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퍼트 머독의 미디어제국 뉴스코퍼레이션(뉴스코프)이 해킹 사실 폭로로 크게 흔들리고 있다. 영국 의회는 어제 마침내 머독 부자와 뉴스인터내셔널 최고경영자 리베카 브룩스 등 뉴스코프 3인방을 불러놓고 청문회를 시작했다. 해킹 사실을 처음 폭로한 전직 기자의 죽음으로 청문회의 긴장감은 한층 더 고조됐다.
이번 사태로 지금까지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의 전 공보보좌관 앤디 쿨슨과 브룩스 등 10명이 체포됐고, 런던경찰청장과 <월스트리트 저널> 발행인 등의 무더기 사임 사태를 빚었다. 머독은 나름의 반격을 가하고 있지만 흐름을 뒤집긴 어려워 보인다. 황색 저널리즘에 대한 대중적 회의가 커가고, 머독 제국을 키운 권력과의 유착관계에 금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머독은 유명인 스캔들과 루머, 섹스, 범죄, 사생활 폭로, 인신공격 등 대중의 관음증적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기사들을 양산해 전통 저널리즘을 밀어내며 성공가도를 걸었다. 기자들을 돈으로 정보를 매수하는 부도덕하고 무자비한 경쟁에 몰아넣었다. 여기에다 보수우파 취향의 편향적인 뉴스들을 배합한, 엔터테인먼트와 뉴스의 경계를 허물어뜨린 선정적 보도는 단절과 소통 부재의 정치적 패거리 문화를 확산시켰다. 1970년대 이후 미국 공화당의 신보수주의 혁명과 영국의 신자유주의 우경화에는 미국의 <폭스>와 영국 인쇄미디어의 37%를 장악한 머독의 매체들이 끼친 영향력이 적지 않았다.

캐머런 총리가 납치된 13살 소녀의 휴대전화 해킹을 지시한 <뉴스 오브 더 월드> 당시 편집장 출신 쿨슨을 공보책임자로 불러들인 건 바로 이 미디어제국의 막강한 독과점적 영향력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런 권력을 등에 업고 영향력을 배가한 뉴스코프의 권언유착은 경찰까지 부패시켰다. 돈과 정보를 맞거래하고 편의를 봐주던 런던경찰청장은 물러나면서야 캐머런과 뉴스코프의 유착관계를 폭로했다. 해킹 사실 폭로를 계기로 폭발한 황색 저널리즘에 대한 대중적 분노의 배경에는 이런 권언유착과 언론 독과점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깔려 있다.
한국도 보수 일변도의 거대신문들이 방송까지 장악하게 되면서 권언유착과 선정적인 황색 저널리즘의 도래가 예고되고 있다. 자사 이기주의의 추악한 몰골을 보여준 한국방송공사 도청 논란도 거기서 멀지 않다. 머독 미디어제국의 타락과 추락은 결코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1500자 칼럼] Share! Share OK?

● 칼럼 2011. 7. 31. 07:15 Posted by SisaHan
이젠 가족의 수가 점점 늘어갑니다. 저희 부부와 아들 셋의 단출한(?) 가정에서 아들들이 결혼해 며느리들이 생겼고, 각 집에 두 부부만 사는 것이 지루했던지 집집마다 강아지를 한 마리씩 입양했습니다. 그러더니 얼마 안가서 첫 손녀가 생겼고, 그 다음엔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아이들을 낳더니 한 집에 아이들이 둘씩이나 됩니다. 저희 부부는 아들들에게 “둘이면 충분해!” 라고 세뇌교육을 시키지만 아들들은 “엄마 아빠는 셋을 낳았잖아요!” 합니다. 언제 누가 먼저 시작할지 모르지만, 누군가 세번째 아이를 낳으면 모르긴 해도 한 집에 아이들이 셋씩 될 것 같습니다.
가끔 온 가족이 다 모일 때가 있는 데, 모두 모이면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어른 여덟에, 손녀 손자가 여섯, 거기에 개 손자 셋! 젖 달라고 우는 녀석, High Chair에 앉아서 음식을 숫가락으로 퍼서 뿌리는 녀석, 공 하나를 가지고 서로 갖겠다고 식탁 밑으로 뛰어다니는 개 손자들! 전쟁터(?)를 방불케 합니다. 전에는 가족들이 모이면 제일 많이 쓰던 말들이 “야~ 참 예쁘다!” “야~ 참 잘 한다” “어쩌면~ 요렇게 잘 생겼냐? 누구 새끼냐?” 였습니다.

