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문제는 길환영이 아니다

● 칼럼 2014. 6. 2. 16:53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공영방송을 장악하여 입맛대로 주무르려는 청와대와 권력의 꼭두각시 노릇을 자청하는 하수인들에 대한 분노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한국방송>(KBS)에선 기자에 이어 피디들까지 사장 퇴진을 외치고 나섰고, 정부의 언론통제에 대한 학계, 언론계의 비판성명이 잇따르고 있다.
 
공영방송을 장악하려는 정권의 시도는 알다시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명박 정권 때 부활한 언론통제의 악습은 김인규(KBS)-김재철(MBC)-길환영(KBS) 등 ‘걸출한’ 어용사장의 계보를 통해 이어졌고, 그 결과 2014년 한국의 언론자유 순위는 세계 68위로 곤두박질쳤다.
박근혜 정부의 시대착오적 언론통제는 마땅히 저지돼야 한다. 그러나 이는 공영방송 정상화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사실도 유념해야 한다. 문제는 길환영 사장의 퇴진을 넘어, 이명박 정부가 짓밟고 박근혜 정권이 숨통을 끊어놓은 공영방송의 공론장을 되살리는 것이다. 공영방송은 이제 이름에 걸맞은 공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환골탈태해야 한다.
사실 정권의 방송 장악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보수 기득권 세력이 수면 아래에서 줄기차게 추진해온 우민화 책략이다. 민영방송은 말할 것도 없고, 공영방송마저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일에 용의주도하게 동원되고 있다.
 
공영방송의 현실을 보라. 그곳은 개그맨, 연예인, 스포츠맨의 영토이지, 다른 나라, 예컨대 독일의 경우처럼, 예술가, 학자, 정치인의 영역이 아니다. 
그곳은 연예인의 사생활 잡담, 개그맨의 객쩍은 수다, 막장 드라마의 악취, 휴먼다큐의 값싼 감상주의, 건강에 대한 끝없는 협박, 맛있는 곳과 놀러 갈 곳에 대한 유혹으로 가득하지만, 어디에서도 우리 사회가 다다른 참담한 현실과 국가가 처한 냉엄한 상황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은 찾아볼 수 없다. 
그곳은 정치적인 것, 사회적인 것이 완전히 소거된 탈역사의 공간이다. 세계와 사회를 인식하고, 역사와 시대를 성찰하는 지성의 공간은 오늘날 한국 텔레비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공영방송이 이처럼 사회적 비참은 철저히 외면한 채 거짓 행복의 가상을 매일매일 안방에 실어 나를 때, 그것이 대중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정치적 사안에 대한 왜곡보도보다 훨씬 더 치명적이다. 보도 조작은 단면적이고 주기적임에 반해, 우민화는 전면적이고 일상적이며, 왜곡보도는 목적의식적으로 이루어짐에 반해, 우민화는 부지불식간에 무의식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이 수행하는 이런 전면적 우민화는 본능적으로 이성적 토론을 기피하는 -“말 많으면 공산당”이라고 하지 않는가- 한국 보수의 뿌리 깊은 지적 열등감과 반지성주의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을 무지상태에 묶어두어야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묘한 패배주의가 보수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권력만 잡으면 빗장을 걸어 공론장을 폐쇄시킨다. 왜 그들은 열린 공론장을 두려워하는가? 왜 그들은 자유로운 공론장에서 갈등과 대립을 넘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가?
방송의 민주화를 쟁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방송의 우민화를 저지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정권의 방송 장악은 공정한 보도를 망치지만, 방송의 총체적 오락화는 대중의 의식을 잠재운다.
 
우리는 편안한 자세로 소파에 기댄 채 오락물의 부드러운 유혹에 굴복하여 날마다 탈정치화된다. 그리하여 사회적 비참은 도처에서 창궐하는데도, 사회변혁을 위한 물적 제도적 조건은 이미 갖춰졌음에도, 사회변혁의 실천은 부재한 부조리한 현실이 지속되는 것이다.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분출되지 못하는 것이다.
< 김누리 중앙대 독문과 교수 >


[1500자 칼럼] 딸이 심은 라일락

● 칼럼 2014. 5. 20. 16:48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새벽녘 뒤뜰을 내다보며 화들짝 놀랐다. 마치 요술담요를 타고 얼음왕국에 도착한 듯 온 세상이 유리알처럼 빛나고 있었다. 나무와 잔디, 멀리 있는 숲과 도로, 그리고 전신줄까지도 온통 얼음으로 덮여있는 게 아닌가. 밤새 내린 비가 기온이 내려가면서 얼음비(freezing rain)로 변하며 불과 하루 만에 딴 세상을 만든 것이다. 넘실대는 파도 위로 반사된 한 여름의 불타는 햇살보다도 한층 영롱하고 신비한 정경이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도 잠깐, 뒤늦게 그 얼음 밑에 깔려 신음하고 있는 생물이 사방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나 사력을 다해 버둥댔는지 수 십 년 동안 지탱해온 나무들의 생가지들이 허연 살을 내놓은 채 부러지고, 더러는 뿌리 채 뽑혀 나와 그 모습이 참담했다. 얼음왕국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대가치고는 무자비하였다.
 
