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매국의 잔재들, 미완의 광복

● 칼럼 2018. 8. 13. 08:27 Posted by SisaHan

구약성경 열왕기상(3:16~28)에 기록된 두 여인의 아기 다툼에 대한 재판은 솔로몬 왕의 탁월한 슬기를 보여주는 일화로 널리 회자된다. 아울러 억울한 처지의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붙잡는 희망의 등대요 정의의 보루인 법의 심판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명쾌하게 가르쳐주는 소중한 에피소드다.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자기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여인들 사이에서 재판관이 “네 아이라고 해줄테니 내 요구를 들어라”라고 말한다면 그 재판은 어떻게 될까. 아이의 진짜 어머니가 감당할 절망감은 상상하고도 남는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영화를 누린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거래와 농단 사례들이 양파껍질처럼 드러나면서 그런 비슷한 절망과 분노들이 치밀고 있다. 설마하니 국가사회의 정의를 지키는 최후의 성채인 대법원이 그랬을 리가, 대한민국 최고의 재판관인 대법관들이 그렇게 비루했을 수가…하는 배신감에 탄식이 절로 난다.

어릴 적 학교 뒷골목을 지나다 험상궂은 선배들에게 용돈 빼앗기고 얻어맞을 뻔 했던 위기의 순간에 ‘구세주’를 만난 아이들이 있다. 마침 장터를 다녀가시던 할아버지의 호통 한마디에 기가 살아나서는 ‘너희들 까불지 마’란 듯 의기양양 해졌던 학동들의 추억이다.
들판을 뒹굴며 한적을 즐기던 아기 곰이 갑자기 덩치 큰 퓨마의 공격으로 위기를 맞는 동영상도 겹쳐진다. 굶주린 퓨마가 입맛을 다시며 전속력으로 쫓아오는데 아기 곰은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치지만 이내 외나무다리에서 부러진 나뭇조각과 함께 급류에 떨어지고 만다. 물살에 휩씁려 가는 아기 곰을 퓨마는 끈질기게 따라 붙는다. 마침내 바위에 걸린 아기 곰이 코앞에 아가리를 벌린 퓨마에 먹히지 않으려 저항하며 절규하는 절체절명의 순간, 돌연 퓨마가 슬금슬금 꽁무니를 뺀다. 저 뒤편에 포효하는 어미 회색곰이 나타난 것이다. 어린 곰의 울부짖음은 달아나는 퓨마를 향해 기세등등한 일갈로 바뀌고, 다가온 어미곰은 새끼를 끌어안고는 마구 핥아주며 이제 안심하라고 다독인다.


연출된 작품인지, 생생한 동물의 세계 다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슬아슬한 생과 사의 스릴과 배후에 등장한 막강 구원투수, 진한 모성애 등 감동을 주는 단막 영상물의 하나다.
국민들에게 법원, 특히 대법원은 그런 존재가 아닌가. 아니 그래야 하지 않을까. 힘들고 어려운 백성들이 마지막으로 기대고 호소할 곳, 삶의 풍랑에서 피난처요 구원투수이기를 바라는 심정은 당해 본 사람들은 다 같을 것이다.
양승태 대법원이 거래 대상으로 삼았다는 재판 사안마다 억울하게 고통을 겪은 서민들의 애끓는 간절함과 피눈물이 배어있는 것을, 최고의 엘리트 율사들이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국민을 개·돼지처럼 무시하고’ 자기들 허욕의 제물로 삼으려 했다니 그들은 진정 영혼없는 법관들이었고, 양심도 자비도 내팽개친 금수(禽獸)나 다름없는 법비(法匪)들이었음에 틀림없다.

