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간 경제협력의 역사를 나무라고 한다면, 그 뿌리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주도의 ‘소떼 방북’이라고 할 수 있다. 꼭 20년 전인 1998년 6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보내진 1001마리의 소떼는 같은해 11월 금강산관광 사업 개시라는 오른쪽 줄기와 2003년 6월 개성공단 착공이라는 왼쪽 줄기로 뻗어나갔다.
 
소떼 방북을 역사의 망원경으로 조망하면 1개의 점처럼 보이지만, 넉달의 시차를 두고 마무리되는 동안 남북 사이에는 악재가 이어졌다. 북한 잠수정 동해안 침투(6월), 무수단 미사일 발사(8월), 첫 인공위성 궤도진입 발표(9월) 따위가 남북관계를 냉각시켰다. 당시 남한은 외환위기 사태를, 북한은 이른바 ‘고난의 행군’ 절정기를 맞고 있었다. 그 와중에 2차로 소떼 방북이 이뤄지고 경협으로 발전했다는 건 지금 돌이켜봐도 경이롭다.
현대그룹 자료를 보면, 2008년 7월 사업 중단 때까지 10년 동안 금강산을 오간 관광객은 195만5951명에 이른다. 금강산관광의 줄기에서 이듬해엔 개성관광 개시와 백두산관광 합의라는 가지가 돋아났다. 금강산 사업은 육로관광 실현 뒤인 2005~2007년 3년 연속 영업이익을 거둬 수익성을 검증받기도 했다. 개성공단 조성 및 가동 또한 그 바탕에서 이뤄졌다. 금강산관광이 ‘작은 통일’의 시작이었다면 개성공단 조성은 ‘상생의 시대’를 연 전환점이었다. 2016년 2월 공단 전면 폐쇄 전까지 진출해 있던 남쪽 기업은 124개, 여기에 고용된 북쪽 노동자는 5만4천명에 이르렀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화해 분위기 속에서 올해 두 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6월12일엔 마침내 북-미 정상도 손을 맞잡음에 따라 절단된 남북 경협의 줄기가 머지않아 회복될 것이란 기대를 해봄직하다. 이미 싹이 보인다. 이달 7일 북한의 협조로 ‘유라시아 노선’을 가진 국가들 모임인 국제철도협력기구(OSJD)에 가입하는 숙원을 이뤘고, 8일에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추진단이 방북해 개성공단 시설을 점검했다. 지금껏 이뤄진 경협에선 경제가 앞장서 닦은 길을 정치가 따라가는 형국이었다면, 이번엔 정치적 해빙이 앞서 경제적 교류를 이끌고 있다.
남북 교류와 협력이 확대되면서 불거질 수 있는 게 통일비용 논란이다. 이미 시비를 일으킬 빌미가 제공돼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의 비핵화 때 대북 지원과 관련해 “나는 미국이 (돈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한 사회에선 ‘거 봐라, 우리는 봉 노릇만 한다’는 얘기가 나올 법하다. 그러나 적정한 비용은 쓰임새에 따라 투자가 된다. 소떼 방북의 주역 정주영 회장이 통일비용 논란에 대해 생전에 남긴 말이 있다. “왜 엄청난 분단비용은 생각 못해? 매년 늘려야 하는 국방비 부담과 한창 공부할 나이에 군복무를 해야 하는 젊은이들을 생각해봐.”(<이봐, 해봤어?>, 박정웅 지음)


소의 평균수명이 15~20년이라고 하니 20년 전에 북으로 올라간 소떼 대부분은 생을 다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 후손들이 북한 어딘가에 남아 경협의 꿈을 잇고 있을지 모른다. 1차 소떼 방북 때의 암소 250마리 중에서 90마리가 임신한 상태였음을 확인했다고 하니 말이다. ‘20세기 마지막 전위예술’(프랑스의 기 소르망), ‘핑퐁외교에 견줄 황소외교’(영국의 <인디펜던트>)라는 평을 들은 소떼 방북에서 비롯한 남북 경협의 길이 넓어지고 단단해졌으면 좋겠다.

< 김영배 -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


[칼럼] 양승태의 실낙원

● 칼럼 2018. 6. 19. 17:02 Posted by SisaHan

창단 45년을 맞은 국립합창단은 남북 화해와 대결의 산물이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때 평양에 갔던 남한 인사들이 북쪽이 자랑하듯 보여준 대형 가무극에 압도된 듯하다. 북한에 질 수 없어 이듬해 국립합창단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정치적 의도가 예술의 우연성으로 이어진 셈이다.
남북공동성명 이행이 어그러지자 합창단 예산이 끊길 위기에 처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합창단을 살린 것은 이번에도 북한이었다. 대남 비방 방송에 맞불을 놓는 대북 방송 녹음을 국립합창단이 맡았는데, 실세였던 JP(김종필)가 비교우위를 인정하며 숨통이 트였다는 것이다. 하여 4·27 판문점선언과 6·12 북-미 정상회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가는 한반도 정세 대전환기에는 국립합창단 주요 레퍼토리인 하이든의 ‘천지창조’가 제격이겠다.

