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국과 쿠바가 선택한 의료제도

● 칼럼 2020. 6. 12. 04:13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칼럼] 미국과 쿠바가 선택한 의료제도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의 지역방송 <덴버7>은 지난달 말 코로나19에 감염돼 집중치료실에서 2주 동안 치료를 받은 로버트 데니스라는 이의 치료비 내역을 공개했다. 총액이 자그마치 84만385달러 94센트였다. 약 10억원이다. 진료비와 약값 등을 포함한 것인데, 약값만 25만달러(약 2억9700만원) 정도라고 방송은 전했다.

코로나19 치료비는 ‘코로나바이러스 지원, 구제, 경제 안전 법’(CARES Act)에 따라 처리되기 때문에 환자 부담은 거의 없고, 실제로 데니스의 경우도 보험사가 전액 처리해줬다고 한다. 하지만 데니스의 부인은 “이런 숫자가 적힌 내역서를 보는 것만으로도 두렵다”고 말했다. 이 사례는 미국 병원들이 어떤 치료를 하고 의료진의 인건비는 얼마나 높게 책정하기에 상상을 초월하는 비용이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미국이 세계 최고의 의료진과 기술을 갖춘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최고의 의료를 제공하는 비용이 너무 높아 많은 사람에게 ‘그림의 떡’이라는 점이다. 세계은행 자료를 보면 2017년 미국의 총 의료비 지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17.06%다.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17.14%)에 이은 세계 2위다. 스위스(12.35%), 프랑스(11.31%), 독일(11.25%)과도 꽤 차이가 난다.

나라 전체가 많은 돈을 의료에 투입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혜택은 선택받은 이들만 누리는 미국과 대조적인 나라가 플로리다주 바로 아래 섬나라 쿠바다.

쿠바의 2017년 총 의료비 지출 규모는 국내총생산의 11.71%다. 경제 규모에 비해 적지 않은 자원을 의료에 투입하는 것이다. 피델 카스트로가 1959년 혁명을 일으킨 이후의 의료 정책 핵심 목표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카스트로의 생명을 연장할 의술이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건강을 보장할 의술’을 무료로 보급하는 것이다.

이 정책의 핵심은 1980년대에 확립된 가정주치의 제도다. 의사 한명과 간호사 한명이 짝을 이뤄 600~1500명 정도의 주민 건강을 꾸준히 관리한다.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환자는 20~40명의 의사와 간호사가 근무하는 지역 종합외래진료소로 보내진다. 여기서도 치료가 어려운 환자는 상급 종합병원이 맡는다.

쿠바의 가정주치의 제도는 코로나19 대응에 뛰어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 7일(현지시각) 쿠바의 가정주치의들이 매일 아침 자신이 담당하는 주민을 방문해 상황을 파악한다고 전했다. 이 덕분에 쿠바의 코로나19 환자는 최근 두달 동안 꾸준히 줄고 있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10일 발표 자료를 기준으로 하면, 쿠바의 누적 확진자는 2205명이며 사망자는 83명이다. 인구 100만명당 사망자 수는 7.33명이다. 미국의 누적 확진자는 195만1096명, 사망자는 11만770명이다. 100만명당 사망자 수는 338.38명이다.

이쯤 되면 미국인들도 자국의 의료체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만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에이피>(AP) 통신이 7일 발표한 자체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인 70%는 의료 혁신 측면에서 정부보다 민간 기관을 신뢰한다고 답했다. 의료의 질 개선(62%), 의료보험 보장(53%) 측면에서도 정부보다 민간을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에이피>는 이런 결과가 코로나19 발생 초기인 지난 2월 조사와 거의 차이가 없는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인의 판단과 선택은 그 자체로 존중해야겠지만, 그들의 방식이 코로나19 사태 같은 큰 위기에서 자신들과 세계를 구할 것 같지는 않다.

< 신기섭 한겨레신문 국제뉴스팀 기자 >

 


[칼럼] “이게 나라냐”, 미국의 ‘촛불혁명’

● 칼럼 2020. 6. 10. 04:56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칼럼] “이게 나라냐”, 미국의 ‘촛불혁명’

         

“이건 우리 시대의 혁명이야.”

