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JP와 ‘충청 핫바지’ 영면

● 칼럼 2018. 7. 3. 19:18 Posted by SisaHan

김종필(92)씨가 별세했다. 전 국무총리, 9선 국회의원, 당 총재 등 다양한 이력을 지녔지만 그의 이름을 딴 ‘제이피’(JP)가 익숙하다.
그가 떠나면서 디제이(DJ) 김대중, 와이에스(YS) 김영삼 전 대통령과 더불어 구가했던 ‘3김 시대’도 막을 내렸다. 두 김은 권력 꼭대기에 올랐지만 제이피만은 끝내 이인자에 머물렀다.
그의 죽음은 충청에선 더욱 각별하다. 권력 언저리에 머문 풍운아, 영원한 이인자로 불렸지만, 적어도 충청에서 그는 언제나 일인자였다. 충청에서 나고 자란 지연 끄나풀에 기인하지만, 우리도 대권을 한번 잡아야 한다는 충청의 막연한 기대감은 일찌감치 그에게 절대지존이란 훈장을 수여했다. 이른바 ‘충청 대망’이란 암묵적 합의였다.


영호남 패권의 틈바구니에서 눈치를 보던 충청은 ‘대권 허기’를 ‘충청 대망론’이란 허상으로 달랬다. 허기는 선거 때 더했다. 이를 유효적절하게 이용한 이가 제이피였다. 영호남은 물론 수도권에도 없는 ‘대망’이란 똬리는 선거 때마다 충청 표를 모았다. 표 냄새를 맡고, 표를 모으는 데 동물적 감각을 지닌 그는 때마다 충청을 자극했고, 대망에 배고픈 충청은 당하는 줄도 모르고 표를 내줬다. 권력을 좇은 합당·야합 등으로 대권 기대는 번번이 물거품이 됐지만 “그나마 제이피가 인물이여”라는 자조는 반발을 눌렀다.
‘충청도 핫바지론’이 정점을 찍었다. “경상도 사람들이 충청도를 핫바지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아무 말 없는 사람, 소견이나 오기조차도 없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다.”(1995년 민선 1기 지방선거 천안역 유세에서)


이 말은 충청 표심을 결집했고, 그가 만든 자유민주연합이 충남의 기초·광역 단체장을 싹쓸이하는 등 충청에서 ‘자민련 광풍’을 일으켰다. 이듬해 열린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분위기를 이어갔다. 대전·충남 선거구 20곳 가운데 19석을 석권하는 등 충청은 자민련 공화국이 됐다. 뒷날 ‘충청도 핫바지’는 본말이 바뀐 그의 정치적 수사였다는 것이 알려졌지만 그의 정치 순발력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겨 표를 긁어모았지만 충청에선 “우리 자존심을 지킨 건 제이피”라며 그를 두둔했고, 적어도 이곳에선 상식처럼 통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표를 챙긴 이들은 충청권 안에 머무른 채 확장하지 못했다. 영호남 패권의 중간 지대를 차지했을 뿐 핫바지가 아니라는 것을 정책으로 증명하지도, 대안 세력이 되지도 못했다. 선거 때마다 나타났지만 충청의 꿈을 지피지 못하는 도깨비불 같았다. 결국 그와 함께 자민련이라는 정당도 역사 속으로 사그라졌다. 자민련 사후 충청은 그나마 전국 민심의 척도라는 자리를 찾았지만 상실·낭패감은 컸다.


그가 정계를 떠난 뒤에도 무수한 정객들이 충청 대망이란 허깨비를 좇아 기웃거리다 결국 기진했다. 이른바 ‘포스트 제이피’였다. 충청에 뿌리를 둔 야심들은 부나비처럼 제이피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이회창 전 총리, 이인제 전 의원이 그랬다. 지난 대선 때는 반기문씨가 뒤를 이었다. 대선 유력 후보로 떠오른 2016년 5월 유엔 사무총장 신분으로 제이피의 집을 찾아 비밀 얘기를 나눴다. 사실상 정치 행보였다. 이 무렵 안희정 전 충남지사도 제이피의 마음을 얻으려 애썼다는 후문이다.
공교롭게 이들 모두 대권 시야에서 사라졌다. 제이피도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했다. 이제 지역주의에 기댄 ‘충청도 핫바지론’, 허상을 좇는 ‘충청 대망론’도 영면하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한다.

