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미꾸라지와 희망론

● 칼럼 2018. 8. 29. 12:33 Posted by SisaHan

살다보면 기대를 잔뜩 품었다가 어긋나는 바람에 실망할 때가 있다.
그 사람 능력있고 믿음직스러워 기대를 걸었는데 지나보니 실없고 형편없음이 드러나 맥이 풀리기도 하고, 소문난 밥집이나 명소에 들렀다가, 또는 대단한 제품인줄 알았다가 별거 아닌 엉터리여서 실소를 머금고 화가 나기도 한다. 가장 믿었던 친구나 연인이 배신하고 내편이 아님을 알았을 때 치솟는 배신감도 마찬가지다. 기대와 믿음이 큰 만큼 낙담과 상처도 더 클 것은 당연하다.


요즘 잇달아 터져나오는 대법원의 재판거래 의혹들에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도 법치국가의 최후 보루라는 최고법원의 위상만큼이나 기대와 신뢰의 크기가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회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깨졌을 때는 어떤가. 합당한 비교가 아닐 수는 있어도 대법원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의 강도보다 훨씬 강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대법원이 법이라는 사회적 성문(成文)규범을 지키는 세상의 마지막 파수꾼이라면, 교회는 영적(靈的)규범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신성한 형이상학적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교회를 정직하고 진실된 곳이라는 인식과 기대를 갖고 본다. 더구나 어느 목회자나 성도들의 것이 아닌 하나님이 주인이고 그의 몸인 ‘하나님의 집’이라고들 말한다. 그런 교회가 기대를 저버렸을 때 실망과 지탄이 작고 약하다면 말이 안된다. 10만 명이 넘는 대형교회가 부자세습으로 손가락질을 받고, 가장 큰 교단의 대표적 교회가 목사 자격시비에 사회법규를 어긴 일로 재판에서 망신을 당하는 모습 등에 깊은 탄식들이 나오는 것은 너무 당연할 것이다.


문제는 그런 교회들의 추락과 타락상을 갈수록 많이 보게 된다는 사실이다. 무분별한 성장 신화에 빠져 하나님보다는 돈과 건물을 중시하고, 성경보다는 목사의 입신양명이 더 중요시 되는 ‘회사 같은’ 교회, ‘기업인 같은’ 뻔뻔한 성직자들이 늘고있는 것으로 보여서다.
지금도 교계를 시끄럽게 하는 일부 한국교회들의 분란은 그런 실상을 드러낸다. 퇴임목사와 회계장로가 한통속이 되어 헌금을 멋대로 유용하고는 후임 목사도 그 악행에 끌어들이려다 뜻대로 안되자 쫓아냈다는 이익집단의 모습, 그런데 감독기관인 노회 마저 어찌된 일인지 분별을 못하고 쫓겨난 젊은 목사를 구제하기는커녕 도리어 면직을 시켰다니 성도들이 기가 막히다 못해 배신감으로 떠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교인 1백명도 안되는 교회가 원로목사의 은퇴 예우금 문제로 다투는 모습은 요사이 본분을 잃은 목회자들의 의식구조를 그대로 보여준다. 교회 운영조차 어렵다는 재정상황에 아랑곳 없이 그 원로목사는 이렇게 당당히 주장했다. “내가 이 교회에 와서 13년을 지키며 부흥시켰는데, 1억5천만원도 못주나. 큰 교회들은 보통 10억 100억씩도 아무 조건 없이 주는데, 내가 그만큼 달라는 것이 무슨 문제냐!”


