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말한다. <한겨레> 구독자가 100만명이 되면 한국 사회가 바뀐다.
뭔 얘기냐고? 이 땅의 저널리즘 문화는 이미 시궁창이 됐다. <미디어 오늘>이 전국공무원노동조합과 공동으로 실시한 공무원 미디어 수용 실태 조사 결과, 공무원들이 가장 신뢰하는 신문은 <한겨레>와 <경향신문>이라고 했다. 3위인 <조선일보>는 한참 뒤떨어진다.
그런데도 공무원들이 근무처에서 가장 많이 구독하는 신문은 조선일보다. 공무원들 대다수가 “구독하고 있는 신문들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상사의 지시로 신문 구독을 결정하니 이건 병든 저널리즘 현실이다.
‘보수’를 참칭하면서 “정의 옹호”와 “불편부당”을 주장하는 기득권 신문 조선일보의 구독자가 140만명이 겨우 넘는다는 최근 기사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그동안 조선일보가 이 정도 구독자 수를 두고 나라를 흔들겠다고 긴 시간 떠들어댔단 말인가? “민족의 표현기관을 자임”한다는 또다른 기득권 신문 <동아일보>나, “객관적이고 정확한 보도로 한국 언론 중 가장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추었다”고 역시 주장하는 <중앙일보>는 구독자가 훨씬 더 적다.
<한겨레> 정기구독자 100만이면 세상은 달라진다. 사회는 오늘보다 훨씬 정의롭고, 피눈물 흘릴 사람의 절대숫자는 준다.
따라서 이 땅에 언론의 정도를 확연하게 지키고 가꾸어야 할 한겨레의 책임은 막중하다.
더구나 후퇴한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최선의 노력까지 <한겨레>는 사명으로 더 짊어지게 됐다.

이런 당위의 입장에서, <한겨레>는 독자와 만나는 접점을 새롭게 점검할 시기다.  종이신문의 현실적 한계가 있고 신문시장 구조 자체가 왜곡된 현실이지만, 인터넷 웹신문과 종이신문의 차별화를 통해 젊은이들이 인터넷에서만 한겨레를 보지 않고, 나서서 한겨레의 종이신문을 찾을 수 있게 하는 방법은 과연 있는가?
젊은 세대들에게 ‘읽는 신문에서 보는 신문을 넘어 공감하는 신문으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역동적인 기획, 보도의 기동성과 함께하는 예리한 통찰과 대안, 가치의 확산과 공유, ‘왜?’와 ‘다음은?’을 정확히 짚는 기사의 깊이(분석)와 넓이(세계성), 종합적이고 치밀한 신문 편집전략의 안출을 통해 여타 신문과 차이를 두는 사진·레이아웃·타이포그래픽 등 시각 이미지의 과감한 파격성과 현대성, 격조 있지만 신선한 아트디렉션, 문제를 리드할 수 있는 전위성, 이를 뒷받침하는 신문 경영체제의 입체적인 분석과 최적화, 경영혁신의 구체적 방안, 회사의 철학과 경영이 유리되지 않을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과 내부개혁, 한겨레 전 직원의 정체성과 통합성, 지속적인 긍지와 뒷받침, 이런 문제를 항시적으로 개선·극복하고자 하는 시스템, 신문 정기구독자 증대로 신문수입에서 광고수입이 차지하는 비율의 조정…, 곧 <한겨레>는 어떤 가치와 어떤 존재방식으로 지금 신문을 만들고 있는지 새삼 질문한다.

올봄 독일의 주간지 <슈피겔>이 부수 400만의 독일 최대 일간지 <빌트>를 고발하는 기획취재 기사를 연재했다. 기득권 세력의 선전도구 노릇으로 언론을 부패시키는 죄상을 같은 신문업종에서 공격하고 나선 것은 단지 간섭 차원이 아니라, 민주주의 공동체 파괴를 묵과할 수 없다는 언론의 역할 때문이었다.
오늘 한국의 현실에서 조.중.동의 보도 행태는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으로부터의 독립 문제를 넘어 이제 이들 신문 자체가 권력의 헤게모니를 꾀하는 ‘기관’이 된 듯하다. 저널리즘 문화를 일대 혼돈 속에 빠뜨리며 민주주의를 교란하고 왜곡시키는 이들 신문을 <한겨레>는 계속 두고 보고 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

< 김상수: 작가·연출가 >

국회 사법개혁특위가 결국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 등 핵심 쟁점을 관철하지 못한 채 1년4개월여의 활동을 접게 됐다. 특별수사청 설치와 대법원 구조 개편 등 4개 미합의 쟁점은 법사위로 넘겨 계속 논의한다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사법개혁 논의에 가장 결정적 타격을 가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청와대다. 지난 3일 사개특위 검찰소위가 우여곡절 끝에 중수부를 폐지하기로 합의했으나 뒤늦게 청와대가 끼어들어 사실상 반대의사를 밝히면서 일이 어그러진 것이다. 검찰을 개혁하기보다 통제권에 묶어두어 임기 말 권력누수를 막겠다는 저의를 그대로 드러낸 셈이다. 모처럼 여야 합의로 진행되던 논의에 찬물을 끼얹음으로써 개혁의 좋은 기회를 무산시키고, 우리 정치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는 것을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은 알아야 한다.