< 오윤주 - 한겨레신문 충청 강원팀 기자 >


남북은 오는 8월20~26일 남북 각 100명씩의 이산가족들이 만나는 행사를 금강산에서 열기로 했다. 남북은 22일 금강산호텔에서 적십자회담을 열어 이같이 합의했다. 고령 등으로 거동이 불편한 상봉자에 한해 1명의 가족을 동반하도록 했다. 이로써 이산상봉 행사는 2015년 10월 이후 2년10개월 만에 열리게 됐다. 분단으로 수십년간 생이별한 채 가족 상봉을 학수고대해온 수많은 이산가족을 생각하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남북이 8·15 계기 이산상봉 등 4·27 판문점선언 합의를 착실하게 이행하고 있는 것도 의미가 크다.


이산상봉은 남북 현안 가운데 가장 시급하고 절박한 인도적 과제다. 이산가족들은 70세가 넘은 고령자들로, 이산의 한을 풀기 위해서는 시간이 많지 않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고려하면 어떤 돌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지속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남북관계나 한반도 상황은 이런 요구를 외면해왔다. 상봉 행사가 자주 열리지 못했고, 어쩌다 열리더라도 일회성으로 끝나버렸다.
오는 8월 상봉 행사도 한계가 뚜렷하다. 그리운 가족을 만날 수 있는 이산가족은 고작 남북 각 100명씩에 불과하다. 이런 방식으로는 5만7000여명의 이산가족 모두가 상봉하려면 수백차례 행사가 열려야 한다. 대부분의 이산가족이 가족을 만나지 못한 채 속절없이 세상을 떠나는 비극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특단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이산상봉 행사를 정례화하고, 매번 상봉 규모도 대폭 확대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상봉에 주력하되 생사확인이나 서신교환, 화상상봉 등 이산의 아픔을 달래주기 위한 다양한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남북은 20여개의 화상상봉장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간 정치적인 이유로 이를 활용하지 못했다. 협소한 상봉 장소와 운영 문제의 해결도 시급하다.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상시운영과 제2면회소 건립을 적극 검토하고 2003년 중단된 서신교환을 재개해야 한다.


남북은 반세기 넘게 지속돼온 분단과 냉전을 허무는 등 한반도 안보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대변환을 시도하고 있다. 이 같은 정세 변화는 궁극적으로 한반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번영하는 삶을 살게 하려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분단의 가장 큰 희생자인 이산가족들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다면 진정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구축했다고 말할 수 없다. 가급적 더 많이, 그리고 더 빨리 이산상봉이 이뤄질 수 있도록 남북 당국이 대담하고 창의적인 접근을 하기 바란다.


요즘은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세상의 흐름이 저 멀리 가 있어 순식간에 ‘물정 어두운’ 사람이 된다. 날마다 대형뉴스가 쏟아지니 어제 있었던 일 조차 까마득한 옛날의 일화 처럼 여겨질 정도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역사적 대좌에 신문과 방송이 도배되고, 세상 눈길이 온통 그쪽에 쏠려있어서 다른 뉴스들은 사람들 관심권에서 멀어지며 묻혀 버린다. 대표적인 사례가 엊그제 캐나다 퀘벡에서 열린 G7 정상회의다. 회담이 끝나기도 전에 어깃장을 놓고 싱가포르로 훌쩍 떠나버린 트럼프의 독불장군 행보가 상징적으로 싱가포르보다 못할 G7에 대한 관심도의 결말을 보여주긴 했지만, 어떻든 어제의 대형 이벤트였던 G7과 그 파열음을 오늘의 북-미 정상회담이 삼켜버린 꼴이 됐다.
G7 못지않게 온타리오에 사는 우리에게는 6.7 온주총선 또한 대형 이슈였다. 주 정부 집권당이 무려 15년 만에 극적으로 바뀌는 선거결과가 나왔고. 한인사회로 보면 이민사 반세기 만에 2명의 주의원이 배출되는 큰 경사가 났다. 특히 우리들 한인 입장에서는 아무리 초대형 뉴스가 나온다 해도 묻힐 수 없고 앞으로도 잊혀지지 않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계기라고 봐야한다.


