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날씨가 쾌청한 주말이다. 온 세계에 불어닥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여파로 한동안 시름시름 앓다보니 언제 햇볕 좋은 날이 있었나 싶다. 밤사이 드넓게 전파된 세계 각국의 바이러스 감염 소식에 빠져 들다보면 이내 온천지가 회색빛으로 출렁인다. 결코 쉽지 않을 이번 사투의 끝은 어디쯤 일까.

창으로 비춰드는 햇살따라 침구를 펼쳐널고 화분도 손질하며 암울함에서 벗어나려 종종거린다. 정오의 햇살이 동네 가득 비쳐들 즈음이면 공터엔 아이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가득할 텐데 오늘은 거기도 텅텅 비었다. 가능한 한 집안에서 머물라는 사회적 권유가 아이들을 불러들인 모양이다. 자연은 성찬을 마련했는데 주인공들이 빠졌으니, 속으로 싸아한 바람이 인다.
서로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신체적 물리적인 거리를 두어야 하루라도 빨리 이 수렁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니 따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것도 타의에 의해서 십 수년 이어 온 삶의 방식을 바꾼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다른 선택이 없다면 현실에 부합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하리라.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두 요소를 택한다면 나는 가족의 정서적 안정과 합리적인 시간 공유를 꼽는다.

맑은 날씨를 핑계 삼아 예정에 없는 산행을 서두른다. 기껏해야 일년에 한 두 차례 방문하는 먼 북쪽 코스를 목적지로 잡고 오랜만에 외출에 나섰다.
봄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 집안에서는 무엇을 하던 바이러스 압박에서 벗어날 길 없었는데 환경이 바뀌니 신선한 바람이 슬슬 머릿속으로 돌기 시작한다.
북상하는 내내 봄을 기대했는데 하이킹 트레일은 입구부터 빙판을 이루고 있었다. 겨우내 내린 눈이 녹고 얼기를 얼마나 거듭했는지 동절기 산행도구를 다 동원해도 위험 천만한 길이었다. 나뭇가지를 붙잡고 수 차례 제동을 걸어가며 겨우 평지로 내려설 즈음 한 장년부부가 반대편에서 오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보다 안전거리 유지가 먼저 떠올랐다. 그들도 이점을 의식한 듯 조금 넓은 길에 멈춰서 우리를 기다려주었다. 마음으론 찐한 안부를 나누고 싶건만 무언의 미소로 대신할 수밖에 없음이 아쉬웠다.
푸석한 눈밭과 질퍽거리는 산길을 걸으며 몇 차례 더 그런 만남을 가졌다. 각자의 길을 걸으면서도 결코 외롭지 않았음은 서로에게 느끼는 동류의식 때문이 아니었을까. 봄이오면 산에 들에 꽃잔치 벌어지듯이 지금의 난제들도 해결되리라는 희망을 품어보는 산행이었다.
앞으로 매스컴에서 들려오는 부정적인 요인들은 약간의 거리를 유지하며 자연에서 얻은 긍정의 힘으로 활력을 가져야겠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인기있는 게임 두어가지 아이들에게 배웠다. 그 중 카탄(CATAN)이란 게임을 선호하는 편이다. 오직 우리 부부뿐인 휑한 집안에서 크게 웃을 일도 티격태격 할 일도 평소엔 없다. 하지만 게임을 하는 두 세시간 동안은 예외가 없다. 서로 이기기 위해 혈안이 된 우리는 아이들처럼 목청 돋워가며 게임에 열중한다.
나는 어제의 완패를 설욕하기 위해 오수에 빠진 남편을 일으켰다. 비몽사몽 중 2:1로 게임에서 진 남편은 내일 나에게 도전을 걸어오리라. 각자의 시간을 인정하면서 함께 호흡을 맞추는 시간은 요리, 청소, 게임, 등을 할 때이다. 함께 또는 따로, 24시간 건강한 삶을 사는 우리의 비법이다.
 멀지않은 장래에 세상의 모든 닫힌 문이 활짝 열려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등단 >


내년부터 4년 동안 사용될 일본 중학교 교과서에 독도의 영유권을 강변하는 내용이 또 실렸다. 이번엔 독도가 ‘한 번도 일본 영토가 아닌 적이 없다’는 취지의 서술도 등장하는 등 억지 주장이 더욱 심해졌다. 역사적·지리적·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영토를 자기들 것이라고 틈만 나면 우기고 있으니 넌더리가 날 지경이다. 당장 잘못된 주장을 철회해야 한다.


