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국 막장 대선이 온다

● 칼럼 2020. 7. 24. 03:44 Posted by SisaHan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가 메모리얼 데이(현충일)625일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있는 맥헨리 요새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미국 국가가 울리는 동안 가슴에 손을 얹고 있다.


[칼럼] 막장 대선이 온다

황준범 워싱턴 틀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13(현지시각) 대선에서 패배해도 불복할 걸로 본다는 얘기를 미국인으로부터 직접 들은 건 지난해 가을이다. 민주당이 우크라이나 스캔들관련해 트럼프 탄핵 조사 개시를 선언한 직후인 9월 말, 한 싱크탱크 인사는 트럼프는 탄핵감이지만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에서 부결될 것이다. 대선밖에 방법이 없는데, 문제는 트럼프가 대선에서 져도 승복하지 않으려 할 것이라는 점이다. 탄핵이든 선거든 그를 백악관에서 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이 말을 트럼프 싫어하는 사람의 냉소 정도로 받아들였지만, 이후 워싱턴에서 트럼프의 대선 불복 가능성에 대한 얘기는 끊이지 않았다.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공개적으로 이를 언급했고, 정치 평론가들은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지난 19일 트럼프의 <폭스 뉴스> 인터뷰는 개그처럼 여겨지던 얘기를 다큐멘터리 반열로 올려놨다. 그는 대선 결과를 인정하겠느냐는 진행자 크리스 월리스의 집요한 질문에 지켜봐야 한다. ‘예스다 말하지 않겠다고 확답을 피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전국적으로 확대 도입되고 있는 우편투표를 두고 선거 사기로 이어질 수 있다며 밑자락도 깔고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대선 불복 시나리오를 열심히 그려보고 있다. 트럼프가 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플로리다 등 핵심 경합주에서 바이든에게 근소한 차이로 지는 것으로 나왔을 때, 밤새 침묵한 뒤 아침 트위터에 불법 이민자들이 대거 투표에 참여했다거나 우편투표에 조작이 있다고 주장한 뒤, 기자회견을 열어 불복을 선언하는 경우다. 여기에 공화당이 동조하면서 해당 주를 상대로 재검표를 요구하거나 소송을 걸 수 있다. 조지 부시와 앨 고어가 맞붙어 플로리다주 재검표 소송을 겪었던 2000년보다 훨씬 더 심각한 악몽에 빠져들 수 있다.

이번 미 대선이 악몽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또 다른 이유는, 우편투표 개표가 늦어지면서 선거 이튿날까지도 승자를 모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일부 선거구는 선거일 당일 우편 소인이 찍힌 것까지 인정한다. 지난달 뉴욕, 켄터키 등에서 치러진 의회 예비선거는 개표 완료까지 일주일 이상 걸렸다. 개표가 길어지는 동안, 트럼프와 바이든 지지층이 장외 세대결을 하며 혼란이 커질 수 있다.

미국 민주당의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메모리얼 데이(현충일)을 맞은 25일 부인 질과 함께 델라웨어주 뉴캐슬에 있는 참전용사 기념공원에서 헌화하고 있다.

네거티브 선거운동도 거세질 전망이다. 트럼프 캠프는 사실과 달리 바이든이 경찰 지원금 중단에 찬동한다고 주장하면서, 바이든이 집권하면 무법천지가 될 것이라는 취지의 3가지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예컨대, 경찰에 신고 전화를 하니 자동응답 메시지가 경찰 지원금이 중단돼 전화를 받을 수 없다며 살인 등 사건 종류를 번호로 누르라고 한 뒤 예상 대기 시간은 약 5이라고 안내하는 내용이다. 사실을 왜곡하면서 불안과 분열을 조장하는 전략이다. 트럼프는 자신보다 3살 많은 바이든(77)의 정신건강을 대놓고 문제 삼으면서 인지능력 검사를 해보자고 비난하고 있다.

트럼프가 대선에 지고도 백악관에 계속 남아 있는 상황이 실제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 공화당, 그리고 군대가 국민 다수의 선택을 무시하고 트럼프 편에 서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거짓말과 공포 마케팅 또한 지난 4년을 지켜봐온 미국인들에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바이든을 노망든 노인으로 몰아가려는 전략도, 오히려 트럼프의 지지기반인 노인층의 이탈을 부르고 있다. 그럼에도 상식을 벗어난 일들이 버젓이 펼쳐지고 있다. 대선을 100일 앞둔 미국의 현실이다.