우리는 조성준·조성훈 두 후보의 주의원 당선을 경하하면서, 계제에 한인사회 발전과 한인 정치인들의 후속 배출, 그리고 정치력 향상을 기대해 보며 두 의원 당선의 의미와 향후 과제를 짚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두 조 후보의 주의원 등극은 무엇보다 본인들의 노력과 수고의 결실일 것이다. 어느 누구보다 당사자가 땀흘리고 고생한 보람을 얻었다고 보는 게 맞다. 특히 토론토 시의원을 포함해 10선의 위업을 이룬 조성준 의원의 경우 선거구를 갈고 닦아온 그의 개인적 열정과 노고가 일등공신이었음은 인정해야 한다. 물론 주변의 조력, 한인사회의 성원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대체로 그의 당선 횟수가 많아지면서 개인적인 노력의 비중이 점증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거기에 진로를 적기에 선택할 줄 아는 판단력과 시운(時運)도 맞아 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 주정부 장관까지 넘보게 됐으니, 관록에 바탕한 그의 정치력 발휘를 기대해 본다.
정치 신인인 조성훈 당선자의 경우는 개인의 열의도 빼놓을 수 없겠지만, 한인사회의 열성적 지원이 뒷받침됐고, 특히 부친의 후광이 가장 큰 몫을 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자유당 자멸로 나타난 정치적 시류가 압승의 대세를 이룬 사실도 분명하다. 자유당이 날개 잃은 새처럼 추락하면서 거세게 분 정권교체론과 보수당 바람이 신인여부를 불문하고 영예를 안긴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는 여기서 캐나나 정치와 유권자들의 냉혹함과 철저한 실적주의를 보게된다. 집권당의 방만한 운영과 부실한 정책에 가차없이 매를 드는 정치수준의 표출이다. 인물보다는 당, 선전이나 구호보다는 가시적 성과물을 놓고 냉정하게 심판하는 주권자의 눈높이를 감지할 수 있다. 소위 거물 정치인들이 추풍낙엽처럼 낙선의 고배를 마신 것은 바로 인물보다 당을 중시하는 정치풍토를 말해준다.
한인 정치사에 새 시대를 연 두 동포 정치인은 이같은 캐나다 정치풍토에서, 무엇보다 한인사회의 기대와 여망이 그만큼 크고 높아져 어깨가 무겁기에, 단단한 결심으로 의정에 임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새 길을 열어간다는 자부와 함께 엄중한 소명감으로 배전의 열정을 쏟아 나가기를 기대한다. 어쩌면 이제 부터가 중요한 새 출발이라고 볼 수도 있다. 특히 갓 입문한 조성훈 당선자에게는 이제 본격적인 정치인 수업을 해나가야 할 고행이 시작됐다는 각오를 다지기 바란다.


이같은 관점에서 한인사회의 두 정치인에 거는 기대를 모아 몇가지 당부를 해두고자 한다.
우선 절대 자만과 오만을 버리고 겸손하게 배우며, 내일 당장 선거가 있다는 가정 하에 주권자를 열심히 받들어 섬기는 정치인의 체질을 갖추기를 권한다.
둘째는 주 의원이 됐으니, 주 정치를 최우선으로 삼아 주 정부를 감시·견제·감독하며 온주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고 살피는데 최선을 다하는 의정을 펼쳐야 할 것이다.
셋째는 캐나다 사회가 다민족 복합문화 사회라는 점을 명심하라는 것이다. 한인 출신의 긍지를 품고 일하되, 한인사회에만 몰두하지 말고 타민족에게도 정성을 쏟는 다민족 대표 정치인, 나아가 연방의원과 캐나다 대표 정치인을 꿈꾸며 통 크게 달려가기를 주문한다.
넷째는 아무래도 혈육이요 뿌리인 한인사회를 암암리에 챙기는데 소홀함이 없기를 바란다. 주류사회에서 한인사회 인식을 호전시키고 위상을 높이며 한인 동포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섯째는 절대 개인적 영달에만 연연하지 말라는 충고다. 선출된 정치인, 곧 선량(選良)은 자신에게 표를 주었든 아니든 주민을 대표하는 대변자이며 대리자이다. 따라서 주민들과 남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이 원칙이고 본분이다. 선량의 직을 자신의 개인적 소유와 노획물로 여겨 사욕을 충족하는데 활용한다면 절대 오래가지 못한다.


