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재난지원금 기부’에 찬물 끼얹지 마라

● 칼럼 2020. 5. 7. 03:11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을 “전국민 갈라먹기” “무책임한 포퓰리즘”이라며 반대했던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 일부 언론이, 이번엔 ‘자발적 기부’에 트집을 잡는다. 구체적 근거도 없이 “관제 기부”라고 몰아간다. 기부할 마음이 없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자발적 기부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지는 마라.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이 지난 4일부터 지급되기 시작했다. 한시가 급한 저소득층 280만 가구가 먼저 현금으로 받고 있다. 현금 지급 대상이 아닌 나머지 국민은 11일부터 신용·체크카드, 선불카드, 지역사랑상품권 중 하나를 선택해 지급받는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신청 단계에서 전액 또는 일부를 기부하거나 일단 받은 뒤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기부할 수 있다. 본인이 자유롭게 결정하는 ‘자발적 기부’다. 지급 개시일로부터 3개월 안에 신청하지 않는 경우도 ‘자발적 기부’로 간주한다. 급격한 소비 위축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지원금 사용 시한을 3개월로 정한 것과 동일한 기준이다.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을 “전국민 갈라먹기” “무책임한 포퓰리즘”이라며 반대했던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 일부 언론이, 이번엔 자발적 기부에 트집을 잡는다. 구체적 근거도 없이 “관제 기부”라고 몰아간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24일 “긴급재난지원금 기부는 코로나 대책에 들어가는 재원 마련의 책임을 일부 고소득자에게 떠넘기는 정책”이라며 “정치권에선 조세 저항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보도했다. 청와대가 당일 “고소득자를 압박한 적이 없다”며 “기부는 고소득자만 하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진행된다”고 반박했다. 청와대는 이후에도 “대통령이 기부를 하더라도 조용히 동참할 것”이라고 거듭 설명했고, 더불어민주당도 “기부 캠페인을 하지 않고 시민들의 자발적 의사에 맡긴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들 언론은 귀를 닫았다. “재난지원금 ‘관제 기부로 환수’, 이건 국정도 아니다”(문화일보) “재계는 ‘사재를 내놓으라는 얘기’라고 우려한다”(중앙일보) “자발적 기부 유도는 강압적 준조세 협박”(조선일보) 등등. 기부 강요 사례를 단 한건도 제시하지 않은 채 ‘기업 관계자’ ‘또 다른 기업 관계자’ ‘일부 공무원’ ‘정치권’ 등 익명의 취재원에 기대 이런 주장을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직접 “기부는 선의의 자발적 선택이다. 강요할 수도 없고, 강요해서도 안 될 일”이라며 “형편이 되는 만큼, 뜻이 있는 만큼 참여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실적 악화로 벼랑 끝에 몰린 기업들을 닦달해 추가 기부를 요구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 때 케이(K)스포츠·미르재단 출연 요구를 한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매일경제)는 주장까지 나온다. 재난지원금 기부를 박근혜·최순실의 국정 농단과 동일 선상에 놓은 것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어떻게든 정부 정책을 흔들어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4·15 총선의 결과를 지켜보고도 교훈을 얻지 못한 것 같다.

경제적으로 또는 심적으로 조금 더 여유 있는 사람이 더 어려운 사람을 돕는 건 인지상정이다. 지금처럼 전대미문의 재난에 직면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정부는 국민들이 기부를 하면 고용 유지에 사용할 계획이다. 무급휴직에 들어간 가장, 정부 일자리 사업이 중단돼 생계가 막막해진 노인, 아르바이트 자리를 잃은 청년 등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쓰이는 것이다.

