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4일 전당대회를 열어 홍준표 대표 최고위원을 비롯한 새 지도부를 선출했다. 친박근혜 성향의 유승민 의원이 2위 득표를 하는 등 나머지 최고위원 면면도 많이 바뀌었다. 한나라당이 나름대로 변화를 선택한 결과다. 이제 관심사는 한나라당이 진정성 있는 태도로 개혁과 쇄신의 과제를 실천해 나가느냐이다.
홍 대표는 당선 인사말에서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한나라당에서 비주류 성향의 행보를 해왔다. 지난해 당 서민정책특별위원회를 이끌 때는 꽤 급격한 복지정책 도입을 주장하다가 포퓰리즘 논란을 빚기도 했다. 사회·경제정책 공약에서 과감하게 ‘진보 선회’를 한 유승민 의원이 2위를 차지한 점도 주목된다. 반면 친이 성향 옛 주류는 완전히 몰락했다. 원희룡 의원을 내세워 표몰이에 나섰으나 4위에 그쳤다.

이런 권력지형의 변화는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무엇보다 황우여 임시 지도부를 중심으로 추진해온 기존 정책 재평가 작업이 좀더 힘을 얻을 가능성이 커졌다. 아무쪼록 정책 쇄신 작업을 철저하게 펼쳐, 한나라당이 민심의 요구에 부응해 거듭 태어난다는 평가를 받게 되길 바란다. 특히 임시 지도부 시절의 작업 가운데 실효성과 실행력에 의문이 들었던 점이 적지 않았음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가령 등록금 대책은 반값 공약에 미흡하기도 하려니와 당정 사이에 재정 대책이 조율되지 않은 점이 의미를 반감시켰다.
새 지도부는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들의 의구심이 여전하다는 점도 알아두어야 한다. 무엇보다 전당대회 과정에서 과거의 정책적 오류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이뤄지지 않은 탓이 크다. 4대강 사업이 대표적이다. 완공 단계에 이르면서 부작용이 점차 현실화하고 있는데도 그런 문제를 통절하게 성찰한 후보는 없었다. 홍 대표는 친환경 무상급식을 중단시키자는 주민투표를 강력하게 옹호하기도 했다. 전당대회를 계기로 개혁과 쇄신에 대한 기대감이 나오는 동시에, 새 지도부가 도대체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까닭이다.

한나라당은 전당대회를 계기로 일단 변화의 신호탄은 쏘아 올렸다. 혹시라도 일시적인 이미지 정치에 기댈 생각을 버리고 진정성을 갖고 정책 쇄신에 나서야 할 때다. 한나라당의 새 지도부가 국민을 위한 개혁과 쇄신을 제대로 실천해 나갈지 지켜볼 것이다.

유럽연합이 1000만유로 규모의 긴급 구호식량을 북한에 지원한다고 엊그제 발표했다. 1차분이 다음달 북한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한다. 대북 식량지원 재개는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뒤 지원 식량의 군사 전용 여부를 둘러싼 갈등으로 중단된 지 3년 만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올해 들어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여온 국제사회가 본격적인 대북 식량지원에 나서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국제사회의 지원이 본격화할 경우, 대북 교역·교류 전면 중단을 선언한 5.24 조처는 사실상 효력을 잃게 될 것으로 보인다.

유엔이 현지 조사를 토대로 610만명의 북한 주민이 기아상태라며 43만t의 긴급 식량지원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내놓은 게 지난 3월이다. 5월에 러시아가 5만t의 곡물을 북한에 지원하겠다고 했고, 6월 초에는 로버트 킹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가 한국 정부가 반대하더라도 필요하다면 대북 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뒤이어 6월6~17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인도지원사무국의 식량평가단이 북한에 갔다. 평가단에 따르면, 북한의 배급 곡물은 4월 초까지 1인당 하루 400g씩 나오다가 6월엔 150g으로 줄었다고 한다. 밥 1공기쯤의 그 열량은 하루 평균 필요 열량의 5분의 1인 400㎉에 지나지 않는다.
유럽연합은 이번 지원이 5살 이하 어린이, 임신부와 수유중인 산모, 노약자 등 “식량부족으로 죽어가는, 최소한 65만명의 북한 주민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매월 400곳 이상의 배급 현장을 무작위로 방문해 확인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킹 특사도 이런 전용 방지 조처들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따라서 식량부족을 가장한 위장전술, 구호식량의 군사 전용을 우려해온 정부의 지원 거부 논리는 더욱 설득력을 잃게 됐다. 정부는 지난 3월 민간단체의 인도적 지원 재개를 허용했지만 곡물 지원은 여전히 막았고 물자 반출, 방북 신청도 줄줄이 불허했다. 유럽연합 발표 뒤에도 5.24 조처가 여전히 유효하다며 북의 태도 변화 없이 지원은 없다고 거듭 밝혔다. 이런 완강한 태도가 국제사회의 대북 접근도 막아왔다. 이제 그 벽이 무너지고 있는 중이다. 정부도 국제사회의 이런 흐름을 언제까지나 나몰라라 할 수는 없다. 이제라도 스스로 시대착오적인 5.24 조처의 굴레를 풀어버리기 바란다.

