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땅 코리아’ 란 말을 자주 듣게 되는 요즘입니다. 오늘도 건장한 백인 청년이 읽다가 밀어둔 책 제목을 읽어내기에 한글을 익힌 연유를 물었더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국에서 찾기 위함이라며 환한 웃음을 보이더군요. 대형사고가 줄줄이 터지던 몇 년 전에 비하면 참으로 듣기 좋은 말이었지만 왠지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아침마다 검색하는 한국 뉴스엔 청년 실업률은 회복기세가 안보이며 회생 불능의 개인 파산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가고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자살률 1위의 불명예는 수년간 깨어지지 않고 있다는 등 어두운 소식 일색이거든요. 거기다 지인들이나 친지들이 보내오는 소식도 별 다르지 않는데 장밋빛 꿈을 안은 사람들이 코리아를 외치니 은근히 걱정스럽습니다.
 
요즘 또 하나의 추세는 세계 각국에 거주하는 해외동포들의 역이민 행렬이라지요. 같은 이민자로서, 큰 꿈을 품고 나왔다가 다시 돌아 갈 수밖에 없는 그들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론 마음이 무겁습니다. 해외에 사는 우리는 음으로 양으로 조국의 한 축이 아닌가요. 그런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세계 각처에서 줄줄이 빠져나가면 축은 흔들릴 테고 나라 안은 인구 과밀로 더 어려워지겠지요. 혹시 너무 거국적이라 생각 하시나요? 
사실은 ‘우리처럼 작은 나라가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선 이민 권장 뿐이라.’ 던 어느 전 대통령의 말씀을 가끔 상기하면 엄청난 애국자가 된 듯 기운이 나거든요. 역이민의 기로에 선 그대에게 묵직한 임무 하나 지워드리면 혹시 발걸음 돌리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장황하게 늘어놓았습니다만 역부족 인가요? 
그럼 저의 가족 이민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일명 ‘김밥과 뚝심’이란 중대 사건 하나를 소개 해 드릴까 합니다. 이 사건은 초짜 이민자 앞에 놓여 진 수많은 난제들을 해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기에 감히 강추하는 맘으로 그려봅니다.
 
이십여 년 전 이민 초기의 일입니다. 초등학교 3, 5학년인 두 아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저희 부부는 늘 좌불안석이었습니다. 막 사춘기에 들어서는 예민한 시기에, 본토 발음 운운하며 알파벳도 가르치지 않았으니 벙어리 신세나 다름없는 아이들 걱정 때문이었지요. 다행히 운동을 골고루 가르친 덕택에 그나마 기죽지 않고 버텨낼 수 있었는데 문제는 점심 도시락이었어요. 아이들이 그토록 좋아하던 샌드위치도 일주일 꼬박 먹기는 무리였던지 번번이 그대로 가져오기 일쑤였지요. 하여 하루는 김밥을 싸서 보냈습니다. 재료 중에 단무지는 당연히 빼고 김 냄새도 랩으로 단단히 차단하였지요.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해서 보냈는데 그만 사단이 난겁니다. 급우들이 이상한 냄새난다며 아이의 배낭을 교실 뒤 구석에다 처박아 놓았다더군요. 말 못하는 아이들이 하루 종일 받았을 마음의 상처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졌지만 다음날은 두통씩 싸서 보냈습니다. 전날 치룬 곤욕 땜에 한사코 머리를 흔드는 아이들은 선생님 갖다드리란 말에 겨우 승낙을 했구요. 하루가 한 달 같은 심정으로 기다리는 어미에게 아이들이 물어온 희소식은 이랬습니다.
 
땡큐를 연발하며 김밥을 받아든 선생님은 먼저 학생들에게 도시락을 보여주며 극찬한 다음 가위로 반씩 잘라 골고루 나누어 주었더니 모두 맛있다며 매일 가지고 오랬다는군요. 한 번 속상하고 말았으면 만회하기 힘들었을 텐데 뚝심으로 밀어 붙여 역전승을 거둔 셈입니다. 물론 이 뚝심은 고비마다 튀어나와 정착에 좋은 밑거름이 되었답니다. 괜찮다구요? 
 