지난달부터 자체적으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지방자치단체들에선 이미 자발적 기부 움직임이 활발하다. 누가 강요하지도 않고 눈치를 주지도 않는다. 대부분 평범한 시민들이다. 지난달 25일 모 방송 뉴스에 수원에서 식당을 하는 임태선씨 인터뷰가 나왔다. “3월엔 정말 힘들었거든요. 근데 저희는 그래도 처지가 괜찮은 편이더라고요. 나보다 힘든 사람들은 얼마나 더 힘들까, 그래서 기부를 결정하게 됐어요. 적은 금액이지만, 적은 금액이 모이면 큰 액수가 되잖아요. 큰 액수가 돼서 많은 분들에게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수원시는 지난달 9일부터 기부를 받고 있는데 5일까지 1824명의 시민이 3억2천여만원을 모았다. 수원시는 기부금을 실직자와 소상공인 등을 위해 사용한다. 수원시만이 아니다. 부산 기장군, 경기 남양주시, 전북 장수군과 익산시 등에서도 주민들의 기부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기부는 연대와 상생의 손길을 내미는 일이다. 우리나라가 코로나19 방역에는 성공했지만 코로나발 경제 위기는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많은 어려움이 닥칠 것이고 이를 헤쳐나갈 때 연대와 상생의 정신이 큰 힘이 될 것이다.

기부는 좋은 일이다. 그렇다고 기부를 하지 않는다고 비난해선 안 된다. 사람마다 사정이나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자발적 기부에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 된다.

< 안재승 한겨레 논설위원실장 >


[칼럼] 미래통합당의 참패, 보수언론의 책임

● 칼럼 2020. 4. 21. 01:43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망언 의원들을 줄줄이 낙선시키고 미래통합당에 초유의 참패를 안긴 것은 수구적 행태에 대한 유권자들의 응징이다. 보수언론도 함께 심판당했다. 곳곳에서 ‘협치’를 제안하지만 수구보수 야당·언론이 건강한 보수로 재탄생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거대 여당도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국민적 공감이 많은 사안부터 우선순위를 정하고 완급 조절을 해야 한다.


민주화 이후 처음이라는 미래통합당의 역대급 참패는 중도층이 외면한 탓이 크다. 공천 실패에다 막판 패륜적 망언이 터져나오면서 중도층은 한 가닥 남은 미련마저 거둬들였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강경 지지층에 휘둘려 중도층을 잃었다’고 했으나 <한겨레>는 사설에서 그 강경파 중 하나가 ‘조중동’이라고 콕 짚었다. “모든 게 문재인 정부 탓”이라는 조선·중앙 등 보수언론 프레임을 그대로 따르며 퇴행적 행태를 반복한 통합당 지도부 책임이라는 분석은 일리가 있다.

지난 3년 보수언론들이 집착해온 ‘반문재인 프레임’은 코로나19 국면에서 결정적으로 한계를 드러냈다. 외국 언론들이 ‘방역 모범 사례’로 칭찬하고 국민 65%가 정부 대응을 보며 “선진국임을 느꼈다”(19일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조사)는데도 ‘방역 실패’라고 억지를 부렸다. ‘시진핑 눈치 보느라 입국금지 안 했다’는 조선·중앙의 논리를 앵무새처럼 따라 하며 “문재인 정권 심판” 구호로 선거를 치렀으니 그런 야당에 중도층이 표를 줄 리 만무했다.

차명진 미래통합당 후보의 ‘세월호 망언’도 따지고 보면 보수언론의 책임과 무관하지 않다. “징하게 해 처먹는다”에 이어 ‘텐트 망언’으로 제명 파동을 겪은 뒤에도 성금이 답지한다며 천안함 유족들에게 보내겠다고 했다. 애초 세월호와 천안함의 유족 보상금 액수를 비교하며 ‘돈’ 문제로 참사 유족들을 조롱한 원조는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책임 없다’며 유족들의 진상규명 요구를 매도한 것도 모자라 검찰이 재수사에 착수하자 ‘세월호 또 우려먹겠다는 정권과 검찰, 해도 너무한다’고 공격한 것도 조선일보다. 사실 차 후보 망언과 그리 다르지 않다.

김진태·이종명 의원 등의 ‘5·18’ 망언도 <TV조선>과 <채널에이 A>가 촉발한 ‘북한 특수군 침투’ 발언에 원죄가 있다. 지금도 극우 유튜브엔 비슷한 영상들이 숱하게 걸려 있다.

북핵 위기를 협상으로 풀려는 노력을 색깔론으로 방해한 것도 보수언론들이다. 조선일보가 ‘천안함 폭침 주범 평창 온다’며 ‘한국과 유가족 능멸’이라고 부추기자,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곧바로 통일대교 한복판에 자리를 깔았다. 김영철 방남을 저지하겠다며 길을 막고 철야 농성을 벌였다.