일제에 강제징용 당해 가시밭길 인생을 살았던 피해자 9명이 전범기업을 상대로 낸 배상소송까지도 농단의 희생물이 됐다는 소식에는 할 말을 잃는다. 민족의 아픈 상처를 외면하고 이권을 다루듯 정권 비위를 맞추느라 일본을 위한 논리를 개발해 마치 일본 법원이나 늘어놓을 궤변을 내세웠다. 징용피해자들 가슴에 못을 박고 이미 노령의 원고 대부분이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에는, 분노와 구역질이 날 정도다. 민족혼은 커녕 매국노들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듯 싶다.
대한제국의 매국역적들은 백성들의 ‘기댈 언덕’을 빠앗아 갔다. 일신의 영달에 눈먼 고관대작들이 일제에 영합하며 자국민을 혹독한 식민통치 수탈의 암흑기로 몰아 넣었다. 젊은이들은 전쟁터로, 탄광과 군수공장으로 노예처럼 끌려갔다. 꽃다운 처녀들은 일제군대의 성노리개로 소중한 인생들이 망가져갔다.


그 때 한줄기 실낱같은 희망을 준 게 상해 임시정부였고, 야멸차게 이어진 독립투쟁이었지만, 해방과 새 시대가 왔음에도 독립투사들은 일제에 부역했던 자들에게 다시 탄압을 받고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친일 매국의 후예들은 간교하게도 여전히 백성 위에 군림하며, 독재권력과 족벌의 중추로 명맥을 이었다. 그 적폐들이 탄핵에 내몰려도, 사법에 은거한 뿌리깊은 인맥은 여전히 애꿎은 국민위에서 매국적 농단으로 서민의 피눈물을 자아낸 것이다.
법원은 정의로운 재판으로 국민의 권익을 지켜야 한다. 더구나 최고법원은 국가정의와 국리민복의 마지막 수호자이며 국민이 최종적으로 기댈 언덕이고 나라의 든든한 자존심이기도 하다.
법과 공의와 인권의 보루이며 민주주의 최후의 파수꾼여야 할 법원의 타락은 청산되지 못한 친일 매국의 못된 잔재들이 여전히 살아서 꿈틀대고 있다는 또 하나의 반증이며, 우리에게 진정한 광복은 아직 멀었다는 사실을 되새겨 주는 것이기도 하다.


< 김종천 편집인 >


[칼럼] 종전의 의미

● 칼럼 2018. 8. 13. 08:25 Posted by SisaHan

1953년 7월27일, 그날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오전 10시에 휴전에 서명했을 때에도 포성은 멈추지 않았다. 12시간이 지난 밤 10시, 마침내 여름밤 풀벌레 소리가 들렸다. 그날 서명과 발효 사이의 12시간이 앞날을 예고했다. 휴전에 서명하고도 폭격을 중단하지 않았던 역설이 전후를 규정했다. 승자도 패자도 없고, 이길 수 없음을 알면서도 지지 않으려 했던 전쟁은 그날 끝나지 않았다. 뜨거운 전쟁은 차가운 전쟁으로 얼굴을 바꾸고 이어졌다. 65년이 흘렀다. 두 세대에 이르는 긴 세월이다. 이제는 전쟁을 끝낼 때가 아닐까?


종전이란 무엇일까? ‘베르됭의 악수’ 같은 거. 베르됭은 프랑스와 독일의 접경도시로, 1916년 1차 세계대전 당시 10개월 동안 71만명이 사망한, 유례를 찾기 힘든 격전지다. 1984년 9월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과 독일의 콜 총리가 베르됭에서 만났다. 그들은 프랑스와 독일의 무명용사 13만명이 묻힌 두오몽 납골당에서 손을 잡고, 화해를 다짐했다. 베르됭은 100년의 세월 동안 비극의 현장에서 화해의 공간으로, 참혹한 전쟁터에서 평화의 수도로 거듭났다.
두번의 세계대전을 겪었던 프랑스와 독일의 화해는 물론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양국 지도자들이 자주 베르됭에서 만난 이유는 전쟁의 참혹함을 기억하고, 다시는 비극을 반복하지 말자는 성찰을 위해서다. 한반도에는 베르됭이 너무 많다.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은 올해에만 두번 악수했다. 이후 남북 군사회담은 한반도의 베르됭인 비무장지대 평화를 논의했다. 이제 백마고지에 묻힌 이름 모를 희생자들의 유해를 수습하고, 넋을 달래야 하지 않을까? 종전이란 기억과 성찰이며, 화해를 위한 악수다.