일본 문부성이 23일 발표한 중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를 보면, 대부분의 교과서가 “독도가 일본의 고유 영토이며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왜곡된 내용을 싣고 있다. 또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독도 강치(바다사자) 사냥 사진 등을 시각물로 사용한 교과서도 늘어났다고 한다. 일본 어민들이 이전부터 독도에서 강치 사냥을 했던 것을 독도 영유권 주장의 근거라고 주장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독도 강치는 오히려 역사적으로 한국의 독도 영유권을 뒷받침하는 사례다. 구한말 일본 어민들은 독도 강치를 사냥한 뒤 울릉도를 통해 일본에 반출할 때 울릉군에 수출세를 납부했다는 사료가 몇 해 전 발견됐다. 독도 어획물에 대한 과세권 인정은 당시 일본인들도 ‘독도가 대한제국 영토’라고 생각했다는 방증이다. 독도가 신라 시대 진흥왕 이래 한국의 영토였다는 사실은 여러 역사 문헌들을 통해 확인된다. 반면 일본은 에도막부 시절 ‘도해 금지령’과 메이지 정부 시절 ‘태정관 지령’ 등을 통해 독도를 일본 영토에서 배제해 왔다. 독도는 일제가 1905년 러일전쟁을 앞두고 무단 편입했다가 1945년 패전 이후 한국 영토로 원상복귀된 섬이다.


일본의 부당한 독도 영유권 주장은 최근 일본 사회의 우경화와 함께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1월 기존 시설보다 7배 넓어진 ‘영토·주권 전시관’을 새로 개관했고, 지난달 시마네현 주최의 ‘다케시마의 날’ 행사엔 8년째 차관급 인사를 파견했다. 이번 역사 왜곡은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코로나19의 효과적인 방역을 위해 국제사회의 협력이 절실한 시점에 오히려 한-일 간 갈등을 조장한다는 점에서 더 고약하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이런 움직임에 외교적으로 단호히 맞서야 한다. 또 우리의 독도 영유권을 뒷받침할 추가적인 사료 발굴과 홍보에도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한국 프로야구(KBO) SK 와이번스의 내야수 제이미 로맥(Jamie Romak)은 캐나다 출신 선수다. 코로나19 사태로 한국과 온 세계가 불안에 휩싸인 이달 중순 그의 말이 캐나다 언론을 장식했다. “한국이 캐나다 보다 더 안전하다. 사재기도 없고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다”

온타리오 런던에 있는 자택에서 이달 초 태어난 둘째 아들의 출산을 본 뒤 KBO 개막전 준비를 위해 지난 3월15일 인천공항에 도착한 그는 언론에 의외의 솔직한 얘기를 털어 놓았다. 한국에 가겠다고 하니까 “너 미친거 아니냐! 거기가 안전한 거야?”고 캐나다 지인들이 말리더라는 것이다. 코로나 확진자가 창궐하고 세계 각국이 다투어 한국사람 입국을 제한하는데, 왜 거길 가느냐는 걱정이었다. 하지만 캐나다 언론은 그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더 안전하고, 화장지도 살 수 있고, 사재기도 없다”고 강조한 말을 크게 실었다.
어쩌면 기하급수적으로 확진자가 불어나는 요즘, 유학생과 교민들의 귀국행렬이 이어지고 있다니 많은 한인들 그리고 캐나다인들도 로맥의 한국행 ‘탈출’을 부러워하지 않을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4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의 방역성공을 축하하고 의료장비 지원을 요청했다. 조야에서 한국을 거론할 때마다 시큰둥했던 트럼프의 돌변은 기이할 정도다. 같은 날 스페인의 산체스 총리도 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다. 방역 후진으로 눈총받는 일본 정부의 각료는 한국 방역을 깎아 내렸던 발언을 사과하기까지 했다. 26일은 문 대통령 제안으로 G20 정상들의 코로나 공동대응 화상회의가 열린다.
한 동안 중국에 이어 코로나에 초토화된 것으로 비쳤던 한국에 대해 최근 각국 지도자들과 톱클래스 매체들, 의료진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어떻게 한국이 질병 테스트에서 미국을 완패시켰나”(로이터 통신) “한국정부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시민들 자유를 보장하며 방역에 성공했다”(뉴욕타임즈) “세계적으로 이렇게 잘 대처하는 나라는 없다. 한국인의 유전자가 빛난다”(BBC) “한국정부는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철저한 투명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독일 슈피겔) …
불과 5년 전, 중동에서나 번지던 메르스 바이러스가 한국을 엄습했던 일은 악몽이다. 당시 사망자 38명은 사우디에 이은 세계 2위였다. 감염원이 된 재벌소유 병원과 확진자 동선을 감추기에만 급급하며 급성전염병에 허둥대다 화를 키웠던 무능정부의 기억은 모두의 뇌리에 남아있다.