하지만 성도들은 재임 동안 교인수가 되레 반토막 났다며 반발했고, 보다 못한 노회에서 1억원을 주라고 중재에 나서 교회는 결국 일부를 일시금으로 주고 ‘잔금’은 5년간 매월 ‘퇴직급여’를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대형교회들이 모범을 보이기보다 타락의 본이 되어 가면서 작은 교회들 마저 뒤따라 가는 것은 아닌지, 교회를 흔들고 ‘하나님 욕보이는’ 일부의 일탈 때문에 착하게 섬기는 많은 목사와 성도들 가슴에 못을 박고 아프게 하는 일들이 자꾸 언론을 장식한다.
성직의 오염과 교회의 세속화를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역시 일부의 탐욕스런 모습이 침소봉대 되어 신문지면을 메우는 실망의 현실도 그만큼 기대와 신뢰가 큰데서 연유함이리라.


그러면 희망이 없는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사명을 다하는 대다수 교회들의 선행은 흔히 공기의 존재를 잊고 살 듯,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살펴보면 오지에서 묵묵히 땀흘리는 진실된 목회자들은 얼마든지 있다. 매사가 그렇듯 수많은 교회에도, 성직자 가운데에도 미꾸라지는 있게 마련이다. 어쩌면 그들로 인해 신발끈을 다시 매고 경각심을 새로이 하는 효과는 긍정적일 수도 있지 않느냐는 ‘작위적 희망론’에 남은 ‘기대’를 걸어본다. 중세 가톨릭의 부패가 종교개혁을 부르고 개신교의 탄생을 가져 왔다는 반면교사로도 위안을 삼으면서 말이다.


< 김종천 편집인 >


[칼럼] ‘고용 충격’의 진짜 원인

● 칼럼 2018. 8. 29. 12:32 Posted by SisaHan

최근 발표된 ‘충격적’인 고용지표의 원인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에선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부작용이라며 즉각 이를 폐기할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제대로 된 해법을 내놓으려면 원인 진단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우선 지표를 보면, 제조업 일자리 감소와 건설업 일자리 증가 둔화, 인구구조 변화, 폭염, 자영업 구조조정 등이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첫째, 제조업 취업자는 지난해 7월에는 4만7천명 줄었는데, 올해 7월에는 무려 12만7천명이나 감소했다. 건설업 취업자는 지난해 7월 10만5천명 증가한 데 반해, 올해 7월에는 3만7천명 증가에 그쳤다. 둘째, 15살 이상 인구 증가폭은 지난해 7월 31만9천명에서 올해 7월 24만1천명으로 크게 둔화됐다. 셋째, 재난 수준의 폭염이 영세 자영업과 현장노무직, 노인층 등의 경제활동을 심각하게 위축시킨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영세 자영업자가 많이 포진한 도소매업과 음식점·숙박업 취업자 감소폭은 지난해 7월 3만6천명에서 올해 7월에는 8만명으로 크게 확대됐다. 이 업종의 부진은 중국의 사드 보복과 폭염, 최저임금 인상 영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자영업 구조조정 가속화에서 보듯이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이 마치 만병의 근원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아전인수식 해석이다. 경제학계에서도 최저임금 인상의 고용시장 영향은 찬반이 엇갈리는 오래된 논란거리다. 대체로 동의하는 견해는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증거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두해 연속 두자릿수 인상이 고용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줬을 개연성이 있다. 다만, 현재까지 뚜렷한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 예컨대, 최저임금 대상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올해 7월에 오히려 7만2천명이 늘었다. 주목할 부분은 더 영세할 것으로 보이는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10만2천명이나 줄었다는 점이다. 그 이유를 정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최근의 고용 부진은 우리 경제에 누적된 구조적 문제들이 폭발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제조업 부진은 재벌의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과잉투자, 정경유착, 중국의 추격 등으로 기존 대기업 위주 산업경쟁력이 근본적으로 약화된 데 기인한다. 자동차산업은 올해 1~7월 생산은 8.8%, 수출은 9%나 감소했고, 조선업 부진은 몇년째 계속되고 있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잘못된 인구정책과 미흡한 사회보장, 저임금 과로노동 등이 누적된 결과물이다. 자영업 구조조정도 외환위기 이후 대규모 실업자들이 생계형 자영업으로 몰려들면서 발생한 공급과잉 탓이 크다.