스스로 인정하진 않겠으나 보수언론 중에서도 조선일보는 탄핵 국면에서 ‘태극기부대’의 불매운동 협박을 경험한 뒤 더욱 강경 보수로 치달았다. 광고 지면을 통째 선전장으로 내주며 아스팔트 우파에도 영합했다.

이번에 망언 의원들을 줄줄이 낙선시키고 통합당에 초유의 참패를 안긴 것은 이런 식의 수구적 행태에 대한 유권자들의 응징이다. 총선 국면에서 보수 통합을 독려하고 야당 대표 출마 지역구까지 찍어준 보수언론도 함께 심판당했다. 오죽하면 <미디어오늘>이 1면 머리기사로 ‘참패한 조선일보’라는 제목을 달았겠는가.

2016년 촛불 시민은 대통령을 탄핵했으나 국회는 이전 구도 그대로였다. 이번에 국회마저 획기적으로 바꿔놓은 건 촛불 정신을 완성시키라는 시민들의 뜻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이번 총선은 ‘촛불 시즌2’라 일러도 지나치지 않다.

70여년 지탱해온 수구 기득권 체제는 적대적 남북정책을 고수하며 분단구조에 기생해왔다. 경제적으론 수출과 대기업 중심의 성장 우선주의로 시장경제마저 제대로 포용하지 못했다. 정치·경제 등 각 분야의 기득권 논리를 전파하며 연결고리 구실을 해온 게 수구보수언론들이다. 그런데 최소한의 복지조차 “사회주의” “포퓰리즘”’이라던 조선일보가 총선 이후 야당에 복지정책 보완과 기본소득제 검토를 주문하며, 사람도 노선도 행태도 바꾸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좀 더 지켜보긴 해야겠으나 내부 성찰의 결과이길 바란다. 곳곳에서 ‘협치’를 제안하지만 수구보수 야당·언론이 건강한 보수로 재탄생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여권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서 윤석열 검찰총장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책임이 드러나기 전에 정치권이 나서서 몰아내려는 모양새는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 가족 수사가 진행되고 있으니 그 결과에 따라 자연스럽게 결정하면 될 일이다. 거대 여당이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다수 국민과 함께 가야 한다. 입법과 정책도 국민적 공감이 많은 사안부터 우선순위를 정하고 현명하게 완급 조절을 해야 한다. < 김이택 대기자 >

코로나19로 세계는 진짜 바뀔 수 있을까

● 칼럼 2020. 4. 20. 13:05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1918년 스페인 독감은 5천만명의 목숨을 앗아 갔지만,

그 후 세계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세계의 지식인들이 언론을 통해 다양한 주장을 펼치면서 관련된 담론에 개입하고 있다. 대부분 코로나19 이후 세계가 어떻게 바뀔 수 있는가를 논의하면서, 때로 논쟁을 불러오기도 한다.

한 예로 세계적 이론가 지제크는 <한겨레> 칼럼(2020년 4월13일치)에서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세계를 급진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그는 영국 총리가 코로나 사태 극복을 위해 철도의 일시적 국유화를 발표한 사례를 든다. 다른 매체에서 그는 이스라엘 총리가 코로나19와 관련해 팔레스타인을 적극 지원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가 제안한 두 가지 대책, 즉 지역공동체에 기반한 의료체계 개선과 자원 생산 및 공유를 위한 국제 공조체계 구축은 전적으로 동의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사례로 보면 세계가 바뀔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사실 영국 총리는 사태 초기에 신속한 대규모 검사 대신 인구 60%의 감염을 감수하는 집단면역이라는 전체주의적 전략을 선호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돕는 것은 ‘악어의 눈물’처럼 보인다. 그의 비판자들이 제기한 것처럼, 코로나19 이후 자본주의는 더 강력한 모습을 띨 수 있고, 시민들은 국가의 통제에 더 순응하게 될 수 있다.

