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당신이 은행에 가서 300만달러를 빌렸는데 갚지 못하면 당신이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은행에서 3억달러를 빌렸는데 갚지 못한다면 그건 당신과 은행 둘 다 문제가 된다. 따라서 막대한 투자를 한 은행은 당신이 실패하게 내버려둘 수 없다. 당신의 성공은 곧 은행의 성공이 된다.
트럼프는 북한에 비슷한 투자를 했다. 그 투자가 금전적인 것은 아니다. 평양에는 ‘아직’ 트럼프타워도 없다.


대신 트럼프는 북한에 대규모 ‘정치자본’을 투자했다. 그는 미국의 모든 대외정책 기득권층의 조언을 무시하고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북한 지도자가 진정으로 비핵화에 착수할 의향이 있는지를 놓고 모험을 하고 있다.
이제 그는 엄청난 투자를 해놔서 북한과의 새로운 시도가 실패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실패는 곧 북한뿐 아니라 트럼프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미 여러 차례 북한에 선불금을 지급했다. 첫째, 싱가포르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그는 김정은을 “매우 재능있고”, “매우 똑똑하며”, “매우 훌륭한 협상가”라고 선언했다. 북한 지도자가 선전에 활용할 수 있는 엄청난 선물이었다.
둘째, 트럼프는 올해 여름 한-미 을지프리덤가디언 연합훈련을 중단했다. 그가 자신의 군 참모들이나 한국 정부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셋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최근 발언을 보면, 트럼프 행정부는 비핵화를 위한 엄격한 시간표를 주장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이나 언론, 외교정책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나쁜 투자를 했다고 생각한다. 트럼프는 이들한테 싱가포르 성과에 대해 매우 나쁜 점수를 받았다. 그들은 북한이 트럼프를 전략적으로 압도했고, 정상회담에서 서명한 공동성명은 모두 ‘쇼’이며 내용이 없다고 주장한다. 북한이 비핵화를 향한 구체적 조처를 취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지극히 회의적이다.
하지만 미국 외교정책 엘리트들의 분석은 틀렸다. 트럼프의 투자는 이미 중요한 배당금을 산출했다. 남북한은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몇 가지 중요한 조처를 논의하고 있다. 그들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설을 위해 개성공단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을 재개하기 위한 협상도 진행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것은 트럼프가 남북 화해의 진전을 방해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이 성공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간절함 덕분에 트럼프는 남북이 구체적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물론 경제 제재라 는 주요한 걸림돌이 남아 있다. 하지만 모든 제재에는 예외가 있다. 남북은 관계 진전에 맞춰 개성공단과 같은 합작사업을 제재의 예외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위해선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엄청나게 성공적이었으며, 트럼프가 동북아시아의 평화에 기여했다는 ‘유용한 소설’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미국 행정부가 비핵화 시간표를 정하지 못한 것은 중요하지 않다. 행정부가 정상회담 결과를 의회에 아직 보고하지 않은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트럼프가 벤처기업의 성공 쪽에 투자를 한 것이다. 벤처기업이 실패하면 트럼프도 실패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트럼프는 실패를 원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김정은도 누가 됐든 트럼프의 후임자보다는 트럼프를 상대하는 것이 훨씬 더 쉽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김정은이 북-미 관계를 바꾸고자 한다면 2년 동안 기회의 창이 있다.
그렇게 되면 남북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평화를 향한 구체적인 조처를 취할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실질적이고 내실 있는 내용으로 채워질 것이다. 달리 말하면, 남북은 많은 사람들이 꿈과 희망을 갖고 투자하고 싶어 하는, 너무 커져 망하기 힘든 ‘대마불사’의 남북 합작사업을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 존 페퍼 -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