 ‘집을 살 때 집값이 만 냥이면 이웃은 구만 냥’ 이란 고사가 있습니다. 제발 우리의 소중한 이웃을 잃는 일이 없었으면 하고 간절히 소망합니다.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등단 >


최근 미국 수도 워싱턴에 일단의 한국 국회의원들이 방문했다. 지난주에만 3개 팀, 17명에 이르렀다. 이들 중 일부는 워싱턴 인근에 있는 버지니아주의 재미동포들을 찾았다. 고국의 의원들이 동포들을 찾아 담소를 나누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다. 동포들에게 고국의 소식을 직접 전하고 또 이들의 타향살이의 고충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런데 버지니아 지역 동포들로부터 다른 얘기를 듣게 됐다. 의원들이 동포간담회를 여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고 한다. 한 한인회 단체장은 “이번에 의원들이 앞다퉈 한인들을 만나게 해 달라고 한 것으로 안다”며 “아마도 버지니아주 한인들의 ‘동해 병기’ 운동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지역 동포들은 자녀들이 학교에서 ‘동해’를 ‘일본해’로 배우는 것에 분노해 주의회 의원들을 상대로 설득 작업을 폈고 결국 주의회 통과라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현재 주지사의 서명만 남겨놓은 상태다.
 
이 지역 동포 사회에선 좋지 않은 말들도 들린다. 어느 의원이 버지니아주 의회에서 연설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는 등 ‘동해 병기’ 운동을 이용해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고 했다는 것이다. 더 심한 요구가 있었다는 말도 있으나 사실 확인은 쉽지 않았다. 이런 내용이 지역 동포 언론에 실리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 탓인지, 13일 열린 동포 간담회엔 애초 10여명의 의원이 참석하겠다고 했다가 참석 의원이 5명으로 줄어들었다.
미국에선 요즘 위안부 문제에 대한 미국 사회의 인식을 제고하고 교과서에 동해를 병기하자는 재미동포들의 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그 성과도 차근차근 쌓여가고 있다.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위안부 결의안과 미국 정부가 이 문제 해결에 나서도록 촉구하는 위안부 법안이 연방 하원을 통과했다. 또 동해 병기 법안은 한 지역 의회에서 통과한 것이긴 하지만 그 상징성은 매우 크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 성과들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동포들은 이 문제들에 철저하게 보편적 인권과 교육 차원에서 접근해왔다. 이를 한-일 간의 외교 이슈로 접근하면 미국 정치권이 끼어드는 걸 기피하기 때문이다. 두 동맹국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편드는 것으로 비칠 수 있는 탓이다. 위안부 결의안과 법안을 주도한 마이크 혼다 의원이 “이 문제는 한국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인권에 관한 것”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동해 병기 문제에서도 동포들은 버지니아 학생들이 앞으로 한국과 비즈니스를 할 때 한-일 간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면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는 논리로 접근했다.
한국 정치인들이 동포들의 애국적 행동들에 노고를 치하하는 것은 장려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자 돌출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동해 병기 운동에선 이미 주미 일본대사관 쪽의 강력한 로비로 버지니아 주지사가 애초 이 법안을 지지했다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본 쪽이 한-일 간의 외교 이슈로 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치인들의 돌출적 행동은 상황을 악화시키는 빌미가 될 수 있다.
 
위안부 문제와 동해 병기 운동을 주도하는 동포 단체들은 매우 열악한 조건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상근자는 불과 2~3명밖에 안 되고, 주로 동포들의 소액 기부로 활동비를 마련하고 있다. 한국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려고 힘쓰기보다는 이들에게 따뜻한 격려의 말을 해주고, 이들의 고충을 덜어줄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무엇보다 요구된다.
< 박현 - 한겨레신문 워싱턴 특파원 >


서해 바다를 지키던 해군 장병 46명의 목숨을 앗아간 천안함 사건이 일어난 지 26일로 네 돌이 된다.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 사건의 여파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좋든 싫든 현실적인 판단을 내리고 이 사건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이 사건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북한이 잘못을 인정하고 ‘우리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조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북쪽 국방위원회가 1월 군사적 적대행위 전면 중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중대제안을 내놓은 직후 ‘진정한 남북관계 발전’의 전제로 이 사건 해결과 핵 포기를 위한 실천적 조처를 제시한 바 있다. 이 가운데 핵 문제는 여러 나라가 관련된 사안이어서 당장 남북 관계와는 연관성이 약하다. 결국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되는 등 남북 관계가 풀리는 듯하면서도 제대로 진전되지 않는 데는 천안함 사건 처리 문제가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정부가 천안함 사건 두 달 뒤 남북 사이의 인적·물적 교류를 전면 중단한 5·24 조치의 완화·해제 여부가 초점이 되고 있다.
 