전염병으로 세계사가 바뀐 사례들이 있긴 하다. 14세기 유럽에서 흑사병(페스트)에 의한 인구 감소는 농업노동력 부족으로 봉건제의 해체를 가져왔고, 17세기 중국에서도 흑사병이 창궐하여 명 왕조가 붕괴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1918년 스페인 독감은 5천만명의 목숨을 앗아 갔지만, 그 후 세계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 자본주의 사회는 복잡한 정치·경제적 요소들로 치밀하게 조직되어, 그 내적 모순들을 심화시킬지라도 당면한 위기를 해소해왔다. 더욱이 이러한 위기 해소는 언제나 인종과 계급(빈곤)에 근거한 차별적 희생을 전제로 했고, 그 차별 메커니즘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작동했다.

인종 차별과 혐오는 코로나19가 중국 우한에서 확산되던 초기부터 지금까지 거론되는 문제다. 며칠 전 프랑스 한 언론매체의 인터넷판에 한국의 대응정책을 두고 “감시와 밀고에 있어 세계 두번째 국가”라고 비난하는 글이 실렸다. 이 글은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한 감시·권위국가를 비판하려 하지만, 자신의 처지는 덮어둔 채 자유에 대한 맹신과 프랑스 우월주의에 빠져 한국 나아가 아시아를 인종 차별적으로 무시한다.

미국 대통령이 ‘중국 바이러스’라고 칭하거나 중국 탓을 하며 세계보건기구(WHO)에 지원을 중단한 것은 인종 차별적 혐오 돌리기의 전형이다. 이로 인해 서구에서 다른 인종에 대한 개인적 혐오 발언이나 폭력이 정당화될까 두렵다. 나아가 인종 차별은 단지 정체성의 문제로만 치부될 수 없고, 현실에서 훨씬 심각한 비극을 초래한다. 코로나19 최대 발생국인 미국은 인종 차별이 빈곤 문제와 결합되어 어떤 양상을 드러내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지난 8일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코로나19 환자 중 흑인 비율이 백인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높다. 뉴욕주는 약간 다르게 라틴계 사망자 비율이 더 높지만, 시카고 등 흑인 인구가 많은 지역은 흑인 사망자 비율이 60~70%에 이른다. 엄청난 치료비 때문에 입원하지 못한 환자들을 고려하면, 흑인과 라틴계 비율은 더 높아질 것이다.

미국에서 이처럼 흑인과 라틴계가 코로나19에 취약한 것은 무엇보다 빈곤 때문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밖에 나가 일하지 않고는 하루를 살아갈 수 없다. 이들은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인해 자가 격리가 애초부터 불가능했고, 평소 빈곤으로 인해 기저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이들은 인종 편견 때문에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받을까 봐 마스크 착용을 꺼린다.

빈곤에 따른 코로나19 희생은 제3세계 국가들에서 더 심각하다. 이 국가들의 확진자 수는 최근 급속한 증가 추세에 있다. 인도의 경우 코로나19로 도시봉쇄령이 발동되면서, 빈곤 노동자들은 ‘도시에서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도시 탈출을 감행하지만, 이 과정에서 감염이 급속히 확산될 위험이 있다. 반면 인도네시아에서는 빈곤한 도시 주민들의 생계를 위협할까 봐 도시 봉쇄를 아예 하지 않고 있다.

지제크의 말처럼 코로나19 대유행은 전세계에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그러나 또한 이번 사태는 자본주의 사회의 인종 및 계급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코로나19 대유행을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도록 해준다. 코로나19로 세계는 이러한 인종과 계급 문제를 해결하고, 급진적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을까?

< 최병두 한국도시연구소 이사장 >

[한겨레 칼럼] 4·15 총선 ‘4대 미스터리’의 결말

● 칼럼 2020. 4. 18. 07:38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지난 4월13일치 ‘한겨레 만평’이 요 며칠 화제가 됐다. 4·15 총선 국면에서 펼쳐진 ‘최근 3대 미스터리’를 다뤘다. 총선 기간 갈피 제대로 못 잡고 헤매던 보수 야권의 모습을 순간 포착한 것인데, 총선 결과가 나온 뒤 아귀를 맞춰보니 절묘하기 그지없다. 소름.

첫째 미스터리는 ‘왜 그 당에 갔나?’이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주인공이다. 만평 속 그는 길을 잃은 모양이다. “난 누구?” “여긴 어디?” 혼잣말을 하고 있다.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을 거쳐 미래통합당 총선을 책임지겠다고 노구를 이끌고 왔건만, 이번엔 도대체 왜 약발이 듣지 않는 걸까? 망언 거듭하는 차명진 당장 자르랬더니 자꾸 살려주는 건 뭐지? 노정객이 처한 현실이 정말 미스터리하다. 통합당 총선 참패와 함께 김 위원장도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됐다.