이번 코로나19 대처에 대해 워싱턴 포스트지는 “투명성과 개방성으로 성공적 대응한 한국은 민주주의 강점을 보여주었다”고 중국과 일본을 비교해 평가했다. 외국 네티즌들의 트윗을 보면 “처음으로 한국이 선진국이라고 느꼈다”는 표현도 한다. 한국산 ‘드라이브 스루’ 검진, 즉 승차검사는 이제 세계표준으로 등극했다. 묵묵히 내실있게 나가며 창의와 혁신의 모습을 잃지 않은 코리아의 진면목이 새롭게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참 기막힌 것은 정작 한국 안에서는 ‘중국을 막지 않은 정부가 무능하다.’ ‘마스크 수급이 엉망이다’. ‘방역을 망쳐서 경제가 죽어난다.’는 등 막무가내 정부 비판이 이른바 보수언론과 정치인들 사이에 횡행하고 있다. 아카데미 4관왕 영웅들을 환영한 지난 2월의 청와대 오찬을 끌어다 “짜파구리 파티 하다 코로나가 확산됐다”(이재오) 라고 참 저질스럽게, 지금도 방송에 나와 헐뜯는다.
아무리 선거철이라고 하지만, 설득력있는 비판을 하고 잘한 것은 칭찬할 줄 아는 아량과 품성이 이제 선진국 소리를 듣는 한국의 언론과 보수정치인의 자질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더구나 캐나다의 부실 석유회사 인수를 포함해 해외 자원개발을 빌미로 무려 35조원을 날렸다는 ‘투기꾼’같은 정부를 떠받들었던 인물이 염치없이 토해 낼 발언은 아닌 게 분명하다. ‘장사치 수법’으로 나라를 자기 회사처럼 운영한 정치인, 청와대를 ‘성형미용실’처럼 활용했던 지도자에게서 국민들은 무엇을 깨달았던가. 세월호 참사의 수많은 희생자들은 왜 우리에게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고 외치고 있는가? 만약 ‘최순실 정치’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면…그야말로 소름끼칠 코로나의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이제 곧 21대 총선이다. 4월초 재외선거부터 4.15 국내까지, 민의의 한 표 한 표가 한국정치와 정치인의 수준과 그들이 설계할 삶의 질, 나라의 품격을 판가름하게 될 것이다.
유권자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두 가지가 있다. 후회에 떨었던 기억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 그리고 투표권을 가진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아무 것도 달라질 게 없다는 사실이다.
혹여라도 다시금 쓰라린 세월을 감내할 각오라면, 지난 어둠의 본색을 달콤한 선전으로 치장한 반민족 독재 카르텔의 교활함 앞에 굴복해 또 다시 망각의 어리석은 표를 던질 일이다.