지난달 25일 백인 경찰의 무릎에 짓눌린 채 “숨을 쉴 수 없다”며 숨져간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분노한 시위가 시작된 지 며칠 뒤 미국인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솔직히 좀 과장된 반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십년간 백인 경찰의 폭력에 흑인들이 목숨을 잃을 때마다 항의 시위는 자주 일어났지만 어떤 변화도 없이 곧 사그라들지 않았던가.

“이번에는 뭔가 다르다.” 이제 많은 미국 언론들이 이런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9일로 시위는 보름째를 맞았다. 대도시뿐 아니라 소도시, 교외지역까지 미국 전역에서 ‘변화’의 함성이 이어지고 있다. 폭력과 약탈이 확연히 줄고 아이들까지 참여하는 ‘평화 시위’가 자리잡았다. 흑인뿐 아니라 백인과 아시아계, 히스패닉까지 인종의 벽을 넘은 각계각층이 함께 인종차별 반대와 경찰 폭력을 해결할 제도 개혁을 요구한다. 한인들도 흑인들과 연대해 시위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1960년대 이후 수십년 만에 가장 광범위한 민권운동이다.

잔인한 빈부격차, 인종차별, 코로나19 위기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무책임하고 무능한 대응, 대량 실업 등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느끼던 미국인들의 절망과 분노에 플로이드의 비참하고 억울한 죽음이 불을 댕겼다. 시위대의 우선 목표는 인종차별 철폐와 경찰 개혁이지만, 정의와 공정과는 거리가 먼 시스템 전반에 대한 개혁 논의도 확산되고 있다. “숨을 쉴 수 없다”는 미국인들의 외침은 몇년 전 한국인들이 촛불을 들고 외쳤던 “이게 나라냐”와 일맥상통한다.

미국판 ‘촛불시위’는 미국을 바꿀 수 있을 것인가?

미국은 ‘실패 국가’가 되어버렸다. 국민들의 고통에 공감해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고, 남 탓과 거짓말에 급급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지만,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만이 아니다. 트럼프가 집권하기 훨씬 전부터 미국 사회는 여기저기 곪고 썩어가고 있었다.

세계 최강대국 쇠락의 첫번째 전환점은 2001년 9·11 공격에 대한 대응이었다. 부시 행정부는 사태의 원인이 된 중동정책을 반성하지 않고, 근거 없는 ‘대량살상무기’ 주장을 앞세워 이라크를 침공했다. 혼란에 빠진 중동에서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거나 난민이 됐다. 미국이 세금으로 퍼부은 막대한 전비는 군사·에너지 기업들에 막대한 이익을 안겼고, 서민들에겐 큰 부담이 됐다.

두번째 전환점은 2008년 금융위기였다. 정부와 의회는 천문학적인 세금을 구제금융으로 투입해 월가의 은행들과 금융회사들을 구했다. 무책임한 투자로 시스템을 망가뜨린 월가 사람들은 일자리와 자산을 지켰다. 반면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집과 일자리를 잃고 빚더미에 앉았다. 1%의 상류층과 하층민, 대도시와 농촌, 엘리트와 서민들 사이의 분열은 끝없이 깊어졌다.

분열을 틈타 대통령이 된 트럼프의 무책임과 ‘작은 정부=효율’의 논리를 내세우며 정부가 되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득권층은 완벽한 공생관계를 형성했다. 트럼프는 사상 최대 감세를 통해 기업과 부유층에 막대한 돈을 벌어주었고, 이익을 얻은 이들은 트럼프의 재선을 위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코로나19 재난 앞에서도 월가는 또다시 거액의 구제금융을 받아냈고 불안정해진 시장을 활용해 큰 수익을 챙겼다. 일자리를 잃고 식량을 배급받으려고 줄을 선 빈곤층과는 딴 세상처럼, 증시는 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번 시위는 절망 속의 희망이다. 너무나 거대한 문제 앞에서 무감각해져 침묵해온 미국인들이 인종과 계층의 벽을 넘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사회의 진정한 변화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오지만, 복잡한 선거인단 제도와 백인 중도층 민심은 큰 변수다. 또 트럼프가 퇴장한다고 해도 소수에만 이득이 집중되는 국가 시스템과 군사주의, 관료주의를 고칠 개혁은 쉽지 않다. 민주당의 조 바이든과 기득권을 쥔 정치인들이 변화를 만들어낼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도 불투명하다.