사개특위 의원들의 책임도 크다. 특히 검찰 출신 일부 여당 의원들은 청와대 발언 이후 “나는 중수부 기능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해온 사람”이라는 등 과거 속기록 발언까지 부인함으로써 무소신과 몰염치의 극치를 보여줬다. 야당 의원들도 여당 일부의 반발을 효과적으로 제압하지 못하고 대국민 설득에 실패함으로써 무기력한 모습을 드러냈다. 여야 새 원내대표 역시 취임 후 첫 과제인 사법개혁 논의 과정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사실상 사개특위를 좌초시킴으로써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특히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는 청와대의 견해 표명 이후에도 이를 타개할 아무런 정치력도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앞으로 국회 운영에서도 상당한 부담을 지게 됐다.
법원과 검찰 모두 기득권을 지키려 적극적인 로비를 펼쳤지만 그중에서도 검찰의 행태는 도를 넘었다. 사개특위의 중수부 폐지 합의 뒤 중수부 검사들이 수사를 중단한 것이나 검찰총장이 잇따라 간부회의를 열어 저항한 것은 국회의 입법권을 무시하는 처사다. 나아가 검찰 스스로 권력화했음을 만천하에 시위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기도 하다. 중수부가 돌연 부산저축은행 수사에 뛰어들고, 사개특위 위원들을 겨냥한 듯한 언론보도가 잇따른 것에 대해서도 검찰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다.

검찰과 국회 등 정치권은 그랜저검사나 스폰서검사 등 사건이 일어나면 모두 나서 엄청나게 바꿀 듯이 개혁을 외치다가 국민들 기억에서 흐릿해져 갈 무렵이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뒤엎는 행태를 반복해왔다. 이제는 그런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뒤늦게나마 야당은 물론 여당 소장파들도 사법개혁을 다시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고 한다. 여야 원내대표가 정치력을 발휘해 사법개혁을 최종적으로 결단할 시간은 아직 남아 있다. 이도 저도 안 되면 시민들이 나서서 사법개혁 반대 의원 낙선운동이라도 벌이는 수밖에 없다.

[사설] 파리의 밤 달군 K-POP 열풍

● 칼럼 2011. 6. 19. 16:18 Posted by Zig
한국 K-Pop 가수들이 지난 주말 프랑스 공연장을 뜨겁게 달궜다. 애초 하루만 하려 했던 공연을 팬들의 폭발적인 반응과 요구로 하루 더 추가했을 정도다. 현지 언론도 큰 관심을 보였다.
K-Pop이 파리에서 성공적인 유럽 데뷔를 한 것은 그 열기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다. 대세는 놀라운 확장세로 남미, 아프리카 등으로 확산되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한다. 한국의 수출이 자동차와 전자상품을 넘어 이제 문화에까지 도달하게 됐다는 프랑스 언론의 평가도 나왔다. K-Pop은 이미 문화산업적으로 엄청난 비즈니스가 됐다. 그런 기대도 있지만 한류를 이어가고 한국 이미지를 알리는 얼굴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K-Pop이 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파고든 요인은 특유의 역동적인 춤과 음악을 빼놓을 수 없다. 외국의 유망주도 발굴해 K-Pop에는 국경이 없으며 잘 기획된 상품으로서 콘텐츠 파워가 핵심이다. 다국적 그룹이 이끄는 글로벌한 사운드와 초국적 이미지로 세계 음반시장 변화에 대응한 대형 기획사들의 매니지먼트 전략이 뒷받침됐다. 오디션을 통과한 연습생들은 노래와 댄스, 연기, 외국어 등을 몇년간 훈련받은 뒤 한 그룹의 멤버가 된다. 여기에 유튜브·페이스북 등 새로운 미디어의 힘을 등에 업으면서 유통에서 국경의 장벽을 훌쩍 넘은 점도 한몫하고 있다.

<르몽드>는 K-Pop 전사들이 종종 초등학교 때 발굴돼 스파르타식 훈련을 하며 성형수술 같은 극단적인 수단이 동원되기도 하고 몇년 만에 활동을 접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화려한 무대 이면에는 거대 문화자본과 철저한 경쟁 및 상품화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열기와 환호도 좋지만 아이돌 문화만 지나치게 부각하거나 문화적 요소를 배제하고 상품뿐인 문화 콘텐츠 수출에 집착할 경우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음악에 대한 관심이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하나로 묶어내도록 고민해야 한다.

