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자가격리에서 해방된 모녀를 응원하며.

● 칼럼 2020. 8. 1. 04:21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자가격리에서 해방된 모녀를 응원하며.

임순숙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어머니이이이. 오늘 격리 해제에요. 자유에요.”

드디어 기다리던 낭보가 가족 카톡방에 올라왔다. 소식을 접한 식구들이 축하 메세지며 덕담을 보내느라 조그만 공간이 한동안 꽤나 바삐 움직였다. 격리 기간 시작과 해제 즈음 실시하는 검사를 무사히 통과하여 기다리던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가슴을 쓸어 내리며 손녀와 며느리의 상기된 얼굴을 떠올려본다.

세상을 뒤흔드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모국에서 진정되어 간다는 소식이 들릴 즈음, 며느리가 손녀와 함께 친가가 있는 대구를 다녀오고 싶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세기의 불청객에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은 대구의 소식이 들릴 때 마다 가슴 졸였을 며느리를 생각하면 흔쾌히 승낙하고 싶었지만 현실이 녹녹하지 않아 내내 마음에 걸렸다. 이런 나의 마음을 읽은 아들이, 지금은 캐나다보다 한국이 더 안전하다며 거들고 나섰다. 캐나다 전역에서 확산 중인 이곳 상황도 그렇지만 누구보다 처의 간절함을 잘 알기에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로 읽혔다.

지난 유월 하순 경, 모녀는 가족의 우려 속에 인천행 비행기에 올랐다. 도착한 직후부터 그들이 겪은 경험들이 속속 전해져 왔다. 예전 같으면 상상조차 안 되는 일들이 단 몇 달 만에 완전히 바뀌었으니, 비행기 안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나 보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일환으로 그 비싼 비행기 좌석을 한 칸씩 띄어 앉게 한 조치며 비행하는 열 댓시간 동안 마스크를 착용 해야 했고, 기내 서비스 받는 것은 꿈도 못 꿀 상황에다 샌드위치 하나로 식사를 대신하게 했다는 웃지 못할 상황이 서글프면서도 그나마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어 감사했다. 사방으로 막혔던 하늘길이 이렇게라도 열린 게 얼마나 다행인가.

모녀의 도착과 함께 양가의 가족들은 새로운 걱정에 쌓였다. 제한된 공간에서 2주일이라는 자가격리 기간을 어떻게 버텨낼지, 그토록 가고 싶어 애태우던 그들을 생각하면 암담하기만 했다. 설상가상 한국의 뉴스에서는 바이러스 확진자가 증가 추세이며 해외에서 유입된 확진자 수가 국내에서 발생한 수 보다 곱절 이상이라는 보도를 연일 했다. 거기다가 자가격리 중이던 사람이 격리지를 이탈하여 추방위기에 놓였고 또 어떤 이는 가까운 편의점에 갔다가 주민의 신고로 발각되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나왔다. 우리 아이들에겐 그런 일은 없으리라 예단하면서도 은근히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자가격리 첫날, 모녀는 동생의 빈 아파트에서 임시둥지를 틀었다. 그리던 혈육을 힘껏 안아보지도 못한 채 서로 그림자되어 주변을 맴돌아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선 경험자들의 조언을 위안삼아 무난한 출발을 한 모녀는 초기의 시차적응과 혼동의 시기가 지나자 집보다 더 편하다는 반가운 소식을 보내왔다. 한동안 잊고 지낸 자유를 작은 공간에서 만끽하는 중이라며, 가정주부의 빡빡한 일상을 내려놓고 마음 가는 대로 행하는 휴식기를 누린다니 내심 안심이 되었다.

이후 몇 차례 감정의 기복이 읽혀졌지만 그 속에 함몰되지 않고 스스로 길을 찾아 걸어나왔다.

어떤 환경이 도래할 지 미래가 불투명한 이 시대에 강한 정신력만이 살 길인 듯 싶다.

몇 주 만에 부쩍 성숙해진 손녀의 모습을 보며 그동안의 시름을 내려놓는다.