< 황준범 워싱턴 특파원 >

 

 


[칼럼] "전쟁영웅" 백선엽은 없다

● 칼럼 2020. 7. 21. 03:08 Posted by SisaHan

[칼럼] "전쟁영웅" 백선엽은 없다

 

셀프 영웅화에 친일 보수언론들의 역사 만들기 조작

 

19452, 일본 도쿄 남동쪽에 위치한 이오섬(이오지마)2차 세계대전 최악의 전장 중 하나가 됐다. 이오섬에 상륙한 미군 3만여명 중 2천여명이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목숨을 잃었고 마지막에는 24800여명이 전사했다. 5일이면 함락 가능하다는 미군 수뇌부의 오판이 낳은 처참한 결과였다. 미 군부는 분위기를 역전시킬 계기가 필요했다. 6명의 미군이 이오섬 스리바치산 정상에 성조기를 꽂는 사진을 애국주의 상징으로 활용한 이유다. 미 정부는 사진 속 군인 중 전사하지 않은 3명을 전쟁기금 마련을 위한 홍보활동에 동원한다. 성조기를 꽂는 사진은 신문, 잡지, 역사서, 영화, 티브이 쇼 그리고 동상으로 재생산됐다. 군부와 미디어가 만들어낸 영웅주의 프로파간다였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들은 영웅으로 불리는 것을 괴로워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아버지의 깃발>의 내용이다.

한국전쟁의 영웅 만들기는 어땠을까. 백선엽 예비역 육군대장이 전쟁영웅이 되는 과정은, 살아남은 자가 스스로를 영웅화한 한편의 드라마처럼 보인다. 실제 참전 장성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은 백씨의 한국전쟁 공적이 부풀려졌다고 지적한다. 육사생도 2기 출신으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야전을 두루 거친 노병 박경석 장군(88·예비역 육군 준장)이 대표적이다. 19<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그는 “6·25 전쟁사를 모르는 정치인들과 일반인들은 마치 낙동강 다부동 전투에서 백선엽이 인민군을 다 막아 대한민국이 구출된 것처럼 얘기하지만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240나 되는 낙동강 전선에서 한국군 5개 사단과 미군 3개 사단, 8개 사단이 합심해서 방어해낸 것인데 그중 일부분이었던 백선엽이 다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개탄했다.

박 준장은 다부동 전투 승리에는 미군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했다. 미 공군이 B29 폭격기로 융단폭격을 퍼부은데다, 한미연합군 8개 사단을 지휘한 미군 워커 중장의 불퇴전 결의가 승리를 낳았다는 것이다. 당시 워커 장군은 사수하느냐 죽느냐의 선택밖에 없다. 여기서 밀리면 수많은 전우가 죽게 된다고 후퇴를 용납하지 않았다. 워커 중장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박정희 정권은 이후 워커힐 호텔을 만들었다.

훗날 일각에서 백선엽이 낙동강 전선을 혼자 사수한 것처럼 과장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지적한 박 준장은, 백씨를 영웅화한 이는 백씨 자신이라고 했다. “그는 군복을 벗은 뒤 박정희 정부 때부터 30년간 전쟁기념관에 사무실을 두고 출근하며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을 자원해 맡았다. 당시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아이고, 백선엽 장군이 내신 6·25 관련 책이니까라며 덮어놓고 찬양했다. 그러나 참전 장군들은 다 안다. 그분들은 백선엽 장군을 영웅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셀프 영웅화였다는 얘기다.

개전 당시 개성 1사단을 지휘한 백선엽이 제대로 응전도 못 하고 패주하는 바람에 서울이 조기에 함락됐다고도 한 그는, 2010년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백선엽 명예원수(5성 장군) 추대를 막아낸 주역이다. 자신이 평생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일제 앞잡이였던 백씨가 한국군 최초의 명예원수가 될 순 없다고 어기차게 반대했다. 채명신, 박정인, 이대용 장군 등 참전 군 원로들도 그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 결국 없던 일이 됐다.

결과적으로 셀프 영웅화에 <조선일보>를 위시한 보수언론의 역사 만들기 장기 프로젝트가 결합해 전쟁영웅 백선엽을 창조해낸 셈이다. 친일 전력에 동양 최대 사학비리인 선인학원 연루, 아들 명의로 서울 강남역 초역세권에 시가 2천억원 상당 빌딩 소유, 부인 명의로 시가 200억원의 이태원 자택 소유. 이런 흠결을 눈감게 만든 것이 그의 한국전쟁 공적이었으나, 이제 그마저도 믿기 어렵게 됐다. 그가 영웅이 된 가장 큰 이유는 부끄러움 없이 그 누구보다 오래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에 있는지 모른다. 영웅 백선엽은 없다.

