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마케도니아의 선택

● 칼럼 2018. 8. 7. 19:32 Posted by SisaHan

그동안 국제부 기자 생활을 하며 발칸반도의 소국 마케도니아에 관심을 기울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도 이 나라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일본의 ‘욱일승천기’와 닮은 국기 때문이었다. 몇년 전 태양의 빛이 여덟 방향으로 뻗쳐 나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이 나라의 국기를 확인하고, 고개를 갸우뚱한 뒤 그 존재를 기억에서 지웠다.

마케도니아와 다시 조우하게 된 것은 11~12일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때였다. 세계 언론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의에서 벌인 ‘분탕질’에 집중하는 사이, 내 눈을 잡아끈 짧은 단신이 있었다. 나토가 마케도니아를 30번째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교섭을 시작한다는 소식이었다. 조란 자에프 총리는 11일 페이스북에 “기뻐하라! 나토의 정식 회원국이 되기 위한 문이 열렸다. (오늘은) 크고, 역사적인 날”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마케도니아가 나토에 가입하기 위해선 중요한 ‘허들’ 하나를 넘어야 한다. 마케도니아는 1991년 옛 유고 연방에서 독립한 뒤 그리스와 27년에 걸친 외교 분쟁을 겪고 있다. 이유는 뜻밖에도(!) ‘마케도니아’란 국명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에게 마케도니아는 고대 그리스의 영웅 알렉산더 대왕을 배출한 영광스러운 역사의 상징이다. 이들은 마케도니아가 건국하자 “고대 그리스와 아무 관계도 없는 슬라브 민족의 나라가 우리 역사를 갈취하려 한다”며 격렬히 반발했다. 마케도니아 역시 외국의 압박에 굴복해 국명을 바꿀 순 없다며 치열하게 맞서왔다.

영국 <BBC>는 마케도니아에 대해 “역사적으로 격동적인 지역(발칸반도)에 위치한 좁고, 육지에 둘러싸인 나라”라고 묘사한다. 2015년 현재 인구는 207만명에 불과하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유럽연합의 ‘지진아’라 불리는 그리스의 3분의 1(5500달러)밖에 안 된다. 실업률은 2016년 세계은행 자료 기준으로 26.2%까지 치솟아 있다. 그렇기에 마케도니아는 경제 성장의 활로를 찾고 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연합과 나토 가입을 열망해왔다. 이에 맞서 그리스는 마케도니아가 국명을 바꾸지 않는 한, 두 기구에 가입할 수 없다며 반대하는 중이다.

지난달 17일 오랜 대립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위대한’ 진전이 이뤄졌다. 자에프 총리와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마케도니아가 국명을 ‘북 마케도니아’로 바꾸는 대신 그리스는 마케도니아의 유럽연합과 나토 가입에 반대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이다. 단, 마케도니아는 국명 개정을 ‘불가역적’으로 만들기 위해 국민투표를 통한 개헌을 해야 한다. 한국이 헌법을 개정해 독도를 포기하거나 ‘동해’ 대신 ‘일본해’란 명칭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그들이 합의를 지지하면 나토에 가입할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가입할 수 없다. 둘 다를 얻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마케도니아 야당은 그리스와 굴욕적인 합의를 맺은 자에프 총리를 용서할 수 없다며, 올가을로 예정된 국민투표 절차를 방해하는 중이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 그 나라 국민들이 자유의지에 따라 선택한 헌법의 소중한 가치를 구현하며 국민의 생명·재산을 지키고 행복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개헌까지 불사해가며 경제와 안보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케도니아의 처절한 몸부림은, 민족적 자존심을 짓밟은 한-일 국교 정상화라는 ‘더러운 선택’을 통해 경제 발전의 계기를 마련한 1960년대 대한민국의 모습과 많이 겹쳐 보인다.

