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퇴임 뒤 사저 신축용 땅 구입을 둘러싼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논란이 불거지자 이 대통령은 장남 시형씨 앞으로 된 서울 서초구 내곡동 땅을 곧 자신 명의로 사들일 것이라고 어제 청와대가 밝혔다. 대통령의 사저를 대리 매입하려 한 것도 석연찮긴 하다. 하지만 이번 일의 문제점은 그보다 훨씬 심각해 보인다. 
이번 과정을 보면 청와대가 대통령 사저와 경호시설 터를 묶어서 매입을 추진한 것부터가 이상하다. 퇴임 대통령의 사저에 경호시설을 갖추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퇴임 대통령의 사저는 그의 개인 재산이고 경호시설은 국유재산으로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따라서 퇴임 대통령의 사저는 퇴임 대통령 쪽에서 직접 마련하고 정부는 이와 별도로 경호시설을 책임지는 게 옳다. 퇴임을 앞둔 노무현 전 대통령도 개인 집사를 통해 봉하마을 땅을 사서 사저를 지었으며, 경호실은 이와 별도로 350평의 땅을 사들여 경호동을 지었다. 청와대의 이번 처사는 개인 일과 국가 일을 제멋대로 섞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매우 큰 잘못이다.
 
청와대 경호처는 한 사람의 주인한테서 모두 9필지의 땅을 사저와 경호동 터를 가릴 것 없이 사실상 일괄계약했다고 한다. 다음 순서로 경호처와 장남 시형씨는 땅값 부담 비율을 배분한 것으로 보인다. 경호처로서는 배정받은 예산 42억여원 범위에서 ‘대통령의 아들’한테 선심을 쓸 여지가 충분한 방식인 셈이다. 
해당 지번의 등기부를 보면 실제로 이상한 흔적이 적지 않다. 가령 내곡동 20-30 지번의 경우 시형씨의 토지지분 공시가격은 5360만원인데 시형씨가 신고한 거래가격은 2200만원이다. 20-36번지의 시형씨 토지지분 공시가격은 1억2000만원인 데 비해 신고가액은 8025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민주당 의원들은 분석했다. 경호처가 자신들의 지분에 비싼 값을 치러주지 않는다면 있기 어려운 비정상적인 헐값 거래인 셈이다. 
실제로 경호처가 국가 예산을 들여 ‘대통령의 아들’을 배려했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흔한 다운계약서 시비 따위와 견줄 일이 아니다. 야당 의원들은 대통령 또는 대통령의 아들이 부담해야 할 사저 땅 매입 비용을 국가예산으로 일부 떠안아준 행위는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이 문제의 땅을 자신 앞으로 돌린다고 의혹이 해소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문제의 성격이 전혀 다른 까닭이다. 중요한 것은 이번 일과 관련된 모든 과정을 낱낱이 밝히는 것이다. 특히 이번 일을 누가 추진하고 기획했는지와 비용 배분 경위 등을 철저하게 규명해야 한다. 우선 국회가 나서서 대통령실과 경호처를 상대로 특별 진상규명 절차를 밟는 게 필요한 상황이다. 


[1500자 칼럼] 하나님의 마음을 알까?

● 칼럼 2011. 10. 18. 14:01 Posted by SisaHan
나는 오래 전에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가? 하는 제목으로 설교를 한 적이 있다. 과연 하나님의 백성 또는 하나님의 자녀로 자처하는 성도들이 과연 하나님을 얼마나 알까? 물론 피조물 인생이 어찌 창조주를 알 수 있을까? 그냥 그런 질문을 던져보면서 우리의 불신을 따져 보며 다시금 그 사랑에 감격해 보자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얼마 전에 나는 한 작은 책에서 어느 분이 자신의 집 주변에서 묘목을 하는 분에게 물었던 질문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분이 묘목을 심고 가꾸는 모습을 유심히 봤는데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것이 너무 많았다. 물 주는 날짜나 요일도 틀리고 물 주는 양도 틀렸다. 진짜 제 멋대로 였다. 일정하게 날을 잡아 주는 것도 아니고 어떤 때는 사흘 나흘 만에 줄 때도 있었고 어떤 때는 같은 나무라도 많이 줄 때도 있었고 작게 줄 때도 있었다. 그러다 때로는 약한 나무들은 옳게 물을 먹지 못해 말라 죽기도 했다. 그래도 그 분은 그런 식으로 주셨다. 
너무 신기하여 묻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분의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 질 수 밖에 없었다. 
그 분의 말씀에 의하면 채소는 한 두 달 가꿔 수확하지만 나무는 백 년을 내다 보기 때문에 사람이 주는 물로 만족을 할 것이 아니라 나무 스스로 땅속의 물을 찾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물을 주는 것은 하늘을 흉내 내는 것 뿐이라고 하셨다. 어디 하늘이 예고하고 비를 주는가? 비가 올 때도 있고 안 올 때도 있고 많이 올 때도 있고 작게 올 때도 있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불규칙한 날씨에 적응 못하는 묘목은 말라 죽지만, 죽자 사자 땅속으로 파고 들어 수원을 찾아내는 나무는 백 년이 지나도 살아 남는 거야 하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그렇다. 나무 스스로 불규칙한 삶에서 견딜 수 있는 생존방법을 스스로 터득 케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뭄처럼 물을 안 주다가 때로는 많이 주어 소낙비를 맞는 것처럼 하면서 스스로 생존의 방법을 알게 하는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참 대단한 분이시다 하고 생각했다. 묘목을 하시는 다른 분들도 그렇게 하시는지 모르지만 진정 나무를 키워도 철학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사람이 말하지 못하는 나무도 그렇게 훈련을 시켜서 이 땅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도록 만드는데, 인간을 창조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 그 뜻은 무엇인가? 하고 생각해 보게 된다. 하나님도 인생에게 충분한 물을 늘 골고루 또는 규칙적으로 주어서 인간으로 하여금 배부르고 편하게 살 수 있게 하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의 자녀를 결코 그렇게 다루시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 삶을 타개해 나가는 방법을 깨우치게 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살아가는 인생의 길에 정녕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내게 흡족하지 않고 때로는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다 해도 하나님의 뜻, 그 계획, 그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김경진 - 토론토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담임목사>