JP처럼 이니셜로 자신의 모든 걸 설명하는 이들이 있다. DJ(김대중), YS(김영삼)는 알파벳 두 글자로 일세를 풍미했다. 큰 꿈을 꾸는 후배 정치인들도 은근히 이니셜만으로 불리길 원했지만 그건 시대가 허락하는 일이다. 욕심만으로 되지 않는다.

대신 이니셜은 재벌가 코드명으로 자리잡았다. 삼성에선 한때 이건희라는 이름 대신 대문자 A를 썼다. A′(홍라희), JY(이재용), BJ(이부진) 등 총수 일가의 코드명이 승계와 의전 문건의 은밀함을 더했다. 황제의 이름을 감히 문장에 올리지 못했던 피휘(避諱)의 현대판이다. 최근엔 한진그룹 조현민의 코드명 EMQ가 화제다. 미국 국적인 그의 영문명(Emily)에 마케팅 여왕(Marketing Queen)의 앞글자를 땄다고 한다. 백두혈통 못지않은 신성가족, 그들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하는 후진성이 불법과 갑질, 특권의식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
‘CJ와 VIP 면담으로 상고법원 입법추진 환경에 의미 있는 전환점 도래’.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 문건에서 피휘를 볼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다. CJ는 대법원장을 뜻하는 치프 저스티스(Chief Justice)의 약자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지칭한다. VIP로 통칭되는 대통령은 그렇다 치자.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자연스럽게 재판장 중심으로 좌우배석 삼각편대를 이루는, 위계와 서열의 법원 조직 문화에서 ‘대법원장 양승태’는 감히 문서에 이름 석자 올리지 못할 존재였다.

대법원 비밀보호규칙은 누설될 경우 국가안전보장에 유해한 결과를 초래하는 내용은 비밀로 분류하고, 특별히 보호해야 할 사항은 비밀에 준하는 대외비로 분류한다. CJ가 등장하거나 CJ 보고용으로 작성된 대외비 문건에는 양승태 사법부가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벌인 은밀한 뒷거래 또는 그 시도가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왜 비밀스럽게 감춰야 했는지 미뤄 짐작 가능하다.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의미가 없다”며 재판 보이콧을 선언한 데는, ‘나는 2015년 여름 너희 대법원장이 한 일을 알고 있다’는 기막힘도 있었을 것이다.

“그 언론사 사장이 질문하는 분 컴퓨터에 뭐가 들어 있는지 다 알고 있을까요?” 양 전 대법원장은 문건 작성을 지시했냐고 묻는 취재진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일국의 치프 저스티스가 스스로를 사장에 빗대어 궁지에서 벗어나려 했다. 대기업 총수처럼 수하를 부려 상고법원이라는 ‘인사권 강화’ 로비도 주저하지 않았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재임 6년간 타락시킨 사법부는 그의 에덴이었다. 이제는 실낙원이다.

< 김남일 - 한겨레신문 법조팀장 >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 보고서의 파장이 만만찮다.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들이 회의를 소집하고 케이티엑스(KTX) 해고승무원들이 대법정에 들어가 항의하는가 하면 전교조는 회견을 열어 ‘판결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특조단이 공개한 극히 일부 문건만 봐도 사건 당사자들이 분노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그럼에도 법원행정처는 ‘치유와 통합’을 내세워 문건을 대부분 비공개했고 김명수 대법원장은 고발 여부를 놓고 장고 중이다. 재판권 독립을 침해받은 판사들뿐 아니라 공정한 재판 받을 권리를 유린당한 당사자들을 외면하는 처사다.


특조단은 확보한 410개 문건 중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집행정지 관련 검토’ 등 3건만 내용을 공개했다. 그런데 3건은 물론 나머지 407건 중에도 제목만 보더라도 ‘사법농단’의 의혹이 짙은 문건들이 적잖다. 2015년 8월6일 박근혜 대통령과 양승태 대법원장 면담을 전후해 작성된 ‘VIP(대통령)보고서’(2015년 8월3일)에는 ‘창조경제 구현을 위한 법원’ ‘노동문제 해결 프로세스 혁신’ 등의 목차가 들어 있다고 한다. ‘BH 민주적 정당성 부여 방안’(9월5일)이나 ‘한명숙 판결 이후 정국전망 및 대응전략’(8월23일)이란 문건도 있다. 제목만 봐도 대법원이 아니라 정부·여당에서 만들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조선일보>가 여러 문건에 등장하는 것도 매우 이례적이다. ‘조선일보 홍보전략’ ‘조선일보 보도 요청사항’ ‘조선일보 방문 설명자료’ 등 10건에서 실명으로 등장한다. 조선일보는 이 사건 초기부터 ‘블랙리스트는 없다’며 판사들이 없는 ‘괴담’을 만들어냈다는 식으로 과도하게 ‘양승태 대법원’을 옹호하는 보도를 해왔다. 상고법원에 반대하는 판사들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보수 언론을 통해 대응 논리를 유포하고 반대 입장을 폄하·고립화하며 진보 성향 판사들의 돌출성 언행 전력을 부각시킨다’는 전략(‘상고법원에 대한 법원 내부 이해도 심층화 방안’, 2015년 7월6일 작성)을 짠 행정처의 ‘홍보’와 ‘설명’이 효과를 본 것인가.