< 길윤형 - 한겨레신문 국제뉴스팀장 >


[칼럼] 군대를 생각한다

● 칼럼 2018. 8. 7. 19:30 Posted by SisaHan

귄터 그라스는 독특한 정치 참여로 유명한 작가다. 그는 현대 독일문학을 대표하는 ‘노벨상 작가’였지만 ‘글’이 아니라 ‘몸’으로 참여했다. 스스로 자원봉사단을 조직해 선거유세에 직접 뛰어들었고, 연설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연설회는 입장료를 받았지만, 늘 인산인해였다. 흥미로운 건 이렇게 돈이 모일 때마다 그가 군대에 도서관을 지어주었다는 사실이다. 나치즘을 몸소 체험한 비극적 시대사의 증인으로서 군대 민주화 없이는 사회 민주화도 없으며, 계몽된 군대가 민주주의의 초석이라는 신념에 따른 행동이었다.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은 충격적이다. 촛불 시민들이 평화로운 시위를 벌이고 있는 그 순간 군인들이 음습한 곳에 모여 탱크, 장갑차, 특수부대를 동원해 시민들을 유혈 진압하는 시나리오를 짰다는 사실에 등골이 오싹하다. 군사독재의 악몽이 와락 되살아온다. 관련자에 대해서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한 수사를 거쳐 내란죄에 준하는 준엄한 단죄가 내려져야 하며, 기무사의 해체도 검토돼야 마땅하다.
그러나 기무사 개혁은 문제 해결의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 ‘기무사 문건’이 깨우쳐준 것은 군대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고, 이 땅의 군사문화를 발본적으로 청산할 때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개혁과 청산 없이는 한국 민주주의가 한시라도 군사독재의 나락으로 다시 추락할 수 있음을 문건은 경고한다.


우리는 냉전시대에서 평화시대로, 권위주의 시대에서 민주주의 시대로 이행하는 대전환의 한복판에 있다. 한국 군대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발맞추어 완전히 새로운 군대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군대가 진정한 국민의 군대, 민주 군대로 거듭날 적기이다. 민주주의의 신념이 확고한 민간인 국방장관을 통해 군을 전면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민주 군대’의 새로운 철학과 원칙하에 장교를 양성하고,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병영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그라스의 소망처럼 군대가 젊은이들이 성숙한 민주주의자로 성장하는 발판이 되어야 한다.
군대문화를 청산하는 일도 미룰 수 없다. 한국 사회는 ‘병영사회’라고 할 만큼 구석구석 군대문화가 배어 있다. 군대는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문제의 근원이자 원형이다. 한국인에게 팽배한 무력감과 좌절감, 순응주의와 동조주의의 발원지가 군대이며, 한국 사회에 만연한 폭력성과 권위주의의 근원지도 군대이다. 학교와 기업은 유사 병영이고, 가정은 변형된 내무반이다.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잔혹성과 가학성이 깊이 스민 군대문화가 지금까지 살아남아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을 가로막고 있다.


“민주주의의 최대 적은 약한 자아”라는 아도르노의 유명한 명제에 따른다면, 한국 군대야말로 한국 민주주의의 최대 적이다. 군대가 한국인의 자아를 결정적으로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계엄령 검토’ ‘쿠데타 모의’라는 기무사의 정치적 일탈보다 ‘자아의 왜소화’ ‘무력감의 내면화’라는 군대의 관행적 일상이 민주주의에 더 치명적일 수 있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비상의 파시즘’보다 더 무서운 것이 ‘민주주의를 좀먹는 일상의 파시즘’이다. 한국 군대의 궁극적인 문제는 민주주의 질서에 대한 주기적 위협이 아니라, 민주주의적 성격에 대한 상시적 억압에 있다.
내 어머니는 군대 간 아들에게 이런 편지를 쓰셨다. “때론 시련이 큰 그릇을 만든다지만, 대개의 경우 시련은 작은 그릇마저 찌그러뜨리기 일쑤란다.” ‘찌그러진 작은 그릇’으로 민주주의를 일굴 수는 없다.

< 김누리 - 중앙대, 독일유럽연구센터 소장 >


순례길에 오른 지 어언 이십여 일째 접어들었다. 푸석한 눈밭을 헤치며 피레네 산맥을 엉금엉금 기어서 오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봄의 한가운데를 건너고 있다. 거북이 걸음으로 두 계절을 넘어서니 뿌듯함과 함께 결코 만만하지 않았던 날들이 그림자 되어 내 뒤를 따른다.