결국, 고용 충격은 소득주도성장의 폐기에서 답을 찾을 게 아니라, 오히려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 혁신성장’의 세바퀴 성장 전략을 더 강화할 필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 정부는 새로운 경제패러다임의 방향은 제대로 제시했으나 그 실행에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적극적인 재정확대를 통해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기획재정부는 엉터리 세수추계를 통한 초과세수로 오히려 긴축재정을 펴는 우를 범했다. 또 증세를 회피하고자 사회간접자본(SOC) 축소라는 세출 구조조정 방식을 택했는데, 이는 건설업 일자리 위축을 초래했다. 지금이라도 복지재원은 증세를 통해 마련하고, 필요한 사회간접자본 투자는 이어가야 한다. 자영업 구조조정의 연착륙에도 나서야 한다. 생계를 지원하거나 직업 재교육, 사회서비스업 확대 등을 통해 새로 임금노동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 박현 - 한겨레신문 콘텐츠 2부문장 >


[1500자 칼럼] 오늘의 기적

● 칼럼 2018. 8. 13. 08:29 Posted by SisaHan

오랜만에 친지들을 만났다. 그날의 화제는 독감이 얼마나 지독한지 거의 두 달을 앓아도 완쾌되지 않는다고 했다. 독감예방 접종을 했는데도 심히 앓았다며, 젊은 시절엔 감기가 무슨 병이냐고 말했었는데 더 이상 그리 말할 수가 없단다. 그때 핼쑥한 얼굴의 한 분이 나서서 감기는 거의 회복이 되었는데 후유증으로 미각에 문제가 생겨 음식 맛을 잃었다는 것이다. 어느 음식이든 맛을 분별하지 못해 식욕이 감퇴하여 체중이 3kg이나 감소했다고 한다. 불현듯 오래 전 겪었던 악몽 같았던 시간이 떠올랐다.


어느 해 녹음이 짙은 여름 한 자락에서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에 걸린 적이 있다. 환절기도 아닌데 이 고약한 감기는 약을 먹어도 전혀 듣지를 않고 한 달 이상 끌었다. 처음에는 목이 아프고 음성이 변하더니 콧물감기로 발전을 하여 끝내 귀까지 쑤시고 욱신거렸다. 무엇보다도 괴로운 점은 냄새와 맛을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감기는 거의 나았는데도 미각과 후각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혹 감기 후유증이 아닌 다른 병세인지 몰라 여러 검사를 거쳤으나 이상이 있는 기관은 없었다. 가정의는 잃은 기능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무조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2-3달이 지나도 별다른 진도가 보이지 않게 되자 걱정이 쌓여 갔다. 주부가 음식의 맛을 모르고 냄새도 맡을 수 없다니 보통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물의 영장답게 오로지 습관에 의존하여 요리를 하니 일상생활에 큰 지장은 없지만 일관성 없는 그 음식 맛을 짐작해 보시라.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태어날 때부터 아니면 신체의 한 기관에 이상이 생겨 미각과 후각을 잃은 경우는 반드시 정밀검사를 통해 치료방법을 찾아야 한단다. 단지 감기로 잃었을 경우는 대부분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치유가 가능하다고 한다. 이는 감각기관에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니라 뇌에서 잠시 맛과 냄새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라, 새로 맛과 냄새를 습득하는 훈련을 거치면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나는 작은 그릇에 식초, 설탕, 소금 등을 담아 하나씩 맛을 보며 신맛, 단맛, 쓴맛, 짠맛을 다시 인지하기 시작하였다.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네 가지의 기본적인 미각은 돌아왔으나 조리한 음식 맛은 도통 구별할 수가 없었다. 예를 들면 소량의 마늘이 들어간 음식에서는 온통 마늘의 고약한 맛 하나로, 어떤 기름이든 기름을 넣은 음식은 모두 불쾌한 기름 맛으로만 느껴졌으니 말이다.