[기쁨가 소망] 영원히 간직할 것들 - 송민호 목사

● 칼럼 2020. 8. 1. 04:17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목회칼럼- 기쁨과 소망] 영원히 간직할 것들

송민호 목사 (토론토 영락교회 담임목사)

 

‘황금의 입’을 가진 투쟁가로 알려진 4세기 교부 요한 크리소스톰(349-407)은 ‘세상에서 진정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현재 소유물을 하나씩 들여다 보았습니다. ‘내가 사는 집을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입고 있는 옷을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의 영혼을 담고 있는 내 몸을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의 마음은 편치 못했습니다. ‘지금 사는 집은 언젠가는 반납해야 하고, 지금 입고 있는 옷도 역시 해어져 버리거나 남을 줄 것이며, 이 몸도 태어날 때 빌려주셨다가 죽는 날 도로 가져가실 것이니, 진정 나에게 속한 것은 없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진정으로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찾지 못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크리소스톰의 판단이 맞습니다. 영원히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젊어서는 모으기를 좋아합니다. 우표나 동전을 모으고, 여행에서 기념품을 사 오고, 책이나 음반 모으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이런 것들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차피 죽으면 가져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지요.

그래도 크리소스톰은 ‘내 것이 있다’는 긍정적인 결론을 내립니다. 살아있는 동안 사랑을 실천하며 믿음으로 성숙해진 나의 영혼은 하나님 앞에 가서도 계속해서 자신의 것이라는 진리를 깨달은 것입니다. 만일 그의 믿음이 이전보다 성숙해졌다면, 변화된 믿음은 자신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고, 소망과 사랑도 마찬가지로 성숙해진 만큼, 자신의 것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내 안에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덕목들, 그것들은 내 것입니다’라고 적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을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구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물질의 유혹과 욕심을 경계하십시오. 대신 하늘의 보물을 쌓으려 노력하십시오. 바로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코로나 팬더믹 기간 동안 우리는 귀한 진리를 깨닫고 있습니다. 한순간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비정한 사실은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소중한 사실을 보게 합니다. 진정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을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 13:13)


주님 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한마당 칼럼] 포스트 코로나, 불안한 징조

● 칼럼 2020. 7. 30. 13:48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한마당- 포스트 코로나, 불안한 징조

 


중국과 유럽의 뿌옇던 하늘이 맑고 푸르게 변했다. 탁했던 강물과 도시의 하천은 몰라보게 맑아졌다. 코로나-19로 변하고 달라진 것들은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다. 한산한 거리, 문을 닫아걸고 텅빈 가게들, 공원조차 사람의 발걸음이 뜸해 쓸쓸했던 뒤안길에 동물들이 대신 살판나서 제 세상을 만난 것 같다는 지난 몇 개월…

하지만, 도심엔 마스크를 쓰거나 혹은 쓰지 않은 사람들이 다시 북적이기 시작했고, 문을 연 식당들도 손님 발길이 돌아오고 있다. 트래픽이 사라졌던 도로의 뜸했던 차량들은 차츰 불어나 밀리는 시간대가 늘고 있다. 코로나 방역이 효과적으로 이뤄지면서 새 감염자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자 세상은 단단히 쌓았던 벽을 차츰 허물기 시작해 하나 둘씩 예전으로 돌아가는 모양새다.

자연환경과 사회현상의 변화뿐 만이 아니었다. 우울증 환자가 늘고 폐소공포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사람들의 심성과 정신건강에도 심각한 변화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바이러스 공포와 사람 접촉에 대한 불신, 생계를 위한 일과 수고의 한계와 무력감,

집안에 쳐박혀 인터넷과 스마트폰, TV에 의지해 살게 되면서 사람들은 뜻하지 않게 ‘비대면의 일상화’라는 전혀 달라진 생활방식을 강요당해야 했다. 오프라인 삶의 격리, 사람들과의 관계단절, 활동제약에 따른 불안과 강박은 하루하루 반복되는 소소한 일상의 의미와 삶의 가치를 돌아보게 했다.

