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운동 "함께 비 맞는 심정으로 새 출발을"

● 칼럼 2020. 6. 1. 10:31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선 30년, 시민과 함께 할 방향을 고민하자

         ‘위안부 운동 향후 진로’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이번 기회에 민간 단체 실정 맞는 표준회계 기준 만들어 지원을

 시민사회 위축 시민들 기댈 언덕이 하나둘 무너질까 두렵기 때문”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 사건이 티브이의 유명 탐사 프로그램으로 방영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결국 터질 게 터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불쑥 걱정이 앞섰다. 사람들은 나눔의 집과 ‘정의기억연대’(정의연)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정의연 사건이 터진 상황에서 다시 나눔의 집 비리가 폭로되니 지금까지 애써 일구어온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한 세계적인 전시 성폭력 고발 운동에 씻지 못할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지진 않을까 걱정이 든 것이다.

그런데 정의연에 대해서는 없는 사실까지 악마의 편집 기술을 동원해 공격해대던 언론과 극우세력들이 너무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나눔의 집 회계부정에는 주목하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지속적으로 원칙적인 입장에서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사과를 요구하는 정의연의 운동,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전시 성폭력과 성착취 문제를 공론화하고 국제연대를 펼쳐온 그 운동을 이번 기회에 지우고 싶은 것으로 생각되었다면 너무 심할까? 사실 ‘위안부’ 문제가 풀리지 않는 일차적인 책임은 책임을 계속 부인하는 일본 정부에 있다. 그리고 한국 정부도, 국회도 적극적인 해결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런데도 모든 책임을 정의연에 뒤집어씌우고 있다.

피해자에서 생존자로 그리고 인권활동가로 거듭나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제기해온 당사자인 이용수씨는 정의연을 정면으로 부정하면서 ‘할머니를 팔았다, 이용당했다’는 기자회견을 두 차례나 했다. 극우세력들이 ‘위안부’ 운동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그렇게 이 여성인권 평화운동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회계부정이 있었다면, 그리고 윤미향 의원이 부정한 방법으로 공금을 유용했다면 분명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렇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은 아니어야 한다. 너무 성급하고 지나치다. 그 성급함과 지나침 속에서 이 운동을 이끌어온 피해자이자 생존자인 ‘위안부’ 당사자, 연구자, 전문가들은 씻지 못할 상처를 입고 있다. 활동가들은 지쳐가면서 동시에 두려움에 떨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 2015년 12월28일 한-일 정부의 밀실합의 책임마저 윤 의원과 정의연에 돌리려는 술책은 정의연의 활동가들을 엄청난 스트레스에 내몰고 있다. 이전부터 이런 상황을 견딜 수 없었던 활동가들이 하나둘 이 운동을 떠나기도 했다. 그들에겐 이런 문제제기가 30년 동안 이 운동을 해오는 과정에서 당했던 그 어떤 모욕과 비난보다 더 아프고 힘들 것이다.

회계부정 의혹은 검찰에 공이 넘어갔으니 수사 결과를 지켜보자. 그리고 이번 기회에 민간법인과 민간단체의 실정에 맞는 표준회계 기준을 만들고 전문성 부족으로 이런 일을 제대로 처리하기 힘든 민간법인과 민간단체의 회계 정리를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하자. 선진국들에서는 그렇게 한다. 시민사회가 위축되면 시민들이 기댈 언덕이 하나둘 무너지는 결과로 귀결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지금은 앞으로 ‘위안부’ 운동, 전시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할 때다. 윤 의원은 이 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고, 이 운동을 대표했다. 이 운동에서 그의 자리는 너무 크다. 그런 그가 충분한 준비 없이 급히 서둘러서 자리를 옮겼다. 윤 의원이 몇몇 의혹에 대한 결백을 주장하는 것만으로 이 상황이 쉽게 마무리되지 않는 건, 30년 동안 이 운동에 책임을 진 자로서 윤 의원이 지고 가야 할 숙명 같은 것이다. 그가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처럼 마지막까지 의혹 해소를 위해 책임 있는 자세를 견지해주기 바란다.

이용수씨도 자신이 인권활동가임을 자각한다면 그에 따른 책임의 문제도 함께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피해 생존자로서, 그리고 인권활동가로서 하는 말은 무게가 다르다. 정의연 운동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면 방법과 형식이 달라야 했다.