후각은 문제가 더 심각했다. 강한 향수 외에는 모두 휘발유 비슷한 고약한 냄새로만 인지할 수 있었으니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거의 6개월이 지나 얼마간의 불편함도 익숙해질 무렵이 되니 드디어 미각과 후각이 자연적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예전만큼 완벽하진 못하다. 내가 즐기던 수박, 오이, 참외.. 이런 음식들이 고유의 맛 대신 똑같은 맛으로만 느껴져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도 삶을 이어가는 데는 지장이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아직도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고, 다양한 음식을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설마 태어나면서부터 누려온 자신의 미각과 후각을 잃어버릴 수 있으리라 상상해본 적이 있겠는가. 대다수의 우리는 정신적, 육체적 충격과 병으로 인해 얼마든지 내 신체기능의 일부를 잃을 수 있음을 남의 일로만 여기며 살아갈 뿐이다.

우리의 삶이란 ‘살아가는 동시에 죽어가는 과정’이라 말한다. 일단 태어난 후부터는 열심히 살아가지만 결국은 죽음을 향해 가는 여정이니 말이다. 내 원상으로 돌아오지 않는 미각과 후각처럼 신체의 어느 부위이든 수술을 하거나 부상당한 부위는 더 이상 원상태로 복구되지도 않을 뿐더러 기능도 저하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우리가 맞이하는 건강한 오늘이, 지금 이 시간이, 기적의 선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무료한 일상조차도 더 바랄 것 없는 소중한 시간이라 여기니, 갑자기 숙연해진다.

< 원옥재 - 수필가 / 캐나다 한인문인협회원, 전 회장 >


[한마당] 매국의 잔재들, 미완의 광복

● 칼럼 2018. 8. 13. 08:27 Posted by SisaHan

구약성경 열왕기상(3:16~28)에 기록된 두 여인의 아기 다툼에 대한 재판은 솔로몬 왕의 탁월한 슬기를 보여주는 일화로 널리 회자된다. 아울러 억울한 처지의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붙잡는 희망의 등대요 정의의 보루인 법의 심판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명쾌하게 가르쳐주는 소중한 에피소드다.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자기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여인들 사이에서 재판관이 “네 아이라고 해줄테니 내 요구를 들어라”라고 말한다면 그 재판은 어떻게 될까. 아이의 진짜 어머니가 감당할 절망감은 상상하고도 남는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영화를 누린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거래와 농단 사례들이 양파껍질처럼 드러나면서 그런 비슷한 절망과 분노들이 치밀고 있다. 설마하니 국가사회의 정의를 지키는 최후의 성채인 대법원이 그랬을 리가, 대한민국 최고의 재판관인 대법관들이 그렇게 비루했을 수가…하는 배신감에 탄식이 절로 난다.

어릴 적 학교 뒷골목을 지나다 험상궂은 선배들에게 용돈 빼앗기고 얻어맞을 뻔 했던 위기의 순간에 ‘구세주’를 만난 아이들이 있다. 마침 장터를 다녀가시던 할아버지의 호통 한마디에 기가 살아나서는 ‘너희들 까불지 마’란 듯 의기양양 해졌던 학동들의 추억이다.
들판을 뒹굴며 한적을 즐기던 아기 곰이 갑자기 덩치 큰 퓨마의 공격으로 위기를 맞는 동영상도 겹쳐진다. 굶주린 퓨마가 입맛을 다시며 전속력으로 쫓아오는데 아기 곰은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치지만 이내 외나무다리에서 부러진 나뭇조각과 함께 급류에 떨어지고 만다. 물살에 휩씁려 가는 아기 곰을 퓨마는 끈질기게 따라 붙는다. 마침내 바위에 걸린 아기 곰이 코앞에 아가리를 벌린 퓨마에 먹히지 않으려 저항하며 절규하는 절체절명의 순간, 돌연 퓨마가 슬금슬금 꽁무니를 뺀다. 저 뒤편에 포효하는 어미 회색곰이 나타난 것이다. 어린 곰의 울부짖음은 달아나는 퓨마를 향해 기세등등한 일갈로 바뀌고, 다가온 어미곰은 새끼를 끌어안고는 마구 핥아주며 이제 안심하라고 다독인다.