초보 순례자를 그토록 고생시키던 발의 물집도 이젠 굳은살로 박혀 견딜만하고 겉돌기만 하던 묵직한 배낭도 신체의 일부분인양 착 달라붙어 중심을 잡아준다. 내 삶을 지탱하는 일용품들을 온전히 내 몸에 실어서 천천히 살아보리라는 애초의 의지대로 행하고 있음에 자부심을 가지며 하루하루의 고통을 인내로 다스리며 나아가고 있다.
오늘은 큰 도시 레온(Leon)에서 그동안 누적된 피로도 풀고 에너지 충전도 할 겸 일정을 평소 거리의 절반으로 짰다. 처음부터 예상은 했지만 매일 바뀌는 낯선 잠자리와 끼니를 더할수록 허기를 부르는 순례자 식단으로 강도 높은 행군을 감당하기엔 역부족 이었다. 하지만 그것 또한 감내해야 할 부분임을 인지하며 적응해 왔으나 현저히 떨어지는 체력은 어쩔 수 없다.


모처럼 휴일을 맞은 기분으로 가볍게 숙소를 나섰다. 매일 노상에서 일출과 일몰의 경이로움을 체험했던 그간의 떨림은 잠깐 접어두고 오늘은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던 즐거운 소일거리를 떠올리며 경쾌한 걸음을 이어간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질투라도 하듯이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바람마저 거세게 일어 마음처럼 걸음이 따라주지 않았다. 거기다가 코스는 왜 그렇게 오르내림의 연속인지 반나절동안 가해지는 운동의 강도는 하루치와 다를 바 없었다. 느슨해진 마음을 다독이며 서울에서 온 O씨 부부와 앞 다투어 난코스를 해결해 갈 즈음 이번엔 우려했던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우의를 꺼내 입으며 앞 뒤 동행들을 둘러보았다. 그들도 일상처럼 우의를 챙겨 입고 묵묵하게 가던 길을 계속한다. 그런 모습들이 한없이 고독해 보이기도 하고 또 자유로워 보이기도 했다.


어려운 여건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동행들 중 특히 애착이 가는 이들은 비슷한 시기에 함께 출발점에 섰던 사람들이다. 몇 구간만 안보여도 혹시 탈이 난 건 아닌지 염려되어 그들의 안부를 수소문하고, 어쩌다 같은 숙소에 들기라도 하면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마음이 푸근해진다. 꼭 같은 길을 걸었어도 각자 체험한 세계가 다르다보니 대화의 끝은 쉽사리 나지 않은 채 다음을 기약하기 일쑤다. 우리들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은, 신앙심 고취, 한 걸음 도약을 위해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는 도전, 아픔을 치유하기 위하여 등 다양한 이유로 이 길에 들어섰건만 이내 그것들마저 내려놓고 오로지 걷기에 함몰되어 버린다는 요지는 충분히 공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팔백 킬로미터 순례길의 중간 지점이자 교통의 요충지인 부르고스(Burgos)에서 많은 순례자들이 빠져나간 대신 더 많은 사람들이 유입되어 길은 풍성한 움직임으로 생기가 넘쳤다. 새로운 사람들 중에 유독 눈에 띄는 한 그룹이 있어 그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다섯 명의 프랑스 할머니들로 구성된 일명 ‘할미꽃 그룹’은 만날 때마다 유쾌한 웃음을 선사하여 지루함을 덜게 해 주었다. 평균 연령이 칠십 세라는 그들은 일 년에 보름씩, 삼년에 걸쳐 순례길을 완주할 계획이라며 지친 기색이라곤 내내 찾아볼 수 없었다. 비결을 물었더니 십 수 년 동안 프랑스 전역을 돌며 함께 하이킹을 다닌 결과라고 했다. 건강과 친구 그리고 그들이 함께 할 아름다운 시간들이 함박꽃처럼 화사하게 클로즈업 되어왔다.