소아미비로 앉은뱅이가 된 김인강,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학대와 지지리도 가난했던 가정,
오직 무학의 어머니의 인고와 사랑으로 그 아들은 살아남았다.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듯 싶다. 중증 장애 앉은뱅이, 거지처럼 버려질뻔 했던 그의 학력은 한 인생을 극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김인강은 재활원에서 참 스승 최화복 선생을 만난다. 그 때 인강은 겨우 10여 세 밖에 되지 않았다. 머리 좋은 인강이 할 수 있는 것은 공부밖에 없다는 것을 파악한 스승은 일반 중.고등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학교 당국의 편견과 악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겨내게 한다. 그리고 인강은 서울대학교에 들어간다. 수학이 그의 전공과목이다.
서울대학교를 졸업 한 후 1996년 미국에 유학, 버클리대학에서 6년 만에 수학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 카이스트 교수로 발령받는다. 이후 첼리스트 박희령과 결, 두 아이의 아빠가 된다. 카이스트 봉직 3년 후 서울대 수학교수로(2000년 가을). 2007년 40대 미만이 받는 ‘젊은 과학상 수상’. 2008년 고등과학원으로 옮겨 2011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천에 하나 쯤 생길 수 있는 인간승리 이야기다. 나는 인강이 살아온 삶의 과정을 숨죽이며 읽어 내려갔다.

김인강은 말했다. 이웃을 돕는다는 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자신의 인생을 진정으로 공유할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 이 한마디가 나를 사로잡았다. 경험에서 얻어진 생명력있는 명구(名句)다.
인강은 어디서나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다. 동정의 시선, 호기심의 시선, 경멸의 시선, 그 눈초리가 무엇이었던 간에 인강은 견디기 힘든 모욕감을 느꼈다. 눈총을 받아내기 위해 무감각을 연습했다. 뜨거운 물속에서 ‘이건 안 뜨겁다’고 주문을 외우는 것과 같았다. 정신적으로 견딘다 해도 상처가 남는다. 상처 위에 덧입혀져 무감각해질 때까지 버티는 동안 어느덧 인강의 마음은 딱딱해지고 얼굴에선 웃음이 사라졌다. 대학에 들어와 성경공부를 하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온갖 모욕을 당하시는 구절들을 읽었다. 마치 인강 자신이 당하는 것 같았다. 뺨을 때리고 침을 뱉고 희롱당하고 업신여김을 당했던 예수님의 고난을 인강은 자신의 처지로 이입시키는 놀라운 체험을 한다. 예수님은 그렇게 모욕을 준 사람들에게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말씀이 인강의 가슴을 쳤다. 완전한 용서, 완전한 사랑이었다.

이렇듯 하나님께 접붙혀진 순간 인강은 아버지를 용서했다. 그를 보고 놀렸던 아이들도 용서했다. 그리고 나서야 웃음이 회복되었다. 막혔던 기쁨의 샘물이 터졌다.
지지리도 가난했던 중중장애 앉은뱅이 소년이 대학교수가 된 과정을 써내려간 김인강을 읽으면서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현기증이 일어났다.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의 성공담이 아니다. 그가 걸어온 과정을 진솔하게, 솟아날 구멍이 없는 절망 속에서 하늘을 쳐다보며 견디어낸 그 힘의 원천이 피부로 느낄 만큼 강렬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 것은 기독교 신앙이었다. 그는 삶에 지친 몸으로 인도 여행 중 캘카타의 마더 테레사를 만난다. 병든 자를 돌본다 해서 세상이 바뀌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세상을 바꾸는 것은 내 몫이 아니고 그저 작은 일에 충성할 뿐이라 대답하며 쪽지를 건네어준다. 거기엔 기도의 열매는 믿음이요, 믿음의 열매는 사랑이요, 사랑의 열매는 봉사요, 봉사의 열매는 평화라 쓰여졌다. 그 쪽지를 그는 마음 속에 간직한다. 믿음과 사랑과 봉사. 기독교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의 핵심이다. 그냥 자꾸 연습할 수밖에 없다. 연습하다 넘어져도 또 일어나는 거다. 작은 일에 충성하며 김인강은 엄청난 삶을 살고 있다.

땅에 묻힌 하늘을 본 「기쁨공식」저자 김인강 교수는 수학공식을 만들고 풀어나가고 증명하고 해결하고 논리적인 추리로 예측해 나가는 그 속에서 사람답게 사는 길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그의 기쁨 공식을 성서에서 찾아냈다.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함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김인강은 진정 땅에 묻힌 하늘을 본 사람이다. 최근에 발간된 이 책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민혜기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전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