그런데 언제 부터인가 제일 많이 쓰는 말이 “Share!! Share OK?”로 바뀌었습니다. 재롱떠는 손주들의 모습을 보는 즐거움이 손주들의 싸움을 말려야 하는 안타까움으로 바뀌었습니다. 저희 집에는 약통이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분홍색으로 아내의 것이고 하나는 파란색으로 제 것입니다. 하루는 가족들이 모여서 저녁을 먹고 쉬고 있는데 부엌 쪽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큰 손녀와 둘째 손녀 둘이 하나는 질질 짜며 울고 있었고, 하나는 “이게 내꺼야!!” 소리지르고 있었습니다.
달려가 보니 분홍색 빈 약통의 귀퉁이들을 잡고 서로 자기 것이라고 싸우는 것입니다. 큰 손녀는 저를 닮아서 마음이 여리고, 둘째 손녀는 아내를 닮아서 좀 드셉니다.ㅎㅎㅎ 그래서 싸우면 항상 큰 손녀가 먼저 울고, 둘째 손녀는 입술을 꼭 깨물고 씩씩거립니다. 파란 약통을 집어들고 “누가 이걸 가질래? 난 이게 더 좋은데” 했더니 둘 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똑같이 생긴 약통인데 왜 꼭 분홍색이어야 하는 지 이해가 안되는 데, 아마 계집아이들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어쩝니까? 서로 분홍색 약통이 좋다는데…

그때 두 애비가 달려오더니 똑같이 하는 말이 “Share! Share OK?” 였습니다. 요즘엔 “share!!” 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게 듣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서로 깔깔거리면서 잘 놀다가도 일단 누가 한가지를 집어들면 서로 자기 것이라고 싸우니 말입니다. 지난 Father’s Day에 큰 손녀의 Daycare에서 Father’s Day 행사를 하면서 아빠들을 초청해서 함께 행사한다고 했습니다. 아들 부부가 모두 일하니까, 행사에 참석할 수가 없어서 저더러 가줄 수 있겠느냐고 해서 아내와 같이 처음으로 이곳 Daycare에 갔었습니다. 다들 아빠가 왔는데 손녀만 아빠가 없으면 얼마나 섭섭해 할까? 생각하고 꿩 대신 닭이라고 할배가 가기로 했습니다. 병아리 같은 꼬마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놀기도 하고 뛰어다니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뒷마당 놀이터에 세발자전거가 세 대 있었습니다, 큰 손녀가 그 중 하나에 올라 타려는 순간, 손녀보다 약간 큰 여자아이가 달려오더니 “This is mine!” 하며 손녀를 밀치고 있었습니다. 손녀는 저를 쳐다보며 울상이 되었습니다. 손녀에게 다가가서 “Ava, share OK? You’re a good girl. Let her have it. 저기 있는 자전거도 참 좋은데?” 저도 알게 모르게 ‘share’ 라는 말을 많이 쓰는 요즈음 입니다. 손녀는 못내 아쉬워 하면서 다른 자전거를 탔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자전거를 뺏은 아이가 손녀가 다른 자전거를 타는 것을 보고는 그 얼굴 표정이 변했습니다. ‘이 자전거 보다 저게 더 좋은 데…’ 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사람은 어린아이든 어른이든 다 똑같은 것 같습니다. 내 것보다 남의 것이 더 커 보이고 더 좋아 보이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남의 것을 탐내기도 하고, 빼앗을려고 하고,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가 봅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살면, 저희들이 사는 세상은 훨씬 더 살맛 나는 세상이 될 것 같은 데, 아이들에게만 “share! Share OK?”를 외치고 삽니다. 어떤 유명인사는 절세미인인 아내를 놔두고 생김새로 봐서는 별볼 일 없는 가정부와 바람을 피워서 구설수에 올랐는데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요~ 한가지만은 Share 하면 안되겠지요? 아내만은! ㅎㅎㅎ