[칼럼] 감사 인사에 대한 생각

● 칼럼 2018. 7. 11. 14:43 Posted by SisaHan

저는 북에서 왔습니다. 북한에서 감사 인사는 정해진 두 사람에게만 가능했습니다. ‘김일성 대원수님 고맙습니다’, ‘김정일 원수님 고맙습니다’. 유치원에서 우리말을 처음 배울 때부터 북한을 떠날 때까지 감사의 모든 인사는 이 두 개의 문장이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오니 참으로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 문화가 있었습니다. 바로 감사 인사였습니다.
대표적으로 연말 시상식 때입니다. 상을 타는 연예인들 하나같이 누구누구에게 감사하다고 이야기하는데 끝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길게 나열하고도 또 빼먹지 않았는지 전전긍긍하면서, 그러곤 맨 마지막에 자신의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까지 감사하다는 말로 마무리되고 있었습니다. 참 낯간지럽게 뭐 하는 것인가 싶었습니다. 굳이 저렇게까지 아부를 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어쩌면 저 사람들은 사는 게 너무 피곤할 것 같다고 걱정도 했습니다.

아버지가 북에서 한국에 오신 후 제일 낯선 것도 바로 아버지가 시시때때로 하시는 ‘감사합니다’ 이 말이었습니다. 하나원에서 어떻게 교육을 했는지, 딸인 저에게도 꼭 잊지 않고 ‘감사합니다’라고 하십니다. 첨엔 몸 둘 바를 모르다가 나중에는 ‘무슨 인사말 교육을 이렇게 했지?’ 하면서 애꿎은 하나원만 나무랐습니다.
어찌 되었건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말을 빼먹지 않는 아버지 덕에 사람들은 아버지를 싫어하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말을 하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학위를 마치고 소회 발표에 나가서였습니다. 학위를 받고 나니 지도교수님부터 교내의 모든 교수님께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공부한 모든 학우에 감사했습니다. 나아가 힘들어서 떠났던 북한에도 감사했습니다. 참을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기에 떠나야만 했던 북한, 그렇게 떠난 북한이 있었기에 오늘날 나의 모습이 있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북한에서 함께했던 모든 동료에게, 좋았던 친구들만이 아닌 그렇게 나를 못살게 했던 기관 책임자에게도 감사하다고 논문에 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괜히 그랬다가 공연히 그들에게 해가 갈까봐 차마 언급은 하지 못하고 소회의 자리를 빌려 그분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아마 구체적인 내용을 모르는 졸업식에 참석했던 분들은 저를 두고 참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초기의 저처럼요.

그리고 몇 달 전 결혼식을 전후로 내 생에 그렇게 많은 감사함을 표현한 적은 없었습니다. 과거에는 그렇게도 이해가 안 되었던, 귀찮고 번거롭고 낯간지럽게 생각했던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우는 나 자신에 놀랐습니다. 그것도 이젠 혼자가 아니라 둘이서, 관심을 준 모든 분에게 몇 번이고 감사하다고 인사했고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피곤하고 지칠 만도 한데, 그렇게 감사함을 표현하니 오히려 기분 좋아지고 관계는 더욱 좋아졌습니다.

지난 6월, 역사적인 북-미 회담 직후 이 회담을 위해 애써준 여러 관계자에 일일이 감사함을 표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보았습니다. 이젠 더 이상 낯설지 않은 감사 인사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 진나리 - 대학원 박사과정 >


[1500자 칼럼] 그 한 선수 때문에…

● 칼럼 2018. 7. 3. 19:19 Posted by SisaHan

월드컵 경기가 한창이다. 어느 곳보다 뜨겁게 달구어지는 도시가 토론토이다. 차마다 자기 나라 국기를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또 이긴 국가에서 온 사람들은 국기를 흔들며 돌아다닐 것이다. 나는 또 그 때, 그 날처럼 태극기가 토론토 거리에 물결치고 대한민국이 울려 퍼지기를 꿈꾼다. 그러나 한국팀도 선전했으나 이제 세계 최강이라는 독일과의 예선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실낱 같은 희망을 가지고 있다. 지난 두 경기, 스웨덴과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한 골 차로 졌다. 한국 선수들이 참 잘 싸웠다. 객관적으로 볼 때 두 팀 다 한국보다 한 수 위인 팀이다. 우리는 흔히 정신력과 투지를 이야기하는데 엄연한 실력 차가 있음도 인정해야 한다.