바람직한 정치인의 덕목은 무수히 거론된다. 그러나 이 땅에서, 한인들의 여망을 안고 영광을 차지한 두 주의원에 거는 동포들의 기대치가 높기에, 단 몇가지 기본만이라도 충언하는 것이다.
아무쪼록 한인사회의 명예를 빛내는 정치의 향도자들로 성공적 미래를 열어가기를 기도하고 소망해 마지않는다.


< 김종천 편집인 >


남북한 간 경제협력의 역사를 나무라고 한다면, 그 뿌리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주도의 ‘소떼 방북’이라고 할 수 있다. 꼭 20년 전인 1998년 6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보내진 1001마리의 소떼는 같은해 11월 금강산관광 사업 개시라는 오른쪽 줄기와 2003년 6월 개성공단 착공이라는 왼쪽 줄기로 뻗어나갔다.
 
소떼 방북을 역사의 망원경으로 조망하면 1개의 점처럼 보이지만, 넉달의 시차를 두고 마무리되는 동안 남북 사이에는 악재가 이어졌다. 북한 잠수정 동해안 침투(6월), 무수단 미사일 발사(8월), 첫 인공위성 궤도진입 발표(9월) 따위가 남북관계를 냉각시켰다. 당시 남한은 외환위기 사태를, 북한은 이른바 ‘고난의 행군’ 절정기를 맞고 있었다. 그 와중에 2차로 소떼 방북이 이뤄지고 경협으로 발전했다는 건 지금 돌이켜봐도 경이롭다.
현대그룹 자료를 보면, 2008년 7월 사업 중단 때까지 10년 동안 금강산을 오간 관광객은 195만5951명에 이른다. 금강산관광의 줄기에서 이듬해엔 개성관광 개시와 백두산관광 합의라는 가지가 돋아났다. 금강산 사업은 육로관광 실현 뒤인 2005~2007년 3년 연속 영업이익을 거둬 수익성을 검증받기도 했다. 개성공단 조성 및 가동 또한 그 바탕에서 이뤄졌다. 금강산관광이 ‘작은 통일’의 시작이었다면 개성공단 조성은 ‘상생의 시대’를 연 전환점이었다. 2016년 2월 공단 전면 폐쇄 전까지 진출해 있던 남쪽 기업은 124개, 여기에 고용된 북쪽 노동자는 5만4천명에 이르렀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화해 분위기 속에서 올해 두 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6월12일엔 마침내 북-미 정상도 손을 맞잡음에 따라 절단된 남북 경협의 줄기가 머지않아 회복될 것이란 기대를 해봄직하다. 이미 싹이 보인다. 이달 7일 북한의 협조로 ‘유라시아 노선’을 가진 국가들 모임인 국제철도협력기구(OSJD)에 가입하는 숙원을 이뤘고, 8일에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추진단이 방북해 개성공단 시설을 점검했다. 지금껏 이뤄진 경협에선 경제가 앞장서 닦은 길을 정치가 따라가는 형국이었다면, 이번엔 정치적 해빙이 앞서 경제적 교류를 이끌고 있다.
남북 교류와 협력이 확대되면서 불거질 수 있는 게 통일비용 논란이다. 이미 시비를 일으킬 빌미가 제공돼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의 비핵화 때 대북 지원과 관련해 “나는 미국이 (돈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한 사회에선 ‘거 봐라, 우리는 봉 노릇만 한다’는 얘기가 나올 법하다. 그러나 적정한 비용은 쓰임새에 따라 투자가 된다. 소떼 방북의 주역 정주영 회장이 통일비용 논란에 대해 생전에 남긴 말이 있다. “왜 엄청난 분단비용은 생각 못해? 매년 늘려야 하는 국방비 부담과 한창 공부할 나이에 군복무를 해야 하는 젊은이들을 생각해봐.”(<이봐, 해봤어?>, 박정웅 지음)


소의 평균수명이 15~20년이라고 하니 20년 전에 북으로 올라간 소떼 대부분은 생을 다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 후손들이 북한 어딘가에 남아 경협의 꿈을 잇고 있을지 모른다. 1차 소떼 방북 때의 암소 250마리 중에서 90마리가 임신한 상태였음을 확인했다고 하니 말이다. ‘20세기 마지막 전위예술’(프랑스의 기 소르망), ‘핑퐁외교에 견줄 황소외교’(영국의 <인디펜던트>)라는 평을 들은 소떼 방북에서 비롯한 남북 경협의 길이 넓어지고 단단해졌으면 좋겠다.

< 김영배 -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