둘째 미스터리는 ‘왜 시장인가?’이다. 코로나19 방역에 헌신하는 의료진에 돌아가야 할 수당을 쌓아둔 채 뒷짐 지고 서 있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묘사했다. 권 시장은 코로나19로 당장 생계가 막막한 서민을 위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도 총선 뒤로 미루겠다고 하는 등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미스터리한 행적을 선보인 바 있다. 일각에선 ‘총선 전에 지급하면 혹여 대구 시민들이 정부 여당에 우호적으로 돌아설까 봐 그러는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지만, 믿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권 시장은 재난지원금 즉각 지급을 요구하는 시의원과 설전을 벌인 끝에 갑자기 실신하고는 사흘간 입원함으로써 시급한 시정을 잠시 중단한 바 있는데, 이는 실로 아프거나 자가격리된 많은 시민들과 동병상련을 나누겠다는 ‘목민관적 자세’의 발로라고밖에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선 개표 방송을 보다가 ‘카이저 소제’급 충격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범진보 대구 전패! 김부겸도 떨어졌다. 정말 다 계획이 있었나?

셋째 미스터리는 ‘왜 뛰는가?’이다. 짐작하시다시피 선거 기간 내내 포레스트 검프처럼 달리기에만 열중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그렸다. 안 대표는 대구에서 땀에 젖은 의료복으로 점수를 딴 뒤, 돌연 마라톤맨으로 변신해 국토 대종주 달리기를 하는 미스터리하기 짝이 없는 선택을 한 바 있다. 미래통합당 후보들이 망언·막말·선동 3종 세트를 마구 난사하면서 중도층 민심이 정처 없이 흩어질 때도, 안 대표는 “큰 실망을 금할 수 없다”고 일갈했으나 곧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을 위해선 누구와도 손을 잡겠다며 통합당과 연대할 뜻을 내비침으로써 경쟁 상대마저 감싸안는 ‘대범함’을 보여줬다. 피아식별 안중에 없는 그 미스터리함이 하늘을 찌른다.

권범철 화백의 촌철살인에 미스터리 하나만 더 보태볼까 한다. 제목은 ‘왜 머리띠를?’이다. 이 넷째 미스터리는 14일 마지막 선거운동에 나선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를 포착한 사진 한 장에 담겨 있다. 사진 속 황 대표는 밀레니얼 핑크색 머리띠를 두른 채 주먹을 불끈 쥐어 올리고 있다. ‘독재 타도’를 외치던 운동권 투사의 기운이 풍긴다. “가장 적성에 맞는다”고 밝힌 공안검사 시절 운동권 때려잡던 뼛속까지 공안통인 그가 머리띠 두르고 “문재인 독재 막겠다”며 주먹을 추어올리는 초현실적 풍경. 어쩌면 벨기에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 그림 제목처럼 ‘이것은 머리띠가 아니다’일지도.

황 대표는 지난해 9월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삭발식을 하고 장외투쟁을 했다. 11월에도 청와대 앞에 몽골텐트를 치고 단식농성을 했다. 전광훈 목사가 주도하는 ‘문재인 하야’ 농성집회장을 찾아 함께 만세를 불렀다. 12월엔 국회 본관에서 공수처법·선거법 등 개혁 법안 패스트트랙 저지를 내걸고 밤샘 농성을 했다. 머리띠 유세는 황 대표 개인사 측면에서 보면, 삭발→단식을 잇는 ‘운동권 코스프레’ 3부작의 대미를 이루는 ‘화룡점정’ 아니었을까.

변신 3부작이 불러온 놀라운 결과가 펼쳐졌다. 민심은 표로 응답했다. 종로 낙선, 당의 참패. 새로 꾸려질 보수야당 리더십은 황 대표의 실패에서 배워야 한다. 삭발 그만, 단식도 그만, 무조건 발목잡기 금지. 대화하고 대안 내고, 표결은 꼭 하기. < 손원제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