석면은 1급 발암물질로 세계 54개국에서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위험물질이다. 이 때문에 석면이 수출될 때 발암성분의 위험성을 수입국가에 알려 주의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문제를 다루는 국제협약이 ‘로테르담 협약’이다. 지난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이 협약의 연례회의에서 백석면과 함께 유해한 세 종류의 농약이 유해물질 목록에 올려질 예정이었다. 수출품의 유해정보를 수출국가가 수입국가에 고지하도록 하는 의무조항이다.
그런데 캐나다 등이 반대하여 석면만 목록에서 빠지게 됐다. 이유는 캐나다가 대규모 석면광산을 갖고 있어 석면을 수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가 수출하는 석면은 전량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로 수출된다. 그런데 캐나다는 자국에서는 석면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 캐나다 노동자와 시민들이 발암물질 사용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 경기도교육청이 전국 6개 시도의 유치원과 초·중·고교 100곳을 뽑아서 학교의 석면 사용 실태를 조사했더니 무려 96개 학교의 천장 텍스와 화장실 칸막이 등에서 석면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런 시설들을 이용하는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발암물질인 석면에 노출될 우려가 제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들 학교에서 사용된 석면의 대부분이 바로 캐나다가 수출한 백석면이다. 정부 통계를 보면 1991년부터 2007년 석면 사용이 금지될 때까지 17년 동안 한국이 캐나다로부터 수입한 백석면이 전체 수입량의 60%인 44만t을 넘는다. 석면에 노출되면 폐암과 중피종암 등 치명적인 암과 각종 폐질환을 일으킨다.
이렇게 석면이 위험한 물질이라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려졌고 1980년대 초 유럽에서부터 사용이 금지되었다. 그런데 캐나다는 자신들은 사용하지도 않는 석면을 대량생산하여 다른 나라에 버젓이 수출하면서 위험한 물질이라는 사실조차 알리지 않고 있다. 이전에도 알리지 않았고 앞으로도 알리지 않겠다는 것이 지난주 로테르담 협약 회의 결과다.
캐나다 정부는 최근 퀘벡의 신규 석면광산을 허가하고 재정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매년 20만t의 엄청난 발암물질이 추가로 생산되어 전량 아시아로 수출될 예정이다. 가난한 아시아 국가들이 값싼 건축자재를 필요로 하는 점을 악용한 캐나다의 공해수출로 수만명의 아시아 사람들이 각종 공해병과 직업병으로 생명을 잃어왔고 또 잃게 된다.

캐나다에서도 이 문제는 뜨거운 사회적 이슈다. 비윤리적인 정부의 태도에 대해 의료 전문가들과 인권 및 환경운동가들이 ‘죽음의 수출을 멈추라’고 거세게 비판하고 있는 가운데 광산업계를 두둔해온 캐나다 노동계도 석면 수출 반대 입장을 표명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에는 한국과 일본의 석면 피해자와 유족으로 구성된 아시아대표단이 캐나다 몬트리올과 퀘벡 그리고 수도인 오타와를 방문했다. 아시아 석면 피해자들의 호소가 언론에 소개되면서 그동안 이 문제를 외면해온 캐나다 시민사회와 의료계가 자성하기 시작했다. 국내외 많은 시민들과 단체들이 석면 생산을 중단하라는 항의서한을 캐나다 총리에게 보내는 운동도 전개되고 있다.
캐나다는 한국 사람들에게 깨끗한 환경선진국으로 인식된다. 많은 한국 학생들이 유학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캐나다 정부와 산업계는 석면 수출이라는 편협한 자국 이기주의를 버리고 진정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 캐나다산 석면으로 인해 고통받는 아시아의 많은 석면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사과해야 한다.