아래로부터 분출한 에너지가 경찰 개혁을 넘어선 사회 개혁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이미 너무 늦었을까? 알 수는 없지만, 포기할 수도 없다. 이번에도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미국뿐 아니라 세계가 무질서와 갈등이 들끓는 ‘전국시대’로 빠져들지도 모른다.

< 박민희 논설위원 >

 


[칼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그 이상한 분담

● 칼럼 2020. 6. 8. 10:36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지금 진행되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의 문제는 지위협정을 위배한 특별조치협정을 또다시 위반하면서 주한미군 유지 경비 이외의 비용마저도 한국에 부담시키려고 한다는 점이다.

이미 미군은 지난해 한국이 낸 방위비 분담금 중 134억원을 주일미군 전투기와 탐색구조 헬기 정비 등에 쓴 것으로 드러났다.

       

방위비 분담금이 왜 문제인가? 언뜻 보면 아무 문제가 없다. 미국이 군대를 파견하여 한국의 방위를 분담하고 있으니, 한국은 그 비용을 분담한다는 것 아닌가. 한국이 경제적으로도 성장했고 국제적 위상도 높아진 만큼 그에 걸맞게 책임을 진다는 건 어떻게 봐도 논박하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맞지 않는가.

맞지 않는다. 한국은 2015년 한 해에만도 5.4조원에 이르는 방위비 분담을 했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사업도 총 사업비 11조원 중 90% 이상을 한국이 부담했다. 원래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 개정협정에 따라 미국이 부담하기로 했던 미 2사단 이전 비용까지 한국이 대부분 부담했다. 매해 이미 결코 적지 않은 비용을 분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양국의 합의에 따라 미국이 부담하기로 한 비용까지도 한국이 지급한 것이다. 한국은 이미 책임져야 할 비용 이상을 분담하고 있다.

문제는 현재 한·미 당국자들이 협상하고 있는 ‘방위비 분담금’은 이러한 넓은 의미의 방위분담과는 다르다는 사실에 있다. 방위비 분담금은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 제5조에 대한 특별조치에 대한 대한민국과 합중국 간의 협정’(특별조치협정)에 따라 주한미군에 지급되는 지원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특별조치협정에 따른 방위비 분담금으로는 주한미군의 주둔비용 중 일부를 지원하기로 되어 있다. 현재 트럼프 정부가 요구하는 것은 이러한 항목 이외의 지원도 한국이 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요구가 바로 문제다.