축구공이 아무리 둥글다 하지만 꿈은 매번 이루어지는 일도 아니고, 늘 일어나는 것이 기적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합이 끝난 지 얼마 안되어 인터넷 상에 어느 한 선수를 표적으로 공격하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유튜브에서 자꾸 떠오르는 동영상을 보면, 그 선수가 상대팀에 골을 헌납한 것처럼 보이고, 그 선수의 실수만 없었다면 우리가 이겼을 거라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이미 한 선수를 표적으로 만들어 비난하기에 열을 내기 시작했다.

정말 그럴까? 그 한 선수 때문에 우리가 졌고, 그 선수가 없었다면 우리가 두 경기 다 이겼을까? 나는 그런 글들과 영상을 보며 2년 전에 리오 올림픽이 생각났다.

‘시합에 이기리라 믿었는데 진 결과에 대해, 실수한, 또는 실수한 것처럼 보이는 선수에게 무자비한 비평과 공격을 하는 것이 나를 슬프게 했다. (중략) 설사 실수였다 해도 비난도 좋지만 격려도 하여 다음에 더 잘 할 수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상황에서 패배의 원인이 그 선수 때문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2년 전 리오 올림픽 때 한국 여자배구팀의 패배에 대해 한 선수를 표적으로 삼아 인터넷에서 공격하는 것을 보고 내 개인적인 느낌을 적은 글이다. 그러나 그 때와 지금은 다른 면도 많다. 그 때는 객관적으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팀에 패했고, 이번 경우 우리 보다 훨씬 전력이 강한 팀이라 생각한다. 배구에서 한 점은 그리 중요하지 않지만 축구에서 한 점은 정말 중요하다. 많은 경기의 경우 한 골 차로 승부가 결정 된다. 결국 두 시합 다 한 골 차로 졌다. 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 않고 하이라이트만 본다면 분명 이길 수 있는 경기이다. 더구나 페널티 킥을 불필요하게 허용했다. 이제 실낱 같은 희망도 사라지고 우승후보라는 독일에 패하여 16강 진출에 실패하면 사람들은 심판의 오심을 이야기 하고, 감독의 전술과 선수기용에 대해 비판할 것이다. 아니 이미 시작됐다. 감독이 실력이 부족하고 많은 단점이 지적된 그 선수를 기용한 것은 그와의 인맥 때문이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 이러다 또 한국축구의 구조적인 문제를 언급하며 축구협회에 화살이 날아갈 것이다.

근데 이 시나리오가 왠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각본 같다. 아마 4년 후에도 똑 같은 말을 하지 않을까? 박지성 선수의 말이 가슴에 닿는다. 사람들은 눈 앞에 보이는 것만 보고 이야기 하지만 한국축구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축구발전을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면이 있다고… 선수도 바뀌어야 하고, 감독도 바뀌어야 하고, 축구협회까지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정작 바뀌어야 할 것은 바꾸라고 말하는 대부분의 한국민들이 아닐까? 평소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가 월드컵 때만 되면 열렬 축구팬이 되고 비평가가 되고 해설가가 되어 좋은 성적을 기대하는, 그들은 축구를 사랑한다 말하면서 평소 대학교, 고등학교 시합은 물론 한국내의 K리그엔 관심도 없고, 구경도 가지 않는다. 아니 축구 자체를 까마득하게 잊고 지내다가 월드컵 때만 되면 국가대표 팀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꿈이 이루어졌던 2002년을 생각하며….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