하지만 적자생존의 뛰어난 적응력을 가진 인간이 변화된 환경에 패배로만 머물러 있을 리는 없다. 상상 이상의 코로나 재앙이 긍정적인 또는 부정적인 새로운 삶의 방편들을 모색하게 만들었으니, 앞으로의 세상, 인간의 사고와 삶의 모습은 어떻든 바뀔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면, 이른바 ‘포스트 코로나’시대는 어떤 세상이 도래할 것인가. 변화되고 달라진 사람들은 단절을 딛고 일어나 어떤 멋지고 정감있는 관계를 만들어 갈까. 생활은 얼마나 절도있는 편리와 안락을 추구해 나갈 것인가. 세상을 좀 더 살기 좋고 아름답고 안전하며 행복한 곳으로 만들어 가게 될까?


중세의 페스트 이후 전염병은 거의 방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인간의 오만에 코로나 바이러스는 보란 듯 핵주먹을 날렸다. 눈에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냄새도 맡을 수 없는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적 존재라는 괴물, 전자현미경에 드러낸 모습은 꽃송이로 위장한 듯 신비스럽기까지 한 미물이 무려 1천7백만 명을 병고에 몰아넣고, 70만명에 달하는 사망자를 내고있는 상태다. 전 지구적 차단과 격리, 나아가 마비를 부른 이 병원체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이기와 오만, 무능과 무력을 절감시켜 주었다.

여기까지 이른데는 사람들의 무분별한 환경파괴와 대자연의 생태계 질서, 생명의 섭리를 무너뜨린 이기적이고 방만한 행태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고 진단한다. 심상치 않은 기후변화의 징후들, 지구전체에 퍼진 미세플라스틱의 폐해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모르는 게 아니요 잘 알면서도 고치고 멈추지 못하는 인간의 오기와 타락에 준엄한 채찍을 들이댄 게 바로 이 엄청난 코로나 재앙이라는데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코로나 사태 속에 겪는 불편과 자책이 그런 되새김과 교훈을 주는 것은 아마도 창조주의 선한 의도일지 모른다. 너희들로 인해 아프고 병든 지구를 보라, 이기와 교만에 빠져 허우적대는 너희 인간세상의 타락과 사악함의 끝은 어디냐… “생육하고 번성하며 다스리라”고 당부했던 그 분의 배신감이 얼마나 크겠는가. 안타까운 눈물을 삼키며 사랑의 회초리를 든 부모의 심정에 다름 아닐 것이다.

하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그런 성찰 위에 긍정적인 새로움으로 변화될 것이라는 자신이 없어서 우울하다. 하늘과 바다가 앞으로도 계속 깨끗해지리라는 보장이 없다. 탐욕스럽던 사람들의 삶이 절제와 청렴으로 바뀔 조짐도 발견할 수 없다. 이전과 달라져 사람들의 악독과 패악이 선하고 착하고 진실된 모습들로 변하리라는 전망도 흐려서 암담하다.

코로나 와중에 차별과 학대의 뉴스들은 더 많아졌다. 지구촌 곳곳에서 서로 할퀴며 죽기살기 극한대립의 행태는 더 심화되어 가는 듯하다. 감염을 방치하던 자들이 백신 선점 경쟁에는 눈에 불을 켠다. 함께 고통과 사랑을 나누자 오염을 줄여보자 지구를 살리자는 외침은 공허하다. 흐뭇한 미담보다 가슴 아픈 소식들이 더 많이 들린다.

하긴, 선악과를 먹은 이후 수많은 단죄와 심판에도 다시 죄악의 늪으로 돌아가곤 하는 인간의 죄성이 어디로 가겠는가. 삯꾼 성직자들이 참회는커녕 오히려 때를 만난 듯 혹세무민하는 세태가 정말 세상 종말의 때가 아닌지 불안하게 한다. 그래서 다신 생각하기도 싫고 욕먹을 망발인지도 모르지만,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제2 제3의 코로나 사태는 또 오고, 오고야 말 것이라는….

< 김종천 편집인 >


[칼럼] 미국 막장 대선이 온다

● 칼럼 2020. 7. 24. 03:44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가 메모리얼 데이(현충일)인 6월25일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있는 맥헨리 요새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미국 국가가 울리는 동안 가슴에 손을 얹고 있다.