< 오승훈 전국팀장 >


[칼럼] 주한미군의 바짓가랑이를 잡지 마라

   

트럼프가 미군 주둔 비용을 더 뜯어내려고 주한미군 감축을 운운한다면, 그 주한미군의 바짓가랑이를 잡을 필요가 없다. 진의라면, 미국과 진지하게 무릎을 맞대고 한국의 인계철선 역할을 줄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인계철선은 부정적인 용어이고 미 2사단 장병에게는 모욕적인 발언이다. 인계철선은 파산한 개념이다.” 지난 2003년 초 현안이던 주한미군 재배치에서 정부가 요구했던 미군의 인계철선 역할 유지에 대해 리언 라포트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이 거칠게 비난했다.

미국은 한국에 동두천의 2사단 등 주한미군의 한강 이남 배치를 통보했다. 한국은 미군의 대북 억지력이 약화될 것으로 우려했다. 동두천의 2사단 등은 북한이 남침하면 자동적으로 참전해, 미국의 개입을 보장하게 된다. 이는 인계철선’(wire trip)이라는 개념으로 포장됐다. 인계철선이란 건드리기만 하면 폭발하는 부비트랩(설치용 폭약)의 폭발장치.

고건 총리가 토머스 허바드 주한 미 대사에게 이 인계철선 개념 유지를 제시하자, 라포트 사령관이 미군 장병을 총알받이로 해서 한국의 안보를 보장하겠다는 것이냐고 비난한 것이다.

17년이 지나서 다시 주한미군 재배치가 얘기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6월 독일의 적은 국방비를 이유로 주독 미군을 감축하는 조처를 밝히는 과정에서 리처드 그리넬 전 주독 미 대사가 주한미군도 감축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운을 떼었다. 지난 17일에는 <월스트리트저널>이 미 국방부가 백악관에 주한미군 감축안을 보고했다고 보도했다. 펜타곤이 세계적 차원에서 미군의 재배치 및 감축에 대한 폭넓은 재검토의 일환으로 주한미군의 구조를 점검하고 있다는 것이다.

17년 전의 주한미군 재배치도 미 군사력의 전 세계적 재배치의 일환이었다. 미군의 인계철선 역할의 회피가 아니었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전쟁을 전후해 해외 주둔 미군들을 신속기동군화해서, 주둔 지역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하게 분쟁 지역으로 파견하는 전략을 수립했다. 미국은 주한미군의 신속기동군화를 뒷받침하는 일환으로, 주한미군 재배치를 밀어붙인 것이다.

당시 우리가 우려해야 했던 것은 미군의 인계철선 역할 회피가 아니었다. 신속기동군이 된 한반도의 미군이 한반도 주변 분쟁에 파견되면, 우리도 자동적으로 말려들어 갈 우려였다. 우리의 반대에 미국의 세계 전략이 바뀔 리가 없어서, 노무현 정부는 한반도에서 한국의 안보 주권을 강화할 계기로 삼고자 했다. 전시작전권 회수가 그 일환이었다.

17년 전에 우려했던 대로 현재 한국 자체가 인계철선이 됐다. 격화되는 미-중 대결 와중에서 한국은 점점 미국의 대중 포위망의 전초기지로 요구받고 있다. 사드 배치에서 보여준 중국의 격렬한 보복이 이를 말해준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한반도에서 미군을 감축하려는 것이 진의라면, 우리로서는 미국과 진지하게 무릎을 맞대고 한국의 인계철선 역할을 줄이는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가 띄우는 주한미군 감축은 진의라기보다는 한국에 미군 주둔비를 더 부담시키려는 뻥카. 미국이 주독미군 감축의 이유로 인도-태평양에서 전력 보강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주한미군 감축은 논리적 타당이 없다.

주독미군이나 주한미군 철수 보도는 <월스트리트저널>의 특정 기자가 잇따라 보도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 때 <뉴욕타임스> 기자였던 그는 펜타곤과 한몸처럼 움직이며 이라크 전쟁을 보도한 인물이다. 사실 펜타곤은 해외 미군 감축에 찬성하지 않는다. 트럼프의 압박 앞에 시늉만 하는 것이다. 펜타곤으로서는 한몸처럼 움직이는 기자를 통해 트럼프에 게 보이려는 언론플레이 가능성이 농후하다.

주독미군 철수에 독일 정치권은 일절 반응을 안 한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어떤 정치인도 언급하지 않고, 군사전문가들만 그런 징벌적 조처는 아프리카 및 중동에서 미군의 작전 능력을 약화할 것이라고 경고한다고 전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국방보좌관이던 에리히 바드는 그 조처는 독일 안보에 아무런 영향을 못 준다. 미국이 독일에서 갖고 있는 것은 유럽 및 그 이외 지역에 있는 미군의 병참에 기여하는 허브다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독일에서 빠진 병력을 배치하겠다는 나라인 폴란드에서도 안제이 두다 대통령이 유럽에서 미군 철수는 유럽 안보에 매우 유해하다며 주독미군 철수 재고를 요청했다.