정의연은 30년 운동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운동의 원칙과 방향을 점검하고, 그 방향을 실현해갈 사람과 조직이 시민들과 함께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보면 좋겠다. 피해자 민족주의, 소녀상으로 대표되는 고정화된 이미지와 피해자의 성역화, 여성주의적 관점의 부족, 운동의 독점 현상 등에 대한 비판을 귀 기울여 듣고 겸허히 성찰해야 한다. 외부의 공격에 맞서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내부에 억압으로 작용한 조직 문화는 없었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물경 30년이다. 혁신하려는 몸부림이 없는, 관성에 내맡겨온 운동이라면 그 운동의 미래는 없다. 이 운동을 책임지고 끌고 갈 사람을 키우는 일부터 뼈아프게 점검해야 한다.

나는 ‘위안부’ 운동을 30년 동안 이끌어온 정의연이라면 새롭게 거듭나는 해법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정대협-정의연의 운동은 새로운 출발선에 놓여 있다. 이 운동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라면 나는 정의연과 함께 비를 맞는 심정으로 곁에 서겠다.

<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


[칼럼] "불가역" < 김훈 작가 >

● 칼럼 2020. 6. 1. 06:33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김훈 칼럼]     불가역

1910년 8월22일에 조인된 한일합병조약 제1조는 “한국 황제폐하는 한국 전체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국 황제폐하에게 넘겨준다”였다. 제2조에서 “일본국 황제폐하”는 이 넘겨줌을 “승낙”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동안에 순종은 고위관리 수백명을 아무런 이유 없이 특진시켰고 이미 죽은 관리, 종친 수백명에게 시호와 훈장을 내려서 명예를 높여주었다.

승진, 승격 인사를 마치고 나서 순종은 옥음으로 말했다. “허약한 것이 고질이 되고 영락이 극도에 이르러 회복시킬 가망이 없으니… 너희들 관리와 백성들은 소란을 일으키지 말고…” 이로써 조선은 망했다.

순종 실록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을 때, 합병조약 제1조의 “완전히 또 영구히”라는 일곱 글자는 내 눈앞에 절망의 절벽을 일으켜 세웠다.

나치는 지구상에서 유대인의 존재를 박멸하는 정책을 세우고, 독가스로 몰살해서 전기오븐으로 태우는 방식을 ‘최종적 해법’(the Final Solution)으로 정했다. “최종적”은 돌이키지 못한다는 뜻이다.

‘최종적 및 불가역적 합의’라는 말은 2015년 12월28일 박근혜 정부와 아베 정부가 합의한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도 들어 있다. 이 글자 10개는 한일합병조약 1조와 나치의 용어를 떠오르게 했다. 인간의 언어와 사유와 희비의 길을 영구히 틀어막겠다는 것이다.

있었던 일은 없었던 일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 해결’이 아니라, 그 험난한 앞날의 시작이다. < 김훈 작가 >

2015년 12월28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회담을 마친 뒤 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이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칼럼] ‘한명숙 사건’이 재조명돼야 할 이유

● 칼럼 2020. 5. 29. 03:41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칼럼] ‘한명숙 사건’이 재조명돼야 할 이유

                       

“검사를 만나면 그는 언제, 어떻게 당신의 유죄를 입증할지 얘기하지 않아. 어떻게 당신을 죽일지 얘기하지. 그는 당신이 결백한지 아닌지엔 관심도 없어. 당신을 죽이는 것에 대해서만 얘기하지. … 악몽 같은 일이야. 당신은 깨어나고 싶겠지. 하지만 그럴 수 없어.”(미국 다큐멘터리 <가늘고 푸른 선>의 주인공 랜들 애덤스, 그는 이 다큐를 통해 살인 누명을 벗고 12년 만에 풀려났다.)