문건 내용을 공개하지 않으면 의혹만 키울 뿐이다. 판결을 놓고 정권과 뒷거래했다는 의혹투성이 문건들이 쏟아져 나온 사법사상 초유의 사건 앞에서 김 대법원장은 진상 규명에 직을 걸어야 한다. 그러려면 문건을 공개하고 관련자들을 모두 고발해야 마땅하다.


2주 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통신장비 업체인 중싱이 어려움에 처해 중국의 일자리가 줄었다고 걱정하는 트위트를 올려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윌버 로스 상무장관에게 중싱을 도울 방법을 알아보라고 했다. 워낙 ‘깜짝 행동’을 뿌듯해하는 대통령이긴 하지만 이 트위트는 아주 의외였다. 중국 일자리를 걱정하는 건 그가 취임 연설에서 자랑스럽게 선언한 ‘미국 우선’ 철학과 180도 다르게 보여서다.
미국의 단기적 이익을 최우선 정책 순위로 본다면 중국의 일자리 감소가 어떻게 핵심 관심사가 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대중 무역 적자를 줄인다는 것은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중국의 일자리를 미국의 일자리로 대체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중싱의 고용 전망을 걱정하는 게 엉뚱해 보이는 또 다른 이유는, 중싱이 어려움에 처한 것은 북한·이란에 대한 국제적 제재를 위반해 징벌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트럼프는 언제든 모호한 ‘국가 안보’를 이유로 무역 파트너와 동맹국에 일방적으로 징벌적 관세를 부과할 준비가 돼 있다. 대부분의 경우 이런 관세는 동맹국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 일자리 감소는 부적절한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트럼프가 무역 적자를 줄이는 방식일 뿐이다.
트럼프의 갑작스러운 중싱 일자리 걱정은 며칠 뒤 중국 국영기업들이 인도네시아의 트럼프 리조트에 수억달러를 빌려줄 것이라는 사실이 공개된 뒤 다시 보게 됐다. 중싱을 도와주려던 게 인도네시아 사업 지원에 대한 보답이었나? 트럼프의 행동이 자신이나 그 가족의 사업을 도우려는 노력과 연결되는 경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4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위안화 가치 문제를 제기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트럼프는 시진핑이 북한 문제에서 자신을 도울 것이라고 말하면서, 왜 환율 문제를 꺼내 시진핑을 귀찮게 하느냐며 그 질문을 무시했다. 트럼프는 대선 캠페인 때 중국을 “세계적 수준의 환율 조작국”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던 그가 중국의 환율 문제에 대해 갑자기 관심이 줄어든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가 시진핑을 만난 날 중국 정부는 그 회담에 동석한 트럼프의 딸 이방카에게 의류 액세서리에 대한 상표권 세 개를 승인했다. 이들 상표권은 당연히 이방카에게는 상당히 값나가는 것이었다.


물론 중국 국영기업들의 인도네시아 투자와 이방카 상표권 승인은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가족의 사업을 유리하게 하려고 공개적으로 대통령직을 이용한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해 보인다. 그게 아니라면, 트럼프가 오랫동안 중국에 대해 지녀온 비판적인 태도를 뚜렷한 이유도 없이 갑자기 포기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그런 점에서 다른 대통령들과 확연히 다르다. 대통령은 자신의 재산이 그의 정책에 쉽게 휘둘리지 않도록 재산을 백지신탁하거나, 팔아서 국채나 인덱스 펀드 등의 자산으로 보유하는 게 오랜 규범이었다.
트럼프는 오랜 규범을 완전히 무시했다. 그는 사업 운영을 자녀들에게 넘겼지만, 언제든 되돌릴 수 있는 옵션을 갖고 있다. 게다가 그는 가족 사업이 보유한 자산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 트럼프는 엄청난 부자이기 때문에 돈이 적었던 전임 대통령들보다 사업에서 완전히 손 떼는 게 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더 이상 수익을 내지도 손실을 보지도 않는 방식으로 사업에서 스스로를 분리할 수 있는 비교적 간단한 해법들이 있었다.


외국 정부가 트럼프의 사업에 유리한 행동을 할 때는 트럼프 쪽의 정책적 양보에 대한 대가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트럼프의 외교 정책 의제나 개인적 철학을 이해하려고 해서는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혹은 다른 나라들에 대한 그의 행동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의 정책들은 사업을 위한 것이다. 트럼프가 움직여서 어떤 나라가 유리해지는지 알고 싶다면 그의 사업을 누가 가장 많이 도왔는지를 보라. 트럼프에게 국민 다수를 위한 의제라는 것은 없다. 주머니에 돈을 채우는 것만 있을 뿐이다.

< 딘 베이커 - 미국 경제정책 연구센터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