< 김종천 편집인 >


[1500자 칼럼] 고려인 (카레이스키)

● 칼럼 2018. 8. 29. 12:36 Posted by SisaHan

나는 얼마 전에 유튜브를 보다가 우연히 고려인에 대한 특집 방송을 보게 되었다. 고려인이란 러시아에 살고 있는 동포들을 말한다. 그들이 누구인가를,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 궁금한 점이 많았다. 나도 그들과 다름없이 조국을 떠나온 동포 중의 하나이다. 우리 아이들은 2세가 되고, 곧 3세가 될 것이다. 흔히들 해외에 나와 사는 사람(동포)을 이야기할 때, 중국. 북미, 일본 이외의 동포들에 대해선 그들과의 접촉도 없었고, 그들의 살아온 과정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구 소련에 이주한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잘 모르고 있었다. 일제 때 사할린에 강제 노역으로 끌려간 동포들의 고향방문 이야기는 어렸을 때, 신문에 뉴스로 간간히 나오곤 했다.


지금 이야기하는 고려인들은 일제 때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로 갔거나, 또는 만주를 거쳐 러시아로 간 사람들이다. 지리적으로 인접한 관계로 그들이 삶의 터전을 찾아 그리로 이주한 것은 이해하겠는데, 어떻게 중앙아시아로 이주하였는지 사뭇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허허벌판인 곳에서 살아남았으며 어떻게 우리의 문화와 전통을 유지했는지, 같은 고향을 떠나 온 사람으로 궁금했기 때문이다. 사실 스탈린의 독재와 강압 정치는 역사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몇 십 만 명을 넘는 사람들이 그의 명령 하나로 이주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벌판인 땅에 버려져 거기서 벼를 심어 농사를 짓기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대단한 일이다.


그들은 구 소련이 무너지고 주로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 살다가, 그 두 나라가 한국과 교류가 빈번해지고 자유스럽게 왕래하기 시작하자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살고싶어 하고 또 살려고 한다. 이 점은 몇 해 전의 중국의 조선족을 생각하게 한다. 이들은 조선족처럼 외모가 우리와 같았다. 다만 한국어를 못했는데, 이유는 스탈린의 강압정책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이 한국어를 배우면 이내 배울 거라 생각하며 5세까지 내려오며 한국인임을 지켜온 그들을 존경한다.
그들이 한국에 정착하려는 이유가 경제적인 문제 때문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피부 빛과 외모에서 오는 차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3세이든 4세이든 그들은 이웃과 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 이민 3세가 한국으로 오는데, 같이 온 아이들은 이민 4세여서 동포로서의 국내 거주 자격이 없다고 한다. 학교를 다니던 자녀들은 성인이 되면 한국을 떠나야 한다. 나는 사실 해외 동포 법을 잘 모른다. 해외에 살면서 국민으로 해야 할 의무는 전혀 행사하지 않으면서 어떤 권리를 주장한다는 것도 논리에 맞지 않는다. 물론 우리는 한국민이 아니다. 한국인이다.


많은 이들이 현 해외 동포 법이 북미 같은 잘사는 나라의 동포들을 위한 법이라고 한다. 해외에 흩어져 사는 많은 동포들이 같은 조건 아래 살고 있지는 않다. 또 그에 따라서 조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를 수도 있다. 이제 한국이 잘 사는 나라가 되어 이곳 캐나다 생활을 접고 역 이민 가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엄연한 현실을 말할 때 한국에 나가 영주하려는 2세나 3세가 얼마나 될지 나는 모른다. 모든 문제에 있어서 감정적인 문제가 있고 그 다른 면에는 이성적인 문제가 있다. 그리고 한 국가에는 법과 원칙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쉽게 바뀔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국정부의 입장에서는 그들을 받아들여 동등한 대우를 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해외 동포 법이 잘못된 점이 있다고 해도 어느 한 지역의 동포만 다르게 대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다른 환경과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 살아온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감정적인 이야기지만 자신은 한국인이라 해서 한국에 왔는데, 너의 부모까지는 동포이고 너는 아니라고 한다면, 그들이 한국에도 정착 못하고 우즈베키스탄에도 정착 못하는 떠돌이가 된다면…. 고려인 4세와 5세를 진정한 동포로서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우리 한국이 작은가?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