종전은 또한 치유의 정치를 위해 필요하다. 전쟁은 단지 죽은 사람과 다친 사람, 참혹한 파괴와 역병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쟁은 살아남은 사람의 영혼도 파괴했다. 전후의 분단체제는 ‘승복할 수 없는 사람들의 복수심’을 자극하고 재생산했다. 치유하지 않은 상처는 자주 증오로 폭발하고, ‘일시적으로 중단한 전쟁’의 불씨를 되살렸다. 세대가 달라져도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적대와 증오는 결코 저절로 낫지 않는다.
전쟁이 남긴 가장 치명적인 상처는 ‘폭력의 숭배’다. 아직도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고대 로마 시대의 격언을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멀쩡하게 보이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충격을 받는다. 대량살상무기로 절멸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현대의 전쟁은 고대 로마 시대의 전쟁과 비교할 수 없다. 그 말은 ‘사랑의 매’와 같이 형용모순이다. 사랑은 폭력과 어울리지 않는다. 왜 사랑을 하는데, 폭력을 사용한다는 말인가? 평화를 원하면 당연히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준비해야 한다.


‘폭력으로 유지하는 평화’는 일시적이고 오래갈 수 없다.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만이 지속가능하다. 종전선언으로 지속가능한 평화의 공감대를 모아야 할 때다. 평화교육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에게 민주적인 갈등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남북의 평화와 더불어 우리 안의 평화를 만들 때다. 어렸을 때부터 평화의 감수성을 기르고, 합의를 모으는 민주주의를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전후 한번도 시도한 적이 없는 진정한 의미의 ‘치유의 정치’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비핵화와 종전선언의 관계를 오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종전선언은 평화체제의 시작이고, 평화의 의지를 반영한다. 과연 불안정한 정전체제를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전환하지 않고 비핵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비핵화 과정을 촉진하기 위해서라도 종전선언을 아낄 이유가 없다. 비핵화의 입구에서 종전선언을 하고, 중간 지점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하며, 출구에서 평화체제를 완성해야 한다. 65년 전에 끝나야 했던 전쟁이다. 종전선언이 이르다고? 늦어도 너무 늦었다. 세월이 흘러도 전쟁의 상처는 낫지 않았고, 여전히 폭력의 숭배가 대물림되고 있다. 이산가족과 같은 전쟁의 상처를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치료해야 한다. 격전의 백마고지에서, 냉전의 바다 서해에서 자주 손을 잡고 화해를 다짐해야 한다. 그래야 공동번영의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분단의 세월을 겪은 우리 모두에게 치유의 정치가 필요하다. 이제는 좀 전쟁을 끝내자.

< 김연철 - 통일연구원 원장 >


[한마당] 다시봐도 멋진 휴먼 드라마

● 칼럼 2018. 8. 7. 19:34 Posted by SisaHan

동굴 속 깊은 미로에 17일간이나 갇혀있다 극적으로 구출된 태국 축구소년들의 이야기는 벌써 사람들 뇌리에서 멀어져 가는 듯 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사연은 꼬리를 물고, 구조에 얽힌 일화들은 감동을 자아낸다.


다시 봐도 가슴에 울림을 주는 것이 감동의 드라마다. 영국 BBC방송은 지난 15일 ‘동굴소년들’의 극적인 스토리를 생생하게 재구성해 방송했다. 소년들이 순진하게 동굴에 뛰어드는 순간부터 구조대에 의해 다시 동굴 밖으로 살아 나오기까지의 기적같은 드라마는 아무리 보아도 아슬아슬하고 감명 깊다. 우리에게 던져주는 긍정적 메시지들이 너무 많아서다. 메마른 세상에서 서로를 돌보고 지탱하는 공동체의 연대와 사랑,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헌신의 모습들, 위기 속에서도 빛난 미약한 존재들의 의연하고 담대함, 절망 속에 결코 무너지지 않는 희망의 지혜…. 그것들은 결코 세월호 트라우마 때문만은 아니다.