십여 년 전 퀘벡과 온타리오 킹스톤 지역이 얼음비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던 적이 떠오른다. 당시 대학생이던 딸이 일주일이 넘도록 도시 전체에 전기도 물도 공급이 끊긴 암흑상태라 아무도 오가지도 못하고 있었을 때 마치 엔테베 작전에서나 볼 수 있는 방법으로 킹스톤을 탈출했었다. 개인 헬리콥터를 가진 친구 아버지의 도움으로 그 지역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도 토론토를 포함하여 온타리오 동남부 지역을 강타한 얼음비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보낼 크리스마스 연휴를 암흑 속에서 불편과 추위와 싸우며 지내야 했었다. 현대인이 누리고 있는 물질문명의 반작용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겪어본 시간이다.
 
그날 우리도 작은 피해를 입었다. 이 집으로 이사하면서 딸과 남편은 두 그루의 라일락을 뒤뜰에 심었었다. 30년 전에 심은 그 흰빛, 자줏빛 라일락은 울타리가 없는 우리 집 뒷마당의 경계선으로 수문장 역할을 하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를 보호해 줄 듯이 뒤에서 떡 버티고 서있다가 매년 5월이 오면 겨우내 무디어진 우리의 눈과 마음을 윤기 나게 만들었다. 라일락이 한창 꽃을 피울 땐 향긋하고 은은한 향내로, 소담스러운 꽃송이로, 집 주위의 품격도 높여주었다. 몇 송이 잘라 꽃병에 꽂으면 언제 들어갔는지 모를 수많은 개미떼가 그 속에서 쏟아져 나와 멀리서 명화를 감상하듯 하였다. 매년 5월이면 잡초 하나 피어나지 않은 푸른 잔디 위에 우뚝 선채 여왕다운 위용을 한껏 품어내는 자줏빛, 흰빛 라일락을 바라보노라면 옛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나며 결혼한 딸의 어릴 적 추억을 불러왔던 것이다.
 
단 하루 밤사이 내 딸 같이 정겨운 그 자줏빛 라일락이 네 동강이가 났다. 비록 비스듬히 기울어지긴 했어도 네 가지 중 성한 가지 하나를 살릴 수 있어 천만다행이긴 하였다. 그런데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모범수(樹)로 올곧게 잘 자란 자줏빛 라일락은 무참하게 부러진 데 비해 심을 때부터 불량하여 삐딱하게 기울어졌던 흰빛 라일락은 잔가지 몇 개만 내버린 채 멀쩡한 게 아닌가. 마치 삶의 길목에서 인생의 거센 비바람을 헤치며 자란 사람의 강인함을 흰빛 라일락에서 보는 듯 했고, 아무 어려움 없이 평탄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 갑자기 닥친 난관 앞에서 무참하게 쓰러진 연약함을 자줏빛 라일락에서 보는 듯 했으니 말이다.
라일락은 ‘젊은 날의 추억’ ‘첫 사랑의 감동’ ‘아름다운 맹세’라는 감상적인 꽃말을 지녀 젊은 연인들에게 사랑을 속삭여주고, 시정(詩情)을 일으키며, 꿈과 희망을 안겨주는 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나에겐 딸이 심은 라일락인 만큼 세월이 흐를수록 연정(戀情)보다는 자식을 향한 모정이 더 절실하게 느껴왔다. 특히 타국에 살고 있는 딸과의 아련한 추억을 되살려주는 라일락 향기와 빛난 자태에 취하여 눈시울이 젖는 그리움에 빠져들곤 하였다.
 
그런데 지난 3월, 십 년을 기다려온 외손녀를 얻었다. 기다림에 지쳐 희망을 접어가고 있었을 때 귀엽고 건강한 외손녀를 순산하여 놀라운 희열을 누릴 수 있었다. 나와 딸과 사랑스런 외손녀로 3세대간 이어진 생명의 신비감은 이제 겨우 가냘픈 목숨줄 붙잡고 여린 꽃망울을 내밀기 시작한 자줏빛 라일락에서도 희망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몸체 대부분이 잘려나간 가련한 자줏빛 라일락, 그것이 살붙이를 떼어낸 고통을 딛고 어떤 꽃을 피어낼지 사뭇 기다려진다. 