 

[한마당] 소통은 듣기 보다 실천이다

● 칼럼 2011. 10. 18. 13:49 Posted by SisaHan
“커뮤니케이션 강의? 절대 듣지 말라!” 얼마 전 소통에 대한 강연 요청을 받고 고민 끝에 잡은 강의 제목이다. 최근 소통의 중요성이 정부는 물론 기업에서도 많이 부각되었다. 자연스럽게 소통에 대한 강연도 많이 늘었다. 
하지만 소통에 ‘대한’ 강의를 듣는 것이 소통능력 향상에 얼마나 도움을 줄까? 
이런 강의의 주요 결론은 ‘소통이 중요하다’이거나, 조금 구체적으로 가면 ‘듣기가 중요하며, 긍정적이고 열린 소통을 해야 한다’ 등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강의가 실제 소통을 개선하진 못한다. 도대체 뭐가 중요한 것일까? 
“누구나 길은 안다. 다만 그 길을 실제로 걷는 이는 소수이다.” 중국 선종의 창시자라고 알려진 달마가 말한 것으로 알려진 이 문장은 소통능력 개선의 핵심을 짚고 있다. 즉, 알고 있는 원칙을 하나라도 실천할 때 소통은 개선된다.
오늘 당장 실행할 수 있는 몇 가지 실천계획(액션플랜)을 만들어보자. 

#1. 소통능력을 가장 빠르게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듣기의 실천이다. 
하지만 ‘남들이 말할 때 나는 잘 들어준다’는 것을 듣기로 생각하는 분이 있다. 정작 듣기에서 가장 중요한 실천 기술은 ‘질문하기’이다. 질문은 상대방에게 관심을 갖고 있을 때 나오며, 이야기를 끌어내는 힘이 있다. 종종 리더들로부터 “나는 회의에서 언제든 직원들에게 의견을 개진하라고 하지만, 정작 별 이야기가 없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평소 직원들에게 질문은 얼마나 했는지 물어본다. 
소통을 개선하고 싶다면 오늘 동료나 후배 한 사람을 식사나 차 한잔 하자고 초대하라. 그리고 그에게 어떤 질문들을 할지 십분만 미리 생각해보라. 실제 만나서는 말하기보다 질문을 통해서 대화를 이끌어 가보려 노력하라. 
질문은 어떻게 해야 할까? 좋은 질문은 ‘단답식’이 아닌 ‘주관식’ 질문이다. 주말에 영화를 봤다는 직원에게 단지 “좋았어?”라고 묻기보다는(“네 좋았어요”처럼 단답형으로 끝날 것이 뻔하기에), “어떤 부분이 가장 좋았어?”라고 물어보자. 상대방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을 수 있는 질문이 좋다. 

#2. 소통이 잘되는 조직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 
사회심리학자 중 ‘영향력’에 관한 한 가장 많이 인용되는 학자인 로버트 치알디니는 진정한 리더란 사람들을 만날 때 “내게 도움이 될 사람이 누구일까?”가 아니라 “내가 먼저 진정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를 고민하고, 그들에게 먼저 도움을 베푼다고 말했다. 
살면서 내가 남한테 받았던 도움 중 기억나는 것을 떠올려보라.(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평소 자신의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길!)  이제 내가 먼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한번 찾아보자. 그리고 먼저 도움을 건네보자. 그 사람과 앞으로 더욱 소통이 잘될 것이다. 