천안함 사건은 완전한 해결이 쉽지 않은 사안이다. 북쪽이 자신의 소행이 아니라고 한결같이 주장하고 있어 이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사과를 받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당시 정부는 외국 인사까지 참여시켜 조사를 벌여 천안함이 북쪽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다는 결론을 내렸으나, 국제사회를 완벽하게 납득시키지는 못했다. 천안함 사건의 원인을 둘러싼 논란이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으며, 정부 발표에 의문을 갖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기존 입장만을 고집하는 것은 남북 관계 개선을 포기하자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부는 지금 나진(북한 함경북도)~하산(러시아 연해주) 물류 사업에 대한 우리나라 대기업의 참여 등을 추진하면서 ‘5·24 조치의 예외’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이런 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하나의 해법은 북쪽이 과거 남북 사이에 있었던 여러 사건에 대해 포괄적으로 사과 또는 유감 표명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연평도 포격과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등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남북은 이명박 정부 말기의 비밀접촉에서 이런 협의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완전한 진실은 언젠가 드러날 것이다. 남북 사이에 미해결로 남은 사건이 적지 않지만 이것들이 남북 관계의 큰 흐름을 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5·24 조치 완화·해제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성립할 수 있는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성범죄에 대한 군의 인식과 대응이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부하 여성장교를 성추행해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혐의를 받는 노아무개 소령 사건에서 군 관계자들이 보인 태도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무엇보다 가해자 편에 서서 성범죄자를 감싸려 드는 태도가 문제다. 군 검찰과 군 법원을 관할하는 육군 법무실장은 24일 ‘노 소령이 피해 여성장교에게 성관계를 요구했다는 보도는 소설’이라고 주장했다. 노 소령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는 비판에 대해 해명하면서 한 말이다. 그는 피해 여성장교의 유서나 일기를 봐도 성관계 요구는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피해 여성장교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석 달 전인 2013년 7월12일의 업무용 컴퓨터 메모와 일기를 보면, 노 소령이 ‘성관계를 하고 싶다’는 암시를 반복적으로 전달하고 피해자가 그런 말에 치욕감을 느낀 모습이 확인된다. 피해 여성장교의 친구도 재판에서 “노 소령이 성관계를 요구했다”는 피해자의 하소연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군 당국은 엄연한 증거도 외면한 채 가해자 편만 든 것이다. 성범죄는 고통을 받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엄격한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 옳다. 그런 원칙과는 정반대였으니 군 당국 스스로 성범죄를 가볍게 여긴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군 간부가 가해자에 대한 선처를 유족들에게 종용하기도 했다. 노 소령의 소속 부대 부사단장은 지난해 10월 피해 여성장교의 유족들에게 ‘여성장교의 영혼이 노 소령을 풀어주라고 했다’는 황당한 말을 했다. 고소를 취하하라는 뜻은 아니었다지만, 성범죄자를 용서해달라는 것 외에 달리 해석할 도리가 없다. 군의 조직문화가 성추행이나 성폭력에 온정적인 탓에 이런 태도가 빚어졌다면 더 큰 문제다. 성폭력에 대한 군의 인권 감수성이 이 정도라면 군내 성범죄를 막기는 어렵다. 실제로 노 소령은 피해 여성장교 말고도 여러 여군 장교와 부사관들에게 반복적으로 성적 모욕을 가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아무 제지나 죄의식 없이 그런 행동을 계속하다 보니 이번과 같은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겠다.
군은 이번 일을 계기로 성범죄에 대한 안이한 인식을 일신해야 한다. 시늉뿐인 성범죄 대책도 정비해야 한다. 군은 문제를 억지로 덮고 축소하려 들 게 아니라, 고장 난 인식과 대책부터 바로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