<노남석 - 수필가, 어진이의 이민수기 필자>

[한마당] 인권위 ‘추락사’와 MB 정부

● 칼럼 2011. 7. 31. 06:31 Posted by SisaHan
MB정부 출범 후 쇠락을 거듭해 오던 현병철 위원장 체제의 국가인권위원회가 끝내 자멸의 길을 택한 모양이다. 인권위는 지난 2월28일 인권위 노조 부지부장인 계약직 조사관을 계약해지 형태로 사실상 해고한 데 이어, 이에 항의해 1인시위를 벌였던 동료 11명을 징계위에 회부해 이번주 징계심사를 벌인다고 한다. 현병철 위원장이 ‘직접’ 징계를 요청하고, 노조원 자격이 되지 않는 고위급인 5급 조사관 세명에 대해서는 고등징계위원회에 ‘중징계’를 요구했다고 한다.
해고된 강인영(43)씨는 인권위 10년 역사의 최대 성과로 꼽히는 서울중앙지검 피의자 사망사건과 서울구치소 수용자 사망사건을 담당했고, 최근 5년간 성차별 및 성희롱 업무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았던 베테랑 조사관으로 알려져 있다. 60여명의 동료들이 인권위 내부 게시판에 글을 올려 강씨의 복직을 요구하고 14명이 릴레이로 1인시위에 나섰던 것을 보면, 그가 인권위에서 어떤 평판을 얻어 왔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물에 빠진 동료를 구하려고 11명이 강물에 뛰어들었다가 줄줄이 익사할 위기에 빠진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MB 정부 출범 후 인권위에는 바람 잘 날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년 전 인권위의 조직 축소를 비판하며 안경환 전임 위원장이 도중에 물러났고, 문경란·유남영·조국 등 세명의 인권위원이 인권위의 권력 눈치 보기를 비판하며 줄줄이 사퇴했다. 뒤이어 인권위 전문·자문·상담위원들의 사퇴와 전직 인권위원, 전직 인권위 직원, 600여 시민단체, 300여명의 법학자·변호사 등의 항의성명이 잇따랐고 급기야 인권상 수상자들이 수상을 거부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번 사건은 처리 결과에 따라 MB 정부 출범 후 거듭해 온 인권위의 추락사에 마지막 ‘한 점’을 찍을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며 인권위를 떠받쳐 온 현장 조사 실무자들을 상대로 인권위원장이 ‘전쟁’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현병철 위원장의 ‘임무’가 인권위를 공중분해시키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MB 정부 임기 말까지 계속되고 있는 인권위의 수난을 지켜보노라면, 이명박 대통령이 정권 재창출 의지를 접은 것은 ‘거의 확실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무지 민심을 얻으려는 ‘시늉’이라도 내고 있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권력의 재생산은 무엇보다 민심을 얻으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민심의 경고를 들으면 해오던 정책도 ‘궤도 수정’을 하는 게 정상이다.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참패를 해도, 4.27 재보선에서 중징계를 받아도, 7.4 전당대회에서 친이계가 몰락을 해도, ‘흔들리지 않고 국정수행을 하겠다’고 다짐한다.
‘민심’을 따르기보다 자신의 ‘뚝심’을 더 믿는 것을 리더십으로 오판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행동이다. 민심을 하늘처럼 떠받드는 ‘민주주의 철학’이 없는 지도자임을 확인하고도 선거 때만 ‘잠시’ 주인이 되는 노예의 처지를 곱씹지 않을 국민은 없다.

대통령이 내건 ‘친서민’ 구호도 애초 민심을 얻으려는 노력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문제는 바로 그 친서민의 핵심에 인권이 있음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인권을 일컬어 가장 많은 신자를 거느린 일종의 ‘세속종교’라 부르는 것은 인권에 대한 보편적 믿음과 인권이 수행하는 권익보호 역할이 그만큼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권을 가장 적극적으로 보호받아야 하는 계층이 바로 국가의 도움이 없이 자력으로는 차별에 맞서 싸워 이길 수 없는 사회적 약자인 서민들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인권위의 몰락은 곧 친서민 정책의 포기이며 정권양도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여당 의원인 정두언 의원이 대통령의 정권 재창출 의지가 의심스럽다고 했겠는가?
인권을 적으로 삼는 정권이 결코 성공할 수는 없다. MB 정부가 남은 임기나마 국민의 고통을 헤아리고 민심을 얻으려고 한다면 현병철 위원장부터 교체하고 인권위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데서 시작하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 갈상돈 고려대 학문소통연구회 연구교수·정치학 >

