ‘반칙 종편’에 정치적 심사를 통해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되었다.
 
종편 심사위원회는 전체 15명 가운데 친여 성향이 아닌 심사위원은 3명뿐일 정도로 보수 편향으로 구성돼 처음부터 불공정 심사 우려를 낳았다. 아니나 다를까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다.
종편 중에서도 특히 채널A와 TV조선은 ‘5.18 북한군 침입설’ 등 몰상식한 보도로 시민사회의 거센 비판을 받아왔다. 또 채널A는 2011년 출범을 앞두고 ‘허위,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방송 허가를 받았다며 지난해 검찰에 고발당했고, 3년간 주요 주주 변경을 금지한 승인 조건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시정명령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위반 사항이 재승인에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종편들이 보도 편성 비율을 대폭 올린 것을 묵인해준 사실이다. TV조선은 애초 25%였던 보도 편성 비율을 향후 5년간 40%대에서 시작해 점차로 줄이겠다고 사업계획서에서 밝혔다. 종편들은 사업 계획 약속을 지키지 않고 지나치게 많은 보도 편성을 해 방통위로부터 시정명령을 받기도 했는데, 이번에 사업계획서를 통해 아예 종편이 아니라 편파 보도채널을 하겠다고 노골적으로 선언한 셈이다. 다양한 편성을 통해 시청자를 위하겠다는 종편 출범의 본래 취지를 깔아뭉개는 행위다. 그런데도 이런 사실에 눈을 감았다.
 
지난 3년 동안 종편이 보여온 반언론적 행태는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최근에도 채널A 등 일부 종편은 안철수 의원과 야당을 근거 없이 비판하는 극심한 편파보도를 쏟아냈다. 종편을 둘러싼 상황이 이러한데도 방통위가 종편 재승인을 강행한다면 선동적 언어로 여론몰이를 하는 막말·편파 방송을 계속 허용하겠다는 뜻으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다. 판사 출신 방통위원장 내정에 이어 방통위의 존재를 부정하는 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설] 한-미-일 정상회담과 한국 외교

● 칼럼 2014. 3. 23. 15:38 Posted by SisaHan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4일 참의원에서 역사인식과 관련해,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밝혔다. 또 일본군 군대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직간접적인 관여를 인정한 고노 담화를 수정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특히,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필설로 다 하기 어려운 고통을 당한 분들을 생각하면 매우 마음이 아프다. 이 점에 대한 생각은 나도 역대 총리와 다르지 않다”고 언급했다. 그동안 역사 수정주의 입장에서 이전에 이뤄진 일본의 각종 과거사 반성 담화 등을 부정하는 언행을 해온 점에서 보면, 커다란 표변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를 받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중국의 견제와 북핵 문제에 대한 효과적 대응을 위해 한-일 관계의 개선을 주문해온 미국 정부도 아베 총리의 발언을 “긍정적 진전으로 생각한다”면서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로써 24~25일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핵안전보장 정상회의에서 일본 정부가 제안한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그러나 한·일 두 나라가 현안에 대해 주체적으로 문제를 풀지 못하고, 미국의 압박에 억지로 협력 모양새를 취하는 듯한 모습은 개운하지 않다. 양국 모두 4월 중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순방을 앞두고 뭔가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현안을 미봉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일본이 고노 담화를 수정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담화의 수정 의지를 담은 담화 검증 작업은 계속하겠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나, 우리나라도 행동이 따르지 않은 말에 짜고 치듯이 즉각 환영을 표시한 것에서 이런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한-미-일 정상회담이 이뤄진다고 해도 한-일 간 역사인식의 골을 쉽게 매울 수 없다. 우리 정부는 3자 회담에서 역사 인식 문제를 완전히 해소하겠다는 성급한 생각을 할 필요도 없다. 역사 인식 이외의 안보·경제 현안 등에 대해선 협의하는 자세를 취하되 역사 인식 문제에 대해서는 양자 차원에서 원칙을 고수하며 집요하게 해결해 나가겠다는 결의를 보이는 게 바람직하다.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북한과 중국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칫 3국 간 동맹 강화를 통한 중국과 북한 압박이라는 신호를 줄 수 있다. 지역 평화와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의 협력이 절대 필요한 점을 고려하면, 한-미-일 정상회담을 계기 삼아 우리 정부가 나서 한-중-일 정상회담을 추동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래야 우리가 주도하는 한반도 외교를 할 수 있다.