#3. ‘장점의 발견’이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그 사람의 장점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고, 이들이 그런 장점을 발휘할 때, 때로는 얼굴을 보고, 때로는 이메일로, 때로는 제삼자에게 그 사람에 대해 칭찬해보자. 칭찬할 때 그냥 “좋다”고 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좋은지를 칭찬하라. 
서울시장 선거가 코앞에 다가왔다. 그동안 누가 더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었으며, 시민들의 어려움에 도움을 주었는지, 그리고 상대방의 장점을 발견하고 칭찬하는 사람인지 생각해보자. 그게 앞으로 어떻게 해주겠다는 말보다 더 중요하다. 소통에 대해 공부할수록, 소통은 입이 아니라 귀와 몸으로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

 

[한마당] 사상 최고의 성공

● 칼럼 2011. 10. 11. 18:05 Posted by SisaHan
2009년 8월 일본에 간 버락 오바마는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히로시마에 가 보려 한 모양이다. 갓 취임한 그해 4월 체코 프라하에서 ‘핵 없는 세계’를 역설한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에 대한 기대가 일본에도 있었다. “여기 와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보세요.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을 위해.” 지난 7월 87살에 세상을 떠난 누마타 스즈코는 그렇게 소망했다. 
1945년 8월6일, 21살이었던 스즈코는 히로시마 체신국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날 거기서 1㎞ 남짓 떨어진 곳에서 원자폭탄이 터졌다. 왼쪽 다리를 허벅지까지 잘라냈고, 약혼자는 전사했다. 스즈코는 1980년대부터 히로시마 피폭 참상을 세계에 알리는 증언자로 나섰다. 가해자로서의 일본 책임도 얘기하고 사죄했다.

하지만 오바마는 히로시마에 가지 않았다. 며칠 전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외교문서에는 당시 일본 외무성 야부나카 미토지 차관이 주일 미국대사에게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이 ‘시기상조’라며 말렸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시기상조라니? <아사히신문>은 오바마가 히로시마에 갔다면 원폭 투하가 정당했다는 미국 보수세력이 반발했을지 모르고, 또 아시아에 대한 일본의 전쟁책임 논란이 새로 불거졌을 수도 있다며, 어느 쪽이든 일본 정부는 피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사설에 썼다. 아사히는 그러면서 히로시마를 둘러싼 미-일 간의 대립은 양국 관계의 심층부를 찔러대는 ‘역사의 가시’라며, 그때 그 방문이 실현돼 양국이 그 문제에 좀더 정면으로 맞섰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과거사에 참으로 집요하다. 그 자체는 좋다. 문제는 그게 주로 ‘피해자 일본’ 쪽으로만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흘 전 일본 외무성 스기야마 신스케 아시아대양주 국장은 일본군 위안부(성노예) 문제와 관련해 “청구권 문제는 이미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매뉴얼을 또 읽었다. 예컨대 아사히가 이런 자세를 문제 삼으면서 정면대응으로 한-일 간의 역사적 가시를 뽑아버리자고 한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조선 사람도 히로시마에서 수만명이 죽고 세대를 이어 피폭 후유증을 앓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할린으로 동원당한 수만명의 조선 사람들을 일본은 버려둔 채 자국민들만 데려갔다.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선 지금도 성노예로 끌려갔던 할머니들이 울고 있다.

일본 ‘천황’이나 총리가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 가서 스즈코의 소망처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들이 어떻게 당했는지 알아보고 정면대처하라고 일본 언론은 쓴 적이 있나? 저 을미사변의 야만과 우금치 등 조선 천지를 피로 물들이고 만주와 중국의 조선 사람들까지 무차별 살육하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강제연행하고 무책임하게 내버린 제국 일본의 만행을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을 위해” 가서 확인해보라고 한 적이 있나? 히로시마는 일본에만 있는 게 아니다. 스기야마 국장의 얘기는 거짓이다. 일본의 전쟁책임을 묻는 도쿄 전범재판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조선침탈 문제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미-일의 전후처리 과정에서 일본이 근대 이후 한반도에서 자행한 범죄행각에 대한 단죄는 완전히 누락됐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남북한이 배제되는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는 미·일이 공모한 합작품이다. 그렇게 해서 한반도는 식민지배 뒤 분단당했고 미국의 냉전전략에 몰입한 이승만과 친일파가 권력을 잡았다.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면서 이승만을 건국의 영웅으로 세우려는 자들의 소망대로 미국이 각본을 쓰고 일본이 공모한 한반도 분단체제는 완벽하게 성공했다. 이게 역사상 최고의 근대화 성공 사례라고 그들은 자화자찬하고 있다.

<한승동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