친구의 생일파티를 동굴 속에서 열겠다는 ‘멧돼지’들의 천진하고 멋진 아이디어는 갑자기 불어난 수로에 날벼락을 맞는다. 물에 쫓기며 어렵사리 피해 도망쳐간 곳이 입구에서 무려 5Km나 들어간 고립된 언덕이었다. 깜깜한 암흑에서 먹을 것도 떨어지고 추위까지 엄습하는 공포가 밀려들 때, 미얀마에서 태어난 고아로 태국에 넘어와 무국적자로 일하던 코치는 울어대는 아이들을 다독이며 안아주고 자기 먹을 것을 나눠주었다고 한다. 명상하는 법을 가르쳐 안심시키고 움직임을 줄여 체력도 유지하도록 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갈수록 얼마나 두렵고 절망이었겠는가. 그들이 영국 잠수사들에게 발견되기까지 열흘간 땅굴을 판 게 5m에 달했다는 것을 보면 극한에서의 몸부림을 짐작하게 한다.


축구 소년들의 동굴실종 뉴스가 지구촌에 퍼져 나가면서 세계 각지에서 구조인력이 자원해 동굴촌 치앙라이로 모여들었다. 태국의 해군 네이버실을 비롯해 각국의 잠수사와 의료진, 탐험가, 군인, 생존전문가 등 무려 1천여 명이 집결했다. 13명의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모인 다국적 탐사 구조대가 이뤄진 것이다. 이들의 전문적인 역량과 똘똘 뭉친 협업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과연 소년들이 살아 있을지, 어떻게 구조에 나서야 할지 의문이었던 게 사실이다. 아이들의 생존이 확인됐어도 그 험난한 코스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 대책이 서지 않아 지상에서 뚫고 내려간다는 구상이 나오는가 하면, 구조에 40일은 걸릴 거라는 탄식도 나왔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지혜가 모이고 이들이 역량을 발휘하면서 일주일 만에 동굴 소년들은 햇빛을 보고 삶을 되찾았다.


열흘 만에 극적으로 아이들을 찾아낸 영국 잠수사 두 명은 ‘기적의 신호탄’이 됐다. 50대 소방관인 릭 스탠턴과 40대 컴퓨터 기술자 존 볼랜던. 이들은 프랑스 동굴에서 물속 70m까지 들어가 10Km를 헤엄치고 무려 36시간 동안 수중에서 지냈으며 잠수병을 예방하려고 20시간 동안 감압을 하는 등 전설적인 기록과 구출 경험의 보유자들이었다. 그들에게는 태국 동굴이 ‘땅짚고 헤엄치기’일 거라는 말도 나왔다. 예상대로 그들은 동굴 바닥을 기고 급류를 헤쳐 수Km를 왕복하며 소년들 위치를 “냄새로 알아내” 어둠 속에 떨고있던 아이들 생존의 기쁨을 전했다.


태국정부의 차분하고 치밀한 대처도 돋보였다. 언론의 무분별한 취재와 접근을 차단해 불필요한 억측과 소란을 막은 것은 현명한 대처였다. 각국의 전문가들에게 솔직히 도움을 청하고 자발적인 봉사자들도 기꺼이 받아들인 것 역시 인명을 중시한 겸손하고 정직한 태도로 평가받을 만하다. 태국 외교장관은 동굴 잠수와 구조의 전문가인 호주 마취과 의사 리처드 해리스를 조용히 초청하면서 외교관에게 부여하는 면책특권까지 약속했었다는 사실을 나중 공개했다. 해리스는 4Km가 넘는 구간을 잠수해 들어가서 아이들 건강을 체크하고 구조의 시기와 순서를 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잠수하는 의사로 영웅이 됐다가 구조작업 막바지 부친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급거 귀국한 그 의사다.


태국정부는 구조에 수고한 각국 전문가들을 극진히 대접하는 예의도 갖췄다. 영국 잠수사들을 총리가 접견해 칭송하고, 출국하는 그들을 장관들이 공항까지 선물을 들고 가 배웅했다. 다른 이들도 원할 경우 태국여행을 시켜주고, 5년 이내에 다시 방문할 수 있는 항공권을 지급했다고 한다. 그리고 무국적자로 밝혀진 엑까폰 코치와 3명의 소년에게는 국적을 부여할 예정이라고 한다.
국경과 인종을 초월한 인간애와 공동체의 지혜, 그리고 선한 손길들이 만들어 낸 해피엔딩의 멋진 드라마였다. 그래도 여전히 인류의 앞날에 희망을 품게 하는….