[칼럼] JP와 ‘충청 핫바지’ 영면

● 칼럼 2018. 7. 3. 19:18 Posted by SisaHan

김종필(92)씨가 별세했다. 전 국무총리, 9선 국회의원, 당 총재 등 다양한 이력을 지녔지만 그의 이름을 딴 ‘제이피’(JP)가 익숙하다.
그가 떠나면서 디제이(DJ) 김대중, 와이에스(YS) 김영삼 전 대통령과 더불어 구가했던 ‘3김 시대’도 막을 내렸다. 두 김은 권력 꼭대기에 올랐지만 제이피만은 끝내 이인자에 머물렀다.
그의 죽음은 충청에선 더욱 각별하다. 권력 언저리에 머문 풍운아, 영원한 이인자로 불렸지만, 적어도 충청에서 그는 언제나 일인자였다. 충청에서 나고 자란 지연 끄나풀에 기인하지만, 우리도 대권을 한번 잡아야 한다는 충청의 막연한 기대감은 일찌감치 그에게 절대지존이란 훈장을 수여했다. 이른바 ‘충청 대망’이란 암묵적 합의였다.


영호남 패권의 틈바구니에서 눈치를 보던 충청은 ‘대권 허기’를 ‘충청 대망론’이란 허상으로 달랬다. 허기는 선거 때 더했다. 이를 유효적절하게 이용한 이가 제이피였다. 영호남은 물론 수도권에도 없는 ‘대망’이란 똬리는 선거 때마다 충청 표를 모았다. 표 냄새를 맡고, 표를 모으는 데 동물적 감각을 지닌 그는 때마다 충청을 자극했고, 대망에 배고픈 충청은 당하는 줄도 모르고 표를 내줬다. 권력을 좇은 합당·야합 등으로 대권 기대는 번번이 물거품이 됐지만 “그나마 제이피가 인물이여”라는 자조는 반발을 눌렀다.
‘충청도 핫바지론’이 정점을 찍었다. “경상도 사람들이 충청도를 핫바지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아무 말 없는 사람, 소견이나 오기조차도 없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다.”(1995년 민선 1기 지방선거 천안역 유세에서)


이 말은 충청 표심을 결집했고, 그가 만든 자유민주연합이 충남의 기초·광역 단체장을 싹쓸이하는 등 충청에서 ‘자민련 광풍’을 일으켰다. 이듬해 열린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분위기를 이어갔다. 대전·충남 선거구 20곳 가운데 19석을 석권하는 등 충청은 자민련 공화국이 됐다. 뒷날 ‘충청도 핫바지’는 본말이 바뀐 그의 정치적 수사였다는 것이 알려졌지만 그의 정치 순발력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겨 표를 긁어모았지만 충청에선 “우리 자존심을 지킨 건 제이피”라며 그를 두둔했고, 적어도 이곳에선 상식처럼 통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표를 챙긴 이들은 충청권 안에 머무른 채 확장하지 못했다. 영호남 패권의 중간 지대를 차지했을 뿐 핫바지가 아니라는 것을 정책으로 증명하지도, 대안 세력이 되지도 못했다. 선거 때마다 나타났지만 충청의 꿈을 지피지 못하는 도깨비불 같았다. 결국 그와 함께 자민련이라는 정당도 역사 속으로 사그라졌다. 자민련 사후 충청은 그나마 전국 민심의 척도라는 자리를 찾았지만 상실·낭패감은 컸다.


그가 정계를 떠난 뒤에도 무수한 정객들이 충청 대망이란 허깨비를 좇아 기웃거리다 결국 기진했다. 이른바 ‘포스트 제이피’였다. 충청에 뿌리를 둔 야심들은 부나비처럼 제이피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이회창 전 총리, 이인제 전 의원이 그랬다. 지난 대선 때는 반기문씨가 뒤를 이었다. 대선 유력 후보로 떠오른 2016년 5월 유엔 사무총장 신분으로 제이피의 집을 찾아 비밀 얘기를 나눴다. 사실상 정치 행보였다. 이 무렵 안희정 전 충남지사도 제이피의 마음을 얻으려 애썼다는 후문이다.
공교롭게 이들 모두 대권 시야에서 사라졌다. 제이피도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했다. 이제 지역주의에 기댄 ‘충청도 핫바지론’, 허상을 좇는 ‘충청 대망론’도 영면하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한다.

< 오윤주 - 한겨레신문 충청 강원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