[칼럼] 대안은 ‘브로큰 잉글리시’

● 칼럼 2014. 3. 23. 15:37 Posted by SisaHan
영어 때문에 마음고생 했던 이야기를 하라고 하면 1박2일 동안 얘기할 자신 있다. 나만 그렇지 않을 거다. 대부분 한국인들에게 영어는 ‘업’이다.
그 똑똑하다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도 마찬가지다. 그는 국회 17대 때 초선 의원으로 정무위원회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조차 사석에선 “노선은 달라도 정말 능력 있다”며 심 의원을 칭찬했다. 그러나 그도 상임위 동료 의원들과 외국에 갔다가 마음 상한 적 있다. 대학 졸업 뒤 바로 노동운동을 했던 그는 영어로는 도저히 유학파 한나라당 의원들을 따라갈 수 없었다. 심 의원의 보좌관은 “우리 의원, 그때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영어 피커폰’ 신청했었어”라고 귀띔했다.
 
영어는 사람 기죽이는 데 한방이다. 올해 초 포스코 회장을 뽑을 때도 영어가 후보들의 당락을 갈랐다고 한다. 면접 때 한 외국인 사외이사가 갑자기 “포스코는 글로벌 기업이니 통역 없이 영어로 면접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영어권에서 학위를 딴 후보는 막힘 없이 술술 답변한 반면, 국내파였던 다른 후보는 급당황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영어 못하면 서럽다. 지난 8일 실종된 말레이시아 비행기엔 전체 탑승자 239명 중 중국인이 153명이었다. 중국 정부는 발을 동동 구르는 탑승자 가족들을 말레이시아로 데려가 수색 현장을 지켜보도록 하려고 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우리 대부분은 영어를 못한다. 가봤자 중국에서 수사 상황을 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며 그냥 중국에서 애태우고 있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소치 겨울올림픽을 현장 취재하기로 돼 있던 <한겨레> 스포츠부의 한 기자는 몇 달 전부터 아침마다 영어학원에 다녔다. 지난해 국제적십자사의 구호 활동을 취재하러 아프가니스탄에 갈 예정이었던 한 후배도 캐나다 원어민과 매주 두 차례씩 일대일 회화를 했다. 결국 아프간 출장이 무산되자, 그는 “그래도 영어는 남겠죠”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과연 우리는 정녕 영어의 ‘업’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걸까? 이성훈 한국인권재단 상임이사에게 물어봤다. 이 이사는 1988년 홍콩에서 ‘아시아가톨릭학생운동’(IMCS) 사무국장을 지낸 이후로 타이와 스위스 제네바 등 외국에서 주로 활동해왔다. 이번달부터는 국제시민운동을 희망하는 젊은이들을 위해 ‘평화·인권·개발(PHD) 글로컬 리더십 학교’를 열어 영어로 강의하고 있다. 그가 성공적으로 시민운동을 해온 데는 영어 실력이 많이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를 아는 사람들 모두 그가 영어를 잘한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그가 영어로 말하는 장면을 목격한 한 국제엔지오 활동가는 냉정하게 말했다. “정말 잘하지. 그런데 발음은 꽝이야. 신기한 건 발음이 그런데도 외국인들이 다 알아듣는다는 거야.”
이젠 영미권의 영어 인구보다 개발도상국에서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역전 상황도 벌어진다. 요즘 미국 대학의 이공계 분야에서 인도계 교수가 많이 늘자, 영어가 모국어인 학생들이 인도 교수의 발음에 익숙해지기 위해 일부러 인도 출신 학생들과 친하게 지내려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이성훈 이사는 말한다. “세상엔 ‘인도영어’, ‘타이영어’, ‘방글라데시영어’ 등 갖가지 영어가 많다. 주눅들지 말자. 어차피 영미권에서 커오지 않았다면 콩글리시 하면 된다. 콩글리시도 어려우면 그냥 ‘브로큰 잉글리시’ 하자. 발음, 문법, 정확하지 않아도 다 알아듣는다.”

< 이유주현 - 한겨레신문 국제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