< 원옥재 - 에세이문학으로 등단 (2000),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수필집「낯선 땅에 꿈을 세우며」여성동인집「세여자」 외 2권

 

[한마당] 세월호와 평균인간의 가슴

● 칼럼 2014. 5. 20. 16:45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언론사 기자들의 취재대상 기관 가운데 청와대는 ‘선망받는’ 출입처다.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기관인데다, 취재대상인 고위인사들과 접촉 기회가 많고 그만큼 고급정보도 다양하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각 신문사나 방송국 정치부에서 경력과 경험이 오랜 유능한 기자이거나 회사측이 각별히 챙기는 기자, 혹은 대통령이나 청와대 고위인사와 연줄이 있는 중견기자를 골라 출입기자로 보내는 게 관례였다. ‘1호 기자’라는 지칭도 그런 연유다. 
청와대 의중과 정보가 정국과 정책을 좌우하는 풍향계가 되는 것은 지금도 여전하지만, 일부 언론 대기업은 과거 독재정권 시절 청와대 고급정보를 이용하거나 고위 인사와의 유착으로 이권을 챙기며 사세를 불리기도 했으니, 출입기자의 역할과 중요성은 단지 취재기자에 그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청와대 기자는 기사자료를 모으고 취재는 하되 기사 쓰는 일 보다는 회사에 정보보고를 하고 연락관 역할을 하는, 흡사 ‘정보원’ 혹은 ‘조정관’ 같은 존재일 수 밖에. 출입기자들 가운데 나중 회사중역이 나오고 때론 정치인도 배출하는 구조가 그런 데서 비롯됐던 것이다.
 
전두환 정권이 막 끝난 무렵, 후배와 동료기자들의 선망 속에 청와대 출입기자가 되어 처음 발을 디딘 청와대는 기대와는 달리 삭막하고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얼마 후 번듯한 춘추관을 지어 시설이 넓고 안락해졌지만, 당시는 비좁은 공간에 몇몇 되지도 않은 기자들이 모여앉아 한담을 나누다가 대변인실에서 브리핑 자료를 챙기는 데 그치는 날이 빈번했다. 기사 쓸 거리도 많지 않은데다 늘 보안을 강조하는 삼엄한 분위기에 모두 근엄한 모습들이어서 다른 출입처 같은 정감도 느낄 수가 없었다. 좀 익숙해지면서 나름 요령이 생기기는 했지만, 취재거리가 있으면 몇몇 비서관에게 전화를 걸거나 면회실을 거쳐야만 하는 비서동으로 건너가서 실장이나 비서관들의 바쁜 시간을 빼앗아 얘기를 나눠야만 했다. 국회와 정당을 출입할 때의 자유분방하던 취재활동이나 법원 검찰청을 드나들 때 사건기자가 느끼는 긴박과 기민, 때로는 통괘 등의 묘미는 도통 찾아 볼 수가 없는 무미건조였다. 그럼에도 늘 만나는 대상이 최고의 권부에 앉아있는 사람들이요, 오가는 이야기가 국정을 망라한 고급스런 내용들이니, 신문사에서는 청와대 소식을 듣고싶어 했고, 주위에서들 공연히 우대를 해주는 바람에 ‘기사로 승부하는 명기자’라기 보다 어줍잖은 ‘출입처 자부’에 안주하는 ‘고위급기자’가 되어가기 쉬웠던 기억이 새롭다. 
 
요즘에야 백명을 헤아린다는 청와대 기자실 분위기가 달라졌겠거니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엊그제 청와대 기자단이 세월호 참사 와중의 이른바 ‘황제라면’ 교육장관 기사 보도를 이유로 몇몇 신문사 기자들을 출입정지 시켰다니, 세월은 가도 여전히 ‘청와대 공무원급’ 기자들이 득세하는 춘추관(기자실) 분위기가 읽혀진다.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 전제)를 깬 괘씸죄로 청와대가 제재를 가했다 해도 어불성설일 텐데, 기자들이 기자를, 그것도 무능으로 질타를 받는 정부고위직들의 경망스런 언행을 보도한 것을 ‘왜 했느냐’고 동료 정죄한 것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방송사의 보도국장이 억울하게 생수장 당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교통사고에 비유했다 해서 직을 떠났다. 그런데 ‘공영’이라는 또 다른 방송의 전국부장이 유족들을 비판 한데 이어 보도국장은 아예 ‘깡패’라고 까지 희생자 유족을 모독했다는 보도다. 비판받는 정부와 대통령을 보호하는 것이 언론의 책무는 아니다. 오히려 약자편에서 권력을 감시하는 것이 본령이다. 무엇보다 언론인도 직업인이기에 앞서 가슴 따뜻한 인간이 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취재와 기사작성에 아무리 탁월한 솜씨를 가졌다 해도, 감동과 눈물이 없다면 한낱 기계적인 작문가 밖에 더 되겠는가. 언론인의 덕목으로 철학과 품성…인간 됨됨이가 중요함은 고위지도자들 못지않은 공공적 영향력 때문이기도 하다.
 