당장 주목을 받는 문제는 미국이 터무니없이 많은 액수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애초 트럼프 정부는 한국의 직간접 지원비 총액을 넘는 6조원을 방위비 분담금으로 요구했다. 최근 협상에서 미국 쪽은 이 요구액을 13억달러(약 1조6천억원)로 ‘축소’했다고 하지만 2019년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과 비교하면 거의 50%를 증액하라는 요구이다. 사실 특별조치협정이 체결된 1991년 이후 방위비 분담금은 눈덩이 불어나듯이 커지고 있다. 첫해 1073억원이었던 것이 매년 불어나 지난해 1조389억원으로 10배 가까이 커졌다. 그런데 1991년 4만3천명에 육박했던 주한미군 병력은 계속 줄어들어 현재는 2만8천명 수준이다. 왜 병력은 줄고 있는데 방위비 분담금은 상승하는 기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특별조치협정이 체결된 배경에 하나의 답이 있다. 이 협정은 1991년 주한미군지위협정의 1차 개정과 동시에 발표되는 바람에 그 중요성이 파묻혔다. 당시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던 것은 주한미군에 대한 한국의 형사재판권 자동포기 조항과 같은 불평등 조항의 개정이었지만 노태우 정부가 협정을 체결한 이유는 1989년부터 시작된 냉전 해체 과정에 있었다. 미국에서 미군 병력 감축 요구가 강하게 제기되면서 만들어진 3단계 주한미군 재조정 계획안에 따르면 1991년까지 1단계로 7천명을 철수하고 3단계(1996~2000년) 이후에는 최소한의 미군만 남긴다는 것이었다. 주한미군을 금과옥조로 여기던 보수 정부에는 날벼락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당황한 나머지 주한미군 철수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방위비 분담금이라는 명목의 돈을 풀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노태우 정부가 얼마나 다급했는지는 이 특별조치협정이 그 모법인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지위협정)을 위반한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지위협정 제5조는 미국이 “대한민국에 부담을 과하지 아니하고 합중국 군대의 유지에 따르는 모든 경비를 부담”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특별조치협정이 모법을 위반하며 주한미군 유지에 필요한 경비를 한국이 부담하기로 한 것이다. 국회의 비준을 받은 지위협정을 중대하게 위반한 특별조치협정이 국회의 비준을 받지 않은 것도 심각한 절차적 문제다.

지금 진행되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의 문제는 지위협정을 위배한 특별조치협정을 또다시 위반하면서 주한미군 유지 경비 이외의 비용마저도 한국에 부담시키려고 한다는 점이다. 이미 미군은 지난해 한국이 낸 방위비 분담금 중 134억원을 주일미군 전투기와 탐색구조 헬기 정비 등에 쓴 것으로 드러났다. 이미 현실적으로 특별조치협정을 무시하면서 주한미군 경비 이외의 목적에 방위비 분담금을 사용한 데 이어 이제 아예 새로운 항목을 만들어 이를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분담금 액수만이 문제가 아니다. 적폐는 바로잡아야 한다.

<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


‘진실’을 밝혀내야 할 언론과 검찰 모두 휴대폰만 확보하면 금방 드러날 ‘진실’이 두려워 뻔한 지름길을 두고 애먼 길을 빙빙 돌았다.

이들이 감추려 했던 ‘검사장’의 행적은 기자와 후배 기자의 통화녹취록, 또다른 녹취록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런데도 국민한테 위임받은 적 없는 ‘사이비 권력’들이 국민 무서운 줄 모르고 진실을 파묻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고 있다.

                 

진실을 드러내는 건 힘겨운 싸움이다. 힘 있는 자들은 법을 앞세우고 제도의 틈을 파고들어 쉽게 감춘다. 그러나 감추려는 ‘권력’자들 못지않게 ‘진실’ 역시 힘이 세다. 감춘다고 해서 흔적까지 말끔하게 지울 수는 없다.

종합편성채널 ‘채널에이(A) 사건’에서도 권력자들은 진실을 감추려 부단히 애썼으나 흔적까지 없애진 못한 것 같다. 이아무개 기자가 수감 중인 이철 밸류인베스트코리아 전 대표를 회유하려 보냈다는 편지에 이미 이 사건의 ‘전모’가 들어 있다. 검찰에 말해 가족들의 선처를 위해 힘써줄 테니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유력 인사들 비리를 넘겨달라는 게 핵심이다.

그런데 기자가 상대를 너무 쉽게 봤던 것 같다. 이씨 대리인으로 나선 지아무개씨의 호주머니까지 뒤졌지만 녹음을 막진 못했다. <채널에이> 보도본부장이 카카오톡 문자에 남겼듯이 이씨의 ‘이중플레이’에 ‘녹아났다’.

지난달 21일 채널에이는 ‘진상조사 보고서’를 공개하면서 물증은 확보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편지나 지씨와의 대화 및 통화 녹취록뿐 아니라 채널에이 ‘보고서’와 두 대표가 방송통신위원회에 출석해 밝힌 속기록에도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단서들은 많다.