[칼럼] 막장 대선이 온다

황준범 워싱턴 틀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1월3일(현지시각) 대선에서 패배해도 불복할 걸로 본다는 얘기를 미국인으로부터 직접 들은 건 지난해 가을이다. 민주당이 ‘우크라이나 스캔들’ 관련해 트럼프 탄핵 조사 개시를 선언한 직후인 9월 말, 한 싱크탱크 인사는 “트럼프는 탄핵감이지만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에서 부결될 것이다. 대선밖에 방법이 없는데, 문제는 트럼프가 대선에서 져도 승복하지 않으려 할 것이라는 점이다. 탄핵이든 선거든 그를 백악관에서 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이 말을 트럼프 싫어하는 사람의 냉소 정도로 받아들였지만, 이후 워싱턴에서 트럼프의 대선 불복 가능성에 대한 얘기는 끊이지 않았다.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공개적으로 이를 언급했고, 정치 평론가들은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지난 19일 트럼프의 <폭스 뉴스> 인터뷰는 개그처럼 여겨지던 얘기를 다큐멘터리 반열로 올려놨다. 그는 대선 결과를 인정하겠느냐는 진행자 크리스 월리스의 집요한 질문에 “지켜봐야 한다. ‘예스’다 ‘노’다 말하지 않겠다”고 확답을 피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전국적으로 확대 도입되고 있는 우편투표를 두고 “선거 사기로 이어질 수 있다”며 밑자락도 깔고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대선 불복 시나리오를 열심히 그려보고 있다. 트럼프가 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플로리다 등 핵심 경합주에서 바이든에게 근소한 차이로 지는 것으로 나왔을 때, 밤새 침묵한 뒤 아침 트위터에 “불법 이민자들이 대거 투표에 참여했다”거나 “우편투표에 조작이 있다”고 주장한 뒤, 기자회견을 열어 불복을 선언하는 경우다. 여기에 공화당이 동조하면서 해당 주를 상대로 재검표를 요구하거나 소송을 걸 수 있다. 조지 부시와 앨 고어가 맞붙어 플로리다주 재검표 소송을 겪었던 2000년보다 훨씬 더 심각한 악몽에 빠져들 수 있다.

이번 미 대선이 악몽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또 다른 이유는, 우편투표 개표가 늦어지면서 선거 이튿날까지도 승자를 모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일부 선거구는 선거일 당일 우편 소인이 찍힌 것까지 인정한다. 지난달 뉴욕, 켄터키 등에서 치러진 의회 예비선거는 개표 완료까지 일주일 이상 걸렸다. 개표가 길어지는 동안, 트럼프와 바이든 지지층이 장외 세대결을 하며 혼란이 커질 수 있다.

미국 민주당의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메모리얼 데이(현충일)을 맞은 25일 부인 질과 함께 델라웨어주 뉴캐슬에 있는 참전용사 기념공원에서 헌화하고 있다.

네거티브 선거운동도 거세질 전망이다. 트럼프 캠프는 사실과 달리 바이든이 경찰 지원금 중단에 찬동한다고 주장하면서, 바이든이 집권하면 무법천지가 될 것이라는 취지의 3가지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예컨대, 경찰에 신고 전화를 하니 자동응답 메시지가 “경찰 지원금이 중단돼 전화를 받을 수 없다”며 살인 등 사건 종류를 번호로 누르라고 한 뒤 “예상 대기 시간은 약 5일”이라고 안내하는 내용이다. 사실을 왜곡하면서 불안과 분열을 조장하는 전략이다. 트럼프는 자신보다 3살 많은 바이든(77)의 정신건강을 대놓고 문제 삼으면서 “인지능력 검사를 해보자”고 비난하고 있다.

트럼프가 대선에 지고도 백악관에 계속 남아 있는 상황이 실제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 공화당, 그리고 군대가 국민 다수의 선택을 무시하고 트럼프 편에 서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거짓말과 공포 마케팅 또한 지난 4년을 지켜봐온 미국인들에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바이든을 노망든 노인으로 몰아가려는 전략도, 오히려 트럼프의 지지기반인 노인층의 이탈을 부르고 있다. 그럼에도 상식을 벗어난 일들이 버젓이 펼쳐지고 있다. 대선을 100일 앞둔 미국의 현실이다.

< 황준범 워싱턴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