[1500자 칼럼] 감사와 결단

● 칼럼 2011. 7. 11. 12:57 Posted by Zig

최근에 나는 예전에 보았던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 연주자를 다시 보았다. 목회의 분주함 때문이라 해야겠지만 어느 영화관이라도 가서 조용히 영화 한 편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을 낼 수도 없고 또한 요즘 영화는 너무 복잡하고 총소리가 난무하는 것들 뿐이어서 별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못한다. 그래서 나는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면 고전 영화를 찾아 본다. 그래서 ‘상과 하’ 도 ‘자이언트’도 보았다. 나이가 들어 그런지 고전 영화가 템포는 느려도 감동이 있었다.
이번에는 ‘지붕 위의 바이올린 연주자’ 를 보았다. 세월 때문인지 몰라도 주인공의 자녀들이 결혼하는 과정 속에서 부르는 노래 Sun Rise Sun Set 는 감미로우면서도 슬펐다. 해가 뜨고 지는 세월 속에서 우리는 늙어간다는 이야기를 공감하면서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지붕 위에서 한 사람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으로 시작하여 마지막 장면도 유랑의 길을 떠나는 그들의 뒤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그 지붕은 현대의 빌딩 같은 평평한 지붕이 아니고 삼각꼭대기 지붕이며 그 위에서 연주를 하는데 얼마나 위험하겠는가? 잘못하면 한 쪽으로 떨어져 다치거나 죽을 수 있는 위험한 곳이다.

그것은 바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모세 시대에는 애급에서 종살이를 했고 바벨론 포로 이후 그들은 계속 쫓기고 협박을 받는 삶이었다. 특히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는 멍에를 지고서. 그러면서 유대인 주인공은 역시 과거 조상들이 쫓기는 삶을 살았던 그대로 자신들도 남의 나라에 유랑민으로 사는 아픔을 고백했다. 때로는 그는 탄식한다. 하나님, 이게 뭡니까? 하는 식으로. 그는 괴로웠다. 아팠다. 그래서 그의 탄식은 독백을 하면서도 힐끔힐끔 하늘을 쳐다보며 하나님께 하소연했다. 너무 가난하고 피곤에 지치다 보니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유대인만 그럴까? 한국도 그랬다. 인간의 탐욕 때문에 전쟁이 나고 그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얼마나 컸는가? 멀쩡하던 사람이 노예로 팔리고 가족은 흩어지고 가난으로 전락한 이야기들이 어디 한 둘인가?
 이런 이야기는 나라나 민족 가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교회 역사 속에서도 능히 볼 수 있다. 특히 이민사회에서 교회의 생성과 부침을 우리는 많이 보았다. 그런 것을 보며 나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우리 교회가 창립 30주년을 맞았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보다 더 역사가 깊은 교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나 한 교회에서 30년의 세월을 지난 나와 우리 교회 성도들이 대단한 것이다. 한 목사를 30년이나 모셔온 교회와 성도들 또한 한 교회에서 30년의 세월을 지났다는 것이 신기하고 놀라울 뿐이다.
그동안 지난 세월이 어땠는가? 바로 지붕 위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한 것과 같았다고 고백한다. 언제 어느 순간 어떤 사건에 휘말려 미끄러지고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얼마나 많았는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절로 입에서 감사가 나온다. 오는 7 월 9일에 우리 교회가 30주년 기념 음악회를 연다. 로마에서 독창자들도 모시고.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제다. 목사의 마음을 아셨던 지휘자는 주제를 ‘감사와 결단’ 으로 잡았다. 그것은 지난 세월 교회에 내리신 하나님의 축복을 감사하고 그 은혜를 받은 우리는 이제 다시금 새로운 30년에 대한 각오를 갖자는 마음으로 음악회를 열게 되었다.
그러니 이 기념 음악회는 사람들이 즐기는 그런 음악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받으실 예배와 같은 음악회라는 생각에서 지휘자와 나는 찬양대는 물론 로마에서 오는 연주자들이 가곡이나 오페라의 아리아를 부르지 않게 하고 오직 찬송 찬양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계획이다. 비록 우리가 지붕 위와 같은 삶을 산다 해도 하나님이 우리를 붙드시고 지키실 것을 믿는다.

<김경진 - 토론토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