< 김종천 편집인 >


[1500자 칼럼] 마케도니아의 선택

● 칼럼 2018. 8. 7. 19:32 Posted by SisaHan

그동안 국제부 기자 생활을 하며 발칸반도의 소국 마케도니아에 관심을 기울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도 이 나라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일본의 ‘욱일승천기’와 닮은 국기 때문이었다. 몇년 전 태양의 빛이 여덟 방향으로 뻗쳐 나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이 나라의 국기를 확인하고, 고개를 갸우뚱한 뒤 그 존재를 기억에서 지웠다.

마케도니아와 다시 조우하게 된 것은 11~12일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때였다. 세계 언론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의에서 벌인 ‘분탕질’에 집중하는 사이, 내 눈을 잡아끈 짧은 단신이 있었다. 나토가 마케도니아를 30번째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교섭을 시작한다는 소식이었다. 조란 자에프 총리는 11일 페이스북에 “기뻐하라! 나토의 정식 회원국이 되기 위한 문이 열렸다. (오늘은) 크고, 역사적인 날”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마케도니아가 나토에 가입하기 위해선 중요한 ‘허들’ 하나를 넘어야 한다. 마케도니아는 1991년 옛 유고 연방에서 독립한 뒤 그리스와 27년에 걸친 외교 분쟁을 겪고 있다. 이유는 뜻밖에도(!) ‘마케도니아’란 국명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에게 마케도니아는 고대 그리스의 영웅 알렉산더 대왕을 배출한 영광스러운 역사의 상징이다. 이들은 마케도니아가 건국하자 “고대 그리스와 아무 관계도 없는 슬라브 민족의 나라가 우리 역사를 갈취하려 한다”며 격렬히 반발했다. 마케도니아 역시 외국의 압박에 굴복해 국명을 바꿀 순 없다며 치열하게 맞서왔다.

영국 <BBC>는 마케도니아에 대해 “역사적으로 격동적인 지역(발칸반도)에 위치한 좁고, 육지에 둘러싸인 나라”라고 묘사한다. 2015년 현재 인구는 207만명에 불과하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유럽연합의 ‘지진아’라 불리는 그리스의 3분의 1(5500달러)밖에 안 된다. 실업률은 2016년 세계은행 자료 기준으로 26.2%까지 치솟아 있다. 그렇기에 마케도니아는 경제 성장의 활로를 찾고 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연합과 나토 가입을 열망해왔다. 이에 맞서 그리스는 마케도니아가 국명을 바꾸지 않는 한, 두 기구에 가입할 수 없다며 반대하는 중이다.

지난달 17일 오랜 대립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위대한’ 진전이 이뤄졌다. 자에프 총리와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마케도니아가 국명을 ‘북 마케도니아’로 바꾸는 대신 그리스는 마케도니아의 유럽연합과 나토 가입에 반대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이다. 단, 마케도니아는 국명 개정을 ‘불가역적’으로 만들기 위해 국민투표를 통한 개헌을 해야 한다. 한국이 헌법을 개정해 독도를 포기하거나 ‘동해’ 대신 ‘일본해’란 명칭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그들이 합의를 지지하면 나토에 가입할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가입할 수 없다. 둘 다를 얻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마케도니아 야당은 그리스와 굴욕적인 합의를 맺은 자에프 총리를 용서할 수 없다며, 올가을로 예정된 국민투표 절차를 방해하는 중이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 그 나라 국민들이 자유의지에 따라 선택한 헌법의 소중한 가치를 구현하며 국민의 생명·재산을 지키고 행복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개헌까지 불사해가며 경제와 안보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케도니아의 처절한 몸부림은, 민족적 자존심을 짓밟은 한-일 국교 정상화라는 ‘더러운 선택’을 통해 경제 발전의 계기를 마련한 1960년대 대한민국의 모습과 많이 겹쳐 보인다.

< 길윤형 - 한겨레신문 국제뉴스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