드디어 고된 행군을 마치고 목적지 레온이 한 눈에 들어오는 언덕에 섰다. 비록 거리는 멀지만 오랫만에 보는 도시가 얼마나 반가운지 한걸음에 달려가고 싶었다. 늘 복잡한 곳이 싫다고 하면서도 막상 떠나 있으니 그리움이 배가되어 오전 내내 청사진만 그렸다. 우선 사람들이 몰리지 않는 도시 초입에서 정갈한 숙소를 마련하고 곧장 슈퍼마켓으로 가서 쇼핑을 해야겠다. 쌀, 삼겹살, 채소, 과일 등등. 그동안 잊고 지냈지만 결코 놓지 못한 식품들을 마음껏 요리하여 거나한 상을 차리리라. 그리곤 모아둔 옷가지들을 손빨래하여 뒤꼍에 널어야겠다. 햇볕이 도와줄지 모르지만. 내일은 더욱 새로워진 마음과 함께 발걸음이 훨씬 가벼울 것 같다.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등단 >


[칼럼] 훈련 중단과 비핵화

● 칼럼 2018. 7. 18. 10:54 Posted by SisaHan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돈이 많이 든다며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정당화한 건 좀 아귀가 잘 안 맞는다고 느꼈다. 안보 문제를 돈 문제로 단순 환원해 설명하는 방식에서 장사꾼 냄새가 짙게 풍겨 더 거북했던 이들이 많았던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연합훈련에 드는 실제 비용이 얼마인지 언급하진 않았다. 미군 당국이 따로 공개한 적도 없으니 정확한 비용을 알긴 어렵다.
그러나 지난달 미국 방송 <CBS>의 보도를 보면 어림짐작할 대목은 있다. 방송은 미 공군 관계자를 인용해 ‘비행시간당 운용(작전)비용’(OCPEH)이 B-1B가 9만5758달러고, B-2A가 12만2311달러, B-52H가 4만8880달러라고 보도했다. 이들 폭격기가 괌과 한반도를 오가는 왕복비행을 13시간으로 적용하면, 전체 비용은 347만337달러(38억원)로, 2019 회계연도 국방예산 6811억달러(752조원)에 견주면 아주 적은 비용이라는 것이다. 그나마 이 비용마저 절약될지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이들 폭격기는 비행이 취소되기보단 한반도 대신 다른 곳으로 비행 훈련을 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미 간 연합연습 및 훈련 중단으로 군의 전력 약화와 대비태세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평상시 대비하지 않으면 후회한다는 유비무환의 가치를 들먹이는 논리부터, 연합훈련 중단이 결국 한-미 동맹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걱정까지 이어진다. 통상 2~3년씩 순환보직을 맡는 군 인사의 특성상 훈련 공백의 장기화는 군의 기본적인 전투력 유지에도 장애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군 내부 논리로는 한 치의 틀림이 없는 이야기 같다. 훈련은 당연히 평상시 군의 직분이다. 그러나 군의 존재 근거가 국가안보에 있는 한, 더 큰 틀의 안보 차원에서 좀 더 유연해질 필요도 있다. 연합연습 중단은,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의 지난달 28일 발언을 빌리면 “한반도 내 문제들이 가장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외교관들의 협상이 더 잘 이뤄질 수 있는 기회를 증대”시키기 위한 것이고,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의 하루 앞선 연설에 따르면 “신뢰 구축이 중요한 시기에 불필요한 자극이나 도발적 면모를 보이는 연습을 중단하는 것”이다.


논리를 단순화해보자. 만약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잘 이뤄져 북핵 문제가 해결된다면 우리에게 그보다 더 큰 안보이익이 있겠는가. 핵이 없는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은 우리 수준에서 충분히 억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한 예비역 해군 제독에게 최근 사석에서 이런 얘길 들었다. “1999년 6월 제1연평해전 당시 이미 남북 함정 간 전력의 차이가 많이 났다. 우리 함포는 컴퓨터로 자동 통제돼 정확한 반면 북한군 함포는 수동으로 정확도가 떨어졌다. 이후 우리는 차기 고속정을 새로 개발해 배치하는 단계인데 북쪽은 아직도 당시 경비정이 주력이다. 그때보다도 남북 간 격차가 더 벌어진 셈이다.” 이런 상황이 어디 해군뿐이겠는가?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은 지난 6~7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 협상을 계기로 본격 막이 올랐다. 협상에 숨결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잠시 훈련을 유예하는 게 당장 큰 문제가 되겠는가. 군 당국에 따르면 모든 훈련을 중단한 것도 아니다. 브룩스 사령관은 “혁신적 방법으로 연합훈련을 추진해 대비태세를 유지할 것이다. 훈련 규모나 연습 시기, 연습 시나리오를 조정해 도발적이지 않은 훈련을 계속할 수 있다”고 말한다. 조금만 인내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 박병수 - 한겨레신문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