트럼프가 미군 주둔 비용을 더 뜯어내려고 주한미군 감축을 운운한다면, 그 주한미군의 바짓가랑이를 잡을 필요가 없다.

< 정의길 국제뉴스팀 선임기자 >


[칼럼] 이재용 부회장의 유니콘 리더십

 

< 최한수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리더십은 유니콘과 같다. 사람들은 그것이 존재한다고 얘기하는데 정작 본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어쭙잖은 농담을 던진 이유는 대검 수사심의위원회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했기 때문이다. 위원회의 이런 결정에는 이 부회장에 대한 기소가 삼성과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고려가 있었다고 한다. 이 부회장의 감옥행이 리더십 공백을 낳고 이것이 기업과 국민 경제에 큰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논리다. 이러한 인식은 매우 놀랍다. 시장에서도 반신반의하는 이 부회장의 리더십을 14명의 위원들이 보았다고 주장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능력에 대한 나의 판단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판단 근거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다. 2000년대 초반 이 부회장은 삼성의 미래를 위해 이(e)비즈니스를 시작한다며 이(e)삼성과 그 계열사들을 설립했다. 그룹 차원의 전폭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투자는 실패했다. 물론 이 부회장은 손해를 보지 않았다. 실패로 인해 불거질 자질 논란을 피하기 위해 삼성 계열사들이 그 손실을 다 떠안았기 때문이다. 실제 삼성은 이 부회장은 투자만 했을 뿐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이삼성 투자는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이었기에 성공의 공은 모두 이 부회장에게 돌려졌을 것이라는 점을. 이처럼 이 부회장에게 있어 기업경영은 마치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자신이 이기고 뒷면이 나오면 상대방이 지는 게임과도 같다. 어떤 결과이든 자신이 손해 보는 일은 없다. 과는 넘기고 공만 가져가는 리더십이다.

이 부회장의 그룹 내 역할에 대한 스스로의 진단은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나왔다. 청문회에서 그는 대부분의 질문에 대해 잘 모른다는 말로 일관했다. 수사 과정도 비슷했다. 언론에 공개된 진술조서에 따르면 그는 삼성전자 부회장인데 결재를 지금까지 한번도 한 적이 없()”, “회장님께서 결재 라인에 끼워주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는 대주주로서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았다. 마치 영국 여왕처럼.

하지만 그는 영국 여왕보다 더 신비주의에 싸여 있다. 이처럼 외부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이 부회장의 리더십은 위기 시에는 달라진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그 시기가 회사가 어려울 때가 아니라 자기가 어려울 때라는 데 있다. 평상시에는 결재조차 하지 않는다던 이 부회장은 정작 자신의 재판을 앞두고는 방진복을 입은 채 작업장을 순회하거나 공장을 방문한 대통령의 옆자리에 서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러나 시장이 원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다. 시장이 한 산업의 선도기업의 리더에게 바라는 것은 그 기업과 산업의 미래에 대한 식견과 전망에 대해 얘기해주는 것이다.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이 부회장이 공개된 자리에서 투자자들에게 반도체나 정보기술(IT) 산업의 비전을 밝혔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사실 이 부회장의 리더십에 대한 가장 정확한 평가는 이미 시장에서 이루어졌다. 그가 실형을 받은 1심 판결 뒤 삼성전자의 주가는 오히려 올랐다. 반대로 집행유예가 나왔던 2심 판결 뒤 주가는 하락했다. 이는 비단 이재용 부회장에게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필자는 재벌 총수의 리더십에 대한 시장의 평가를 알아보기 위해 이창민 한양대 교수와 함께 2000년부터 2018년 사이에 유죄 판결을 받은 35명의 재벌총수와 관련된 319개 계열사의 주가 반응을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총수에 대한 사법처리가 주가에 부정적인 경우는 실형이 아니라 오히려 집행유예 판결이 내려진 경우라는 점을 확인하였다. 이는 시장이 재벌총수에 대한 실형 선고가 해당 기업의 의사결정의 공백을 가져와 기업가치에 좋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기각했음을 의미한다. 투자자 입장에서 재벌총수의 리더십은 회사에 꼭 필요한 자산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기업의 주요한 결정을 전문경영인들이 내리고 있는 현실과도 부합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총수가 부재하여도 기업과 국가 경제가 망가지는 일은 없다. 에스케이(SK) 최태원 회장이 감옥에 있었던 926일 동안 에스케이텔레콤(SKT)과 우리 경제에 특별한 문제가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수사심의위의 불기소 권고는 배척되어야 한다. 검찰의 신속한 기소 결정을 촉구한다.