연출된 작품인지, 생생한 동물의 세계 다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슬아슬한 생과 사의 스릴과 배후에 등장한 막강 구원투수, 진한 모성애 등 감동을 주는 단막 영상물의 하나다.
국민들에게 법원, 특히 대법원은 그런 존재가 아닌가. 아니 그래야 하지 않을까. 힘들고 어려운 백성들이 마지막으로 기대고 호소할 곳, 삶의 풍랑에서 피난처요 구원투수이기를 바라는 심정은 당해 본 사람들은 다 같을 것이다.
양승태 대법원이 거래 대상으로 삼았다는 재판 사안마다 억울하게 고통을 겪은 서민들의 애끓는 간절함과 피눈물이 배어있는 것을, 최고의 엘리트 율사들이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국민을 개·돼지처럼 무시하고’ 자기들 허욕의 제물로 삼으려 했다니 그들은 진정 영혼없는 법관들이었고, 양심도 자비도 내팽개친 금수(禽獸)나 다름없는 법비(法匪)들이었음에 틀림없다.

일제에 강제징용 당해 가시밭길 인생을 살았던 피해자 9명이 전범기업을 상대로 낸 배상소송까지도 농단의 희생물이 됐다는 소식에는 할 말을 잃는다. 민족의 아픈 상처를 외면하고 이권을 다루듯 정권 비위를 맞추느라 일본을 위한 논리를 개발해 마치 일본 법원이나 늘어놓을 궤변을 내세웠다. 징용피해자들 가슴에 못을 박고 이미 노령의 원고 대부분이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에는, 분노와 구역질이 날 정도다. 민족혼은 커녕 매국노들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듯 싶다.
대한제국의 매국역적들은 백성들의 ‘기댈 언덕’을 빠앗아 갔다. 일신의 영달에 눈먼 고관대작들이 일제에 영합하며 자국민을 혹독한 식민통치 수탈의 암흑기로 몰아 넣었다. 젊은이들은 전쟁터로, 탄광과 군수공장으로 노예처럼 끌려갔다. 꽃다운 처녀들은 일제군대의 성노리개로 소중한 인생들이 망가져갔다.


그 때 한줄기 실낱같은 희망을 준 게 상해 임시정부였고, 야멸차게 이어진 독립투쟁이었지만, 해방과 새 시대가 왔음에도 독립투사들은 일제에 부역했던 자들에게 다시 탄압을 받고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친일 매국의 후예들은 간교하게도 여전히 백성 위에 군림하며, 독재권력과 족벌의 중추로 명맥을 이었다. 그 적폐들이 탄핵에 내몰려도, 사법에 은거한 뿌리깊은 인맥은 여전히 애꿎은 국민위에서 매국적 농단으로 서민의 피눈물을 자아낸 것이다.
법원은 정의로운 재판으로 국민의 권익을 지켜야 한다. 더구나 최고법원은 국가정의와 국리민복의 마지막 수호자이며 국민이 최종적으로 기댈 언덕이고 나라의 든든한 자존심이기도 하다.
법과 공의와 인권의 보루이며 민주주의 최후의 파수꾼여야 할 법원의 타락은 청산되지 못한 친일 매국의 못된 잔재들이 여전히 살아서 꿈틀대고 있다는 또 하나의 반증이며, 우리에게 진정한 광복은 아직 멀었다는 사실을 되새겨 주는 것이기도 하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