< 최예용 아시아석면추방네트워크 부조정관 >

요즘 우리가족은 풍요속의 빈곤을 뒤뜰에서 체험한다. 나날이 검붉게 익어가는 이웃집의 체리들을 넘겨다보며 눈요기로 그 맛을 가늠하다가도 간간이 못가진 자의 속내를 풀어내기도 한다. 
‘옆집 마리아네 체리는 나무는 고목이지만 알맹이가 좀 작아서 탈이야.’
‘어휴, 건넛집 체리는 얼마나 지 멋대로 생겼는지.... 나무 손질을 안 하니깐 뻔하지 뭐.’
‘올핸 저쪽 마리오네 체리가 제일 먹음직 해. 사시사철 뜰에서 살더니 저 정도는 되어야지.’
  싱그러운 잎사귀 사이사이로 상큼한 열매를 물고 서 있는 이즈음의 체리나무는, 우리가족에게 부러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이런 마음이 조금 수그러질 것 같다. 일찍이 이식한 아기묘목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덕택이다.
올 봄, 작은 녀석이 튜울립을 닮은 아이와 혼례를 올렸다. 때마침 이른 봄철이라 새 식구를 맞아들인 기념으로 식수를 하기로 했다. 우리부부는 어떤 나무가 좋을지 궁리를 하다가 유실수 중에서 꽃은 물론 호흡이 긴 배나무를 권했다. 하지만 화사한 신혼부부는 이구동성으로 체리나무를 원했다. 그들의 분위기에 꼭 맞는 꽃과 열매를 소유한 나무라 더 바랄나위가 없었지만 한 번 실패한 전적이 있어 좀 망설여졌다. 이번 식목은 결혼기념수란 소명을 가진 만큼 되도록 거리낌이 없는 종으로 심고 싶었으나 주인공들의 의사에 따르기로 했다.

어느 날, 남편과 나는 좋은 묘목을 찾아 화원을 전전하다가 엉뚱한 곳에서 발길이 묶였다. 자연의 향취가 물씬거리는 주인 앞에 십여 그루의 묘목들이 얼기설기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기계에서 뽑아낸 듯, 매끈매끈한 나무들에서는 동하지 않던 마음이 제멋대로 자란 놈들을 만나자 선뜻 다가가서 요모조모 훓어 보게 되었다. 아마도 모양보다 내실을 기하라는 눈이 한 번의 실패에서 뜨였던 모양이다.
드디어 키는 겉 자랐으나 접목부문이 단단하고 이식하기에 적합한 수령의 묘목을 골랐다. 콩알만 한 체리 몇 개가 앙증맞게 매달린 묘목을 본 아들내외는 눈을 반짝이며 기뻐했다.  식목은 온 가족이 함께 했으면 좋으련만 서로 시간이 여의치 않아 그들에게 맡기기로 했다. ‘나무를 심을 땐, 구덩이를 크고 깊게 판 다음 흙과 거름을 적당하게 섞어야 하며 식수가 끝난 다음에는 물을 충분히 주고 겉 자란 지점을 전지 해 주라’는 식목요령도 일러주었다.
퇴근하고 돌아와 뒤뜰로 가니 조그마한 새 식구가 새초롬히 서 있었다. 생김새가 썩 신통하지 않았던 나무였는데 제 자리를 잡고 나니 모양도 단아하고 새로운 분위기가 들어 좋았다. 이번 식목은 의미를 담은 만큼 실패없이 잘 자라주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전지부분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전지를 한 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껑충하게 겉 자란 부분은 분명히 있는데 전체적인 균형미가 처음과 달라서 아이에게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걸작이었다.

“엄마가 땅을 깊이 파라고 해서 1미터 넘게 파느라 어젯밤 늦도록 혼났어요.”
“세상에…그럼, 전지를 하랬더니 대신 파묻었단 말이야?”
“예. 다 판 다음 깊이대로 묻고 나니 잘라 낼 게 없어서 그냥 두었어요.”
뿌리가 쉽게 내릴 수 있도록 여분의 땅을 판 다음 적당한 지점에 심으리라 예상했던 나의 기대가 엉뚱하게 흘러버린 것이다.

이튿날 아침, 남편은 깊이깊이 파묻힌 묘목을 파내느라 또 한나절을 보냈다. 저희들 딴엔 잘 한답시고 야무지게 다져놓은 땅이 몇 시간만에 애비를 힘들게 할 줄 꿈엔들 생각했을까.
“어이쿠, 접목한 부분이 저 아래 있네.” 땅을 파 내려가던 남편이 실소를 한다. 그것을 본 새 아이가 “아버지, 저희는 그런 줄도 모르고 옆에서 사진도 찍고 얼마나 즐거워했는데요.”
이론에는 밝지만 실전에 어두운 요즘 세대들이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새내기 부부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저 같은 일을 겪어야 하는지 모른다. 한 번 실족할 때 마다 더 큰 깨우침을 얻고 일어나는 지혜로운 부부이길 빌어본다.
아이들이 열성으로 가꾸어 갈 우리집 체리는 언젠가 메리네 고목에다 마리오네 체리가 열렸으면 좋겠다.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에세이스트 신인상. 한국문단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