“내가 무서워서 10만불 주었다고 했는데, 사실은 사실이 아닙니다. … 검사님이 눈을 부릅뜨니까… 무서우니까… 나도 모르게 이야기했어요. … 검사님이 안 되면 없어도 탁 죄를 만들잖아요. … 식구들이 와서 ‘이러다가는 죽게 생겼으니까 다 불어라’고 했습니다. 저도 몸이 너무 아파서 죽을 것만 같았고.”(한명숙 전 총리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법정 진술)

어느 나라에서건 어떤 혐의로 조사를 받건 검사는 힘있고 두려운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그 힘과 두려움이 진실을 뒤집거나 왜곡해서는 안 된다. 고문과 조작이 지배하던 전근대적 형사사법체제를 버린 이유다. 그래도 여전히 막강한 힘에는 남용의 유혹이 따르기 마련이다.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을 재조명할 지점은 이곳이다. 한 전 총리가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1차 사건’(뇌물)에서는 곽영욱 전 사장에 대한 강압 수사가 판결문에 드러나 있다. 이번엔 <뉴스타파>가 ‘2차 사건’(정치자금)에서도 강압·조작 수사가 있었다는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의 비망록 등을 공개했다. 허위 진술조서를 써 외우게 한 게 사실이라면 심각한 범죄다.

과정이야 어떻든 유죄만 받아내면 된다는 식의 수사 행태는 심심찮게 되풀이돼왔다. 논란이 일면 불법과 싸운다는 명분으로 돌파한다. 이런 수사는 대개 검사의 공명심이든 정권이나 검찰 조직의 이해관계든 부적절한 의도가 끼어들었다는 의심을 받는다. 한 전 총리 사건도 그랬다. 검찰은 1차 사건에서 곽 전 사장의 진술 번복으로 패색이 짙어지자, 무죄 선고가 나기 바로 전날 2차 사건 수사에 돌입했다. 두달 뒤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 전 총리는 0.6%포인트 차이로 낙선했다. 표적 수사, 오기 수사, 선거개입 수사…. 온갖 오명을 붙여도 할 말 없는 수사였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검찰에 불신이 쌓이고 이는 수사·재판 결과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검사는 형사사법체제 그 자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배적인 권한과 재량권을 갖지만, 남용을 통제할 장치는 허술한 데 원인이 있다. 검찰은 행정부 소속의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면서도 그 성격상 독립성을 부여받는다. 이런 경우 민주적 정당성과 책임성을 확보할 방안이 반드시 필요하다. 검찰권 행사에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거나 외부의 감시·견제를 강화하는 게 그것이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에서도 증거 왜곡, 과잉 기소, 선택적 기소 등 검사의 독단이 낳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지방검사장을 선거로 뽑고, 기소 여부를 시민들(대배심)이 결정하는 등 민주적 정당성을 받쳐주는 제도가 있는데도, 추가적인 감시·견제 장치에 대한 요구가 확산되는 배경이다. 캘리포니아주는 2016년 검사가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숨기거나 증거를 왜곡하는 행위를 중범죄에 포함시켰다. 뉴욕주는 검사의 비윤리적·불법적 행위를 신고받아 조사하는 독립기구를 추진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검찰청과 중대범죄수사청(검찰과 별도의 수사·기소 기관)을 감시·감독하는 검찰감찰청을 따로 두고 있다. 일상적으로 사건 처리의 적절성, 피해자·증인들의 평가, 인권 침해 등을 조사하고 그 결과와 권고사항을 공표한다. 여기에 더해 독립적인 민원심사관을 둬 접수된 불만 사항을 조사한다. 겹겹의 장치를 두는 이유는 “시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라고 한다.

우리는 검찰권 분산·견제를 위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만든다. 의미있는 첫발이다. 그러나 기소권의 대부분과 상당한 직접수사권을 유지하는 검찰을 촘촘히 감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공수처 역시 감시의 대상이다. 시민 참여를 통한 민주적 정당성 확보 제도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공포와 독단이 지배하지 않는 형사사법체제를 완성하려면 할 일이 아직 많다.

< 박용현 논설위원 >

 

[칼럼] 삼성, ‘4세 경영’은 어차피 어려운 터에…

● 칼럼 2020. 5. 13. 04:45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칼럼] 삼성, ‘4세 경영’은 어차피 어려운 터에…

재벌 대기업에서 ‘3세 경영’ 시대를 처음 연 것은 1981년 두산그룹이었다. 40년에 이르는 국내 재벌 3세 체제의 역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주류를 이루고 있다. 재계 1위 그룹의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2위인 현대차그룹의 경영을 사실상 이끌고 있는 정의선 총괄 수석 부회장은 그 상징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6일 대국민 사과문에서 언론의 집중 관심을 끈 대목은 ‘4세 경영’ 포기 발언이었다. 다음날 주요 신문의 1면은 ‘삼성 경영권 대물림 않겠다’, ‘4세 경영 포기 선언’, ‘제 아이들에게 경영권 물려주지 않겠다’는 제목의 기사로 덮였다.