엄마 품을 벗어난 병아리 한 마리, 어미를 잃은 강아지 한 마리만 죽어도 가슴 아파하는 게 정상적인 사람의 감정이다. 하물며 3백명이 넘는 어린 학생과 희생자들이 살 기회를 외면당한 채 귀한 생명을 죽임 당했는데 그 부모와 가족의 심정, 온 국민이 슬퍼하는 상황을 이해 못한다면 평균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시간이 좀 지나면서 다시 고개드는 ‘정치선동’이니 ‘깡패’니 ‘종북’이니 매도하는 정신상태들이 기이할 뿐이다. 
얼마나 일처리가 무능하고, 제대로 알지도 알리지도 않고, 조작만 일삼는데 울화가 치밀었으면, 4천여명이 거액을 모아 남의 나라 신문에 대문짝만한 광고로 하소연을 했을까. 국제적 웃음거리가 된 것보다, 웃겨놓고 웃었다고 화내는 게 진짜 어리석고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 김종천 편집인 >



[사설] ‘침몰한 공영방송’ 구출 시급하다

● 칼럼 2014. 5. 20. 16:44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김시곤 전 <한국방송>(KBS) 보도국장의 사퇴 후폭풍이 심상찮다. 공영방송 전반의 정상화 운동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8일 세월호 유족들이 희생자 영정을 들고 KBS을 방문한 다음날 김 전 보도국장은 길환영 KBS 사장이 “권력의 눈치만 보며 사사건건 보도본부의 독립성을 침해해 왔다”며 즉각 사퇴할 것을 요구했다. 길 사장은 12일 백운기 시사제작국장을 새 보도국장에 임명했으나, KBS 기자협회 소속 기자들은 길 사장과 임창건 보도본부장이 퇴진하지 않으면 제작거부에 들어가겠다고 결의했다. <문화방송>(MBC)에서도 이날 차장급 이하 기자 120여명이 집단으로 ‘세월호 보도 사죄문’을 발표했고, 전국 18개 지역 계열사 기자들도 본사 기자들의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KBC와 MBC 에서 한꺼번에 아래로부터 쇄신 운동이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KBS는 공영방송으로서 제 모습을 잃고 정권 보위 방송으로 전락했다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 세월호 참사 보도 과정에서 참담하게 망가진 그 속살이 낱낱이 드러났을 뿐이다. KBS보도국장이 다른 방송(<JTBC>)와 인터뷰하면서 자사 사장을 ‘공영방송 사장을 해서는 안 될 인물’로 지탄한 것만 보아도 KBS의 병증이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런 문제는 MBC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MBC의 김장겸 보도국장은 세월호 유족을 “깡패”라고 부르며 비하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다른 고위 간부는 세월호 유족들에 대해 ‘그런 ×들은 (조문)해줄 필요 없어’라고 막말을 했다고 MBC 노조가 12일 공개했다. 이런 몰상식한 행태들이 결국 공영방송을 정권에 빌붙은 ‘종박방송’, ‘청영방송’이라는 굴욕적인 말을 듣는 지경으로까지 몰아간 것이다.
 
사실 공영방송이 이런 참담한 상황까지 몰락하지 않고 정상화할 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2년 MBC 기자들이 170일 넘도록 파업을 벌인 것은 공정방송의 위상을 회복하겠다는 절치부심의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하의 김재철 사장 체제는 이들을 철저히 탄압하고, 박근혜 정부도 해직기자들을 복직시키는 정상화 조처를 팽개쳤다. 김재철 사장의 후예들이 사장 자리를 꿰차고 반언론적 행태를 이어갔다. 이런 사정은 KBS라고 결코 다르지 않다.
지금 KBS와 MBC 기자들의 집단 반발은 침몰한 공영방송을 구출하겠다는 몸부림이다. 이 몸부림이 또다시 무위로 끝난다면 공영방송은 영원히 국민의 버림을 받고 말 것이다. 기자들의 움직임이 어느 때보다 주목받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