지씨가 대화를 몰래 녹음해 <문화방송>과 접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날(3월23일) 아침 채널에이 보도본부 수뇌부는 가장 먼저 외부인, 그것도 ‘검언 유착’ 의혹의 당사자로 주목받는 ‘검사장’에게 연락하도록 했다. 오전 10시 검사장에게 전화해 전달한 내용도 “녹음파일은 없다”였다(보고서 46쪽). 문화방송 보도 8일 전이다. ‘그 일주일(3월23∼31일) 동안 누구도 검사장 목소리를 들어보자고 한 사람이 없었고’(보고서 42쪽), 결국 기자는 문화방송 보도(31일) 직후 휴대폰 2대를 초기화하고 노트북피시를 윈도10으로 업그레이드해 흔적을 지웠다. 채널에이는 보도 다음날에야 진상조사위를 띄웠다. 그사이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지 굳이 따질 필요까진 없겠다.

방송통신위 의견청취 과정에서도 채널에이 두 대표가 극구 감추려 했던 것은 ‘검사장’의 존재였다. 속기록을 보면 이 기자가 통화한 상대가 ‘검사장’ 맞느냐는 위원들의 거듭된 추궁에 결국 고개를 끄덕여 시인했다. 그러나 의견청취가 끝나 퇴장했던 두 대표는 다시 정정발언 기회를 요청했다. 시간 관계로 거절당한 뒤 채널에이 대표 명의로 낸 ‘의견 제출’ 서면의 요지도 결국 ‘검사장인지 확인되지 않았다’였다.

그러나 이들이 극구 감추려 했던 검사장의 행적은 미처 없애지 못한 이 기자와 후배 기자의 통화녹취록과 지씨에게 읽어줬다는 통화녹취록에 고스란히 담겼다. 검사장이 ‘수사팀에 얘기해줄 수도 있으니 만나보고 나에게 알려달라. 나를 팔아’라고 했다는 것이다. 두 녹취록 내용이 거의 일치하니 조작이라 보기도 어렵다.

그 ‘검사장’이 바로 핵심 측근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윤석열 검찰총장의 움직임은 이례적으로 굼떴다. 4월7일 문자로 감찰 착수 의사를 밝혀온 대검 감찰본부장을 제지했다. 이틀간 휴가를 마치고 8일 출근한 뒤엔 굳이 대검 인권부에 조사를 맡겼다. 결국 감찰본부는 ‘검사장’ 휴대폰조차 확보할 수 없었다. 민언련의 고발장이 접수된 지 10일 만인 17일에야 윤 총장은 서울중앙지검에 수사를 지시했다. 문화방송 보도 이후 무려 17일 만이다. 물증을 없애고 진실을 묻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이미 기자 휴대폰의 흔적은 삭제된 뒤였지만…. 수사 착수 뒤에도 ‘균형 수사’를 공개 지시해 적극 수사에 대한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그러나 이런 이례적 행보가 오히려 검찰 안팎에 ‘측근 관련설’의 심증을 굳혀주었다.

‘종편’ 보유 언론들도 거들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는 편지와 녹취록에 나오는 ‘검언 유착’ 대신 ‘친여 브로커’라며 지씨를 공격하는 데 몰두했다. ‘여권의 윤석열 때리기’ 프레임으로 사건의 본말을 뒤집으려 했다.

‘진실’ 규명을 사명으로 하는 언론과 검찰 모두 기자와 검사장의 휴대폰만 확보하면 금방 드러날 ‘진실’이 두려워 뻔한 지름길을 두고 애먼 길을 빙빙 돌았다. 국민한테 위임받은 적 없는 ‘사이비 권력’들이 이렇게 권한을 남용하고 야합했다. 국민 무서운 줄 모르고 진실을 파묻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고 있다.

검찰이 끝내 진실을 덮는다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나설 수밖에 없다. 채널에이나 <티브이조선>에 대해서도 재허가 최종심판을 앞둔 방통위 책임이 무겁다.

< 김이택 한겨레신문 대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