4세 경영 포기가 재계를 놀라게 했을지는 몰라도 경영계 동심원 바깥까지 흔든 것 같지는 않다. 이 부회장의 ‘아이들’은 20살 아들과 16살 딸이라 4세 경영 여부는 먼 미래 일이다. 또 그가 총수 역할을 하기 시작한 지 6년밖에 되지 않았다.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과 2세 이건희 회장의 재임 기간(49년, 27년)에 견주면 멀었다.

더 중요하게는 그룹의 핵심 중 핵심인 삼성전자의 덩치가 커져 특정 가문이 장악하기는 어렵고 더 어려워지고 있다. 4세 경영 포기라는 게 실상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을 ‘안 하겠다’고 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허망함을 띠고 있다.

이 부회장 가문과 삼성 계열사 보유의 삼성전자 지분은 다 합쳐 20%를 갓 넘는 수준이다. 이건희 회장(4.18%), 삼성물산(5.01%), 삼성생명(8.51%)이 주요 축이며, 이 부회장 몫은 0.7% 수준이다. 그가 지주회사 격인 물산의 주식을 17.08% 확보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또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따른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의혹은 검찰 수사 대상이다. 도덕적 정당성 부족에 법적 위험이 겹쳐 있다. 편법과 탈법에 얽힌 탓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부회장이 아버지로부터 주식을 온전히 물려받으려면 막대한 세금을 물어야 한다. 현금을 10조원 이상 마련해야 할 것이란 추정이 있을 정도다. 다음 세대로 넘길 때마다 상속세 때문에 몫이 절반씩 줄어든다는 사정을 고려하면 4세 경영이 정상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삼성에서 4세 경영을 한다는 것은 곧 지금까지 한 것보다 더 심한 편법, 불법으로 지분을 부풀려야 한다는 얘기나 마찬가지”(김진방 인하대 교수)다.

헌법상의 노동 3권에 정면 배치되는 무노조 경영이야 말할 필요조차 없고, 삼성에서 4세로 경영권을 넘기는 일 또한 정상적, 합법적으로는 어렵다. 기업 인수와 합병, 증자를 통해 덩치를 불린 데 따라 총수 가문의 지분율이 급락한 국내 최상위권 재벌의 공통 고민이다. ‘총수 자리에 오른 뒤 능력을 입증하려는’ 비정상에서 벗어나 ‘능력을 인정받아 총수 자리에 오르는’ 정상 궤도 쪽으로 등 떠미는 요인이다.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이 부회장의 선언을 깎아내리기만 할 일이 아님은 물론이다. 허망함을 띤 선언이라도 안 한 것보다는 나을 테고, 후속 조처의 알맹이에 따라선 좋은 변곡점을 마련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 다음날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정례회의를 연 뒤 노동 3권의 실효성 있는 보장, 시민사회의 신뢰 회복 방안과 함께 ‘준법 의무 위반이 발생하지 않을 지속가능한 경영체계 수립’을 주문했다. 총수와 가신을 중심으로 한 전횡 체제를 개선하라는 요구로 읽힌다. 사과의 진정성은 이에 대한 응답과, 진작 내놓은 약속의 이행 수준으로 판명 날 것이다.

이 부회장에 앞선 두 삼성 총수의 대국민 사과, 그에 따른 약속은 실천으로 뒷받침되지 않았다. 사카린 밀수 사건에 얽혔던 창업자 이병철 회장의 1966년 은퇴 선언은 1년 뒤 복귀로 번복됐다. 2008년 이건희 회장의 사퇴 선언과 차명계좌 4조5천억원 사회 환원, 지배구조 개선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이 부회장의 신약(새 약속)이 의구심을 남기는 것과 무관치 않은 사연이다. 구약(옛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터에 제시된 신약이 미덥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다.

삼성과 이 부회장에게 ‘신약 개발’보다 더 필요한 것은 ‘구약 이행’일 것 같다. 구약 중에는 지금이라도 돌이켜 교정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 있다. 구약의 이행이야말로 신약의 신뢰도를 높일 더없는 묘약이다. 신약에 따른 후속 조처의 실행은 금상첨화의 양약일 테고.

< 김영배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